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과거와 미래를 이어가는 고민 상담소의 훈훈한 이야기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오래전에 사서 달 토끼의 사연만 읽고 그대로 책장 한구석에 꽂혀 있던 것을 꺼내 읽었답니다. 물 먹인 종이로 만든 것처럼 두께에 비해 페이지가 많지 않고 (그래도 400여 페이지는 넘는), 인기 유명 추리소설 작가의 작품이라는 출신 성분답게 복선과 단서가 적절히 가미된 흥미진진함으로 초광속으로 읽게 되는 책이에요 :)


무정차 고속열차처럼 밑줄 한 번 긋지 않고 귀 접기도 잊은 채 종착 페이지에 도착하고나니 "고민" (일본말로 "나야미")을 사전에서 찾아보고 싶었답니다. 국어와 영어 사전을 정처 없이 떠돌고 나니, "고민 상담을 하려는 사람은 이미 답을 알고 있고, 상담자에게 그 답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라는 참신성을 잃은 (명백한 진리지만 현실에선 이론인)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사전 어디에도 "선택"이라는 단어는 "고민"과 연결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나미야 잡화점 할아버지 말처럼, 조언을 해주는 사람의 어떠한 답과도 상관 없이 고민을 대하는 그 사람의 태도에 따라 고민이 풀려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시험에서 100점을 맞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나요?"에 대해

"자기 자신에 대한 시험을 치면 됩니다~"

라는 재치 가득한 하지만 깊이 있는 할아버지의 고민상담을 보는 것도 재미있고, 고민을 가지고 있는 각 인물들의 인생을 들여다 보는 것도 감동적입니다.


일정 시간마다 일정 시간 동안 각 지방의 풍경을 보여주는 기차 여행을 하게 된다면, 창가에 앉아 원근감 때문에 다르게 흘러가는 창 너머 풍경들과 함께 이 책을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



의도치 않게 전달된 백지 고민 상담 편지에 대한 나미야 할아버지의 편지 일부를 올려드리며 짧은 후기를 마칩니다.


"이름 없는 분에게,

어렵게 백지 편지를 보내신 이유를 내 나름대로 깊이 생각해보았습니다.

...

나에게 상담을 하시는 분들을 길 잃은 아이로 비유한다면 대부분의 경우, 지도를 갖고 있는데 그걸 보려고 하지 않거나 혹은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알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

당신의 지도는 아직 백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목적지를 정하려고 해도 길이 어디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일 것입니다.

...

하지만 보는 방식을 달리해봅시다. 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가능성은 무한히 펼쳐져 있습니다.

이 것은 멋진 일입니다. 부디 스스로를 믿고 인생을 여한 없이 활활 피워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이름 없는 분에게,
어렵게 백지 편지를 보내신 이유를 내 나름대로 깊이 생각해보았습니다.
...
나에게 상담을 하시는 분들을 길 잃은 아이로 비유한다면 대부분의 경우, 지도를 갖고 있는데 그걸 보려고 하지 않거나 혹은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알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
당신의 지도는 아직 백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목적지를 정하려고 해도 길이 어디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일 것입니다.
...
하지만 보는 방식을 달리해봅시다. 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가능성은 무한히 펼쳐져 있습니다.
이 것은 멋진 일입니다. 부디 스스로를 믿고 인생을 여한 없이 활활 피워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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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8-10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로님의 글을 읽으니까 인생 자체가 하나의 종이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살아가는 과정 하나하나 기록하는 과정. 계속 써나갈수록 삶을 기록할 수 있는 빈 공간은 줄어들지만, 불의의 사고로 하나 밖에 없는 소중한 종이가 훼손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쓸 수 있을 때까지 쓰는 것이 중요해요.

초딩 2015-08-10 22:09   좋아요 0 | URL
종이와 그 써나감의 비유는 많이 봤지만. 종이의 훼손에 관한 비유는 처음이라 신선하네요. Cyrus 님 글을 요즘 자세히 못봐 죄송스럽습니다.

cyrus 2015-08-10 22:22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 사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도 이웃님들의 글을 다 못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