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Malcolm X (말콤 X) (1992)(지역코드1)(한글무자막)(DVD)
Warner Home Video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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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자매들이여, 저는 오늘 백인을 고발하러 나왔습니다. 백인을 사상 최대의 살인자로 그리고 납치자로 고발합니다. 백인이 평화와 안정을 세웠다고 볼 사람은 없습니다. 백인이 가는 곳은 어디든 폭력이 난무했고, 사정없이 파괴됐습니다. 저는 백인을 사상 최대의 납치범과 살인자로 고발하며 백인을 최대의 강도범과 노예주로 고발합니다. 백인을 이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못된 자로 고발합니다. 백인들은 이 죄목들을 절대로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절대로 부인할 수 없습니다. 바로 여러분과 제가 산 증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미국인이 아니고 바로 미국의 희생자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스스로 온게 아니었습니다. ‘흑인이여, 같이 가서 미국을 세웁시다.’가 아니라 백은들은 ‘검둥아 배에 타거라 너희를 억지로 끌고 가서 미국을 세우겠다.’고 했습니다. 이 땅에 태어난 우리는 미국인이 아닙니다. 여러분도 저도 아닙니다. 2천 2백만 흑인 중 한 명으로서 미국의 희생자일 뿐입니다. 민주주의는 본 적도 없습니다. 조자아주의 목화 농장에도 결코 민주주의는 없었으며, 뉴욕 디트로이트, 시카고의 빈민가에도 민주주의는 없습니다. 우린 민주주의를 본 적이 없고, 오로지 백인들의 위선만을 보았습니다! 우리에게는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것이 없었고, 처험한 건 악몽뿐입니다.”


-영화 말콤 X에서 나온 말콤 X의 연설


미국의 역사는 이민의 역사이자 많은 인종들이 더불어 살아온 다민족의 역사이기도 하다. 21세기에 들어선 미국은 과거에 비해 인종차별이 많이 나아졌지만, 그 잔재는 이 사회에 아직도 남아 있다. 물론 현재는 흑인과 백인이 분리되어 화장실을 사용하거나 분리된 채 전용버스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현재 미국과는 달리 과거 미국은 흑인들을 비롯한 유색인종들이 극심한 차별을 받던 세상이었다. 1860년대 남북 전쟁으로 인하여 노예제는 폐지가 되었지만, 노예제가 사라졌을 뿐, 흑인들은 백인들과 인종적으로 혹은 법적으로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했고, 자본주의의 발전함에 따라 흑인들은 백인들 밑에서 고된 일을 하게 됐으며, 백인들은 흑인들을 무시하고 멸시했다. 미국내의 인종차별은 미국이 나치독일과 일본제국과 같은 파시즘에 맞서 싸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시기, 어느 혁명가 한 명이 백인 지배계급에 맞서 싸웠다. 그 혁명가가 바로 말콤 X다. 초등학생시절 공부를 잘하던 말콤 X는 한때 변호사가 꿈이었었다. 그러나 인종차별과 흑인들이 좋은 직업을 갖기 힘든 현실적 어려움이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말콤 X는 고등학교에도 진학하지 못했고, 1939년 중학교를 중퇴하고 방황하는 청소년기를 보냈다.


청소년기에는 뉴욕과 보스턴등을 돌아다니며 구두닦이, 샌드위치 판매원 등의 잡일을 하며 보냈고, 2차세계대전 당시에는 마약 밀매나 강도, 포주에도 손을 댔다. 그때 만난 백인여자들과 동업하며, 총기 강도 범죄를 저질렀고, 2차세계대전이 거의 끝나가던 1945년 경찰에게 체포되어 법정에서 8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생활을 했다. 그러나 정말 기가막힌 것은 같이 했던 두 백인 여성은 훈방조치로 끝이 났던 데에 비해 말콤 X와 그의 흑인 동료는 “감히 선량한 백인 여성을 나쁜 길로 사주했다는” 괘씸죄까지 적용되었다.


젊은 시절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백인문화들을 즐겼던 말콤 X에게 확실한 변화가 생긴 것은 싱싱교도소에서 감옥생활을 하면서 부터였다. 감옥생활을 이어나가던 말콤은 독학으로 공부한 동료 수감자 존 빔비라는 '네이션 오브 이슬람(The Nation of Islam)' 멤버 중 한명을 만나, 백인 지배계급이 만들어낸 왜곡과 모순을 알게 되었다. 이는 영화에서 그 동료가 백인이 만든 사전을 펼쳐놓고, 단어장에 있는 black과 white에 써 있는 내용들을 보여주며 그에게 진실을 알려주는 장면으로 등장한다. 존 빔비가 속해있던 조직을 알게 된 말콤은 그 조직의 지도자인 일라이자 무하마드의 사상을 접하게 되었고, 1952년 가석방 된 이후 무하마드를 만나 네이션 오브 이슬람에 가입하여 활동한다. 이때부터 그는 말콤 X라는 이름을 쓰게 되었고, 1952년 5백여 명에 불과했던 작은 종교조직을 1963년 무렵 2만 5천에 달하는 거대조직으로 성장시켰다. 말콤은 선교활동을 통해서 백인들의 폭력과 억압 그리고 인종차별을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이는 많은 흑인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조직을 성장시킨 말콤은 1957년 한 사건을 통해 유명해졌다. 이는 힌튼 존슨 사건이라 불리는데, 당시 존슨이라는 흑인 이슬람교도가 뉴욕 경찰에게 폭행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자, 흑인 8백여 명이 경찰서 앞에 집결하여 소요사태가 일어났고, 말콤은 경찰 측과 접촉하여 존슨을 치료할 것과 폭행한 경찰을 처벌할 것을 약속받고 이를 경찰서 앞에 모여 있던 흑인들에게 전달하고 흑인들을 순식간에 해산시켰던 사건이다.


물론 흑인단체를 성장시켜 백인에게 맞섰던 말콤 X은 기본적으로 백인과의 통합을 주장하지 않았기에 다른 단체들과의 갈등요소로 부각되기도 했었다. 이 때문에 당시 흑백통합을 주장하고 비폭력을 주장했던 흑인 목사이자 혁명가이던 마틴 루터 킹과 갈등을 겪기도 했다. 그리고 1963년 11월 존F케네디가 암살당했을 때, 말콤은 사실상 ‘자업자득’이라는 식의 발언을 하여 비판을 받기도 했었다. 그랬던 그의 흑백분리정책이 달라진 것은 1963년 그가 이집트를 비롯한 중동국가에 성지순례를 갔다 오고 난 이후였다. 성지순례를 갔다 온 이후 말콤은 흑백분리 정책이 아닌 통합정책을 추구한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밝혔고, 자신이 속해있던 조직인 네이션 오브 이슬람에서 공식적으로 탈퇴한다. 한때 갈등했던 킹 목사하고도 만나 그의 노선을 재평가하게 된 말콤은 그 조직에서 탈퇴한 말콤은 과거 자신이 속해있던 네이션 오브 이슬람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때문에 그쪽 조직으로부터 테러나 협박을 당하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 백인우월주의자들로부터 공격받기도 했다. 그러던 1965년 2월 21일 뉴욕 할렘가의 오두본볼룸에서 연설을 하다 괴한들에게 16발의 총알을 맞고 사망한다.

1992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말콤 X의 생애를 담은 영화다. 3시간 동안 말콤의 생애를 다룬 이 영화를 통해서 말콤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를 알 수 있었다. 영화를 보며 미국내의 인종차별과 그에 맞선 흑인들의 투쟁을 알 수 있었고, 백인에 대한 그들의 분노가 얼마나 극심했을지 충분히 이해가 됐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말콤 X는 흑백분리주의를 추구했다는 점에선 분명 킹 목사와 비교했을 때 한계가 있다. 비록 그런 한계가 있을지라도, 그는 백인정권과 인종주의에 맞서 싸운 혁명가였고, 베트남 전쟁을 통해 생길 많은 사회운동 단체들에게 영향을 준 인물이기도 하다. 정말 감동적인 영화를 봤다. 3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이 좀 지루하게 만들지는 모르겠지만, 안본 사람은 꼭 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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