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철학사 3 - 해체와 종말 : 포스트모더니즘에서 파타피지컬리즘까지 미술 철학사 3
이광래 지음 / 미메시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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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도 긴 내용을 지닌 책이다. 장강의 흐름에 이 책의 2권을 비유했다면, 3권을 다 읽은 지금은 이 책은 장강(長江)이 아니라 바로 산들로 이루어진 산맥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산에 오르기 위해 오르막을 힘겹게 오르는데, 오르면서 이곳저곳을 보게 되기도 한다. 가끔은 하늘이 뻥뚫린 곳에 이르러 하늘을 보기도 하고, 발밑으로 흐르는 계곡물을 보고 발을 담그기도 한다.

 

여기에 평평한 바위가 있으면 걸터앉아 쉬기도 하는데... 이렇게 정상에 오르면, 정상이 끝이 아니다. 산맥은 하나의 정상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수없이 많은 정상들이 제 자리를 지키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관계를 맺으며 하나의 산맥을 이루고 있다.

 

미술철학사라는 이 책, 바로 이러한 산맥들이다. 1권부터 시작한 등정이 어느덧 3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정상들을 거쳐야만 한다. 한 정상에 올라 다른 정상들을 보면서 정상의 의미를 되새기기도 해야 하고.

 

미술철학사. 공시성과 통시성을 동시에 아우르는데, 저자는 이 책에서 통시성보다는(즉 역사성 보다는) 공시성을 더 중요시했다고 한다. (작품이 존재하는 시대에서 얼마나 주변으로 영향을 미쳤나 하는)

 

즉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통시성이라면 동시에 널리 퍼져 존재하는 산 정상들이 이루는 산맥은 공시성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이 자율성을 지니기 시작한 이래로 모더니즘, 포스트 모더니즘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미술철학들이 함께 존재해 왔음을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다.

 

특히 3권은 현대미술이다. 우리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림들, 작품들... 하긴 현대를 누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현대는 나누어지고 쪼개져 한 눈에 전체를 볼 수 없는, 마치 숲 속에 갇혀 나무는 보지만 숲은 볼 수 없는 그런 상태 아니던가.

 

이런 원자화된 현대에서 현대미술 또한 현대철학을 따라 전체적인 모습을 파악하기 힘들게 변해왔다.

 

현대미술은 감성에 호소한다기보다는 이성에 호소하는 것이다. 이 작품이 무엇을 의미할까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하고 생각하게 한다.

 

예전 미술이 한 눈에 전체가 들어와 곧장 마음으로 파고들었다면 현대미술은 그렇지 못하다. 미술 자체가 현대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듯이 우리는 전체를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철학이 그런 사회를 반영하여 '포스트'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듯이, 또 현실과 가상의 구분이 모호해지자 '시뮬라시옹, 시뮬라르크'라는 말이 나왔듯이 미술 역시 가상과 현실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겠다. 많이 나오고 있지만, 하나같이 이성에 호소하지 감성에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가 감성으로 현대미술을 받아들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전체가 보이지 않는데, 이제는 산 정상에 올라 주변 산들을 한 눈으로 훑을 수 있는 그런 기회를 가질 수가 없는데, 어떻게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그냥 파편화된 현대를 표현한 미술로, 미술을 보면서 나 자신도 한 부분임을 깨닫는 수밖에는 없다. 여기서는 감동보다는 인식이 우선한다. 인식, 치열하게 현대를 파악하려는 노력. 그러한 노력이 현대미술에서도 현대철학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현대미술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적어도 왜 현대미술이 이런 모습으로 나타났는가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해에서 감동으로 가기에는 더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최소한 이해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해 준 이 책이 고맙기는 하다.

 

저자는 이 책의 맺음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책은 작품마다의 지배의 결정인과 최종적 결정인의 작용을 주로 미술과 철학, 과학과 문학, 정치와 경제 등 각 시대를 가로지는 내외의 변화에서 찾아내어 조형 욕망의 계보학적 내용들을 세로내리기해 왔다. 부디 이 책이 많은 이들에게 철학적 영감을 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797쪽.

 

전문화, 단순화, 파편화되어 가는 이 시대에, 그런 현실을 볼 수 있는 눈(철학)을 가지게 하는 것, 그런 철학을 미술작품을 통하여 갖출 수 있께 하는 것, 이것이 이 책이 지향하는 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길고도 긴 책... 내용이 쉽지도 않은 책. 읽었어도 내용을 다 이해하지는 못한 책. 그럼에도 미술철학에 대해서, 아니 미술과 철학, 사회, 과학과 문학의 융합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한 책이라는 데서 이 책의 의미를 찾는다.

 

덧글

 

읽으면서 조금 아쉬웠던 점은, 미술철학사를 다루기에 모든 작가를 다룰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라틴아메리카 작가들(벽화운동을 했던 멕시코 화가들)이나, 전쟁반대를 외쳤던 콜비츠, 그리고 불가사의한 그림을 그린 에셔 등이 빠진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 작가들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만큼 미술철학을 이야기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겠지만, 동양권의 작품들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도 역시 아쉽다.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역시 지금까지는 세계 미술의 주류들은 유럽과 미국이다) 한 미술철학사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 아쉽기는 하다. 이게 현실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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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맥(漂麥) 2016-04-04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번 쯤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리뷰!!! 잘 읽었습니다...^^

kinye91 2016-04-04 21:17   좋아요 0 | URL
현대철학과 미술을 접목해서 저는 잘 이해하지 못한 내용이 많은데요. 현대철학에 관심있는 분이나 현대미술의 철학성에 관심있는 분이 이 책을 읽으면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