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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 3일은 제주를 여행하기엔 너무 짧았다. 모두 저녁에 도착했기 때문에 실제는 1박 2일. 동생네만 빼고 두세 번은 제주를 다녀갔기 때문에 느긋한 여행을 하기로 했다. 여행지는 남편과 운전하는 사촌이 상의해서 결정했는데 두어 군데 빼고는 나도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여행하는 동안 날씨까지 좋아서 더 즐거웠다.  

이번 여행의 목표는 내 마음대로 최대한 덜 걷고 자~알 먹고 편안하게 자자!!!  하지만... 걷지 않으면 여행을 할 수 없다는 걸 확인했을 정도로 실컷 걸었다.

금요일(21일) -->오후 일찍 도착한 동생네와 엄마 아버지만 테지움박물관, 말쇼, 모두 만나서 저녁 먹고 서귀포 숙소로.

토요일(22일) --> 아침 먹고 올레 7코스 걷기(천지연 폭포가 잘보였다.), 서귀포와 새섬을 연결한 다리 걸으며 바다 구경, 폭포가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정방 폭포, 점심 먹기, 이중섭 거리와 이중섭이 살던 집, 곶자왈에 만든 에코랜드, 미로공원, 동생네만 만장굴. 저녁 먹고 숙소로. 

일요일(23일) --> 아침 먹고 여미지 식물원, 서귀포에서 유람선 타고 서귀포 뱃길 칠십리 앞바다와 범섬 한 바퀴 돌기, 점심으로 제주도 통돼지 먹고 제주공항.  

  

                                          숙소에서 바라본 일출.   

  

남편 사촌이 예약해준 펜션인데 이름만 들어도 반가운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 직후 묵었던 곳이란다. 우리는 넓다는 이유로 이곳에서 잤는데 대통령이 머물기에는 소박한 숙소였다. 역시 노무현 대통령은 보통 사람!  

  

                            펜션 사장님이 특별히 공개해준 친필 싸인.

 

                                        서귀포 앞바다가 한눈에 보인다.

  

               숙소에서 일주일 늦은 아버지 생일 파티를 했는데 마침 동생네 큰아들도 생일이었다.
  

                                 서귀포 올레 7코스, 천지연폭포 윗길 입구에서. 

  

                                                   정방폭포, 오랜만에 보는 제주도 절경.

  

                                         새로 단장한 이중섭 거리.

  

                                        이중섭 거리에서 고1부터 초1까지.

  

제주도의 허파이자 강이없는 제주도에 천혜의 지하수를 공급해주는 곳. 공기와 물의 필터 역할을 하는 곶자왈 지역에 새로 개장한 에코랜드. 걷기에 아주 좋았다. 

 

걷기 싫은 사람은 미니 기차를 타면 된다. 해발 500m 중산간 지역이라 서귀포 시내보다 온도가 3도 정도 낮아서 쌀쌀했다.

  

                               에코랜드 기차역에서 동생네 아들 삼형제.

   

 아이스크림을 드시는 우리 시어머니랑 친정엄마. 우리 어머님은 토요일 하루 우리랑 함께 하셨다. (새섬 다리)

  

              범섬을 바라보며 우리 딸이랑 동갑내기 오빠네 딸이랑. 머리도 패션도 완전 커플이다. 

  

                                         시어머니랑 우리 아들 딸.

   

미로공원에서 오빠네 아들이랑 울 아들이랑.  

                                         

                                         여미지 식물원 앞에서.  



  

  

                              유람선에서 우리 삼남매랑 부모님. 

  

        많은 이들이 반대하는데도 해군 기지 건설중인 서귀포 강정마을. 공사중인 크레인이 보인다.

  

                          서귀포에서 유람선을 타고 가면서 본 범섬.  

 

     아름다운 제주 바다와 주상절리가 극치를 이루는 범섬을 볼 수 있어서 적극 권하고 싶은 코스다.   

  

                        따뜻해서 겨울에도 모기가 많다는 문섬.

  

                제주 시내에서 3시 넘어 흑돼지로 늦은 점심을 먹고 여행을 마무리했다.  

우리 부모님은 대가족을 이끌고 떠난 이번 여행의 기운으로 남은 생을 사실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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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10-28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유람선에서 보면 저런 풍광을 볼 수 있는거군요.
저는 한번도 유람선을 못 타봐서요....

가족 여향, 참 좋아보이세요. 아, 배고파요.

소나무집 2011-10-29 14:08   좋아요 0 | URL
여행했던 곳 중엔 유람먼 탄 게 제일 인기가 좋았어요. 걷지 않아도 멋진 구경을 할 수 있어서요.
나중에 기회 되면 유람선 꼭 타보세요. 서귀포 쪽에서 타는 건 입장료도 그닥 비싸지 않았어요.

BRINY 2011-10-28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에 쓰신 글이 가슴에 여운을 남깁니다.

소나무집 2011-10-29 14:11   좋아요 0 | URL
옛날에 좋았던 이야기하는 재미로 사시는 나이니까...
자랑하실 옛날 이야기가 더 많아지도록 잘해 드리고 싶은데 그게 힘드네요.

pjy 2011-10-28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으로 보니 가족 참 다복하십니다*^^* 근데 인원이..관광버스 부르실만 하네요~ 여러모로 챙기기가 쉽지 않으셨겠어요~~

소나무집 2011-10-29 14:13   좋아요 0 | URL
승용차 석 대 렌트하는 거나 버스 한 대 빌리는 거나 비용이 비슷하더라구요.
대가족 단위 여행 가시는 분들은 버스를 이용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인 것 같아요.
그래도 제 돈 들어가는 일이 아니라서 수월했어요. ㅎㅎㅎ

무스탕 2011-10-28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나무집님 말씀대로 부모님의 남은 여생에 최고급영양제 역할을 톡톡히 해줄 여행이네요.
멋지십니다 ^^

소나무집 2011-10-29 14:15   좋아요 0 | URL
시간만 내서 오라고 하는데도 제가 제일 많이 투덜댔어요.
올해 명절 두번에, 아버님 돌아가셨을 때랑 해서 세번이나 제주도에 다녀왔거든요.
그래도 부모님이 엄청 좋아하셔서 뿌듯해요.^^

순오기 2011-11-01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보기 좋아요, 부럽고요!
제주가 시댁이라 정말 그동안 제주에 갔던 건 여행 느낌은 아니었을 듯...^^
부모님이 제안하고 비용도 책임지는 여행~~~~~
함께 했던 그 순간을 추억하며 두 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십시오!!

소나무집 2011-11-02 09:19   좋아요 0 | URL
다들 제주가 시댁이라고 하면 좋겠다 그래요. 저도 명절이면 똑같은 며느리로 시댁에 가는 건데 놀러 가는 줄 알더라구요. 시댁인 제주에 가서 제 마음대로 놀러다니는 일은 거의 없어요.^^
부모님이 건강하고 마늘값이나 고추값이 비싸서 이런 여행을 해마다 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오빠가 농담처럼 한 말이었지만 형제들도 함께 시간을 보내야 가까워진다는 걸 이번 여행에서 깨달았거든요.
 

제주 시댁에서 보내는 추석은 하루가 언제 끝날까 싶을 정도로 길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작은할머니댁에 가서 차례를 지내고 설거지까지 끝낸 후 육촌집에 들러 또 차례를 지내고, 시댁에 와서 우리 차례상을 준비하면 12시 무렵 차례꾼(?)들이 오신다.  

그렇게 여러 집을 오가며 차례를 지내고 늦은 점심을 먹고 나면 남정네들은 다시 종손집으로 차례를 지내러 가고...   섬이다 보니 집안 사람들이 이렇게 아침부터 모여서 하루 종일 돌아가며 차례를 지내는 게 육지 사람인 내 눈에는 그저 신기할 뿐. 

그리고 형님네 가족이 서귀포 친정으로 간 사이 우리 식구보다 더 많은, 손 하나 까닥하지 않는 이모님네 가족이 와서 저녁을 먹고 떠나면 설거지는 고스란히 내 몫인 하루. 평소엔 할 일이 없어서 느릿느릿 천천히 정말 게으르게 살아도 되는 시댁이지만 명절날만은 길~게 하루를 보내곤 한다. 

평화가 찾아온 다음 날 형님네를 성산포에서 만나 우도에 다녀왔다. 시부모님은 평생을 제주에서 사셨는데도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며 우도 여행에 동행하셨다. 제주시에 있는 시댁에서 성산포까지는 1시간 정도 걸렸는데 남편은 바다 타령을 하던 마누라 생각을 했는지 곧게 뻗은 길 다 놔두고 해변도로만 따라서 달렸다. 

10시 배를 타려고 했는데 막상 성산포항에 도착해보니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데만 한 시간은 보낸 것 같다. 몇 년 전 유람선을 타고 우도를 한 바퀴 돈 적은 있는데 직접 섬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살짝 기대가 되었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유람선을 타는 것보다 직접 우도에 들어가는 것이 비용도 싸고 여행하는 맛도 난다.(배삯 -> 성수기 어른 왕복 5,500원, 자동차 15인 이하 4,000원)

배 안에서 바라본 우도. 소가 누워 있는 모습과 닮아서 우도(牛島)라는데 난 잘 모르겠더라. 내가 아는 소랑은 안 닮아서... 성산포에서 배를 타고 15분밖에 걸리지 않는 우도. 이곳에 사람이 드나든 건 조선 숙종 때 국유 목장이 설치되면서부터지만 사람이 살기 시작한 건 2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우도봉에 올라가다 바라본 성산 일출봉. 우도와 성산 일출봉의 거리를 짐작해볼 만하다.

 긴 추석 연휴 덕분에 여행길에 나선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우도봉 올라가는 길은 날도 시원하고, 어디서나 제주 특유의 맑으면서도 푸른 바다가 보이고, 별로 가파르지도 않으니 얘나 어른이나 걷기도 딱 좋았다.    

제주에 오면 늘 한두 곳 정도 여행을 하니 그닥 설레거나 감격스러운 마음까지 들지는 않지만 이렇게 자주 제주를 들락거리면서 느긋하게 여행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제주 남자를 만나서 사는 보람이로구나 싶기도 하다. 

우도는 푸른 빛으로 뒤덮여 있어 풍요로워 보이지만 사실은 척박한 땅이다. 농사도 기껏 땅콩이나 마늘 정도만 된다고 했다. 아주버님이 극찬을 하며 사준 땅콩은 육지 땅콩의 삼분의 일 정도 크기여서 난 먹기에도 애처로웠다.  

가운데 보이는 야트막한 오름은 무덤으로 뒤덮여 있어 이 작은 섬도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땅임을 알려준다. 제주의 무덤은 네모난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처음 보았을 때는 그것도 참 신기했는데...

할아버지와 함께한 손자 손녀 다섯 명.  우도봉에서 내려와 간 곳은 동안경굴(東岸鯨窟)이다. 콧구멍 동굴이라고도 부르는데 한자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고래가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단다.  

층층이 화산재가 퇴적된 바위(응회암) 단면이 선명하게 보인다. 이런 화산섬의 특징 때문에 제주도 전체가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될 예정이라고 한다. 남편이 지질공원 자문위원이어서 주워들은 이야기는 많은데 정확하게 기억나는 게 없으니...

 우리집 부녀가 밟고 가는 검은색 모래가 정말 신기하다. 이런 색깔의 모래는 처음 보았다.

 제주 사람들은 이 모래를 검멀레라고 부르는데 바로 응회암이 부서져서 생긴 것이다.

 이 동굴은 썰물 때만 들어가 볼 수 있다는데 마침 우리가 간 시간에는 입구를 열어놓고 있었다. 바위 틈을 비집고 안으로 들어가면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어둑한 동굴에서 바다를 내다볼 수 있는데 사방이 트인 바다와는 또다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누구나 들어서면 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앞뒤로 딱 고래 한 마리가 들어와 누워 있을 만한 공간이었는데 이 동굴에서 음악회도 열렸다고 한다.

 눅눅하고 미끌미끌한 동굴 안에 있는 바위들이 연한 보라색을 띠고 있는 것도 신기했다. 

동안경굴에서 나와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식당도 대목이라 30분을 기다리라고 했다. 그냥 기다리느니 근처를 한 바퀴 돌고 오자며 간 곳이 우도랑 다리로 연결된 비양도. 협재해수욕장 앞에 있는 비양도와 섬이름이 같다.

 완전히 시커먼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돌섬이었는데 아이들은 여기서 보말(고동의 제주말)을 한 바가지나 잡았다. 집에 와서 삶아 먹었는데 어찌나 살이 통통하고 맛있는지 순식간에 게눈 감추듯 사라졌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늦은 점심을 먹고 우도를 한 바퀴 샥~ 돌고 마지막으로 간 곳은 홍조단괴해빈 해수욕장. 단괴는 퇴적암 속에서 특정 성분이 모여서 단단해진 덩어리, 홍조단괴는 홍조 식물이 핵을 중심으로 자라면서 조류나 파도 때문에 구르기를 반복하면서 생기는 돌덩이라고.  

어렵고도 생소한 이름만큼이나 독특한 곳이었다. 멀리서 보면 하얀 빛깔의 모래 같은데 가까이 가서 보니 모래가 아니었다. 8센티 이상 큰 것도 많았다는데 지금은 부서져서 이런 모습. 예전에는 산호 모래로 알려져 있어 우도에 가는 사람들마다 신기하다며 집어들고 나왔는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지금은 절대 반출 금지라고. 

 이 썰렁한 바닷가에서 때를 잊은 강씨네 아이들 다섯은 모래를 파다가 물속에 들어가 풍덩풍덩 수영을 하며 놀았다. 갈아입을 옷도 없는데 말이지. 형님네나 우리나 아이들을 모두 야생으로 키우 있는 탓이여!!!

해변 둑에 앉아 손주들 노는 모습을 바라보는 어머님과 아버님. 다정하게 앉아 있는 두 분 모습도 아름답지만 이제 보니 시어머니의 빨간 양말도 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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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0-09-30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나무집님 차례상 차리랴 설거지 하시랴 고생이 많으셨겠어요. 병 안나셨어요?
근데 우도 정말 좋죠? 저흰 애들이 어려서 우도봉엔 못 올라갔어요. 다음에 다시 가봐야겠어요. 참 정겹고 좋네요.^^

소나무집 2010-10-01 00:47   좋아요 0 | URL
병은 안 났는데 연휴가 길다 보니 일상으로 돌아오는데 시간이 좀 걸렸어요.
우도는 작아서 좋고, 신기해서 좋고, 한 곳에 여러 가지가 있어서 좋은 그런 섬이었어요.

순오기 2010-10-01 0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주도 남자를 만난 님이 부러워지는 순간~~~ 부러우면 지는거라지만, 그냥 져버릴래요.ㅋㅋ
애들은 야생으로 키워야 해요. 어머님의 빨간 양말~ 압권이에요.^^
님 덕분에 완도에 이어 우도 구경도 잘 했어요~ 전화도 반가웠고요!

소나무집 2010-10-02 06:56   좋아요 0 | URL
제주 남자랑 살아서 좋은 점도 있지만 어려운 점도 많아요.^^ 언제 한 번 그런 얘기도 써볼까요?

2010-10-01 0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02 07: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01 18: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02 0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0-10-01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와~~~ 풍경이 너무나 멋져요.
시댁이 제주라 참 좋으시겠요.^^
우도의 깨끗한 백사장과 바닷물이 생각나요. 벌써 오래전이에요.

소나무집 2010-10-02 07:11   좋아요 0 | URL
그죠? 님도 다녀오신 적이 있군요. 정말 멋지죠? 우도는 신기한 곳이 참 많더라구요. 제주가 시댁이라 좋은 점도 있지만 교통비가 너무 많아 들어요.ㅜㅜ

엘리자베스 2010-10-02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굴음악회...생각만해도 멋있네요.
어머님 빨간양말 정말 귀여우세요 ㅋㅋ
저도 가끔 시댁이나 친정에 가면 저런 종류의 총천연색 양말을 얻어 신을때가 있답니다.
어머니들은 기본적으로 색깔양말을 구비해 놓고 계시는 듯 해요 ㅋㅋ

소나무집 2010-10-03 22:19   좋아요 0 | URL
동굴 음악회 반응이 좋았다고 그러더라구요. 울 시엄니도 시장 같은데서 산 색깔과 무늬가 야릇한 발목 양말 주신 적이 있는데 친정엄미 갖다 드렸어요.^^

치유 2010-10-08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아름다워서 막 환성이 터지네요..
제주 남자 만나서 할수 있는 여행ㅋㅋㅋ넘 부럽기만해요..
제주의 시원스런 바람과 아이들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리는듯 좋고,다정스런 부모님 모습도 참 좋아요.

소나무집 2010-10-12 16:22   좋아요 0 | URL
시부모님 평소 집에서는 다정스런 모습 볼 수 없음. 각자 일에 바빠용.
 

사회 시간에 세계자연 유산에 대해 배운 딸아이가 제주도에 만장굴이 있느냐고 물은 지 어~언 1년 만에 드디어 만장굴(홈페이지 바로가기 클릭)에 다녀왔다.

유네스코에서 탁월하게 아름다운 지역이나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의 서식지 등을 자연유산으로 지정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2007년 최초로 제주도의 화산섬과 용암 동굴이 세계자연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한라산 천연 보호 구역과 거문오름용암동굴계(거문오름, 벵뒤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 성산일출봉 응회구 등 제주 면적의 10% 나 세계자연 유산으로 지정되었다네. 제주 며느리로 살면서도 난 딸랑 만장굴만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줄 알았는데 이렇게나 여러 곳이었다니 놀라워라!   

만장굴은 거문오름 용문동굴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유일하게 공개된 동굴. 20~30만 년 전 거문오름에서 분출한 용암이 해안까지 이동하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폭이 5 미터, 높이가 5~10 미터, 길이는 7.4 킬로미터인데 입구에서 1킬로 지점까지만 개방하고 있었다.


아이들 또래도 비슷하고 마음이 맞는 형님 덕분에 제주에 가면 구경을 잘 하고 온다. 별로 표현한 적은 없지만 늘 감사한 마음이다. 주차를 하고 매표소 쪽으로 올라가고 있는 큰집 식구 다섯 명과 우리집 식구들.


매표소 옆에 붙어 있는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사진. 입장료가 어른 2천원, 아이들 천원이었지만 세계 자연유산 지정 2주년 기념으로 한 달간 무료라고 했다. 음, 무료라니 더 기분이 좋아~ 



동굴 입구에서 12살에서 7살까지 아이들이 차례로 줄을 서서 모두 점퍼 하나씩 더 입었다. 이유는 몇 발짝 옮기지 않아서 바로 알게 되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고 한참 걷다 보니 너무 추워서 소름이 오싹오싹. 한여름 피서 가기에 딱 좋은 장소가 아닐까 싶다. 만장굴에 갈 계획이라면 겉옷 하나쯤은 준비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리고 하이힐을 신은 사람은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 모르고 온 사람들을 위해 매표소에서 편한 신발을 빌려주는 듯했다.


굴 양쪽으로 작은 전등을 밝혀 놓았지만 그래도 엄청 컴컴한 걸 보니 동굴이 맞네!


만장굴의 명물 돌거북이다. 용암이 떨어져서 남은 흔적인데 제주도 모양을 닮았다고... 이 앞을 지나갈 때 자동 음성 안내기에서 나온 말씀이다. 



용암이 흐르면서 남긴 줄무늬 흔적. 자연만이 할 수 일이지 싶다.



용암이 흐른 흔적. 



상어 이빨처럼 생긴 용암 종유. 



거대한 용암 석주가 서 있는 곳이 1킬로 지점인데 더이상 들어갈 수 없다. 공개하지 않는 동굴에서는 현재도 계속 변화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보호가 필요하단다.  



사진을 찍어주신 아주버님만 빼고 모두 스마일!  


가족 사진 뒤로 보이는 거대한 용암 석주.  



돌아 나가는 길. 아들과 아빠가 오랜만에 다정하게.  



만장굴의 입구 모습. 만장굴은 근처 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을 데리고 체험 학습을 나왔다가 처음 발견했다고 한다. 아마 아이들이 뚫려 있는 구멍이 신기해서 우르르 들어가 본 건 아닐까? 



동굴 밖으로 나가느라 계단을 올라가는 아이들. 밖으로 나오니 따뜻하게 느껴질 정도로 동굴 안의 기온이 서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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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9-07-03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참 생생해요. 만장굴 가본거같은데도 아주 새롭네요

소나무집 2009-07-05 14:17   좋아요 0 | URL
저도 결혼 전에 갔는데 아이들이랑 가니까 또 새롭더라구요. 예전엔 카메라도 안 가져가서 사진 한 장 찍지도 못하고 그랬어요.

프레이야 2009-07-03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오래 전 가봤는데 아이들 데리고 가보면 좋을 것 같아요.
다들 스마일! 즐거우셨죠? ^^ 꾹!

소나무집 2009-07-04 22:58   좋아요 0 | URL
시댁이 제주인 덕분에 갈 때마다 큰댁 식구들하고 놀러 나가게 되네요.
다들 놀기만 좋아하는 사람들이거든요.

무스탕 2009-07-04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 여름에 다녀왔어요. 동굴 입구에 딱- 들어서면 서늘한 기운이 시작되는게 정말 신기해요.

소나무집 2009-07-05 14:17   좋아요 0 | URL
작년에 다녀오셨구나.
동굴 안이 어쩜 그렇게 서늘한지 진짜 신기했어요.

순오기 2009-07-05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여름 피서는 전국에 있는 동굴로~~ 충청도 단양 고수동굴도 좋더라고요.^^

소나무집 2009-07-06 10:56   좋아요 0 | URL
정말 시원했어요. 단양 고수동굴은 아직 못 가봤네요.
 

미국에 갔다 와서 바로 가려던 시댁을 지난 주말에야 다녀왔다. 남편의 승진 시험 합격 소식을 들고 간 시댁행이라서 가는 사람도 맞는 사람도 모두 기분이 좋았다. 1박 2일 짧은 일정이어서 집에만 있다 올 생각이었는데 형님네가 밖으로 나가자고 하는 바람에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 다녀올 수 있었다.  

제주 출신 남편과 사는 덕분에 제주 소식이 들릴 때마다 더 귀담아듣게 되는데 김영갑도 그랬다. 제주에 갤러리가 생겼다고 할 때부터 마음에 담아두긴 했지만 제주 시내에서 후다닥 갔다 올 수 있는 거리가 아니어서(제주도에서 한 시간은 엄청 먼 거리로 인식) 계속 미루던 차에 2005년 5월 갤러리 주인이 세상을 떠났고, 이제야 다녀올 수 있었다.

제주 출신도 아니면서 제주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진을 찍은 사람, 김영갑. 연초에 그의 책 <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읽으면서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른다. 인정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세상과 타협할 줄을 몰라서, 자신이 찍은 사진에 대해 너무 냉정해서, 너무 외롭고 너무 가난해서, 그리고 이젠 이 세상 사람이 아니어서 ,...   

김영갑 갤러리는 제주 공항에서는 한 시간 정도, 제주 시내에서는 성산포 쪽으로 중산간 도로를 따라 40분 정도 가면 나온다. 삼달초등학교 분교로 폐교된 지 오래되었다는 것만 보아도 도시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막상 가 보니 아주 작은 학교였다.


갤러리 이름 두모악은 한라산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원래 교문 자리였던 곳에 돌담을 쌓고 담장 안에 갤러리 문패를 달아놓았다.


교문을 들어서 왼쪽으로 몇 발자국을 옮기니 옛 학교의 모습을 알리는 빗돌이 나왔다. 남편 친구 하나도 이 학교를 나왔댄다. 


거기에 아이들이 뛰어다닐 수 있는 넓은 운동장은 없었다. 대신 운동장에 가득한 작은 동산들 앞에서 숨이 탁 막혔다. 아, 이것이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도 없으면서 힘겹게 쌓아 올렸다는 돌이로구나 싶었다.

 동산 위에는 대부분 나무를 심어놓았는데 몇 개의 작은 동산 위에는 제주 흙으로 만든 작고 소박한 인형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표정이 하나같이 어둡고 쓸쓸했다. 평생 외로움 속에 갇혀 있었던 김영갑 자신을 표현한 건 아닌가 싶었다.


나랑 같이 있던 딸아이는 슬픈 표정 때문에 인형들이 다 마음에 안 든다고 했다. 그래, 열두 살은 인생의 외로움을 이해하기엔 너무 이른 나이지...


언젠가는 주변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와 풀들에 가려 인형이 파묻힐지도 모르겠다.  



둘이라서 그런지 이곳에 있는 인형 중 가장 따뜻한 표정이다. 



동산이 있는 사잇길로 들어오면 나즈막한 갤러리 건물이 나온다. 오른쪽은 사무실이고, 왼쪽에 보이는 창문이 그의 작업실이다. 사무실에서 입장료를 받는다. 어른 3천원, 아이들 천원.



복도에서 창문을 사이에 두고 찍은 그의 작업실 풍경이다. 작고 소박하다. 책상과 의자, 카메라, 책들이 살아 생전 모습 그대로란다. 카메라와 사진 외에는 아무 욕심도 없었던 김영갑의 성품이 묻어난다. 


그의 사진이 들어간 기념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었다. 나도 식탁 위에 걸어놓고 싶어서 작은 액자 하나를 구입했다. 



영상실에서는 제주 KBS 에서 찍은 20분짜리 영상을 볼 수 있다. 그의 인생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에 꼭 보라고 권하고 싶다. 루게릭병 막바지에 찍은 그의 어눌한 인터뷰 모습에 자꾸만 가슴이 찡해지기도... 

 
영상실에는 김영갑에 대한 이야기와 본인 사진도 몇 장 있었다. 아프기 전의 모습인 듯.


앞에서 소개한 작업실 의자에 자신이 직접 만든 옷을 입고 앉아 있는 모습의 사진. 아프기 전의 모습과 확연히 다르다.  

 
교실 몇 개를 터서 만든 듯 전시 공간이 모두 길쭉했다. 바람 많은 제주의 모습을 보여주는 파노라마 사진들. 김영갑갤러리 홈페이지(바로가기 클릭) 에 가면 그가 남긴 변화무쌍한 제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탁자 위에 방명록이 놓여 있어 방문한 느낌을 남기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전시실을 다 둘러본 후 아이들을 데리고 찾아간 화장실이다.  대충 철사를 구부려 만들어놓은 남녀 표시가 귀엽다. 



화장실 뒤로 돌아가면 이런 찻집이 나온다. 두모악 찻집.  



앞에 차 몇 가지가 준비되어 있고, 직접 타서 마시도록 되어 있는 무인 찻집이다. 찻값은 알아서 계산하란다.


찻집 앞에 서서 본 풍경. 작은 돌인형들이 교실 뒤편 벽에 나란히 서 있다. 


그냥 돌아서기 아쉬워 갤러리 앞에 잠시 앉아 있는데 나무 앞에 향을 피운 흔적이 보였다. 형님한테 물어보니 김영갑의 유골을 뿌린 감나무라고 했다. 갑자기 마음이 더 숙연해진다.  

그의 육신이 깃든 감나무 앞에 서서 운동장을 바라보니 들어오면서는 답답해 보였던 동산들이 오밀조밀 말을 거는 듯했다. 작은 동산이 모두 돌무덤처럼 보인다. 평생을 지독한 외로움과 함께했지만 죽어서만은 외롭고 싶지 않았나 보다.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주든 말든 영원히 함께할 말없는 친구들을 이렇게 많이 만들어놓은 걸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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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작가의 영혼을 만난 곳 김영갑갤러리(제주 가족여행 둘째날)
    from 꿈을 나누는 서재 2010-07-26 17:57 
    섭지코지에서 20여분을 달려 "두모악갤러리"에 도착했다. 많은 이들에게 "김영갑갤러리"로 알려진 곳이다. 두모악은 한라산의 옛이름 이라고 한다. 한적하고 고즈넉한 것이 전형적인 시골의 모습을 하고 있다. 폐교된 삼달초등학교를 작가의 영감만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민 곳이다. 작가 김영갑 선생은 충남 부여태생으로 1985년 제주도에 들어와 정착했다. 제주 섬의 수평적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이곳에 머물며 사진작가로 활동했다. 제주도의 산과 들, 구름, 새, 나무
  2.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from 512 2015-01-31 14:42 
    제주도 오름과 바람 사진.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지난 제주 여행 때 제주에 일 년 정도 지내며 이곳저곳을 여행한다는 분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주에서 어디가 제일 마음에 들어요?” “한 군데만 꼽으라면.... 음. 김영갑 갤러리요.” “그래요? 나중에 또 제주에 오면 가봐야겠어요.” 그렇게 일 년간 마음에 담아둔 김영갑 갤러리에 이제야 왔다.작은 인...
 
 
무스탕 2009-06-30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멋진 소개글이라니요!
갤러리 홈피를 본적은 없지만 소나무님 글이 더 멋질거에요.
다음에 제주를 갈 기회가 생긴다면 꼭 찾아가 볼게요 ^^

소나무집 2009-07-02 11:54   좋아요 0 | URL
찾아가기 전에 그가 세상에 남겨놓고 간 책 한 권쯤 읽고 간다면 더 마음에 와 닿을 거예요.

꿈꾸는섬 2009-07-03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나무집님 미리 구경 잘했어요.^^
이번달에 제주에 가면 꼭 가려고 했었거든요. 근데 너무 예쁘고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요. 얼른 가고 싶어요.

소나무집 2009-07-03 12:05   좋아요 0 | URL
아, 이번 달에 제주 가시는군요.
꼭 다녀오세요. 미리 책 읽고 가면 더 느낌이 다가올 거예요.

순오기 2009-07-05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소나무집님 다녀오신 미국은 꿈꿀수 없지만 여기도 가볼 수 있을 듯...
분교를 이렇게 예술공간으로 만드는 것 너무 좋아요~ ^^

소나무집 2009-07-06 10:59   좋아요 0 | URL
미국이야 어쩌다 운이 좋아서 간 거구요,
요즘 미국 다녀온 후유증으로 허리 휘고 있어요. 카드 빚 갚느라고...
정말 작은 학교였구요, 폐교 활용 방안으로 적극 추천하고 싶었어요.
사람이 떠나간 자리에 사람을 다시 불러 들이는 효과 좋잖아요.

BRINY 2009-07-14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월에 제주도 갈 계획인데, 소나무집님이 페이퍼 올리신 곳들은 다 가보고 싶어요

소나무집 2009-07-15 11:29   좋아요 0 | URL
제주도 가실 계획이군요. 잘 다녀오시구요, 김영갑갤러리 가시면 액자 하나 사 오세요. 식탁 위에 걸어놓았더니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요.
 

남편이 다도해 사무소를 자원해서 완도까지 온 가장 큰 이유는 적은 비용으로 시댁이 있는 제주도에 자주 갈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시아버지께서 아프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가보지 못하는 아들의 마음을 알기에 다도해 사무소로 지원하고 싶다고 했을 때 흔쾌히 그러라고 할 수 있었다. 서울 본부에 있을 때는 일 년에 한 번, 그것도 명절 때밖에는 못 갔다.

우리 네 식구가 비행기 타고 아무리 최소 비용으로 간다고 해도 100만원 이상 드니 그 이상은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요즘은 더 올라서 비행기표 값만 100만원 이상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니 남들은 제주도가 시댁이라서 좋겠다고 하지만 난 제주도 한 번 갈 때마다 마음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느라 바빴다.

완도에서 배를 타면 한 사람 비행기 타는 비용으로 네 명이 제주도에 갈 수 있다. 배삯이 어른 2만원, 어린이 만원 정도 한다. 처음엔 돈 든다고 미안해하던 시어머니께서 연휴가 되니 한 번 오라는 말씀을 서슴없이 하셨다. 그래서 아무 일도 없는데 제주도에 다녀왔다. 우리는 이렇게 마음 땡기는 대로 사느라 모은 돈도 없다. 오늘이 행복하면 매일 매일이 행복하다는 남편의 지론도 한몫 했고.

완도로 온 후 일 년 반 동안 제주도에 다섯 번이나 다녀왔다. 부러운 사람이 많겠지만 가기만 하면 숙식이 해결되는 시댁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난 친정이 아니고 시댁인지라 마음 한구석은 조금씩 불편하다. 시어른들이 시집살이를 시키는 것도 아닌데 아무래도 며느리 자격으로 가기 때문인 것 같다.

이번 여행은 시어머니 시아버지와 함께 한라산에 다녀왔기에 나름 뿌듯했다. 젊은 시절부터 몸이 허약했던 시아버지께서는 나들이를 거의 하지 않으신다. 같이 사는 형님네도 늘 그러려니 싶어 나들이를 권한 적이 별로 없다고 했다. 하지만 작은며느리인 내가 자꾸 가자고 하니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서시는 게 아닌가! 형님도 한 번씩 권해 보지... 나도 제주도 며느리 된 지 12년 만에 한라산은 처음 가 보았다.


한라산에 올라가는 여러 코스 중 가장 짧은 코스를 선택해서 영실 휴게소까지 차를 타고 갔다. 일이 있어서 못 간 아이들 큰엄마만 빼고 열 식구가 어린이집 봉고차(아이들 큰엄마가 어린이집을 한다)를 타고 나섰다. 고만고만한 아이들 다섯이 모였으니 잠시도 조용할 새가 없었다.


작은엄마 손을 잡고 끝까지 산행을 한 여섯 살 조카가 너무 대단하다. 사내 아이들 셋은 어디쯤 올라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데 중간쯤부터 선우는 힘들어 죽겠다고 한라산에다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산이 노하면 어쩌려고.


     오백 나한의 전설이 서려 있는 한라산 영실 계곡.


제주도에 살면서도 25년 만에 한라산에 오르셨다는 칠순의 시아버지. 힘드셨을 텐데 그런 말 한마디 없이 좋다고만 하셨다. 내가 부추겨서 나선 길이었기에 중간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사실 신경이 좀 쓰였다.



햇빛이 쨍쨍한 오르막길을 걷다 갑자기 나타난 고산 평원에 와!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더구나 붉은 철쭉이 한 가득이었다. 산꼭대기에 이렇게 넓은 평원이 있다는 게 정말 신기했다. 이 풍경을 보려고 사람들이 한라산을 오르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살랑살랑 시원한 바람에 땀이 식자 그동안 잔뜩 골이 난 채 산을 오르던 선우의 표정이 확 펴지더니 한라산이 좋다며 싱글벙글이 되었다. 배경의 높은 봉우리가 백록담.


내내 앞서 가서 뒷모습도 볼 수 없었던 사내 아이들을 여기서 만났다. 셋이 뭉쳐서 노는 게 좋아 힘든 줄도 모르던 아홉 살, 열 살의 아이들.


근처에 노루들이 자주 나타난다고 해서 노루샘이란 이름이 붙은 약수터다. 가지고 올라갔던 물도 다 떨어진 참이어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물맛이 정말 끝내주게 시원했다.


약수터에서 물을 마시던 지우가 갑자기 "노루다!" 하고 소리쳐서 보니 정말 노루 한 마리가 사람들 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왼쪽 중간 위쯤에 있는 게 노루다. 두 마리의 노루를 더 보았는데 지우는  노루를 본 게 행운이라며 내내 좋아했다. 일기에도 노루 이야기만 썼다.


윗세오름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었다. 키 큰 나무가 없는 고지라서 햇빛 아래 도시락을 펼쳤다. 아침에 도시락 걱정을 하는 어머니께 그냥 밥 하고 쌈만 싸가도 맛있다며 간단하게 가져왔는데, 휴게소에서 컵라면을 사와 함께 먹으니 세상에서 이보다 맛있는 밥이 또 있을까 싶었다. 늘 소식을 하는 아버님도 정말 달게 드셔서 바라보는 며느리 속으로 흐뭇했다.



가족 사진을 찍자는 말에 아이들이 장난 치느라 난리가 났다. 뒤로 보이는 봉우리가 백록담인데  갈 수가 없었다. 예전에는 가능했는데 훼손이 많이 되어 지금은 출입 금지란다. 지금은 백록담까지 가려면 어리목으로 가야 한단다. 여기만 해도 해발 1700미터다.


너무 힘들어서 죽을 뻔했다며 다시는 한라산에 가지 않겠다고 하던 아이들.

"선우야, 지우야, 할아버지 할머니랑 이렇게 산에 오를 기회가 또 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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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08-06-09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후기 너무 행복하게 읽었습니다.
며느리의 기지가 가족을 움직이고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행복을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드셨네요. 가족이 같이 땀흘리고 먹는 점심은 반찬의 유무를 떠나 꿀맛이었을 것 같아 흐르는 군침을 슬쩍훔치게 만듭니다. 마지막 한가족의 행복을 사진을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어 읽는 내내 흐뭇했어요. ^*^

소나무집 2008-06-10 10:22   좋아요 0 | URL
손자 손녀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시부모님의 모습이 행복해 보여서 저도 행복했어요. 나이 든 부모님들은 함께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좋으신 것 같더라구요.

씩씩하니 2008-06-10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이 얼마나 효부인지 이야기마다 시아버지에 대한 배려와 사랑 담긴 님 마음이 그래도 전해옵니다...
아버님도 산에 잘 오르셨다니..참 감사한 일이네요....
저는 대학시절 한라산에 다녀왔는데 길을 이렇게 나무로 이쁘게 정리해놓기 전이에요...
님 올린 사진 속으로 추억 더듬느라 행복합니다~~
님 덕분에 저도 괌 잘 다녀왔답니다~~

소나무집 2008-06-11 09:09   좋아요 0 | URL
효부라는 말에 부끄러워 웃음이 나오네요.
전 시댁에 잘해 드리는 거 하나도 없거든요. 그저 마음만 있지요.
님도 아이들 다 컸으니 한 번 더 다녀오세요.
너무 더운 여름엔 말고 선선한 계절에요.
괌 잘 다녀오셨지요?

miony 2008-06-10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모두들 너무 행복해 보입니다.
어르신들을 모시고 어린 아이들과 무사히 산행을 마치시다니 왠지 제 가슴이 벅차네요.
연세가 드실수록 가까이서 자주 가 뵙는 것이 효도하는 지름길인가 봅니다.
동그랗게 모여앉아 함께 점심드시는 모습이랑 가족사진에서 멋진 포즈를 취하신 시아버님의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소나무집 2008-06-11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아버님 때문에 조마조마했어요.
늘 누워 지내시는 분이거든요.
다음 날 전화해 보니 좀 힘들긴 했어도 괜찮다고 해서 안심했어요.
아마 아이들도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올랐던 한라산에 대한 추억을 평생 간직할 것 같아요.

초록이좋아 2008-06-11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리 아프시다고 그러시더니 이 글 보면서 다리 아프셔도 참 행복하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등산이 힘들어서 욕을 퍼붓었다는 선우 모습이 상상되서 한번 웃고, 윗세오름 표지석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찍은 지우의 사진을 보며 웃고... 아, 저도 빨리 한라산 한번 다녀와야 할 듯 하네요. ^^

소나무집 2008-06-12 13:40   좋아요 0 | URL
그래, 여기 살 때 꼭 한 번 가보도록 해.

노란우산 2008-06-12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잼있었어

소나무집 2008-06-12 13:40   좋아요 0 | URL
정말?

치유 2008-07-05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잘하셨네요..^^_모두 너무 행복해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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