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국왕의 일생 규장각 교양총서 1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엮음 / 글항아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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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뿌리깊은 나무가 종영되었다. 그전에는 공주의 남자, 그 전에는 이산, 또 그전에는.... 지금까지 드라마나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왕들을 한번 열거해보자. "태조, 태종, 세종, 단종, 세조, 성종, 연산군, 선조, 광해군, 인조, 영조, 정조, 고종..." 정확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꽤 많은 왕들이 드라마에 단골 메뉴로 등장했다. 중국과의 역사 전쟁 때문에 고구려에 대한 열풍이 불기 이전 대부분의 사극은 조선이 배경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왕뿐 아니라 여기에 더하여서 등장하는 왕비, 후궁, 상궁, 내시 등등을 합치면 또 얼마나 많은 궁궐에 살던 사람들이 등장했는지 모른다. 그들을 통해서 우리가 상상하게 되는 궁궐의 모습은 명암이 분명하게 갈린다. 성군이 되어 국가를 잘 경영하든, 아니면 폭군이 되어 권력을 휘두르든 왕의 자리는 권력의 정점이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자리이다. 그렇지만 그 이면에서는 왕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혹은 왕의 최측근이 되어 권력의 한자락이라도 얻어보기 위해서 온갖 음모와 계략과 암투가 판을 친다. 무당을 불러서 저주 굿을 하고, 왕을 해치기 위해 은밀히 독살하는 것은 양반이요, 때론 직접적으로 무력까지 동원하기도 한다.

 

  우리가 상상하는 조선 왕과 궁궐의 모습이 대략이러한데 이것이 과연 사실인가? 모두가 틀렸다는 말이 아니라 개중에는 사실이 아닌 것도 있다는 점을 말하려는 것이다. 왕을 하늘의 아들, 성혈, 나랏님 등등 여러가지 말로 신성시하며 권위를 세우려고 하지만 결국 왕들도 희노애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이다. 조선 왕의 생각과 삶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으로서의 왕에 대한 이해 또한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역사서들은 인간으로서의 왕보다는 정치권력자로서의 왕에 집중하기 때문에 반쪽짜리 이해에 머무르기 쉽다. 그 결과가 허구로 재구성되는 사극에 혹하여 역사를 오해하는 일까지 발생하게 된다.

 

  이 책은 철저하게 정치권력자로서의 왕이 아니라 개인으로서의 왕을 소개하는데 치중하고 있다. 물론 정치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왕이기 때문에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정치적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지만 최대한 정치적인 것들을 배제하고 출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는 왕의 일생에 대해서 소개한다. 한 주제에 대하여 20페이지 내외의 짧은 분량으로 설명하기 때문에, 게다가 이해를 돕기 위한 삽화를 많이 첨부하였기 때문에 읽기가 수월하다. 전문적인 학술서가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 읽히기 쉽게 만들었다는 취지에 적합하다. 실제로 책을 읽으면서 꽤 흥미로운 지식들을 얻기도 했다. 가령 왕이 공식적으로 술을 마시는 날이라든지, 혹은 왕이 어떤 음식들을 먹고 살았는지, 궁궐밖으로 왕이 행차한 이유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등등 교과서를 통해서 배우지 못하는 것들, 대부분의 역사서에서 다루지 않는 것들을 세세하게 알게 된 것이 이 책을 통해 얻게 된 소득이다. 역사를 공부하는 중고등학생들에게 교과서처럼 읽힌다면 꽤 유익할 수도 있겠다.

 

  다만 아쉬운 점은 규장각 교양총서가 가진 태생적인 한계이다. 첫째는 사람들에게 당시의 생활상들을 있는 그대로 알려 주다 보니 독자의 눈을 끌어 들일 수 있는 임팩트가 없다는 것이다. 꽤 유익하고, 그리 두껍지 않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진도가 안나간다. 손에서 책을 떼지 못하게 하는 흥미진진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시리즈의 책을 보기 위해서는 지적 호기심과 더불어 은근과 끈기가 필요하다. 둘째는 삽화가 많이 들어가다보니 종이질이 월등하게 좋다는 것이다. 종이질이 월등하게 좋은 것이 무엇이 문제가 되느냐면 하나는 책값이 비싸진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눈이 아프다는 것이다. 비슷한 다른 책에 비하여 이 책은 꽤 고가이다. 예를 들면 조선 국왕의 일생은 290 페이지 책이 19800원이다. 선뜻 시리즈를 사모으지 못하고 한권씩 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눈이 아픈 이유는 무엇이냐? 밝은 대낮에 야외에서 이 책을 보면 괜찮지만 형광등 밑이나 스탠드 밑에서 보면 반사되는 빛으로 인해 눈이 심히 아프다. 혹 가능하다면 무광용지로 인쇄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별점이 두개인 이유는 순전히 이것 때문이다.

 

  이책을 읽고 내린 결론은 "왕 노릇하는 것도 참 쉽지 않다."는 것이다. 다시는 궁궐에 살게 하지 마소서라는 꼭지의 글이 마음에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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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12-01-01 0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 인터넷으로 읽을 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구입하고나서 후회한 책들이 더러 있습니다. 좋은 리뷰가 있었더라면...하는 아쉬움이 남을 때입니다. 그런 연유로 좋은 리뷰는 읽을 도서를 선정하는데 대단히 좋은 참고자료가 되어줍니다. saint님의 리뷰는 양질의 리뷰인지라 다수의 독자들에게 도움이 클 것입니다. 제게도 역시... 읽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리뷰를 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만 saint님께서는 그 일을 해주시는군요. 새해 더욱 행복한 가정되시길 바랍니다.

saint236 2012-01-01 22:57   좋아요 0 | URL
이런 댓글에 제가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차트랑공님도 좋은 한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올해에도 알라딘을 굳건히 지키세요 화이팅

2012-01-01 0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1 2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INY 2012-01-01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규장각 교양총서, 쉽게 보관함에서 장바구니로 이동시키지 못하는 책입니다. 관심은 있는데 말입니다... 이런 건 신서나 문고본으로도 나와주면 안되는 것일까요. 아쉽습니다.

saint236 2012-01-03 10:19   좋아요 0 | URL
저도 보관함에 넣어두었다가 큰 맘먹고 한권씩 옮깁니다. 아마도 삽화 때문에 불가능하지 않나 생각해보네요. 삽화가 보조 수단이 아니라 중요도가 꽤 높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