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옥의 묵시록에서 주인공으로 출연한 배우이자 감독인 마틴 쉰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Vietnam American Holocaust’의 리뷰입니다.)
베트남 전쟁은 건국 이래 미국이 최초로 패배한 전쟁이다. 1960년대부터 1975년까지 대략 15년 동안 이 참혹하고도 잔인한 전쟁에 참전했던 미국은 핵폭탄을 제외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이 전쟁을 수행했다. 물론 대니얼 엘스버그가 폭로한 펜타곤 페이퍼에 따르면 미국의 베트남 문제 개입은 대략 30년이나 된다. 베트남 전쟁은 참으로 참혹한 전쟁이자, 추악한 미국의 침략전쟁이었다. 미국은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할 거 없이 대량의 폭탄을 투하했고, 이로 인한 베트남인들의 사망자는 급증했으며, 사실상 수백만이 죽었다.
존 F. 케네디 행정부에서 근무하며 이 전쟁을 계획했던 로버트 맥나마라는 베트남과 미국이 수교를 맺은 뒤,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340만 명의 베트남인을 죽였다고 고백했다. 한 마디로 이 전쟁 자체가 미국의 일방적인 베트남인 학살극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전쟁을 일으키고 행한 주체가 바로 미국이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의 교훈을 얻지 못한 채 2003년 이라크 전쟁을 일으켜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 이 다큐멘터리 내용의 핵심이다.
다큐멘터리는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게 된 역사에 대해 설명한다. 베트남의 역사는 2천 년 동안 중국의 침략에 맞서 저항해온 역사다. 이들은 939년에 중국의 지배에 맞서 자주적인 국가를 세웠으며, 그 이후에도 중국의 침략에 저항해왔다. 그러던 19세기 프랑스가 베트남을 식민지화했고, 베트남은 라오스와 캄보디아를 포함하여 프랑스의 식민지가 됐다. 당시 프랑스는 베트남을 식민지화하면서 베트남의 자원을 갈취해가고, 베트남인들을 차별했으며 폭압적인 식민통치를 자행했다.
그러던 1940년 프랑스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에게 점령당하자, 일본이 인도차이나 반도를 접수했고, 일본은 기존에 있던 프랑스 식민통치 기반을 유지해나가며 인도차이나 반도를 식민 지배했다. 이 기간에 베트남인들은 프랑스와 일본에 맞서 독립운동을 벌였는데, 그 조직이 바로 베트민이었고, 그 베트민의 지도자가 바로 호치민이었다. 호치민은 젊은 시절 전 세계를 돌아다녔던 인물로 미국의 흑인인권운동가 마커스 가비에게 감명 받았었고, 미국의 자유주의 사상에도 나름의 호감을 가졌던 인물이다. 이후 1920년대 모스크바로가 코민테른 요원으로서 활동하기도 했지만, 이후 그는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었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한 이후 호치민은 베트남의 독립을 선포했다. 놀랍게도 그의 독립선언은 미국의 독립선언문과 비슷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동맹국 프랑스의 식민정책에 반대 했었다. 그러나 루스벨트를 이어 대통령이 된 해리 트루먼은 반공주의적인 인물로써, 베트남의 문제를 냉전의 논리로 접근했다. 그 결과 트루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의 베트남 식민지 정책을 옹호했다.
베트남 독립을 선포했던 호치민은 1946년 항구도시 하이퐁이 프랑스군의 포격을 받자, 독립전쟁 즉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치르게 되었고,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프랑스를 몰아냈다. 당시 프랑스는 자신들의 치르고 있던 식민지 전쟁을 냉전의 흐름에 빚대어 ‘자유주의 대 공산주의’의 구도로 포장했고, 꼭두각시 황제 바오다이를 베트남 남부의 지도자로 내세웠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트루먼은 프랑스를 지원했다. 디엔비엔푸 전투 이후 제네바 회담이 개최되었고, 베트남은 북위 17도선으로 남북 분단됐다. 물론 이 분단에는 2년 이내에 통일을 위한 총선거를 실시한다는 전제조건이 붙었다.
여기서 미국은 바오다이가 통치하던 남베트남에 자신들의 꼭두각시인 응오딘지엠을 내세워 남베트남 공화국을 수립했고, 80%가 호치민을 지지할 것이라 판단하여 총선을 일방적으로 파기해버렸다. 그 결과 남베트남에는 응오딘지엠이 통치하는 무자비한 체제가 들어섰고, 민중들은 이에 저항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이렇게 해서 남베트남에 창설된 것이 바로 베트콩이었던 것이다. 베트남 문제에 개입하던 미국은 존 F. 케네디 대통령때 미군사고문단을 보냈다. 이 숫자는 1963년 1만 6,000명으로 증가했다. 다큐멘터리에선 이를 프랑스 특수부대에서 미국의 그린베레로 바뀐 것이라 표현한다.
불교도와 학생 그리고 민중의 시위로 혼란스럽던 남베트남은 무너지고 있었다. 이걸 우려한 미국의 CIA는 응오딘지엠을 제거하고 새로운 정권을 남베트남에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베트남이 무너질 거라 걱정한 미국은 1964년 통킹만 사건을 조작하여 전면적인 침략을 게시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바로 미국의 베트남 전쟁 개입 전개과정이었으며, 명백히 미국의 침략전쟁이었다.
사실 1964년 통킹만 사건은 미국의 자작극이었다. 이들은 전쟁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북베트남 영해에 구축함을 포함한 함정들을 배치했고, 사건을 조작하여 북베트남 침공을 정당화했다. 1965년 3월에는 미지상군이 상륙했고, 그 숫자는 해가 지날수록 더 늘어났다. 미 지상군이 참전하면서 베트남 전쟁의 전개양상은 참으로 추악해지고 잔혹해졌다. 특히나 수색과 섬멸 작전이라는 이름하에 수많은 민간인들이 베트콩으로 몰려 학살당했다. 당시 전쟁에 참전했던 참전용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른바 자유 사격 지대에선 보이는 생명체는 모든 죽여도 됐다고 한다. 또한 베트콩이라는 의심만 가지고 증거 없이 죽일 수 있었다.
사살당한 민간인은 적군으로 바디 카운트가 되었으며, 그러한 위조와 조작은 수도 없이 많았다. 다큐멘터리는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사살한 100~150만 명 이상의 베트콩과 북베트남군의 수치에 민간인들도 적잖게 포함되었다는 사실을 얘기해준다. 대표적인 민간인 학살 미라이 학살도 사실은 그런 날조된 바디 카운트로 군에 보고되었으며, 진상이 규명되기 전까지는 그저 베트콩 사살로 군 기록에 남아있었다. 이 과정에서의 부녀자 강간이나 아동사살이 빈번히 일어났고, 주민들이 살던 마을은 죄다 불에 태워졌다. 문제는 이러고 나면 민간인들이 거주할 곳이 사라졌고, 식량과 집 그리고 가족을 잃은 주민들이 당연히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베트콩을 지지한 이유도 그러했다. 미국이 전개한 피닉스 작전의 경우도 민간인을 베트콩으로 몰아 학살한 행위였다.
베트남 전쟁에선 미국은 대규모의 헬리콥터 작전을 전개했다. 수많은 헬리콥터가 베트남에 배치되었고, 이것은 미국이 화력 면에서 베트콩이나 북베트남군을 압도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줬다. 그러나 이 헬리콥터가 수행한 작전에서도 적잖은 민간인들이 죽었다고 다큐멘터리는 얘기한다. 헬리콥터가 발사한 기관총과 건쉽 그리고 미사일 등은 베트콩뿐만 아니라 민간인들을 베트콩으로 간주하고 사살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물론 이것도 적군 사살로 얼마든지 군 자료에는 표기됐다.
베트남 전쟁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를 야기한건 당연하게도 융단폭격이었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대략 750만 톤에서 800만 톤에 달하는 폭탄을 투하했다. 남북베트남 할 거 없이 국토가 초토화되었다. 이 폭격을 계획했던 인물은 바로 로버트 맥나마라와 커티스 르메이 같은 미국의 관료들이었다. 특히나 닉슨 정부의 캄보디아 침공에선 이런 융단 폭격으로 캄보디아인 80만 명이 폴포트의 킬링필드 이전에 학살당했다고 다큐멘터리는 얘기한다. 한마디로 미국도 캄보디아에서 킬링필드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당시 미국이 베트남에 투하한 폭탄 800만 톤은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 640개와 맞먹는다고 한다. 커티스 르메이가 자주 표현하던 대로 미국은 베트남을 석기시대로 만들려고 있다. 다큐멘터리 또한 이러한 폭격에는 네이팜 폭탄을 비롯한 각종 폭탄이 투하되었으며, 미 공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시설들 대다수는 민간 시설이었음을 지적한다. 미국의 이러한 민간인 학살 행위는 베트남인들이 미국에 저항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다큐멘터리는 미국의 이러한 맹목적인 무차별 폭격은 명백히 국제법을 위반한 행위였다고 설명한다. 특히나 그 피해자 대다수가 민간인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 전쟁에서 화확무기를 사용했는데, 그것이 바로 에이전트 오렌지로 대표되는 고엽제였다. 이 고엽제는 라오스와 캄보디아 그리고 베트남에 살포되었고, 400만 명의 베트남인이 고엽제에 노출되어 피해를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 고엽제로 최소 수십만 명이 사망했으며, 베트남 전쟁 이후에도 2008년 기준으로 최소 40만 명 이상의 고엽제 피해자들이 존재했다. 특히나 고엽제에 노출되었던 베트남인들 사이에선 기형아가 무수히 많이 태어났으며, 베트남의 국토 또한 이 고엽제로 고통을 받았다. 이 고엽제 투하 또한 미국의 융단 폭격과 더불어 전쟁범죄였다.
마틴 쉰 감독이 제작한 이 다큐멘터리는 이러한 사례를 들어 미국이 참전한 베트남 전쟁이 미국이 저지른 홀로코스트 행위였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또한 이 전쟁에서 미국이 300만에서 500만을 학살한 책임이 막중하다고도 설명한다. 다큐멘터리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호치민과 베트남인들은 그저 자신들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침략자들과 압제자들에 맞서 싸운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바로 미국이었다. 그리고 미국은 부도덕한 침략전쟁을 베트남에게 자행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수백만의 베트남인을 무차별 학살하는 야수적인 만행을 저질렀다.
다큐멘터리에선 미국 대통령들의 연설도 보여준다. 통킹만 사건을 조작하여 베트남에 침략을 자행한 미국의 린든 B. 존슨 대통령의 연설이 다큐멘터리에서 나온다. 존슨 대통령은 “베트남이 계속 독립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본인들 나라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해라!”라고 지껄인다. 나는 이러한 존슨 대통령의 연설에 분노를 참기가 매우 힘들었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제국주의자들이 본인들의 침략 행위를 정당화 하는 구실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본인들이 그 나라의 독립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아주 뻔뻔스럽게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화가 치밀어 오른다. 제국주의자들의 잔혹함과 파렴치함은 이처럼 침략전쟁을 말도 안되는 논리로 정당화한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이라크 전쟁이 일어난 지 5년 뒤인 2008년에 만들어졌다. 따라서 미국의 또 다른 침략전쟁이 이라크 전쟁이 베트남 전쟁과 같은 선상에서 많이 오버랩 시키는 측면이 있다. 물론 이 두 전쟁은 미국의 침략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유사하고, 수많은 사망자가 미국에 의해 나왔다는 점도 일치한다. 거기다 미국이 이라크 전쟁에 개입한 것 또한 1964년 통킹만 사건 조작과 매우 비슷하다. 다큐멘터리는 미국이 베트남에서 3~5백만을 죽게 만들었지만, 2003년 이라크 침공으로 또 다른 백만 명의 이라크인을 학살했다고 규탄한다. 정말 훌륭한 다큐멘터리를 감상할 수 있었다.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미국의 추악하고 부도덕한 제국주의다. 베트남 전쟁이 어떻게 해서 미국의 학살극인지를 알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감상하길 매우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