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삼촌 브루스 리 1
천명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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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리’는 우리들의 자화상이었다

살아가는 것은 산을 넘는 것이 아닐까? 오르막길로만 여겨지던 시기를 지나면 분명 내리막길이 있지만 그것을 생각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은 별로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닥친 일상의 굴레를 벗어나는 일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을 오르다 보면 분명 내리막길이 있는 것처럼 삶에도 그런 굴곡이 있다. 다만 이런 삶의 이치를 아는 것은 세월이 훌쩍 지난 인생의 후반기에나 일게 된다는 점이 아쉽기만 하다. 길게 잡아도 삶의 후반기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에야 그런 인생의 굴곡을 알아가는 시간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청춘의 시기를 지나온 사람이 가끔 하는 일 중 하나가 옛 시절을 돌아보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 중에서도 학창시절이 중심에 있다. 문학 작품을 접하다 보면 간혹 그 시기를 묘사하는 작품을 만나곤 하는데 자신이 겪은 옛일을 떠올리는 시간과 겹쳐지며 흥미로운 시간을 보낸다. 천명관의 신작소설 ‘나의 삼촌 브루스 리’도 이렇게 지난 시간을 거슬러 자신의 삶과 마주대하는 경험을 하게 만드는 이야기다.

 

한 사람의 일대기를 그려가는 ‘나의 삼촌 브루스 리’는 ‘나’를 화자로 삼촌의 일상을 그려가고 있는 것이다. 시대적 배경으로는 1970년대를 시작으로 2000년대까지 이른다. 이 시기에 학창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은 지금 우리 사회의 중심세력이다. 그들이 직접 경험했거나 이웃 사람들의 일상에서 보고 느꼈던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문학작품을 통해 만나게 되는 것이다.

 

나의 삼촌은 할아버지가 딴 살림을 차려 낳은 서자다. 어릴 때 내가 살던 집으로 무작정 찾아와 할머니의 배려로 가족이 되었다. 나와 나이차가 그리 크지 않았기에 형보다 더 가까운 사이로 같은 학창시절을 보내게 된다. 할아버지 제사에서 충격을 받은 이후 말을 더듬게 된 삼촌의 관심사는 영화배우 이소룡이다. 영화를 통해 알게 된 이소룡이 삼촌의 인생에 중심으로 들어오고 난 후 삼촌은 뒷산에 무술을 연마할 장소를 만들고 무술연마에 몰두한다. 자신이 영웅이 죽었다는 소식에 조카인 나와 함께 추모제를 지낼 정도로 영향력이 큰 사람이었다. 이 점은 동시대에 청춘의 시기를 보냈던 모든 남자들에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나, 친구, 삼촌 그리고 형과 조그마한 읍내의 건달들이 이야기를 구성하는 인물들이다. ‘나의 삼촌 브루스 리’ 1권의 중심은 코 흘리게 시절부터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거나 사회에 진출한 시기까지의 이야기다. 성장기 청춘들이 경험했던 우리들의 이야기 초반부에 해당한다고 보여 진다.

 

주인공 삼촌은 암울한 시대에서도 덜떨어진 측에 속한다. 서자로 태어나 어머니가 재가하면서 소식이 끊겼고 숨은 배경이 되어주었던 어머니마저 죽은 후 조그마한 배경마저 사라져 버렸다. 출생에서부터 주류에서 비켜난 삶이 사회의 급격한 변화과정에서 어떤 삶을 살아갈지 뻔한 예측을 할 수 있다. 그 뻔한 예측이 우리세대들이 살아온 사람들이 몸으로 겪어온 삶이었다. 인생 긴 여정엔 굴곡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시기가 아니기에 자신에게 닥친 운명의 그림자를 받아들이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들이 살아온 일상과 동일한 것이라는 점이 공감을 불러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문장이지만 답답함이나 단절감이 느껴지지 않은 글이다. 그 글이 주는 인상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실감나게 다가온다. 작가의 내공이 느껴지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이소룡의 대역을 꿈꾸며 홍콩에 밀입국을 시도했지만 좌절된 꿈이 근 입대로 이어지며 한국 현대사의 큰 전환점이 되었던 군부독재와 이어진 후 어떻게 변할지 후속 작이 기대된다.

 

비주류의 좌절된 삶을 중심에 두고 작가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꿈과 이상을 실현할 꿈조차 꿀 수 없었던 시대에 이들의 인생을 이끌었던 배경을 묘사함으로써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조망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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