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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 즐거움의 발견 - 우울한 현대인이 되찾아야 할 행복의 조건
스튜어트 브라운 & 크리스토퍼 본 지음, 윤미나 옮김, 황상민 감수 / 흐름출판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어릴 때 신나게 놀았다. 송골매의 노래처럼 아침부터 무여서 놀고, 저녁까지 놀았다. 조금 더 커서 외박을 해도 될 나이가 되었을 때는 밤새도록 놀았다. 시험 기간에는 시험은 쉬엄쉬엄하는 것이라 놀았고, 시험이 끝나고 나서는 끝났다고 놀았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 대학을 다녔지만 강의실에 있었던 시간보다는 운동장에서 있었던 시간이 더 많다. 오후 수업을 마치고 나면 기숙사에서 축구공을 튕기면서 "공차자"그러면 여기저기에서 문이 열리면서 한발이라도 더 앞서 나오기 위해 경쟁했다. 학교 운동장이 작은 관계로 정식 축구는 못하고 6:6 혹은 7:7 정도로 미니 게임을 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공을 못찼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기다. 왜 그렇게 노는데 목숨 걸었는지, 공차는 것이 뭐라고 남보다 한발 더 앞서 나가려고 노력했는지. 학점에 그정도로 목숨 걸었으면 누구 말마따나 장학금을 탔을테지만 학점은 관심밖이었다. 그때 공부 열심히 한 사람이나 논 사람이나 열심히 살기는 매한가지다. 왜 놀았을까? 이유가 무엇일까? 나가서 다치고, 공차다 까지고 들어오면서도 왜 그렇게 발끈하고 미친듯이 뛰었을까? 아무 이유 없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한살한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왜라는 질문을 많이 던진다. 왜 할까? 왜 해야하지? 이 일의 목적이 무엇이지? 목적이 뚜렷하지 않으면 그 일을 하기 싫어진다. 그렇지만 목적이 뚜렷한 일은 일을 해야할 동기가 분명하기에 끝까지 그 일을 할 수 있고 어느 정도 가시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지만 재미는 없다. 목적이 분명한 것으니 놀이가 아니라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수단을 통하여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 이게 일이다. 놀이는? 어떤 수단 자체가 그 일의 목적이다. 무목적성이 놀이의 특징이다. 왜 놉니까? 걍! 이 한마디면 끝난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이 놀이의 목적을 찾는다. 

  이 책은 놀이는 무목적성이 그 특징이라고 말하면서도 놀이의 목적성을 찾는 이들을 설득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말을 가져다 붙인다. 서글프다. 노는 것도 목적이 있어야 놀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논다는 사실 자체가 즐거움이기 보다는 피해야할 타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요즘 뭐하세요? 놀아요. 청년 실업 백만 시대에 이 말만큼 사람을 쪼그라들게 만드는 말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자기가 왜 노는지 설명한다. 취업준비해요, 유학가려고요, 공부 더 하려고요 등등등. 그러니 놀지 못하는 참 재미없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것이다. 물론 나도 포함해서 말이다.  

  굳이 나에게 왜 노냐고 묻는다면 사회성을 배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라다이언갱이라는 영화가 있다.  



  산타모니카의 소년원의 보호캄찰관 포터는 수감자들을 데리고 미식축구팀을 결성한다. 없는 예산에 어렵게 장비를 구입하고, 재소자들을 모아서 팀을 결성하고 연습하지만 연습시합을 받아주는 팀이 없다. 어렵사리 시합을 하지만 실망만을 맛볼 뿐이다. 주변의 시선은 더 싸늘하다. 그렇지만 포터는 이들을 데리고 미식축구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이들은 고교 미식축구 리그에 참가할 수 있게 되고 좋은 결과를 거둔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인데 실제로 청소년들의 재범율을 낮추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한다. 

  미식축구도 하나의 놀이이다. 이것을 통하여 돈이 생기는 것도, 수감 기한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그냥 즐겁게 노는 것이다. 남아 도는 시간과 에너지를 치고 박고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팀을 이뤄 무엇인가를 해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사회성을 배운다. 자기를 희생하는 법, 어려움을 이기는 방법, 목표를 향하여 돌진하는 방법을 배운다. 사회 생활하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사회성을 배운다. 놀이는 그저 즐거움을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바꾼 것이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놀이의 이유이다. 

  요즘 학교마다 스포츠 팀이 하나씩은 있다. 리틀 야구단도 있고, 역도부도, 수영부도 있다. 그런데 학원 스포츠가 그렇게 긍정적으로만 비춰지지 않는 것 같다. 폭행, 성폭력, 줄서기 등등 여러가지 부정이 저질러 진다. 스포츠가 놀이가 아니라 돈이요 진학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또 다른 의미의 사회성을 배우는 것이 아닐까? 아이들의 순수한 놀이 욕구를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하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즐거워야할 놀이가 다른 목적을 위한 과정이 되어버리면 아무리 즐거운 것도 일이 되어 버린다. 그냥 즐겁게 놀게 해줄 수는 없는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함께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책이 있다. 하나는 호이징거의 "호모 루덴스"이고 다른 하나는 마흐마노비치의 "놀이, 마르지 않는 창조의 샘"이다. 조금은 방향이 다르치만 루트번스타인 부부의 "생각의 탄생"도 읽어 보면 이 책을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송골매의 "모여라"를 들으면서 즐겁게 읽는다면 더 즐겁지 않을까? 

  나에게는 여기에 글을 쓰는게 노는 것이다. 저자가 분류한 놀이의 유형 중에 "창조자 혹은 예술가" 스타일이라고 해야 할까? 예전에 그렇게도 하기 싫었던 인문학 책을 읽는 것이 이젠 더할 수 없는 즐거움이 되었다. 이것을 통해서 학점을 더 잘받겠다는 목표가 사라지고 그저 읽고 서평을 쓰는 것에 집중하다 보니 즐거워지는 것이다. 이유? 없다. 그냥 한다. 

  놀이는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사람들이 묻는다. 왜 노세요? 걍! 그저 즐길 수 있는 대상을 찾기 바란다. 창의성이나 생산성이라는 경제적인 말을 들먹이지 않을지라도 삶이 즐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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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6-09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슬퍼요, 그쵸?
노는것에서도 목적을 찾다니...
노는게 노는게 아니라는...

저도 이렇게 알라딘에서 노는게 참 즐거워요^^

saint236 2010-06-09 09:50   좋아요 0 | URL
글쎄 말입니다. 놀이에 목적을 찾기 시작하면 놀이가 놀이가 아니라 일이 되는데 왜 그걸 모르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