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 2003년 제34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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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김연수 소설을 읽기로 하다. 이름을 많이 들어서 언젠가는 한번 읽어봐야지 했던 작가. 이름만으로 흘려보낸 시일이 꽤 된다. 이제는 김연수 소설을 읽자. 그가 자꾸 언급되는 이유가 있겠지. 그런 마음으로 읽기 시작한 소설이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당연히 책을 골랐을 때는 제목이 된 소설이 실려 있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읽었던 소설집들은 대부분 그랬기 때문에... 최근에 시집들은 시집 제목을 수록된 시에서 따오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그 생각을 소설로 확장하지는 못했다.


이 소설집은 2002년에 나왔는데, 소설집도 굳이 수록된 소설에서 제목을 따오지 않아도 되는데... 단편 소설 9편이 실려 있다. 등장인물들이 모두 일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아이거나 기껏해야 대학생 정도의 나이이고, 공간적 배경은 경상도 김천이라고 할 수 있다. 꼭 김천이 아니어도 경상도 어느 마을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특정한 공간에서 아이부터 대학생이 되기까지 겪은 일들이 이 소설집에 나오는 내용이라면, 이 소설들은 한편 한편이 독립적이지만 또한 과거 마을 삶에 관한 공통점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또 시대적 배경이 70년대에서 80년대를 거치고 있으니, 이 소설집이 나온 때로부터 20-30년 전 이야기라는 공통점, 지금으로 따지면 소설집이 나온 때가 20년 전이니, 과거의 과거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지금 세대에게는 낯선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작가 김연수와 비슷한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그래, 그때는 그랬지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소설들이라고 할 수 있다.


시대의 아픔도, 개인이 겪는 아픔도 소설 속에 드러나고 있는데, 설핏 작가의 개인적인 성장사도 소설 속에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이 소설집에 있는 '뉴욕제과점'을 먼저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이 '뉴욕제과점'은 작가의 사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해도 좋을 만큼 직접적으로 작가가 된 자신이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그 다음은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다. 내용이 주욱 연결되지는 않으니까. 그렇지만 70-80년대 우리나라 상황을 알 수 있는 '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은 과거에는 그랬지라고 넘길 수가 없다.


이 소설 속 상황은 지금도 진행형이니까. 우리가 아직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특정 지역을 배제하는, 그런 행태들. 그런 관념들. 여전하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주사파 운운하면서 그들과는 협치하지 않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니, 상처에는 칼날의 생김새가 남아 있다.


상처를 보면 어떻게 상처를 입었는지를 알 수 있다. 상처를 낸 존재들의 모습이 상처 속에 오롯이 드러난다. 그러므로 상처는 기억이고, 과거를 잊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존재가 된다. 이 소설 역시 그렇다.


어린 시절의 기억. 그 시절은 다시 돌아올 수 없을지라도 기억에 남아 현재를 살아가게 한다. 어쩌면 현재의 자신을 지탱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집에 실린 마지막 소설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는 80년대 학원 폭력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지만, 과연 우리는 폭력을 극복한 사회에 살고 있나 되짚어 보게 한다.


당시에는 물리적인 폭력이 난무했지만, 지금은 물리적인 폭력은 많이 사그라지고 있다. 물론 학교폭력은 여전하기는 하지만, 교사들에 의해서 또 교사를 대리하는 반장이라는 권력에 의해서 자행되는 물리적 폭력은 사라졌다. 암암리에 일어나는 폭력은 있지만, 이처럼 공공연하게 행해지는 폭력은 사라졌다.


하지만 그렇게 폭력에 길들여졌던 과거가 오나전히 극복되기 위해서는 이 소설에처럼 다른 계기가 있어야 한다. 결코 그 폭력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마음 가짐.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려는 노력. 


공공연한 폭력만이 아니라 은연중에 가해지는 폭력도 없애야 한다. 또 제도로 가해지는 폭력도 없애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소설 속에서 가해지는 폭력 상황과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 지지 말고 자신만의 꽃을 피울 수 있으려면 폭력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폭력에 맞설 마음을 지니고, 행동으로 나서야 한다.  


김연수가 자신의 과거를 소설을 통해 불러낸 이유는 바로 과거를 미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과거를 통해 현재를 개선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또 과거와는 다른 미래로 나아가기 위함이다. 그렇게 소설은 우리를 다른 세계로 인도한다.


김연수가 불러낸 우리나라 70-80년대의 삶. 이제는 과거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이지만, 이 중에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들이 있으니... 김연수 소설을 통해서 또다른 삶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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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시간에 영화 보기 2 - 외국 영화로 만나는 시와 시인들 문학 시간에 영화 보기 2
박일환 지음 / 한티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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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시인들을 다룬 1권에 이어 이번에는 외국 시인들을 다뤘다. 우리나라 시인도 잘 모르는데 외국 시인? 할 수도 있지만, 시를 즐기는데, 영화를 즐기는데 굳이 국적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또 외국 시인에 대해서 알면 훨씬 더 좋지 않은가.


영화도 보고 시도 읽고 그야말로 일석이조인데, 그런 기회를 책이 제공해 주고 있으니, 일석삼조라고 할 수 있다.


영화에 시가 흐른다? 시가 영화를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어쩌면 시를 더 가깝게 만날 수 있는 기회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알아야 한다. 적어도 그것이 시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하지 않나. 그리고 영화에 나온 시를 찾아보고 다시 읽으면 더 좋겠고.


많은 영화, 많은 시들이 나오지만, 우리에게 친숙한 영화와 시가 이 책에도 나온다. 바로 '죽은 시인의 사회' 


소설과 영화는 알아도 시는 잘 생각 안하는 영화인데, 제목에 시인이라는 말이 들어갔으니 시와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영화에는 시도 나오고, 또 시 수업에 관해서 나오니 말이다. 그래서 외국 영화와 시를 연결지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와 비슷한 영화가 '위험한 아이들'이다. 시를 통해서 아이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그린 영화. 이 영화에서는 딜런이 나온다고 한다. 밥 딜런. 가수라고만 생각하기 쉽지만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람 아니던가.


그렇게 영화는 딜런으로 시작해서 시를 만나고 변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린다. 물론 교사도 변하고.


다음에 시와 관계 있는 영화는 '일 포스티노'다. 네루다에 관한 영화. 아니 네루다를 만난 우편배달부에 관한 영화.


시로 인해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 사람. 그렇게 시는 사람에게 다가와 그의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그런 시를 영화를 통해서 만나게 된다. 우리 역시 영화 속 인물들처럼 시를 통해서 우리 인생을 다시 바라볼 수 있을 수도 있다.


여기에 새로운 느낌. 지브란이 쓴 '예언자'... 잠언집이라고만 생각했다. 시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는데, 시였다니...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읽힌 글이... 


영화와 시에 관한 책을 읽으며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된다. 또 시를 새롭게 보게도 된다. 그렇게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시를 새롭게 만나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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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첨되셨습니다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80
길상효 외 지음 / 비룡소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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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이라고 한다. 짧은 소설이 열 편 실려 있다. 우리가 삶에서 한번쯤 생각해 봤던 일들이 소설 속에서 펼쳐진다. 작가가 다른 만큼 소설 속 세계도 다르다. 그런데 SF소설이라고 하지만, 이상하게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코쿤'이라는 소설이 그렇다. 청소년기, 훌쩍 변해버린 모습. 낯선 모습에 당황하기도 하지만, 그런 변화만큼이나 변하지 않은 면이 있음을, 이 소설은 보여주고 있다. 코쿤이라는 다른 장소에 갔다 오면 변해 있는데, 그만큼 청소년기의 변화는 서서히 일어나지 않고 갑자기 일어난다고 할 수 있다.


갑자기 변한 자신의 모습, 친구들과의 낯선 관계. 그러나 아무리 변해도 지니고 싶은 마음이 있음을 이 소설은 보여주고 있다. 청소년들의 마음도 그렇지 않을까 한다. 변하고 싶은 마음과 변하지 않고 간직하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이 교차하는 시기.


다른 소설들 역시 상상 속 현실이지만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그 중에서 '소생과 탄생 사이'는 인간의 불멸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죽음을 극복하려 한다. 그런데 어떻게?


과학(의학)기술로 인해서 많은 발전이 있지만, 이 소설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줄기세포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와 비슷한 존재로 인해서 손상된 신체를 회복하게 된다. 그런데 과연 그 인간은 소생한 것일까? 탄생한 것일까?


소생이라면 죽음에서 살아났다고 할 수 있지만, 탄생이라고 하면 죽음과 연결되지 않는, 그 전의 존재와는 다른 존재가 된다는 뜻인데...


어쩌면 우리는 불멸의 존재가 되기 위한 노력 중에 뜻하지 않은 일을 겪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과연 인간에게 불멸이란 무엇일까도 생각하게 하고.


이와 비슷한 소설이 '당첨되셨습니다'다. 인간의 신체 일부를 가지고 다시 살려내는 기술이 있다. 그리고 살려내서 다시 살게 한다. 그렇다면 그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이렇게 인간을 다른 존재로 만드는 기술이 있다면 과연 그 사회는 행복한 사회일까 하는 생각을 해봐야 한다.


'누나의 에펠탑'이 그렇다. 신체를 조작할 수 있다면, 신체만이 아니라 의식도 조작할 수 있다면,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는 상태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상태로 돌려놓을 수 있다면? 어떻게 할까?


원하는 존재가 당사자가 아니라 권력을 지닌 존재라면? 미성년자라고, 판단능력이 없다고 부모가 대신 판단하고 신체나 지적 능력을 다시 부모들 맘대로 돌려놓는다면, 그런 기술이 가능하다면?


'소생과 탄생 사이, 누나의 에펠탑, 당첨되셨습니다'는 이렇게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술이 있는 사회로 보낸다. 그리고 그 사회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을지 생각하게 한다.


먼 미래의 일이라고 하겠지만, 인간은 포기하지 않는다. 인간복제부터 시작해서 인공지능까지 인간이 어디까지 나아갈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예측할 수 없고.


그래서 이런 소설을 통해서 간접경험을 한다. 미리 소설을 통해서 경험을 하고, 미래에 어떤 사회에서 사는 것이 바람직한지를 생각할 수 있다. 소설은, 특히 SF소설은 이렇게 우리에게 미래를 먼저 경험하게 한다.


이 경험을 다른 사람과의 토론을 통해서 현실을 인식하고 삶의 방향을 정하는 쪽으로 만들어가면 된다. 그렇게 SF소설은 우리 곁으로 다가온다. 이 소설집도 그렇다. 다양한 상황을 통해서 우리가 살아갈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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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마리 여기 있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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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을 때 "이런 사람 꼭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시작하자마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브릿마리는 남을 평가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절대 아니다.' (11쪽) 이 말이 얼마나 많이 반복되는지.


이 말은 곧 그런 사람이라는 말로 들린다. 우리 주변에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데, 꼭 그런 사람이 있지 않은가.


평가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평가하는 사람, 고지식하지 않다고 하면서 고지식한 사람, 눈치가 없지 않다고 하면서 눈치가 없는 사람 등등.


우리 주변에는 남과 잘 소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꼭 있다. 이상하게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 그럼에도 밉지 않은 사람. 브릿마리는 그런 사람이다. 


베크만 소설을 몇 권 읽으니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자기 나름대로 고집이 있고, 자신의 방식대로 세상을 살아가지만, 내면에는 따뜻함을 지니고 있으며,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 대해서는 애정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된다.


브릿마리 역시 마찬가지다. 청소에, 정리에 강박이 있는 듯이 행동한다. 하지만 그런 행동이 밉지 않다. 오히려 웃음을 자아낸다. 60이 넘어서 남편을 떠나 일자리를 얻어 생활하려는 브릿마리. 그런데 그 과정이 만만치 않고, 자신처럼 떨어져 나온듯한 동네 보르그에서 임시 일자리를 얻는다. 그것도 실수로.


하지만 여기서 브릿마리는 싫어하던 축구와 인연을 맺게 된다. 그것이 어찌 자신의 의도대로 되겠는가. 그냥 어느 순간 자신에게 다가오고, 그것을 거부하지 못하게 된다. 브릿마리에게 축구란 그렇게 다가온 존재가 된다.


보르그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보르그에 대한 편견을 브릿마리가 지니고 있지 않다고 아이들은 여긴다. 그 순간부터 아이들은 브릿마리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 함께 지내게 된다. 축구에 축자로 모르는 브릿마리를 코치로 영입하려 한다. 물론 코치가 있어야 대회에 나갈 수 있어서이긴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서로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이 소설 속에서 펼쳐진다. [오베라는 남자]에서 오베와 이주민들이 마음을 열어가듯이, 이 소설에서도 브릿마리와 보르그 사람들이 마음을 열어간다. 그렇다고 작가는 뻔한 결말을 보여주려고 하지는 않는다.


왜 브릿마리가 청소에 집착을 했는지, 청소할 때 쓰는 물건에 그리도 집착을 하고, 정리(리스트)에 매달리는지가 소설을 읽으면 하나하나 드러난다. 브릿마리 역시 남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거다, 


브릿마리는 남을 의식하는 삶을 살았다. 그런 삶을 60이 되도록 살았는데, 자신의 삶이 무엇이었을까? 자신의 꿈은?


그 꿈은 과거에 묻혀버리고 말았는가? 아니, 사람이 지닌 꿈은 묻혀 있지 않다. 꿈은 언제고 다시 나오게 된다. 


그렇다. 우리 주변에는 브릿마리와 같은 사람이 꼭 있다. 자신의 꿈을 다른 사람을 의식하면서 실현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 또 자신이 생각을 직설적으로 말하는 사람. 그럼에도 어려운 사람에 대해서 애정을 지니고 있는 사람.


그 사람들에 대해서 편견을 지니지 않고 보아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꼭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통해서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진다.


읽는 재미도 있고, 읽으면서 브릿마리가 변해가는 과정도, 또 보르그 사람들과 어울리는 과정도 재미있다. 재미있기도 하고 브릿마리처럼 실현하려 하지 않은 꿈이 있는지도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소설은 읽으면서 재미도, 또 자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물론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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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부엌
김지혜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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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부엌'


제목이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부엌하면 요리를 떠올리고, 음식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음식은 한 종류가 아니다. 사람들이 하나의 음식만을 먹고 살 수는 없다. 때에 따라, 장소에 따라 다양한 음식을 먹는다. 그리고 음식은 우리 몸을 살리는 역할을 한다.


그럼 책들의 부엌은? 요리되는 존재가 음식이 아니라 책이다. 다양한 책들을 요리하듯이 접하고, 우리가 받아들인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책도 음식이다. 마음의 양식이라고 하듯이, 책은 마음을 살리는 역할을 한다.


발터 뫼르스가 쓴 소설 [꿈꾸는 책들의 도시]에서는 부흐링 족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책을 음식으로 먹는다. 책읽기가 음식먹기다. 마음을 살리는 음식이 아니라 몸을 살리는 음식이 책이다. 


이 책은 그 소설과 다르다. 물리적으로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채우는 역할을 한다. 책을 통해서, 마음을 치유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무언가 응어리를 지니고 있다. 그런 응어리를 풀어내는 역할을 책이 한다. 


여러 등장인물들이 등장한다.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인물들. 그들은 어느 순간 북스 키친에 와서 지내는 동안 나름대로 치유를 하게 된다.


자연과 더불어, 책과 더불어 지내는 시간, 책을 통해서 풀어내는 시간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풀어낸다.


부엌에서 요리를 하는 사람도, 요리를 먹는 사람도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런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하는 역할을 요리가 한다. 


북스 키친도 마찬가지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즉 북스 키친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없다면 아무리 책이 있어도 치유는 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책이 있고, 그 책을 통해서 그들은 더 좋은 관계를 만들어가게 된다.


결국 책에 관한 책이지만 더 나아가 사람에 관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환대란 무엇인지, 그리고 환대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여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그래서 따스하게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 함께 먹는 듯한 느낌으로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아무 때나 훌쩍 떠날 수 없는 사람들, 이렇게 치유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라는 사실을 이 소설이 간과하고 있지 않을까.


지금처럼 관계가 비틀린 시대에 이런 따스한 소설은 위안을 준다. 가혹한 현실 속에서 조금은 쉴 수 있도록 하는 소설.


부엌에서 음식을 먹으며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듯이 이 소설을 읽으며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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