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지루했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그들이 헌법 (Constitution)을 만드는 4개월 과정을 다룬 미국 초딩 5학년 정도가 읽는 80여페이지 짜리 적지 않은 글밥의 책이다. 한국 초딩인 나에겐 페이지와 글밥이 큰 의미를 가진다. 영어니깐.
그들이 헌법을 만든 과정의 바닥에 깔려 있는 가치판단의 방법은 타협 'compromise'이다.
헌법 제정 당시 미국은 14개 주였고, 각 주에는 한개의 투표권이 주어졌다. 이 것을 주의 크기 (인구)로 바꾸는 논의를 할 때, 주의 대표 (delegate)들에게는 큰 논쟁이 있었다. 인구가 적은 주에서의 불만이 컸음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그래서 합리적인 그들이 타협안으로 만들어낸 것이 미국의 상/하원 제도이다. 인구 기반으로 2년에 한번씩 뽑히는 하원 (House of Representatives)과 각주마다 두명씩 두는 상원 (Senate)이다. 그들의 합리적인 타협은 노예에게는 비인간적으로 적용되었다. 노예제도에 다른 입장을 가진 남부와 북부의 논쟁 끝에 노예는 3/5을 인정하기로 했단다. 흑인 노예 5명이 백인 3명과 같다는 식이다. 비참한 타협이다. 타협. 어쨌든 그들은 헌법을 만들어 2백년동안 그 시스템을 잘 지켜왔고, 세계 제일의 강국이 되었다. 헌법을 만든 각 인물들을 자세히 다루는 페이지들을 보면서, 그저 33인으로 희미하게 기억되는 한국의 그분들이 대접받는 방식과 너무 달라 부럽기도 했지만, 그들의 노예를 대하는 방식에서는 책에 정이 뚝 떨어지기도 했다. 나는 옆길로 새서 '타협'에 대해서 잠시 생각했다. 합의와 함께.
국어는 네버로 영어는 Oxford로 뜻을 찾아봤다.
타협
어떤 일을 서로 양보하여 협의함.
합의
서로 의견이 일치함. 또는 그 의견.
compromise (타협)
an agreement made between two people or groups in which each side gives up some of the things they want so that both sides are happy at the end
(초딩의 번역: 두 사람이나 그룹이 각자가 원하는 것을 포기하고 양쪽이 모두 만족하게 만들어진 동의)
arrangement (합의)
an agreement that you make with somebody that you can both accept
(역시 초딩의 번역: 당신이 누군가와 함께 수긍할 수 있는 동의)
얼핏 보면 합의가 타협을 포함하는 것 같다. 타협에는 고통이 수반될 수 있을 것 같고 잠재적인 문제를 안고 갈 수도 있을 것 같다. 모든 것이 좋을 때 '타협'이라는 말 자체가 사전에 있기는 힘들 것이다. 어떠한 것도 원하지 않을 때도 마찬가지로.
타인과 함께 '어떤 것'을 함께 원할 때, 그 타인과 나의 '다름'으로 생기는 문제들을 '양보' 또는 '포기'로 함께 - 어쨌든 그 때는 - 행복하게 합의점을 도출하며 풀어내는 것이다. 그 방법이 논쟁 끝에 그 '어떤 것'을 원하지 못하는 것 보다는 '합리적'이라고 - 최소한 미국인들은 -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많은 경우 '양보'는 문제의 해결이라기 보다는 문제 해결의 '지연'에 가까운 것 같다.
남부와 북부의 노예에 대한 입장 차이로 야기된 문제를 노예 5명 당 백인 3명으로 세어 푼 것은 헌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생긴 큰 논쟁 하나를 없앴지만, '노예 제도' 자체는 해결하지 못했다. 물론 후에 남북전쟁이 생겨 노예제도도 폐지되고 헌법도 개정되어 노예에게 투표권이 주어졌지만 그 남북전쟁은 '헌법 제정' 당시의 '양보'로 해결된 것은 아닌 것이다. 그 문제가 불거졌을 때 그저 잠재웠을 뿐이다.
미국 초딩 책을
타협에 익숙해하며 살았던,
그래서 문제를 잠재우기에 능하지만 여전히 안고 사는,
누군가 그 것을 지적해도 지나치게 무뎌서 잘 인지하지 못하는
한국 초딩은 이렇게 읽고 마지막 장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