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를 잃고 나는 쓰네
김태연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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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시집이 있을 뿐이다. [입 속의 검은 잎] 


그 밖에 산문집도 나왔고, 전집도 나왔지만, 기형도를 우리에게 다가오게 한 작품은 바로 이 시집이다. 시들이다. 그래서 기형도는 시인이다. 그의 시들이 주는 암울한 분위기, 읽으면서 자꾸만 안개 속에서 길을 잃는 듯한 느낌을 받는 그런 시들. 하지만, 그 시들을 통해서 기형도를 잊지 않게 된다.



이 책은 기형도에 관한 소설이다.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고 했다. 이 작품에 나오는 일들은 기억에 의존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 소설이라기보다는 기형도에 관해 친구가 본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 시절과 그 이후의 이야기에 국한되어 전개된다. 당연하다. 연세문학회에서 만난 기형도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물론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기형도의 과거가 조금씩 나오기는 하지만, 작가는 자신이 만난 기형도 이야기를 한다.


문학회에서 만나 기형도가 죽기 전까지 만나왔고, 함께 겪었던 일들에 대해서. 그래서 기형도를 실감나게 만날 수 있다. 소설을 읽으면 기형도, 참 멋진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좋은 시인'이 되고자 했다고 한다. 좋은 시인. 유명한도 아니고 훌륭한도 아닌 좋은, 그렇다. 사람 중에 좋은 사람이 얼마나 좋은가. 그는 말 그대로 좋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남들을 배려하는 마음씨를 지닌. 그리고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 부르는. 공부도 너무 잘하는. 그야말로 팔방미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


그럼에도 자신의 마음에 지니고 있던 깊은 상처. 그 검은 어둠을 몰아내지 못하고, 몸에서는 병을 간직하고 지냈던 사람. 불의의 죽음으로 전설이 된 시인. 그 시인과의 만남과 이별을 이 소설을 통해서 만날 수 있다.


전설이 된 기형도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사회를 살아갔던 살아 있는 인물이었던 기형도를 만나게 해주고 있어서 좋다. 무엇보다도 기형도의 시에 대한 열정도 열정이지만 사람을 대하는 태도, 그것이 결국 기형도를 좋은 시인이 되고자 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이 소설을 읽으며 소설이라 그렇겠지만, 그래도 (양력과 음력을 모두 떠나서) 기형도가 좋아했던 시인인 윤동주가 세상을 떠난 날이 2월 16일인데, 기형도가 태어난 날이 2월 16일이라니... 윤동주의 죽음도 20대, 기형도도 20대에 세상을 떴으니, 이런 우연의 일치가... 이 소설이 사실에 기반하고 있으면서도 소설적 장치를 충분히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일화들이 있기 때문이다.


작중 인물인 허승구를 통해서 만나게 되는 기형도. 그의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또 기형도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을 읽으면 좋겠다. 기형도라는 사람, 시인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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