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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공감
김종진 지음 / 효형출판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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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공간, 인간과 더불어 살아 숨 쉬는 생명체
가을 들녘에 추수가 끝나가면서 낫선 풍경이 눈을 사로잡는다. 내 어린 시절에 볼 수 없었던 것으로 재질이 불분명하지만 하얀색으로 짚을 말아 놓은 것이다. 용도 역시 불분명하지만 어린 시절의 추억이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아 몹시 아쉽다. 어린 시절 이맘때부터 시작된 들판에서의 놀이터가 없어지는 것이다. 논 가운데 짚더미를 쌓아두고 다양한 용도로 사용될 짚을 보관하며 겨울을 나곤 했었다. 그곳은 아이들의 놀이터로 차가운 겨울바람을 막아줄 뿐 아니라 햇볕을 향해 아늑한 은신처를 만들어 놀았던 기억이 새롭다. 그곳은 어른들이 결코 침범하지 않은 공간이었으며 아이들만의 이야기로 가득한 공간이었던 것이다. 

이와 더불어 내겐 특별한 나만의 공간이 있었다. 시골집 뒷방으로 겨울철 양식이 되었던 고구마를 쌓아 둔 공간이지만 어엿한 내 방이었다. 그곳은 내 생활의 중심이었고 친구들과 교류하는 공간이었으며 성장기 청소년이 갖는 은밀함도 있었다. 시골집을 떠나 오랜시간 도시생활을 하면서 집에 돌아가는 날이면 자연스럽게 그 내방이 가장 먼저 떠올랐고 집에 도착하며 빼놓지 않고 방문을 열어보곤 했다. 어린 시절 내 비밀장소였기에 50을 바라보는 지금도 가끔 생각나곤 한다. 

이렇게 공간은 특정한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다. 그 이야기로 인해 시간이 더해질수록 기억 저편에 자리 잡고 있으며 새로움을 만들어 가는 곳이다. 이런 공간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런 기억 속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 책이 바로 대학에서 실내건축설계학과 교수로 있는 김종진의 ‘공간 공감’이다. 저자는 다양한 건축 경험에서 우러난 공간에 대한 독특한 이야기를 꺼내고 있다.  

저자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면서 ‘경험’에 주목한다. 공간이 공간으로써 본래적인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그 공간에 대한 사람들의 공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공간의 특별한 기억이 그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저자의 이야기 전개는 우선 공간이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서 출발하고 있다. 공간은 텅빈 무엇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곳에는 빛, 오감, 기억, 시간 등이 어울려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고 본다. 그러한 공간만이 의미 있는 것이라는 점이다. 

저자의 공간에 대한 추적은 시간과 장소 장르를 넘어서 인류가 만들어 놓은 다양한 문화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건축물, 작은 방, 오래된 마을의 골목, 옛날과 현대가 공존하는 미술관, 호수, 숲속의 산책길 등에서 사람들이 그 공간에서 느낀 어떤 공감을 이끌어 내 공간이 가지는 의미를 확장하며 인간의 삶과 연결시키고 있다. 엄마의 품속에서부터 경험되는 공간은 사람에 따라 역사와 문화 자연환경에 따라 사람마다 각기 다른 느낌을 담아내고 있는 곳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그 빛을 사용하는 용도 역시 직접적인 노출과 반사된 음영으로써의 빛처럼 빛에 대한 느낌 역시 동양과 서양이 다르다.  

이러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만드는 공감에 대해 저자는 공간이 인간의 삶에 어떻게 결부되고 그 공간 속에서 삶을 누리는지를 이야기 전개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그것은 공간의 경험, 공간에서 거닐고 머무는 경험,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인 빛과, 소리, 향기를 보고 맡고 들으며 만지는 과정 그리고 그러한 직접적인 경험을 기억하며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있음을 우리들에게 각인시켜주고 있다. 이를 통해 “공간의 형이상학적 정의나 건축의 양식보다 중요한 건, 그 공간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의 존재, 그 존재의 경험을 탐구하는 일이다.”라고 말하며 존재에 대해 성찰로 이끌어간다. 

공간에 대한 주목은 현대 건축이나 도시 설계에서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아가는 모습이다. 도시 재개발이나 주택단지의 조성에서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공간의 활용이 강조하는 시대가 되었다. 공원의 조성이나 산책길, 인공섬 등 새롭게 만들어지는 이러한 공간은 사람들이 쉼과 소통의 장소로 활용되며 그 가치를 높여간다. 

공간에 대한 상대적 깊이와 넓이는 시간에 비래한다. 시간과 더불어 삶을 꾸려가는 동안 특정한 공간은 우리들의 기억 속에 쌓이고 그 기억이 우리들의 삶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하여, 공간은 살아 숨 쉬는 생명력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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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 숲이 있다 - 마오우쑤 사막에 나무를 심은 여자 인위쩐 이야기
이미애 지음 / 서해문집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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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 나무 심은 여자
1400만평, 얼마나 넓은 땅일까? 이 땅에 나무를 심고 가꿔 숲으로 만들었다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평범한 땅이 아니다. 봄철이면 한반도를 비롯해 멀리 미 대륙까지 그 영향을 떨치는 황사가 시작되는 주 무대인 사막이라면 1400만평의 상대적 넓이는 훨씬 크게 다가올 것이다. 중국에 실제로 있었고 지금도 사막에 나무를 심기위해 걸음을 멈추지 않고 있는 한 부부의 이야기다. 

세상에는 불가능을 현실로 바꾼 사람들의 이야기가 제법 많다. 모두가 살지 못하고 떠난 땅에 남아 삶의 터전을 일군 사람들도 그중 주목받는 사람들이다. 우리 역사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일제 식민지 지배를 피해 시베리아로 떠났던 사람들이 소련의 강제이주 정책에 의해 중앙아시아 허허벌판에 내몰렸고 그곳을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으로 탈바꿈 시켰다. 하지만, 그들은 집단이었다. 사람이 살아가기에는 모진 환경이었지만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어 어쩜 의지되고 살았을 것이다.  

‘사막에 숲이 있다’의 주인공 인위쩐과 바이완샹은 사막 한가운데 달랑 두 사람만 남겨졌고 그곳에서 살아야했다. 그들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도시로 갈 수도 없었다. 떠날 수 없다면 자신이 살아가야 할 사막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첫발은 나무시장에 가서 일해주고 그 품삯만큼의 대가를 나무로 가져온 것이다. 그것도 두 사람이 등에 지고서 사막을 건넜다. 그렇게 시작된 나무심기는 현재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사막에 나무를 심는 과정에서 겪었던 그들의 고충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임신한 몸으로 나무를 심다가 아이를 잃기도 했고, 아이를 줄에 묶어놓고 나무 심으로 집을 나서기도 했다. 또한 애써 심었던 나무가 모래바람에 꺾이고 뿌리채 뽑히기도 하고 모래구덩이에 묻혀 수없이 죽어갔다. 죽어간 나무를 보면서 사막에서 나무 심는 방법을 터득해 간 것이다. 그 결과는 자신들이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묵묵히 걸었던 길이다.  

그렇게 1여년이 지나면서 터득한 방법으로 나무를 심고 풀씨를 뿌리며 밭을 일궈 농작물을 가꾸었다. 양을 사서 방목하고 살림이 늘어나 집을 새로 짓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그들의 노력의 결과가 어떤 반응을 불러올지 몰랐다. 부부도 마찬가지였다. 누구에게 보이고자 했던 일이 아니고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일이기에 온갖 어려움과 절망적 상황도 이겨나갈 수 있었으리라. 

이들 부부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진 것도 그들이 보여주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아내를 생각하는 남편이 나무를 팔아 큰돈을 마련한 것을 모르고 나무도둑이 애써 가꾼 숲을 훔쳐가는 것으로 생각하여 관청의 관리들과 도시의 이웃에게 방법을 모색하던 중 알게된 기자들에 의해서다. 어느 날 찾아온 기자들은 자신들의 눈앞에 펼쳐진 현실을 믿지 못했다. 도저히 두 사람이 한 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동 받은 기자들이 지역신문에 보도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하고 이후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40여일이 지나도 사막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 지나칠 뿐 아무도 찾지 않았던 사막 한가운데로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들이 이룩한 기적같은 일을 보고 격려와 삶의 의욕을 찾았다는 편지도 왔다. 또한 직접 찾아와 자신도 나무를 심겠다고 한 사람도 있고 그곳에서 나무심기를 배워 사막을 임대하고 그들이 걸어간 길을 걸어가는 사람도 생겼다.  

“어떤 어려움에고 굴복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싸우는 그녀의 투지가 제게 많은 것을 가르칩니다. 어려울수록 참으라고 가르치고, 넘어지면 일어나라고 가르치고, 생명은 아무리 하잖아 보이는 것도 귀중하다고 가르칩니다.” 

20여년의 나이차이, 신분과 학문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친구라고 생각하며 틈만 나면 찾아와 일손을 돕는 사람이 그녀 ‘인위쩐’을 두고 하는 말이다. 글을 쓰지도 읽지도 못하는 그녀에게 글도 가르쳐 주고 나무에 물도 주고 부엌일을 도우면서 그녀의 삶에서 배운 것이라면서 말이다. 

이제 그녀 ‘인위쩐’은 중국 사막 생태 복원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주요 인사가 되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모래사막이었던 곳에 숲이 생기고 밭이 생기고 길이 나고 우물이 생기고 전기가 들어왔다. 그것을 본 친척들도 하나 둘 그녀를 도우러 사막으로 왔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의 뜨거운 해가, 모래를 동반하지 않은 바람이, 서쪽하늘 붉게 물든 노을이, 한밤중 나무에 물을 주러가는 길을 훤히 비춰주는 달빛이 그녀를 행복하게 한다. 그녀의 행복에 따스한 미소가 번지는 것은 사막에 20여년을 한결같이 나무를 심으며 나무에게 배웠던 삶의 지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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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너무 사랑한 남자 - 책 도둑과 탐정과 광적인 책 수집가들에 대한 실제 이야기
앨리슨 후버 바틀릿 지음, 남다윤 옮김 / 솔출판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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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출 수 없는 유혹, 책 수집
새로 마련한 조그마한 서재는 책을 보관하는 장소를 넘어서 휴식의 장소로 활용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러한 가치는 빛을 더해간다. 책장을 가득매운 책들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책이 주는 또 다른 매력이 충분히 있음을 알기에 하나둘 쌓여가는 책이 책으로만 다가오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 책장엔 누구나 탐낼만한 희귀도서나 절판본과 같은 책은 극히 드물다. 지극히 개인적인 관심사에서 현재 출판되는 도서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책을 출간한 저자의 메일을 받았다. 자신의 책을 처음으로 온라인 서점에 리뷰 등록한 사람이 나라며 저자로써 감사하는 마음과 더불어 무엇이든 그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 책을 출간하고 독자들의 반응을 기대하는 저자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그 책은 저자 박균호의 ‘오래된 새책’으로 저자 역시 자신을 포함한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책 수집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오래된 새책’에 언급된 절판본 권정생과 이오덕의 편지를 모은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가 내 책장에 있음을 기억하고 찾아보았다. 이후 그 책을 소유하고 싶다는 독자의 메일을 받았다. 바로 그런 분들이 책을 수집하는 장서가들일 것이다. 

‘책을 너무 사랑한 남자’는 바로 이렇게 책을 수집하는 사람들과 관련된 이야기다. 희귀본, 고서, 초판본 등 책의 가치를 알아 그 책을 공급하는 서적상과 이러한 책을 수집하는 사람 그리고 이들을 취재하는 사람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이렇게만 본다면 지극히 정상적인 방법으로 책이 유통되는 이야기를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이 책은 그러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존 길키’는 책을 좋아하며 책에 미친 사람이며 그는 책을 수집하기 위해 절도행각을 벌이며 그 차체를 즐기고 있다. ‘켄 샌더스’는 책을 공급하는 서적상으로 눈에 가시 같은 존재인 길키를 잡으려고 ‘책 탐정’으로 나선다. 한 사람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책을 손에 넣으려고 하고 또 한사람은 이를 막으려한다. 이 둘 사이에 책 수집에 관한 취재를 하는 사람 ‘앨리슨 후버 바틀릿’이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다. 

희귀본, 고서, 초판본 등은 수집하는 것에는 상당한 경제적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책 한권에 수백 달러에서 수십만 달러에 이르기에 정상적인 방법보다는 돈을 지불하지 않고 수집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 뒷받침이 된다고 모두가 이러한 책을 수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책의 가치를 알아볼 눈이 있어야 한다. 수많은 수집가들이 고서더미를 뒤지지만 가치 있는 책은 그것을 알아본 사람 손에 들어가기 마련이다. 이는 경제적 가치만으로 희귀본이나 초판본 같은 책을 찾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책 도둑 ‘존 길키’가 사용하는 방법은 부자들의 신용카드번호를 이용하여 전화로 주문하고 이를 찾으러 가는 방식을 택하거나 수표를 발행하여 책을 구입한다. 그에게 책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자신과 남을 구분하고 그 책을 소유하여 자신의 가치를 높인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마음은 책을 수집하고 소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소장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나 역시 책장에 가득한 책을 보며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가지기 때문이다. 물론 수많은 장서가들이 책을 수집하고 소장하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라고는 말하지 못한다.  

“책은 항상 순수한 사랑과 기쁨을 위해서만 수집되어야 하오. 책을 단순한 투자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것을 그저 하찮은 부품이나 상품으로 바꿔버리게 되지요. 이는 책의 문화적 유산을 감소시키고 책 자체뿐 아니라 저자들과 독자들의 권위마저 손상하게 될 것이오.” 

몇 년 사이 책을 보는 방법이 다양화 되었다. 보편화된 스마트 폰이나 태블릿PC, eBook 전용단말기가 보급되면서 최첨단 화면으로 책장을 넘기듯 책을 볼 수 있는 세상이다. 이러한 첨단기기가 종이책의 발행에 미치는 영향은 어떨까? 아닌 독자들에게 책을 구입하는 경향성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출판문화의 다양성에 분명 영향을 미칠 것이기는 하지만 종이책이 사라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것이 수천 년 동안 이어져온 책의 생명력일 것이고 이는 인류가 살아가는 동안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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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탈진 음지 - 조정래 장편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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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비탈진 음지에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다. 일제 침략기를 힘겹게 살아냈으며 한국전쟁의 폐허를 딛고 오늘 우리가 누리는 물질적 풍요로움을 일구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들이 겪었고 이웃이나 친구들이 어쩔 수 없이 내몰렸던 우리 시대 이야기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버젓이 살아 있는 오늘날 까마득히 먼 이야기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그렇게 금방 잊혀질 이야기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애써 외면하고 살아가고 있다. 

그것을 다시 꺼내는 작가가 있다. 경제성장이 모든 것을 앞서 절대 절명의 지상목표로 되었던 시대, 그 그늘에서 삶을 이어왔던 우리 이웃들이 아직 가슴 한켠에 담아두고 있으면서도 아주 먼 옛날의 이야기라도 대하듯 생소한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새롭게 개작하여 우리 앞에 내 놓았다. 조정래 작가의 ‘비탈진 음지’가 그 작품이다. 

40여 년 전에 발표했던 작품을 다시 내 놓는 이유가 무엇일까?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동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경종이라도 울리듯 깊고 무거운 소리를 묵묵히 내 놓은 것이 어쩌면 작가가 작품 속에 다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잊혀져 가는 것이 못내 아쉬운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당시 이야기 하고자 했던 현실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지만 외면하듯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다시 이야기 하고 싶은 작가의 사명감일까? 

50을 바라보는 내 나이지만 생생하게 기억되는 장면이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돈벌러 도시로 떠난 친구들의 뒷모습이다. 그들을 다시 만난 것은 추석명절 말끔한 옷차림에 옷때깔이 변하고 말씨도 조금 다른 모습으로 변하고 나서였다. 낫선 도시에서 적응하며 돈을 벌어야 한다는 목표로 남들이 교복입고 가방매고 학교로 가는 시간 공장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디뎠을 그들의 모습은 웃고 있지만 그 웃음 너머 무엇인지 모를 쓸쓸함을 보았던 그 모습이 여전히 살아 있다. 

‘비탈진 음지’는 경제성장이 최고의 선이었던 시대,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우리들이 겪었던 이야기다. 자의든 타의든 도시로 내 몰리던 그때 남의 소를 몰래 팔고 야간 열차에 몸을 싣고 낫선 서울로 무작정 상경한 한 남자의 고달픈 삶의 행로가 그려지고 있다. 낫선 곳에서 고만고만한 이웃들이 모여 판자집을 짓고 살았던 비탈진 산동네에 터전을 잡고 어떻해든 살아보려고 막노동판, 지게꾼, 땅콩장사, 칼갈이 등으로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그렇듯 자신의 몸을 밑천삼아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던 주인공에게 하루하루 버텨내는 것은 희망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다. 칼갈이로 연명하는 복천 영감, 하루 밤 사이 연탄가스로 온가족이 죽음을 맞았던 떡장수 아줌마, 가족의 입을 줄이기 위해 서울로 온 식모 아가씨, 복권 파는 소녀 등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이었다. 그런 일이 40여 년 전 우리 부모 세대들의 삶을 나타낸다는 것으로는 다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다. 작가가 다시 작품을 독자들에게 내놓은 이유가 그것이리라. 작가의 눈에 40여 전 우리 사회가 안고 있었던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계속되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 바로 그것이리라. 

국민소득 150달러에서 20만 달러로 급성장을 이룬 만큼 눈에 보이는 세상을 바뀌었다. 그저 보이는 겉모습이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누구든 알 수 있다. 점심을 먹지 못하는 학생이 널려있고 도시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삶의 터전에서 내몰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느끼는 상대적 격차는 40년 전보다 훨씬 더 클 것이라는 것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그려가던 작가의 작품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산물이다. 굳이 참여문학이니 민중문학이니 거창한 이름을 붙이지 않더라도 작가의 눈에 비친 현실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조정래 작가가 그런 우리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기에 광범위한 독자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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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랑 - 왕을 움직인 소녀
이수광 지음 / 네오픽션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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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삶의 근본은 무엇일까?
한 시대를 이끌어 간 정신적 지주는 막강한 힘을 가진다. 그 이념은 사회 제도적 차원을 넘어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의 모든 것을 지배하며 삶의 척도를 규정하기 마련이다. 우리 역사 조선에서도 이는 예외 없이 그 힘을 발휘했다. 바로 유교적 이념이 그것이다. 인을 모든 도덕을 일관하는 최고이념으로 삼아,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 정치학이다. 이 이념은 수천 년 동안 중국을 비롯한 한국, 일본 등 동양사상을 지배하여 왔다. 그 유교의 가치의 발현은 곧 효라고 볼 수 있다. 

효는 부모님에 대한 자식의 도리를 말하며 긍정적인 측면에 부응하는 면이 강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으나 한편으로는 자식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며 부정적인 면도 함께 보여준다. 효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을 기본으로 하지만 때론 강압적인 사회의 압력으로 작용하여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도 당연시 여기는 풍토를 용납하기도 했다. 또한 사회를 유지시키는 통치기반으로 작용하며 많은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온 나라 도처에 아직까지 남아 있는 정려문이나 열녀문 등이 그것을 대표하고 있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담고 있는 기록으로는 정통 역사서라고 하는 왕조실록을 비롯하여 각종 문헌에 나타나 당시를 상상하는데 참고할 수 있다. 조선에서 효는 모든 것의 출발점이었다. 이를 잘 알려주는 이야기를 소재로 삼아 조선시대를 현대사회로 가져온 역사소설 한 편을 만난다. 그것이 바로 이수광의 ‘차랑’이다. 

이 작품 ‘차랑’은 조선시대 있었던 사실 두 가지를 하나로 엮어 작품화 했다.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산송 기록과 이항복이 지은 ‘유연전’을 엮어 하나의 이야기로 재구성한 것이다. 성주 땅 천석지기 박수하는 세 명의 자식을 두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강압적인 과거급제에 대한 성화를 이기지 못해 집을 나가고 두 딸은 아버지를 도와 집안을 꾸려간다. 큰딸 문랑은 큰살림을 도맡아 꾸려가는 용맹하고 기개 있는 여장부로 작은 딸은 학문에 영민함을 보이며 조선 선비들 사이에서 만권당이라 불리는 서옥 하헌당을 관리한다. 

어느 날 10여 년 전에 집을 나갔던 아들이 돌아오면서 박수하의 집은 혼란에 빠져든다. 너무도 흡사한 외모는 분명 아들이지만 아들로 받아들이기에 뭔가 미흡한 점이 있어 집안에 들여 놓지만 못내 의구심을 풀지 못한다. 며느리 이숙영의 적극적인 옹호로 어느덧 아들로 자리 잡아가는 듯 하더니 모사를 꾸몄던 며느리의 오빠 이창래의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며 더욱 혼란스러운 지경으로 치달아 간다. 이창래는 한양에서 나무꾼이자 사기꾼으로 연명하던 사람을 아들 박제구로 꾸며 그 집안의 재산을 가로챌 욕심이었다. 이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은 작은 딸 창랑이었다. 창랑은 어머니의 재사를 앞두고 불공을 드리기 위해 절에 가던 길에 화적에게 겁탈을 당할뻔 하다가 모면하고 이때 만난 박원규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그와 혼인하기를 바란다. 박원규와 박차랑은 그 일을 계기로 눈이 맞고 마음이 맞아 혼례를 약속한다. 

성주의 박수하 달성의 박경여의 집안이 산송을 벌이며 철천지원수가 되고 그 와중에 창랑의 아버지 박수하는 죽고 언니 문랑마저 죽임을 당하게 되어 박수하의 집안은 풍지박산이 난다. 언니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한양으로 올라간 창랑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당시 왕 숙종에게 신문고를 울려 왕의 명으로 암행어사와 탄핵사를 거듭 파견하지만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지 못하고 만다. 이 틈을 타 이창래와 며느리 이숙영은 박수하 집안을 접수하여 재산을 빼돌리려 한다. 하지만, 영민한 작은 딸 차랑의 재치로 이창래 일당의 음모가 밝혀지고 두 가문은 화해하며 박원규와 박차랑은 혼인하고 언니 문랑은 정려문을 하사 받는다. 

부모에 대한 효, 풍수지리가 조선시대에 널리 펴져 산송이 많이 벌어졌던 사회풍경 등 조선당시의 생활상을 잘 보여주고 있는 이 이야기는 역사 소설이 보여주었던 전형적인 모습에서 조금은 다른 주인공들을 등장 시키며 시대를 뛰어 넘는 사람들의 욕망과 사랑, 질투와 분노 등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시대가 변했다고는 하지만 사람들이 근본적인 모습은 그리 변하지 않았나 보다. 조선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나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이 그리 달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근본은 어디에 있을까 조선시대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지금 우리를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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