그림 같은 신화 - 그림에 깃든 신화의 꿈
황경신 지음 / 아트북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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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는 신들의 신성한 이야기. 그러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다보면 신성은 저 멀리 사라지고 오로지 인간의 삶이 펼쳐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물론 그들이 펼치는 능력이 인간의 한계를 훨씬 뛰어넘기는 하지만, 사랑, 질투, 외로움, 분노 등등 우리 인간이 느끼는 감정들이 신화에 오롯이 들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신화를 통해 우리 삶을 엿보게 된다. 신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간접체험을 하게 된다. 이것이 신화를 읽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결국 인간이 잘 살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다른 존재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엿보고 배우게 되는 과정, 인간의 사회화 과정에 동원된 자료가 바로 신화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신화가 유럽에서는 오랫동안 문화로 자리잡고 있었고, 그들의 종교를 제외하면 사실 중세나 근세까지도 그리스 로마 신화는 유럽인들의 생활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신화란 인간의 이야기를 신들에 빗대어 하고 있다는 것. 따라서 우리는 신화를 통해 우리의 삶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

 

하여 사랑, 욕망, 슬픔, 외로움이라는 제목으로 네 부분으로 나누어 이 책을 서술하고 있다. 신들도 사랑하고 욕망하며 슬픔을 느끼고 심지어는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 (물론 그리스 로마 신화라고 해서 모두 신들의 이야기는 아니고 신들과 관계를 맺은 인간들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그리 중요하지는 않으니 인간과 신의 구별을 여기서는 하지 않으리라.)

 

그렇다고 신화를 직접 우리에게 이야기해주면 이미 다 알고 있는데 하는 반응이 나오거나 또는 그리스 로마 신화가 여러 버전으로 번역이 된 것이 얼마나 많은데 또? 하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는데, 이 책은 그것을 피해가기 위해서 그림을 동원한다.

 

서양에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와 관련된 그림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에 자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고, 그 중에서 유명한 그림들만 모아 설명을 해고 신화에 대한 엄청한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판에 박힌 듯 나오는 그리스 로마 신화가 아니라 좀더 색다른 신화 이야기가 되고, 신화 이야기를 통해 우리 인간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게 된다.

 

제목이 "그림 같은 신화"지만 이 책의 성격을 더 잘 말해주는 것은 큰 제목 위에 붙은 '그림에 깃든 신화의 꿈'이라는 작은 제목이다. '신화의 꿈'이라는 말보다는 '인간의 꿈'이라는 표현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는 했는데...

 

신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인간을 이야기하는 것이니, 그림에 깃든 인간의 꿈을 관련 신화를 통해 찾아보자고 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각 주제에 4편의 신화가 나오고, 주요 그림이 글이 시작하기 전에 한 편이 나오고, 글을 서술하는 중간중간에 관련 그림이 여러 편 나오고 있다. 하여 신화에 대해 알기도 하고, 관련 그림을 많이 감상할 수도 있으며, 글을 읽으며 이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한다.

 

그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그림과 신화를 우리 곁으로 가져다 주었는데...무겁지 않고 어렵지 않고 쉽고 가볍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쉽고 가볍게 읽어도 그 내용에 들어 있는 인생의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을테니 그 무거움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읽는 사람이 할 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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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속에 담긴 그 도시의 다리
이종세 지음 / 대한토목학회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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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야든 홀로 떨어져 있을 수가 없음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 깨달을 수 있었다. 다리라는 건축물을 그림을 통해서 접근을 하다니.

 

그것도 미술대학이 아니라 건축대학에서 건축에 대한 공부로 그림에 나타난 다리를 예시로 수업을 하다니. 이런 발상도 가능하구나 하는 생각.

 

그림에 나타는 다리들은 하나같이 예술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단지 그림 속에 있어서가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실용을 넘어선 예술로서도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 속에 나타난 그 다리의 역사, 아름다움, 그리고 건축가, 지금 우리에게 주는 의미 등을 무려 28개의 그림을 통해서 이야기해주고 있다.

 

아름다운 그림 속에서 다리가 중심을 차지하기도 하고, 주변에 머무르기도 하지만 다리 역시 하나의 풍경을 이루는 요소임에는 틀림이 없다.

 

아름다운 풍경, 그런 풍경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도시와 강과 다시 도시를 잇는 다리, 이것들이 모여 하나의 풍광을 이룬다.

 

그래서 다리는 단지 실용성에 머물면 안된다. 지금 우리나라 한강 다리라든지, 여러 도시의 다리들을 보면 건네준다는 필요말고도 야경이라든가, 아니면 그곳에 휴식공간을 만들어 사람들이 풍경을 감상하면서 쉴 수 있게 해주고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도 다리를 그냥 건축물로서가 아니라 예술로서도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가 되는데...

 

서양 그림에 나타난 다리들을 보며 우리나라에도 분명 이런 다리가 나타난 그림들이 있을텐데, 우리나라 그림에 나타난 다리를 통해 우리나라 다리와 미술의 융합을 이야기해주는 책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에도 다리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이나 문학작품이 꽤 있을테니 말이다. 얼핏 생각나는 것만해도 김만중의 "구운몽"이 떠오르는데, 성진이 8선녀을 만나는 곳이 다리니까 말이다.

 

여기에 역사적으로 비극적인 '건널 수 없는 다리'도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 역시 수많은 사연을 간직한 다리들이 많으니, 이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낸 책도 기대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읽었다.

 

명화라고 할 수 있는 작품, 또 처음 보는 그림들도 있었지만 그림을 보면서 다리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책이었따.

 

건축과 미술의 융합, 또 다리라는 특정한 요소를 통해 인간과 자연, 도시와 자연을 이어주는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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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철학사 3 - 해체와 종말 : 포스트모더니즘에서 파타피지컬리즘까지 미술 철학사 3
이광래 지음 / 미메시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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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도 긴 내용을 지닌 책이다. 장강의 흐름에 이 책의 2권을 비유했다면, 3권을 다 읽은 지금은 이 책은 장강(長江)이 아니라 바로 산들로 이루어진 산맥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산에 오르기 위해 오르막을 힘겹게 오르는데, 오르면서 이곳저곳을 보게 되기도 한다. 가끔은 하늘이 뻥뚫린 곳에 이르러 하늘을 보기도 하고, 발밑으로 흐르는 계곡물을 보고 발을 담그기도 한다.

 

여기에 평평한 바위가 있으면 걸터앉아 쉬기도 하는데... 이렇게 정상에 오르면, 정상이 끝이 아니다. 산맥은 하나의 정상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수없이 많은 정상들이 제 자리를 지키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관계를 맺으며 하나의 산맥을 이루고 있다.

 

미술철학사라는 이 책, 바로 이러한 산맥들이다. 1권부터 시작한 등정이 어느덧 3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정상들을 거쳐야만 한다. 한 정상에 올라 다른 정상들을 보면서 정상의 의미를 되새기기도 해야 하고.

 

미술철학사. 공시성과 통시성을 동시에 아우르는데, 저자는 이 책에서 통시성보다는(즉 역사성 보다는) 공시성을 더 중요시했다고 한다. (작품이 존재하는 시대에서 얼마나 주변으로 영향을 미쳤나 하는)

 

즉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통시성이라면 동시에 널리 퍼져 존재하는 산 정상들이 이루는 산맥은 공시성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이 자율성을 지니기 시작한 이래로 모더니즘, 포스트 모더니즘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미술철학들이 함께 존재해 왔음을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다.

 

특히 3권은 현대미술이다. 우리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림들, 작품들... 하긴 현대를 누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현대는 나누어지고 쪼개져 한 눈에 전체를 볼 수 없는, 마치 숲 속에 갇혀 나무는 보지만 숲은 볼 수 없는 그런 상태 아니던가.

 

이런 원자화된 현대에서 현대미술 또한 현대철학을 따라 전체적인 모습을 파악하기 힘들게 변해왔다.

 

현대미술은 감성에 호소한다기보다는 이성에 호소하는 것이다. 이 작품이 무엇을 의미할까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하고 생각하게 한다.

 

예전 미술이 한 눈에 전체가 들어와 곧장 마음으로 파고들었다면 현대미술은 그렇지 못하다. 미술 자체가 현대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듯이 우리는 전체를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철학이 그런 사회를 반영하여 '포스트'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듯이, 또 현실과 가상의 구분이 모호해지자 '시뮬라시옹, 시뮬라르크'라는 말이 나왔듯이 미술 역시 가상과 현실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겠다. 많이 나오고 있지만, 하나같이 이성에 호소하지 감성에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가 감성으로 현대미술을 받아들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전체가 보이지 않는데, 이제는 산 정상에 올라 주변 산들을 한 눈으로 훑을 수 있는 그런 기회를 가질 수가 없는데, 어떻게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그냥 파편화된 현대를 표현한 미술로, 미술을 보면서 나 자신도 한 부분임을 깨닫는 수밖에는 없다. 여기서는 감동보다는 인식이 우선한다. 인식, 치열하게 현대를 파악하려는 노력. 그러한 노력이 현대미술에서도 현대철학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현대미술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적어도 왜 현대미술이 이런 모습으로 나타났는가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해에서 감동으로 가기에는 더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최소한 이해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해 준 이 책이 고맙기는 하다.

 

저자는 이 책의 맺음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책은 작품마다의 지배의 결정인과 최종적 결정인의 작용을 주로 미술과 철학, 과학과 문학, 정치와 경제 등 각 시대를 가로지는 내외의 변화에서 찾아내어 조형 욕망의 계보학적 내용들을 세로내리기해 왔다. 부디 이 책이 많은 이들에게 철학적 영감을 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797쪽.

 

전문화, 단순화, 파편화되어 가는 이 시대에, 그런 현실을 볼 수 있는 눈(철학)을 가지게 하는 것, 그런 철학을 미술작품을 통하여 갖출 수 있께 하는 것, 이것이 이 책이 지향하는 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길고도 긴 책... 내용이 쉽지도 않은 책. 읽었어도 내용을 다 이해하지는 못한 책. 그럼에도 미술철학에 대해서, 아니 미술과 철학, 사회, 과학과 문학의 융합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한 책이라는 데서 이 책의 의미를 찾는다.

 

덧글

 

읽으면서 조금 아쉬웠던 점은, 미술철학사를 다루기에 모든 작가를 다룰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라틴아메리카 작가들(벽화운동을 했던 멕시코 화가들)이나, 전쟁반대를 외쳤던 콜비츠, 그리고 불가사의한 그림을 그린 에셔 등이 빠진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 작가들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만큼 미술철학을 이야기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겠지만, 동양권의 작품들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도 역시 아쉽다.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역시 지금까지는 세계 미술의 주류들은 유럽과 미국이다) 한 미술철학사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 아쉽기는 하다. 이게 현실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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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맥(漂麥) 2016-04-04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번 쯤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리뷰!!! 잘 읽었습니다...^^

kinye91 2016-04-04 21:17   좋아요 0 | URL
현대철학과 미술을 접목해서 저는 잘 이해하지 못한 내용이 많은데요. 현대철학에 관심있는 분이나 현대미술의 철학성에 관심있는 분이 이 책을 읽으면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미술 철학사 2 - 재현과 추상: 독일의 표현주의에서 초현실주의까지 미술 철학사 2
이광래 지음 / 미메시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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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 한 권 읽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어쩌면 한 권을 읽을 때마다 앞의 권을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만큼 방대한 양이다. 이 방대한 양이 하나의 흐름으로 정리가 되면 좋겠지만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그리고 네덜란드, 벨기에 등을 오가고 있으니...

 

그럼에도 어떤 흐름이 있다. 이 흐름을 따라 미술과 철학과 세상이 연결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흐름이 도도하게 흘러 미술이 변화되고, 그것이 나라에 따라서 다르게 또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2권은 표현주의에서 시작한다. 표현주의 그러면 어떤 유파인지 잘 모르겠지만 칸딘스키란 이름은 한 번쯤 들어보았을지도 모른다. 현대미술의 시작... 이렇게 이름 붙일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2권은 칸딘스키로 대표되는 표현주의로부터 시작한다.

 

표현주의라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의 재현에서 벗어나는 데서 시작한다. 이제 세상은 단순히 우리가 눈으로 보는 대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렇게 표현주의가 대두하는 데는 철학의 변화도 있어야 겠고, 과학의 발전도 있어야 했다. 과학과 철학의 발전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고, 이런 인식은 미술가들이 세상을 보는 눈을 달리해야 함을 깨닫게 했다.

 

독일에서 이렇게 표현주의로 세상을 재구성하게 시작했다면 네덜란드에서는 몬드리안의 재구성이, 프랑스에서는 마티스와 피카소의 미술들이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이탈리아와 러시아에서는 미래파라는 화가들이 나타나기도 하고.

 

이들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기를 포기한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대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또는 우리가 볼 수 없는, 그리고 우리는 한 방향에서 보지만, 방향을 달리해 보기도 하는데, 이를 평면인 화폭에 여러 방향에서 보는 관점을 표현해내기도 한다.

 

어디 세상이 하나로만 구성되어 있던가. 세상은 이미 단순한 세상이 아니라 복잡다기한 세상인 것이다. 단순함을 추구하던 세상은 이미 죽었다.

 

하여 철학도 니체, 쇼펜하우어, 베르그송의 시대가 되고 과학은 뉴턴의 시대에서 아인슈타인을 비롯된 상대성, 양자역학, 불확정성의 과학으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이런 과학, 철학과 더불어서 미술에서도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놀랍게도 이 당시 미술가들은 이러한 철학을 공부했으며, 과학에도 관심이 많아 공부하면서 토론도 많이 했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한 세기를 풍미하려면 이렇듯 과학과 철학을 자신의 그림에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러한 시기를 거쳐 이 책의 후반부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사람은 마그리트다. 그의 그림은 기묘해서 우리에게도 알려진 그림이 많은데, 이는 프로이트로부터 시작된 무의식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가 이 책의 후반부에 나타나는데... 세기말 현상과 더불어 이러한 미술이 등장하였다고도 할 수 있다.

 

도대체 이 놈의 세상이 어떻게 된 것인지, 이 세상이 의미가 있는 것인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세계가 어떤 세상인지에 대한 화가들의 답이 바로 다다, 초현실주의이고, 그런 그림들을 그린 대표자로 마그리트와 달리를 들고 있으니...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많은 미술가들을 다 알아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는데... 그런 지식보다는, 이 책에서 왜 그런 미술들이 나왔는가? 그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을 추구하고, 이런 미술들을 통하여 지금 우리 시대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가? 또 우리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야 이 책을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책에서 필요한 것은 미술의 변천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미술이 그 시대를 인식한 철학, 과학과 어울려 어떻게 시대를 인식했고, 그 시대에 대응했는가 하는, 그 대응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대에 적용할 수 있는 지혜가 아닐까 한다.

 

이제 다시 3권이다. 장강(長江)을 따라 천천히 흘러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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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철학사 1 - 권력과 욕망 : 조토에서 클림트까지 미술 철학사 1
이광래 지음 / 미메시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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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방대한 분량이다. 출판사 창립 10주년 기념으로 발간한 책이라고 하는데... 전체 3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한 권이 다른 책 세 권 분량을 지닐 정도로 엄청난 양을 지니고 있는 책이다.

 

여기에 나오는 미술가들도 많고, 작품들도 많이 나오고, 그렇다고 미술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발전과 그 사회를 구속하거나, 또는 사회에 규정당한 철학들과의 관련성도 이야기하고 있다.

 

한 마디로 미술과 철학, 또 미술과 사회, 미술과 문학, 미술과 음악 등 미술을 중심으로 다양한 종류들이 융합되어 있는 책이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다보면 중세 이후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떤 사상들이 있어왔는지, 그 사상들과 그림이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우리가 르네상스라고 알고 있는 시기부터 이 책은 시작한다. 즉, 신의 세계에서 인간의 세계로 접어드는 그 시기부터, 미술이 어떻게 그것을 표현하고 있는지, 또 그런 표현을 하는 미술을 시작한 작가는 누구인지, 왜 그가 그런 평가를 받는지에서 시작한다.

 

그전까지의 미술은 인간의 세계에 있다기보다는 신의 세계에 있기 때문에, 이 책 제목이 '미술철학사'임에도 불구하고 언급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전 시대는 철학의 시대가 아니라 신학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신에게 인간의 모든 것을 맡긴 시대에 인간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우습기 때문이다. 그냥 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들, 신의 뜻에 의해 규정된 세상일 뿐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해갈수록 사람들의 의식이 발전해 갈수록 신의 시대에서 인간의 시대로 들어서게 된다.

 

인간의 시대, 그것을 표현하는 예술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 시점을 르네상스 언저리에서 잡고 있으며, 이 책은 조토에서 시작한다. 물론 이들을 가능하게 한 선구적인 미술철학가들을 언급하기도 하고.

 

이런 인간의 시대가 시작되는 미술의 정점에 미켈란젤로가 있다. 우리가 르네상스 하면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떠올리지만 이 책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주변의 인물일 뿐이다.

 

인간의 시대를 이끈 것이 이탈리아의 '피렌체'라면 이런 피렌체의 이데올로기 중심에 미켈란젤로가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관점을 제시하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특히 고흐에 대한 평가에서는 기존의 평가를 뒤집어놓고 있는데...

 

르네상스기부터 시작하여 스페인의 화가들(벨라스케스, 고야 등등)과 영국의 화가들, 그리고 프랑스의 화가들까지 나아가는데...

 

화가들을 중심으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시대정신의 변화에 따라 그 시대정신과 사회정신을 구현하는 화가들을 다루고 있다.

 

하여 이 1권은 클림트에서 끝난다. 인간의 시대로 넘어와서 낭만주의를 거쳐 사실주의와 인상주의에 이르고 이들에 대한 반동으로 상징주의가 나타났다고 하는 미술과 철학의 과정.

 

미술이 공시성을 띠기도 하지만 통시성을 띠기도 한다는 점, 공시적 통시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관철해 나가는 미술의 철학을 여러 화가들의 그림을 통하여, 그 시대의 철학을 통하여, 또 그 시대의 사회사상을 통하여, 그리고 여러 문학가, 예술가들을 통하여 이 책은 그 도도한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근대 초기 클림트에서 이 책은 끝난다. 이제 2권은 표현주의에서 시작한다.

 

덧글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는데... 아마 오타일 듯 싶은데...

 

398쪽에 '결국 다비드도 산악파의 냉혹한 독재와 공포 정치를 증오하는 지롱드당의 여성 당원인 샤를로트 코르데의 칼에 의해 자신의 집 욕조에서 척살당한 것이다.'라고 되어 있는데...

 

코르에의 칼에 죽은 것은 '마라'니, 그리고 이 문장의 바로 앞 부분에서 '마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피살된 마라'를 그린 것이 다비드이니, 이 문장의 '다비드'를 '마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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