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오경아 지음 / 샘터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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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풍경은 이야기가 있어 공유 된다

100평 남짓한 땅이 있다. 지난여름 도시생활을 접고 시골로 이사를 하면서 마련한 집에 딸린 마당이다. 그 땅을 어떻게 가꿀까? 계절이 바뀌는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행복한 상상의 근원이다. 세 식구 먹을 만큼의 채소를 가꾸는 텃밭을 제외하고는 나무를 심을 예정이다. 다 큰 나무를 심는 방법도 있겠지만 무리하면서까지 큰 나무를 심을 생각은 없다. 조그마한 나무를 골라 심고 그 나무가 자라는 동안 나와 나무의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휑한 공간은 채워지고 있다. 그 사이 지금껏 모아 놓은 야생화 꽃씨를 뿌리고 그 꽃이 전하는 향기와 함께 나무가 자라는 것을 지켜 볼 것이다. 매화나무, 사과나무, 감나무, 포도, 대나무, 소나무, 무화과나무, 동백나무 등이 내가 관심 가지고 지켜볼 나무들이다. 물론 이 모든 나무를 다 심지 못하고 때론 생각하지도 않았던 나무도 함께할 수 있다. 그렇게 열려져 있는 공간이라면 좋겠다. 이렇게 가꿔가는 공간에 이름을 붙이고 나만의 정원을 가꾼다면 그것으로 좋을 일이다.

 

모습이 각기 다르고 있는 곳도 다르지만 같은 이름이 붙은 곳이 있다. 이렇게 특정한 이름으로 만나는 공간에는 어김없이 사람과 공간을 구성하는 다양한 동식물이 만들어 놓은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로 인해 또 다른 사람들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찾아내고 만들어 간다. 이름 하여 그곳을 사람들은 ‘정원’이라는 부른다.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의 저자 오경아는 이 정원에서 저자는 자신의 내면에 숨어 있었던 이야기를 찾았다. 그가 찾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저자 오경아는 무모한 도전을 감행했다. 잘나가던 방송작가의 삶을 던지고 하고 싶은 공부를 위해 살던 집마저 팔고 유학을 떠난 것이다. 두 딸과 함께한 영국 유학은 그에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6여 동안 낯선 영국에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공부하는 시간이 그녀에게 다른 이야기를 만들었던 것이다. 인생에서 한 시간대를 뚝 잘라내 감행한 도전이 앞으로 남은 인생의 후반전에 대한 준비를 한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공부가 ‘정원’에 대한 것이다. 남달리 정원에 대한 애착이 강한 나라 영국을 택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는 6년 동안의 무모했던 도전을 정리하는 2주간의 여행 동안 자신이 만난 이야기들을 담았다. 저자가 만난 이야기는 자신과 딸 그리고 엄마라는 테마로 모아진다. 이 이야기를 만난 곳은 레이크 디스트릭트으로 영국의 최대 환경보전지역이라고 한다. 130여 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에서 2주간 머물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레이크 디스트릭트가 오늘날의 모습을 간직한 배경에 사람들의 마음이 모인 것이다. 호숫가를 거닐고 양떼를 만나며 수선화가 가득한 묘지를 들르고 주변의 도로를 따라 운전하며 때론 가파른 산에 등산을 하기도 한다. 발길이 머무는 곳에 여기저기서 만나는 것이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보전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야기는 거기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자신을 중심으로 세대를 건너 딸과 엄마를 동시에 만난다. 딸 속에 전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하고 어린 아이로만 생각되는 딸아이의 당돌한 질문과 속 깊은 헤아림으로 당혹스러움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또한 눈길을 사로잡는 풍경 속에서 일찍 떠난 엄마의 존재감이 살아 숨 쉬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 모든 이야기를 가능케 한 것이 바로 ‘정원’이라는 이름이 품고 있는 이야기 속에서 공유되는 것이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엄마를 만난다는 것은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현실로 끄집어내는 일이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로 기억을 되살리는 일에서 깊은 아픔으로 존재하는 엄마를 살려내서 내 삶을 가꿀 힘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 엄마라는 공유된 인간의 마음과 다름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어쩜 ‘낯선 정원’은 영국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곳에서 잠시 마음을 내려놓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만드는 공간이라면 동일한 정서를 느끼게 한다. 건물 한 귀퉁이 조그마한 공간에 위태롭게 서 있는 나무한 그루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정원에 대한 의미부여가 가능한 것이며 그 정원이 담고 있는 이야기 속에 살아있는 사람의 흔적이 될 것이다. 저자가 꿈꾸는 정원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라 짐작된다.

 

짧은 글 속에 인생의 깊은 성찰이 돋보이는 여운이 있다. 더불어 녹색 가득한 사진이 주는 시각적 안도감이 자신과 만나는 성찰의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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