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1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07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학수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도스토옙스키는 분명 살인을 해본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죄와벌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 배여 있는 생각이었다. 그렇지 않고는 어떻게 기괴한 살인자의 심리를 그리고 그 심리를 표출하는 대화속 말들을 이리도 섬뜩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비범인'에 속하는 사람은 어떤 단계를 넘어 인류를 위한 행동을 하기 위해 사소한 범죄 (범인에게는 살인과 같이 무거운)를 저질로도 된다는 논리로 주인공 - 살인자가 주인공이다! - 라스콜니코프 (로쟈)는 전당포의 노파와 그 동생을 도끼로 무참히 살해한다. 완벽하게. 자신이 자수하지 않았다면 끝내 드러나지 않게. 책은 온통 살인자 주인공과 주위 사람 몇명의 엄청난 대화와 그 대화 속 심리 묘사로 서사된다. '이렇게 말이 많은 책은 처음 읽어 본다'라고 지나가는 행인에게라도 토로하고 싶은 심정으로 1권을 읽었다. 책이 마치 거품을 물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본명에 애칭에 별명으로 친구들 이름만 외워도 영재교육일 것만 같은 러시아의 수억만리 긴 이름을 위해 친절하지만 버거운 '등장인물' 페이지를 정신없이 왔다갔다보면 주인공은 노파를 죽였고 예심판사 포르피리와 본격적인 대 심리전을 펼칠 준비를 하고 있다.


문예출판사가 책 가운데가 참 잘 벌어지고, 조금 싼티나게 번뜩거리는 표지의 느낌과 촌스러운 디자인을 하고 있지만, 역자 김학수 교수님 때문에 선택했다. 1권을 읽고나니 역시 문예답게 책 마지막 장이 떡하니 벌어져버렸다. 하지만 김학수 교수님의 번역과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까지 다룬 해설에 찬사를 보내며 잘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소장본으로 한셋트 더 구매하고 싶을 정도다. 문예를 욕하지만 책장을 보면 문예가 많다.



책속의 밑줄로 사색의 부스러기들을 더해본다.


"사소한 것, 사소한 것일수록 중요하다! 이런 사소한 일이 왕왕 전체를 망쳐버리거든..." p14


"그때도 이렇게 햇빛이 비치겠지!" p17

이렇게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회상을 하는 말들이 자주 나온다. 그래서 그 시점에 빨리 도달해서 무슨 일이 생겼을까 궁금증을 유발하게도 한다. 하지만 그 시점은 책을 다 읽고도 모호하게 어느 때인지 또 더 먼 미래인지 알수가 없다.


"고작 맥주 한 잔, 빵 한 조각으로... 이렇게 금방 머리가 명석해지고 의식이 맑아지고 의지도 확고해지니 말야! 쳇, 세상만사가 이렇게도 어리석다니!" p21

이런 것을 보면 데이비드 실즈의 '우리는 언제가 죽는다'처럼 러시아의 대문호도 인간은 기본적인 욕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역시 동물이다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그 욕구의 표출이 동물의 그것보다 좀 더 신경질적이고 더 억울하게 - 그 표출을 좋든 싫든 받아야하는 상대에게 - 표현될 뿐인 것 같다.


"어떠한 인간이든 적어도 발길 돌릴 데쯤은 있어야 하잖겠어요?" p28

책의 초반에 지나가는 행인일듯 나오는 하지만 책의 마지막까지 영향을 주는 주정뱅이 마르멜로도프의 말이다. 이 문장이 머리를 때리는 순간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까지 그 띵함이 가시지 않았다.


"그저 어깨와 몸이 들먹일 뿐이었쬬... 그런데 나는 여전히 그대로 누워 있었습니다" p34

직장에서 쫓겨나고 술로만 세월을 보내는 마르멜로도프의 딸 소냐가 생계를 위해서 창녀가 된 첫날이었다. 소냐는 마르멜로도프의 딸이었다. 재혼한 카체리나 이바노브나의 딸이 아니었다. 소냐가 창녀가된 첫날 벌어온 30루블을 카체리나 이바노브나에게 주고 벽쪽으로 쓰러져 누워서 우는 것을 서사한 대목이다. 카체리나 이바노브나는 밤새 소나의 발밑에 무릎을 꿇고 그 발에 입을 맞추었다. 하지만 주정뱅이는 서사된 것처럼 여전히 그대로 누워 잔 것이다. 희망이라고는 '유지'의 미약한 힘이라고는 다 타버리고 물까지 끼얹은 아궁이의 재에 불빛이라고는 도저히 찾아 볼 수 없는 것처럼 '존재하지 않는 가정'이다.


"인간이란 비열해서 무엇에나 곧 익숙해진다니가!" p48

그렇다, 한줌의 빛도 남지 않는 그 가정에서도 사람들은 살아간다. 죽음을 향해서가 아니고 죽지 않고 살아간다.


"그 착실한 두네치카가 것 같다와 결혼하다니..." p68

'것 같다'와 결혼하다니. '것 같다'와. 주인공 라스콜니코프의 여동생 두냐가 그녀가 일했던 집의 안주인 소개로 루쥔과 결혼하려할 때 라스콜니코프가 탄식하며 뱉은 말이다. 사랑보다는 사랑아닌 것들을 위해 결혼하는 두냐에 대한 이 통탄. 우리가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우리의 허위를 정확하게 찌르는 뱉음이었다.


"그것을 끝낸 다음 날 가도록 하자. 그것을 끝냈을 때,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었을 때 ..." p85

그것. 라스콜니코프가 고리대금업을 하는 노파인 알료나 이바노브나를 살해하는 계획이다. 그것은. '그것'이 이 책의 주요한 제재이며 그것을 통한 내적/외적 갈등과 사유 마음의 동요를 라스콜니코프와 주위 사람들에게 일으킨다. 그 동기와 결과가 추적 60분에 나올만큼. 그래서 표창원 교수가 그들의 심리를 설명해야할 만큼. 그래서 표창원 교수는 이 책을 매년 애/정독 하는지도 모르겠다.


"조그만 범죄가 몇천의 좋은 일로 보상될 수는 없을까? 단 한 생명으로 몇천의 생명이 부패와 타락에서 구제되는 거야." p103

히틀러와 나폴레옹식 사고 방식이다. 수단을 거룩한 목적으로 장식하고 정당화하려는 라스콜니코프의 생각이다. '영웅 (비범인)'이라면 더욱이 당연한 논리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리고 범행을 저지른다. 하지만, 자신은 '영웅'이 아님을 알게된다.


"거짓말은 모든 유기체에 대한 인간의 유일한 특권이니까요. 거짓말을 함으로써 진리에 도달하는 겁니다!" p297

인간만이 말을 할 수 있고 또 인간만이 그 말을 이용해서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상대를 자신을 향한 그 허위의 말들을 거치며 진실에 - 거짓말을 처음 시작할 때는 결코 알지 못했던 - 다가갈 것이다.


"결국 일어날 건 일어나게 마련이에요." p 355

나는 운명론자이지만, 나는 숙명론자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일어날 일들은 일어날 것이다. 불.가.피하게. 그 일을 걱정한들 피하려 애쓰든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저 잊고 '지금'을 살아갈 뿐이다.


"도대체 무엇으로 범인과 비범인을 구별합니까?"

라스콜니코프와 포르피리 (예심판사)와의 엄청난 심리전이 시작된다. 1권의 후반부에. 포르피리의 날카로운 - 우리가 어떤 행동에 대한 이기적인 변명과 같은 어떤 류의 사람들에 대한 비굴한 정의와 분류에 대한 - 지적이다.


"사소한 것, 사소한 것일수록 중요하다! 이런 사소한 일이 왕왕 전체를 망쳐버리거든..." p14

"그때도 이렇게 햇빛이 비치겠지!" p17

"고작 맥주 한 잔, 빵 한 조각으로... 이렇게 금방 머리가 명석해지고 의식이 맑아지고 의지도 확고해지니 말야! 쳇, 세상만사가 이렇게도 어리석다니!" p21

"어떠한 인간이든 적어도 발길 돌릴 데쯤은 있어야 하잖겠어요?" p28

"그저 어깨와 몸이 들먹일 뿐이었쬬... 그런데 나는 여전히 그대로 누워 있었습니다" p34

"인간이란 비열해서 무엇에나 곧 익숙해진다니가!" p48

"그 착실한 두네치카가 것 같다와 결혼하다니..." p68

"그것을 끝낸 다음 날 가도록 하자. 그것을 끝냈을 때,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었을 때 ..." p85

"조그만 범죄가 몇천의 좋은 일로 보상될 수는 없을까? 단 한 생명으로 몇천의 생명이 부패와 타락에서 구제되는 거야." p103

"거짓말은 모든 유기체에 대한 인간의 유일한 특권이니까요. 거짓말을 함으로써 진리에 도달하는 겁니다!" p297

"결국 일어날 건 일어나게 마련이에요." p 355

"도대체 무엇으로 범인과 비범인을 구별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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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2-13 1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민음사, 문학동네, 열린책들 같은 출판사 인기의 그늘에 조금 가려서 그렇지 문예가 역사적으로 오래된 출판사입니다. 그리고 페이스북 공식 계정을 통해서 책 홍보를 열심히 하고, 이벤트도 많이 합니다. ^^

초딩 2016-02-13 19:13   좋아요 0 | URL
아 :-) 저도 모르게 보니 문예가 책장에 많더라구요 :-)
페북도 열심히 하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