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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Green Berets (그린 베레)(지역코드1)(한글무자막)(DVD)
Warner Home Video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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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현충일인 어제(2019년 6월 7일 기준) 집에서 학교 과제를 하던 중 이 영화가 생각이 나서 저녁때 감상했었다. 이 영화를 처음 알았을때 부터 미국의 프로파간다인 것을 알았지만, 영화를 끝까지 다 보고나니 왜 이 영화가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난 이후 묻혔고, 과거 1970,80년대 한국에서는 명절 특집으로 텔레비젼에서 틀어줬는지 바로 알게 됐다.

영화가 시사하는 점은 매우 심플하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미군은 정의로운 존재고, 남베트남 괴뢰정권에 맞서 정글에서 투쟁했던 베트콩은 매우 악한 존재라는 것이다. 작중에서 보면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베트콩의 시선은 빨갱이라는 관점을 넘어 심히 오리엔탈리즘적이다. 작중에선 그린베레 기지를 점령한 베트콩들이 깃발을 올리며 환호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베트콩들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입을 치며 내는 특유의 소리(와와와와와와!!)를 외친다. 또한 베트콩의 그린베레 기지 점령 장면에선 중국풍 스러운 사운드가 흘러나온다.

베트콩에 대한 악마화된 묘사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린 베레 기지에서 미군과 같이 지내는 베트남 아이는 가톨릭 선교사 집안이라는 이유 때문에 베트콩들에 의해 가족이 몰살 당했다는 설정과 작중에서 미군을 돕는 남베트남의 미인도 ˝가족이 공산 베트콩에 의해 잃은 집안˝으로 나온다. 즉 이러한 설정을 통해 미제국주의의 침략전쟁과 남베트남군을 옹호하는 것이다.

작중에선 존 웨인의 그린 베레 부대는 중부고원 지대 지역 원주민인 몬타냐드족을 전적으로 돕는데, 그린 베레와 그들을 증오한 베트콩이 미군에게 도움 받는 몬타냐드족 기지를 습격하여 남녀노소 할 거 없이 주민들을 학살한 현장을 목격하며 ˝베트콩이란 이런 집단이야˝라고 한다. 베트콩에 대한 악마화가 얼마나 심각한지, 그 마을을 습격한 베트공들은 부녀자를 강간 및 폭행했고, 미군에 협력하는 마을 주민들을 학살하였으며, 미군이 치료해준 어린 아이까지 총으로 쏴 죽였다.

또한 영화 초반에는 그린베레가 베트남으로 가기전 시민들과 기자들을 모아놓고, 그린베레에 대해 얘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장면에서 그린베레 부대원들은 공산권 총기를 보여주며, ˝베트콩들이 이런 무기를 사용하며 베트남의 자유를 탄압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와같은 일련의 장면들을 보았을때, 이 영화는
오리엔탈리즘과 서구 우월주의 그리고 반공주의에 입각하여 만든 영화다. 미국의 제국주의적인 사상이 다 들어가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영화는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했음에도, 북미 지역에 있는 침엽수림이 적잖게 나오는 고증오류까지 범했다. 전반적으로 보았을때 1968년에 나온 이 영화는 시대역행 적이었다.

1968년엔 구정 공세로 말미암아 미제국주의의 거짓말이 들통나며 베트남 전 반전운동이 일어나고, 타이거 포스와 같은 미군의 잔혹성이 미국내에 알려지게 되는 시점이다. 그런 시점에서 이런 반공영화가 미국에서 개봉한 것이었다. 거기다 영화에서나온 정의의 그린베레는 베트남 전쟁에서 피닉스 작전이라 하여 최소 2만 명을 무차별 학살한 군대다. 즉 영화와는 달리 베트남 전쟁에서의 학살 주체는 독립과 통일을 위해 싸우던 베트콩이 아니라 미제국 군대였다.

정말이지 미제국주의의 오만과 제국주의 사상이 들어간 영화를 보느라 깊은 빡침을 견디면서 봤다. 반공 틀딱들이 가지고 있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시각이 어떤건지 궁금하다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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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에 대하여
린 램지 감독, 틸다 스윈튼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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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보기 전 필자는 이 영화를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저 아들이 싸이코 패스라는 얘기 외에는 딱히 듣지 못했었지만 말이다. 영화를 보고나서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고, 보는 내내 쉽게 말해 머리에 망치에 맞은 느낌이었다. 그 만큼 이 영화가 전달해주는 메시지가 매우 강력했다는 얘기다.

 

 

영화는 케빈이 대참사를 벌이기 이후와 이전 그리고 케빈의 성장과정을 보여준다. 어린시절 부터 케빈은 엄마의 신경을 건드리는 짓을 했고, 10대가 되고 난 이후에도 엄마의 신경을 의도적으로 건드리고, 여동생을 괴롭히며 지속적으로 소름끼치는 짓을 일삼는다. 하지만 엄마와의 관계와는 달리 케빈은 아버지하고는 친근감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나중에는 남편과 딸이 케빈의 손에 죽게 되지만 말이다. 영화 보는 내내 든 생각이 있다. 도데체 남편이라는 사람은 무엇을 했던 것일까?

 

사실 여자가 아이를 임신하고 아이를 키울때는 남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남편이라면 와이프가 처음에 임신을 원치 않았을 때 와이프의 심정을 이해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지만, 작중에선 그런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 자신의 아들인 케빈과 와이프인 에바 캐처도리언이 문제가 있을 때, 와이프의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고, 둘 사이에 어떤 문제가 존재하는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심지어 딸이 케빈에 의해 눈이 다쳤을 때도 와이프가 하는 주장을 전혀 듣지 않고, 오히려 "당신 정신검사나 받아보지"라며, 이를 그저 무시한다.

 

그렇다면 주인공인 에바 캐처도리언의 잘못은 없는 것일까? 케빈이 그렇게 되기까지의 잘못에는 그녀의 잘못도 있다. 물론 처음에 임신을 원치 않았더라도 얼마든지 자식에게 모성애적 감수성을 드러낼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것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써 자격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물론 케빈이 주인공 만의 공간을 망친것에 대해서 그녀가 분노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아들을 밀치면서 팔을 기부스하게 만들었음에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다. 심지어 초반에는 그녀가 어린 케빈에게 "너 만 태어나지 않았으면 난 행복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장면도 나온다. 그녀의 모습은 정말 자식을 키우는 엄마로써의 자격이 없다고 보여질 정도다.

 

영화상에서 보이는 케빈의 행위는 분명 잘못된 것이지만, 사실 케빈이 그렇게 된 이유에는 엄마로부터 사랑 받지 못한 애정결핍이 가장 결정적일 것이다. 거기다 여동생에겐 진심어린 사랑을 드러내니 케빈으로썬 엄마에게 관심 받고 싶었던 것이다. 필자가 보기엔 마음가짐이 되어있지 않던 에바와 에바를 차갑게 대했던 남편에게 책임이 막중하다고 본다.

 

영화를 보고 결론을 내리자면 부모가 되기 위한 좋은 교육이 필요하고, 남편또한 임신한 여성의 마음을 이해하고 경청할 줄 알아야 한다. 사실 자식이 어떤 사람으로 태어나느냐도 남편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얘기가 있듯이 이를 위한 남편의 노력도 중요하다. 따라서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케빈과 에바의 문제점을 생각해보는 것을 넘어 작중에서 보여진 남편에 대해 비판적으로 해석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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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19-06-10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론 영화 보는 내내 케빈 새끼를 때려주고 싶긴 했습니다.
 
셀마
에바 듀버네이 감독, 톰 윌킨슨 외 출연 / 비디오여행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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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미국의 민권운동을 이끌었던 사람이 있다. 그는 백인과 흑인의 연대와 공존을 주장하며, 평화를 추구하고 억압받고 차별받는 사람들의 권리를 쟁취하고자 했다. 그가 바로 30대의 젊은 흑인 목사 마틴 루터 킹이다. 19세기 남북전쟁 이후 미국 정부는 법적으로 흑인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했었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남부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흑인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하지 않으려 했고, 이는 1960년대 까지도 그러했다.

 

영화 제목인 셀마는 말 그대로 1965년 마틴 루터 킹과 흑인들 그리고 진보주의자들이 흑인들의 투표권을 위해 투쟁을 시작했던 곳의 지명이기도 하다. 인종평등과 투표권을 요구하는 그들의 목소리에 대한 미국 남부사회의 대응은 무자비하고 잔인했다. 그들은 과거 노예를 다뤘을 때처럼, 채찍으로 때리고, 곤봉을 휘갈겼으며, 단순히 피부가 검다는 이유로 그들을 멸시했다. 심지어 총으로 쏴 죽이는 일도 있었다. 흑인들에 대한 백인들의 대응은 폭력과 멸시 그리고 억압 그 자체였다.

 

마틴 루터 킹은 그들에 맞서 투쟁도 하고, 협상도 하며, 많은 이들과 연대했다. 비록 비폭력에 의존한 투쟁이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엘라베마 주에서 흑인들의 투표권을 쟁취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적잖게 많은 눈물을 흘렸다. 경찰과 인종주의자들에게 무차별 폭행당하는 흑인의 모습과, 마틴 루터 킹의 연설은 나도 모르는 사이 눈물을 흘리게 하였다.

 

영화 셀마의 주연은 분명히 마틴 루터 킹이지만, 그가 했던 그 유명한 연설인 ‘I have a dream'으로 시작하는 그 명연설은 등장하지 않는다. 킹도 킹이지만, 권리를 위해 투쟁했던 수많은 흑인 대중들을 이 영화는 극중에서 절대 외면하지 않는다. 그들을 보여줌으로서, 개개인이 모여 단체가 되었을 때 수많은 이들의 목소리가 어떻게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지를 영화는 보여준다.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무신론자이긴 하나, 그의 설교는 날 매우 감동하게 만들었다.

 

투표권을 찾기 위한 그들의 행진은 셀마에서 시작하여 몬트고머리에서 끝난다. 그러나 위대한 목사 마틴 루터 킹은 이것은 절대 끝이 아니다라는 것을 분명 밝히고 강조한다. 그렇다. 더 좋은 사회를 위한 세계인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영화가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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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모이 감상평: 우리말과 글의 소중함을 알게해주는 영화

올해 초 제가 영화관에서 처음보게된 영화는 태평양 전쟁 시기 우리말과 글을 지키고자 일제에 맞섰던 조선어학회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말모이‘입니다.

1910년 부터 1945년 까지 조선을 지배했던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우리의 나라를 빼았고, 수탈하고, 무수히 많은 생명까지 뺏는것도 모자라 우리나라의 민족정신을 말살시키기 위해 말과 글까지 없애려고 했습니다. 특히나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면서 조선어를 말살하려는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정책은 더더욱 심해졌습니다.

창시개명과 황국신민화운동 그리고 강제징용을 시작으로 일본제국주의자들의 민족말살정책은 태평양 전쟁으로 극에 달했습니다. 그들의 탄압으로 인하여 수많은 지식인들이 친일파가 되어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전쟁을 옹호하며 민족말살정책에 앞장섰습니다.

그런 탄압에도 불구하고 한 나라의 말과 지키기 위해 조선말 사전을 완성하고자 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조선어학회 학자들입니다.
민족말살정책을 통하여 우리의 말과 글을 없애려 했던 일본제국주의자들은 그들을 구속하고 탄압했지만, 우리의 말과 글을 없애지 못했습니다.

1945년 8월 일제가 세계연합군에 의해 패망하고 난 뒤, 그들이 숨겼던 조선어 사전 원고가 발견됐고, 그들이 지킨 사전 원고를 가다듬어 1947년 한글날에 ‘조선말 큰사전‘ 1권을 을유문화사에서 출판하게 됩니다.

오늘 사촌동생이랑 ‘말모이‘를 보며 우리말과 글을 지켜주신 학자들과 이를 위해 협력한 무명의 조선인들에게 큰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19세기 당시 고도로 발달된 자본제국주의 국가들의 지배를 당했던 나라들 중엔 자신든의 고유 언어와 문자를 잃게된 나라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를 생각하니 그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울 따름입니다.

우리 말과 글을 지켜준 분들에게 다시한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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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Malcolm X (말콤 X) (1992)(지역코드1)(한글무자막)(DVD)
Warner Home Video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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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자매들이여, 저는 오늘 백인을 고발하러 나왔습니다. 백인을 사상 최대의 살인자로 그리고 납치자로 고발합니다. 백인이 평화와 안정을 세웠다고 볼 사람은 없습니다. 백인이 가는 곳은 어디든 폭력이 난무했고, 사정없이 파괴됐습니다. 저는 백인을 사상 최대의 납치범과 살인자로 고발하며 백인을 최대의 강도범과 노예주로 고발합니다. 백인을 이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못된 자로 고발합니다. 백인들은 이 죄목들을 절대로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절대로 부인할 수 없습니다. 바로 여러분과 제가 산 증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미국인이 아니고 바로 미국의 희생자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스스로 온게 아니었습니다. ‘흑인이여, 같이 가서 미국을 세웁시다.’가 아니라 백은들은 ‘검둥아 배에 타거라 너희를 억지로 끌고 가서 미국을 세우겠다.’고 했습니다. 이 땅에 태어난 우리는 미국인이 아닙니다. 여러분도 저도 아닙니다. 2천 2백만 흑인 중 한 명으로서 미국의 희생자일 뿐입니다. 민주주의는 본 적도 없습니다. 조자아주의 목화 농장에도 결코 민주주의는 없었으며, 뉴욕 디트로이트, 시카고의 빈민가에도 민주주의는 없습니다. 우린 민주주의를 본 적이 없고, 오로지 백인들의 위선만을 보았습니다! 우리에게는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것이 없었고, 처험한 건 악몽뿐입니다.”


-영화 말콤 X에서 나온 말콤 X의 연설


미국의 역사는 이민의 역사이자 많은 인종들이 더불어 살아온 다민족의 역사이기도 하다. 21세기에 들어선 미국은 과거에 비해 인종차별이 많이 나아졌지만, 그 잔재는 이 사회에 아직도 남아 있다. 물론 현재는 흑인과 백인이 분리되어 화장실을 사용하거나 분리된 채 전용버스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현재 미국과는 달리 과거 미국은 흑인들을 비롯한 유색인종들이 극심한 차별을 받던 세상이었다. 1860년대 남북 전쟁으로 인하여 노예제는 폐지가 되었지만, 노예제가 사라졌을 뿐, 흑인들은 백인들과 인종적으로 혹은 법적으로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했고, 자본주의의 발전함에 따라 흑인들은 백인들 밑에서 고된 일을 하게 됐으며, 백인들은 흑인들을 무시하고 멸시했다. 미국내의 인종차별은 미국이 나치독일과 일본제국과 같은 파시즘에 맞서 싸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시기, 어느 혁명가 한 명이 백인 지배계급에 맞서 싸웠다. 그 혁명가가 바로 말콤 X다. 초등학생시절 공부를 잘하던 말콤 X는 한때 변호사가 꿈이었었다. 그러나 인종차별과 흑인들이 좋은 직업을 갖기 힘든 현실적 어려움이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말콤 X는 고등학교에도 진학하지 못했고, 1939년 중학교를 중퇴하고 방황하는 청소년기를 보냈다.


청소년기에는 뉴욕과 보스턴등을 돌아다니며 구두닦이, 샌드위치 판매원 등의 잡일을 하며 보냈고, 2차세계대전 당시에는 마약 밀매나 강도, 포주에도 손을 댔다. 그때 만난 백인여자들과 동업하며, 총기 강도 범죄를 저질렀고, 2차세계대전이 거의 끝나가던 1945년 경찰에게 체포되어 법정에서 8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생활을 했다. 그러나 정말 기가막힌 것은 같이 했던 두 백인 여성은 훈방조치로 끝이 났던 데에 비해 말콤 X와 그의 흑인 동료는 “감히 선량한 백인 여성을 나쁜 길로 사주했다는” 괘씸죄까지 적용되었다.


젊은 시절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백인문화들을 즐겼던 말콤 X에게 확실한 변화가 생긴 것은 싱싱교도소에서 감옥생활을 하면서 부터였다. 감옥생활을 이어나가던 말콤은 독학으로 공부한 동료 수감자 존 빔비라는 '네이션 오브 이슬람(The Nation of Islam)' 멤버 중 한명을 만나, 백인 지배계급이 만들어낸 왜곡과 모순을 알게 되었다. 이는 영화에서 그 동료가 백인이 만든 사전을 펼쳐놓고, 단어장에 있는 black과 white에 써 있는 내용들을 보여주며 그에게 진실을 알려주는 장면으로 등장한다. 존 빔비가 속해있던 조직을 알게 된 말콤은 그 조직의 지도자인 일라이자 무하마드의 사상을 접하게 되었고, 1952년 가석방 된 이후 무하마드를 만나 네이션 오브 이슬람에 가입하여 활동한다. 이때부터 그는 말콤 X라는 이름을 쓰게 되었고, 1952년 5백여 명에 불과했던 작은 종교조직을 1963년 무렵 2만 5천에 달하는 거대조직으로 성장시켰다. 말콤은 선교활동을 통해서 백인들의 폭력과 억압 그리고 인종차별을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이는 많은 흑인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조직을 성장시킨 말콤은 1957년 한 사건을 통해 유명해졌다. 이는 힌튼 존슨 사건이라 불리는데, 당시 존슨이라는 흑인 이슬람교도가 뉴욕 경찰에게 폭행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자, 흑인 8백여 명이 경찰서 앞에 집결하여 소요사태가 일어났고, 말콤은 경찰 측과 접촉하여 존슨을 치료할 것과 폭행한 경찰을 처벌할 것을 약속받고 이를 경찰서 앞에 모여 있던 흑인들에게 전달하고 흑인들을 순식간에 해산시켰던 사건이다.


물론 흑인단체를 성장시켜 백인에게 맞섰던 말콤 X은 기본적으로 백인과의 통합을 주장하지 않았기에 다른 단체들과의 갈등요소로 부각되기도 했었다. 이 때문에 당시 흑백통합을 주장하고 비폭력을 주장했던 흑인 목사이자 혁명가이던 마틴 루터 킹과 갈등을 겪기도 했다. 그리고 1963년 11월 존F케네디가 암살당했을 때, 말콤은 사실상 ‘자업자득’이라는 식의 발언을 하여 비판을 받기도 했었다. 그랬던 그의 흑백분리정책이 달라진 것은 1963년 그가 이집트를 비롯한 중동국가에 성지순례를 갔다 오고 난 이후였다. 성지순례를 갔다 온 이후 말콤은 흑백분리 정책이 아닌 통합정책을 추구한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밝혔고, 자신이 속해있던 조직인 네이션 오브 이슬람에서 공식적으로 탈퇴한다. 한때 갈등했던 킹 목사하고도 만나 그의 노선을 재평가하게 된 말콤은 그 조직에서 탈퇴한 말콤은 과거 자신이 속해있던 네이션 오브 이슬람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때문에 그쪽 조직으로부터 테러나 협박을 당하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 백인우월주의자들로부터 공격받기도 했다. 그러던 1965년 2월 21일 뉴욕 할렘가의 오두본볼룸에서 연설을 하다 괴한들에게 16발의 총알을 맞고 사망한다.

1992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말콤 X의 생애를 담은 영화다. 3시간 동안 말콤의 생애를 다룬 이 영화를 통해서 말콤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를 알 수 있었다. 영화를 보며 미국내의 인종차별과 그에 맞선 흑인들의 투쟁을 알 수 있었고, 백인에 대한 그들의 분노가 얼마나 극심했을지 충분히 이해가 됐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말콤 X는 흑백분리주의를 추구했다는 점에선 분명 킹 목사와 비교했을 때 한계가 있다. 비록 그런 한계가 있을지라도, 그는 백인정권과 인종주의에 맞서 싸운 혁명가였고, 베트남 전쟁을 통해 생길 많은 사회운동 단체들에게 영향을 준 인물이기도 하다. 정말 감동적인 영화를 봤다. 3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이 좀 지루하게 만들지는 모르겠지만, 안본 사람은 꼭 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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