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비가 올 것 같다.

너는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

p7, 어린 새


`너`라는 인칭대명사에 익숙해지는데는 꽤나 시간이 걸렸습니다. `ㅓ`를 `ㅏ`로 바꾸어가며 읽고 싶을 정도였으니깐요. 의도적으로 그렇게 뜬 것 같은 가는 눈을 가진, 수수한 흑백 사진속 한강 작가님의 "소년이 온다"는  80년 5월의 광주 이야기를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조금 먼저 영혼이 된 `정대`가 `동호`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눈을 감은 내 얼굴을 본 건 처음이라 더 낯설게 보였어."

p47, 검은 숨

 

한강작가님이 서사하는 검붉었던 그날들과 잿빛으로 가득한 그 이후의 날들에 대한 묘사는 그녀가 1970년생이라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게 했습니다.


"아무도 내 동생을 더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야 합니다."

p211, 눈 덮인 램프


무엇을 위해 쓴다는 것이 아닌 `써야 함`이 느껴졌습니다. "작가의 무엇을 위해서", "희생된 누구를 위해서", "우리 후세의 무엇을 위해서" 그 모두의 이전에 우리의 뼛속에 각인 시켜야할 의무를 가지고 써야했던 그 무엇인가가 느껴졌습니다. 고대 그리스 3대 비극시인의 한 사람 소포클레스는 "내가 헛되게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이가 갈망하던 내일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분수대에서 물이 나와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제발 물을 잠가주세요."

...

"물이 나오는 분수대를 우리가 어떻게 하겠어요. 다 잊고 이젠 공부를 해요."

p97, 일곱개의 뺨


그 검붉었던 날들 이후에 태연하게 물을 쏟아내는 분수대를 보며 울부짖듯, 애원하듯 민원실에 전화를했고, 마지못한 응대 끝에 들려온 메마른 응답이었습니다. 전화를 한 이가 다 잊고 공부를 하지 못했듯이, 응대한 나이든 여사무원도 결코 다 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날의 `저지른 인간들`을 보며 우리는 질문을 던지고 분노할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p134, 쇠와 피


하지만, 거대한 감긴 태엽이 서서히 어쩔 수 없이 풀리듯이 그렇게

운명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공허하게

보고 있었지만 아무 것도 보지 못한 듯이

듣고 있었지만 아무 것도 듣지 못한 듯이

비워진 껍데기뿐인 몸이 그렇게 행동했을 것입니다.


"도청 앞의 시신들 앞에서 대열을 정비해 군가를 합창할 때,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 외신 카메라에 포착된 병사가 있었다.

어딘가 흡사한 태도가 도청에 남은 시민군들에게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총을 받기만 했을 뿐 쏘지 못했다."

p212, 눈 덮인 램프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 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꽂은 양초 불꽃들이.

...

소리 없이 입술을 움직이는 소년의 얼굴을 뚫어지게 응시한다."

p103, 일곱개의 뺨


이 책은 천편일률적으로 취한 이가 했던 말을 또 하는 듯한 누군가의 현대사도 아니고,

교과서 같은 딱딱한 제목과 소제목 더 작은 제목들 그리고 흑백의 사진들이 가득한 다큐멘터리 같은 건조한 책도 아닙니다.

초록색 큰 포도를 은쟁반에 담고 오물 오물 씹으며 가느다란 손으로 허공에 우아한 곡선을 그으며 말하는 서사시도 아닙니다.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p192


라고 말했던, 나와 같았던 어떤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진지하려던, 고뇌하려던, 상념에 젖으려던 저는 마지막 뒤표지의 추천사까지 읽고 책을 덮고, 그제서야 알았습니다. 책 표지에 온통 어른거리던 하얀 것들이 무슨 `무늬`가 아니고 꽃이라는 것을. 흰 빛이 있던 자리가 어둠으로 채워진 하얀 꽃들이었음을 알았습니다.


무엇을 사실적으로 알아보려고 하기전에

무엇을 냉철하게 논리적으로 말하려 하기전에

무엇을 뜨겁게 행동하려 하기전에

우리는 `그 무엇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기`를 먼저해야하지 않을까 자문해봅니다.

"비가 올 것 같다.
너는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
p7, 어린 새

"눈을 감은 내 얼굴을 본 건 처음이라 더 낯설게 보였어."
p47, 검은 숨

"아무도 내 동생을 더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야 합니다."
p211, 눈 덮인 램프

"분수대에서 물이 나와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제발 물을 잠가주세요."
...
"물이 나오는 분수대를 우리가 어떻게 하겠어요. 다 잊고 이젠 공부를 해요."
p97, 일곱개의 뺨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p134, 쇠와 피

"도청 앞의 시신들 앞에서 대열을 정비해 군가를 합창할 때,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 외신 카메라에 포착된 병사가 있었다.
어딘가 흡사한 태도가 도청에 남은 시민군들에게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총을 받기만 했을 뿐 쏘지 못했다."
p212, 눈 덮인 램프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 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꽂은 양초 불꽃들이.
...
소리 없이 입술을 움직이는 소년의 얼굴을 뚫어지게 응시한다."
p103, 일곱개의 뺨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p192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5-08-03 2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로님의 글을 보니, `객관적`인 `인지`도 능력인가, 하는 의문을 품어봅니다:-)

개인적으로 특정 `참사`가 특정 `대상`에 국한된 사건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마음이 어렵고,
그 모든일의 개입된 인간 경계가 완벽히 무너지는 경험에서 절망을 하게 만든 책이었습니다. ㅜㅜ

붙임, 한강작가님께서 어느 인터뷰에서 그러셨어요. 보통 책을 출판하면 ˝축하한다.˝는 인사를 많이 받는데
이번 책은 ˝고생 많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라고요.
...아로님께서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2015-08-03 2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