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들과 옥천에 갔다 왔다. 옥천하면 안티 조선 운동과 정지용이 떠오르는데... 이문구가 쓴 글에서 옥천에 관한 일화를 읽은 적이 있다. 그 때 그렇지. 그럴 수 있지 하면서 참 인상 싶었는데... 박용래 시인과 옥천에 얽힌 사연.

 

  1973년 8월 며칠경엔가 있은 일이었다. 시인 이 아무개가 자기의 고향이 좋다 하여 작가 유광우 씨와 함께 옥천을 가다 말고 대전에 머문 날이었다. 우리 일행은 차시간에 늦어 막차를 놓쳤으므로 대전에서 하룻밤을 묵어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저녁 어스름에 밀려 온종일 삶던 더위가 그음하려 하자 목촉교 옆의 허름한 탁배기집으로 박시인을 불러 모셨다. 내가 초면인 유씨, 이씨를 인사시키자 박 시인은 무슨 바람이 불어 옥천같이 빼어난 고장을 다 둘러보게 되었더냐고 여간 기특해하여 마지 않았다. 이에 힘입었는지 이씨는 시키지도 않은 옥천 지방의 산수를 자랑 삼아 덧거리하였다. 그러자 박 시인은 대번에 이씨를 겨누어보며 '산 좋고 물 좋은 것은 어느 두메나 일반인데 시인이 고향을 쳐들면서 어떻게 물경풍치만을 떠들 수 있는가. 그런 것은 관광객에게 맡기고 시인이라면 모름지기 자기 고을이 배출한 시인부터 기리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라고 바로잡아준 다음,

 "내가 옥천을 기억하는 건 오로지 시인 정지용을 낳은 땅이기 때문이오."

  하며 찻잔을 들어 서운한 마음을 가시려고 하였다. 나와 유씨가 숙연히 고개를 숙일 때였다. 물정 모르는 이씨가

  "그런가요? 나는 정지용이가 우리 게 사람인 줄도 몰랐네......"

  하며 새퉁스런 소리로 두런거렸다. 박 시인의 결곡한 성미를 알고 있던 내가 이제 큰일났구나 싶어 민망한 낯을 둘 데 없어하던 순간이었다. 바람벽에서 벼락 치는 소리가 터지면서 박 시인의 성난 음성이 귓전을 갈겼다.

  "야, 이문구, 너 정말 한심하구나. 너는 이런 거밖에 친구가 웂네? 정지용이 제 고향 선배인 줄두 모르는 이런 무녀리두 시인 명색이라고 하냥 댕기는겨? 이런 것도 사람이라구 마주 앉어 술 마시네?"

 

이문구, 이문구의 문인기행, 에르디아,2011년.  93-94쪽에서.

(이 이야기는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1권 박용래 편에도 나온다.)

 

정지용을 모르는 시인이라. 아니 알았는데, 그가 자신의 고향 출신이라는 사실을 모랐던 시인. 그 시인이 박용래 시인에게 당한 일화. 아무리 시대가 어려워도 한국에서 배출한 위대한 시인은, 특히 자신의 고장 사람이라면 알아야 한다는 것.

 

정지용이 누구인가? 교과서에서 늘 배우던 '청록파'시인들을 시인으로 등단하게끔 추천해준 그 인물 아니던가. 그러니 일반 사람들은 검열이라는 어려운 시절에 정지용을 몰랐다 하더라도 명색이 시인이라고 자처한다면 정지용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박용래 시인의 뜻이었으리라.

 

그런데 내가 도착한 옥천은,

 

넓은 벌 동쪽 끝으로 /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 얼룩백이 황소가 /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 정지용 전집, 민음사, 1992년 2판 6쇄 46쪽 '향수' 1연

 

시인이 그렇게 그리워한 그 고향엔 이미 넓은 벌도 없었고, 휘돌아 나가는 실개천도 없었으며(단지 현대식으로 크게 만들어놓은 개천만이 있었다), 게으른 울음을 우는 얼룩백이 황소도 없었다.

 

하여 나에게 옥천은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정지용 '고향' 1연)라고 읊던 정지용의 마음과 비슷하게 다가왔다.

 

옥천에 도착해서 정지용 생가로 가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고 있을 때, 앞의 건물에 커다랗게 붙은 현수막은 옥천이 낳은 또 한사람의 서거를 기념한다는 그런 내용을 담고 있었다.

 

옥천이 그러한가?

 

박용래 시인에게 옥천은 정지용을 낳은 곳으로 기억되지만, 내게 옥천은 언론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려고 했던 곳, 안티 조선 운동을 벌였던 곳으로, 여기에 정지용의 고향으로 남아 있었는데, 정지용과는 별 상관도 없는, 또다른 인물의 이름이 현수막에서 나에게 보여지다니.. 씁쓸한 감정.

 

그래서 지금까지 가보지 못했던 정지용의 고장인 옥천을 큰맘 먹고 벗들과 함께 찾았는데, 초장부터 기분이 별로였다고 할까.

 

여기에 점심으로 먹었던 '구읍할매묵집'은 '구읍'이라는 이름과 '할매'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한옥이 아니라 양옥 건물이었으니, 그것도 상가 건물이었으니, 근처에 있던 한옥집들과 대조되고, 햐, 이거 내가 생각한 옥천과는 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그럼에도 정지용 생가, 그 아담한 모습에, 그 앞에 흐르는 개천에 시인이 왜 '향수'를 노래했는지, 왜 '고향'을 그리워했는지, 고향의 변모를 서러워했는지 알 수 있었고, 정지용 문학관이 다른 문학관에 비해 그다지 떨어지지 않음에도 입장료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어떻게 운영되나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좋았다고나 할까.

 

여기에 정지용 문학을 보여주는 한국 시의 역사에서 빼놓기 쉬운 인물인 백석, 오장환, 이용악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좋았고, 그리고 입구에 전시해놓은 정지용 문학상 수상 시들도 좋았다고 할까.

 

한국시에서 한 획을 그은 정지용. 그를 한 때 정O용으로 배웠던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당당히 정지용이라고 하고, 그를 기리는 문학상도, 문학제도 있으니... 시인은 가도 그의 시는 남아 있고, 그의 시정신은 남아있다고 해야 하나.

 

시인이 다른 어떤 인물보다 더 기억되는 사회, 그리고 시인과 마을이 하나로 기억되는 사회, 그런 사회가 바로 문화 사회 아닐까.

 

언론의 민주주의를 실현했던 옥천, 그리고 정지용이라는 위대한 시인을 배출한 옥천. 그 옥천, 나중에 시간이 나면 천천히 '향수길'을 걸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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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안도현 시인은 절필을 선언했다.

 

이러한 시대에 시를 쓴다는 일이 부질없다고.

 

시를 통해서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아름답게 할 수 있는데,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시는 세상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많이 보이는데, 그는 이제 그럴 수 없는 시대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세상을 따스한 눈으로 보던 그가, 그런 시를 썼던 그가 이제는 절필을 하다니.

 

마치, '서울로 가는 전봉준'처럼 형형한 눈동자를 빛내고는 있지만, 세상 변혁에 실패한 사람처럼.

 

그러더니 며칠 전에는 안도현 시인이 기소  당했다는 기사가 나기도 했다.

 

그가 한 말이 빌미가 되어 검찰이 그를 기소했다는데, 그는 자신의 일을 국민들이 판단해 줄 거라고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해 놓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신청을 하기 위해 가는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 있었는데, 역시 나는 여기서 '서울로 가는 전봉준'을 느꼈다.

 

시인은 알게모르게 시대를, 자신의 운명을 시를 통해서 표출하고 있다지만, 그를 시인이게 만들어준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 지금 그의 모습과 겹쳐질 줄이야.

 

서울로 압송되어 가는 전봉준. 자신의 꿈이 실현되지 않고, 세상 변혁에 실패하고, 결국 죽으러 가는 그 길에 그는 사진 한 장을 남겼다.

세상을 쏘아보는 눈빛. 형형한 눈빛이 뇌리에 박히는 그 사진.

 

그는 가지만, 그의 뜻은 가지 않겠다고 하는 그 눈빛.

 

서울로 가는 전봉준, 재판정으로 가는 안도현. 그의 시를 여기에 적어본다.

 

시인이 재판정이 아닌, 시를 써야할 자리에 있기를 바라면서.

 

서울로 가는 전봉준

 

눈 내리는 만경들 건너 가네

해진 짚신에 상투 하나 떠 가네

가는 길 그리운 이 아무도 없네

녹두꽃 자지러지게 피면 돌아올거나

울며 울지 않으며 가는

우리 봉준이

풀잎들이 북향하여 일제히 성긴 머리를 푸네

 

그 누가 알기나 하리

처음에는 우리 모두 이름 없는 들꽃이었더니

들꽃 중에서도 저 하늘 보기 두려워

그늘 깊은 땅 속으로 젖은 발 내리고 싶어하던

잔뿌리였더니

 

그대 떠나기 전에 우리는

목 쉰 그대의 칼집도 찾아 주지 못하고

조선 호랑이처럼 모여 울어 주지도 못하였네

그보다도 더운 국밥 한 그릇 말아 주지 못하였네

못다한 그 사랑 원망이라도 하듯

속절없이 눈발은 그치지 않고

한 자 세 치 눈 쌓이는 소리까지 들려오나니

 

그 누가 알기나 하리

겨울이라 꽁꽁 숨어 우는 우리나라 풀뿌리들이

입춘 경칩 지나 수군거리며 봄바람 찾아오면

수천 개의 푸른 기상나팔을 불어제낄 것을

지금은 손발 묶인 저 얼음장 강줄기가

옥빛 대님을 홀연 풀어헤치고

서해로 출렁거리며 쳐들어 갈 것을

 

우리 성상(聖上) 계옵신 곳 가까이 가서

녹두알 같은 눈물 흘리며 한목숨 타오르겠네

봉준이 이 사람아

그대 갈 때 누군가 찍은 한 장 사진 속에서

기억하라고 타는 눈빛으로 건네던 말

오늘 나는 알겠네

 

들꽃들아

그날이 오면 닭 울 때

흰 무명띠 머리에 두르고 동진강 어귀에 모여

척왜척화 척왜척화 물결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안도현, 서울로 가는 전봉준, 민음사, 1994년 중판. 44-45쪽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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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참 좋게 읽었던 시집이다.

 

이 시집에서 마음에 들었던 시도 꽤 있었고... 무엇보다 시가 어렵지 않다고 생각해서 더 좋았고.

 

제목이 "시간의 그물"이다 보니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변한 자신에 대한 이야기, 세상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그 중에서는 이미 변해버린 고향, 즉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이야기와 변한 세상에 대한 이야기, 따라서 상실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는 시들이 제법 있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어릴 적에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했는데, 그 땐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세월의 무게를 느끼는 나이가 되어가고, 세상이 점점 더 무거워지고, 나 자신은 점점 더 작아지고... 꿈은 사라지고, 현실은 어두워지고, 갈 길은 먼데, 앞은 보이지 않는 듯하고...

 

시집을 넘기면 처음에 이런 시가 나온다.

 

신발

 

신발의 문수 바꾸지 앟아도 되던 날부터

하나 둘씩 내 곁을 떠나간 친구여

하나 둘씩 내 곂을 떠나간 꿈이여

 

이재무, 시간의 그물, 문학동네. 1997년 초판. 11쪽

 

나이를 먹어감은 상실과 통하는 나이, 현실적이 되어갈수록 점점 자신의 꿈과는 멀어지는 나이. 어릴 적 자신을 잃어가는 나이. 그런 나이듦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신발의 문수.

 

신발의 문수를 바꾸지 않아도 되던 날, 이는 어른이 된 날이고, 어른이 되었음은 현실적이 되었음이고, 현실적이 되었음은 삶에 자신이 얽매이게 되었음이고, 삶에 얽매이게 되었음은 친구들과 만나는 횟수를 줄이는 나이가 되었음을, 많은 꿈들을 접고, 오로지 생활을 위해서 전념하는 나이가 되었음을, 씁쓸하지만.. 그런 나이듦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육체적인 나이는 먹을수록 꿈을 잃어가겠지만, 정신적인 나이는 먹어도 먹어도 꿈을 잃은 나이는 아닐터...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자신이 시대의 변함이 결코 좋은 쪽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 터이다.

 

하여 이런 나이듦에 대한 시가 한 편 더 있다.

 

마흔

 

몸에 난 상처조차 쉽게 아물어주지 않는다

그러니 마음이 겪는 아픔이야 오죽하겠는가

유혹은 많고 녹스는 몸 무겁구나

 

이재무, 시간의 그물, 문학동네, 1997년 초판. 99쪽

 

불혹의 나이. 그러나 몸이 무거워지고, 미혹되지 않음은 어쩌면 도전하지 않음의 다른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 시가 하게 한다. 그래, 나이듦은 어쩌면 안주일지도, 그 안주를 통해 몸은 점점 무거워지고, 정신은 도전을 포기하는, 하여 실패로 인한 마음의 아픔은 회복 불가능할 수준까지 이르는 그런 나이.

 

그렇다고 나이 먹었다고 주저앉을 수만은 없는 일. 녹스는 몸, 무겁더라도 움직여야 한다. 움직임이 바로 우리들의 삶이기 때문이다.

 

이런 나이듦에 대한 시 속에서 요즘 정치 상황과 맞물려 내 눈에 쏙 들어온 시가 있었으니..

 

                        도배공

 

이미 벽과 한몸이 되어버린 낡은 벽지

벗겨내는 일 여간 고되지 않다

보라, 안간힘으로 버티는 저 완강한

기성의 아집과 집착을

그는 그만 이쯤에서 오래된 고집과 타협하고 싶어진다

갑자기 그는 일을 서두른다

낡은 벽지는 더 많이 아주 오래 살아남는다

 

이재무, 시간의 그물, 문학동네, 1997년 초판. 78쪽

 

우리들이 바로 이 도배공과 같지 않았을까... 낡은 벽지를 싹 걷어내고, 아주 말끔하게, 완전히 걷어내고, 그 자리를 깨끗이 청소하고, 그 다음에야 새 벽지를 발라야 하는데, 우리는 힘들다는 이유로,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또다른 이유로 낡은 벽지를 완전히 걷어내지 않고, 그 위에 그냥 새 벽지를 덧붙이지 않았던가...

 

곰팡이가 슬어있는 벽지 위에 바른 새 벽지. 과연 새 벽지 역할을 할까. 지금까지 우리가 발랐던 벽지들은 이런 낡은 벽지 위에 발랐기에 이상하게도 새로운 느낌을 주지 못하고, 낡은 느낌을, 곧 곰팡이가 스는, 쾨쾨한 냄새를 풍기는 벽지로 변하게 하지 않았을까.

 

우리나라 정치가 이렇지 않았을까. 정치를 이렇게 만든 장본인은 바로 우리들이 아닐까. 우리는 정말로 새 벽지를 바를 마음을 지니고 있었던가. 그냥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대충 더러운 것들이 보이지 않게만 가리면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먼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새 벽지 안 쪽에 얼마나 많은 낡은 벽지들이 존재하고 있는가, 그 썩어버린 벽지들이 새 벽지까지 썩게 하고 있지는 않았던가.

 

뉴스를 보기가 싫어진 지는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세상 돌아가는 꼴은 알아야지 하고 보다보면 낡은 벽지에서 스며나오는 그 더러움이 새 벽지도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만들어버리고 있음을 보게 된다.

 

눅눅해진다. 마음이... 그러면 안되는데... 이제는 정말로 깨끗이 긁어내고, 그 위에 새로운 벽지를 발라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이재무의 시집... 어쩌면 나이 들어감에 대하여 쓴 시들이기도 하겠지만, 낡음을 제거하지 않고, 낡음 위에 덧붙여진 새로움이 얼마나 위태로운가를 보여주는 시들도 상당수 있으니... 세월은 우리 육체를 늙어가게 하겠지만, 반대로 우리의 정신은 더욱 젊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

 

이 시집을 읽으며 그래야 한다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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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 장마란다. 어떤 곳은 비가 와서 농사가 안 되고, 어떤 곳은 지나친 가뭄이라서 농사가 안 되고...

 

이래저래 넓은 땅덩이를 자랑하는 나라다.

 

그러나 이 넓은(?) 땅덩이에서 겪는 기후로 인한 어려움보다는 농민들을 더 힘들게 하는 존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무얼까? 우리는 답을 알고 있지 않나? 답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답을 겉으로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다.

 

왜? 농민들은 힘이 없으니까? 농업은 구시대의 산업이며, 누구도(?) 하지 않으려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 때 귀농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들이 귀농을 하려는 이유가 땅과 더불어, 사람을 살리고, 땅을 살리고, 그리고 자신도 살리는 그러한 농업을 하러 가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도시의 삶에 지쳐서, 회사 생활에 염증을 느껴서 농촌으로 내려간 사람도 많았다.

 

그리고 준비 없는 귀농 결과 어떤 사람들은 다시 도시로 돌아오고 말았다고도 하니...

 

농촌에 가도 먹고살 일이 해결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 우리나라는 농촌에 가도 자급자족하기 힘든 실정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논보다는 과일 농사에 더 주력을 하고 있으며, 무슨 환금작물이라는 이름으로 돈이 되는 작물에, 축산에 몰려들고 있는 현실이니...

 

이게 농민탓이랴?

 

어떻게 농민을 탓할 수 있는가?

 

그동안 얼마나 농민을 홀대했는가?

 

신자유주의가 시작되기 전에도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명목으로 농민을 노동자로 만들기 위해 온갖 정책을 펼쳤고, 굶주림을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단일작물을 심게해 병충해에 취약하게 만들었으며, 외국 농산물의 수입을 개방해 농민들이 살기 더욱 힘들게 하지 않았던가.

 

며칠 전부터 이중기의 이 시집을 읽고 있었다. 내용이 어렵지 않은데, 이상하게 한 번에 읽히지 않는다. 자꾸 곱씹어야 한다. 물론 사투리가 있어서 낱말의 의미를 유추하는데도 시간이 걸리지만, 그만큼 내가 농사와는 거리가 먼 생활을 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리라.

 

또 이 시집의 제목이 되기도 한 시 '밥상 위의 안부'를 읽고 또 읽고 계속 곱씹어 읽는데, 의미가 확 하고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상하다. 그렇다고 마음에 확 들지도 않는다. 시집 뒤에 있는 해설을 읽어도 이 시에 대한 언급은 없다. 시집의 제목으로 삼을 시인데...

 

하여 전문적인 시평을 할 것도 아니고, 이 시를 가지고 씨름하는 것을 멈추고 다른 시들로 넘어갔다. 다른 시들 중에 마음에 와닿은 시들이 제법 있다. 눈물겹도록 슬픈 시도 있고, 슬픈 상황에서도 해학이라고 해야 하나, 웃음을 머금게 하는 시도 있다.

 

그 중에 지금 우리가 명심해야 할 시.

 

비교우위론에 대한 경고

 

게릴라전을 펴는 비교우위론에서

쌀은 굶주린 자의 빛나는 희망이 아니라

살아남을 자의 생애를 대변합니다

 

소말리아의 죽음잔치는 인간의 예언입니다

 

이중기, 밥상 위의 안부, 창작과비평사, 2001년. 72쪽

(이 시집의 51쪽과 68쪽에 이러한 비교우위론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을 표현한 시가 있다. 이 세 시는 서로 연결된다.)

 

이중기는 시인이자 농민이다. 그는 농촌에 살면서 농사를 지으면서 농촌이 어떻게 망가져가고 있는가를 목격했고, 경험했고, 저항한 사람이다.

 

이 시집에는 그러한 저항이 처절하게 드러나 있다. 농촌의 실상이 진실되게 드러나 있다. 젊어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농민들... 그리고 쌀이 아닌 과일을 재배하는 농민의 슬픔 등이.

 

그래서 슬프다. 우리는 밥상을 받으면서 안부를 묻고 있는지, 밥상에는 단순히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음식만이 있지 않고, 바로 우리나라의 현실이, 미래가 있음을 이 시집을 읽으면서 깨우칠 수 있었는데...

 

농담식으로(사실은 진심이다) 앞으로 가장 유망한 직업은 농부라고 말하는데... 사람을 살리고, 땅을 살리고, 동물을 살리고, 지구를 살리고, 우주를 살릴 수 있는 직업, 그것은 직업이라기보다는 바로 우리의 삶 자체이다. 그것이 바로 농부의 삶이다.

 

돈을 추구하는 농부가 아닌, 삶을 추구하는 농부. 그리고 그런 농부들이 웃으며 살 수 있는 나라. 그것이 바로 내가 꿈꾸는 나라 아니던가.

 

그 때서야 농부는 미래의 가장 유망한 직업이 될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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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은 근본주의다.

 

이렇게 말하니 무언가 대단한 것 같다. 무서운 것도 같다. 타협을 모르는, 웬지 꽉 막힌 그러한 잡지 같다.

 

몽상가들의 모임 같기도 하고... 실현 불가능한 일을 이야기하는 동키호테들의 모임 같기도 하고, 또 그냥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이상주의에만 몰두하는 사람들 같기도 하고.

 

그러나 근본주의에는 원칙이 있다. 아니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모습이 있다. 그래서 녹색평론은 근본주의를 포기하지 못한다. 이 때의 근본주의는 꽉 막힘이 아니라, 우리 삶이 지향해야 할 목표가 된다.

 

그만큼 우리나라에 늘 앞서서 문제제기를 녹색평론이 해오지 않았던가.

 

환경이니 생태니 하는 문제를 떠나서도 녹색평론은 삶의 기본적인 모습에 대해서, 어떤 것이 사람다운 삶인지에 대해서, 공존하는 삶에 대해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지 않았던가.

 

이제는 핵이니 생태니를 떠나서 우리 사람들이 존엄한 삶을 위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있다.

 

그러한 고민이 "기본소득"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사람들 한 명 한 명에게 기본소득을 주자는 의견. 얼핏보면 공상에 불과할 주장으로도 보인다. 노인들에게 기초연급을 20만원씩 주자는 공약을 내세우고도 재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공약(公約)을 공약(空約)으로 만들어버리고 있는 이 현실에서, 노인도 아니고 모든 국민에게 똑같은 돈을 주자고 하는 주장은 공허하게도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자.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일정한 소득을 보장해주면 그 사람은 적어도 굶어죽을 걱정은 하지 않으니 자신의 삶을 충분히 누릴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돈이라는 것은 지금 모자라지 않는다. 넘치고 있는데, 그 넘침이 생산적이지 않은 부분으로 모여들어서 문제가 되는 것 아니겠는가.

 

처음에 무상급식도 무슨 무상급식이냐, 왜 부자들에게도 무상급식을 해야 하느냐, 무상급식을 하면 일하지 않고 얻어먹으려는 습성만 들게 된다는 둥 많은 반대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어떤가, 무상급식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지 않은가.

 

이와 마찬가지로, 기본소득도 충분히 재원을 마련할 수 있으며, 또한 이것이 실현이 되면 삶의 질이 상당히 높아질 거라는 것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진보정당에서도 기본소득을 주장하지 않는다는, 이미 외국에서는 이런 주장으로 상당한 득표를 하고 있는 정당이 있음에도, 이상한 현상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래, 녹색평론이 얼마 전부터 계속 기본소득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들이 근본주의에 빠져 있어서가 아니라, 이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방향은 되돌려지지 않고 앞으로 주욱 나아갈 것이다.

 

우리 사회에 기본소득이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는 녹색평론. 이번 호 꼼꼼하게 읽으면 왜 기본소득이 도입되어야 하는지, 그것을 우리는 반대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밀고 나가야 함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더불어 일리치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도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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