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아니라 우기다.

 

우기와 건기로 나뉘어지고 있는 건지.

 

한 달이 넘게 비가 내리다 그치다 하고 있다.

 

남부지방엔 비는 커녕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하던데, 중부지방엔 햇살을 보기 힘든 날이 한 달이 넘어갔으니...

 

그러한 장마가 잠시 주춤하더니 며칠 반짝 해가 났다.

 

밀린 빨래를 하고, 눅눅해진 집안도 보송보송하게 하고.

 

그것도 잠시 다시 비다.

 

와, 지겹게 비가 온다.

 

이런 날씨에 우리나라 정치를 대입시킨다.

 

누구는 햇볕 정책을 퍼주기 정책이라고, 우리나라를 망가뜨리는 정책이라고 했는데...

 

그 때 햇볕정책이 이루어졌을 때 과연 우리는 힘들었던가.

 

위기의식을 느꼈던가.

 

남북간의 갈등이 이리도 심했고, 긴장이 고조되었던가.

 

아니지. 그건 아니지.

 

그 때는 지금의 장마와는 달리 서로의 얼굴이 펴질 때였지.

 

남북에도 따스한 기운이 넘칠 때였지.

 

햇볕이 얼마나 고마운지, 얼마나 좋은지 그 땐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이렇게 지리한 장마가 계속될 때 햇볕의 고마움은 마음에 다가온다.

 

한 번 경험한 햇볕. 다시 우리 곁에 돌아오게 해야지.

 

삶창 이번 호에서는 갑과 을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그동안 을에게는 이보다 더한 장마는 없었으리라.

 

장마에, 홍수에 온갖 피해를 보던 을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것. 을도 함께 살아야 할 사람이라는 사실. 이제는 갑과 을이라는 말을 쓰지 않도록 한다고 하는데, 단지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삶에서 갑과 을이라는 관계가 존재하지 않게 해야지.

 

간신히 을에게 비치는 햇살들, 그들을 따스하게 해주는 햇볕들, 그것이 사라지지 않게 했으면 좋겠다. 

 

삶창, 지리한 장마를 녹이는 따스한 햇볕처럼 이 책, 그렇게 다가온다. 마음이 따스해진다.

 

눅눅해진 마음이 보송보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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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을 보다 이런, 이런 하는 소리를 내지르고 말았다.

 

이거 완전 '꺼삐딴 리'네.

 

일제시대엔 일본에, 해방직후 북쪽에선 소련에, 전쟁 이후엔 미국에 잘보이는, 그래서 시대를 막론하고 잘 사는, 또 힘없는 사람은 무시하고, 힘있는 사람에겐 잘 보이는, 그런 인물. 이인국 박사. 그가 바로 '꺼삐딴 리'였다.

 

그런데 21세기에. 최첨단 과학 시대에, 정보화시대에, 자기에 대해서 다 알려지는시대에, 정부의 최고위직에 이런 관료도, 이런 '꺼삐딴 리'도 여전히 살아남아 고위직에 임명이 되는구나 하는 씁쓸한 생각.

 

아니, 본래 관료란 이런 것이구나... 관료들이란 본래 '꺼삐딴 리'구나.

 

하여 이 땅의 '꺼삐딴 리'들을, 그런 관료들을 시로서 이야기한 사람. 김남주. 그리고 그의 시. 완전. 이런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지만, 관료들은 영혼을 내어놓고 살고 있다고 하는 말이 있지만, 이렇게 이 시에 딱 들어맞을 줄이야.

 

시인은 시대를 꿰뚫어보고, 또 시대를 앞서가기도 하고, 시대를 변혁하기도 하는데, 전사 시인이었던 김남주가 보기에 이건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

 

헛웃음이 아니라, 우리가 참 잘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 하여 전광용의 "꺼삐딴 리"와  김남주의 두 시가 떠오른 날.

 

참고로 한겨레 신문 2013년 7얼 27일자 4면에는 

 

"김대중 땐 햇별정책에 편승하고

 노무현 땐 육군참모총장 됐다

 박근혜 땐 국정원장임명받았다"

 

는 내용이 들어 있는 작은 제목을 단 기사가 나와 있다. 한 번 읽어보기를...

 

그리고 김남주의 이 시, '어떤 관료'. 이런 관료들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하는데, 민주주의 사회에서, 민주공화국에서는 주권이 관료에게 있지 않고 국민에게 있는데, 그게 이루어지고 있을까.

 

어떤 관료

 

관료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다

봉급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다

개에게 개밥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듯!

 

일제 말기에 그는 면서기로 채용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근면했기 때문이다

 

미군정 시기에 그는 군주사로 승진했다

남달리 매사에 정직했기 때문이다

 

자유당 시절에 그는 도청과장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성실했기 때문이다

 

공화당 시절에 그는 서기관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공정했기 때문이다

 

민정당 시절에 그는 청백리상을 받았다

반평생을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에게 봉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아프리칸가 어딘가에서 식인종이 쳐들어와서

우리나라를 지배한다 하더라도

한결같이 그는 관리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국가에는 충성을 국민에게는 봉사를 일념으로 삼아

근면하고 정직하게!

성실하고 공정하게

 

김남주, 저 창살에 햇살이2, 창작과비평사, 1992년. 152-153쪽

 

이런 관료들을 통제하려면 국민의 의사를 대변한다는 국회의원들을 제대로 뽑아야 하는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 국회의원들은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 언론에서 보도되고 있는 국회의원들의 행태는 우리를 실망시키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이들이 혹시 이렇게 해서 뽑히지는 않았는가. 아니, 우리가 이렇게 해서 그들을 뽑지 않았는가. 영혼이 없는 관료나 '꺼삐딴 리'들은 깨어있지 않은 국민이 만들어내지 않았는가, 반성해 보는 날.

 

선거에 대하여

 

개가 나와도 그 지방 사람들은

우리 개 우리 후보 하면서 그 개를 국민의 대표로 뽑아 국회로 보낼것입니다

개가 그 꼬랑지에 OO당의 깃발을 달고

개가 그 주둥이를 놀려 그 지방 사투리도

멍멍멍 지방유세를 하고 다니기만 하면

 

김남주, 선거에 대하여 부분.

 

시와사회사 편집위원회 엮음, "피여 꽃이여 이름이여", 시와사회사, 1994 1판 2쇄. 312쪽에서 재인용

 

적어도 이렇게는 되지 말아야지. 김남주의 시가 과거에만 존재했던 일이 되게, '꺼삐딴 리'들이 존재하지 않게 우리가 깨어있어야지. 암 그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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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카프카에 빠져 있었다.

 

그의 작품에 나타난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환상성.

 

끝모를 절망감.

 

우울한 분위기가 나를 그의 작품으로 이끌어갔는데...

 

지금...

 

우리나라 기후가 아열대로 바뀌어가는지, 장마가 아니라, 이젠 우기라고 해야 맞다.

 

칙칙하다.

 

우연히 헌책방에서 집어들었던 책.

 

카프카연구

 

오래된 책이다.

 

그만큼 카프카에 관한 논의가 지금은 너무도 당연하다시피 한 논의들이기도 하고, 또 한 단계 뛰어넘은 논의들이 많이 나오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카프카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 카프카에 관한 초기 논의라서 그런지, 지금 이 책을 읽으니, 이해가 잘된다.

 

좋다.

 

우울한 때.

 

절망과 좌절 속에서 자신의 삶을 이끌어가고, 또 문학 활동에 전 존재를 걸었던 카프카.

 

그가 살았던 시대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별 차이는 없을 것 같은데...

 

그가 앞으로 올 세계를 작품을 통해서 예지했다고 하는데... 우리에게도 그런 작가가 있지 않을까.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이상과 카프카를 비교하고 있는데, 그럴 수도 있다. 아니, 한 번 해볼만한 작업이기도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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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우울하다.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힘있는 자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아니, 그들이 오히려 더 큰 소리를 친다. 이들에게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 그보다 높은 곳에 있지만 보통 사람들, 그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나 보다.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은 보아도 자기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한다'고 하더니...

 

정작 누구로 인해서 세상이 어지러워지는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역설적인 표현이 생각난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또는 노래 가사였던가, "별일 없이 산다"

 

별일이 없지도 않고, 아무 일도 없지도 않은데, 아무 일도 없는 척, 별일이 아닌 척,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이 현실...

 

마음이 어지럽다. 그래서 시집을 펼친다. 제목부터 따뜻하다. 이기철의 "가장 따뜻한 책"

 

시인은 후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람 사랑하는 일이 쉽지 않다. 사람 사랑하는 일도 연습을 해야 한다. 슬프게도 이제는 이런 사실을 시인해야 하리라.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사람이 싫어진다는 것보다 비극적인 일이 어디 있는가.(중략) 사람의 귀중함을 노래처럼 뇌면서 사람 사랑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중략) 시를 읽고 산문을 읽고 한 줄의 편지를 쓰는 일은 마침내 사람으로부터 멀어져간 마음의 실 꾸러미를 내게로 팽팽히 당겨오는 일이니... (이기철, 가장 따뜻한 책, 민음사, 2005년. 107-108쪽)

 

그래, 사람이 미워짐에도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미움이 증오로, 증오가 분노로, 분노가 파괴로 가서는 안된다. 오히려 미움이 사랑으로, 사랑이 창조로, 건설로 가야 한다. 그러기에 시를 읽는다. 더 사람을 미워하지 않기 위해서.

 

세상에서 따뜻한 책, 그러한 책. 그것이 바로 시집이다. 이 시집은 아주 따뜻하다.

 

따뜻한 책

 

행간을 지나온 말들이 밥처럼 따뜻하다

한 마디 말이 한 그릇 밥이 될 때

마음의 쌀 씻는 소리가 세상을 씻는다

글자들의 숨 쉬는 소리가 피 속을 지날 때

글자들은 제 뼈를 녹여 마음의 단백이 된다

서서 읽는 사람아

내가 의자가 되어줄게 내 위에 앉아라

우리 눈이 닿을 때까지 참고 기다린 글자들

말들이 마음의 건반 위를 뛰어다니는 것은

세계의 잠을 깨우는 언어의 발자국 소리다

엽록처럼 살아 있는 예지들이

책 밖으로 뛰어나와 불빛이 된다

글자들은 늘 신생을 꿈꾼다

마음의 쟁반에 담기는 한 알 비타민의 말들

책이라는 말이 세상을 가꾼다

 

이기철, 가장 따뜻한 책, 민음사, 2005. 16쪽

 

하여 시는 세계를 창조한다. 우리는 그런 창조된 세계에서 따뜻한 피가 흐르는 세상을 만끽한다.

 

시법

 

시는 말의 피다

한 방울 수혈로 꽃피는 언어들

시는 언어에 피를 돌게 한다

필통마다 담겨 있는 연필처럼

갈피마다 담겨 있는 마음의 모세혈관들

언어를 켜는 것은 마음을 켜는 것이다

어둠을 밝히는 성냥불처럼

나는 언어를 켜고 시를 쓴다

잠든 책이 언어의 발자국 소리를 들을 때

마음의 쌀독 여는 소리가 세상을 깨운다

언어를 찾아가는 나의 발걸음이여

그것은 신도 눈치 채서는 안 된다

핏줄의 막힌 곳을 뚫고 선혈이 돌 때

없던 세계가 탄생한다

 

이기철, 가장 따뜻한 책, 민음사, 2005년. 21쪽

 

 

말은 피다. 말은 우리를 살게 한다. 글도 마찬가지다. 글도 역시 우리를 살게 한다. 그러나 이들이 잘못 쓰였을 때, 이들은 무서운 흉기가 된다. 무기가 된다. 무서운 것이 어디 핵폭탄뿐이랴. 오히려 이러한 말들이 잘못 쓰였을 때, 제 이익만을 위해 쓰였을 때 말은 핵폭탄보다도 더 무서운 존재가 된다. 그 말을 힘있는 자들이 의도적으로 잘못 썼을 때 그것은 가공할 위력을 발휘하는 무기가 된다.

 

말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한다. 시인이 시로써 세상을 따뜻하게 하고, 시로써 없던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는데, 그러한 세계를 힘있는 자들의 말이 파괴하고 있다. 우리의 따뜻한 세상을. 시를 읽을 낭력이 없는 사람, 시에 마음 한 귀퉁이를 떼어줄 줄 모르는 사람, 그들이 정치를 하면... 참...

 

그럼에도 희망을 노래하고 싶다. 인간에게 마지막까지 주어진 것이 희망이라면, 그것이 바로 삶의 의미라면 우리는 희망을 잃어서는 안된다. 어둠은 곧 밝음을 예비하고 있으니, 이 어둠, 이 혼란, 이 막막함이 다시 밝음으로, 안녕으로, 우리의 행복함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조금만 더 희망을 노래하자

 

미래는 저녁 창문처럼 금세 어두워지지만

작별해 버린 어제가 모두 탕진은 아니다

모래의 시간 속으로 걸어온 구두

밑창의 진흙은 숙명을 넘어온 기록이다

내 손은 모든 명사의 사물을 다 만졌다

추상이 지배하는 인생은 불행하다

명백한 것은 햇빛밖에 없다

죄마저 꽃으로 피워둘 날 기다려

삶을 받아쓸 종이를 마련하자

가벼워지고 싶어서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모든 노래를 받기 위해서 입 다무는 침묵처럼

오늘은 단추 한 칸의 가슴을 열자

오늘은 조금만 더 희망을 노래하자

 

이기철, 가장 따뜻한 책, 민음사, 2005년. 51쪽

 

이런 희망이 시인으로 하여금 '슬프다고만 하지 말자'고 하고, 또 '삶은 헌 신발을 신고 늙은 길을 걸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세상, 우울하지만, 아직도 우리에게 희망은 있다. 그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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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캠프를 하게 됐다.

 

별다른 프로그램으로 빡빡하게 운영하는 것이 아닌 그냥 자연스럽게 하루를 책과 함께 즐기는.

 

그래도 명칭이 밤샘 독서라 하루 밤을 새우며 책과 지내야 하는데...

 

자정이 되기 까지야 이런 저런 프로그램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해도, 자정 이후부터는 오로지 책과 시간을 보내야 한다.

 

밖에는 비도 오고 하는데, 공기가 무거운데, 눈꺼풀은 더 무거워지는데.. 뇌는 점점 하얗게 비어가고 있고, 그래도 한 쪽에서는 밤샘을 하면서 책과 지낼 수 있어야 하지 않나 하고 있고.

 

책이 꼭 어려운 책만은 아니지 않은가. 책이면 모두 되지 않은가.

 

책에도 우열이 있는가? 우열이 있다고 하는 기준 자체가 성립하는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더 무거워지는 머리를 주체할 수가 없어 읽던 책을 잠시 덮어둔다. 그리고 눈을 들어 밖을 보다가, 어떤 책을 보면 내가 밤을 자연스레 샐 수 있을까 생각을 한다.

 

그러다 최근에 읽었던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한 글을 떠올렸고, 그의 작품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생각해냈고, 그 작품이 애니메이션과 만화책으로 다 나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리고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애니메이션으로는 거의 외우다시피 할 정도로 많이 보았는데, 만화책은 대충 가볍게 한 번 슥 읽고 지나간 사실이 떠오르고.

 

운이 좋게도 만화책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7" 있었고, 그래 잘 됐다 이 책을 보자.

 

특히 이 책이 환경에 관해서 무언가를 말해주고 있는 책이고, 기상이변이라는 환경 재앙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이 때 이 책은 더욱 생각할거리들을 제공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오무로 대표되는 곤충들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그들은 인간이 두려워하는 것만큼 인간을 멸망시키려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망가뜨린 환경을 지키려는 존재라는 사실, 그들의 겉모습이 아닌 그들 존재의 본질을 느끼는 나우시카와 같은 사람이 있지 않으면 인간은 결국 공멸을 향하야 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고 있다.

 

물론 만화책은 더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들을 생각하면 한 편의 철학책이 나오고 말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무엇보다 지금 일어나는 환경재앙들은 결국 우리 인간이 초래한 것이고, 그 해결책도 바로 우리 인간에게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것은 결코 전쟁을 통해서는(그 전쟁이 인간끼리이든, 인간이 자연을 상대로 벌이든) 해결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또한 결국 미래 인간의 운명은, 또는 인간사회의 발전은 여성성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여성성이 단순히 여자라는 뜻이 아니라, 작고 보잘것 없는 존재에도 관심을 가지고 사랑을 줄 줄 알며, 보이지 않는 존재를 느낄 수 있으며, 겉모습이 아닌 존재의 본질을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해석을 해야 한다) 생각하게 해준다.

 

주인공인 "나우시카"야 말할 것도 없고, 또다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크샤나" 역시 여자로 나오는 것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전쟁이 남성성을 대표한다면 평화는, 사랑은 여성성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인간을, 자연을 감싸안는 나우시카와 같은 존재가 인간을 인간답게, 자연과 함께 살 수 있도록 해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나우시카가 있는가?

 

4대강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고, 문건에 대한 공개 여부, 개인정보에 대한 사찰 문제, 그리고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환경 문제 등등...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문제가 산적해 있는데.. 우리에게 나우시카는? 바로 우리들 자신이어야 하지 않을까.

 

밤샘 독서... 다시 읽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청소년용이 아니라 이는 어른용이다. 정말로 어른들이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전철 안에서든, 또는 다른 공간에서든 조그만 전자기계만 들여다보는 모습에서 탈피해서 이런 만화를 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어떨지...

 

그러면서 우리의 문제를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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