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가는 날을 잡아놓은 후로는 매일같이 이사 준비를 한다. 마음의 준비야 남편이 발령 나는 순간부터 했고, 요즘 나의 이사 준비는 정리하기와 버리기, 그리고 청소하기.  

갈 길이 멀다 보니 이삿짐 차가 오면 2시간 안에 짐 싣고 떠나는 게 나의 목표다. 그렇다 보니 포장 이삿짐을 불렀음에도 온통 내 손에 의해 정리와 포장이 끝나가고 있다. 이삿짐 아저씨들은 들어다 싣기만 하면 되도록 말이지. 아무래도 내가 한 사람 일당은 챙겨야 할 듯. 

요즘 이삿짐 아저씨들 무거운 책을 제일 싫어한다기에 유아틱한 그림책들은 이미 여러 차례 동생네 집으로 보냈고, 사은품으로 받아온 플라스틱 용기들, 결혼 전에 얼마 주고 샀는지가 생각나서 여지껏 걸려 있던 옷과 가방들, 이면지로 쓰려고 하염없이 쌓여 있던 종이들, 아이들 손이 안 가는 장난감들... 쓰지도 않는 물건들이 참 많기도 하다. 이번에 모두 정리.

거기다가 주방이랑 베란다, 창틀 청소까지. 지금 사는 아파트가 회사 관사다 보니 지저분하게 해놓고 가면 다음 이사 들어오는 직원에게 욕 얻어 먹을 것 같아 그야말로 반짝반짝 윤이 나게 청소중. 그 대가로 손 여기저기 상처가 생기고, 어깨랑 손목이 정상이 아니다. 평소에 얼마나 일다운 일을 안 하고 살았는지 알 만해.

사실 필요 없는 물건들은 평소에 처리하고 청소도 열심히 하면서 살았으면 이런 고생 안 해도 되련만 살림은 하기가 싫으니 원, 주부로선 빵점짜리다. 이사할 때마다 후회하지만 다음 이사 가서도 여전히 이렇게 살 게 뻔해. 

오늘은 점심 약속도 있고, 학교에 인사도 하러 가야 되고, 폐기물 스티커도 사러 가야 되고, 관리비 그런 거 정산도 해야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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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09-12-11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주하시겠네요.
이사를 한다는 것이 말같지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쵸?
이것저것 남자의 손이 필요한 곳과 여자의 손이 필요한 곳이 따로 있기도 하고 떠날 때와 들어갈 때의 뒷 설거지가 또 장난아니기도 하지요.
심란하시겠지만 차근차근 준비하시는 님의 모습이 행복해 보이는 데 맞는 거죠?

소나무집 2009-12-15 09:39   좋아요 0 | URL
드디어 이사해놓고 그냥 앉아 있어요. 책 빼면 짐도 많지 않은데 얼렁얼렁 하기가 싫으네요.

꿈꾸는섬 2009-12-12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이사 날이 잡혔군요. 분주하시겠어요. 저도 평소에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라 잘 쌓아 두고 살아요. 무사히 이사 잘 하셨으면 좋겠어요.^^ 이제 온 가족이 모여 살게 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고 좋은일이라고 생각되요. 축하드려요.^^

소나무집 2009-12-15 09:40   좋아요 0 | URL
이번 집에서 쌓아놓고 살지 않으려고 하는데 잘될까 모르겠네요.
 

’책과 연애하다’라는 이벤트 제목을 보는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건 남자들이었다. 20대 내 주변에서 서성거렸던 남자들에 대한 기억. 지금은 이름도 가물가물하고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지만 나의 20대를 기쁘게도 우울하게도 만들었던 추억 속의 그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대학 시절 나는 좀 과격하고 터프한 걸 멋있어라 했다. 취향도 성격도 여성스러운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탓에 남자들이 내 주변에 있을 때 난 ’연애’라는 말을 몰랐다. 그래서 그들이 내 주변을 맴돌며 연애와 관련된 신호를 보냈어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난 그 남자들이 항상 있는 사람들인 줄만 알았다. 학교에 가도, 집에 가도(오빠가 다니는 학교 주변에서 오빠랑 자취한 덕에) 남자들이 들끓었으니까.

책과 연애한 이야기를 하라는데 뜬금없이 남자 이야기를 꺼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대학 시절의 난 책을 읽는 것도, 책을 사는 것도 참 좋아했다. 돈이 있으나 없으나... 지금도 그 버릇 못 버리고 있지만. 그래서 내 주변을 서성대던 남자들에게 책을 선물하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나를 어여삐 여겼거나 혹은 내가 좋아했던 그들에게 내가 준 건 마음이 아닌 책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책은 내 인생의 가느다란 소통로이면서 지치지 않는 중매쟁이였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결혼한 이후 거의 들여다본 적이 없는 김지하, 양성우, 신경림, 박노해, 김광규, 황지우... 등의 시집은 지금도 여전히 나의 책꽂이 몇 칸을 빼곡하게 차지하고 있다. 이들의 시집은 80년대 대학 주변 서점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었고, 우리는 투사가 아니어도 이런 시인들의 시집을 주고받았다. 꺼내 볼 것도 아니면서 지금껏 그 책들이 책꽂이에 꽂혀 있는 것은 제목만 바라보아도 문득 문득 떠오르는 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처럼 아련하게라도 추억하고 싶은 젊은 날이.  

시인이 될 것도, 시에 특별한 관심이 없어도 시를 읽던 그 시절 문지나 창비 시선은 돈이 넉넉하지 않은 대학생의 마음을 전하기에 딱이었다. 지금이야 시집 한 권에도 만원 가까이 하지만 20년 전에는 학교 앞 서점으로 달려가 2000원이면 유명한 시인의 마음과 인생을 통째로 내 것으로 만들 수도, 시인의 마음인 척하며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전할 수도 있었다. 늘 나에게 친절했던 선배나 동기들에게 메모 한 줄 써서 내밀 수 있었던, 사소했지만 아름다운 물건, 그게 바로 시집이었다. 

남자들이 우글대던 대학을 졸업한 후 나의 본격적인 연애는 짝사랑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슬프게도 정작 내가 진짜 연애를 하고 싶은 남자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거나 이미 연애중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멀찍이서 바라만 보았던 남자들과 나 사이에도 늘 책이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남자랑 연애를 한 것이 아니라 남자들에게 선물할 책과 연애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쓸쓸하거나 외로운 마음을 가득 담아 밑줄을 긋고, 또 메모를 하면서...

K를 처음 만난 곳은 광화문 교보문고였다. 책보다는 정치, 경제에 더 관심이 많은 K에게 난 늘 문학과 작가에 관한 이야기를 했고, 그는 내 이야기를 들으며 소리 없이 웃기만 했다. 지금 그가 기억나는 것은 헤어지던 날까지도 난 그에게 책을 선물했는데 어색하게 그 책을 들고 지하철을 타던 모습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왜 그리 미련스럽게 책을 선물했는지... 만약 책이 아닌 다른 것을 선물했다면 나의 연애는 좀더 일찍 성공했으려나? 

또 한 남자, 짝사랑인 줄 알면서도 끈길지게 내 마음을 전해주고 싶었던 S는 오빠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오빠를 통해 S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알고 있던 나는 그가 다니던 회사로 책을 보내기 시작했다. 매달 똑같은 책 두 권을 사서 한 권은 S에게 보냈고, 한 권은 내가 읽었다. 그리고는 전화를 걸어 그 책을 읽었는지 확인하곤 했다. 꽤 오랫동안 책을 보냈던 것 같은데 무뚝뚝한 그가 내게 건네준 건 쓸쓸함뿐. 그런데 지금도 알 수 없는 건 왜 S가 책 보내지 말라는 말을 한 번도 안 한 건지... 결혼하기 전에 물어봤어야 하는데. 여기저기 뜨르르르 소문났던 그 짝사랑은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야 끝을 맺을 수 있었다.  

내가 남자들에게 선물했던 수많은 책들을 생각하면 책선물을 받은 적은 의외로 많지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의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신촌 홍익문고 2층이었는데 지금도 있나 모르겠다.) 그의 손엔 책이 들려 있었고, 내게 책을 먼저 선물하는 선수를 쳤다. 오우, 세상에! 내가 그토록 책선물을 하며 연애를 걸고자 했던 남자들은 다 떠나갔는데 나에게 책선물을 하며 연애를 걸어오는 남자가 있을 줄이야! 음, 인연은 따로 있었음이야! 책은 그렇게 내 곁에서 나의 마지막 연애를 더 따끈따끈하게,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결혼과 함께 나는 더이상 남자들에게 책선물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책과의 연애가 끝난 것은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책을 선물하며(알라딘 플래티넘 멤버십을 일년 내내 유지할 정도로) 책과 연애중이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나의 연애사에 줄기차게 함께 했던 책들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는 꼭 해줘야 할 것 같다. "책아, 정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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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집 2009-12-07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 이맘때쯤 어쩌다 눈에 띈 인터파크 이벤트를 보고 올렸던 글인데,
거기는 지우고, 여기에 옮겨놓는다.

순오기 2009-12-08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00공원에서 봤었지만 다시 봐도 역시 즐거운 책과의 연애사!^^
책이 없었다면 어찌 살았을꼬? 앞으로도 물론이지만요~~

소나무집 2009-12-09 11:26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이에요.

같은하늘 2009-12-08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과의 연애사 참 재미납니다.^^
몇년전에도 홍익문고 있는거 봤는데 지금은 모르겠네요.
책이 정말 많은 사람들과의 인연을 만들어주니 저도 고맙다 해야겠어요.^^

소나무집 2009-12-09 11:28   좋아요 0 | URL
그죠?
특히 알라딘에서 만나는 분들은 책과는 뗄 수 없는 인연들이지요?

2009-12-09 1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나무집 2009-12-10 14:32   좋아요 0 | URL
그래서 즐겁지용?

2009-12-10 18: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꿈꾸는섬 2009-12-12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재미나요.^^ 인연이 따로 있었다는 님의 말씀 공감^^
 

13일 이사를 앞두고 있어 심란하다. 남편은 이주간의 해외 출장에, 한 주는 집 보러 다니고, 또 한 주는 집계약에 돈 빌리러 다니느라 한 달째 못 내려오고 있다. 난 완도에 앉아 전화로 지시하고 결정하고... 몸은 편안한데 마음은 무지하게 심란. 한달음에 달려가기엔 서울도 원주도 멀기만 하여 남편의 눈과 마음을 믿으며 모든 걸 맡기고 있다.

어제 아침 싱가폴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은 쉬지도 못하고 원주에 가서 그동안 가계약 상태였던 집을 정식으로 계약하고, 대출 문제까지 해결했다. 시끄러운 은행에서 전화로 오랫동안 삼각 상담(은행 담당자와 남편과 나)을 한 후 서울로 간다면서 다시 전화를 했다. 

전화를 끊고 앉아 있는데 마음이 울적해져서는 방에 들어가 잠시 누웠는데, 돈 없는 것도 남편이 안 오는 것도 다 서글퍼져서리 눈물이 나왔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데 눈물은 계속 나오고... 전화해서 누군가에게 위로라도 받고 싶은데 6시가 넘어가고 있으니... 아줌마들은 저녁 준비할 시간이겠구나 싶어 포기... 거실에서 책을 보고 있던 딸아이를 불렀다. 

"딸아, 엄마가 눈물이 난다. 우리집엔 왜 이렇게 돈이 없냐? 자꾸 우울해진다야." 했더니 울 딸, "엄마 너무 슬퍼하지 마. 우리가 돈은 없지만 여행 많이 다녀서 마음이 넓어졌잖아. 엄마, 괜찮아!!!"  

아우 참, 딸의 이 한마디에 눈물이랑 웃음이 동시에 나왔다. 우리가 여행 다니느라 돈을 못 모으는 줄 아는 딸. 

다시 내 말, "아빠가 피곤하다고 하길래 내려오지 말랬더니 진짜 안 오고 서울로 가는 거 있지! 혹시 아빠 올지 몰라서 샤브샤브 해 먹을려고 고기 사다 놨는데... " 울 딸, "엄마, 그랬어? 내가 나중에 아빠 교육 단단히 시켜줄게. 엄마 속마음을 들여다보라고..."

딸이랑 이야기하는 동안 마음이 좀 풀려서는 아이들이랑 샤브샤브 칼국수해서 배 뚜들겨가며 늦은 저녁을 먹었다. 딸, 저녁 먹으며 하는 말, "엄마 우울증 걸리면 큰일 나. <화려한 거짓말>에 천지도 우울증 걸려서 죽었잖아." 그래서 또 웃었다. "알았어. 너 같은 딸이 있으니까 우울증 걸릴 일은 없겠다!"  이러면서 웃고...

어젯밤 잠든 딸 옆에 누워서 위로받을 딸이 있다는 게 얼마나 든든하던지, "고마워, 딸아!" 소리가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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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12-05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딸이 크면 친구가 돼서, 불행하게도 남편보다 훨 나을 때가 무지 많아요.^^

소나무집 2009-12-06 22:47   좋아요 0 | URL
울 딸 열두살인데 벌써 남편보다 제 마음 알아줄 때가 더 많아요.^*^
님은 딸이 둘이나 있어서 더 좋지요?

세실 2009-12-05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억만금을 주고도 바꿀수 없는 예쁜 아이들이 소중한 재산이죠. 뭐 나중에 자식 덕 보고 살면 되잖아요. 쿄쿄쿄

소나무집 2009-12-06 22:48   좋아요 0 | URL
우리 세대에서는 진짜 자식 덕 보는 건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래도 잘 키워놓고 덕 좀 보고 싶기는 해요.ㅋㅋㅋ

꿈꾸는섬 2009-12-05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에게 딸이 꼭 필요하다잖아요. 그 역할 톡톡히 해내니 더 예쁘고 사랑스럽네요. 엄마 마음 헤아려주는 딸이 부럽기도 하구요. 이사 준비로 너무 분주하시겠어요. 힘내세요.^^

소나무집 2009-12-06 23:17   좋아요 0 | URL
이것저것 걱정되는 일들은 많은데 부부가 늘 잘 되겠지주의자다 보니 함께 있으면 즐거워요. 요즘 남편이랑 수다 떤 지가 오래 돼서리 더 울적했던 것 같아요.

마노아 2009-12-06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읽으면서 제가 다 위로가 되는데 소나무님은 얼마나 감동적이었을까요. 이렇게 속깊은 딸내미가 있으니 소나무님은 참으로 부자세요. 여행으로 마음이 넓어졌다는 표현도 정말 근사해요. 제 마음이 다 넓어집니다.^^

소나무집 2009-12-06 22:53   좋아요 0 | URL
울 딸이 속이 좀 깊기는 해요.
제가 늘 끼고 살면서 엄마의 깊은 속을 다 보여줘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우리 딸 표현대로 되려면 돈 없어도
아이들 마음을 더 넓혀준다 생각하고 여행은 계속 다녀야 할듯 하네요.

2009-12-06 14: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6 2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ony 2009-12-06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님이 정말 의젓하고 대견하네요.
우리 딸도 그렇게 컸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깁니다.^^

소나무집 2009-12-06 23:36   좋아요 0 | URL
고마워요.
민이네 삼남매도 엄마 마음 헤아리면서 잘 클 거예요.
님이 자연 속에서 잘 키우고 있잖아요.

치유 2009-12-07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권도 심사는 잘 마쳤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들어왔더니 이사날짜가지 잡으셨군요..
이래 저래 맘스시고 애스셨을 남편분에게 위로해드려야겠네요.

옆에 이런 딸이 있다는것은 행운중의 가장 큰 행운일거에요..아는 사람만 알지요??ㅋㅋ
기특하고 대견스럽고 그래요..그냥 듣기만 해두요..여행은 맘을 넓게 해주는게 확실한것 같아요.

샤브샤브 셋이서 맛나게 배부르게 먹고 평온한 모습으로 잠들었을 모습들이 참 이쁘다오^^_.

무슨 아파트 몇동 몇호에여??
오후 늦게나 도착하시겠네요..

소나무집 2009-12-07 16:53   좋아요 0 | URL
아이들 기말 시험 끝나는 거에 맞춰서 이사 날짜 잡았는데 시험이 일주일 미뤄져서는 결국 시험도 못 보고 이사 가게 생겼네요. 원주는 이번 주에 볼 것 같은데 울 얘들 기말 시험 없이 학년을 마칠 듯... 딸이 있는 사람만 그 마음 알지요?^*^

2009-12-07 16: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같은하늘 2009-12-08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두살 딸아이가 속이 참으로 깊네요. 부럽부럽~~~
전 님들이 딸자랑 할때 정말 속상한 사람이랍니다.^^
마음 편하게 이사 잘하시길 바래요~~~

소나무집 2009-12-10 09:12   좋아요 0 | URL
동생하고 싸울 땐 아기 같아요.
고마워요.

2009-12-09 1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나무집 2009-12-09 11:26   좋아요 0 | URL
^^
 

지난 주말에 대학 선배 부부가 다녀갔다. 20년 만에 만난 선배님이시다. 한 학번 위 85학번인 그 선배는 학교 졸업 후 작년까지는 단 한 번도 기억 속에 떠올려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런 선배와의 인연이 이어진 건 작년 어느 날 알라딘을 통해 날아온 메일 한 통 때문이었다.  

서평을 쓰다 보면 가끔은 책을 편집한 사람들로부터 감사 메일을 받곤 했는데, 메일을 보낸 사람의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이름이 특이해서 한 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는 그런 이름이었기에, 혹시나 싶어 학교와 학번을 확인하는 문자를 보냈더니 바로 전화가 왔다. 그 선배가 맞았다. 하지만 그 선배에게 나는 기억나지 않는 후배였다. 나는 그 선배가 이름을 읊어대던 누구 누구 옆에 조용히 서 있던 아이였으니까.

학교 다닐 적 그에 대한 기억은 시를 쓰는, 무서운 선배였다는 것뿐. 신입생 환영회하는 자리에 나타나 군기 확실하게 잡더니 학교 다니는 동안 내내 후배들 갈구는 역을 도맡아 했다. 이런 선배는 어디나 있더라만. 그러니 그 선배 그림자만 보여도 멀리 돌아서 다니곤 했다. 눈에 띄면 불러세워놓고 이것저것 물어보고, 데모하러 가자, 술 먹으러 가자 그러고, 그때는 그게 참 싫었다. 

학교 졸업하고 그런 선배가 있었다는 사실도 잊었더랬는데, 메일을 받은 이후 가끔 전화가 왔다. 존대말도 낮춤말도 아닌 어정쩡한 말로 나누는 간단한 대화였다. "신간 나왔는데 서평 좀 써 주쇼." 뭐 그런... 그리고 말끝에 빠뜨리지 않고 하는 말이 있었다. 완도에 오고 싶다고. 

그 선배는 오랫동안 다니던 출판사를 나와 지난 봄에 출판사를 차렸다. 처음 그 소식을 전해 왔을 때 이 어려운 시기에 출판사를 차리면 힘들지 않을까 걱정을 했다. 하지만 책을 고르는 안목이 남달라서인지 다행히 내는 책마다 반응이 좋다고 싱글벙글이다. 알라딘에서 내가 부탁한 몇 분이 신간 서평을 써주시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늘 고마워하신다. 

그 선배가 지난 토요일 아침 진짜로 완도에 왔다. 선배를 집으로 부를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남편도 해외 출장을 가는 바람에 내려오지 않았고, 학교 다닐 때 마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불편했던 사람인고로... 그런데 완도라는 전화 통화 끝에 "현대아파트지, 지금 갈게." 그래서 20년 만에 집에서 대면하게 된 선배다. 아침 시간이라 청소는 물론 안 했고, 나도 세수만 간단히 한 어수선한 꼴로. 

그런데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선배의 태도가 자주 만나던 사람 같았다. 전화 통화할 때는 어정쩡했던 대화도 편한 대로, "아들 녀석은 왜 안 보여?" 이런 식이었다. 속으로 살짝 긴장을 하고 있었는데 그 한마디에 긴장이 풀어진 나도 바로 아줌마 근성이 나왔다. "선배님, 못 생긴 건 여전한데 살이 좀 찌셨네요. ㅋㅋㅋ "  이게 내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던 선배와의 첫 대화였다.

아침을 먹었을 리 없는 선배 부부를 위해 콩나물국을 끓이고 달걀찜을 해서 부랴부랴 아침상을 차렸다. 반찬도 없는 밥을 부부가 어찌나 맛있게 먹던지... 선배는 여직껏 독신으로 살다가 작년에야 부인을 만나 지금 같이 출판사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사모님이라고 불렀더니 나보다 세 살이나 어리다며 오히려 날 언니라고 불렀다. 

하루 동안 완도 구경도 시켜주고 같이 밥도 먹으면서 알게 된 사실은 내가 그 선배에 대해 제대로 아는 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20년 동안 변했을 수도 있지만 그 선배는 마음이 여리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학교 다닐 적 후배를 불러세우고 까칠하게 굴었던 것도 다 관심과 사랑의 표현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이제야 들었다. 이번에 만나지 않았다면 학교 다닐 적 모습 그대로 그 선배를 기억했을 텐데... 소중한 만남, 알라딘 덕에 새로운 인연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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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09-12-03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을 통해 새로운 인연이 시작된 거였군요.^^ 좋은 인연 되시길 바래요.^^

소나무집 2009-12-04 18:59   좋아요 0 | URL
네. 학교 다닐 때는 무서워서 피해 다니기만 하던 선배였어요.
봄에 필동 한국의집에서 전통혼례로 결혼식 올린다고 해서 가보려고 해요.

같은하늘 2009-12-04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만남 아름다운 인연이 이어지시길 바래요.^^
태그를 보니 이분이 맹앤앵 대표님이신것 같네요.
저도 한권 구입했는데 재미있고 다른 책들도 좋아 보인다고 전해주세요.^^
그나저나 이사가신다고 하시는것 같던데 마음이 많이 바쁘시겠어요.
소나무집님이 완도 계실때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ㅜㅜ

소나무집 2009-12-05 11:07   좋아요 0 | URL
네, 맹앤앵 대표 맞아요.^^
사람이 나이가 들면 변하긴 하나 보더라구요.
부드러운 남자가 되었더라니까요.
같이 온 부인도 마음에 들고...
네, 이사 가기 전에 오셨으면 좋았을 텐데 정말 아쉽네요.
제가 원주로 이사 가니까 그곳으로 놀러오세요.

순오기 2009-12-05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20년만에 만나는데 집으로 불쑥 올 수 있다는 건 학교 선배라 가능하죠.^^
콩나물 국 달걀찜을 부랴부랴 해서 상차린 님도 맘이 따뜻하고요.
13일 원주로 가신다고요? 얼마 안 남았네요~ 원주엔 극장은 있겠죠.^^

소나무집 2009-12-05 11:37   좋아요 0 | URL
그런 것 같아요.
친하게 지내진 않았지만 몇 년 동안 멀찌감치서라도 얼굴 보며 살았던 선배니까. 미리 집으로 온다고 했으면 준비하느라 더 스트레스 받았을 텐데 갑자기 오니 뭐 그런 스트레스는 없었어요. 드뎌 이사 가네요. 제일 먼저 영화 보러 가고 싶어요.

치유 2009-12-07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후배를 두셔서 맘 든든하고 좋으셨을것 같아요.

역시 그 선배님 안목은 띄어나신듯..

소나무집 2009-12-07 16:57   좋아요 0 | URL
배꽃님, 글 너무 잘 쓰신다고 동화 쓰시라고 전해 달랬어요.
 

딸아이(5학년)는 완도 내려오면서부터 다니고 싶은 학원은 미술 하나뿐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다니고 있는 미술 학원. 지난 토요일 전시회를 한다기에 다녀왔다. 

작년부터 누나랑 같이 가서 놀다 오라고, 아들(3학년)도 보냈더니 아들 작품도 보였다. 누나 말에 의하면 진짜 놀기만 한다던데...


지우의 수채화. 선생님이 손을 봐준 흔적이 많이 보인다고 했더니, 울 아들 2% 정도라는데 믿을 수 없어...


선우.  


선우.  


선우의 수채화. 사람들의 모습이 길쭉길쭉한 게 어딘지 우리 가족을 닮았다.


선우의 유화. 선생님의 작품을 보고 그렸다는데 제법 잘 그렸다.


엄마 손을 끌고 다니며 제 그림을 보여준 후 혼자 놀고 있는 아들.  


함께 미술 학원에 다니는 친구 이삭이(오른쪽)와 함께. 사진 좀 찍게 예쁘게 서 보라는 말에 끝까지 얼굴 보이기를 거부하던 두 아이. 슬슬 사춘기로 접어들어가는 아이들. 부쩍 큰 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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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9-11-23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등학생 솜씨라 보여지지 않을 만큼 잘 그렸어요. 연필소묘인가요? 그것도 좋고 항아리그림도 좋고. 유화는 걸어놓으면 집이 환해질 것같아요

소나무집 2009-11-25 10:45   좋아요 0 | URL
집에서도 공부는 안하고 맨날 그림만 그리고 앉아 있어서 잔소리 하게 만들어요. 그죠. 유화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어려울 것 같은데 제법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순오기 2009-11-23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훌륭해요, 훌륭해!!
초상권 확실히 보호됐군요.^^

소나무집 2009-11-24 10:33   좋아요 0 | URL
혼자 있을 땐 그러지 않더니 친구랑 있으니까 더 심해지더라구요.

hnine 2009-11-23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보통 솜씨가 아니군요.
저렇게 붓터치가 보이게 그리려고 아무리 해도 잘 안되던 기억이 나서 저는 일단 수채화에서 붓터치와 명암부터 보거든요. 유화도, 소묘도 훌륭합니다.

소나무집 2009-11-24 10:33   좋아요 0 | URL
아마 선생님이 많이 봐주셨지 않나 싶어요.

마노아 2009-11-23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솜씨 너무 좋아요! 벌써 이 정도라니, 앞으로 좋아하는 그림을 계속 그린다면 얼마나 더 멋진 작품이 나올까요. 훌륭해요!!

소나무집 2009-11-24 10:34   좋아요 0 | URL
이사 가서도 계속 시켜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좀 해야 될 것 같아요.

무스탕 2009-11-23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우의 유화는 정말 이뻐요!!

소나무집 2009-11-24 10:40   좋아요 0 | URL
직접 구도를 잡은 건 아니고 보고 그린 거래요.

꿈꾸는섬 2009-11-24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잘 그리는데요.^^ 넘 멋져요.

소나무집 2009-11-24 10:35   좋아요 0 | URL
사실은 그림 잘 그리는 딸이 저도 부러워요.

2009-11-24 1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24 1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11-24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 부러워요.저는 김태희 그리려고 하면 완성작은 뺑덕엄씨가 되더라구요.

소나무집 2009-12-02 10:01   좋아요 0 | URL
ㅋㅋㅋ
저도 사람 잘 그리는 화가들이 제일 멋져 보여요.

치유 2009-11-25 0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하~~~!솜씨가 대단하네요..전 그림 잘그리는 사람이 젤 부러운데..선우 대단해요..

소나무집 2009-12-02 10:02   좋아요 0 | URL
님, 나중에 이사 가거들랑 미술 학원 소개 시켜주세요. ^*^

2009-11-25 1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2 1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같은하늘 2009-12-02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솜씨가 보통이 아닌데요~~ 잘하고 좋아한다면 계속하게 해주셔야지요.^^

소나무집 2009-12-02 10:03   좋아요 0 | URL
그래야겠죠? 근데 공부도 해야 하는데 공부는 뒷전이니....

2009-12-06 14: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6 2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9 1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