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리 시편 - 심호택 유고시집
심호택 지음 / 창비 / 201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고시집은 유고라는 말 때문에 늘 마음이 찡하다.

시인이란 자신이 할 말을 가능하면 줄이는 사람들인데, 그 말들조차도 생존에 하지 못하고 남겨놓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마음 속에 있는 그 많은 말들을 고르고 고르다 내놓아야지 내놓아야지 하다가 결국 내놓지 못하고 만 상태. 그걸 발견하여 내는 시집. 유고시집.

 

유고시집으로 유명해진 사람이 세 명이 있다. 내게는.

 

한 명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애창한다는 "서시"의 주인공 윤동주, 또 한 명은 남성적인 시를 썼다는 "광야", "절정"의 이육사, 그리고 또 한 명은 죽지 않았음에도 죽었다는 생각으로 친구들이 시집을 냈던 "귀천"의 천상병.

 

이들이 우리나라 시사에서 어느 위치를 차지하는지는 누구나 알고 있을리라 생각하기에 더 얘기할 것이 없고.

 

심호택의 시집 "하늘밥도둑"을 잘 읽었던 기억이 있고, 어, 이분이 벌써 세상을 떴나 하는 생각에 그의 유고시집을 사서 읽게 되었는데...

 

이 유고시집은 그가 시골에 내려가 살고 있는 이야기와 어린 시절 이야기라고 보면 된다.

 

시편들이 다들 따뜻하다. 한 폭의 산수화, 풍경화를 보는 듯하다. 아니면 우리네 삶이 오롯이 들어있는 풍속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특히나 이 시들은 다들 쉽다. 읽고 이해하기가 쉽다. 아니 이해한다기보다는 그냥 느낄 수 있다. 그렇게 시들이 쉽게 쓰여졌다. 하긴 자신이 시골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유년시절을, 그 때의 일들과 삶을 시로 쓰는데, 어려운 단어들을 쓸 이유가 없긴 하겠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 그런 시들. 그가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남겨준 선물이란 생각이 든다.

 

그의 시 중에 절로 웃음이 벙그러지게 하는 시 한 편

 

선생의 형님

 

 

모르는 것 없으면

그게 선생인데

농부는 사양한다

국졸이라 선생 자격 없다고

 

형님으로 모신다니

그는 한자랑이다

혀가 곧을 때나 꼬부라졌을 때나

아 글쎄!

개울 건너 선생님이 자기를

형님으로 부른다고

 

이날까지 육십 평생

자기가 이렇게 대단한 줄

처음 알았다고

 

심호택, 원수리 시편, 선생의 형님 전문, 창비, 4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상 문학의 비밀 13
권영민 지음 / 민음사 / 201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런 작가를 행복하다고 해야 하나? 자신의 삶에서는 그다지 행복을 느끼지 못했는데, 사후에 이렇게 관심을 받는 작가를 말이다.

 

겨우 28살에 세상을 떠난 작가를 우리는 아직도 천재니 뭐니 하면서 그를 기리고, 그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연구자들 말대로 그가 남긴 작품보다도 훨씬 더 많은 연구자료들이 축적되어 있으며, 또 많은 연구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그 작가가 바로 이상이다. 이상이라는 필명으로 더 유명한 김해경. 아니 우리는 김해경이라고 하면 그를 알지 못한다. 인간 김해경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작가 이상만이 존재하고 있는 형상이라고 해야할까.

 

그런 이상을 이해하는데 많은 방법이 있겠지만, 이번 이 책은 이상을 13가지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그의 삶과 그의 작품을 전체적으로 놓고, 이 13가지면(오감도에 나오는 13인의 아해와 연결이 되기도 하고) 어느 정도 이상의 진면목에 다가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하는 책이다. 

 

1. 이상과 동경 그리고 일본어 시

이상은 동경에서 죽는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동경에 가고 싶어 했다. 왜? 그에겐 동경이란 최신 문학(예술)의 본거지라는 생각이 있지 않았을까? 제대로 된 문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이 현대 문명을 대표하는 도시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고 싶다는 생각이 그를 동경으로 유인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이상 문학을 이해하는데, 동경은 하나의 열쇠가 된다. 이상 문학의 정점과 한계를 설명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이상은 동경에 가지만, 곧 실망하고 만다. 동경 역시 서울과 마찬가지로 가짜 도시이다. 근대문명의 대표지가 아니라, 근대 문명을 근근이 흉내내고 있는 도시일 뿐이다. 그에게는 아마도 뉴욕이나 기타 파리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 존재하는 도시가 그가 꿈꾸는 문학을 대표하는 곳으로 자리 매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의 머리 속에 있는, 그의 이상 속에 있는 문학은 현실에 존재하는 도시에서는 찾을 수 없다. 아니, 찾아서도 안된다. 바로 문학은 현실과 이상의 갈등 속에서 현실을 넘어서는 이상의 세계를 좇아가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이상에게 이상적인 도시가 현실로 나타난다면, 그 때는 이미 그의 문학은 현실 속에 묻혀버려 더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상이 동경에 실망한 것, 그것은 또다른 문학을 자신이 창조하려는 뒷걸음질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일보 전진 이보 후퇴! 그랬으면 좋으련만, 그는 이보 후퇴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현실의 절망이 그의 삶을 더이상 지탱하지 못하게 하고 말았다. 더 앞으로, 더 나은 문학으로 나아가야했는데 말이다. 그래서 동경은 이상 절망의 종착지라고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그가 초기에 일본어로 시를 썼다는 사실도 우리가 명심해야 한다. 어쩌면 일본어가 그의 의식을 지배하고, 그의 문학이 이 일본어식 사고에 대한 우리말의 극복 과정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일본어로 쓴 시를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대한 문제도 그의 문학을 이해하는 하나의 길이 될 것이다.

 

2. 오감도와 언어의 창조

이상을 일약 유명하게 만든 작품이 오감도이다. 조감도의 오자냐 아니냐 말들이 많은 작품이기도 했지만, 일본어 시에 조감도란 시가 있으니, 이는 조감도의 오자라고 보기보다는 이상이 의도적으로 언어를 창조했다고 보는 편이 좋겠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세상인데, 새가 내려다 보았다고 하는 것이 조감도라면 이 새 중에서도 까마귀가 내려다 본 세상, 그것이 바로 오감도라고 할 수 있다. 조감도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사항과, 그리고 까마귀에서 연상할 수 있는 사항을 종합하여 이 시를 감상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면서 아해라는 말을 단지 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저 높은 하늘에서 바라보면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아이처럼 작게 보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다시 인식하게 해주기도 했으니...

 

난해하기로 유명한 오감도 이지만, 이 오감도에서 다른 작품들의 언어 창조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게 한다. 이상이 유명한 고사에서 그를 뒤틀어서 자신의 작품을 진행한다든지, 한자어를 교묘하게 바꾸어 작품을 이끌어간다는 사실을, 그가 숨겨놓은 위트와 유머 등을 찾아내는 재미를 느껴야 한다는 사실.

 

그것이 이상을 이해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할까.

 

3. 구인회와 삼사문학

이처럼 철저히 개인주의자인 것처럼 보이는 이상이 몸담은 단체가 바로 구인회다. 세상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람이, 그것도 새까맣게 보이는 세상을 관조하는 사람이 관여한 단체라니... 아홉 사람이 모여서 친목단체(?)와 비슷한 모임을 가졌다 해서 구인회인데...

 

이 구인회가 이상에게 중요한 이유는 이상의 후원자 노릇을 구인회가 했다는 사실. 거기다 구인회의 작품집인 시와 소설을 이상이 편집했다는 사실. 그를 아껴 준 사람인 김기림, 정지용이 구인회의 주요 구성원이었다는 사실은 이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여기에 이상이 유명해지게 하는 오감도를 신문에 실어주는 이태준까지. 이들이 모더니즘을 표방한, 리얼리즘을 반대한 사람들이라면, 이상의 뒤를 잇겠다는 삼사문학 동인들은 모더니즘을 더 밀고 나가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을 보며 이상은 자신은 19세기와 20세기에 발을 걸쳐 놓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렇더라도 과연 삼사문학 동인들이 이상 문학의 수준을 뛰어넘었던가. 그건 아니라는 게 문학계의 평가 아니던가.

 

이상은 즉자를 넘어 대자로 나아간 모더니스트라면, 삼사문학 동인들은 아직도 즉자의 단계에 머무른 상태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즉 정과 반의 단계를 거쳐 합의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그냥 그 세태, 정의 단계에 머물러 있던 사람들, 그들이 삼사문학이라면, 이상은 반의 단계를 거쳐 합의 단계에까지 이르려고 했던 사람이 아닐까 한다.

 

4. 결핵과 일상성 그리고 영화, 그림, 금홍이와 그의 가족

이상 소설이나 시는 그의 일상 생활과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다. 오죽했으면 금홍과의 만남과 이별을 그린 소설이 봉별기이고, 또 자신의 동경유학과 죽음을 그린 소설이 종생기이겠는가. 그래서 이상의 일상성이 모더니즘의 기법을 통해 작품에 드러나고 있다.

 

이상은 화가로서도 성공할 수 있었다. 그는 그림에도 상당한 소질을 발휘했고, 입선을 한 적도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소설에 삽화를 직접 그리기도 했고, 또한 박태원의 소설에 삽화를 그리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림이 단지 그림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그의 문학 작품을 이해하는 하나의 수다으로서도 기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한다면 이상에 대해서 더 깊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예전부터 우리나라는 문학과 그림이 함께 존재하는 경우가 많았으니 말이다.

 

이런 저런 이유때문에 이상의 일상생활과 작품을 동일시하려는 경향도 있지만, 그의 작품에 나타난 서사는, 내용은 그의 일상과 반드시 일치한다고 봐서는 안된다. 작품은 작품 나름대로의 특수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상의 일상이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리라. 그의 결핵이 그의 작품을 추동하는 힘이 될 수도 있었다는 사실과, 작품 곳곳에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사실로 미루어보아도 그렇다.

 

현대의 일상이 어떻게 작품으로 들어왔는지 파악하는 일, 이상 문학을 이해하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

 

5. 이상 문학의 텍스트

28세에 요절했다는 사실이, 그의 문학 텍스트를 확정짓는데 힘들게 한다. 그의 사후에 김기림으로부터 정리되기 시작한 작품집이 여러 학자들을 거쳐 계속 수정되고 정리되고 있으니 말이다.

 

적어도 문학 연구를 하려면 텍스트 정본이 확립되어야 하는데, 아직도 이상의 텍스트는 정본 확립 중이다.

 

많은 학자들의 연구 결과물이 중요한 이유가 그것이고, 아직도 이상이 우리에게 현재진행형인 이유가 이것이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말이 있다.

장님이 코끼리의 특정 부위만 만져서는 코끼리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코끼리를 제대로 알 수 있을까?

다각도로 접근하면 된다.

이상도 마찬가지다.

그를 천재로 규정하든, 서구의 기법을 흉내낸 작가에 불과하다고 규정하든, 이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텍스트의 정본을 확정하고, 이상 문학에 이르는 다양한 길들을 가봐야 한다. 그 때서야 우리는 이상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노력 중의 하나다. 이상 문학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거나 생각해볼 만한 주제를 13개로 정리해주고 있다. 하나하나 생각할 거리이다.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라고 이상은 절규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에게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가 아니라, 우리에게 문학적 영감을 계속 불어넣어주는, 우리에게 도전 의식을 계속 불어넣어주는 작가다. 천재다.

그에게 다가가는 길은 무수히 많다. 아직도 열려 있다. 그런 면에서 그는 천재다. 우리는 그가 숨겨놓은 그 어떤 것들을 계속 찾아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수는 철수다 청소년오딧세이
노경실 지음, 김영곤 그림 / 크레용하우스 / 201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다. 철수는 철수고, 나는 나고. 성철 스님이 말해서 유명해졌다는 말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이 당연한 말이 우리 마음에 다가오는 이유는, 이것이 당연하지 않은 현실 때문이리라.

 

철수는 철수여야 하는데, 과연 철수가 철수일까? 철수는 태어나면서부터 유치원, 초등학교 때까지는 그럭저럭 자신만의 삶을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철수가 중학교게 들어가면서부터 같은 아파트에 사는 준태라는 친구와 비교당하면서 엄마와 갈등을 겪게 된다는 이야기다. 물론 여기서 비교되는 대상은 다른 것들도 있지만, 오직 하나로 수렴이 된다. 그것은 바로 성적이다. 시험 성적.

 

대한민국 학생이라면 피해갈 수 없는 문제, 시험 성적. 이 시험 성적 하나로 대부분의 학생들의 희비가 갈린다. 잘 본 학생은 어깨에 힘을 줄 수 있으며, 못 본 학생은 마치 죄인이 된 듯한 모습으로 지내야 하는 상황. 여기에 부모들의 딴 집 애들은 어떤데 하는 소리까지 들으면.. 그야말로 정말, 자신이 자신인지 분간이 안 가게 된다.

 

이 소설에 나오는 철수는 그러나 건강하다. 이 건강한 모습이 병국이라는 공부의 세계와는 멀지만, 나름대로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그리고 그를 인정해주는 가족이 있는 친구 덕이기도 하지만, 엄마와도 소통이 된다는데 있다.

 

철수처럼 엄마에게 반박을 하는 아이는 건강한 아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 소설의 철수처럼 성적이 나빴을 때 부모에게 반박을 하기는커영 죽은 듯이 찍소리 못하고 쉬쉬하고 있는 형편이 아니던가. 그래서 철수는 나중에 글쓰기로 자신의 응어리를 풀어내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 응어리를 가슴 속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지는 않은지.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를 외쳤던 아이들이 몇 십년 전 얘기인데, 아직도 우리는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를 외치는 아이들을 만나야 하는지.

 

부모들은 자식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어쩌면 자신들의 체면을 더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어떤 광고의 학부모와 부모의 차이처럼 자식이 지니고 있는 그 많은 장점들이 단지 성적 하나로 묻혀버리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짤막한 분량에 짧은 문장들이 경쾌하게 소설을 진행하고 있으며, 또한 성적으로 엄마와 갈등하는 철수의 모습이 비극적인 분위기를 전혀 풍기지 않고, 희극적인 분위기를 보이고 있어서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현실이 그리 가볍지 않은데, 소설은 이런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그려나가고 있다. 사실, 시험 성적이라는 것은 이 소설처럼 가볍게 여길 수 있어야 하는데... 그래야 다른 더 많은 장점들을 살리고, 자신을 자신이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을텐데...

 

작가가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도 이것이리라. 아이를 아이 자체로 보자. 아이는 시험 점수의 종합이 아니다.

 

주인공이 중1이니, 중1들이 쉽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지만, 사실 이런 소설들은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에게 더 필요하지 않나 싶다. 우리가 '학부모'가 아닌 '부모'의 삶을 살려면, 이런 소설들을 통해 간접경험을 하는 것도 필요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앨리스, 깨어나지 않는 영혼
수잔 손택 지음, 배정희 옮김 / 이후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앨리스, 깨어나지 않는 영혼이라는 책 제목을 봤을 때는 사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생각했다. 그리고 손택이 나름대로 앨리스를 분석한 책이구나 했는데... 아니다. 이건 희곡이다. 연극으로 보면 더 좋을. 그러나 희곡도 읽을 수 있는 문학 작품 중 하나 아니겠는가? 그리고 앨리스는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희곡이라니. 윌리엄 제임스, 헨리 제임스는 들어봤어도 앨리스 제임스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하긴 에밀리 디킨슨도 당대 보다는 나중에 더 유명해진 시인이 아니던가. 마찬가지로 앨리스 제임스도 무언가를 이루고자 했으나 이루지 못한 사람이겠지란 생각을 했다.

 

영어 제목이 침대의 앨리스라고 할 수 있을텐데, 그만큼 이 작품의 배경은 침대에 누워있는 앨리스이다. 앨리스는 이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침대에 매여 있다는 사실, 자신의 삶이 영혼은 깨어있으나 몸은 매여 있는 상태라는 의미 아니겠는가. 즉, 깨어나지 않는 영혼이라는 제목보다는 영혼은 깨어났으나 몸이 움직일 수 없는, 현실적인 제약을 받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는 편이 더 좋겠다.

 

여성이라는 한계가 얼마나 심한 굴레로 나타나고 있는지를 이 희곡에서는 앨리스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으며, 그가 의식의 왜곡 상태에 빠진 것으로 표현되는데 이는 여성이 어떤 일을 할 때 정상의 범위에서 벗어난 사람 취급을 받았음을 의미하다고 해석하면 지나친 해석일까?

 

울프는 자기만의 방을 외쳤는데, 이 작품 속의 앨리스는 자기만의 방이 아니라, 밖으로 나아가고자 하나 침대에 매여 있는 상태, 결코 자신을 이해받지 못한 상태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앨리스의 구속 상태도 빈곤층이라고 할 수 있는 도둑에 비하면 사치라는 생각이 들게 작품의 후반부에 도둑이 나와 작품에 살을 보태고 있지만, 여성으로서 지닐 수밖에 없는 한계에 대해서 이 작품이 이야기하려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은 여성들이 많이 해방되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시인이나 소설가에게 붙던 '여류'라는 말이 사라졌고, 또한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발언권을 얻었고, 21세기는 여성주의의 세기라고 할 정도로, 우리 인류는 여성성으로 회귀해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지 않았는가.

 

그래서 이러한 여성에 대한 역사적인 흐름을 인식하고 이 희곡을 읽는다면 조금은 이 작품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럼에도 이런 희곡은 이해하기 힘들다. 도대체 작가가 무엇을 의미하려고 했는지, 우리는 작가의 말이나 해설을 통해 조금 맛볼 뿐이다. 아직은 문화적 소양이 부족해서 그런가 하더라도, 참 어렵다. 읽기엔 수월하지만, 이를 마음이 받아들이기엔 힘들다. 그런 작품이다.  이상한 나라로 간 앨리스는 현실에서 어떻게 지냈을까? 이상한 나라에서 겪은 일들이 이 작품 앨리스의 생각과 어느 지점에서 맞닿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지만, 어렵다. 제대로 이해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니...

 

그래도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 일은 남에게 의존할 수 없다는 사실,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는 사실, 앨리스는 침대를 박차고 나와 현실에 대면해야 한다는 사실. 그런 사실은 우리가 명심해야 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안해, 스이카 놀 청소년문학 4
하야시 미키 지음, 김은희 옮김 / 놀(다산북스)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왕따, 왕따돌림이라고 해야 하나. 종류가 여러가지라고 하는데, 왕따라는 말에는 그냥 자기들 집단에 끼워주지 않는다는 의미보다는, 집단괴롭힘이라는 의미가 더 강하게 들어있다고 봐야 한다. 단지 무시가 아니라, 언어로, 행동으로 괴롭히는 행위, 그것이 왕따이다.

 

몇 년 전에 왕따 문제가 사회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일본에서 이지메란 이름으로 먼저 시작된 그 모습이 우리나라에서 왕따라는 이름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아마도 사회가 불안정해졌을 때 더욱 기승을 부렸다고 할 수 있다.

 

집단 생활을 하다보면 적응을 못하는 사람도 있고, 또 자신과 다른 사람도 있지만, 이 왕따는 이러한 다름을 모자람으로, 모자람을 괴롭힘으로 바꾸는데서 문제가 생긴다. 그냥 그 사람은 저래하고 말면 될 일을, 저 것이 왜 저래하면서 사사건건 그 사람 일에 간섭을 하고, 또 괴롭히기 시작하는 일, 그것이 바로 왕따이다. 예전에 집단에 적응을 잘 못하는 사람의 차원하고는 비교가 되지 못하는 폭력, 그 자체가 바로 왕따이다.

 

그 때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라는 왕따를 겪다가 야쿠자의 부인으로 살다가 변호사로 다시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와 많이 읽혔고, 왕따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생각하게 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럼에도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그 책의 지은이는 우리나라에 와서 강연도 하고 그랬었다.

 

그렇다고 왕따 문제가 해결이 되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최근에 다시 학교 폭력 문제가 불거지고, 다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학생들이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우리나라 소설가인 김려령 씨가 "우아한 거짓말"이라는 소설을 써서 다시 한 먼 왕따 문제를 거론하였다. 왕따가 얼마나 상처를 주는지, 나는 아냐라고 하는 사람들, 그들 자신도 얼마나 왕따에 참여하고 있는지를 이 소설을 읽으면 알 수 있는데... 이 소설에서도 주인공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그 이후에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으로 소설이 전개되는데... 우리가 하는 말들이, 행동이 우아한 거짓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소설이었다. 그럼에도 왕따는 없어지지 않고, 계속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교 폭력 멈춰!"라는 책까지 나오고 학교에서도 많은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 왕따가 단지 학교뿐만이 아니라, 이제는 직장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니, 학창시절에 왕따에 대해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그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묻혀있는 상태에 불과하다고 해야 한다.

 

일본을 배경으로, 그것도 열네 살의 나이로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소설이라고 하지만, 지은이의 말을 보면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썼다고 보면 된다. 왕따 당하는 친구를 도와주다 거꾸로 자신이 왕따가 되고,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한 주인공이, 자신의 영혼이 다른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증오로 가득찬 자신을 치유하는 과정, 그리고 그 죽음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치유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면 그러한 극단적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는 얘기,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에 자신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라는 얘기, 그리고 자신의 그런 행동이 과연 남이 자신에게 했을 때 자신이 좋아할 만한 행동인지 생각해 보라는 그런 얘기들을 이 소설에서 얻을 수가 있다. 아마도 왕따 가해자나 피해자나 읽으면서 자신의 입장에서 이 소설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왕따, 해결은 간단하다. 너무도 간단해서 해결이 되지 않는다. 그 단순함, 간담함에 사람살이의 진리가 있는데, 그러한 능력, 마음가짐을 가지려고 교육을 하는데, 교육 현장에서 왕따가 만들어지는 역설이라니...

 

역지사지.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하지 마라. 이것이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볼 수 있는 마음가짐을 지닐 수만 있다면 왕따는 생겨나지 않을텐데... 이런 마음가짐을 지니려면, 어떠한 교육이 필요할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끝없는 질문을 하게 하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