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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견
손아람 지음 / 들녘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그동안 법정 드라마나 영화는 심심찮게 보긴 했지만 소설로 읽기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물론 난 동명의 작품을 오래전 영화로 봤다. (본 지가 오래돼서 내용이 기억에 거의 없다.) 이번에 소설로 읽으니 작가에게 감탄하며 읽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다. 취재력도 좋고 문장도 좋아서 만족하면서 읽었다. 매 챕터 들어갈 때마다 법에 관련된 명언들 써 놓기도 했는데 역시 돋보였다. 특히 배심원들 앞에서 펼치는 팽팽한 법정 장면은 가히 압권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딱히 2009년에 있었던 용산 참사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 사건을 모티프로 했다. 이 책을 읽으니 그동안 까맣게 잊고 살았다는 것을 알았다. 워낙 오래된 일이기도 하지만 이 나라가 어디 그 사건만을 기억해도 좋으리만치 한가하고 좋은 나라던가. 그래도 이만큼 나라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기적이라면 기적이다.
그런데 한편 이 책을 출간 당시에 읽지 않고 지금 읽은 게 오히려 잘 된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지금 읽으니 조금은 올드 한 느낌이 없지 않다. 문득 그때 내몰렸던 철거민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언제부턴가 철거민들의 농성도 잦아들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그들의 주거가 보장되었기 때문에 그런 걸까? 잘 모르겠다. 더 이상 강제로 철거하는 일은 없는지는 몰라도 대신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는 남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을 출간 당시에 읽었다면 이런 감상적인 내용으로 리뷰를 썼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내가 이 책에서 본 건 법의 진화와 발전? 뭐 그런 것이다. 물론 나는 법에 거의 문외한이다. 작가 역시 법학을 전공하지 않았다. 하지만 법에 관해서 꽤 자세히 색인까지 써 가면서 꼼꼼하게 썼다. 그걸 보면서 작가가 이 작품을 썼을 당시 법이 이 정도였다면 지금은 또 얼마나 많이 바뀌었을까? 궁금하게 만든다.
물론 여전히 우리나라의 법은 가진 자, 범법자를 두둔하는 경향이 강하다. 얼마 전에도 어느 여자의 집을 무단 침입해 성폭행을 하려다 여자는 물론이고 애인까지 크게 다쳐 회생불능의 상태에 빠졌다. 이에 대해 범인에게 징역 50년을 판결해 달라는 원심을 깨고 거의 절반에 가까운 27년을 구형했다는 보도를 들은 적이 있다. 그뿐인가? 2년 전 급발진 사고로 아들을 잃은 젊은 아버지가 급발진 사고를 규명하기 위해 자신의 사비를 털어 넣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외국 같은 경우 급발진 사고가 나면 오히려 회사가 책임 소재를 소명하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일명 원식이 법을 발의를 하려고 했지만 공교롭게도 21대 국회가 임기가 끝나 폐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제발 국회는 정쟁을 멈추고 민생을 챙겨라!) 다음 회기 때 또 발의를 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걸 보면 우리나라 법이 어디로 가는지, 아직도 무르다는 비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간에도 법은 진화하고 발전한다고 믿는다. 비록 우리가 원하는 속도로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아주 조금씩 느린 속도로나마 변화하고 발전해 간다는 걸 이 책을 보며 새삼 깨닫게 된다. 아직도 우리나라 법정은 배심원의 의견이 판결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법 감정에는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작품도 화자 겸 주인공이 많은 우여곡절 겪고(원래 주인공은 다 그렇지만) 마지막이 좀 쓸쓸하긴 하지만 그런대로 희망을 보여 주기도 한다. 그런 걸 보면 법이 여전히 가진 자의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희망은 포기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는 얻을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