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방기행문 - 세상 끝에서 마주친 아주 사적인 기억들
유성용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 안에서 사라지는 것들의 흔적

마음이 착 가라앉은 느낌이 지속되는 나날이다. 차가운 바깥기온에 몸이 얼어붙어 마음까지 전해진 무거움을 탓하기 보다는 뭔가 빠진 일상에서 이유를 찾아본다. 그것에 무엇일까? 생동하는 자연의 기운을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지난 몇 개월간의 더딘 발걸음 때문이라고 애써 위안 삼아보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다. 남쪽 바닷가 어디쯤 와 있을 봄을 마중하지 못하는 더딘 마음자리가 어딘가로 훌쩍 떠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기분일 때 스스로 위안 삼는 방편 중 하나가 여행기를 읽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묶여 옴짝달싹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위안거리라도 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지만 그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이 책이 아닌가 한다. 발이 묶인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껏 등에지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되었을 여행길에서 보고 듣고 얻은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다시 보여주는 것처럼 담아놓은 여행기는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

 

온몸으로 여행을 떠난 사람들이 제법 많다. 누구는 순전히 자신의 발로 땅을 걷고 걸어서 또 다른 누군가는 자전거를 타고 그렇게 외지인을 자처한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 결과물을 편안한 방에서 느긋한 마음으로 간접적으로 체험한다는 것이 무슨 맛일까 싶지만은 꼭 그렇지도 않다. 실제 몸으로 마음으로 느끼는 여행자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읽는 사람들의 개별적 자기체험이 있기에 그 느낌이 공유되는 것이고 이 공유가 여행자와 독자를 이어주는 다리인 셈이다.

 

몸도 마음도 무거운 주말오후 여행생활자라는 사람 유성용이 꽤 긴 시간동안 전국을 돌아다녔던 스쿠터 뒷자리에 몸을 슬쩍 기대고 나서보는 것도 좋은 일이 될 것이다. 그가 스쿠터를 타고 다니면서 주목하는 것은 다방이다. 약속을 하고, 차를 마시며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헤어진 사람을 그리워하는 공간으로써의 기능을 했던 다방을 찾아 옛 기억을 되살리고 지금은 사라져버린 많은 것들 속에서 그나마 아직 남아 있는 흔적들을 찾아보는 것이다.

 

서울 살림을 정리하고 떠난 스쿠터 여행은 강원도를 시작으로 바다를 따라 남으로 내려간다. 목적하는 곳도 만날 사람도 정하지 않은 길이기에 거칠 것이 없다고 하지만 때론 그것만큼 막막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갈림길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길을 잃어버린 막막함은 땅위에 난 길에서 뿐 아니라 사람들의 인생길에서 더 자주 만나게 된다. 저자 손에 들린 지도 한 장이 그 길을 안내하는 유일한 나침판은 아닐 것이다. 길은 가다가 잘못 갈 수도 있다. 잘못 간 길을 돌아 나오거나 방향을 틀어 새로운 길을 따라가면 된다. 그런 여정을 거처 남해안에 이르고 다시 서해안을 따라 자신이 살았던 서울로 돌아왔다.

 

저자의 몸을 싣고 가는 스쿠터의 무게가 만만치 않음을 느낀다. 여행길에 끊임없이 마음을 파고드는 질문이 있고 그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이기에 어느 길 하나 쉬이 갈 수 있어 보이지 않는다. ‘나는 누구인가?’, ‘뭘 하며 살아야 할까?’와 같은 무거운 질문들이 함께하는 저자의 스쿠터 여행길은 그래서 쉽게 따라갈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나를 둘러싼 주변의 온갖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는 세월이 지날수록 사라져가는 풍경과는 또 다른 무엇이 있다. 전국에 산재한 수많은 다방의 커피 맛이 어쩜 한결 같이 똑 같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부호를 붙이는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 가슴 속을 헤집고 있는 삶의 무게와 살아온 기억의 흔적들은 각자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면 를 만들어 가는 것일까?

 

나를 이겨야 한다는 것이 삶이라면 죽을 때 자신은 내가 아닌 것일까? 그렇다면 결국 나로 태어난 나 아닌 것으로 끝나는 것이 삶이라는 의미일까? 누가 이런 무거움 질문이 함께하는 여행길에 동행하고 싶어 할까? 여기서 저자를 생활여행자라고 부르는 낫선 느낌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다방은 핑개였다고 한다. 다방기행이라는 그럴싸한 이유를 붙여 그가 찾아 나선 여행길은 결국 자신이었다는 것이다. ‘잊혀져도 여직 그대로 남아 있는 것들의 안부를 묻는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만들어 왔으면서도 늘 극복의 대상이 되었던 나를 만나는 것이 아니었을까?

 

유난히 추웠던 어느 해 겨울 처음 찾아가는 섬, 선착장 옆에 있던 다방의 따스한 커피한잔이 생각나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