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먹고 산책삼아 나갔다가 국립 현대미술관에 들렀다. 얼마 전 타계한 백남준 선생의 작품이 그 어느 때보다 눈에 들어왔다. 내친 김에 선생의 특별 전시실까지 한 번 더 둘러보며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직 어린 아이들이 작품의 의미를 다 알리라는 생각은 안 한다. 솔직히 엄마인 나도 잘 모르는 게 더 많으니까 말이다. 그냥 아이들과 예술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다.

마침 2005년에 수집되어 새로 소장하게 된 미술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호기심에 들어갔다가 그 엄청난 양에 깜짝 놀랐다. 어린 아이 둘을 데리고 다니며 둘러보기엔 좀 많다 싶었기 때문이다. 아는 작가의 작품들이 눈에 띄어 정말 반가웠다. 한국화에선 이응노 화백의 작품이 여러 점 있었고, 1970년 이후 사회 비판 의식을 표현한 작품들도 많았다. 특히 대학교 다니던 시절 숱하게 걸개 그림으로 보아왔던 김준권의 판화 작품이 떡하니 걸려 있어 세상 정말 많이 변했다는 것을 실감하기도 했다.

또 한 사람 반가웠던 작가는 김재홍이다. 색감과 느낌이 낯익어 자세히 보니 그림책에 많은 그림을 그린 김재홍이었다. <동강의 아이들> <숲속에서><고향으로>로 이미 친숙한 그의 그림. 집에 돌아와 그의 그림책을 다시 펴보았다. 미술관에서 만난 큰 호수의 그림(제목이 아버지였던가) 이 한동안 눈앞에서 아른거릴 듯하다.

언젠가 마르셀 뒤샹의 변기를 뒤집어놓은 그림을 보며 아이들과 재미 있어 했는데 오늘 그의 진짜 작품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그의 작품 <여행 가방 속의 상자>는 작은 상자 안에 작가가 그동안 보여주었던 작품들의 미니어쳐와 사진을 모아서 만든 작품이었다. 물론 그 변기도 있었다. 아이들이 저거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며 좋아했다.

그동안 아이들과 함께 미술 작품에 관한 책을 꾸준히 보아왔기에 오늘 산책이 즐거웠던 것 같다.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일은 공부가 아니고 생활이다.  이런 생활을 습관적으로 하다 보면 예술이 아이들 삶 속에서 멀리 자리하진 않을 것 같다. 앞으로도 아이들과 함께 미술에 관한 책을 열심히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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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3-10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갑자기 미술관에 가고 싶네요. 미술관이 가까우신가봐요

2006-03-10 08: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나무집 2006-03-10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천에 살고 있어요. 동물원도 미술관도 놀이 공원도 산책삼아 다닌답니다.
 

작은 아이 유치원에서 보내온 자료 중에 어린이 헌장이 들어 있더군요. 이런 게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얼마나 잘해야 할지 새삼 깨닫게 되는군요. 

대한민국 어린이 헌장은 어린이날의 참뜻을 바탕으로 하여, 모든 어린이가 차별 없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니고, 나라의 앞날을 이어나갈 새 사람으로 존중되며, 바르고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도록 함을 길잡이로 삼는다.

1. 어린이는 건전하게 태어나 따뜻한 가정에서 사랑 속에 자라야 한다.

2. 어린이는 고른 영양을 취하고, 질병의 예방과 치료를 받으며, 맑고 깨끗한 환경에서 살아야 한다.

3. 어린이는 좋은 교육 시설에서 개인의 능력과 소질에 따라 교육을 받아야 한다.

4. 어린이는 빛나는 우리 문화를 이어받아, 새롭게 창조하고 널리 펴나가는 힘을 길러야 한다.

5. 어린이는 즐겁고 유익한 놀이와 오락을 위한 시설과 공간을 제공받아야 한다.

6. 어린이는 예절과 질서를 지키며, 한겨레로서 서로 돕고, 스스로를 이기며 책임을 다하는 민주 시민으로 자라야 한다.

7. 어린이는 자연과 예술을 사랑하고 과학을 탐구하는 마음과 태도를 길러야 한다.

8. 어린이는 해로운 환경과 위험으로부터 먼저 보호되어야 한다.

9. 어린이는 학대를 받거나 버림을 당해서는 안 되고, 나쁜 일과 힘겨운 노동에 이용되지 말아야 한다.

10. 몸이나 마음에 장애를 가진 어린이는 필요한 교육과 치료를 받아야 하고, 빗나간 어린이는 선도되어야 한다.

11. 어린이는 우리의 내일이며 소망이다. 나라의 앞날을 짊어진 한국인으로 인류의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세계인으로 자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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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이면 다들 방학을 하는 모양입니다. 두 달이나 되는 긴긴 겨울 방학을 어떻게 보내야 엄마도 뿌듯하고, 아이도 보람 있을지 고민이 많을 거예요. 엄마의 보람을 아이의 보람으로 착각하진 마시구요. 학교에서 하는 방학 특강을 시켜서 매일같이 학교에 나가게 해야 할지, 자기네만의  비법을 전수시키겠노라며 유혹하는 학원의 방학 특강을 보내야 할지 계속 고민중이죠? 

그러면 우리의 정기 엄마는 어떻게 방학 준비를 하고 있을까요? 정기 엄마의 생각은 방학 때마다 변함이 없습니다. 바로 "실컷 놀아야지. 학교 다니느라 고생했는데."랍니다. 정말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그래서 동네 다른 엄마들이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정보를 찾느라 분주할 때도 정기 엄마는 의연하게 어떤 눈썰매장을 갈까 궁리합니다.

그래도 자기 생각과 다른  옆집 아줌마를 비난하거나 힐책하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늘 웃는 얼굴로 한마디할 뿐입니다. "그거 하면 좋겠네. 얘들이 좋아하지. 시켜 봐."  

얘들이 좋아하는 걸 정기 엄마가 안 하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기는 합니다. 바로 데리고 다니기 싫다는 거죠. 저희들이 알아서 찾아 다닐 때까지 정기 엄마는 기다릴 거랍니다. 아기 때부터 좋다는 프로그램 다 데리고 쫓아다니느라 눈코뜰 새 없이 바쁜 엄마들이 생각하면 뭐 이런 발칙한 엄마가 다 있나 할 거예요. 요즘 세상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좋다는 거 다 시켜도 부족할 판인데 어쩌려고...

요즘 엄마들 참 바쁩니다. 바로 아이들 때문이죠.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셨나요? 정말 아이들을 위한 일인지 말입니다. 아이들은 엄마라는 거대한 괴물(거역한 수 없는 막강한 힘을 가진 존재) 앞에서 NO라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엄마의 눈치를 보며 학원에 가고, 학습지를 하고, 뭔가를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정기 엄마의 생각은 그렇습니다. 너무 빨리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죠. 조금 천천히 정말 본인이 하고 싶을 때까지 기다리다 보면, 하고 싶다고 야단이 날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때가 적기라는 거죠.  요즘은 여섯 살만 되어도 피아노를 시키잖아요. 정기 친구들이 체르니 100을 치니 30을 치니 해도 들은 척도 안 하더니 지난 9월에 피아노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요 늦게 시작한 효과 바로 나타났습니다. 4개월 만에 바이엘 뗐다니까요. 일곱 살에 피아노 시작한 우리 딸 아직도 체르니 못 들어갔습니다. 흑흑흑. 남들보다 조금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아이들의 행복한 시간을 빼앗진 않았나 생각해 보세요.

이번 방학 계획은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는 것 우선으로 세워 보세요. 그리고 한번쯤 아이들이 직접 방학 계획을 세우도록 해보는 건 어떨까요? 아직 저학년이라면 정기 엄마처럼 실컷 놀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군요. 신나게 놀다 보면 새 학기에 공부하고 싶은 에너지가 샘솟지 않을까요? 아니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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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20 14: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영엄마 2005-12-20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기 어머님처럼 주관이 있어서가 아니라 저의 게으름으로 그런 걸(아이들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며 배우게 하는 것) 못하는 사람이어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걸 방학 때 실컷하게 하는 것.. 저학년 때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지 싶어 저도 고민중입니다. 피아노랑 태권도 두 곳에 다니는데 얼마간 빠지게 할까 말까.. 글 잘 읽고 갑니다.(__)
 

정기네집은 문이 잠겨 있는 법이 없습니다. 누구든지 문을 벌컥벌컥 열고 들어갑니다. 아, 물론 잡상인과 가스 검침원은  빼고요. 미리 알리고 가지 않아도 하나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어쩌다, 정말 어쩌다 정기 아빠가 휴가를 받아 집에 있거나 한 날은 무지하게 미안하지만요.

정기네집엔 아침부터 밤까지 늘 손님(?)이 있지요. 어떤 손님이냐구요? 아주 다양합니다. 그 집 두 아들의 친구부터 동네 아줌마들, 그리고 그 아줌마들의 아이들까지요. 손님이라고 해놓고 보니 좀 그렇네요. 저부터도 손님으로서 예의를 차린 적이 어디 있어야 말이죠. 아참, 진짜 손님을 빼놓을 뻔했네요. 피아노 선생님이 일주일에 두 번, 영어 선생님이 한 번 오시는데.....

그런데 정기네집에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시죠? 왜일까요? 첫째 먹을 게 많아서, 둘째 정기 엄마가 너무 예뻐서, 셋째 아이들이 공부를 잘해서, 넷째 장난감이 많아서, 다섯째 인테리어가 너무 훌륭해서. 골라 보세요. 말해놓고 보니 이 다섯 가지가 다 이유가 되는 것 같기도 하네요.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정답은  정기 엄마랍니다.  정기 엄마에겐 뭔가가 있습니다. 사람을 끄는 매력, 그게 아무한테나 있는 거 아니잖습니까? 돈 주면서 오라고 해도 가고 싶지 않은 집이 있는데, 정기네집은 입장료를 받는다고 해도 갈 것 같다니까요. 제 성격이 좀 소심하고 내성적이라 아무하고나 잘 놀지 않는데 정기네집에서는 잘 놀게 되더라구요.  어떤 땐 정기네집이 우리집보다 더 편안하다면 말 다 했죠 뭐.

손님이 없을 땐 정기네집 식구는 넷입니다. 정기 엄마를 끔찍하게 사랑해주시는 정기 아빠와 애교 덩어리 우리의 정기 엄마, 운동 그림 노래 공부 등 무엇 하나 못하는 게 없어서 얄미운 큰아들 정기, 우리 아들을 비롯 동네 여섯 일곱 살 유치원생들의 대장인 둘째아들 윤기. 어떤 집 못지않게 아주 재미나게 알콩달콩 살아가는 가족이랍니다.

정기네집에서는 사람 사는 냄새가 폴폴 납니다.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궁금하시죠? 가끔 놀러 오세요. 정기 엄마처럼 반겨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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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5-11-30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기네 집을 소개해 주셨는데 이상하게도 정기네 집이 더 궁금하네요^^글을 너무 재미나게 쓰십니다

구절초 2005-12-17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입장료 내고라도 가고 싶은 그 집이 참 궁금합니다.
한번쯤 평화를 빕니다 하는 인사말을 건네며 가보고 싶어집니다.
원래 어울리는 사람은 비슷비슷하다니까 소나무님도 많이 서글+인심후한 그런 분일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