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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복의 성자
아룬다티 로이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2월
평점 :
인도 여성 최초로 부커상을 받은 아룬다티 로이 (Arundhati Roy)의 '지복의 성자'는 그 제목이 무엇을 뜻하지 선뜻 와닿지 않았다. 원제 The Ministry of Utmost Happiness 는 최고 행복의 성자 정도로 해석될 것이다. 두 중심인물 안줌과 틸로와 함께 전개되는 인도의 모습은 '지복' 보다는 '지옥'이 먼저 연상된다.
나는 아룬다티 로이가 '작은 것들의 신'으로 화려하게 데뷔하고 10년이 지나 그녀의 두 번째 소설을 쓰기 시작한 2007년 경인 2009년에 인도에 두 달 정도 일로 머문적이 있다. 책에서 그려지는 인도의 모습은 2009년 내가 보았던 인도를 그대로 재연시켜주었다. 고단하고 지루한 비행을하고 내디딘 인도는 내가 인지해서 감내할 수 없는 어느 과거의 비상식적인 공간이었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구자라트 폭동 등의 학살, 린치, 공권력의 가혹행위, 부정과 부패로 앓고 있는 - 하지만 언제 쾌유할지 도무지 알 수 없는 - 그 인도의 사회였다.
'어떻게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갈 수 있지'의 의문은 '어떻게 이렇게 살아가는 것을 받아들이지'로 바뀌었다. 공동묘지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열며 살아가는 안줌의 환경과 주위에 상류층이 가득한 틸로의 환경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그 대비처럼, 내가 머물렀던 게스트하우스는 10년 전에도 조카의 돌잔치를 위해 하루 1억원을 쓰는 곳이었고,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빌딩 단지 철조망 밖에서는 철조망 밑으로 나오는 오수로 생활하는 빈민들이 가혹하게 살아갔다. 한쪽에서는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처럼 반복되는 운명적 고난과 아픔을 한으로 안고 삶을 버텼고, 한쪽은 한병철님의 '피로 사회'를 읽으며 우수에 찬 고결하고 철학적인 삶을 살아갔다. 가끔 그들은 정지한 신호동에서 만났다. 신호를 보며 차안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차 유리를 닦거나 저글링 묘기로 구걸하며 교차했다.
엄청난 이야기꾼인 아룬다티 로이는 수많은 등장 인물을 밀착 취재하듯 그려냈고, 오랜 사회 운동가답게 인도의 잔인한 역사를 배경으로 잘 드리워 인도 전체를 이 한권의 책으로 전 세계 모든 이에게 전한다. 인도의 아픔과 좌절과 슬픔을 전한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행복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