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자어사전 - 한자어 속뜻 사전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시리즈
이재운 외 엮음 / 노마드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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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을 사랑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금이야 온라인 검색창에 자신이 알고자 하는 단어를 입력하면 휘리릭 알아서 찾아준다. 아날로그 시대 땐 사전 찾는 법을 따로 배워야 했다. 또 두껍기는 얼마나 두껍던지. 학창 시절엔 뭐든지 필요에 의해서 배우는 곳이라 국어사전보다는 영어 사전을 더 많이 보게 된다. 좀 부끄러운 얘기지만 지금은 보지도 않는 중학교 때 산 벽돌 같은 영어 사전을 아직도 가지고 있지만, 변변한 국어사전은 그때나 지금이나 가지고 있지 않다. 대신 온라인에서 사전을 수시로 찾아본다.


글은 쓰면 쓸수록 단어에 대한 집착이 편집증처럼 강해진다. 이미 아는 단어도 다시 찾아보게 된다. 내가 혹시 잘못 알거나 대충 알고 있는 건 아닌가 의심스러워지는 것이다. 또한 이 문장에 이 단어를 써도 되나 확인 차원에서 알아보게 된다. 얼마나 좋은가. 책으로 된 사전이었으면 결코 하지 않았을 일을 인터넷이 가능하니 손쉽게 할 수 있다. 대신 단점이 있기는 하다. 꼭 내가 알고자 하는 단어만 알 수 있지 그 외의 것을 에둘러 알아보지는 않게 된다. 책으로 된 사전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겠지만 그래도 항목별로 나열되어 있어 에누리로 몇 개의 단어를 더 읽어 볼 수도 있다. 작가가 되려는 사람은 사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보는 제의를 거치기도 한다. 뭐 그게 꼭 아니더라도 어휘가 풍부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훨씬 멋있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사전은 누가 만드는 걸까. 읽는 것 자체도 지난한데 그걸 편찬하는 사람은 얼마나 지난한 작업을 할지 짐작도 할 수가 없다. 이 책을 읽으려고 하니 언젠가 보았던  <행복한 사전>이란 일본 영화가 생각났다. 주인공으로 마츠다 류헤이의 캐스팅은 적절하다 못해 정말 훌륭하기까지 했다. 그는 정말 치밀하고 꼼꼼한 서생처럼 생겼다. 과연 이런 일을 하기에 딱 어울리는 이미지다. 아니면 시계를 만들거나. 나 같은 사람은 도저히 못할 것만 같지만 뭔가 남이 하지 않는 일을 한다는 점에선 새삼 존경스러움이 느껴진다. 이 책의 엮은이도 그렇다. 엮는 작업과 사전 편찬의 수고로움이 무슨 차이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읽으면서 새삼 존경스러움이 느껴졌다. 그걸 또 이번에 처음 펴낸 것도 아니다. 비슷한 작업을 전에도 했고 이것만도 증보판이다. 그가 어떻게 작업을 했는지를 머리말에 밝혀놓고 있는데 과연 이럴 수 있나 싶기도 하다. 이것 말고도 소설도 썼다. 


"...... 나는 우리 어휘를 써서 소설을 써온 작가로서 누구보다 우리말에 가까이 가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1994년부터 우리말 사전 시리즈를 편찬해오고 있다. 그중에서도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 한자어 사전>을 2005년에야 초판이 나올 만큼 시간이 오래 걸렸다. 거의 10년간 한자어를 연구하고 수집하고 검증하여 겨우 초판을 만들어 세상에 선보였다.

 3년 만에 2판을 낼 때는 더 집중하여 관련 어휘를 1000개로 늘렸고, 이번 3판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우리 한자어 사전>에서는 생활 어휘를 더 추가하여 2000여 개 어휘로 확 늘렸다. "


과연 이것을 언제 다했을까 싶다. 특별히 자신이 한자어 공부를 한 연유를 밝히고 있는데, 어렸을 때 서당 다니던 형을 따라 천자문과 통감을 웅얼거리고, 고등학교 때 한문 서적을 많이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한문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더구나 후배가 8년간 수천만 원을 들여 사들인 한문 고서적 1만여 권을 그의 서재로 보내 마음껏 읽게 해 준 이야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대학원 시절 스승인 서정주 시인에게 여쭸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스승님 같이 시를 잘 쓸 수 있냐고, 그러자 미당은 시를 잘 쓰려면 이런 거 저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일단 한문 공부부터 하라고 조언하더란다. 그래야 우리글의 깊은 맛을 낼 수 있다고. 우리말 그릇이 본디 한자어고, 한자어는 한문으로 길들여진 말이니 그 그릇이 튼튼해야 서양 공부든 동양 공부든 제대로 할 수 있다고. 이쯤 되면 한자어는 그의 운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이 운명에 확실한 쐐기를 밖은 건, 우리 국어사전에 한자어가 70%란 통계가 있더란다. 하지만 그 70%의 한자어를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대부분 일본 한자어라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 원래 쓰지 않았던 것을 일제강점기의 친일파와 일본 유학생들이 쓰던 그들만의 한자어라는 것이다. 그다음 말은 더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운명이 사명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수록된 단어는 본뜻과 자구 해석, 바뀐 뜻, 보기글로 세분화되어 있는데 비교적 간단명료하지만 어떤 건 그 단어가 유래된 배경을 설명하기도 한다. 정말 읽어 볼만하다. 그건 또 거의 대부분 고대 중국에서 유래된 것들이 많다. 그렇다면 작가가 지적한 일제 강점기 때 우리나라 국어사전을 쥐고 흔들만한 단어는 뭐가 있었을까. 한 예로 방송(放送)이란 단어가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단어다. 이것의 본뜻은 죄수를 감옥이나 유배에서 풀어주다의 뜻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방송국이 생기기 전인 1920년대까지 방송은 석방(釋放)과 같은 뜻이었다고 한다. 그것을 영을 내려 시행한다는 의미로 '방송을 명한다'라고 했다. 이것의 바뀐 뜻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장교가 처음으로 사용한 말이었는데 후에 이것이 영어의 '브로드캐스팅'을 번역한 말로 채택되어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용어가 지금의 전파를 송출해서 내보내는 통신용어가 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27년 경성방송국이 개국되면서부터라고 한다. 아직도 설을 구정이라고 쓰는 사람이 있다. 종종 있다. 구정이야 말로 일제 강점기 때 썼던 말인데 지난 세월 이런 우리 국어에서 일제의 잔재를 걷어내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완전히 없앤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는 않은가 보다.


읽다가 매춘(賣春)이란 단어가 생각보다 흥미롭다. 원래 춘이란 단어가 중국 당나라에서 쓰이던 말로 좋은  뜻이란 뜻이란다. 대개 술은 정월에 빚어 봄이 가기 전에 완성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의 자구 해석은 좋은 술을 사다인데  여자가 남자를 그리워하는 정을 춘이라고도 했단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매춘이란 단어다. 그렇다면 '위안(慰安)'이란 단어는 어떨까? 남의 종기를 불로 지져 치료해 주는 사람이란 뜻의 위와 편안하게 해 주다는 뜻의 안이 하나가 된 단어다. 이는 또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일본군들이 성노예로서 위로하고 편안하게 해 준다는 뜻으로 썼다. 문득 이 매춘과 위안이 묘한 대조를 이루는 듯하면서 뭔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렇게 우리가 알듯 모를듯한 단어를 새롭게 또는 확실하게 안다는 건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다. 가까이 두고 시간 날 때마다 또는 머리가 복잡할 때 조금씩 읽어 두면 좋을 것 같다. 또한 이 지난한 일을 한결같은 자세로 임했을 이재운 작가와 함께한 이들에게도 심심한 위로의 박수를 전하고 싶다. 여담이지만, 난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을 선호하는 편인데 종이책의 묵직함이 사전은 잘 안 찾아질 것 같다. 전자책으로 보는 것이 훨씬 활용도가 높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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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20-01-31 01: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안녕하세요.^^

사전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면 밑도끝도 없겠지만
오래 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촉망받던 소설가, 김소진씨의 국어사전 공부가 생각나는군요.
전공이 영문학이었던 한겨레신문 기자로 소설을 쓰기 위한 공부가 국어사전이여서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소설가 뿐 아니라 문학가라면 대부분 김소진씨와 비슷한 노력을 하겠지요.
참고로 말씀드리면 니르바나도 종이사전 애호가입니다.
헤아려 보지는 않았지만 저의 집에도
사전이라고 이름 붙은 책이 한 50종은 될 듯 싶은데요.(일종의 책부심입니다.ㅎㅎ)


stella.K 2020-01-31 15:28   좋아요 0 | URL
아, 맞아요. 그렇지 않아도 리뷰 올리면서 소설가 한 사람을 생각했는데
그게 김소진 작가였어요. 머리속에서 뱅뱅 돌았습니다.ㅋ
그런데 사전을 그렇게 많이 갖고 계시다니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네요.
저도 종이책 애호간데 요즘 제가 손목이 시여서 이런 무거운 책은
이제 욕심낼게 못되겠다 싶더군요. 그래도 이 시리즈 욕심이 나긴 납니다.

참, 제가 올해 니르바나님께 새해 인사 드렸던가요?
늦었지만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좋은 일만 가득하시기 빌겠습니다.
변함없이 서재에서 가끔 뵈어요.^^

cyrus 2020-02-01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님의 글을 읽으니까 제가 가지고 있는 사전들을 소개하고 싶은 글을 써보고 싶네요. 저는 특별한 주제와 내용이 있는 사전들을 가지고 있어요. ^^

stella.K 2020-02-02 18:47   좋아요 0 | URL
엇, 정말! 궁금하네. 난 사전과는 그다지 친하지 않아서
무슨 사전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
기대할게.^^
 
음악, 좋아하세요?
엄상준 지음 / 호밀밭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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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의 물성을 좋아한다. 내내 블로그나 카페에서 보던 글도 종이책으로 보면 그 느낌이나 질감이 다르다. 그건 아마도 내가 아날로그 세대여서 인지도 모르고 디지털이 아무리 발전해도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요즘엔 일반인들도 책을 내는 시대라 내내 인터넷에서 보아 온 글도 종이책으로 보면 또 달리 보이는 게 있다. 


이 책의 저자와는 한때 운이 좋아서 같은 사이트의 블로그를 사용(인터넷 서점 알라딘)하고 있어 한동안 글을 읽을 수가 있었다. 그땐 저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다. 주로 음악에 관한 글이 많이 올라와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 쪽의 애호가는 아닐까 짐작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책으로 마주하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책 표지가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운이 좋아 사인본까지 받았다. 난 그때서야 알았다. 그가 한 방송의 음악 프로그램 PD라는 걸. 그러자 그 시절 그가 블로그에 올렸던 글이 이해가 갔다. 음악과 책을 한 쳅터 안에 엮는 솜씨도 뛰어나지만 문장이 정말로 좋다. 각 글의 제목부터가 예사롭지가 않다. 세상에 무슨 짓을 하면 이런 글을 쓸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음악은 늘 우리와 함께한다. 우리가 의식하든 안 하든.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저렇게 음악을 가까이할 수 있는 기회들이 있었다. 어렸을 적 내가 음반을 가까이할 수 있었던 건 이사하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당시 신상품이었던 스테레오 전축을 들여오면서부터 였다. 물론 전에도 전축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오래되기도 했고 고장이 나서 그 위에 다른 세간살이를 올려놓는 등 받침대 역할 밖엔 하지 못했다. 게다가 나는 너무 어려 그런 물건에 관심도 없었다.


그때 아버지는 음악을 들으려고 전축을 산 것이 아니었다. 약간의 허세를 즐겨하셨던 아버지는 음악보다는 전시 효과를 위해 그걸 집안이 들이셨다. 덕분에 호사를 누리건 우리 4남매였다. 그때 언니는 막 사춘기에 접어들었고, 두 살 터울인 오빠도 발동이 걸리려고 폼 잡고 있는데다 난 또래보다 다소 조숙했다. 사춘기가 시작했다는 건 그 안에 문예부흥이 시작됐다는 말도 된다. 그동안 TV나 라디오에서 간헐적으로 듣고 알았던 것들이 허기로 느껴지면서 소유욕을 애써 숨기지 않는다. 언니는 엘비스 프레슬리나 닐 다이아몬드, 폴 모리아 악단 같은 팝 음악을 모으기 시작했고, 오빠는 락을 좋아했으며, 나는 고상하게도 클래식을 좋아했다. 내 동생은 아직 코찔찔이라 음반 보단 만화를 더 좋아했는데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나중에 음반에 대한 조예는 나를 훨씬 능가하긴 했다.              


내가 한때나마 클래식 음반을 좋아했던 건 부모님이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오직 나에게 피아노를 배우게 하신 것에 기인한다. 단지 안타까운 건 내가 피아노를 배우기 전 먼저 클래식 음악을 자연스럽게 접했다면 중간에 그만두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때 한창 백건우와 정명훈이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을 땐데 부모님은 그들이 어떻게 피아노를 치는지 나에게 들려준 적이 없으면서 무조건 그들과 같은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되라고만 하셨다. 그때 난 백건우나 정명훈보다 내 몸의 다섯 배쯤 되는 시커먼 피아노가 더 무서웠다. 그래도 그때 배웠던 몇몇 피아노곡은 아주 싫지만은 않았다.   


그러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내가 속한 반이 합주반이었다. 그때 우린 서울 지역의 초등학교와 합주 경연을 해야 했는데 몇 번의 예선을 거쳐 본선 최종 엔트리에 올라 마지막 경합을 벌여야 했다. 그때 우리의 출전곡은 요한 슈트라우스의 라데츠키 행진곡이었다. 사실 난 처음엔 이 합주를 못할 뻔했다. 왜냐하면 피아노를 그만두고 얼마 있지 않아 오른쪽 팔다리가 마비가 와서 이제 악기를 연주한다는 건 내 생애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합주 구성 악기 중 멜로디혼 파트가 있었는데 그건 본래 한 손으로 연주하는 것이다. 그런 거라면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바로 그것이다. 음악을 알려면 먼저 그렇게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때 이후로 나는 음악을 듣다면 꼭 클래식만 들었고 음반도 꼭 클래식만 사 모았다. 아마도 초등학교 6학년 때 그 경험이 없었다면 더 나아가 피아노 수업 경험이 없었다면 클래식은 내 생애 없는지도 모른다. 또한 음악을 단순히 듣는 것과 그 곡을 직접 연주해 본다는 건  또 다른 차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왜 부모들이 할 수만 있으면 자기 자녀들에게 음악을 시키려 하는지 알 것도 같다.     


하지만 클래식은 확실히 약간의 노력과 의도적인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분야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물론 늘 클래식 음악만 흐르는 가정이라면 상관이 없겠지만 말이다. 이건 정말 노력하지 않으면 어느새 저만치 멀어져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이후로 줄곧 클래식만 들을 것 같던 내가 어느새 듣는 음악이 팝송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시절 최동욱, 이종환, 김기덕, 김광한, 전영혁 등 전문 DJ 또는 팝 칼럼니스트가 라디오에 등장해 춘추전국 시대를 이루었다. 클래식은 영원하지만 대중음악은 그때가 아니면 안 된다. 책의 저자는 라디오는 복지라고 했는데 그 말에 동의한다. 매일 틀어주는데 듣지 않는다면 그건 정말 바보 같은 일이다.  


귀동냥이 무섭다고 괜찮은 음악은 제목과 가수 이름을 메모도 하고, 녹음테이프에 녹음도 했다. 아마 공부를 그렇게 했더라면 S대 아니야 하버드대도 갔을 것이다. 게다가 그 시절엔 각 다방마다 DJ 박스가 있어 음악 신청도 할 수가 있었는데, 친구와 함께 다방에 갔다 내가 신청한 음악 리스트를 DJ가 보고 예사롭지 않은 선곡이라며 한껏 띄워주는 바람에 우쭐한 적도 있다. 왜 그런 일은 학점 인정이 안 되는지 모르겠다.  


그런 내가 90년대 들어서면서 음악 듣기가 시들했다. 왜 그런지는 알 수가 없다. 하다못해 서태지와 아이들이 가요계를 발칵 뒤집어 놨는데도 난 그다지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그냥 그런 음악이 있나 보다 할 뿐이다. 더 이상 들을 게 없는 것처럼 모든 게 시큰둥이다. 하긴 아무리 좋은 것도 시간이 흐르면 권태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엄밀히 생각해 보면 열광만 안 했다 뿐이지 난 그때도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듣고 있었을 것이다. 아 맞다. 생각해 보니 난 그 시절 가스펠, 복음성가를 즐겨 들었다. 그건 물론 내가 기독교인이기도 하지만 송정미나 하덕규, 박종호 같은 90년대 기라성 같은 가스펠 가수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들의 음악은 종교음악이라는 특정에 갇혀 있어서 그렇지 편곡이나 음악성은 웬만한 메이저 가수들 못지않은 기량을 갖추고 있다. 그러니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같은 음악을 들어준다면 난 언제나 가스펠이었다.     


그러다 음악을 다른 관점에서 듣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연극에서 음악은 어떤 곡이 어떻게 쓰일 수 있는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음악을 좀 더 생산적으로 듣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그건 새로운 경험이고 지금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어떤 음악이 어떻게 쓰이나를 관찰하는 버릇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리고 난 정말 약속처럼 클래식 음악으로 돌아와 있었다.


언젠가 문학수 기자가 클래식을 듣는 근육을 키워야 한다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난 그 말에 동의한다. 그런데 인생을 두고 고행이라고도 하지만 가끔은 선물 같은 때가 있다. 그게 또 인생이다. 음악도 그런 것 아닐까. 아무리 음악을 좋아한다고 해도 모든 음악을 다 좋아할 수는 없다. 음악을 듣다 보면 문득 '얻어걸리는'게 있다. 그게 바로 선물 같은 순간일 것이다. 그것으로부터 음악에 대한 관심은 시작되고 자란다. 나를 보라. 초등학교 시절 내가 속했던 반이 합주반이 아니었다면 그때 내가 멜로디혼 파트를 자청하지 않았다면 요한 슈트라우스가 무슨 행진곡을 어떻게 작곡했는지 알지 못했거나 훨씬 나중에 알았을 것이다. 그건 정말 지금 생각해도 선물 같은 때라고 생각한다. (물론 합주 연습을 했던 당시는 정말 지난했다. 추억이 선물이었을 테지.)     


솔직히 어렸을 때 나의 음악 교육은 실패였다. 그건 나의 실패이기도 하지만 나의 부모의 실패이기도 하다. 물론 부모님은 내가 피아노를 배워서 훗날 뭐에라도 써먹길 바라셨을 것이다. 또한 기왕이면 원대가 꿈을 가져주길 바라셨을 것이고. 그건 또 여느 부모라면 다 갖는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그 보단 어떻게든 이 아이가 생을 즐길 줄 알고 누릴 줄 알고 조금이라도 풍요롭게 살아주길 바라서 음악을 가르치는 거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왜 모든 것엔 목적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성취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누리면서 배우는 것과 목적 성취를 위해 배우는 건 그 시작부터가 다른 것인데 말이다. 책을 읽다 정말 공감하는 말이 있어서 밑줄을 쳤다.


어린 시절에는 사람들이 알만한 성과를 거두는 것이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걸 어렴풋이 알 나이가 되었다. 어떤 삶은 그냥 포기하지 않고 잘 살아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희망이고 성공이다. 봄 그늘 아래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어여쁜가. (103p)  


과연 어여쁜 깨달음이고, 어여쁜 말이다. 우리는 이것을 깨닫기 위해 얼마만 한 인생을 되돌아왔을까. 음악을 왜 들어야 하냐는 바보 같은 질문은 하지 말자. 음악은 내가 태어나기 수천 년 전부터 있어왔고 불려 왔으며 들어왔다. 음악을 듣고 아는 건 각자의 선택이고 알아서 할 일이다. 음악을 알아서 내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이라면 알지 않을 이유가 없다.


책이 정말 좋다. 읽는 것만으로도 생각이 깊어지고 넓어지는 느낌이었다. 저자의 책이 이제야 나왔다는 게 너무 늦은 행보는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다. 그런 만큼 저자의 다음 책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표지 디자인도 마음에 들었는데 오탈자가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곧 2쇄가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그땐 바로 잡아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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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0-01-21 07: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렸을 때 어머니의 교육열에 떠밀려서 피아노 학원에 다녔어요. 그땐 피아노를 배우기 싫었어요. 그런데 계속 학원을 다니다보니까 피아노 연주를 좋아하게 됐어요. 그러다가 IMF가 왔던 해에 학원을 그만뒀어요. 이제 막 피아노 연주하는 재미에 푹 빠졌는데 학원의 피아노를 연주할 수 없다는 사실에 많이 울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너무 아쉬워요. 피아노 학원을 나오지 않고 계속 다녔으면 고급 수준의 피아노 교본에 있는 곡을 연주할 수 있는 실력이 되었을 거예요.

stella.K 2020-01-21 14:50   좋아요 0 | URL
아깝게 됐네. 하지만 지금이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성인이 되서 피아노나 바이올린 배우는 사람도 많더라구.
꼭 피아노가 아니더라도 뭐라도 배워두면 좋을 것 같아.
기타는 어때?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아님 아예 남이 잘 안하는 걸 개척하는 것도 좋을 것 같고.
그런 거 배워두면 모임에서 꿀리지 않고 좋을 거야.^^

후애(厚愛) 2020-01-21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정말 좋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따뜻한 오후 시간 되세요.^^

stella.K 2020-01-21 16:55   좋아요 0 | URL
아유, 뭘요...책이 정말 좋죠.
고맙습니다.
후애님도 좋은 시간 되시길.^^

2020-01-21 16: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0-01-21 18:08   좋아요 0 | URL
ㅎㅎ 맞아요. 저도 그래요. 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이 시큰둥 했던 사람이
비틀즈를 능가한다던 BTS가 뭘하든 그런가 보다 하죠.
책에 소개된 곡들을 보면서 저도 유튜브로 찾아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음반 사 모으는 시대가 아니라는 게 좀 섭섭하긴 해요.^^

2020-01-22 0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22 15: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22 17: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22 1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23 0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23 1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20-01-24 15: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tella.k님 즐거운 명절연휴 보내시고
새해복많이받으세요.

stella.K 2020-01-24 15:55   좋아요 1 | URL
앗, 서니님, 고맙습니다.
서니님도 복된 설 보내시고,
새해 복 듬북듬북 많이 받으세요!!!^^
 
중국 5대 소설 수호전·금병매·홍루몽 편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이나미 리쓰코 지음, 장원철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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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렸을 때부터 고전을 읽으라는 말을 들어서일까 성인이 돼서도 그것을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또 고전을 읽으라면 그건 서양 고전이 될 확률이 높다. 그래서일까? 최근까지 중국의 5대 기서 즉 삼국지연의를 제외하고 서유기. 수호전. 금병매. 홍루몽(어떻게 하면 고전을 넘어 기서라는 말까지 듣는 건지 중국은 놀라운 나라긴 하다)이 있다는 사실을 거의 잊고 지낸 것 같다.


특히 금병매와 홍루몽은 좀처럼 눈에 띄지도 않는다. 이 소설이 지구 상에 존재한다는 말을 들은 건 그 옛날 내가 중학생 때였다. 그러면서 선생님은 야하니 이담에 성인이 돼서 읽으라고 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도 읽지 않는 건 꼭 잊고 있어서만도 아니다. 난 야한 건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이라 그 때문에 더 빨리 잊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춘기 아이들은 청개구리 심리가 있으니 정말 이걸 선생님의 말씀을 어기고 그때 당장 읽었으면 어땠을까? 압수당했을까? 그도 그럴 것이 난 그 무렵 D.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학교에서 몰래 읽다가 한쪽 귀퉁이를 선생님께 들켰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선생님은 그 책을 압수하지 않았다. 하이틴 로맨스는 압수 대상인데 말이다. 이유는 한 가지. 로렌스의 소설은 에로티시즘의 고전이라 서다. 하이틴 로맨스는 야한 장면 하나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작품의 질이 떨어지는 게 문제였다. 그러니 중국의 5대 기서 중 하나인 금병매와 홍루몽은 어떨지 알았어야 했다. 하지만 쉽게 살 수 있는 책도 아니거니와 한 두 권이 아니었다. 로렌스의 소설도 헉헉대고 읽었는데 그것의 몇 배나 되니 읽어낼 자신이 없었다. 내가 학생 신분이니 서점 주인이 아무리 돈이 궁하다고 해도 팔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로렌스의 소설은 어쩌다 얻어걸린 책이지만 내 취향이 아닌 책을 붙들고 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그러다 최근 이 책이 고맙게도 다시 나와줬다. 원래 요약본이나 좋아하고 그러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꼭 무슨 차에 무임승차하는 것 같아서 말이지. 다 읽지도 않았으면서 읽은 척하는 거, 솔직히 안 읽으면 안 읽었지 지조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누가 알겠는가? 이 책이 마중물이 되어 진짜 정본으로 읽게 될지. 우리가 서평집을 왜 읽는가. 다 그러자고 읽는 것 아니겠는가. 또한 책이 워낙 많으니 아무리 책이 좋아도 다 읽을 수는 없다. 거르고 줄이고 요약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그때 유용한 게 서평집이다. 이를테면 요약본도 그런 역할을 훌륭히 잘 해내고 있다.    


아, 근데 이 책 요약본이 아니다. 그러면 그렇지. 책 자체는 500페이지 정도라 결코 얇은 건 아니지만 이 한 권의 책에 수호지와 금병매, 홍루몽을 다뤘다면 요약으로 가능하지 않다. 해설집이었다. 그렇게 보니 저자는 책 하나하나에 꼼꼼한 각주를 더 해 자세한 해설을 했다. 그런 저자의 작업엔 경의를 표하지만 나 같은 경우엔 중국 5대 기서에 그다지 관심이 있는 편은 아니라 호기심을 끌기엔 다소 역부족은 아닌가 싶다. 차라리 요약본을 읽는 것이 기서를 읽는데 더 유리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정말 관심이 있으면 정본을 읽고 이 해설집을 읽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나는 너무 무림의 고수의 이야기 같아 일단 해설집이라도 읽어 봤다는 것에 만족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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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12-27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요약해설서였군요. 한권에 다 나오려면 요약서일 수 밖에 없겠네요. stella.k님 크리스마스 잘 보내셨나요. 따뜻한 연말 보내세요.^^

stella.K 2019-12-27 19:25   좋아요 1 | URL
아, 서니님. 서재 달인된 거 축하해요.
서니님도 연말 잘 보내시고 희망찬 새해 맞이하시길 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박균호 2019-12-27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stella.K 2019-12-27 19:45   좋아요 0 | URL
저는 약간 주저되는데 님께서 읽으시면 어떨지 모르겠네요.
평점이 높긴한데 각주도 많고해서...;;

수이 2019-12-27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이 번쩍번쩍! 크크 읽어봐야겠어요!

stella.K 2019-12-27 19:47   좋아요 1 | URL
ㅎㅎ 이거 보다 차라리 요약판에서 정본으로 넘어가는 것이...
요약판이 있더라구요.

hnine 2019-12-28 0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루몽은 중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이래요. 삼국지, 수허전 같은 것이 한국인에게도 중국 못지 않게 사랑받아오고 있는 것에 반해 홍루몽은 그렇지 않은 편이라서 그게 이상할 정도라고 하더군요. 금병매와 같이 약간 통속적인 내용의 소설에 속하지만 홍루몽이 훨씬 시적이고 중국 전통 문화가 잘 반영되어 있다고요.
그런데 저도 아직 읽어보지 못했어요. 중국에서 TV시리즈로도 여러 버젼으로 만들어졌다니 기회가 되면 중국 드라마로 한번 볼까 생각은 하고 있지요.

stella.K 2019-12-28 06:39   좋아요 0 | URL
오, 그렇군요. 솔직히 전 이 책 내용은 좋은데 재미는 없더라구요.
설명만 많아서 오히려 읽기에 방해가 되었어요.
시작이 안 좋으면 나중에 본격적으로 작품을 읽는데 꺼려되는 게 있어요.
또 당연한 것이긴 하지만 남성적 시각에서 쓰였다는 느낌을 배제할 수 없겠더군요.
금병매와 홍루몽은 몰라도 나머지 3편은 정말 중국 드라마로 많이 만들어지긴
했어요. 그런데 잘 안 보게 되더군요. 한국 드라마도 헉헉대고 보는지라...
나중에 저도 한번 챙겨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서재의 달인된 거 축하하구요, 올해도 변함없이 h님과 소통할 수 있게 되서
고맙고 즐거웠습니다. 한 해 마무리 잘하시고 희망찬 새해 맞으시기
바랄개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2019-12-28 17: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12-29 14:30   좋아요 1 | URL
아유, 그 어찌 민망한 말씀을...
인사도 제가 먼저 드렸어야 하는 건데 번번히 선수를 놓치는가 봅니다.ㅠ
올해도 변함없이 소통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내년에도 무탈하시어 계속 알라딘에서 뵐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한해 수고 많이하셨구요. 내년에도 더욱 복되시길.^^

희선 2019-12-30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 하면 서양 소설이 먼저 생각나기도 합니다 중국이나 한국에도 있는데... 그렇다 해도 고전은 거의 안 봤습니다 stella.k 님은 사춘기 때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보셨군요 선생님은 어떤 책이냐에 따라 빼앗기도 뺏지 않기도 하셨네요 책을 다 본 건 아니라 해도 해설집을 본 것도 괜찮을 듯합니다

stella.k 님 올해 남은 날 편안하게 보내시고 새해 잘 맞이하세요 새해 첫날은 좀 춥다고 하더군요 몸이든 마음이든 아프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희선

stella.K 2019-12-30 15:29   좋아요 1 | URL
<채털리 부인...>는 포르노 보단 에로스고 예술 소설이라고 할 수 있죠.
정말 그걸 모르는 선생님이었으면 압수 당했을 거예요.ㅎ

희선님도 따뜻하고 건강한 새해 맞으십시오. 고맙습니다.^^

서니데이 2019-12-31 1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tella.K님, 올해도 좋은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오늘 밤에는 송구영신 예배로 새해 맞으시겠지요.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후애(厚愛) 2020-01-01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tella.K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강하세요!!!^^
그리고 올 한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추운 날씨 옷 따뜻하게 입으시고 편안한 오후 시간 되세요.^^


stella.K 2020-01-01 18:13   좋아요 0 | URL
아유, 부탁은 제가 드려야지요.ㅎ
후애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길 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20-01-10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백 쪽이 넘다니 부담스러운 분량이군요. 해설서도 나름대로 읽을 만한 책 같아요. 저도 이런 종류의 책을 읽은 적이 있어요.
읽다가 관심 가는 책이 생기면 사 보면 되고요.

몸을 아끼시길 바라고,
새해 건필을 기원합니다.

stella.K 2020-01-10 13:55   좋아요 1 | URL
해설서는 해설서인 것 같아요. 그게 재밌을 리는 없죠.
저는 축약본을 기대했던 것 같아요.
축약본과 해설서는 같은 게 아닌데...

어제부터 손목에 손수건을 대고 키보드를 치고 있는데
좀 낫긴하더군요.
몸에 없던 증상이 하나씩 나타나면 서글퍼져요.ㅠㅠ
한편 더 아프기 전에 뭐라도 해놔야 하는 거 아닌가 조바심도 나구요.
이래서 갱년긴가 싶기도 하네요.
고맙습니다. 언니도요.^^

transient-guest 2020-01-15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와나미 시리즈를 계속 모으고 있는데 순전히 다치바나 다카시 탓입니다.ㅎㅎ 이걸 다 읽으면 비로소 기본적인 교양을 갖추게 된다고 말했던 것 같아요.ㅎ 이번에 저도 이 책을 받았는데 길더라구요. 뭔가 했는데 해설서라니..-__-: 아직 원전을 읽지 못했으니 달리 할 말은 없습니다만 해설서가 500페이지면 무척 길다고 느껴지네요.

stella.K 2020-01-15 18:32   좋아요 1 | URL
금병매와 홍루몽이 같이 있는 거라서 반반이라고 보면
그리 긴 것도 아니죠. 원서에 비하면.
줄거리를 밝히긴 했지만 줄거리는 줄거리라 재미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님이시라면 재밌게 읽으시지 않을까요?^^

후애(厚愛) 2020-01-16 1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날씨가 너무 춥지요?
감기 조심하시고 따뜻하게 보내세요.^^
오늘 하루도 즐겁게 보내시구요.^^

stella.K 2020-01-16 15:48   좋아요 0 | URL
네. 후애님도요.^^
 
베르나르 베르베르 인생소설 - 나는 왜 작가가 되었나
다니엘 이치비아 지음, 이주영 옮김 / 예미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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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리뷰>(번역본 '작가란 무엇인가' 전 3권 있다)라는 잡지가 있다. 1953년 창간한 이래 노벨문학상, 퓰리처상, 부커상 등 지구 상에서 더 이상 유명해질 수 없는 상을 받은 작가들을 인터뷰한 것으로 유명한 문학잡지다. 본산은 역시 프랑스가 아닐까? 그런 유명한 잡지가 같은 동향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이하 베베)를 아직 인터뷰하지 않았다는 건 어쩌면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이렇게 유명한 작가를 아직도 인터뷰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 잡지의 인터뷰 조건은 뭐란 말인가. 저 위에 밝힌 조건 중 한 가지의 상이라도 받아야 인터뷰 대상이 되는 걸까? 그런데 생각해 보니 베베는 명성에 비해 상복이 지지리도 없는 작가는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가 그의 많은 책들을 열거하면서 무슨 상을 받았다는 글 한 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새삼 이해할 수 없는 '기현상'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렇게 이 책의 저자가 그를 인터뷰하고 독자적인 책까지 내줬으니 그럭저럭 위로는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저자는 프랑스 내에서 유명한 전기 작가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인터뷰 보단 전기적인 느낌이 강한 책인 것도 사실이다. 읽다 보면 무슨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그만큼 문체가 유려하다.


사실 개인적으로 베베를 아주 많이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의 책을 몇 권 읽어본 나로선 그를 싫어하기도 쉽진 않다.(내가 그를 좋아하지 않는 건 그의 세계관 때문이다. 특히 사람은 언제든 자의로 생을 중지시킬 수도 있다고 하는 건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좋지만 그의 사상까지는 좋아하지 않는 게 좋은 것 같다). 공상 과학 소설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그의 공전의 히트작 <개미> 읽고 그를 싫어하기란 쉽지 않다. 30년 전쯤 우리나라에 그 작품이 상륙했을 때 내가 뭐 이런 작품을 읽을 필요가 있나 거드름 피우기도 했다. 그때 후배 하나가 정말 재밌다는 말만 하지 않았어도 나는 끝까지 그 책을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세상의 언론이 아무리 뒤떠들어도 말이다. 그 책을 읽고 베베에게 매력을 느낀 것도 사실이지만, 내가 그런 공상 과학 소설에 눈을 떴다는 게 기특하고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우리가 살던 집엔 조그만 집개 미들이 함께 세 들어 살았는데 이것들은 쪼금해도 생명력이 강해서 손으로 눌러선 잘 죽지도 않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못 쓰는 컵에 물을 받아 놓고 거기에 빠뜨려 죽이는 것이다. 그럼 지네들끼리 엉기다 결국 물속에 빠져 죽곤 했는데 덕분에 집안에 개미가 좀 줄긴 했다. 아무래도 지네들끼리 결의를 했던 것 같다. 사람들 눈에 띄지 말자고. 혹시 눈에 띄면 서로 돕자는 말도. 하지만 왠지 <개미>를 읽고 그렇게 하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만큼 개미에 대한 사실적 묘사가 탁월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작품은 그가 30대 초반의 나이에 냈는데 소년 시절부터 개미를 관찰한 끈기도 끈기지만 관찰력이 대단하지 않나 싶다. 그런데 이 작품 역시 초메가톤급 히트작 <해리 포터>만큼이나 출판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는 건 이 책을 보고 알았다. 우린 흔히 출판되자마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는 말에 현혹되면 안 된다. 그렇게 출판되기 전 어떤 우여곡절을 겪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비하인드 스토리가 다큐멘터리 필름을 보듯 펼쳐지는데 뭔가 마음이 찡한 느낌이 든다. 


언제나 그렇듯 작가는 첫 작품을 어떻게 내느냐와 계속 책을 낼 것이냐로 정해지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내지 말라고 말한다. 책 내봤자 읽는 사람도 없고 종이만 낭비한다고 작가가 되겠다는 의지를 어찌나 꺾던지. 더구나 비평가들에게 혹독한 소릴 듣는 건 차라리 낫다. 어차피 비평가들은 좋은 얘기는 안 하니까. 미움받는 것보다 무서운 것이 무관심 이랬다고 독자가 외면하면 어떻게 할 방도가 없다. 그래도 베베는 비평가들에게 욕을 먹을지언정 독자들에겐 먹히는 작가였다. 첫 작품에 이어 두 번째, 세 번째 작품이 첫 작품만큼 성공할 것인지는 장담할 수가 없다. 그래도 그는 계속해서 작품을 낸다. 책을 읽어보면 전반적으로 베베의 성격은 호기심이 많고 부지런하며 성실해하다. 이건 확실히 그가 작가가 되기에 아주 좋은 성격이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형만 한 아우가 없다는 얘기를 듣는 것은 그다지 좋은 평판은 아닌 것 같긴 하다. 아, 물론 베베가 <개미> 이후의 작품이 범작이었다는 말은 아니다. 나 같은 경우 그가 한참 뒤에 쓴 <뇌>란 작품을 두 번째로 읽었는데 <개미> 보다 훨씬 재밌게 읽었다. 요는 처녀작 이후의 작품은 더 좋아야 한다는 강박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대체로 신인 작가들은 차기작이 처녀작만 못하다는 소리를 들으면 의기소침해지기도 하는데 설혹 그런 소리를 듣게 될지라도 개의치 말고 계속 쓰라는 것이다. 작가가 되고 안 되고는 매번 좋은 평판을 들어야 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자신이 작가임을 독자에게 계속해서 각인시키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다. 그건 차기작이 더 낫다는 말을 듣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베베는 그렇게 열심히 써서 어느 틈엔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되었다. 그건 매번 좋은 작품을 써서가 아니다. 그는 몇 번의 부침이 있었다. <개미>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작품도 워낙 우여곡절 끝에 나왔지만 대개는 비평가들의 혹평과 뭔가 될 듯 될 듯하면서도 안 되는 출판 상황이지만 행운의 여신은 우연히 미소 짓지 않는다. 그건 베베의 독자들에 의해 증명되기도 한다. 그의 독자들은 늘 그의 작품을 기다렸다. 거기엔 또 성실하게 쓰는 그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 하기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세상을 돌파하는 건 힘이나 판세를 읽는 영리함 뭐 그런 것이 아니라 우직한 성실함 같다. 특히 작가의 세계는. 뭐든 열심히 성실하게 하는 사람을 당해낼 재간은 없다. 하지만 성실함이란 쉬울 것 같지만 의외로 쉽지 않다.  


베베는 자기 본토인 프랑스에서 알아주는 작가이긴 하지만 해외에서 더 각광받는 작가다. 특히 저자는 베베가 한국에서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거의 한 페이지에 걸쳐서 쓰고 있는데 과연 그 정돈가 피식 웃음이 났다. 우리나라가 책을 안 읽을 땐 아주 안 읽어도 이렇게 좋은 작가는 확실히 밀어주는 근성은 있다. 그건 또 달리 말하면 좋아하는 작가에만 쏠려 있다는 뜻도 될 것이다. 또 달리 말하면 그전까지는 이렇다 할 공상 과학 작가들이 없었다 베베는 그 분야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냈기 때문으로도 풀이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영역을 확장시켜 나가 영화에도 손을 댄다. 그는 알만한 제작자와 배우와 협업을 하기도 했다.  


하루키를 말할 때 그는 피츠제럴드와 레이먼드 카버와 레이먼드 카버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건 이미 잘 알려졌다. 그렇다면 베베는 누구에게서 영향을 받았을까? <파운데이션>을 쓴 아이작 아시모프와 <듄>을 쓴 프랭크 허버트 그리고 스티븐 킹을 꼽기도 했다. 알아두면 알은척하기에 좋을 듯하다.


베베는 어느 대학의 강연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 베르나르는 학생들에게 동물들이 하는 것처럼 그 어떤 목표도 세우지 말고 무엇인가를 하며 순수한 기쁨을 느껴 보자는 제안도 했다. 무엇인가를 할 때 판단하지 않고 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꿀벌은 꿀을 만들 때 좋은 꿀을 만들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꿀을 만들어낼 뿐이죠. 여러분도 음악이든 그림이든 문학이든 무엇인가를 할 때 괜찮은 것인지 생각하지 말고 일단 해보세요!" (316p)

나처럼 생각이 많아 한 발을 내 딛기도 힘든 사람에게 정말 도전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를 잘 대변해 주기 도하는 말 같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좋아하는 작가라면 꼭 읽어 봐야 하지 않을까. 


약간 아쉬운 점은 인터넷에 글을 쓰는 것처럼 문단줄 띄어쓰기가 너무 빈번하다는 것인데 웹은 쉽게 눈이 피로해지기 때문에 줄을 띄어 쓰는 게 좋은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종이책은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다. 또한 느낌표의 과다 사용도 보이는데 확실히 글의 격을 떨어뜨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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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0 06: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12-10 14:30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전 글 쓰기가 점점 더 좋아지는데
실제로 쓰는 건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근데 전 이상하게 나 좋자고만 쓰면 더 못 쓰겠더라구요.
뭐든 리액션이 중요하다고 누군가 내 글을 좋아하고 추임새 넣어주면
잘 쓸 수 있는데...ㅎㅎ
고맙습니다.^^

빵굽는건축가 2019-12-10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기엔 또 성실하게 쓰는 그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 하기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세상을 돌파하는 건 힘이나 판세를 읽는 영리함 뭐 그런 것이 아니라 우직한 성실함 같다‘ 성실함에 대한 내용이 눈에 들어와요. 출장길에 재미나게.읽어봅니다.

stella.K 2019-12-10 14:35   좋아요 1 | URL
아유, 이렇게 열심히 읽어주시다뇨. 황송하네요.ㅎ
어제 저 리뷰 쓰느라고 팔목이 고생 좀 했습니다.
급하게 쓰느라 뭔가 미진한 게 있는 것 같기도한데 나중에 손 좀 봐야겠어요.
재밌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transient-guest 2019-12-10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미국의 기준으로 보면 매우 liberal한 세계관을 갖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자살이나 섹스에 대한 그의 논조는 무척 프렌치스럽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저는 그의 기발한 발상도 그렇지만 타나토노트를 읽고 처음 느낀 유체이탈의 경험이 신기했습니다. 그만큼 제가 푹 빠져 읽었던 것도 있지만 글에는 (약간은 미신적/주술적인 이야기) 뭔가 힘이 깃든다는 말이 떠오르더라구요. 그리고 지금 세상을 뒤흔들고 있는 K-Pop의 한국 이전부터 한국을 다뤄준 것도 기억이 나네요. 보통 아시아가 서양작가의 책에 등장할 땐 중국 아니면 일본이던 시절부터 말이죠.

stella.K 2019-12-10 14:38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세계관이 쫌 그래요.
동양사상 그중에서도 장자인지 도교에 심취해있다고 하던데...
하지만 그의 소년 같은 지적 호기심은 높이 사 줄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베베하고 우리나라 정서하고 뭔가 잘 맞는가 봐요.
유독 우리나라에서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하더군요.

카알벨루치 2019-12-19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베배 글 하나도 안 읽었네요 ㅎ

stella.K 2019-12-19 15:46   좋아요 1 | URL
헉, 의왼데요? 저 같이 공상과학 소설 잘 안 읽는 사람도
베베의 책 한 두 권은 다 읽는데...
저는 그의 초창기 소설을 추천합니다.
<개미>나 <뇌>는 정말 훌륭하죠. 후기로 갈수록 별론 것 같아요.
하지만 정말 노력하는 작가임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혼밥 자작 감행 - 밥도 술도 혼자가 최고!
쇼지 사다오 지음, 정영희 옮김 / 시공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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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고 먹는 게 중요하긴 한가 보다. 못 먹던 시대는 못 먹던 시대대로, 잘 먹는 시대는 잘 먹는 시대대로 고민이 많다. 그것은 영양학적 문제이기도 하거니와 우리는 이 문제가 해결이 되면 문제가 없을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이 되자 먹는 것이 사회적 문제가 됐다. 바로 혼술, 혼밥이 대세인 시대가 된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 같이 어울려 먹는 것이 피곤하단다. 게다가 같이 먹으면 메뉴를 통일해야 하기 때문에 먹고 싶은 것을 선택할 수 없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혼밥, 혼술이 대두되기 이전엔 우리가 중요했지만 이젠 내가 중요해졌다. 과연 이해가 되고 공감이 간다. 먹는 주체는 난데 왜 남의 뜻에 묻어가야 한단 말인가. 미워하면서 진수성찬을 먹기보다 한 가지의 음식을 먹어도 편한 마음으로 먹자는 의미에서 혼술, 혼밥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혼자 먹는 게 꼭 즐거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결국 뭐든 마음먹기 나름 아닐까. 같이 먹는 것이 불편한 사람은 혼자 먹어도 불편하고, 혼자 먹는 것이 즐거운 사람은 같이 먹어도 즐거울 것이다.


좋으나 싫으나 매번 혼자 먹는 것을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자발적인 건지 아니면 이런저런 사정 때문인지 아무튼 혼자 먹는 사람인 것 같다. 그러니까 이런 책도 냈겠지. 보통의 내공 가지고 이런 책이 나올 리 없다. 우리나라엔 잘 안 알려진 작가다. 일본 내에선 만화가로 활동하고 있고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현역으로 일을 하는가 보다. 


나이가 많으니 혼자 먹는 것이 어느 정도 익숙할 것도 같은데 그렇지도 아닌가 보다. 책 한 권을 낼 정도니 말이다. 하긴 사람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기 시작하면 나이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어느 식당에서 여든 넘은 노인이 혼자 술이나 밥을 먹는다고 하면 예사로 보지 않을 것이다. 이 시간에 왜 혼자 와서 저러고 있는 걸까, 독거노인인가, 배우자와 싸우고 갈 곳이 없나, 왠지 쓸쓸해 보이네 등등. 하지만 저자는 그러면 그럴수록 더 당당해지라면서 노하우를 공개하기도 한다.   


사람은 태어나 엄마 젖을 빨 때부터 혼자 무엇을 먹도록 되어있지 않는 것 같다. 그만큼 먹는다는 행위 자체가 교감이란 말이다. 하지만 자라면서 매번 사람들과 뭔가를 먹을 수는 없다. 집에서라면 문제가 없겠는데 문제는 학교나 직장 등 사회생활을 하면서 왠지 혼자 먹으면 어색할 거란 사회적 편견이 이런 책을 낳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본 두 개의 TV 영상이 생각났다. 하나는, 우리나라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한 외국인이 혼자 점심을 먹으러 어느 식당에 들렀는데 그곳 주인이 자신을 되게 안쓰럽게 보고 있어서 불편했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또 하나는 한물간 어느 아이돌이 혼자 어디까지 놀아 볼 수 있을까 레벨 테스트를 하는 장면이었다. 혼고라고 해서 혼자 고기를 먹는 게 혼밥, 혼술 보다 훨씬 높은 레벨이었다. 그는 좀 어색했긴 했지만 혼고를 무사히 통과했다고 안도하는 모습이다.  


전자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녀는 서양에서 온 외국인이 었는데 알겠지만 서양은 개인주의가 팽배한 곳 아니던가. 그러니 식사를 혼자 하는 것쯤이야 아무 문제가 안 될 것이다. 그런 사람을 두고 우리나라 잣대를 들이대 외롭지 않을까 안쓰럽다고 생각하는 건 괜한 오지랖을 넘어 무례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후자의 경우 그렇게 어색한 걸 통과했다고 좋아하느니 차라리 고기를 사서 집에서 먹거나 마음에 맞는 사람 한 둘과 같이 오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을까. 그 아이돌이 고기를 함께 먹을 사람이 없으리만큼 사회성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 테니까. 요는 혼자 먹든 같이 먹든 자연스러운 게 제일 좋다는 거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혼밥은 누구도 피해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다가 일수도 있겠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독신으로 살게 될 때다. 혼자 있으면 밥을 잘 안 먹게 된다. 먹어도 대충 때우거나. 중요한 건, 그럴수록 더 맛있게 잘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돌아가신 친할머니는 일찍 홀로 되시기도 하셨지만 또 일찌감치 자식들을 출가시키기도 하셨다. 연로하시니 이젠 누군가 차려주는 밥을 드셔도 좋을 텐데 그러지 않으셨다. 혼자 지내시기 뭐해 세를 두기도 하셨지만 그렇다고 그 세든 사람과 밥까지 같이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할머닌 언제나 밥과 반찬을 손수 만들어 꼭 밥상에 받혀 안방에서 드시곤 했다. 어느 한 끼도 부엌 부뚜막에 앉아 대충 때우시는 법이 없으셨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할머니야 말로 진정한 혼밥의 고수는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일까, 할머니는 80을 넘겨 사셨으니 옛날 노인 치고 장수하신 편이다. 매번 그러기가 쉬웠겠는가. 어쩌면 할머니에게 혼밥은 하나의 수행 같은 거였는지도 모른다. 나이가 드니 그런 할머니가 많이 생각이 난다. 나도 과연 할머니같이 살 수 있을까. 


사실 난 예나 지금이나 혼밥이 그리 익숙하지 못하다. 물론 집에서는 전혀 문제가 안 되지만 바깥에 나가서 혼자 무엇을 먹는다는 게 익숙하지 않다. 그래도 요즘엔 식당 어디를 가도 혼자 먹는 사람 한 둘은 꼭 보게 되니 닥치면 잘한다. 오래전 혼밥 혼술이란 말이 나오기도 전 나는 갑자기 김밥이 너무 먹고 싶어 정말 혼자 식당에 들어가 먹고 나온 적이 있다. 그때 누구와 같이 먹었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혼자 먹는다는 불편함 감수할 만큼 김밥이 먹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먹는 내내 '까짓 거 혼자면 어때 이렇게 맛있는 걸.' 하며 혼자 먹는 나를 칭찬해 주고 싶을 정도였다. 거기엔 TV가 한 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건 확실히 사람의 마음을 다소 편하게 해 준 것도 사실이다.       


책을 보면 혼식에도 나름의 요령은 있는 것 같긴 하다. 이를테면 주인이 너무 친절한 식당은 가지 말란다. TV는 필수고, 읽을거리를 챙겨 가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그리고 지나치게 밝은 곳이나 깔끔한 곳 보단 다소 허름한 곳에 가급적 화장실이나 출입구 가까운 구석진 곳에 앉으라고도 한다. 저자가 우리와 가까운 일본 사람이고 보면 정서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그렇게 챙겨서야 어디 편하게 식당인들 갈 수 있겠는가. 그런 생각조차 버려야 진정한 혼밥인이 되는 건 아닐까. 그럴 수 없다면 거듭 말하지만 차라리 그냥 혼자 집에서 먹어라. 그게 훨씬 낫다. 


이 책은 정서가 비슷한 우리나라에선 어느 정도 읽힐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와 사고방식이 다른 앞서 말한 서양인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솔직히 난 이 책을 다 완독 하지 못했다. 우리나라 어느 유명 셰프가 재밌다고 극찬해서 호기심에 읽었는데 별로였다. 같은 동양권이라고 해도 먹는 음식이 다르고 낯서니 그다지 와 닿지 않는다. 혹시 우리나라 어느 미식가가 쓴 책이라면 좀 읽어 줄만 하지 않았을까. 그만큼 호불호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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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12-01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정한 혼밥 마니아는 음식을 천천히 먹을 줄 아는 사람이에요. 대부분 사람은 음식을 빨리 먹는 편이에요. 그리고 주위 사람들 눈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빨리 먹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제가 혼밥을 선호하는 이유는 음식을 천천히 먹을 수 있다는 점이에요. 건강을 위해 음식을 오래 씹으면서 먹어야 해요. ^^

stella.K 2019-12-02 14:23   좋아요 0 | URL
맞아. 그리고 아무거나 대충 때우지 않고
자신이 직접 만들어 먹는 기쁨을 아는 사람이겠지.
우리 할머니처럼.^^

페크pek0501 2019-12-04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 밥 먹으면 맛을 깊게 음미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누군가와 먹으면 말하면서 먹느라 들으면서 먹느라 맛 음미가 소홀해질 수 있죠.
커피도 그렇더라고요. 누구와 만나 마시면 정신 없이 마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어느 나라의 음식점에선 말없이 음식을 먹어야 하는 규칙이 있대요.

stella.K 2019-12-04 14:44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게 가장 좋은 혼밥의 자세일 거예요.
그런데 이 책은 어떻게 하면 혼자 먹는 그 머쓱함을 최소화
할거냐 뭐 그런 거에 촛점이 맞혀진 듯하고 나머지는
무슨 요리는 이렇더라 저렇더라며 소소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생각 보다 재미가 없더라구요. 제가 일본 요리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저는 기독교인이지만 불자들이 바루공양하는 건 정말 좋은 모습같아요.^^

후애(厚愛) 2019-12-04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점심때만 혼자 밥을 먹는데 소화가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혼자 먹을 때는 너무 급하게 먹어서 말이지요.^^;;
그리고 대충 먹어요.
같이 먹을 때는 이것저것 만드는데 이상하게 혼자 먹게 되면 요리도 하기 싫고 대충 먹게 되네요.

많이 춥습니다.
옷 따뜻하게 입으시고 감기 조심하세요.^^

stella.K 2019-12-04 18:47   좋아요 0 | URL
ㅎㅎ 먹는 것도 성격 나름이긴 해요.
어떤 사람은 혼자인 것을 즐기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후애님처럼 누군가를 즐겁게 해야 비로소 나도 즐겁게 되는.
좋은 성격이이신 것 같습니다.
저는 음식을 이것저것 한꺼번에 못 만듭니다. 너무 힘들어
한 두 가지만 만들어 먹는 타입이죠.

그러게요. 올 겨울도 별로 안 추울 거라고 하긴 하는데 그래도 겨울은
겨울이네요. 후애님도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후애(厚愛) 2019-12-06 17:20   좋아요 0 | URL
정말 올 겨울도 별로 안 추울 거라고 하더니 옆지기 때문에 오전에 병원 갔었는데 많이 추웠어요.
이런 날씨에는 따뜻한 방에서 귤을 먹으면 책과 시간 보내는 게 딱인 것 같습니다. ㅎ
따뜻하게 주말 보내시고요, 항상 건강하세요!!!!^^

stella.K 2019-12-06 20:36   좋아요 1 | URL
오늘 모처럼 중고샵 갖다왔는데 춥긴 춥더군요.
우리나라 추위가 시베리아 추위보다 더 춥다고하는데
안 가 봐서 모르겠고 그래도 몇분 지나면 곧 익숙해지던데요 뭐.ㅋ
후애님도 주말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서니데이 2019-12-07 15: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에는 잘 모르겠는데, 지금은 혼자 밥먹는 것도 영화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약속이 생겨서 친구를 만나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지만, 혼자 편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더라구요.

12월이 되니, 날씨가 이젠 진짜 겨울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어제는 정말 차가웠어요.
갑자기 날씨가 차가워져서 감기 걸린 분도 많으시대요.
steall.K님, 감기 조심하시고,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transient-guest 2019-12-08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술은 좀 합니다만 혼밥은 귀찮아서 대충 때우게 됩니다 그냥 뭐 싸가거나 사갖고 와서 사무실에서 편히 먹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편한 걸 최고로 치게 됩니다 ㅎ

stella.K 2019-12-09 12:58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술 먹는데 안주는 간단하잖아요. 땅콩 하나만 있어도 안주가 되니.
혼밥은 귀찮긴 해요. 그래도 요섹남이라고 요리 몇 가지는 알아두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ㅎㅎ

transient-guest 2019-12-10 09:39   좋아요 1 | URL
아 혼밥여부와는 별개로 제가 요리는 좀 합니다 ㅎㅎ 뭐 잘 한다기 보다는 이것 저것 그냥 할 줄 아는 정도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