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태양꽃 어른을 위한 동화 16
한강 동화, 김세현 그림 / 문학동네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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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동화다.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동화인데... 어른들이 읽고 많이 생각하길 바라는 동화다.


이름 모를 꽃이 힘들게, 땅을 뚫고 세상에 나왔다. 그런데 이게 뭔가? 찬란한 햇빛과 따뜻한 바람, 그리고 반겨주는 존재들이 있을 줄 알았는데,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어둡다. 처음 나온 세상이 이리 캄캄하다니. 암담하다. 이때 담쟁이가 희망을 준다. 너도 곧 햇빛을 볼 수 있게 될 거라고.


하지만 담쟁이는 저 멀리 홀로 먼저 나아간다. 담쟁이에 비하면 너무 늦게 자란다. 도무지 자랄 기미가 안 보인다. 그러다 어느날 꽃을 피웠다. 꿀벌이 날아든다. 그런데... 세상에 아름다워야 할 꽃잎이 투명하단다.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단다. 절망이다. 이게 뭐람.


무언가 억울하다. 왜 나만 그러냐고? 상처를 받는다. 꿀맛이 변한다. 독성이 생긴다. 마음 속에서 치밀어 올라오는 독기가 꽃에도 배었나 보다. 이제는 홀로라고 생각한 순간, 저 밑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겨우 흙을 간신히 뚫고 나온 싹이. 세상은 그렇지 않다고...


그래 나도 살아가야할 소중한 존재다. 저란 싹도 흙을 뚫고 나오려고 그렇게 노력하는데... 어느 순간 다시 꿀맛이 살아난다. 그러다 이름을 얻는다. 태양꽃. 비록 바람에 흩날려 사라져버리지만 이름이 있다. 존재 의미를 깨달았다. 공연히 이 세상에 왔다 가는 것이 아니다. 그 자체로 소중한 존재임을 깨달았기에 슬프지도 억울하지도 않다. 이렇게 동화는 끝난다.


세상에 나온 아이들에게 세상은 너무도 험하고 무서운 곳일 수 있다. 함께 가면 좋겠는데, 저마다 자기 속도로 가고 있다. 자기 속도가 무엇인지 깨달으면 좋으련만, 앞서 가는 아이들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 비교가 된다. 왜 나는 저렇게 하지 못할까?


그럼에도 나름대로 성과를 거둔다. 그 성과에 만족하면 좋겠지만 내 성과는 너무도 보잘 것 없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니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라면서 이 비교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소위 '엄친아(딸)'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존재들에 비하면 나는 무언가 부족하다. 내 성과는 성과도 아니다. 좌절한다.


이런, 하지만 세상에 나보다 더 힘든 상황에 있는 아이인데도 희망을 지니고 있다.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만족한다. 그에게는 비교는 없다. 오로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부끄럽다. 왜 비교를 하는가. 나는 난데. 나는 나대로 살면 되지 않나. 나는 내 속도대로 나아가면 된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다 가랑이 찢어진다'고 했다. 뱁새는 뱁새 나름의 삶이 있고, 황새는 황새 다름의 삶이 있듯이 이렇게  다른데, 왜 같아지려고 할까? 왜 같아지지 못해 슬퍼하고 분노해야 하는가. 세상은 다름으로서 더 풍요로워지지 않는가. 그렇다. 나는 나다. 나는 내 삶이 있다. 어느 순간 분노와 슬픔으로 뭉쳐있던 마음과 몸이 풀어지기 시작한다. 주변이 다시 보인다. 그러니 주변에 있던 존재들이 내게 다가온다. 이 다음부터는 나는 나대로 살아가기 시작한다. 


그런 이야기다. 비교, 우리가 너무도 흔하게 저지르는 잘못이다. 존재를 존재 자체로 인정하지 않고 비교 대상을 정하고 비교한다. 그래서 내 삶의 잣대가 내가 되지 못하고 남이 된다. 남의 잣대로 나를 평가하고, 그렇게 살아가려 한다. 그런 삶이 행복할까?


[내 이름은 태양꽃]은 그런 생각을 하게 한다. 내게는 내 삶이 있으니 내 삶을 찾아야 한다고. 근데 이미 세상을 많이 살아온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이 책이. 


아이들이 읽으면 좋은 동화지만, 어른들이 읽고 비교를 멈추어야 한다고 한다면 어른을 위한 동화다. 자, 당신 어렸을 때 생각해 봐. 남들과 비교하면 좋았어? 남들이 원하는 대로 살아왔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포기하고 남들이 하라는 일을 해서 행복해? 당신 아이들에게도 당신과 같은 그런 삶을 살게 할 거야? 이런 질문을 하면 어른을 위한 동화다.


자,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으면 자기 주변에 있는 아이들을 새로운 눈으로 보고 대할 수 있다. 아니 다르게 대해야 한다. 아이는 그 자체로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아이는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만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렇게 하기 위해 지켜보고 도와주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어른이 이 동화를 읽는다면 맞다, 이 동화는 어른을 위한 동화다. 아이들이 읽고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면 더 좋을 동화이기도 하지만... 권정생의 [강아지똥]과 일맥상통하는 동화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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