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는 나와 함께 일 년 가까이 한국어를 공부한 위지따의 나라다.
만으로 열여덟을 넘기자마자 한국으로 시집 온 위지따는 사람이 참 착하고 남에 대한 배려가
철철 넘치는 똑똑한 아가씨(?)였다.
그녀를 생각하면서 떠났던 캄보디아 여행은 내내 행복했다.
패키지 여행 일정이 제한적이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너무 없어서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
그리고 캄보디아 여인들이 한국으로 시집을 오는 이유도 이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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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엠립 공항에 앉아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시간을 기다리면서 남편과 약속했다.
10년쯤 후에 자유 여행으로 꼭 다시 오자고.
앙코르와트는 몇 번이고 가도 질리지 않을 매력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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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캄보디아의 독립을 이룬 시아누크 캄보디아 국왕이 사망을 해서 국상중이었다.
애도 기간 3개월.
거리에 이런 사진이 붙어 있고 도시 내 사원마다 분향소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향을 피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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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엠립 시내에 있는 국왕의 별장 중 하나.
그곳에 가서 놀랐던 것 중 하나가 캄보디아가 민주국가라는 사실이었다.
무관심 때문이었겠지만 막연히 사회주의 국가일 거라고 생각했더랬다.
하지만 독재가 심하고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어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못 사는 나라란다.
그리고 후진국의 전형적인 모습은 다 보여주고 있었다.
공항에서 출입국 심사를 받으면서부터 뭔가 수상쩍었다.
입국 비자 신청을 위해 줄을 서 있는데 출입국 직원이 비자신청비 20달러를 냈는데도
자꾸 1달러를 요구해서 안 줄 수가 없었다.
공금을 넣는 통과 챙긴 돈을 넣는 통이 따로 있어서 캄보디아 공무원에게 이런 일은 일상으로 보였다.
그 많은 관광객으로부터 받는 1달러가 하루에 얼마나 될까?
캄보디아 초등학교 선생님의 하루 일당이 1달러 정도라는데 그들은 도대체 얼마나 부자일까 궁금했다.
<지도-네이버 검색>
지도에서 캄보디아를 찿아보면 베트남과 태국, 라오스에 둘러싸여 있다.
이렇게 여러 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보니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전쟁에 시달렸다.
지금도 여전히 태국, 베트남과는 사이가 안 좋다고 한다.
힘이 없다 보니 늘 뜯기는 입장,
국민소득의 25% 정도를 차지하는 앙코르와트 입장료도 태국과 베트남에 얼마간 떼어주고 있다는 말을 듣고 헐~ 했다.
1953년에야 프랑스로부터 독립해서 캄보디아 왕국이라는 정식 국가로 인정받았다.
1975년부터 1979년까지 캄보디아를 통치한 크메르루즈 공산 정권이 들어서면서 전국민의 3분의 1을 죽였다고 한다.
우리에게 킬링필드로 알려진 인민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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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과정에서 수많은 지식인들이 몰살당하면서 캄보디아를 발전시키고 이끌어나갈 수 있는 사람이 사라졌다고 하니
지금도 캄보디아의 앞날은 별로 밝아 보이지 않았다.
킬링필드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작은 사원, 왓트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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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복원하고 있는 사원임을 알리는 안내문.
앙코르와트 유적도 자기들 손으로는 복원을 할 수가 없어서 프랑스, 일본, 한국 등 외국의 원조로 가능하고
도로나 학교, 병원은 물론 수도 시설처럼 간단해 보이는 시설도
외국의 도움 없이는 만들지 못한다고 하니 얼마나 가난한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베트남에 비해 훨씬 안전하다고 한다.
국민의 95%가 크메르인이고 국민의 95%가 불교를 믿다 보니 어딜 가도 익숙한 불교 문화를 만날 수 있었다.
캄보디아 면적은 우리 남한의 1.8배나 된다고 했다.
기후는 우기(5~10월)와 건기(11~4월)가 반복되면서 덥고 비가 많이 내리는데
우리가 여행한 12월은 건기라서 그나마 날씨가 좋았다.
그래도 한낮 평균 온도는 30도 정도여서 동생네 초등 저학년들을 데리고 다니기에는 좀 미안했다.
캄보디아의 수도는 남부 프놈펜이지만 앙코르와트는 북부 시엠립에 있다.
1858년 프랑스의 박물학자 앙리 무오에 의해 정글에서 발견된 이후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특히 199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세계 7대 경관
뭐 이런 걸로 지정되면서 한국인들도 무지막지하게 찾아가는 여행지가 된 듯.
여행하는 동안 늘 한국인의 무리에 섞여 있어서 그곳이 한국이라고 해도 의심이 안 갈 정도였다.
시엠립은 앙코르 시대 이후 앙코르와트 덕분에 600~700여 년 만에 다시 부활한 도시.
우리나라 청주 공항보다도 작은 규모이긴 하지만 국제공항도 있고
세계의 유명한 호텔도 많이 들어와 있고, 없는 게 없어 보이는
캄보디아인에게는 별천지와도 같은 화려한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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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도 천 명 이상 들어와 사업을 하거나 일을 하면서 살고 있는데
물가가 싸고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서 살기가 좋다고 했다.
특히 여자들은 한 달에 20달러 정도만 주면 집안일을 해주는 현지인 식모를 두고 살 수 있어서
손에 물 안 묻히고 살 수 있는 곳이라고 그곳 보석가게에서 만난 한국인 여직원이 귀뜀해주었다.
시엠립 시내에 있는 대형 마트에 들러보니 한국 물건이 제법 많았는데 분유는 물론 아이스크림까지 있었다.
햄버거 가게나 아이스크림 전문점에서 여유를 즐기는 캄보디아인들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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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 도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내가 캄보디아 문명이나 문화에 감동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하지만 딱 이틀 동안 돌아보고 난 홀딱 반해버렸다.
우리의 고려, 조선 초(802~1432년) 정도에 해당하는 그 시대에 캄보디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사원을 만들고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문명을 이룩해놓고 있었다.
그 짧은 캄보디아 방문 기간 동안 '찬란한 문명'이란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로구나 경험했다.
우리 역사와 문화가 중요한 만큼 그들의 문화와 역사도 존중하고 귀하게 여겨야겠다는 마음을 가득 안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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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앙코르와트는 이름 그대로 앙코르, 다시 가고 싶은 사원이 되었다.
* 내가 본 캄보디아 여행 관련 책은 요게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