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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우연한 시선 - 최영미의 서양미술 감상
최영미 지음 / 돌베개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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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모두가 예술가이었던 시대에서, 특정한 누군가만이 예술가가 되는 시대.

 

이것을 발전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몰라도, 많은 사람들에겐 예술에서 멀어지게 되는 계기가 된다.

 

모두가 예술가이었던 시대, 예술가는 전문가로서 인정을 받지 못했는데,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을 지닌 사람이 예술가라는 특정한 직업군으로 등장한 이후...

 

그들의 자긍심이 클수록 사람들은 예술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멀어진 예술을 다시 사람들에게 다가오게 하는 사람들, 그들 역시 예술가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

 

시인들은 특히나 예민한 감수성으로 다른 예술을 느낀다.

 

그 느낌들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기 위해 글을 쓴다.

 

글로 자신의 느낌을 다른 사람에게 알린다.

 

잔잔한 호수에 물결이 퍼져 나가듯, 시인이 들려주는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우리들 마음 속에 파문을 남긴다.

 

하나의 물결을 이룬다. 그 물결이 바로 우리를 다시 예술에 가까이 다가가게 한다.

 

이 책은 시인인 저자가 우연히 대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그림에 대해서 글을 쓴 결과물을 모은 책이다.

 

이미 많이 보았던 작품들도 있지만, 시인만이 느끼고 이야기해주는 그림도 있어서 어렵지 않게, 그러나 색다르게 글을 읽을 수 있다.

 

그림을 보면서 시인의 글을 읽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고, 또 그림에서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구나 하는 점도 깨달을 수 있고...

 

어떤 그림을 보더라도 나만의 방식으로 보아야 함을 다시 생각하게 되고.

 

그냥, 그렇게... 글과 그림을...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책이다.

 

화가의 우연한 시선이 우리의 시선과 마주칠 때, 우리의 마음에서는 불꽃이 일기도 하니, 예술에 대한 불꽃은 우연히 일어날 수도 있음을 이 책을 통해서 느껴 보시길...

 

바로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감수성이 실종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데, 감수성은 우리가 반드시 되찾아야 할 우리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것.

 

예술 작품을 감상한다는 건 무엇보다도 감수성의 문제이며, 인간은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세계는 결코 진정으로 느낄 수 없습니다. ('작가의 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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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칼을 거두고 평화를 그려라 - 반전과 평화의 미술
박홍규 지음 / 아트북스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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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예술은 우리 인간의 삶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그 중에서 미술은 특히 우리의 눈을 통해 마음을 울린다는 점에서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와 함꼐 한 예술인데...

 

오죽했으면 선사시대에도 동굴에다 그림을 그려 넣었거나, 자신들의 무덤 속에 그림을 그려 넣었겠는가. 그만큼 미술은 삶과 죽음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는 예술이었다.

 

그렇게 삶과 동떨어질 수 없는 미술이 현대에 인간들이 겪은아니 인류가 겪은 전쟁에 대해서 그냥 넘어가지는 않았으리라 추측을 할 수 있는데...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다. 최초의 전쟁 기록으로 남아 있는 기원전 1496년 이래 3500여 년에 이르는 동안 전쟁이 없었던 해는 불과 244년에 불과하고, 나머지 3250여 년은 인간이 흘린 피로 세상이 붉게 물들었다. (7쪽) 

 

고 하고 있으니, 전쟁은 우리와 늘 함께 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잠시 잊을 수는 있었겠지만 결코 헤어지지는 못하는 존재처럼 말이다.

 

꼭 죽음과 삶처럼 전쟁과 평화도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했다고 할 수 있는데, 인간의 역사가 이렇게 이루어졌다고 해서 전쟁이 인간의 삶에서 필수라고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전쟁이 없는 역사를 꿈꾸어야 하고, 또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모든 전쟁은 나쁘다. 어떤 전쟁도 찬양되거나 기념되거나 추억되어서는 안 된다. 어떤 전쟁에 대해서도 합리화나 정당화나 역사화는 있을 수 없다. 모든 전쟁은 악이다. 죄악이다. 전쟁은 인간이 저지르는 모든 악의 근원이다. 전쟁의 본질은 잔인함이다. 전쟁은 오직 파괴이다. 아니 인간을 개처럼 죽게 하는 가장 비인간적인 파멸의 심연이다. (277쪽)

 

전쟁이 시작되면 지옥의 문이 열린다. 아무리 전쟁이 정당하더라도 그것은 부당한 평화보다 못하다. 어떤 전쟁도 정당할 수 없고, 어떤 평화도 부당할 수 없다. (278쪽)

 

이렇게 이 책의 지은이는 말하고 있다. 인간의 문명이 점점 발달해 오면서 전쟁의 위협이 사라지기는 커녕 대량 살상의 위험, 멸망의 위험이 더욱 커지고 있는 이 때 전쟁에 대해서, 어떤 전쟁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지은이의 말은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온다.

 

아직도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지 않은가. 그런 전쟁으로 우리네 삶은 얼마나 피폐해지고 있는가.

 

이런 전쟁에 그림으로 맞선 화가들이 있으니, 그것은 아마도 전쟁이 시작된 이후 전쟁에 맞선 평화의 움직임이 만들어졌듯이, 전쟁을 찬양하는 화가들에 맞서 평화를 주장한 그림을 그린 화가들이 있었으리라. 

 

근대 초 자크 칼로의 전쟁 판화를 비롯하여 스페인시민전쟁의 [게르니카]에 이르기까지, 반전과 평화의 미술은 한 장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위대한 전통을 형성했다. (8쪽)

 

이렇게 반전, 평화 미술은 인간의 역사에서 당당하게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한 미술들이 많기도 하지만, 사람들에게 잘 소개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이 책은 그 동안 우리에게 그다지 자주 소개되지 못한 반전과 평화의 미술을 소개하기 위해 씌오졌다. 그런 작품들은 전쟁의 역사만큼 길고 전쟁이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만큼 그 폭도 넓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미술을 통해 전쟁의 비극에 대해, 평화의 소중함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고 한다. (8쪽)

 

그래서 지은이는 세계 미술사를 통해 반전과 평화를 담은 그림을 그린 화가들과 그들의 그림을 소개하고 있다.

 

작가의 절절한 바람을 담아 소개하는 화가들과 그들의 그림이 울림을 준다. 우리네 세상이 평화로 가득한 세상이 되기를 함께 바라게 된다.

 

반전 평화 미술은 진정한 사실주의, 진실한 민중예술, 참된 민주예술이다.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추구하는 것만이 진실이다. 그 진실에 어긋나는 모든 가식이나 허위를 고발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자 반전 평화 미술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279쪽) 

 

그러한 반전 평화 미술은 우리에게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평화롭지 않은 세상이 인간을 얼마나 불행하게 하는지를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기에 이런 그림들이 우리에게 다가오면 우리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게 된다.

 

결국 화가들은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자신만의 표현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진정한 예술가란 사회를 벗어날 수 없음을, 그래서 우리의 삶을 더욱 평화롭고 풍요롭게 하는 화가들이 진정한 화가임을 이 책은 잘 말해주고 있다.

 

여기에 순수-참여 논쟁이 끼어들 틈이 없다. 도대체 무엇이 순수란 말인가? 사회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에 갇히는 것이 순수라면 그것은 가장 정치적인, 불의에 종사하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진정한 순수란 불의한 현실을 거부하는 것, 그것이 바로 순수고, 그러한 순수는 참여일 수밖에 없는데, 순수-참여 논쟁이 왜 일어난단 말인가.

 

하여 이 책은 이러한 순수-참여 논쟁을 배제하고,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를 추구하는 그림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자크 칼로로부터 시작하여 현대에 베트남 전쟁을 다룬 화가들까지 다양한 화가들과 그림을 다루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 그림은 한 권의 책이 될 필요가 있다고 하여 빼고 있는데, 우리나라만을 다룬 그림도 책으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반전 평화 미술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사실이 현대가 아직도 전쟁의 참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 되어 슬프기도 하지만... 언젠가 이런 반전 평화 미술이 역사의 한 장으로 물러나길 기대하면서 이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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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디 수녀의 유럽 미술 산책
웬디 베케트 지음, 김현우 옮김, 이주헌 감수 / 예담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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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도시를 찾는다. 단지 도시를 찾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도시에 있는 미술관에 간다. 그 미술관엣 그 나라 출신의 화가들이 그린 그림을 본다. 그런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것이 이 책이 쓰여진 방식이다. 웬디 수녀는 그림을 이야기해주는 수녀다. 그의 그림에 대한 해석이 다 옳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아무렴 어떻겠는가. 그림은 자신에게 다가온 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테니 말이다.

 

웬디 수녀가 방송국의 협찬을 받아 유럽 여러 도시에 있는 미술관에 가서 그 미술관에 있는 그림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이 마음에 들어하는 그림을 그 이유와 더불어서 설명해주고 있다.

 

제목에 '산책'이라는 말이 들어가듯이 전문적인 미술 해설서라고 하기보다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미술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게 쓴 책이다.

 

그림이 지닌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도 해주고, 작가에 대해서 이야기도 해주고, 각 장을 시작할 때는 그 도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주기 때문에 그야말로 '산책'이 된다.

 

유럽의 도시들을 다니고 미술관에 가고 그림을 보니, 자연스레 유럽 여행이 된다. 그림을 통한 여행, 여행은 낯선 곳에 나를 데려가 나를 만나게 한다. 그런 점에서 웬디 수녀가 들려주는 그림 이야기들은 나를 만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웬디 수녀가 간 도시들을 살펴보면,

 

마드리드, 피렌체, 로마, 베네치아, 빈, 상트 페테르스부르크, 베를린, 파리, 안트베르펜, 암스테르담, 헤이그

 

이렇게 11개의 도시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이 도시들에 있는 미술관에 들러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한다.

 

이 중에는 처음 듣는 작가와 그림들이 있었지만, 이미 우리에게 친숙한 그림들도 있다. 미술 관련 책을 조금 읽은 덕분에 이제는 아는 작가들이 많아져서 이 책이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지도 모르겠다.

 

어떤 책은 그림이 직접 말하게 하거나, 그림 바깥에서 말하게 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이해하게 하기도 했는데, 이 책에서 웬디 수녀는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그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오로지 자기만의 이해 방식으로.

 

그래서 더 읽기가 쉽다. 그냥 산책하듯이 그림들을 만나면 된다. 산책을 하다가 멋진 풍광을 만나면 잠시 쉬어가고, 또 더 천천히 걷는 장소가 나오듯이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그림이 나오면 오랫동안 보고, 음미하면 된다.

 

이 책을 읽는 순간 우리는 많은 그림들 사이를 산책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면 된다. 웬디 수녀와 함께 유럽의 도시들에 가서 그림들을 보는 산책, 여행을 하게 된다. 

 

그래서 좋다. 산책은 늘 사람의 마음을 좋게 만들어주니, 이 책 역시 그림 산책을 통해서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

 

이런 것을 주제가 있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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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화, 붓과 색으로 조선을 깨우다 - 풍속화가 김홍도, 신윤복, 김준근과의 만남
EBS 화인 제작팀 지음 / 지식채널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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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 관한 책들을 보다가 그것도 주로 서양의 미술을 보다가 왜 우리나라엔 서양처럼 이렇게 화려한 채색을 하지 않았을까? 색깔이 있다고 해도 너무도 단조로워 오히려 흑백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수묵담채화라서 그런가? 그렇다고 해도 우리나라가 과연 색채에 무심했던가 하는 생각들을 했었다.

 

우리나라가 성리학의 영향으로 수수한 삶을 추구했다고 하지만, 자연과 조화되는 삶을 추구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사회 전체가 칙칙한 흑백의 세상은 아니었을테고, 상류층들의 옷들은, 왕의 옷은 화려함의 극치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했는데...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는 그림이 너무도 없다는 사실에, 서양화들을 보다보면 우리나라 그림들이 너무 어둡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안 그린 건지, 못 그린 건지, 아니면 색깔이 변색이 되어 남아 있찌 않은 건지... 유화라는 기법을 사용한 그림이 과거에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니...

 

게다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조선후기 세 명의 대표적인 풍속화가 김홍도, 신윤복, 김준근(이 이름은 사실 처음 듣는다. 내가 EBS다큐프라임을 보지 않았기에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전혀 모르고 있던 인물이다)의 그림에서도 서양의 그림에 나타나는 그런 화려한 색감은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이 책에서는 신윤복은 조선의 색감을 살린, 채색의 절정을 이룬 조선의 색을 살린 화가라고 하지만, 그의 색깔은 서양 그림의 색깔에 비하면 단조롭기 그지 없다. 이 단조로움 자체도 예전의 그림에 비하면 엄청 진일보한 것이라고 하지만.

 

특히 간송미술관에서 원본을 보았을 때도 색감을 잘 느끼지 못했다. 조명 탓이든, 아니면 색감을 못 느끼는 내 눈 탓이든, 나에게는 그저 그런 색으로만 보였는데... 조금 진하고, 화사하다고 할 정도에서 머물렀을 뿐.

 

그렇다면 우리 그림의 아름다움은 다른 데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사실 우리 그림은 화려함을 뽐내기보다는 삶의 모습을 드러내는데, 사람의 정신을 드러내는데 있지 않았을까? 그림에서 정신의 높이와 깊이를 발견해내려고 했던 선인들의 그림 감상법이 그렇게 나타나지 않았을까 하는데...

 

풍속화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냥 당시의 풍속을 모사하는 데서 그친 것이 아니라, 그런 삶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활태도가 그림에 드러나게 하는데 중점을 두었다는 생각이 든다.

 

김홍도의 그림을 보아도 그냥 그 시대는 그랬구나가 아니라, 그림 속의 인물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듯, 또 그 시대의 정신문화가 그림 속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느끼지 않는가. 즉 인물들이 죽어 있지 않고 살아 있다. 그것이면 됐다.

 

거기다 일반 서민들의 옷은 그야말로 흑백이었을 터. 그러니 김홍도의 작품에서는 색채가 미약하다고 투덜거릴 일이 아니다. 그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서민들의 삶에 대한 태도, 그들의 마음을 느끼면 된다.

 

그것을 이 책은 김홍도의 그림 기법과 더불어 잘 드러내주고 있다.

 

이에 비하여 신윤복은 그림을 그리는 대상이 다르다. 그는 주로 기생들을 그리고 있다. 기생들의 옷은 서민들에 비해 화려하다. 화사하다. 그러니 신윤복의 그림에는 색채가 주를 이룰 수밖에 없다.

 

화사한 모습 속에서도 무언가 생각나게 하는 것이 있는데, 그림을 통하여 기생들과 양반들의 생활 내부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그의 그림 기법은 요즘 인테리어 기법을 생각나게 할 정도라고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데... 그만큼 그가 색채 뿐만이 아니라 구도에서 신경을 썼다는 얘기다.

 

여기까지는 우리에게 너무도 유명한 두 사람의 화가 이야기인데, 김준근으로 넘어가면 도대체 누구야? 하고 말 정도다. 또 그의 그림은 풍속화라기 보다는 안내그림이라고 하는 편이 좋을 정도라는 생각이 든다.

 

외국인들에게 우리나라를 알리는 풍속그림을 그렸기에 배경은 생략하고 풍속을 중심으로 그린 그림... 그래서 이 그림에서는 풍물은 있으되, 사상은 없는... 무언가 그림 뒤로 들어가 더 생각할 거리를 주지 않고 있다.

 

개항이라는 시기에 상품으로 외국인에게 넘기는 그림들이니 가능하면 단순하고 명쾌하게 그리려고 했으리라. 그러나 그 단순함 속에는 우리나라 풍습의 핵심을 짚어냈으니, 그런 점에서 김준근의 그림이 의미가 있겠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그의 그림에는 상업의 냄새가 너무 나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의 이면에 있는 그 어떤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이 김홍도, 신윤복의 그림과 김준근 그림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비록 서양화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정신들이 느껴지는 그림들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소중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또한 우리 그림의 장점이 아니겠는가.

 

서양과 추구하는 정신세계가 달랐던 우리나라에서 서양화와 비교하는 어리석음은 이제 떨쳐버리려 한다. 우리 그림은 우리 그림대로 그 시대를 충실히 반영하였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글쓴이는 말한다.

 

풍속화는 그들의 삶이며 예술이며 무기였다. 그들은 풍속화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세상 속에 뿌리 내렸다. 그러기에 그들의 작품 속에는 실로 생생한 삶의 이야기가 가득 배어 있다. 필시 그들의 풍속화가 오래도록 우리 주위에 살아 있을 수 있는 힘의 원천 역시 이것이리라. (이 책 종(終)에서)

 

그런 점에서 쉽게 조선 후기 풍속화에 다가갈 수 있게 해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아마 영상으로 보면 책에서 보지 못했던 다른 어떤 것을 볼 수도 있겠지.

 

삐딱한 덧글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책은 시종일관 '나'가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그런데 책에서 저자라고 하면 EBS 화인 제작팀이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책의 출판서지를 보면 글 서주희 · 화인제작팀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사람은 김광호 피디라고 한다.(책 표지 접힌 부분에 보면)

 

아마 글을 작가가 좀더 부드럽게 하기 위해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썼나 본데... 즉, 공동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책의 내용을 전개할 때 '나'라고 하지 말고, '우리'라고 하든지, 아니면, 김광호 피디 책임 하에 화인 제작팀이 제작하고, 글은 서주희가 씀이라고 먼저 밝혔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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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게 보는 세계 명화 - 스테파노 추피가 들려주는 그림 이야기
스테파노 추피 지음, 고종희 옮김 / 다섯수레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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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읽었던 "그림의 목소리"라는 책과 발상이 비슷하다. 다만 "그림의 목소리"는 시인이 감상자의 자리에서 그림에 대해서 감정이입을 해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면 이 책은 미술사가가 그림에 대해서 좀더 쉽고 재미있게 알려주기 위해서 썼다는 차이가 있다.

 

글쓴이는 말한다.

 

"걸작은 환상에 불을 지피는 힘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를 꿈,환영, 비밀, 신비의 세계로 인도하지요. 여러분은 이 책을 통해 느낀 감동을 자유분방하게 표현하고, 작품 하나하나에서 새로운 이야기들을 읽어 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고정된 하나의 '진실'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글쓴이의 말에서)

 

이것이 이 책을 쓰게 된 이유이리라. 작품에 대해서 혼자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감동을 공유하고 싶은 것. 다른 사람들 역시 자기만의 방식으로 작품에서 감동을 느끼는 것, 그리고 이야기들을 읽어내는 것.

 

미술이 그냥 외부의 존재로만 있지 않고 사람들의 내부로 들어와 사람들에게 자기만의 이야기로 다시 존재하게 되게 하기 위한 책. 그런 책을 쓰는 미술사가.

 

시인이 그림으로 하여금 말을 하게 할 때도 사전조사를 철저히 하고, 사실에 바탕을 두고 이야기를 하게 하되, 어느 정도는 상상력이 가미되었다고 한다면, 이 책 역시 상상력이 가미되어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림을 이야기로 번역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이 하나의 단편소설로 전환이 된 결과가 이 책이라고 할 수도 있고, 조금 더 나아가면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의 내용을 머리 속에서 그리게 된다면 이 책은 하나하나의 단막극이 되기도 한다.

 

단편소설이나 단막극에서 상상력이 들어가지 않을 수는 없으나 그것은 엄연히 사실을 벗어나서는 안된다. 마치 역사소설이 상상력이 들어갔지만 역사적 사실을 왜곡할 수는 없듯이.

 

그래서 글쓴이는 이 책의 내용이 사실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이 책을 읽으면 소설을 읽는 느낌을 가지겠지만, 내용들은 엄연한 사실이라고. 따라서 그림에 대한 지식, 그 그림에 얽힌 이야기, 화가에 대해서 더 잘 알 수 있을 거라고.

 

"이 책의 내용 전부가 나만의 이야기 주머니에서 나온 것은 아닙니다. 일부이거나 전부가 기록,기억, 저술, 그리고 작가와 당대인의 증언들입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실존 인물입니다. 따라서 각 상황과 장면, 그리고 환경은 가장 신뢰할 만한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었습니다." (글쓴이의 말에서)

 

한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면 "작가노트"라는 항목이 있어서 작가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전해주고 있어서 미술책으로써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이런 편제도 잘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작가와 작품 목록을 보자. 아마 너무도 유명해서 많이 본 그림들도 있을테지만, 그 그림에 대해서도 색다른 시각에서 이야기를 펼쳐가기에 안다고 해서 읽는 재미가 반감되지는 않는다.

 

조토 디 본도네, 스크로베니 예배당         얀 반 에이크,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안드레아 만테냐, 곤치가 가문             산드로 보티첼리, 봄

레오나르도 다 빈치, 모나리자             조르조네, 세 철학자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아담의 창조        라파엘로 산치오, 시스티나의 성모

티치아노 베첼리오, 페사로의 제단화        피터르 브뤼헐, 눈 속의 사냥꾼들

카라바조, 성 마태오의 소명               렘브란트 반 린, 야간 순찰

디에고 벨라스케스, 시녀들                얀 베르메르, 사랑의 편지

프란시스코 고야, 돈 루이스 왕자 가족      윌리엄 터너, 비, 증기 그리고 속도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에드가 드가, 오페라 극장의 발레 수업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조르주 쇠라,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파블로 피카소, 곡예사 가족

바실리 칸딘스키, 붉은 얼룩이 있는 그림

 

이런 책을 읽으면서 상상력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됐다. 미술책을 쓰는데 이런 발상을 한다는 것, 물론 그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쓰는 경우는 많았지만, 작품 내에 들어가거나 화가가 되어서 그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는 것.

 

벌써 이런 책을 두 권째 읽었다. 서양에서는 이런 일이 많다는 얘기가 아닐까 싶기도 한데... 내가 받은 미술교육에서는 작품을 두고 작품의 인물이나 화가가 되어 그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하는 수업을 받은 적이 없는데...

 

요즘 학생들은 받으려나? 적어도 이 책의 글쓴이가 말한 "진실"은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그림을 앞에 두고 다양한 관점에서 그림에 대해 말하고, 그림을 통해 자신을 말할 수 있는 그런 교육이 필요할텐데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이런 미술 교육이 "점수"로 "측정"될 수 있을까? 점수로 측정되지 않아도 이런 미술 교육이 정말 필요한 것 아닐까.

 

그래야 작품을 보고 환상의 세계에 빠져들기도 하고,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하게 될텐데... 더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가 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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