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태양꽃 어른을 위한 동화 16
한강 동화, 김세현 그림 / 문학동네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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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동화다.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동화인데... 어른들이 읽고 많이 생각하길 바라는 동화다.


이름 모를 꽃이 힘들게, 땅을 뚫고 세상에 나왔다. 그런데 이게 뭔가? 찬란한 햇빛과 따뜻한 바람, 그리고 반겨주는 존재들이 있을 줄 알았는데,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어둡다. 처음 나온 세상이 이리 캄캄하다니. 암담하다. 이때 담쟁이가 희망을 준다. 너도 곧 햇빛을 볼 수 있게 될 거라고.


하지만 담쟁이는 저 멀리 홀로 먼저 나아간다. 담쟁이에 비하면 너무 늦게 자란다. 도무지 자랄 기미가 안 보인다. 그러다 어느날 꽃을 피웠다. 꿀벌이 날아든다. 그런데... 세상에 아름다워야 할 꽃잎이 투명하단다.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단다. 절망이다. 이게 뭐람.


무언가 억울하다. 왜 나만 그러냐고? 상처를 받는다. 꿀맛이 변한다. 독성이 생긴다. 마음 속에서 치밀어 올라오는 독기가 꽃에도 배었나 보다. 이제는 홀로라고 생각한 순간, 저 밑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겨우 흙을 간신히 뚫고 나온 싹이. 세상은 그렇지 않다고...


그래 나도 살아가야할 소중한 존재다. 저란 싹도 흙을 뚫고 나오려고 그렇게 노력하는데... 어느 순간 다시 꿀맛이 살아난다. 그러다 이름을 얻는다. 태양꽃. 비록 바람에 흩날려 사라져버리지만 이름이 있다. 존재 의미를 깨달았다. 공연히 이 세상에 왔다 가는 것이 아니다. 그 자체로 소중한 존재임을 깨달았기에 슬프지도 억울하지도 않다. 이렇게 동화는 끝난다.


세상에 나온 아이들에게 세상은 너무도 험하고 무서운 곳일 수 있다. 함께 가면 좋겠는데, 저마다 자기 속도로 가고 있다. 자기 속도가 무엇인지 깨달으면 좋으련만, 앞서 가는 아이들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 비교가 된다. 왜 나는 저렇게 하지 못할까?


그럼에도 나름대로 성과를 거둔다. 그 성과에 만족하면 좋겠지만 내 성과는 너무도 보잘 것 없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니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라면서 이 비교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소위 '엄친아(딸)'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존재들에 비하면 나는 무언가 부족하다. 내 성과는 성과도 아니다. 좌절한다.


이런, 하지만 세상에 나보다 더 힘든 상황에 있는 아이인데도 희망을 지니고 있다.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만족한다. 그에게는 비교는 없다. 오로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부끄럽다. 왜 비교를 하는가. 나는 난데. 나는 나대로 살면 되지 않나. 나는 내 속도대로 나아가면 된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다 가랑이 찢어진다'고 했다. 뱁새는 뱁새 나름의 삶이 있고, 황새는 황새 다름의 삶이 있듯이 이렇게  다른데, 왜 같아지려고 할까? 왜 같아지지 못해 슬퍼하고 분노해야 하는가. 세상은 다름으로서 더 풍요로워지지 않는가. 그렇다. 나는 나다. 나는 내 삶이 있다. 어느 순간 분노와 슬픔으로 뭉쳐있던 마음과 몸이 풀어지기 시작한다. 주변이 다시 보인다. 그러니 주변에 있던 존재들이 내게 다가온다. 이 다음부터는 나는 나대로 살아가기 시작한다. 


그런 이야기다. 비교, 우리가 너무도 흔하게 저지르는 잘못이다. 존재를 존재 자체로 인정하지 않고 비교 대상을 정하고 비교한다. 그래서 내 삶의 잣대가 내가 되지 못하고 남이 된다. 남의 잣대로 나를 평가하고, 그렇게 살아가려 한다. 그런 삶이 행복할까?


[내 이름은 태양꽃]은 그런 생각을 하게 한다. 내게는 내 삶이 있으니 내 삶을 찾아야 한다고. 근데 이미 세상을 많이 살아온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이 책이. 


아이들이 읽으면 좋은 동화지만, 어른들이 읽고 비교를 멈추어야 한다고 한다면 어른을 위한 동화다. 자, 당신 어렸을 때 생각해 봐. 남들과 비교하면 좋았어? 남들이 원하는 대로 살아왔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포기하고 남들이 하라는 일을 해서 행복해? 당신 아이들에게도 당신과 같은 그런 삶을 살게 할 거야? 이런 질문을 하면 어른을 위한 동화다.


자,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으면 자기 주변에 있는 아이들을 새로운 눈으로 보고 대할 수 있다. 아니 다르게 대해야 한다. 아이는 그 자체로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아이는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만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렇게 하기 위해 지켜보고 도와주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어른이 이 동화를 읽는다면 맞다, 이 동화는 어른을 위한 동화다. 아이들이 읽고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면 더 좋을 동화이기도 하지만... 권정생의 [강아지똥]과 일맥상통하는 동화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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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무늬영원 - 개정판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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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소설집을 읽다. 읽으면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이렇게 관계가 미끌어질 수도 있나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소설 인물들은 서로 어긋나 있다. 가족이든 아니든, 그들은 단단하게 엮여있지 않고 살짝 어긋나 있다. 그래서 서로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밀어내고 있다.


이 소설집에 나오는 인물들이 그런 관계를 맺고 있으니, 현대인들의 삶이 이렇게 서로 관계를 맺고 있되, 최소한의 관계이고, 언제든지 어긋나고 틀어질 수 있는 관계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읽다 보니 '파란 돌'이란 소설은 [바람이 분다, 가라]에 나오는 인물을 연상시킨다. 물론 이름은 다르고 설정도 약간 다를지 모르지만, 분명히 그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바람이 분다, 가라]에 나오는 상황에서 한 장면을 이 소설에서 더 구체적으로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왼손'이란 소설을 읽으면 분열된 자아를 지닌 현대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밖으로 보이는 나와 내면의 나, 일치하기 힘들겠지만, 우리는 그런 다양한 자신의 모습을 하나로 정리해서 표출하고 있다.


그것이 사회생활을 하게 하고, 또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게 하는 요소가 된다. 적당한 가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않기. 그러나 언제까지나 자신을 그렇게 억눌러 놓을 수는 없다. 자신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지내다가 어느 순간, 내면에 감춰져 있던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것이 관계를 파탄낼 수도 있고, 또 더 돈독한 관계를 맺게 할 수도 있다. 적어도 이 소설집에 실린 '왼손'이라는 소설은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고 지냈던 사람에게서, 더이상 그 감정을 제어할 수 없을 때 일어나는 일을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관계를 파탄내는 방향으로 나아가지만, 그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살더라도 이미 관계는 파탄나 있음을 부부관계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나마 사회에서 용인되는 모습으로 지낼 수 있었던 요인은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지 않다는 데 있었는데, 왼손을 통해 억눌려 있던 감정이 폭발하면서 사회적 관계마저도 파탄나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융합해야 하나. 나란 인간이 단일한 존재가 아니라 복잡한 존재인데, 그 복잡성을 조화로 만들어가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음을 이 소설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된다.


제목이 된 노랑무늬영원은 상처받은 사람이야기다. 상처를 받았지만, 어떻게 그 상처를 딛고 나아갈 수 있을까? 우리는 살면서 이런저런 상처를 받고 지내게 되는데, 그때마다 좌절할 수는 없지 않나.


물론 소설 속 주인공은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손을 쓸 수 없다? 이는 참 어려운 상황이다. 손을 쓰지 못하니, 가정 생활에서도 사회 생활에서도 문제가 많고, 특히 자신의 모든 것이라 생각했던 그림 그리는 일에는 더더욱 전념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거기서 끝나야 하나? 다른 길을 찾아야 하나? 아니다. 그 상처를 딛고 나아가야 한다. 제목이 노랑무늬영원인데, 무슨 뜻인가 했더니 도마뱀 이름이다. 도감에는 독을 품고 있는 도마뱀이라는데, 소설 속 또다른 인물인 아이는 독이 없는 도마뱀 이름을 이렇게 붙였다. 


발이 짤렸지만 어느 순간 다시 발이 돋아나는 도마뱀. 노랑무늬영원. 이 노랑무의에서 햇살을 생각하게 되고, 또다른 화가의 그림, 그리고 나뭇잎 사이로 비쳐나오는 빛들을 통해서 주인공은 다시 살아갈 것이다.


상처가 깊고 회복 불능이 되나 싶은 마음이 드는데, 읽으면서 젊은 시절 일화가 삽입이 되고, 그 다음에 도마뱀 이야기와 늙은 화가의 이야기가 겹쳐지면서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비록 나뭇잎에 가려져 있지만 햇살은 그 사이를 뚫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소설은 그래서 절망에서 희망을, 상처에서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게 된다.


나는 입술을 물고, 선잠에 새겨졌던 낯선 꿈을 되짚어본다. 내 두 손목에서 돋아난 투명하고 작은 새 손, 열 개의 투명한 손가락들을 나는 똑똑히 보았다. 내 팔뚝에 새겨진 선명한 노랑무늬가 신비해 팔을 들어 올렷다. 해를 등진 잎사귀들처럼, 내 팔뚝이 투명한 레몬빛이 되었다. (295쪽)


이렇게 상처를 딛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 상처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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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를 잃고 나는 쓰네
김태연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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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시집이 있을 뿐이다. [입 속의 검은 잎] 


그 밖에 산문집도 나왔고, 전집도 나왔지만, 기형도를 우리에게 다가오게 한 작품은 바로 이 시집이다. 시들이다. 그래서 기형도는 시인이다. 그의 시들이 주는 암울한 분위기, 읽으면서 자꾸만 안개 속에서 길을 잃는 듯한 느낌을 받는 그런 시들. 하지만, 그 시들을 통해서 기형도를 잊지 않게 된다.



이 책은 기형도에 관한 소설이다.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고 했다. 이 작품에 나오는 일들은 기억에 의존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 소설이라기보다는 기형도에 관해 친구가 본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 시절과 그 이후의 이야기에 국한되어 전개된다. 당연하다. 연세문학회에서 만난 기형도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물론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기형도의 과거가 조금씩 나오기는 하지만, 작가는 자신이 만난 기형도 이야기를 한다.


문학회에서 만나 기형도가 죽기 전까지 만나왔고, 함께 겪었던 일들에 대해서. 그래서 기형도를 실감나게 만날 수 있다. 소설을 읽으면 기형도, 참 멋진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좋은 시인'이 되고자 했다고 한다. 좋은 시인. 유명한도 아니고 훌륭한도 아닌 좋은, 그렇다. 사람 중에 좋은 사람이 얼마나 좋은가. 그는 말 그대로 좋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남들을 배려하는 마음씨를 지닌. 그리고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 부르는. 공부도 너무 잘하는. 그야말로 팔방미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


그럼에도 자신의 마음에 지니고 있던 깊은 상처. 그 검은 어둠을 몰아내지 못하고, 몸에서는 병을 간직하고 지냈던 사람. 불의의 죽음으로 전설이 된 시인. 그 시인과의 만남과 이별을 이 소설을 통해서 만날 수 있다.


전설이 된 기형도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사회를 살아갔던 살아 있는 인물이었던 기형도를 만나게 해주고 있어서 좋다. 무엇보다도 기형도의 시에 대한 열정도 열정이지만 사람을 대하는 태도, 그것이 결국 기형도를 좋은 시인이 되고자 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이 소설을 읽으며 소설이라 그렇겠지만, 그래도 (양력과 음력을 모두 떠나서) 기형도가 좋아했던 시인인 윤동주가 세상을 떠난 날이 2월 16일인데, 기형도가 태어난 날이 2월 16일이라니... 윤동주의 죽음도 20대, 기형도도 20대에 세상을 떴으니, 이런 우연의 일치가... 이 소설이 사실에 기반하고 있으면서도 소설적 장치를 충분히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일화들이 있기 때문이다.


작중 인물인 허승구를 통해서 만나게 되는 기형도. 그의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또 기형도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을 읽으면 좋겠다. 기형도라는 사람, 시인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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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무스와 방랑자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38
아스트리드 린드그랜 지음, 호르스트 렘케 그림, 문성원 옮김 / 시공주니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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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리드 린드그렌. 말괄량이 삐삐로 알려진 사람. 스웨덴 국민작가로 불린다고 하고, 또 우리나라 백희나 작가가 린드그렌상을 받아 알려지기도 했던 작가.


라스무스라는 고아 소년이 고아원을 탈출해 방랑자 오스카를 만나 여러 일들을 겪은 뒤에 오스카의 양자로 들어가게 된다는 내용.


어린 시절 갖게 되는 모험에 대한 호기심을 채워주는 소설이기도 한데, 무엇보다도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있어서 좋다.


말괄량이 삐삐도 사실 어른들 관점에서 보면 일탈행위를 하는 아이일지 모르지만, 아이들이 지니는 호기심, 모험심을 채워주는 역할을 하지 않는가.


라스무스도 마찬가지다. 고아원에서 입양되기를 바라는데, 자신처럼 머리 숱이 별로 없는 남자아이는 입양될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겨우 아홉 살 난 아이.


개구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아이. 라스무스가 고아원을 나가 오스카를 만나 함께 하는 여정에서 오스카에게 애정을 느끼고, 결국 오스카의 집에서 살게 된다는 설정은,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아이들에게는 너무도 행복한 결말이리라.


이 과정에서 강도들을 만나고,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읽으면서 얼마나 손에 땀을 쥐겠는가. 그렇게 아이들은 라스무스를 통해서 집을 나가는 간접 경험을 하고, 또 라스무스를 통해서 자신들이 현실에서는 할 수 없는 모험을 하게 된다.


문학이 아이들에게 주는 역할은 바로 이러한 대리 만족이다. 현실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대신 해주는 인물을 통해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의 폭을 넓혀가는 일.


어려운 상황에 처하더라도, 아홉 살짜리가 할 수 있는 한계가 있지만,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심성을 잃지 않는 라스무스와 돈 없이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방랑 생활을 하는 오스카지만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않는 모습을 통해서 세상을 살아갈 때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자세를 자연스레 익히게 된다.


뭐, 책을 읽으면서 굳이 윤리니 도덕이니 철학이니 궁리할 필요 없다. 재미 있게 읽으면 된다. 재이 있게 읽으면서 자연스레 마음 한 구석에 인물을 닮아가려는 태도가 깃들게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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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 2018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강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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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김유정 하면 1930년대를 대표하는 우리나라 소설가고, 춘천에 가면 김유정문학관도 있으니, 김유정 문학상이 당연히 있을텐데, 이번 작품집으로 김유정 문학상을 처음 만났다. 한때는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꼬박꼬박 사서 읽은 적도 있었으니, 이상과 김유정이 구인회 회원이었고, 이상이 김유정이라는 소설도 썼으니,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겠다.


총 7편의 소설이 실렸다. 수상작 1편과 후보작 6편. 수상작은 한강이 쓴 '작별'이다. 마치 카프카가 쓴 '변신'을 연상시키는 작품.


첫 시작에서 어, 변신이네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난처한 일이 그녀에게 생겼다. 벤치에 앉아 깜박 잠들었다가 깨어났는데, 그녀의 몸이 눈사람이 되어 있었다.' (13쪽) 자고 일어났더니 그레고리 잠자가 벌레가 되어 있었다와 비슷하다.


그런데 장소와 변신한 대상이 다르다. 우선 카프카 작품에서는 집 안, 자기 방에서 자다 일어났고, 시간은 아침이다. 그리고 벌레로 변했다. 한강 작품에서는집 밖, 밤이고, 눈사람이 되었다. 


집 안과 집 밖은 단지 공간에 머무르지 않는다. 대상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집 안에서 자신들과 다른 존재가 되었다는 설정은 이 대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으로 몰아간다. 그래서 결국 방 안에 가두거나 또는 죽어서 내보내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즉, 벌레가 된 존재가 작별하는 방식은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서다.


한강 소설은 이와 반대다. 집 밖에서 변신했다. 이는 작별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지로 집 안으로 가야 한다. 그것도 눈사람으로 변햇으니, 집 안에 있기는 힘들다. 눈사람은 소멸하는 존재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집 밖에 있어야 하는 존재. 그러하기에 굳이 내몰 필요가 없다. 작별은 스스로,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 하게 된다.


비슷한 방식의 변신이지만 작별하는 방식에서는, 또 변신한 존재를 대하는 태도에서는 상반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 소설도 그런 식으로 전개가 된다. 


갑자기 눈사람이 되었다는 설정. 눈사람은 녹을 수밖에 없다. 즉, 소멸할 수밖에 없는,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는 존재다. 이 변신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있는 사람과 작별하는가를 살필 수가 있다.


카프카 소설이 위태위태하다면, 이 소설은 비슷한 변신임에도 불구하고 따스하다. 우리는 눈사람에서 차가움을 느끼기보다는 따스하고 포근함을 느끼지 않는가. 서서히 녹아가는 존재. 이렇게 자신의 죽음을 알면 준비를 하고 작별을 하게 된다.


어느 순간 예기치 않게 작별하는 모습이 아니라 내 의지에 의해서 그동안 사랑했던 사람들과 작별하는 모습, 그런 모습을 이 소설에서 만나게 된다. 하여 단순한 변신이야기가 아니라 죽음을 알게 된 사람이 주변 사람들과 아름답게 작별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소설이라고 하면 된다.


만나면 헤어지게 마련, 생명체는 어느 순간이 되면 생명이 꺼질텐데, 그 죽음의 순간, 함께 했던 존재들과 어떻게 작별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그래서 죽음을, 변신을 모티브로 하고 있지만 읽으면서 마음은 따뜻해진다. 


역시 한강은 환상적인 상황을 통해 우리에게 무언가를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 속에서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조금씩 끼워넣어, 등장인물의 상황을 더욱 잘 드러나게 하고 있는데, 가령 이런 부분, 


'... 그녀는 뉴스와 관련된 꿈을 자주 꾸었다. 노동절 시위 중에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숨진 노동자의 시신을 경찰이 유족 동의 없이 부검하겠다고 발표한 날 밤에는 

... 특히 지난 삼 년 동안은 죽은 아이들의 꿈을 되풀이해 꾸었다. 겹겹이 흰 천으로 감싼 수백 명의 아기들의 시신을 차례로 종이 상자에 담으며 그녀는 벌벌 떨었다...'(57쪽)


이 서술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제대로 작별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은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런 작별이 얼마나 비극적인지를 이 사람들과 관련이 없는 인물이 꾸는 꿈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눈사람으로의 변신은 갑작스런 작별이 아니라 작별할 시간을 주는 작가의 설정이라고 보아도 좋겠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적어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작별할 시간은 있으니... 그래서 더 애절하고 애뜻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작별은 이러해야 한다고. 이런 장면들이 마음에 찡하니 남아 있다.


수상작인 한강 소설 말고도 강화길의 '손', 김혜진의 '동네 사람', 이승우의 '소돔의 하룻밤', 정이현의 '언니'란 소설에서는 견고한 벽을 통해 밖으로 밀려나는 사람들 이야기라는 공통점을 느낀다.


이방인이라는 말을 해야 하나, 방외인이라는 말을 해야 하나, 집단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 속에 끼지 못하고 있는 존재들의 모습. 다른 존재를 배척하는 모습.


강화길 소설에서는 다문화 가정을 바라보는 시선, 이 소설에서 말하는 손은 흔히 귀신 또는 악귀라고 할 수 있다. 손 없는 날이라고, 이 날이 행사하기 좋은 날이라고 하는 의미에서 '손'인데... 마을 공동체에서 외부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다시 다문화가정을 바라보는 시선이 중첩되어 누가 '손'일지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김혜진 소설에서는 성소수자가 동네에서 배척당하는 모습으로 볼 수도 있고, 마을 공동체의 벽에 가로막힌 외부에서 이사온 사람들 이야기라고 해도 좋다. 어떻게 읽든 자기들끼리 꽁꽁 엮여 있는 공동체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사람 이야기다. 그런 삶이 얼마나 힘들지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소설이다.


이승우의 소설 역시 성경에 나오는 롯의 이야기에서 빌려와 다양한 시각에서 서술하고 있는데, 결국 롯이란 인물이 이방인일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정이현의 소설에서는 학벌로 지칭되는 벽과 대학원생을 부려먹는 학계의 벽 앞에서 좌절하는 인회라는 인물을 서술하고 있다.


이렇게 네 소설은 서로 다르지만 견고한 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밀려나는 사람들 이야기라고 할 수 있으니,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는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소설들이다. 수상작인 한강 소설이 작별을 하면서도 다른 존재들을 끌어안고 있다면, 이 네 소설에서는 다른 존재들을 밀어내고 있는 모습이 나타나니, 우린 다른 존재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까를 질문하는 소설들이라고 하겠다.


이렇게 처음 만난 김유정 문학상 작품집이 좋아서 다른 수상작들도 찾아보려는 마음을 지니게 하고 있으니... 이 책은 김유정 문학상 수상작품집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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