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 - 2018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강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김유정 하면 1930년대를 대표하는 우리나라 소설가고, 춘천에 가면 김유정문학관도 있으니, 김유정 문학상이 당연히 있을텐데, 이번 작품집으로 김유정 문학상을 처음 만났다. 한때는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꼬박꼬박 사서 읽은 적도 있었으니, 이상과 김유정이 구인회 회원이었고, 이상이 김유정이라는 소설도 썼으니,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겠다.


총 7편의 소설이 실렸다. 수상작 1편과 후보작 6편. 수상작은 한강이 쓴 '작별'이다. 마치 카프카가 쓴 '변신'을 연상시키는 작품.


첫 시작에서 어, 변신이네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난처한 일이 그녀에게 생겼다. 벤치에 앉아 깜박 잠들었다가 깨어났는데, 그녀의 몸이 눈사람이 되어 있었다.' (13쪽) 자고 일어났더니 그레고리 잠자가 벌레가 되어 있었다와 비슷하다.


그런데 장소와 변신한 대상이 다르다. 우선 카프카 작품에서는 집 안, 자기 방에서 자다 일어났고, 시간은 아침이다. 그리고 벌레로 변했다. 한강 작품에서는집 밖, 밤이고, 눈사람이 되었다. 


집 안과 집 밖은 단지 공간에 머무르지 않는다. 대상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집 안에서 자신들과 다른 존재가 되었다는 설정은 이 대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으로 몰아간다. 그래서 결국 방 안에 가두거나 또는 죽어서 내보내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즉, 벌레가 된 존재가 작별하는 방식은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서다.


한강 소설은 이와 반대다. 집 밖에서 변신했다. 이는 작별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지로 집 안으로 가야 한다. 그것도 눈사람으로 변햇으니, 집 안에 있기는 힘들다. 눈사람은 소멸하는 존재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집 밖에 있어야 하는 존재. 그러하기에 굳이 내몰 필요가 없다. 작별은 스스로,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 하게 된다.


비슷한 방식의 변신이지만 작별하는 방식에서는, 또 변신한 존재를 대하는 태도에서는 상반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 소설도 그런 식으로 전개가 된다. 


갑자기 눈사람이 되었다는 설정. 눈사람은 녹을 수밖에 없다. 즉, 소멸할 수밖에 없는,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는 존재다. 이 변신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있는 사람과 작별하는가를 살필 수가 있다.


카프카 소설이 위태위태하다면, 이 소설은 비슷한 변신임에도 불구하고 따스하다. 우리는 눈사람에서 차가움을 느끼기보다는 따스하고 포근함을 느끼지 않는가. 서서히 녹아가는 존재. 이렇게 자신의 죽음을 알면 준비를 하고 작별을 하게 된다.


어느 순간 예기치 않게 작별하는 모습이 아니라 내 의지에 의해서 그동안 사랑했던 사람들과 작별하는 모습, 그런 모습을 이 소설에서 만나게 된다. 하여 단순한 변신이야기가 아니라 죽음을 알게 된 사람이 주변 사람들과 아름답게 작별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소설이라고 하면 된다.


만나면 헤어지게 마련, 생명체는 어느 순간이 되면 생명이 꺼질텐데, 그 죽음의 순간, 함께 했던 존재들과 어떻게 작별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그래서 죽음을, 변신을 모티브로 하고 있지만 읽으면서 마음은 따뜻해진다. 


역시 한강은 환상적인 상황을 통해 우리에게 무언가를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 속에서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조금씩 끼워넣어, 등장인물의 상황을 더욱 잘 드러나게 하고 있는데, 가령 이런 부분, 


'... 그녀는 뉴스와 관련된 꿈을 자주 꾸었다. 노동절 시위 중에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숨진 노동자의 시신을 경찰이 유족 동의 없이 부검하겠다고 발표한 날 밤에는 

... 특히 지난 삼 년 동안은 죽은 아이들의 꿈을 되풀이해 꾸었다. 겹겹이 흰 천으로 감싼 수백 명의 아기들의 시신을 차례로 종이 상자에 담으며 그녀는 벌벌 떨었다...'(57쪽)


이 서술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제대로 작별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은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런 작별이 얼마나 비극적인지를 이 사람들과 관련이 없는 인물이 꾸는 꿈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눈사람으로의 변신은 갑작스런 작별이 아니라 작별할 시간을 주는 작가의 설정이라고 보아도 좋겠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적어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작별할 시간은 있으니... 그래서 더 애절하고 애뜻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작별은 이러해야 한다고. 이런 장면들이 마음에 찡하니 남아 있다.


수상작인 한강 소설 말고도 강화길의 '손', 김혜진의 '동네 사람', 이승우의 '소돔의 하룻밤', 정이현의 '언니'란 소설에서는 견고한 벽을 통해 밖으로 밀려나는 사람들 이야기라는 공통점을 느낀다.


이방인이라는 말을 해야 하나, 방외인이라는 말을 해야 하나, 집단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 속에 끼지 못하고 있는 존재들의 모습. 다른 존재를 배척하는 모습.


강화길 소설에서는 다문화 가정을 바라보는 시선, 이 소설에서 말하는 손은 흔히 귀신 또는 악귀라고 할 수 있다. 손 없는 날이라고, 이 날이 행사하기 좋은 날이라고 하는 의미에서 '손'인데... 마을 공동체에서 외부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다시 다문화가정을 바라보는 시선이 중첩되어 누가 '손'일지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김혜진 소설에서는 성소수자가 동네에서 배척당하는 모습으로 볼 수도 있고, 마을 공동체의 벽에 가로막힌 외부에서 이사온 사람들 이야기라고 해도 좋다. 어떻게 읽든 자기들끼리 꽁꽁 엮여 있는 공동체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사람 이야기다. 그런 삶이 얼마나 힘들지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소설이다.


이승우의 소설 역시 성경에 나오는 롯의 이야기에서 빌려와 다양한 시각에서 서술하고 있는데, 결국 롯이란 인물이 이방인일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정이현의 소설에서는 학벌로 지칭되는 벽과 대학원생을 부려먹는 학계의 벽 앞에서 좌절하는 인회라는 인물을 서술하고 있다.


이렇게 네 소설은 서로 다르지만 견고한 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밀려나는 사람들 이야기라고 할 수 있으니,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는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소설들이다. 수상작인 한강 소설이 작별을 하면서도 다른 존재들을 끌어안고 있다면, 이 네 소설에서는 다른 존재들을 밀어내고 있는 모습이 나타나니, 우린 다른 존재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까를 질문하는 소설들이라고 하겠다.


이렇게 처음 만난 김유정 문학상 작품집이 좋아서 다른 수상작들도 찾아보려는 마음을 지니게 하고 있으니... 이 책은 김유정 문학상 수상작품집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봐도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