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하는 습관 - 위대한 창조의 순간을 만든 구체적 하루의 기록
메이슨 커리 지음, 이미정 옮김 / 걷는나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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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책 좋아한다. 이를테면 어떤 작가의 무슨 책 보단 그 책을 쓴 작가에 관해 시시콜콜하게 쓴 책. 대표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되지 않을까. 이제 그에 관한 책은 그가 쓴 책들보다 많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유명한 작가가 아닌가. 유명한 작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글을 쓰고, 뭐에 관심이 많고,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알고 싶은 것이다. 남의 삶이 왜 그렇게 궁금하냐고 할 텐가? 자신이 관심 있어하는 사람을 알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한 거다. 일반 대중이 연예인들에 대해 관심 있어하는 거랑 무엇이 다르겠는가. 단 난 그저 그 대상이 작가에게 있다는 것뿐. 하루키는 새벽 4시 전후로 일어나 한잔의 커피와 함께 책상 앞에 앉아 10시까지 글을 쓰고, 이후 10킬로미터를 달리고, 2시엔 번역 작업을 하거나 어느 음반 가게를 기웃거리고, 저녁에 장을 봐서 요리를 해 먹은 뒤 책을 읽다 밤 10시경 잠자리에 든다. 사실 이 이야기는 이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나는 또 이런 식으로 작가들의 일상을 써 놓은 책은 없을까 기웃거린다. 그래서일까? 저자들 중엔 아예 작가의 일상을 채집해서 책으로 엮은 사람이 있다. 바로 이 책의 저자다. 이 책은 무려 131명의 여성 예술가의 루틴을 소개하고 있다. 그 정도라면 너무 많아 세례가 아니라 폭격 수준이다.  


루틴, 말 그대로 일상을 의미하는 단어로 저자는 예술가들이 어떤 작업 습관을 가지고 있는지를 소개하고 있다. 넓게는 무용가나 화가, 연출가, 배우 등 예술가라 불릴만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다루고 있지만 가장 많이 다룬 직업은 시나 소설가 같은 문인이다.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내가 하루키에 대해 느꼈던 흥미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예술가들의 루틴을 모았을까, 읽는 사람은 좋긴 한데 쓰는 저자는 멀미가 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솔직히 읽는 나도 멀미가 좀 났다.ㅠ) 


소개된 예술가들 대부분은 하루키만큼이나 그 이상으로 루틴을 철저하게 실천했고, 어떤 사람은 아예 워커 홀릭인 경우도 있었다. 특히 코코 샤넬은 쉬는 것을 두려워하기까지 했는데, 일만 하고 살면 오래 못 살았을 것 같지만 나름 오래 살았다. 하루키 때문일까, 나 역시 작가는 자신만의 루틴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니 꼭 그렇지 않은 작가도 있어 오히려 반가웠다. 예를 들면, 시인이었던 엘리자베스 비숍이 그렇다.


그녀는 만성 천식 환자로 코르티손을 복용하기 시작했는데 그 약물의 부작용이 오히려 유익을 가져다줬다고 말한다. 그것의 부작용은 불면증이었는데 오히려 그것이 창작의 희열을 느끼게 해 줬다고. 하지만 그 희열의 수명은 오래가지 못했고 정서가 망가질까 봐 복용을 중단하고 아주 천천히 쓰는 방식을 택했다고 한다. 이렇게 작가는 뭔가의 강박에 쫓겨 하루에도 몇 장의 원고를 써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생각에 동조라도 하듯 시인인 니키 조반니와 소설가 제이디 스미스 같은 사람은 쓰고 싶을 때 쓰는 사람들이다. 사실 글을 쓰다 보면 처음엔 긴장해서 열심히 쓰다가도 중간쯤 되면 느슨해지고 나중엔 포기하고 싶거나 정말 포기하게 된다. 그럴 때 니키는 장벽 같은 건 없다고 얘기하는데 그게 또 좀 말이 된다. 장벽을 받아들이면 장벽은 없는 것이다. 장벽이라고 생각되면 장벽인 것이고. 즉 압박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이디 스미스는 한 술 더 뜬다. 글이란 절박한 심정으로 글을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글을 읽을 때도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진짜 글을 써야겠다 싶을 때가 아니면 글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 말도 맞는 얘기 같다. 죄짜듯 또는 싫은데 억지로 쓰는 거 별로다.  


그러고 보니 누가 생각이 난다. 빚을 갚기 위해 글을 썼다는 도스토옙스키와 발자크. 글을 써서 빚을 갚아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글을 썼다. 작가라는 직업은 정말 묘한 직업 같다. 이렇게 절박함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직업이라니. 그렇다고 절박함을 위해 일부러 빚을 지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말라. 절박함을 갖는 방법이 꼭 그것만이 있는 건 아니다. 글 감옥에 들어갈 수도 있고, 출판사와 계약 맺거나 아니면 일부러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떠벌릴 수도 있다. 그렇게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 나를 던져 넣으면 된다. 솔직히 빚을 지든 원고 계약을 맺든 작가가 돈만큼 절박한 게 또 있을까.  


이와 반대의 개념을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최초의 여성 사회학자요 저널리스트이기도 한 해리엇 마티노(1802~1876)는, 글을 쓰기 위하여 자리에 앉았다면 처음 무조건 쓰라고 조언한다. 그것은 글 쓸 기분이 들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게 억지로라도 쓰면 당혹감과 우울함을 피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공부든 글 쓰기든 책상 앞에 앉았다고 바로 하게 되지는 않는 것 같다. 일단 인터넷에 들어가 여기저기 서핑을 하다 하게 되는데 이게 좀 위험하긴 하다. 유독하기 싫은 날이 있다. 그땐 그걸로 시간을 채우게 될 수도 있다. 그럴 땐 마티노의 말이 맞는 것 같긴 하다. 25분 동안 글을 쓰고 인터넷을 해 보는 건 어떨까. 그럼 그 25분 안에 풍덩 빠져버릴 수도 있다. 아니면 25분 동안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25분 동안만 인터넷을 하다 바로 글을 쓰는 것으로 하던가. 그러니까 인터넷 25분은 글을 쓰기 위한 일종의 리추얼 같은 것이다. (나름 괜찮은 것 같긴 한데 인터넷 25분은 가능한 시간 같지는 않다. 25분은 그냥 상징적 시간으로 해 두자.ㅋ)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쓴 마거릿 미첼의 경우 그런 대작을 썼다면 매일 최소 30장 이상은 쓰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녀는 고작 두 장 정도를 쓰고, 다음 날 아침 다듬고 나면 겨우 여섯 줄이 남는다고 한다. 그럼 다시 시작하고. 그렇다면 그녀는 도대체 몇 년에 걸쳐서 그 작품을 완성시킨 걸까. 책을 보니 1928년에 쓰기 시작해서 1935년 가을에 편집자에게 원고를 넘겼다고 하니 나 같으면 진작에 못 쓴다고 했을 것 같다. 더구나 각장을 20번 이상 고쳐 썼다. 문득 습작이라고 썼던 내 지난날의 글들을 그렇게 쉽게 폐기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싶기도 하다. 글 쓰기는 그렇게 지난한 것이다. 문득 내가 처음 작가의 꿈을 가졌을 때 이럴 줄 알고 있었나를 생각하면, 난 꿈에도 몰랐다. 미첼은 이 작품으로 퓰리처 상을 받았지만 그 이후에 한 작품도 쓰지 못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녀는 무엇을 준다고 해도 그 일을 다시 시작하지 못할 거라고 말했다고 한다. 문득 오래전 나의 사부가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다. 그렇게 힘들 게 쓰고도 또 쓰고 싶은 생각이 나면 작가가 자기 천성에 맞는 거라고. 그렇다면 마거릿 미첼 같은 작가는 뭐라고 얘기해야 할까. 인생 한 방이라더니 작가도 한 방인 건가.


내가 이런 책에 흥미를 느끼는 것은 작가의 사생활이 궁금한 관음증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런 책을 읽으면 뭔가 쓰고 싶은 욕구가 꿈틀대기도 한다. 작가는 무엇으로 쓰는가를 논할 때 보통 엉덩이의 힘으로 쓴다고 하는데 이제 그 말은 너무 단순하고 식상해서 웃음도 않나 온다. 예술가들이 어떻게 자신의 루틴 속에서 예술을 창조해 나갔는지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필요가 있다.


책은 매 장이 끝날 때마다 그 사람이 누구고 뭐했던 사람인지를 짤막하게 써 놓고 있다. 거기엔 그들의 출생 연도와 생몰연도까지도 밝혀놓고 있다. 보고 있노라면 묘한 느낌이 들기도 하다. 그렇게 살다 간 예술가들은 언제까지나 어제와 같은 일상을 살 것 같은데 어느 하루부터는 더 이상 그렇게 살지 못하는 날을 맞이하게 됐다. 그렇게 생각하면 다소 허망하다는 느낌도 들지만, 그들은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았기 때문에 아쉬움 같은 건 없을 것 같다. 가끔 사람들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다고 일상의 고단함 또는 무료함을 토로하기도 하는데 인간의 삶은 원래 그런 것이다.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지 않으면 둘 중 하나다. 어디가 아프거나 죽은 것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아파보면 일상이 주는 고마움을 알게 된다. 부디 삶을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삶의 비결은 별 것 없다. 꿈이 있다면 그 목표를 이루는데 합당한 루틴을 만들고 하루하루 그것에 맞혀 사는 것이다. 물론 이 책에 소개된 예술가들은 예술적 재능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을 위해 매일 루틴을 지키고 살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찌 보면 그게 재능보다 더 힘든 거라는 건 잠 작으로도 알 수 있다.       


이 책은 여성 예술가들의 루틴을 다뤘다. 이 책이 여성 예술가를 집중적으로 다룬 건, 이 책 이전에 저자는 <리추얼>이란 책을 썼는데 그건 남성 예술가를 주로 다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책도 읽어 보면 좋을 것 같다. 


가끔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열심히 글 쓰기에 몰두하고 있는 우리가 알만한 작가들의 사진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난 그게 참 섹시해 보인다. 저 표정 한컷을 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날을 자기 루틴을 지키며 살았을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누구는 그랬다. 작가에겐 원죄가 있는데,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죄로 책상 앞에 평생 뭔가를 써야 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고. 그들은 평생 거미줄을 잣는 아라크네의 후예들이라고. 일부러 글 감옥에도 들어가는데 그 정도라면 칭찬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거 아닌가. 거듭 말하지만, 작가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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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0-02-23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장바구니에 담아갑니다. 재미있을 것 같아요. <리추얼>도 재미있게 읽어서 기대돼요.

stella.K 2020-02-23 20:32   좋아요 0 | URL
저는 대체적으로 이런 책을 좋아해서 나름 재밌게 읽었는데
내용이 좀 많다는 느낌은 듭니다.
리추얼은 안 읽어서 모르겠는데 오히려 리추얼이 더 재밌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저자들이 첫 책에 공을 많이 들이잖아요.^^

북프리쿠키 2020-02-23 2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나 페이퍼를 쓸때도 아~이번 글은 참 마음에 든다. 할 때가 쥐똥만큼 생길 때도 있는데, 작가는 어떨까 궁금해지기도 하네요. 그나저나 꿈틀거리는 욕구 좀 푸셔야 하지 않을까요~^^

stella.K 2020-02-24 12:11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 저는 솔직히 쿠키님 저한테 이렇게 자극 주실 때가
젤 좋고 감사합니다. 작가의 글을 기다리는 독자가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죠. 고맙습니다. 쿠키님을 위해서라도
올해는 어떻게든 두번째 책을 내보도록 노력하겠슴다.ㅋㅋ

2020-02-25 16: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25 17: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25 2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0-02-26 15:05   좋아요 0 | URL
와우, 도서관 매니아시군요.
저도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이 한 번은 중고샵을 나가려고
생각중인데 그 루틴은 안 지켜지고 있어요.ㅠ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2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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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랫동안 이 책을 붙들고 있었다. 워낙에 책을 오래 읽기도 하거니와 중간에 다른 책을 읽어야 할 경우엔 며칠 또는 몇 주씩 방치해 두기도 했다. 변명 같지만, 그런 게으른 독서가 가능했던 건 미니멀리즘하고  디테일의 강점을 앞세우며, 약간은 지루한 듯 하지만 왠지 보기를 포기할 수 없게 일본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이 책에 배어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영화로는 <행복한 사전>이 언뜻 떠오르기도 하는데, 이 소설도 영화화하면 좋지 않을까를 내내 생각하면서 읽었다. 아니면 착하면서 실사에 가까운 느낌의 애니메이션이나. 더욱이 건축 설계를 소재로 했다는 게 이색적이기도 하다. 내가 평생 건축 설계에 관한 책을 읽는다면 몇 번이나 읽게 될까. 한마디로 요즘에 보기 힘든 만연체의 문장에 회상 문학이 더해졌다.  


제목이 좋다. 여름은 내가 좋아하는 계절이다. 물론 끈적하고 숨 막히는 한 여름은 나도 힘들지만 상큼한 초여름과 한풀 꺾여 왠지 보내기 아쉬운 늦여름은 붙잡고 싶으리만치 좋아한다. 게다가 주인공 도오루는 어느 설계 사무소에 취직이 됐는데 합숙을 하며 작업을 해야 한다. 그게 왠지 나를 부럽게 만든다. 가끔 가족을 떠나 목적이 같은 사람과 몇 개월을 먹고 자며 뭔가의 작업을 같이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왠지 설렐 것 같다. 물론 팀워크가 좋지 않으면 힘들 수도 있겠지만 소설의 흐름을 봤을 때 그런 건 전혀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 목적이 같으면 성격이 여간 못 되지 않고서야 팀워크가 나쁠 수 없다. 자기 이름을 내건 설계 사무소의 무리이 슌스케가 수장으로 있고, 모인 사람들은 한결 같이 온화하고 절제되어 갈등 같은 건 전혀 없어 보인다. 뭐 그게 작가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상명하복을 중시하고 개인보단 전체를 중시하는 일본인의 특성을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런데 비해 우리나라는 상명하복이란 말에 거부감부터 드러낸다. 꼰대를 떠올리면서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앞에선 아부하고 뒤로 뒷담화하는 민족 아닌가. 뭐 그만큼 존경할만한 어른이나 선배가 없어서라고 할 수도 있고, 앞에서 보이는 것과 뒤에서 보이는 것이 다른 인간의 이중성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조직에서 살아 남기는 해야겠고. 


무라이 슌스케라면 나라도 존경할 것 같다. 정말 신뢰와 존경이 뚝뚝 묻어난다. 그렇다고 자신을 알아 달라고 행동을 과장되게 하지도 않는다. 그저 말없이 조용하게 자신의 일을 할 뿐이다. 조용한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이다. 또한 도오루를 비롯한 그 밑에 있는 사람들도 그를 닮았다. 역시 한 조직은 리더가 누구냐에 따라 그를 따라가는 것 같다. 슌스케가 도오루에게 하는 말은 그대로 어록으로 만들어도 좋을 듯하다.


"나눗셈의 나머지 같은 것이 없으면 건축은 재미없지. 사람을 매료시키거나 기억에 남는 것은 본래적이지 않은 부분일 경우가 많거든. 그 나눗셈의 나머지는 계산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야. 완성되고 나서 한참 지나야 알 수 있지." (189p)


"한 점의 틈도 그늘도 없는 완벽한 건축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그것은 아무도 못 만들어. 언제까지나 주물럭대면서 상대방을 기다리게 할 만한 것이 자신한테 있는지, 그렇게 자문하면서 설계해야 한다네." (286p)     


"고객이 시키는 대로, 납기를 지키기 위해서 일하라는 건 물론 아닐세. 만일 고객이 불평하거나 변경해 달라고 했을 때 마감이 임박할 때까지 주물럭거리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어? 자네가 잘못한 경우도 있을 수 있어. 그런 만일의 경우를 위해서라도 늘 시간은 봐 둬야 하네. 그런 의미에서 건축은 예술이 아니야. 현실 그 자체지."


"설계사무소가 있는 것은 한정된 시간을 시간을 사람 수로 늘리기 위해서이기도 해. 혼자 하면 하루 걸릴 일이 둘이 하면 반나절이면 끝나지. 도서관 설계 같은 것은 나 혼자 하다가는 오 년이 지나도 안 끝나. 내가 자네들한테 맡기는 것도, 자네들이 나한테 맡기는 것도 협동이라는 거지. 제자니 보스니 하는 상하 관계하고는 별개야. 신뢰지, 그렇지 않으면 같이 일 할 수 없어." (287p)


이밖에도 밑줄 긋고 곱씹고 싶은 말이 많다. 읽으면서 새삼 건축도 사람이 하는 일이구나 싶다. 무엇보다 건축도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인만큼 사람을 어떻게 응대해야 하는지 이 책에서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우리나라에도 승효상이나, 유현준, 김진애 같은 건축가가 나와서 건축의 중요함, 필요성, 철학 같은 것을 일반인에게도 깨우쳐 줘서 다행이긴 하지만 난 솔직히 건축에 대해선 거의 문외한에 가깝다. 그도 그럴 것이 글이나 그림은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 고칠 수도 있는데 건축은 그렇지가 않다. 한번 지어 놓으면 못해도 50년이고 100년을 넘길 수도 있다. 쉽게 고칠 수 없다는 얘기다. 물론 중간에 보수도 하고 리모델링도 한다지만 고치는 비용이 만만치가 않다. 나 같이 가난한 서민은 꿈도 못 꿀 일이라 관심이 없다. 물론 주마간산식으로 무슨 조형물 작품 감상하듯 할 수는 있겠지. 무엇보다 우리 같은 일반인은 건축 설계 보단 도시와 인간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쪽이 더 강하지 않은가. 그렇지 않아도 언젠가 유현준 교수는, 건축이란 말이 아직은 일반 대중에게 익숙한 단어가 아니어서 가급적 도시란 말로 대체해서 쓴다고 했다. 그런 걸 보면 건축이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예전엔 건축하는 일이 그렇게 대접받는 직업은 아니었던 것 같다. 왜 그럴까를 생각하면 그것도 우리나라 일제 강점기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당시 일본인들이 대거 우리나라에 들어와 속수무책으로 의식주 전반을 잠식해 들어갔을 것이다. 그 시대야 말로 상명하복에 굴복해야 했으니 무슨 우리나라만의 건축 철학을 담을 수 있었겠는가. 그야말로 위에서 까라면 까는 거지.


게다가 지금도 여전히 우리나라는 건축물은 부동산으로 분류한다. 공공재 보단 사유재산의 개념이 더 많다. 더구나 도시 계획하면 철거민과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를 생각하게 만든다. 서글픈 일이 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그런 사회학에서나 다룰 법한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않고 오로지 건축 설계의 일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과연 이런 문학 작품이 이전에도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똘똘 뭉쳐 뭔가를 해낼 것만 같은 사무소 사람들은 뜻밖에도 슌스케가 병에 걸리는 바람에 흩어지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슌스케의 나이가 이미 고령이라 언제까지나 건강을 장담할 수 없었다. 이야기의 말미는 그로부터 29년이 흐른 후 주인공 도오루가 옛날 슌스케 사무소를 다시 방문하는 것에서 끝나는데 묘하게도 나는 거기서 감정이입이 되고 말았다. 다시 찾아간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사람들 저마다 어떤 기억을 떠오르게 만드는 공간이나 장소가 있다. 도오루에겐 슌스케 사무소가 특별했을 것이다.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한 곳이고, 가히 스승이라고 해도 좋을 슌스케를 만나고, 결혼으로 이어질뻔한 여인을 만났으며 주변 경관도 좋아 오래도록 있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곳을 29년 만에 찾았다면 평생 안 찾아볼 생각을 했을 것도 같다. 분명 도오루에겐 꽤 의미 있었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분명 좋고 의미 있는 시절이었다고 해서 그곳을 다시 찾아가는 일은 여간해서 잘하지 않는 것 같다. 나도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서너 정거장만 가면 나의 어린 시절부터 청년 시절 같이 살았던 동네가 나오는데도 나는 그 시절의 추억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지난 달 오랫동안 알고지나 온 지인을 그가 사는 동네에서 만난 적이 있다. 공교롭게도 내가 입학한 초등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 지인은 나를 잡아끌듯 그 초등학교에 한번 가 보자고 해서 못 이기는 척 간 적이 있다. 다시 찾은 학교는 소인국의 어느 건물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건물이고 운동장이고 어쩌면 그렇게 아담하던지. 처음 그곳에 갔을 땐 엄청 크고 넓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그 초등학교를 3학년 1학기까지 다니고 전학을 갔는데, 분명 운동장 한쪽에 큰 수영장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 시절 물기 없는 수영장 안에서 체육 수업을 받기도 했는데 다시 찾아가 보니 수영장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모르긴 해도 운동장이 넓지 않고 수영장의 쓰임새가 그리 많지 않아 나중에 메워 버리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 시절엔 학교의 자랑거리였는데. 그렇게 사라져 버리니 내 기억의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것 같아 마음 한편이 휑했다.    


그뿐인가, 그때는 교문 앞 길은 탁 트여 있었고, 교문 앞에 문방구가 두 채가 있었는데 무슨 건물만 다닥다닥 붙어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얼마나 낯설던지. 문득 왜 사람들이 추억의 공간으로 가기를 주저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가보면 머릿속에서만 어른 거리지 그 공간이 그대로 보전되어 있을 리 만무하다. 괜히 뭔가 추억이 손상된 것 같아 기분이 착잡해지는 것이다.이 책의 주인공도 나와 비슷하지 그렇지 않을까. 인생이 한 번이듯 지나 온 곳 역시 한 번이면 족하다 싶다. 그래도 그 지인 덕에 옛 초등학교도 가보고 모처럼 옛 추억에 잠겨 한참 서로 어린 시절을 얘기했었다. 


아무튼 요즘 보기 드문 소설에 보기 드문 문체를 장착했다. 만연체의 느린 문장을 좋아하거나 견딜 수 있다면 기꺼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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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5 2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16 1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20-02-16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너무 좋았어요. 특히나 아침에 연필 깎는 장면은 와, 그 묘사가 정말 섬세하더라고요. 스텔라님 모교 찾아가신 얘기 너무 좋네요...저도 3학년까지 다니고 전학갔었는데...

stella.K 2020-02-16 13:55   좋아요 0 | URL
ㅎㅎ 그 장면이 있었나요? 그러고 보니 기억나는 것도 같네요.
사실 이책 처음 봤을 때 끌리긴 했는데 결정적으론 브랑카님 글 보고
읽을 생각을 했죠. 벼르고 벼르다 중고샵에 있길래 최근 읽기 시작했느네
너무 오래 띄엄띄엄 읽은 것 같아요. 나중에 다시 한 번 읽어야 할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자꾸만 멀어지는 어린 시절이 아쉽기만 하네요.
브랑카님도 그렇죠?^^
 
우리 한자어사전 - 한자어 속뜻 사전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시리즈
이재운 외 엮음 / 노마드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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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을 사랑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금이야 온라인 검색창에 자신이 알고자 하는 단어를 입력하면 휘리릭 알아서 찾아준다. 아날로그 시대 땐 사전 찾는 법을 따로 배워야 했다. 또 두껍기는 얼마나 두껍던지. 학창 시절엔 뭐든지 필요에 의해서 배우는 곳이라 국어사전보다는 영어 사전을 더 많이 보게 된다. 좀 부끄러운 얘기지만 지금은 보지도 않는 중학교 때 산 벽돌 같은 영어 사전을 아직도 가지고 있지만, 변변한 국어사전은 그때나 지금이나 가지고 있지 않다. 대신 온라인에서 사전을 수시로 찾아본다.


글은 쓰면 쓸수록 단어에 대한 집착이 편집증처럼 강해진다. 이미 아는 단어도 다시 찾아보게 된다. 내가 혹시 잘못 알거나 대충 알고 있는 건 아닌가 의심스러워지는 것이다. 또한 이 문장에 이 단어를 써도 되나 확인 차원에서 알아보게 된다. 얼마나 좋은가. 책으로 된 사전이었으면 결코 하지 않았을 일을 인터넷이 가능하니 손쉽게 할 수 있다. 대신 단점이 있기는 하다. 꼭 내가 알고자 하는 단어만 알 수 있지 그 외의 것을 에둘러 알아보지는 않게 된다. 책으로 된 사전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겠지만 그래도 항목별로 나열되어 있어 에누리로 몇 개의 단어를 더 읽어 볼 수도 있다. 작가가 되려는 사람은 사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보는 제의를 거치기도 한다. 뭐 그게 꼭 아니더라도 어휘가 풍부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훨씬 멋있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사전은 누가 만드는 걸까. 읽는 것 자체도 지난한데 그걸 편찬하는 사람은 얼마나 지난한 작업을 할지 짐작도 할 수가 없다. 이 책을 읽으려고 하니 언젠가 보았던  <행복한 사전>이란 일본 영화가 생각났다. 주인공으로 마츠다 류헤이의 캐스팅은 적절하다 못해 정말 훌륭하기까지 했다. 그는 정말 치밀하고 꼼꼼한 서생처럼 생겼다. 과연 이런 일을 하기에 딱 어울리는 이미지다. 아니면 시계를 만들거나. 나 같은 사람은 도저히 못할 것만 같지만 뭔가 남이 하지 않는 일을 한다는 점에선 새삼 존경스러움이 느껴진다. 이 책의 엮은이도 그렇다. 엮는 작업과 사전 편찬의 수고로움이 무슨 차이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읽으면서 새삼 존경스러움이 느껴졌다. 그걸 또 이번에 처음 펴낸 것도 아니다. 비슷한 작업을 전에도 했고 이것만도 증보판이다. 그가 어떻게 작업을 했는지를 머리말에 밝혀놓고 있는데 과연 이럴 수 있나 싶기도 하다. 이것 말고도 소설도 썼다. 


"...... 나는 우리 어휘를 써서 소설을 써온 작가로서 누구보다 우리말에 가까이 가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1994년부터 우리말 사전 시리즈를 편찬해오고 있다. 그중에서도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 한자어 사전>을 2005년에야 초판이 나올 만큼 시간이 오래 걸렸다. 거의 10년간 한자어를 연구하고 수집하고 검증하여 겨우 초판을 만들어 세상에 선보였다.

 3년 만에 2판을 낼 때는 더 집중하여 관련 어휘를 1000개로 늘렸고, 이번 3판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우리 한자어 사전>에서는 생활 어휘를 더 추가하여 2000여 개 어휘로 확 늘렸다. "


과연 이것을 언제 다했을까 싶다. 특별히 자신이 한자어 공부를 한 연유를 밝히고 있는데, 어렸을 때 서당 다니던 형을 따라 천자문과 통감을 웅얼거리고, 고등학교 때 한문 서적을 많이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한문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더구나 후배가 8년간 수천만 원을 들여 사들인 한문 고서적 1만여 권을 그의 서재로 보내 마음껏 읽게 해 준 이야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대학원 시절 스승인 서정주 시인에게 여쭸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스승님 같이 시를 잘 쓸 수 있냐고, 그러자 미당은 시를 잘 쓰려면 이런 거 저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일단 한문 공부부터 하라고 조언하더란다. 그래야 우리글의 깊은 맛을 낼 수 있다고. 우리말 그릇이 본디 한자어고, 한자어는 한문으로 길들여진 말이니 그 그릇이 튼튼해야 서양 공부든 동양 공부든 제대로 할 수 있다고. 이쯤 되면 한자어는 그의 운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이 운명에 확실한 쐐기를 밖은 건, 우리 국어사전에 한자어가 70%란 통계가 있더란다. 하지만 그 70%의 한자어를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대부분 일본 한자어라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 원래 쓰지 않았던 것을 일제강점기의 친일파와 일본 유학생들이 쓰던 그들만의 한자어라는 것이다. 그다음 말은 더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운명이 사명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수록된 단어는 본뜻과 자구 해석, 바뀐 뜻, 보기글로 세분화되어 있는데 비교적 간단명료하지만 어떤 건 그 단어가 유래된 배경을 설명하기도 한다. 정말 읽어 볼만하다. 그건 또 거의 대부분 고대 중국에서 유래된 것들이 많다. 그렇다면 작가가 지적한 일제 강점기 때 우리나라 국어사전을 쥐고 흔들만한 단어는 뭐가 있었을까. 한 예로 방송(放送)이란 단어가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단어다. 이것의 본뜻은 죄수를 감옥이나 유배에서 풀어주다의 뜻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방송국이 생기기 전인 1920년대까지 방송은 석방(釋放)과 같은 뜻이었다고 한다. 그것을 영을 내려 시행한다는 의미로 '방송을 명한다'라고 했다. 이것의 바뀐 뜻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장교가 처음으로 사용한 말이었는데 후에 이것이 영어의 '브로드캐스팅'을 번역한 말로 채택되어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용어가 지금의 전파를 송출해서 내보내는 통신용어가 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27년 경성방송국이 개국되면서부터라고 한다. 아직도 설을 구정이라고 쓰는 사람이 있다. 종종 있다. 구정이야 말로 일제 강점기 때 썼던 말인데 지난 세월 이런 우리 국어에서 일제의 잔재를 걷어내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완전히 없앤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는 않은가 보다.


읽다가 매춘(賣春)이란 단어가 생각보다 흥미롭다. 원래 춘이란 단어가 중국 당나라에서 쓰이던 말로 좋은  뜻이란 뜻이란다. 대개 술은 정월에 빚어 봄이 가기 전에 완성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의 자구 해석은 좋은 술을 사다인데  여자가 남자를 그리워하는 정을 춘이라고도 했단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매춘이란 단어다. 그렇다면 '위안(慰安)'이란 단어는 어떨까? 남의 종기를 불로 지져 치료해 주는 사람이란 뜻의 위와 편안하게 해 주다는 뜻의 안이 하나가 된 단어다. 이는 또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일본군들이 성노예로서 위로하고 편안하게 해 준다는 뜻으로 썼다. 문득 이 매춘과 위안이 묘한 대조를 이루는 듯하면서 뭔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렇게 우리가 알듯 모를듯한 단어를 새롭게 또는 확실하게 안다는 건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다. 가까이 두고 시간 날 때마다 또는 머리가 복잡할 때 조금씩 읽어 두면 좋을 것 같다. 또한 이 지난한 일을 한결같은 자세로 임했을 이재운 작가와 함께한 이들에게도 심심한 위로의 박수를 전하고 싶다. 여담이지만, 난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을 선호하는 편인데 종이책의 묵직함이 사전은 잘 안 찾아질 것 같다. 전자책으로 보는 것이 훨씬 활용도가 높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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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20-01-31 01: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안녕하세요.^^

사전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면 밑도끝도 없겠지만
오래 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촉망받던 소설가, 김소진씨의 국어사전 공부가 생각나는군요.
전공이 영문학이었던 한겨레신문 기자로 소설을 쓰기 위한 공부가 국어사전이여서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소설가 뿐 아니라 문학가라면 대부분 김소진씨와 비슷한 노력을 하겠지요.
참고로 말씀드리면 니르바나도 종이사전 애호가입니다.
헤아려 보지는 않았지만 저의 집에도
사전이라고 이름 붙은 책이 한 50종은 될 듯 싶은데요.(일종의 책부심입니다.ㅎㅎ)


stella.K 2020-01-31 15:28   좋아요 0 | URL
아, 맞아요. 그렇지 않아도 리뷰 올리면서 소설가 한 사람을 생각했는데
그게 김소진 작가였어요. 머리속에서 뱅뱅 돌았습니다.ㅋ
그런데 사전을 그렇게 많이 갖고 계시다니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네요.
저도 종이책 애호간데 요즘 제가 손목이 시여서 이런 무거운 책은
이제 욕심낼게 못되겠다 싶더군요. 그래도 이 시리즈 욕심이 나긴 납니다.

참, 제가 올해 니르바나님께 새해 인사 드렸던가요?
늦었지만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좋은 일만 가득하시기 빌겠습니다.
변함없이 서재에서 가끔 뵈어요.^^

cyrus 2020-02-01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님의 글을 읽으니까 제가 가지고 있는 사전들을 소개하고 싶은 글을 써보고 싶네요. 저는 특별한 주제와 내용이 있는 사전들을 가지고 있어요. ^^

stella.K 2020-02-02 18:47   좋아요 0 | URL
엇, 정말! 궁금하네. 난 사전과는 그다지 친하지 않아서
무슨 사전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
기대할게.^^
 
음악, 좋아하세요?
엄상준 지음 / 호밀밭 / 2019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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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의 물성을 좋아한다. 내내 블로그나 카페에서 보던 글도 종이책으로 보면 그 느낌이나 질감이 다르다. 그건 아마도 내가 아날로그 세대여서 인지도 모르고 디지털이 아무리 발전해도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요즘엔 일반인들도 책을 내는 시대라 내내 인터넷에서 보아 온 글도 종이책으로 보면 또 달리 보이는 게 있다. 


이 책의 저자와는 한때 운이 좋아서 같은 사이트의 블로그를 사용(인터넷 서점 알라딘)하고 있어 한동안 글을 읽을 수가 있었다. 그땐 저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다. 주로 음악에 관한 글이 많이 올라와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 쪽의 애호가는 아닐까 짐작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책으로 마주하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책 표지가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운이 좋아 사인본까지 받았다. 난 그때서야 알았다. 그가 한 방송의 음악 프로그램 PD라는 걸. 그러자 그 시절 그가 블로그에 올렸던 글이 이해가 갔다. 음악과 책을 한 쳅터 안에 엮는 솜씨도 뛰어나지만 문장이 정말로 좋다. 각 글의 제목부터가 예사롭지가 않다. 세상에 무슨 짓을 하면 이런 글을 쓸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음악은 늘 우리와 함께한다. 우리가 의식하든 안 하든.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저렇게 음악을 가까이할 수 있는 기회들이 있었다. 어렸을 적 내가 음반을 가까이할 수 있었던 건 이사하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당시 신상품이었던 스테레오 전축을 들여오면서부터 였다. 물론 전에도 전축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오래되기도 했고 고장이 나서 그 위에 다른 세간살이를 올려놓는 등 받침대 역할 밖엔 하지 못했다. 게다가 나는 너무 어려 그런 물건에 관심도 없었다.


그때 아버지는 음악을 들으려고 전축을 산 것이 아니었다. 약간의 허세를 즐겨하셨던 아버지는 음악보다는 전시 효과를 위해 그걸 집안이 들이셨다. 덕분에 호사를 누리건 우리 4남매였다. 그때 언니는 막 사춘기에 접어들었고, 두 살 터울인 오빠도 발동이 걸리려고 폼 잡고 있는데다 난 또래보다 다소 조숙했다. 사춘기가 시작했다는 건 그 안에 문예부흥이 시작됐다는 말도 된다. 그동안 TV나 라디오에서 간헐적으로 듣고 알았던 것들이 허기로 느껴지면서 소유욕을 애써 숨기지 않는다. 언니는 엘비스 프레슬리나 닐 다이아몬드, 폴 모리아 악단 같은 팝 음악을 모으기 시작했고, 오빠는 락을 좋아했으며, 나는 고상하게도 클래식을 좋아했다. 내 동생은 아직 코찔찔이라 음반 보단 만화를 더 좋아했는데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나중에 음반에 대한 조예는 나를 훨씬 능가하긴 했다.              


내가 한때나마 클래식 음반을 좋아했던 건 부모님이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오직 나에게 피아노를 배우게 하신 것에 기인한다. 단지 안타까운 건 내가 피아노를 배우기 전 먼저 클래식 음악을 자연스럽게 접했다면 중간에 그만두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때 한창 백건우와 정명훈이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을 땐데 부모님은 그들이 어떻게 피아노를 치는지 나에게 들려준 적이 없으면서 무조건 그들과 같은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되라고만 하셨다. 그때 난 백건우나 정명훈보다 내 몸의 다섯 배쯤 되는 시커먼 피아노가 더 무서웠다. 그래도 그때 배웠던 몇몇 피아노곡은 아주 싫지만은 않았다.   


그러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내가 속한 반이 합주반이었다. 그때 우린 서울 지역의 초등학교와 합주 경연을 해야 했는데 몇 번의 예선을 거쳐 본선 최종 엔트리에 올라 마지막 경합을 벌여야 했다. 그때 우리의 출전곡은 요한 슈트라우스의 라데츠키 행진곡이었다. 사실 난 처음엔 이 합주를 못할 뻔했다. 왜냐하면 피아노를 그만두고 얼마 있지 않아 오른쪽 팔다리가 마비가 와서 이제 악기를 연주한다는 건 내 생애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합주 구성 악기 중 멜로디혼 파트가 있었는데 그건 본래 한 손으로 연주하는 것이다. 그런 거라면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바로 그것이다. 음악을 알려면 먼저 그렇게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때 이후로 나는 음악을 듣다면 꼭 클래식만 들었고 음반도 꼭 클래식만 사 모았다. 아마도 초등학교 6학년 때 그 경험이 없었다면 더 나아가 피아노 수업 경험이 없었다면 클래식은 내 생애 없는지도 모른다. 또한 음악을 단순히 듣는 것과 그 곡을 직접 연주해 본다는 건  또 다른 차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왜 부모들이 할 수만 있으면 자기 자녀들에게 음악을 시키려 하는지 알 것도 같다.     


하지만 클래식은 확실히 약간의 노력과 의도적인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분야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물론 늘 클래식 음악만 흐르는 가정이라면 상관이 없겠지만 말이다. 이건 정말 노력하지 않으면 어느새 저만치 멀어져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이후로 줄곧 클래식만 들을 것 같던 내가 어느새 듣는 음악이 팝송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시절 최동욱, 이종환, 김기덕, 김광한, 전영혁 등 전문 DJ 또는 팝 칼럼니스트가 라디오에 등장해 춘추전국 시대를 이루었다. 클래식은 영원하지만 대중음악은 그때가 아니면 안 된다. 책의 저자는 라디오는 복지라고 했는데 그 말에 동의한다. 매일 틀어주는데 듣지 않는다면 그건 정말 바보 같은 일이다.  


귀동냥이 무섭다고 괜찮은 음악은 제목과 가수 이름을 메모도 하고, 녹음테이프에 녹음도 했다. 아마 공부를 그렇게 했더라면 S대 아니야 하버드대도 갔을 것이다. 게다가 그 시절엔 각 다방마다 DJ 박스가 있어 음악 신청도 할 수가 있었는데, 친구와 함께 다방에 갔다 내가 신청한 음악 리스트를 DJ가 보고 예사롭지 않은 선곡이라며 한껏 띄워주는 바람에 우쭐한 적도 있다. 왜 그런 일은 학점 인정이 안 되는지 모르겠다.  


그런 내가 90년대 들어서면서 음악 듣기가 시들했다. 왜 그런지는 알 수가 없다. 하다못해 서태지와 아이들이 가요계를 발칵 뒤집어 놨는데도 난 그다지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그냥 그런 음악이 있나 보다 할 뿐이다. 더 이상 들을 게 없는 것처럼 모든 게 시큰둥이다. 하긴 아무리 좋은 것도 시간이 흐르면 권태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엄밀히 생각해 보면 열광만 안 했다 뿐이지 난 그때도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듣고 있었을 것이다. 아 맞다. 생각해 보니 난 그 시절 가스펠, 복음성가를 즐겨 들었다. 그건 물론 내가 기독교인이기도 하지만 송정미나 하덕규, 박종호 같은 90년대 기라성 같은 가스펠 가수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들의 음악은 종교음악이라는 특정에 갇혀 있어서 그렇지 편곡이나 음악성은 웬만한 메이저 가수들 못지않은 기량을 갖추고 있다. 그러니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같은 음악을 들어준다면 난 언제나 가스펠이었다.     


그러다 음악을 다른 관점에서 듣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연극에서 음악은 어떤 곡이 어떻게 쓰일 수 있는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음악을 좀 더 생산적으로 듣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그건 새로운 경험이고 지금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어떤 음악이 어떻게 쓰이나를 관찰하는 버릇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리고 난 정말 약속처럼 클래식 음악으로 돌아와 있었다.


언젠가 문학수 기자가 클래식을 듣는 근육을 키워야 한다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난 그 말에 동의한다. 그런데 인생을 두고 고행이라고도 하지만 가끔은 선물 같은 때가 있다. 그게 또 인생이다. 음악도 그런 것 아닐까. 아무리 음악을 좋아한다고 해도 모든 음악을 다 좋아할 수는 없다. 음악을 듣다 보면 문득 '얻어걸리는'게 있다. 그게 바로 선물 같은 순간일 것이다. 그것으로부터 음악에 대한 관심은 시작되고 자란다. 나를 보라. 초등학교 시절 내가 속했던 반이 합주반이 아니었다면 그때 내가 멜로디혼 파트를 자청하지 않았다면 요한 슈트라우스가 무슨 행진곡을 어떻게 작곡했는지 알지 못했거나 훨씬 나중에 알았을 것이다. 그건 정말 지금 생각해도 선물 같은 때라고 생각한다. (물론 합주 연습을 했던 당시는 정말 지난했다. 추억이 선물이었을 테지.)     


솔직히 어렸을 때 나의 음악 교육은 실패였다. 그건 나의 실패이기도 하지만 나의 부모의 실패이기도 하다. 물론 부모님은 내가 피아노를 배워서 훗날 뭐에라도 써먹길 바라셨을 것이다. 또한 기왕이면 원대가 꿈을 가져주길 바라셨을 것이고. 그건 또 여느 부모라면 다 갖는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그 보단 어떻게든 이 아이가 생을 즐길 줄 알고 누릴 줄 알고 조금이라도 풍요롭게 살아주길 바라서 음악을 가르치는 거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왜 모든 것엔 목적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성취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누리면서 배우는 것과 목적 성취를 위해 배우는 건 그 시작부터가 다른 것인데 말이다. 책을 읽다 정말 공감하는 말이 있어서 밑줄을 쳤다.


어린 시절에는 사람들이 알만한 성과를 거두는 것이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걸 어렴풋이 알 나이가 되었다. 어떤 삶은 그냥 포기하지 않고 잘 살아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희망이고 성공이다. 봄 그늘 아래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어여쁜가. (103p)  


과연 어여쁜 깨달음이고, 어여쁜 말이다. 우리는 이것을 깨닫기 위해 얼마만 한 인생을 되돌아왔을까. 음악을 왜 들어야 하냐는 바보 같은 질문은 하지 말자. 음악은 내가 태어나기 수천 년 전부터 있어왔고 불려 왔으며 들어왔다. 음악을 듣고 아는 건 각자의 선택이고 알아서 할 일이다. 음악을 알아서 내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이라면 알지 않을 이유가 없다.


책이 정말 좋다. 읽는 것만으로도 생각이 깊어지고 넓어지는 느낌이었다. 저자의 책이 이제야 나왔다는 게 너무 늦은 행보는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다. 그런 만큼 저자의 다음 책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표지 디자인도 마음에 들었는데 오탈자가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곧 2쇄가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그땐 바로 잡아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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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0-01-21 07: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렸을 때 어머니의 교육열에 떠밀려서 피아노 학원에 다녔어요. 그땐 피아노를 배우기 싫었어요. 그런데 계속 학원을 다니다보니까 피아노 연주를 좋아하게 됐어요. 그러다가 IMF가 왔던 해에 학원을 그만뒀어요. 이제 막 피아노 연주하는 재미에 푹 빠졌는데 학원의 피아노를 연주할 수 없다는 사실에 많이 울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너무 아쉬워요. 피아노 학원을 나오지 않고 계속 다녔으면 고급 수준의 피아노 교본에 있는 곡을 연주할 수 있는 실력이 되었을 거예요.

stella.K 2020-01-21 14:50   좋아요 0 | URL
아깝게 됐네. 하지만 지금이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성인이 되서 피아노나 바이올린 배우는 사람도 많더라구.
꼭 피아노가 아니더라도 뭐라도 배워두면 좋을 것 같아.
기타는 어때?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아님 아예 남이 잘 안하는 걸 개척하는 것도 좋을 것 같고.
그런 거 배워두면 모임에서 꿀리지 않고 좋을 거야.^^

후애(厚愛) 2020-01-21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정말 좋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따뜻한 오후 시간 되세요.^^

stella.K 2020-01-21 16:55   좋아요 0 | URL
아유, 뭘요...책이 정말 좋죠.
고맙습니다.
후애님도 좋은 시간 되시길.^^

2020-01-21 16: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0-01-21 18:08   좋아요 0 | URL
ㅎㅎ 맞아요. 저도 그래요. 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이 시큰둥 했던 사람이
비틀즈를 능가한다던 BTS가 뭘하든 그런가 보다 하죠.
책에 소개된 곡들을 보면서 저도 유튜브로 찾아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음반 사 모으는 시대가 아니라는 게 좀 섭섭하긴 해요.^^

2020-01-22 0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22 15: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22 17: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22 1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23 0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23 1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20-01-24 15: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tella.k님 즐거운 명절연휴 보내시고
새해복많이받으세요.

stella.K 2020-01-24 15:55   좋아요 1 | URL
앗, 서니님, 고맙습니다.
서니님도 복된 설 보내시고,
새해 복 듬북듬북 많이 받으세요!!!^^
 
중국 5대 소설 수호전·금병매·홍루몽 편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이나미 리쓰코 지음, 장원철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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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렸을 때부터 고전을 읽으라는 말을 들어서일까 성인이 돼서도 그것을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또 고전을 읽으라면 그건 서양 고전이 될 확률이 높다. 그래서일까? 최근까지 중국의 5대 기서 즉 삼국지연의를 제외하고 서유기. 수호전. 금병매. 홍루몽(어떻게 하면 고전을 넘어 기서라는 말까지 듣는 건지 중국은 놀라운 나라긴 하다)이 있다는 사실을 거의 잊고 지낸 것 같다.


특히 금병매와 홍루몽은 좀처럼 눈에 띄지도 않는다. 이 소설이 지구 상에 존재한다는 말을 들은 건 그 옛날 내가 중학생 때였다. 그러면서 선생님은 야하니 이담에 성인이 돼서 읽으라고 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도 읽지 않는 건 꼭 잊고 있어서만도 아니다. 난 야한 건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이라 그 때문에 더 빨리 잊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춘기 아이들은 청개구리 심리가 있으니 정말 이걸 선생님의 말씀을 어기고 그때 당장 읽었으면 어땠을까? 압수당했을까? 그도 그럴 것이 난 그 무렵 D.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학교에서 몰래 읽다가 한쪽 귀퉁이를 선생님께 들켰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선생님은 그 책을 압수하지 않았다. 하이틴 로맨스는 압수 대상인데 말이다. 이유는 한 가지. 로렌스의 소설은 에로티시즘의 고전이라 서다. 하이틴 로맨스는 야한 장면 하나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작품의 질이 떨어지는 게 문제였다. 그러니 중국의 5대 기서 중 하나인 금병매와 홍루몽은 어떨지 알았어야 했다. 하지만 쉽게 살 수 있는 책도 아니거니와 한 두 권이 아니었다. 로렌스의 소설도 헉헉대고 읽었는데 그것의 몇 배나 되니 읽어낼 자신이 없었다. 내가 학생 신분이니 서점 주인이 아무리 돈이 궁하다고 해도 팔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로렌스의 소설은 어쩌다 얻어걸린 책이지만 내 취향이 아닌 책을 붙들고 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그러다 최근 이 책이 고맙게도 다시 나와줬다. 원래 요약본이나 좋아하고 그러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꼭 무슨 차에 무임승차하는 것 같아서 말이지. 다 읽지도 않았으면서 읽은 척하는 거, 솔직히 안 읽으면 안 읽었지 지조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누가 알겠는가? 이 책이 마중물이 되어 진짜 정본으로 읽게 될지. 우리가 서평집을 왜 읽는가. 다 그러자고 읽는 것 아니겠는가. 또한 책이 워낙 많으니 아무리 책이 좋아도 다 읽을 수는 없다. 거르고 줄이고 요약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그때 유용한 게 서평집이다. 이를테면 요약본도 그런 역할을 훌륭히 잘 해내고 있다.    


아, 근데 이 책 요약본이 아니다. 그러면 그렇지. 책 자체는 500페이지 정도라 결코 얇은 건 아니지만 이 한 권의 책에 수호지와 금병매, 홍루몽을 다뤘다면 요약으로 가능하지 않다. 해설집이었다. 그렇게 보니 저자는 책 하나하나에 꼼꼼한 각주를 더 해 자세한 해설을 했다. 그런 저자의 작업엔 경의를 표하지만 나 같은 경우엔 중국 5대 기서에 그다지 관심이 있는 편은 아니라 호기심을 끌기엔 다소 역부족은 아닌가 싶다. 차라리 요약본을 읽는 것이 기서를 읽는데 더 유리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정말 관심이 있으면 정본을 읽고 이 해설집을 읽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나는 너무 무림의 고수의 이야기 같아 일단 해설집이라도 읽어 봤다는 것에 만족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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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12-27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요약해설서였군요. 한권에 다 나오려면 요약서일 수 밖에 없겠네요. stella.k님 크리스마스 잘 보내셨나요. 따뜻한 연말 보내세요.^^

stella.K 2019-12-27 19:25   좋아요 1 | URL
아, 서니님. 서재 달인된 거 축하해요.
서니님도 연말 잘 보내시고 희망찬 새해 맞이하시길 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박균호 2019-12-27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stella.K 2019-12-27 19:45   좋아요 0 | URL
저는 약간 주저되는데 님께서 읽으시면 어떨지 모르겠네요.
평점이 높긴한데 각주도 많고해서...;;

수이 2019-12-27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이 번쩍번쩍! 크크 읽어봐야겠어요!

stella.K 2019-12-27 19:47   좋아요 1 | URL
ㅎㅎ 이거 보다 차라리 요약판에서 정본으로 넘어가는 것이...
요약판이 있더라구요.

hnine 2019-12-28 0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루몽은 중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이래요. 삼국지, 수허전 같은 것이 한국인에게도 중국 못지 않게 사랑받아오고 있는 것에 반해 홍루몽은 그렇지 않은 편이라서 그게 이상할 정도라고 하더군요. 금병매와 같이 약간 통속적인 내용의 소설에 속하지만 홍루몽이 훨씬 시적이고 중국 전통 문화가 잘 반영되어 있다고요.
그런데 저도 아직 읽어보지 못했어요. 중국에서 TV시리즈로도 여러 버젼으로 만들어졌다니 기회가 되면 중국 드라마로 한번 볼까 생각은 하고 있지요.

stella.K 2019-12-28 06:39   좋아요 0 | URL
오, 그렇군요. 솔직히 전 이 책 내용은 좋은데 재미는 없더라구요.
설명만 많아서 오히려 읽기에 방해가 되었어요.
시작이 안 좋으면 나중에 본격적으로 작품을 읽는데 꺼려되는 게 있어요.
또 당연한 것이긴 하지만 남성적 시각에서 쓰였다는 느낌을 배제할 수 없겠더군요.
금병매와 홍루몽은 몰라도 나머지 3편은 정말 중국 드라마로 많이 만들어지긴
했어요. 그런데 잘 안 보게 되더군요. 한국 드라마도 헉헉대고 보는지라...
나중에 저도 한번 챙겨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서재의 달인된 거 축하하구요, 올해도 변함없이 h님과 소통할 수 있게 되서
고맙고 즐거웠습니다. 한 해 마무리 잘하시고 희망찬 새해 맞으시기
바랄개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2019-12-28 17: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12-29 14:30   좋아요 1 | URL
아유, 그 어찌 민망한 말씀을...
인사도 제가 먼저 드렸어야 하는 건데 번번히 선수를 놓치는가 봅니다.ㅠ
올해도 변함없이 소통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내년에도 무탈하시어 계속 알라딘에서 뵐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한해 수고 많이하셨구요. 내년에도 더욱 복되시길.^^

희선 2019-12-30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 하면 서양 소설이 먼저 생각나기도 합니다 중국이나 한국에도 있는데... 그렇다 해도 고전은 거의 안 봤습니다 stella.k 님은 사춘기 때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보셨군요 선생님은 어떤 책이냐에 따라 빼앗기도 뺏지 않기도 하셨네요 책을 다 본 건 아니라 해도 해설집을 본 것도 괜찮을 듯합니다

stella.k 님 올해 남은 날 편안하게 보내시고 새해 잘 맞이하세요 새해 첫날은 좀 춥다고 하더군요 몸이든 마음이든 아프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희선

stella.K 2019-12-30 15:29   좋아요 1 | URL
<채털리 부인...>는 포르노 보단 에로스고 예술 소설이라고 할 수 있죠.
정말 그걸 모르는 선생님이었으면 압수 당했을 거예요.ㅎ

희선님도 따뜻하고 건강한 새해 맞으십시오. 고맙습니다.^^

서니데이 2019-12-31 1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tella.K님, 올해도 좋은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오늘 밤에는 송구영신 예배로 새해 맞으시겠지요.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후애(厚愛) 2020-01-01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tella.K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강하세요!!!^^
그리고 올 한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추운 날씨 옷 따뜻하게 입으시고 편안한 오후 시간 되세요.^^


stella.K 2020-01-01 18:13   좋아요 0 | URL
아유, 부탁은 제가 드려야지요.ㅎ
후애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길 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20-01-10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백 쪽이 넘다니 부담스러운 분량이군요. 해설서도 나름대로 읽을 만한 책 같아요. 저도 이런 종류의 책을 읽은 적이 있어요.
읽다가 관심 가는 책이 생기면 사 보면 되고요.

몸을 아끼시길 바라고,
새해 건필을 기원합니다.

stella.K 2020-01-10 13:55   좋아요 1 | URL
해설서는 해설서인 것 같아요. 그게 재밌을 리는 없죠.
저는 축약본을 기대했던 것 같아요.
축약본과 해설서는 같은 게 아닌데...

어제부터 손목에 손수건을 대고 키보드를 치고 있는데
좀 낫긴하더군요.
몸에 없던 증상이 하나씩 나타나면 서글퍼져요.ㅠㅠ
한편 더 아프기 전에 뭐라도 해놔야 하는 거 아닌가 조바심도 나구요.
이래서 갱년긴가 싶기도 하네요.
고맙습니다. 언니도요.^^

transient-guest 2020-01-15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와나미 시리즈를 계속 모으고 있는데 순전히 다치바나 다카시 탓입니다.ㅎㅎ 이걸 다 읽으면 비로소 기본적인 교양을 갖추게 된다고 말했던 것 같아요.ㅎ 이번에 저도 이 책을 받았는데 길더라구요. 뭔가 했는데 해설서라니..-__-: 아직 원전을 읽지 못했으니 달리 할 말은 없습니다만 해설서가 500페이지면 무척 길다고 느껴지네요.

stella.K 2020-01-15 18:32   좋아요 1 | URL
금병매와 홍루몽이 같이 있는 거라서 반반이라고 보면
그리 긴 것도 아니죠. 원서에 비하면.
줄거리를 밝히긴 했지만 줄거리는 줄거리라 재미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님이시라면 재밌게 읽으시지 않을까요?^^

후애(厚愛) 2020-01-16 1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날씨가 너무 춥지요?
감기 조심하시고 따뜻하게 보내세요.^^
오늘 하루도 즐겁게 보내시구요.^^

stella.K 2020-01-16 15:48   좋아요 0 | URL
네. 후애님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