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삼촌 브루스 리 1
천명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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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리’는 우리들의 자화상이었다

살아가는 것은 산을 넘는 것이 아닐까? 오르막길로만 여겨지던 시기를 지나면 분명 내리막길이 있지만 그것을 생각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은 별로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닥친 일상의 굴레를 벗어나는 일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을 오르다 보면 분명 내리막길이 있는 것처럼 삶에도 그런 굴곡이 있다. 다만 이런 삶의 이치를 아는 것은 세월이 훌쩍 지난 인생의 후반기에나 일게 된다는 점이 아쉽기만 하다. 길게 잡아도 삶의 후반기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에야 그런 인생의 굴곡을 알아가는 시간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청춘의 시기를 지나온 사람이 가끔 하는 일 중 하나가 옛 시절을 돌아보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 중에서도 학창시절이 중심에 있다. 문학 작품을 접하다 보면 간혹 그 시기를 묘사하는 작품을 만나곤 하는데 자신이 겪은 옛일을 떠올리는 시간과 겹쳐지며 흥미로운 시간을 보낸다. 천명관의 신작소설 ‘나의 삼촌 브루스 리’도 이렇게 지난 시간을 거슬러 자신의 삶과 마주대하는 경험을 하게 만드는 이야기다.

 

한 사람의 일대기를 그려가는 ‘나의 삼촌 브루스 리’는 ‘나’를 화자로 삼촌의 일상을 그려가고 있는 것이다. 시대적 배경으로는 1970년대를 시작으로 2000년대까지 이른다. 이 시기에 학창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은 지금 우리 사회의 중심세력이다. 그들이 직접 경험했거나 이웃 사람들의 일상에서 보고 느꼈던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문학작품을 통해 만나게 되는 것이다.

 

나의 삼촌은 할아버지가 딴 살림을 차려 낳은 서자다. 어릴 때 내가 살던 집으로 무작정 찾아와 할머니의 배려로 가족이 되었다. 나와 나이차가 그리 크지 않았기에 형보다 더 가까운 사이로 같은 학창시절을 보내게 된다. 할아버지 제사에서 충격을 받은 이후 말을 더듬게 된 삼촌의 관심사는 영화배우 이소룡이다. 영화를 통해 알게 된 이소룡이 삼촌의 인생에 중심으로 들어오고 난 후 삼촌은 뒷산에 무술을 연마할 장소를 만들고 무술연마에 몰두한다. 자신이 영웅이 죽었다는 소식에 조카인 나와 함께 추모제를 지낼 정도로 영향력이 큰 사람이었다. 이 점은 동시대에 청춘의 시기를 보냈던 모든 남자들에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나, 친구, 삼촌 그리고 형과 조그마한 읍내의 건달들이 이야기를 구성하는 인물들이다. ‘나의 삼촌 브루스 리’ 1권의 중심은 코 흘리게 시절부터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거나 사회에 진출한 시기까지의 이야기다. 성장기 청춘들이 경험했던 우리들의 이야기 초반부에 해당한다고 보여 진다.

 

주인공 삼촌은 암울한 시대에서도 덜떨어진 측에 속한다. 서자로 태어나 어머니가 재가하면서 소식이 끊겼고 숨은 배경이 되어주었던 어머니마저 죽은 후 조그마한 배경마저 사라져 버렸다. 출생에서부터 주류에서 비켜난 삶이 사회의 급격한 변화과정에서 어떤 삶을 살아갈지 뻔한 예측을 할 수 있다. 그 뻔한 예측이 우리세대들이 살아온 사람들이 몸으로 겪어온 삶이었다. 인생 긴 여정엔 굴곡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시기가 아니기에 자신에게 닥친 운명의 그림자를 받아들이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들이 살아온 일상과 동일한 것이라는 점이 공감을 불러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문장이지만 답답함이나 단절감이 느껴지지 않은 글이다. 그 글이 주는 인상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실감나게 다가온다. 작가의 내공이 느껴지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이소룡의 대역을 꿈꾸며 홍콩에 밀입국을 시도했지만 좌절된 꿈이 근 입대로 이어지며 한국 현대사의 큰 전환점이 되었던 군부독재와 이어진 후 어떻게 변할지 후속 작이 기대된다.

 

비주류의 좌절된 삶을 중심에 두고 작가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꿈과 이상을 실현할 꿈조차 꿀 수 없었던 시대에 이들의 인생을 이끌었던 배경을 묘사함으로써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조망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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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오경아 지음 / 샘터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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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풍경은 이야기가 있어 공유 된다

100평 남짓한 땅이 있다. 지난여름 도시생활을 접고 시골로 이사를 하면서 마련한 집에 딸린 마당이다. 그 땅을 어떻게 가꿀까? 계절이 바뀌는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행복한 상상의 근원이다. 세 식구 먹을 만큼의 채소를 가꾸는 텃밭을 제외하고는 나무를 심을 예정이다. 다 큰 나무를 심는 방법도 있겠지만 무리하면서까지 큰 나무를 심을 생각은 없다. 조그마한 나무를 골라 심고 그 나무가 자라는 동안 나와 나무의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휑한 공간은 채워지고 있다. 그 사이 지금껏 모아 놓은 야생화 꽃씨를 뿌리고 그 꽃이 전하는 향기와 함께 나무가 자라는 것을 지켜 볼 것이다. 매화나무, 사과나무, 감나무, 포도, 대나무, 소나무, 무화과나무, 동백나무 등이 내가 관심 가지고 지켜볼 나무들이다. 물론 이 모든 나무를 다 심지 못하고 때론 생각하지도 않았던 나무도 함께할 수 있다. 그렇게 열려져 있는 공간이라면 좋겠다. 이렇게 가꿔가는 공간에 이름을 붙이고 나만의 정원을 가꾼다면 그것으로 좋을 일이다.

 

모습이 각기 다르고 있는 곳도 다르지만 같은 이름이 붙은 곳이 있다. 이렇게 특정한 이름으로 만나는 공간에는 어김없이 사람과 공간을 구성하는 다양한 동식물이 만들어 놓은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로 인해 또 다른 사람들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찾아내고 만들어 간다. 이름 하여 그곳을 사람들은 ‘정원’이라는 부른다.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의 저자 오경아는 이 정원에서 저자는 자신의 내면에 숨어 있었던 이야기를 찾았다. 그가 찾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저자 오경아는 무모한 도전을 감행했다. 잘나가던 방송작가의 삶을 던지고 하고 싶은 공부를 위해 살던 집마저 팔고 유학을 떠난 것이다. 두 딸과 함께한 영국 유학은 그에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6여 동안 낯선 영국에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공부하는 시간이 그녀에게 다른 이야기를 만들었던 것이다. 인생에서 한 시간대를 뚝 잘라내 감행한 도전이 앞으로 남은 인생의 후반전에 대한 준비를 한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공부가 ‘정원’에 대한 것이다. 남달리 정원에 대한 애착이 강한 나라 영국을 택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는 6년 동안의 무모했던 도전을 정리하는 2주간의 여행 동안 자신이 만난 이야기들을 담았다. 저자가 만난 이야기는 자신과 딸 그리고 엄마라는 테마로 모아진다. 이 이야기를 만난 곳은 레이크 디스트릭트으로 영국의 최대 환경보전지역이라고 한다. 130여 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에서 2주간 머물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레이크 디스트릭트가 오늘날의 모습을 간직한 배경에 사람들의 마음이 모인 것이다. 호숫가를 거닐고 양떼를 만나며 수선화가 가득한 묘지를 들르고 주변의 도로를 따라 운전하며 때론 가파른 산에 등산을 하기도 한다. 발길이 머무는 곳에 여기저기서 만나는 것이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보전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야기는 거기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자신을 중심으로 세대를 건너 딸과 엄마를 동시에 만난다. 딸 속에 전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하고 어린 아이로만 생각되는 딸아이의 당돌한 질문과 속 깊은 헤아림으로 당혹스러움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또한 눈길을 사로잡는 풍경 속에서 일찍 떠난 엄마의 존재감이 살아 숨 쉬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 모든 이야기를 가능케 한 것이 바로 ‘정원’이라는 이름이 품고 있는 이야기 속에서 공유되는 것이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엄마를 만난다는 것은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현실로 끄집어내는 일이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로 기억을 되살리는 일에서 깊은 아픔으로 존재하는 엄마를 살려내서 내 삶을 가꿀 힘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 엄마라는 공유된 인간의 마음과 다름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어쩜 ‘낯선 정원’은 영국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곳에서 잠시 마음을 내려놓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만드는 공간이라면 동일한 정서를 느끼게 한다. 건물 한 귀퉁이 조그마한 공간에 위태롭게 서 있는 나무한 그루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정원에 대한 의미부여가 가능한 것이며 그 정원이 담고 있는 이야기 속에 살아있는 사람의 흔적이 될 것이다. 저자가 꿈꾸는 정원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라 짐작된다.

 

짧은 글 속에 인생의 깊은 성찰이 돋보이는 여운이 있다. 더불어 녹색 가득한 사진이 주는 시각적 안도감이 자신과 만나는 성찰의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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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이야기 - 다큐멘터리 만화 시즌 1 다큐멘터리 만화 1
최규석.최호철.이경석.박인하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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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에게 인문학적 시각을 입히다

만화에 대한 향수는 깊다. 청소년 시절에 짬을 내거나 억지로 시간을 내서라도 꼭 보고 싶은 것이 만화였다. 볼 수 있는 것도 볼 만한 것도 없던 시절이었기에 만화가 차지하는 중요성은 실로 큰 것이었다. 만화가 이처럼 사람들 속에서 강한 흡입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일까? 그림을 통해 이야기의 흐름을 알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강점일 것이다. 상상의 세계를 마치 현실화시켜주는 매개체가 바로 만화였던 것이다. 성인이 되면서 만화는 점차 손에서 멀어졌다. 그 자리를 대신해 자리 잡은 것이 일간지의 네 칸 만화나 웹툰이다. 당시 사회정치적인 문제를 촌철살인의 해학으로 가시화 시킨 것이기에 대단히 주목받기도 했다.

 

만화의 이러한 기능을 살린 것이 ‘다큐멘터리 만화’가 아닌가 싶다. ‘현장성’과 ‘진정성’을 지향점으로 가지는 다큐멘터리 만화에 대한 기대감이 만화의 일반적 장점에 인문학적 시각을 접목하여 현실화 시키자는 의미로 이해된다. 이러한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작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책이 ‘사람 사는 이야기’다. 이 작업에 참여한 작가로는 최규석, 최호철, 이경석, 박인하, 정용연, 최인수, 박해성 등이다. 몇몇 작가는 문학작품을 만화로 재해석한 작품을 통해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대부분은 모르는 작가들이다. 이들이 다큐멘터리 만화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만든 열 두 편의 작품이 담겨 있다.

 

‘사람 사는 이야기’에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삶의 현장을 찾아 나선다. 생존권을 보장 받기위한 노력이나 전통의 가치와 현대 사이에서 벌어지는 문화적 간극 등 사람들의 삶 속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담아내고 있다. 인천지역 삼화고속 노동자들의 농성현장을 찾아 인터뷰를 담은 ‘24일차’, 철거 현장에서 아르바이트 한 경험담을 그린 ‘단돈 5만원’, 할머니와 살던 초등학생이 기르던 개에 물려 죽었던 사건을 담은 ‘철망 바닥’, 청년 문제를 다루고 있는 ‘청춘은 아름다워’와 ‘열심히 살자!’, 남미의 혁명가 체 게바라를 다룬 ‘따뜻한 사람, 체’, 식물에 대한 생태학적 접근을 시도한 ‘나무 이야기’나 ‘도심 속 식물 여행’ 등이다.

 

보기 쉽고 접근성이 뛰어나며 주제가 명확하게 전달되는 만화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며 만화가 가지는 이러한 긍정적인 의미에 사람의 삶의 문제를 직시하는 인문학적 시각을 접목한 이러한 시도는 대단히 의미 있는 작업으로 다가온다. 이는 만화가 가지는 일회성이나 가벼움 등을 시각을 바꿔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시대가 원하는 정신을 담아내는 훌륭한 도구로 쓸 수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다큐멘터리의 기능적 측면을 보강한다는 시각이 돋보인다. ‘다큐멘터리’란 사전적 의미로 ‘기록으로 남길 만한 사회적 사건 등을 사실적으로 제작, 구성한 영화나 드라마 따위를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즉, 다큐멘터리 만화는 만화를 통해 이 시대 우리들의 자화상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점이다.

 

봐서는 안 될 것 또는 숨어선 봐야하는 것으로만 여겨졌기에 더 강한 끌림의 대상이었던 만화가 이제 자신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사람들과 교류를 꿈꾸고 있다. 그 꿈이 이 시대 삶을 버겁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이웃들의 현장의 목소리를 진정으로 담아내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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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세월이 가면
곽의진 지음 / 북치는마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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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마지막을 함께 한 어설픈 동거

지금쯤 그곳에 가면 기나긴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붉은 마음이 꽃망울을 터트릴 준비를 마쳤을 것이다. 성급한 어떤 놈은 벌써 붉은 꽃잎을 내밀고 따스함이 묻어나는 봄바람을 마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완도군 약산면 조그마한 바닷가를 점령하고 있는 동백나무 숲은 바다와 연이어 있다. 찬바람 쌩쌩 불던 어느 겨울 그 바닷가에서 맞이한 동백의 붉은 꽃잎에 한 동안 마음 빼앗겼던 적이 있다. 가끔 봄을 맞이하는 이때쯤이면 그곳 동백이 생각나곤 한다.

 

동백을 노래한 시인들의 마음에 미치지 못할지라도 동백꽃의 붉디붉은 꽃잎에 마음 빼앗겨본 사람들은 안다. 모가지를 댕강 꺾듯이 떨어뜨리는 그 마음에 무엇이 담겨있지를 말이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지는 붉은 동백꽃은 비록 바람을 따라 바닥을 뒹구는 수모조차 아름다움으로 생을 마감한다. 붉은 그리움을 남기듯 동백처럼 생을 마감하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에 끝자락에는 무엇이 있을까? 한 세기를 넘게 살아온 아버지와 반세기를 넘어 또 다른 반세기를 살아가는 딸의 마음이 어느 순간 수평선 너머로 지는 붉은 노을로 닮아 있다.

 

곽의진의 ‘섬, 세월이 가면’은 지는 저녁노을과 그 노을 곁에 머물고 있는 붉은 기운이 함께 만들어가는 섬 생활에 대한 자기고백이다. 고단한 도시생활을 벗어나 자신이 나고 자란 곳으로 다시 돌아가 거처를 마련하고 온전히 자신만의 삶을 살고자 했던 저자 곽의진이다. 아직 자신이 마련한 터에 적응도 못한 시기 병마에 지친 아버지가 들어온다. 자식도 버리고 떠나온 곳에서 느끼는 한가로움이 채 자리 잡기도 전에 손님처럼 왔다가 주인이 된 아버지의 마지막 삶을 지켜보고 함께 나누었다.

 

그 아버지는 자식에게 의지처이기도 하지만 때론 자신의 삶에 끼어든 이방인이다. 귀가 어둡고 똥오줌마저 가리지 못하는 늙은 몸이기에 수발드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저자는 그런 속내를 숨기지 않는다. 그 고통을 아는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에 누구에게 하소연으로 자신을 이해해 달라고도 않는다. 오히려 나쁜 딸이라며 스스로 자책하기 일쑤다. 취재일정으로 당일치기 아니면 1박2일 정도의 집을 비우지만 그 시간이 해방감과 더불어 떨치지 못하는 그리움이 함께한다. 딸자식이 이젠 아내이며 친구처럼 그렇게 자리 잡았다. 겨울 추위 지나고 몸만 추스르면 갈 것으로 생각했던 아버지와의 동거가 길어지면서 딸은 자신의 미래를 그 아버지에게서 본다. 섬 기행에서 늘 상 마주하는 붉은 저녁노을 속에 아버지와 자신의 모습이 함께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섬, 세월이 가면’은 저자가 섬에 정착하고 동네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 아버지와의 동거생활, 섬 기행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진다. 이 세 가지 이야기가 한데 엉켜 사람살이의 온갖 감정이 녹아 있다. 저자의 눈을 사로잡았던 풍경이 사진으로 함께 있어 마치 저자의 발걸음에 동행하고 있는 생동감마저 들게 한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 시인의 낙화라는 시의 일부분이다. 가장 절정의 순간에 통째로 지고 마는 동백의 마음과 사라지기 직전 불타는 듯 장렬한 노을이 닮아 보인다. 어쩜 저자와 함께한 아버지의 생의 마지막이 그런 것 아닌가 싶다. 아버지의 마지막 생을 함께한 딸 저자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아버지의 이미지는 가족 누구보다 오랫동안 남아 함께 할 것으로 보인다.

 

책을 읽다보면 분명 저자에 대한 기본 정보를 접하기 마련인데 도중에 자꾸 저자가 누굴까 하는 궁금증이 일어나는 책이 있다. 하여 책표지 안에 소개된 저자의 프로필로 눈이 간다. 스스로 표현에 의하면 그리 잘나가는 소설가는 아니지만 수구초심의 마음으로 돌아온 고향에서 남은 삶을 어떻게 꾸려갈지 그 소소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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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기행문 - 세상 끝에서 마주친 아주 사적인 기억들
유성용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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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서 사라지는 것들의 흔적

마음이 착 가라앉은 느낌이 지속되는 나날이다. 차가운 바깥기온에 몸이 얼어붙어 마음까지 전해진 무거움을 탓하기 보다는 뭔가 빠진 일상에서 이유를 찾아본다. 그것에 무엇일까? 생동하는 자연의 기운을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지난 몇 개월간의 더딘 발걸음 때문이라고 애써 위안 삼아보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다. 남쪽 바닷가 어디쯤 와 있을 봄을 마중하지 못하는 더딘 마음자리가 어딘가로 훌쩍 떠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기분일 때 스스로 위안 삼는 방편 중 하나가 여행기를 읽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묶여 옴짝달싹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위안거리라도 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지만 그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이 책이 아닌가 한다. 발이 묶인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껏 등에지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되었을 여행길에서 보고 듣고 얻은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다시 보여주는 것처럼 담아놓은 여행기는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

 

온몸으로 여행을 떠난 사람들이 제법 많다. 누구는 순전히 자신의 발로 땅을 걷고 걸어서 또 다른 누군가는 자전거를 타고 그렇게 외지인을 자처한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 결과물을 편안한 방에서 느긋한 마음으로 간접적으로 체험한다는 것이 무슨 맛일까 싶지만은 꼭 그렇지도 않다. 실제 몸으로 마음으로 느끼는 여행자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읽는 사람들의 개별적 자기체험이 있기에 그 느낌이 공유되는 것이고 이 공유가 여행자와 독자를 이어주는 다리인 셈이다.

 

몸도 마음도 무거운 주말오후 여행생활자라는 사람 유성용이 꽤 긴 시간동안 전국을 돌아다녔던 스쿠터 뒷자리에 몸을 슬쩍 기대고 나서보는 것도 좋은 일이 될 것이다. 그가 스쿠터를 타고 다니면서 주목하는 것은 다방이다. 약속을 하고, 차를 마시며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헤어진 사람을 그리워하는 공간으로써의 기능을 했던 다방을 찾아 옛 기억을 되살리고 지금은 사라져버린 많은 것들 속에서 그나마 아직 남아 있는 흔적들을 찾아보는 것이다.

 

서울 살림을 정리하고 떠난 스쿠터 여행은 강원도를 시작으로 바다를 따라 남으로 내려간다. 목적하는 곳도 만날 사람도 정하지 않은 길이기에 거칠 것이 없다고 하지만 때론 그것만큼 막막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갈림길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길을 잃어버린 막막함은 땅위에 난 길에서 뿐 아니라 사람들의 인생길에서 더 자주 만나게 된다. 저자 손에 들린 지도 한 장이 그 길을 안내하는 유일한 나침판은 아닐 것이다. 길은 가다가 잘못 갈 수도 있다. 잘못 간 길을 돌아 나오거나 방향을 틀어 새로운 길을 따라가면 된다. 그런 여정을 거처 남해안에 이르고 다시 서해안을 따라 자신이 살았던 서울로 돌아왔다.

 

저자의 몸을 싣고 가는 스쿠터의 무게가 만만치 않음을 느낀다. 여행길에 끊임없이 마음을 파고드는 질문이 있고 그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이기에 어느 길 하나 쉬이 갈 수 있어 보이지 않는다. ‘나는 누구인가?’, ‘뭘 하며 살아야 할까?’와 같은 무거운 질문들이 함께하는 저자의 스쿠터 여행길은 그래서 쉽게 따라갈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나를 둘러싼 주변의 온갖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는 세월이 지날수록 사라져가는 풍경과는 또 다른 무엇이 있다. 전국에 산재한 수많은 다방의 커피 맛이 어쩜 한결 같이 똑 같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부호를 붙이는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 가슴 속을 헤집고 있는 삶의 무게와 살아온 기억의 흔적들은 각자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면 를 만들어 가는 것일까?

 

나를 이겨야 한다는 것이 삶이라면 죽을 때 자신은 내가 아닌 것일까? 그렇다면 결국 나로 태어난 나 아닌 것으로 끝나는 것이 삶이라는 의미일까? 누가 이런 무거움 질문이 함께하는 여행길에 동행하고 싶어 할까? 여기서 저자를 생활여행자라고 부르는 낫선 느낌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다방은 핑개였다고 한다. 다방기행이라는 그럴싸한 이유를 붙여 그가 찾아 나선 여행길은 결국 자신이었다는 것이다. ‘잊혀져도 여직 그대로 남아 있는 것들의 안부를 묻는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만들어 왔으면서도 늘 극복의 대상이 되었던 나를 만나는 것이 아니었을까?

 

유난히 추웠던 어느 해 겨울 처음 찾아가는 섬, 선착장 옆에 있던 다방의 따스한 커피한잔이 생각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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