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중고샵에서 건진 책이다.

시이소오님 요즘 송로버섯 얘기 심신치 않게 하시던데, 마침 읽다 보니 송로버섯에 관한 얘기가 나와서 옮겨본다.

 

이 송로버섯이 요물이긴 한가 보다. 승승장구하던 로시니가 1830년 <빌헬름 텔>을 끝으로 돌연 은퇴를 선언한다. 그때 그의 나이 38세. 76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단 한 곡도 작곡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잘 나가던 로시니 은퇴를 하니 당연 소문이 무성할 밖에. 그중엔 '로시니는 송로버섯을 찾아내는 암퇘지를 기르려고 오페라를 접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고 한다. 돼지를 키우기 위해 절필했다는 것도 이해가 안 갈 판인데 송로버섯을 찾아내는 암퇘지라니?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돼지가 아니라 송로버섯이라고 한다. 송로버섯은 푸아그라, 캐비어와 함께 유럽 3대 진미다. 몇 년 전 우리나라의 한 와인 마스터가 9백 그램짜리 송로버섯 한 송이를 1억 6천만원에 구입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고 한다. 얼마나 귀하고 비싼지 '땅속의 다이아몬드'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 버섯은 지상에서 자라지만 지하 10~30 센티미터 지점에서 자라기 때문에 사람의 눈으로 채취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톡 쏘는 향을 가지고 있어서 이걸 찾아내는데 암퇘지가 제격. 암퇘지는 후각이 뛰어난 데다, 송로버섯의 향을 맡으면 극도로 흥분해서 주둥이와 발굽으로 땅을 헤집고 기어코 송로버섯을 찾아낸다는 것. 게다가 송로버섯을 좋아하는 로시니는 평소 "진미와 요리를 즐기면서 송로버섯을 찾는 암퇘지를 키우며 지내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물론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길은 없으나 로시니가 송로버섯을 좋아했던 것은 사실이고, 그것을 이용한 요리를 개발하기도 했다. 만약 프랑스 고급 식당에 가서 메뉴판에 '로시니'가 붙은 요리를 발견하게 된다면 로시니가 개발한 송로버섯 요리라고 생각하면 된단다. 예를 들면, '루르느도 로시니' 하면 거위 간에 송로버섯을 곁들인 스테이크고, '필레 드 뵈프 로시니' 하면  푸아그라와 송로버섯을 곁들인 쇠고기 안심스테이크란다. 

 

우리네 서민들이야 평생 먹을 일 없겠지만, 파란색 지붕 밑 우리의 그네님이 드셨다던 송로버섯 요리는 뭘지 상상이 가려나? 그런데 송로버섯을 평생 좋아했다는 로시니이고 보면 그도 굉장한 부자였나 보다. 또한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웬만한 전세값에 해당하는 버섯을 샀다는 와인 마스터 양반은 그걸 가지고 무슨 요리를 만들어 먹었을까? 우리네처럼 볶거나 국 끊여 먹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아무튼 귀한 몸인 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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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8-21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이런 것도 모르고 송로 버섯 안 먹은 사람 어디 있나, 이런 말을 했던 저입니다. 봤어야 알지.....

stella.K 2016-08-21 16:28   좋아요 0 | URL
ㅎㅎㅎ 우리네 잘 먹는 팽이버섯이나 표고버섯하고는 끕이 다르죠.
저도 이번에 알고 식겁했다능...ㅠ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1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송이를 송로로 착각.... ㅎㅎㅎㅎㅎㅎ 진짜 빈티나는 착각이었네요..

stella.K 2016-08-21 16:33   좋아요 0 | URL
아, 맞아요. 그래서 웃었잖아요.
그때 곰발님을 라임대마왕으로 등극시켜 드리고...ㅎㅎㅎㅎ

hnine 2016-08-22 0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러플이라고 흔히 말하는 그 버섯 아닌가요? 돌덩이처럼 생긴...
로시니가 은근히 송로버섯 핑계를 댔군요 ㅋㅋ
트러플은 생소하지만 버섯은 아니라도 우리에겐 ˝산삼˝ 이 있으니까요 뭐~~

stella.K 2016-08-21 18:07   좋아요 0 | URL
맞아요. Truffle.
별로 맛있어 보이진 않는데. 좀 악마적으로 생기지 않았나요?ㅋ
그에 비하면 산심은 도사님 수염 같구요.
산삼도 아무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죠. 그래도 송로버섯 보다는...^^

시이소오 2016-08-21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송로버섯 이런거군요. ㅋ 감사합니다. 배우고 갑니다 ^^

stella.K 2016-08-21 20:09   좋아요 0 | URL
아이, 뭘요?^^

yamoo 2016-08-22 1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헐~ 이 책 문득 묻다...이거 헌책방에서 구해서 몇 꼭지 읽어 봤는데, 괜찮겠다 시퍼 지난 주에 데려왔어요....권수가 더 있어 도서관에서 빌렸지요..ㅋㅋ 3권까지 있더이다...

근데, 전 왜 그 버섯 야그는 못봤을까요...스텔라 님때분에 이 책 다 읽을 듯해요^^
이런 우연이!!

stella.K 2016-08-22 13:56   좋아요 1 | URL
오, 정말요. 야무님과 제가 같이 좋다고 하는 책이 있다니!
기분 좋은데요?ㅋ
이 책 괜찮은 거 같아요. 제가 몰랐던, 모르면 모르는데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부분을 건드려줘요.
그러고 보면 라디오 방송작가들 참 대단한 것 같아요.
짧은 분량의 글속에 어떻게 그렇게 폐부를 찌르는 글을 담아낼 수 있을까
놀랄 때가 많거든요.^^
 

정지돈의 <내가 싸우듯이>를 읽으면서, 새삼 내가 우리나라 작가 특히 젊은 작가의 소설을 거의 읽지 않다는 것과 그러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 생경함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 생경함을 다소나마 완충하기 위해서라도 읽어줘야 하는 것일까를 또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난 이런 결심을 섣불리 할 수 없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나 자신하고라도 하지 않는 것이 나의 방침이다. 결심한 바를 지키지 못해 나 자신을 자책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책이란 모름지기 좋아서 읽고, 호기심으로 읽는 것이어야 하지 않는가. 충격을 줄이기 위해 책을 읽는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런데 정지돈을 좋아하는 독자도 있다. 당연한 거다. 내가 싫다고 남도 싫어하리란 법은 없다. 내가 좋다고 남도 좋으란 법도 없고. 다 취향의 문제이긴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책을 읽고 내가 느끼는 건 세대 차이에서 오는 문화 충격 뭐 그런 것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걸까?

 

그런데 그렇게만 얘기할 수 없는 건, 누구의 분류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지돈의 작품을 소설로 분류했기 때문이다. 에세이나 그가 작가의 말에서 그리도 강조해마지 않았던 것처럼 비소설로 분류했더라면 이 책은 독자들로부터 비판을 피해갔거나 덜 비판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왜 굳이 소설에 분류시켜 문제를 야기했던 것일까? 그리고 그는 왜 작가의 말에서, 소설을 썼다 비소설로 전향한 외국 작가의 예를 굳이 들었던 것일까? 그냥 그렇게 쓰고 싶다면 쓸 일이지 자신을 이해시켜야만 할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걸까? 게다가 작가의 말이 왜 그리도 어려운 건지 한 편의 논문을 연상시킬 정도다. 이는 추측컨대 둘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자신의 소설이 들 끊을 것을 예견했거나, 이러한 장르도 있다며 무지한 독자를 일깨워야겠다고 생각했던가.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시대가 외면한 불운한 소설들. 당대엔 이게 무슨 소설이냐고 질타를 받았지만 결국 시대를 뛰어넘은 작품들. 이를테면, 자신의 작품이 그렇게 되길 또는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어쨌든 소설의 지경이 넓어져야 한다는 것에 방점을 찍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평론가들은 어땠을까? 어쨌든 정지돈의 이번 작품은 평론가들에게도 새로웠을 것이다. 젊은 소설가들이 새로워봤자 얼마나 새로울 수 있을까? 그 밥에 그 나물이건 평론가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젊은 소설가들에게 기대하는 건 실험적이라는 건데 내가 얼마 전 그의 작품을 읽고 제목에도 썼지만 정지돈의 작품은 명백히 소설이 아니다. 그런데 평론가들은 자신이 특별하다는 의식에 사로잡혀 굳이 소설이 아닌 작품에 실험적이라는 이유로 소설임을 자처했던 것은 아닐까? 비소설도 소설이라 우기면서. 그러면서 우리 평론가들도 소설을 보는 눈이 이만큼 넒어지고 달라졌다고 자랑하고 싶었던 아닐까? 만의 하나 그렇게 생각하는 평론가들이 있다면 그는 지진아거나 벌거벗은 임금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평론가가 자기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말하고 싶은 것만을 말한다면 그게 어디 평론가란 말인가.

 

그래서 말인데 이제 우리나라 문단계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랬다고, 소설의 안경을 쓰고 비소설을 논하고자 한다면 그것처럼 소모적인 것도 없을 것이다. 소설은 소설이고, 비소설은 비소설이다. 그것은 소설이 문학의 왕좌의 자리라도 꿰찬 양 여간해서 비소설을 허락하고 싶어 하지 않거나, 비소설을 소설 보다 못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소설은 무엇이고, 비소설은 무엇이며, 에세이는 또 뭐란 말인가? 소설이 아니면 에세이로 보는 것도 좀 그렇지 않은가? (리뷰에도 썼지만) 이석원의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현재 에세이로 분류되어 있다. 그것도 엄밀히 말하면 에세이가 아닌 비소설 같은데, 왜 정지돈은 소설로 분류하면서 비소설이라고 하고, 왜 이석원의 작품은 그렇지 않은가? 이석원의 작품도 어느 정도 일정 수준의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기는 한데 에세이라고 보기엔 덜 정제된 느낌이다. 내가 알기론 에세이는 꽤 고급한 문학 형태라고 알고 있는데 그렇게 불러주기엔 그건 또 아니라는 거다. 그렇다면 비소설이어야 맞는 거 아닌가. 그러기엔 또 이 나라 문학계가 비소설을 서자 취급해 온 것이 아닌가. 우리나라 문학은 정리가 안 된다. 문학에 서자가 어디고, 적자가 어디 있는가?

 

그런데 차별은 존재하는 것 같긴 하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서로 형태는 달라도 비소설을 쓰기는 이석원이나 정지돈이나 같다. 그러나 그것을 보는 시선이 다르다. 이석원을 알다시피 언니네 이발관의 리더. 그러니까 예능인이고, 정지돈은 문학 그것도 창작을 전공하고 영화까지 전공한 재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석원은 딴따라고, 정지돈은 귀공자라는 것이지. 그리고 평론가들은 당연 이석원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 라이선스를 가진 정지돈만을 주목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작가에 대한 편 가르기도 그들의 세계에선 있을 거라는 걸 나는 지금까지 생각해 보지 못했다. 내가 비소설을 허하라는 건, 평론가들이 비소설을 논하지 말고 비소설가과 독자들이 비소설을 논하도록 하라는 것이고, 비소설 작가들을 차별하지 말라는 것이며, 비소설에게도 문학의 자리를 내주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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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6-07-18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옳소!

기억의집 2016-07-18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제가 이십대초반에 밀란 쿤데라 소설 읽는데 너무 신선한 거에요. 아마 쿤데라가 에세이형식의 소설인가 그런 스탈로 소설을 썼던 것 같아요. 프라하의 봄이나 불멸. 저는 불멸 읽고 신선한 충격울 받아.... 제가 천주교를 다니며 아네수란 세례명을 수여했울 정도로요, 한동안 쿤데라 소설 좋아했어요. 소설의 형식은 가보지 못한 길, 이라 해도 좋을 듯 싶어요. 여러 형식을 만나고 다양한 형식이 인정 되어야 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혹 메탈리카라는 구룹 아세요. 제가 한때 좋아했던 메탈 구룹인데 거기 리더인 보컬 제임스 핫필드가 이번에 물리학 박사 학위를 땃다고 하더라구요. 전문이 양자역학인지 어느 분야인지 모르겠지만 메탈 구룹이라고 딴다라라고 배척하지 않고 박사 학위 딸 정도로 밀어준 물리학계 사람들이 대단하더라구요. 참고로 메탈리카 한 해 수입이 왠만한 중소기업 저리 가라입니다. 수백억 할 겁니다. 그런 사람이 다른 분야에 도전해서 학위 딸 정도면, 우리도 이석원이든 딴다라든 그 누구라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모든 경계를 무너뜨리고 장르의 벽을 넘어 고급/ 저급의 가치를 없애야 많은 이야기들이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stella.K 2016-07-19 12:57   좋아요 0 | URL
와우, 기억님은 참 젊게 사시네요.
메탈리카는 들어보긴 했는데 팝송을 안 들은지가 하도 오래돼나서
가물가물하네요. 그런데 리더가 물리학 박사를 땃다니 대단하네요.
사실 이석원이 대중적이기도 하고, 글 역시 대중적이기도 해요.
싫어하는 사람은 싫어하겠지만 공감의 글은 정지돈 보다 훨씬 잘
쓸 수 있다고 보고봐요.
정지돈은 문학판 꼰대들이나 좋아하겠죠.
우리나라는 아직도 시야가 넓지가 못해요.ㅠ

yureka01 2016-07-18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옳소..!~~
소설이면 어떻고 비소설이면 어떻습니까.

젊은 친구들이 시쳇말로 그러더군요.
취존하십니다.이렇게 ^^.

stella.K 2016-07-19 12:58   좋아요 1 | URL
헉, 취존이 뭐죠?ㅠ

yureka01 2016-07-19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취향 존중이라고 하더군요..~ㅋ

stella.K 2016-07-19 14:39   좋아요 1 | URL
아하!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알 것을...ㅎㅎㅎ

전 이번에 정지돈의 작품을 보면서
우리나라 문학계의 쓸데없는 권위의식에 배가 꼴리더군요.
대중과 소통하고 더 존중받는 문학판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ㅋ

수이 2016-07-20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공감 3000퍼_입니다.

stella.K 2016-07-20 13:58   좋아요 1 | URL
와우, 300도 아니고 3000퍼요?
고맙습니다.^^

syo 2016-07-26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책 읽고 쓴 제 글이 부끄러웁네요;;
전 이 책속의 글들이 당연히 소설임을 전제로 깔고 생각하고서는 스스로 나는 참 소설장르를 수용하는 폭이 넓구만, 그러고 오만하는 중이었는데, 오히려 제가 좁게 보고 있었네요ㅎㅎ

stella.K 2016-07-26 16:16   좋아요 0 | URL
아유, 그 무슨 말씀을...
생각하는 바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습니다.
자책하지 마시길...^^
 

Q1. 언제, 어디서 책 읽는 걸 좋아하십니까?

 

오전과 저녁 때. 항상 그런 건 아니고, 어떤 땐 오전에만 읽거나 저녁에만 읽게 될 때도 있다. 오전에 책을 읽게될 경우는 책상에서 읽게되고, 저녁에 읽을 경우는 눕거나 바닥에 앉아서 읽게 된다.  그건 날씨가 추워지면 그렇게 되고, 날씨가 더워질수록 책상에서 읽는 것을 선호하게 된다.

 

 

Q2. 독서 습관이 궁금합니다. 종이책을 읽으시나요? 전자책을 읽으시나요? 읽으면서 메모를 하거나 책을 접거나 하시나요?

 

당연히 종이책으로 읽는다. 전자책은 시도는 안 해 봤지만 최근 눈이 많이 안 좋아졌다. 눈이 쉬 피로할 것 같아 꿈도 꾸지 않는다. 주변의 반응도 신통치 않고. 책은 역시 종이책이다. 

 

최근 독서대를 구입해 사용하고 있는데 확실히 좋은 것 같다. 진작 쓰지 못한 게 후회될 정도다. 메모는 잘 안하는 편이고, 주로 줄을 긋고 중요한 페이지는 접기도 한다. 줄 긋기는 몇년 전부터 연필이나 샤프를 이용하고 있다. 가끔 책을 정리해 어딘가 보내는 일을 하고 있는데, 줄 거진 책 다른 사람이 읽으면 좀 덜 부담 가라고 그렇게 하고 있다. 나만의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책장 접기 안 하려고 얼마 전부터 포스트 잇 플래그를 샀다. 하지만 두고도 잘 안 쓰게 되더라. 역시 습관이 무서운 것 같다.       

 

   

Q3. 지금 침대 머리 맡에는 어떤 책이 놓여 있나요?

참고로 난 침대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 질문은 요즘 무슨 책을 읽고 있냐고 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만일 그렇게 묻는 것이라면 난 현재, <단테의 지옥 여행기>와 <카뮈로부터 온 편지>를 조금씩 읽고 있다.

 

<단테의 지옥여행기>는 사실 모처에서 이벤트 책으로 받은 책인데, 그 어렵다는 단테의 신곡을 소설로 썼다고 해서 읽어 보고 싶었다. 난 고전 알레르기가 있어 이렇게 누가 다른 버전으로 썼다고 하면 일단 관심이 간다. 근데 막상 읽어 보니 꽤 괜찮다는 느낌이다. 왜 그동안 신곡을 무조건 어렵다고만 생각했던 걸까, 나중에 제대로 읽어보고 싶어졌다. 

 

<카뮈로부터 온 편지>는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얼마 전, 카뮈의 '이방인'의 번역을 두고 인터넷상에서 설전이 벌어졌었다. 그 일의 연장선장에 있는 책이라 구입해 읽고 있다. 그 논쟁은 나름 일단락 됐다고 생각했는데, 작가는 그렇지가 않은가 보다. 난 일단 작가의 이런 자세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고집스러움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뭔가 꼭 해야할 말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도 읽혀져 읽어보고 있는 중이다.    

 

 

Q4. 개인 서재의 책들은 어떤 방식으로 배열해두시나요? 모든 책을 다 갖고 계시는 편인가요, 간소하게 줄이려고 애쓰는 편인가요?

나는 서재를 가지고 있지 않아 특별한 배열 방식 같은 건 없다. 조금의 빈 공간만 있어도 어디든 쑤셔넣고 싶은 심정이다. 그래도 정말로 좋다고 생각하는 책은 가까이 두고 싶어 책상에 세워두고 눕혀두고 난리낫다.

 

책은 간소하게 줄여려고 한다. 물론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요즘은 한 번 읽고 다시 안 읽을 책은 기증하거나 중고서점에 팔려고 노력하고 있다. 수필가 피천득 선생이 평생 백 권인가 이 백권 정도의 책만 가지고 사셨다는 데 새겨 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Q5.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책은 무엇입니까?

 

빨간 머리 앤.


Q6. 당신 책장에 있는 책들 가운데 우리가 보면 놀랄 만한 책은 무엇일까요?

 

르 클레지오의 소설<혁명> 사인본. 그가 잠시 우리나라에 교환 교수로 와 있을 때 작가와의 만남에 간 적이 있다. 그런 데 가면 갈 때는 그냥 강연만 듣고 와야지 하다가도 막상 가면 꼭 그 작가의 책을 사는 나를 발견한다. 그날도 애초에 그의 소설을 살 생각이 없었는데 너무 멋있어서 안 살 수가 없었다. 가까이서 그의 멋진 모습을 눈에 담으려고 사인을 받았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그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자랑할만 하지 않는가?  

 

Q7. 고인이 되거나 살아 있는 작가들 중 누구라도 만날 수 있다면 누구를 만나고 싶습니까? 만나면 무엇을 알고 싶습니까?

 

글쎄... 별로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헤밍웨이...?  헤밍웨이는 모든 사람의 우상이기도 하지만 특별히 여성 독자들에겐 너무 멋있지 않나? 수염 난 사람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의 수염은 웬지 멋있다는 느낌이다. 그와 꼭 하루 애인으로 지내 보고 싶다.   

 

Q8. 늘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읽지 못한 책이 있습니까?

토마스 만의 <요셉과 그 형제들>, 강원용 목사의 <역사의 언덕에서>.

토마스 만을 읽는다는 건 확실히 마의 산인 것 같다. 무려 7권이고 난 그중 4권까지 읽었다. 완독을 해야하는 데 못하고 있다. 읽으면 좋긴 한데 왜 못 읽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책이야 말로 꿀노잼이다.

 

강원용 목사의 책도 절판된 걸 중고로 어렵지 않게 전권을 다 구입했다. 그런데 2권까지만 읽고 손도 못되고 있다. 하긴 뭐 그런 책이 그것 뿐인가? 너무 많아 일일이 헤아리기가 어려울 지경이다.ㅠ

 

 

Q9. 최근에 끝내지 못하고 내려놓은 책이 있다면요? 

 

<내 심장을 쏴라>. 두껍기도 하고, 읽으면서 우울했다. 미국 특유의 퇴폐적인 느낌도 좀 안 맞았고.  나름 대단한 책이라는 건 알겠는데...

 

 

Q10. 무인도에 세 권의 책만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가져가시겠습니까?

 

성경, 요셉과 그 형제들, 로마제국 쇠망사.

새삼 설명이 필요 있을까? 성경은 단행본이지만, 뒤의 두 권은 세트다. 무인도 가면 할 일도 없고,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데 그런 두꺼운 책 한 번은 떼고 나와야 하지 않을까?

특별히 로마제국 쇠망사는, 오래 전에 로마사를 공부해 보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이런 황금 같은 기회가 아니면 언제 읽어 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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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4-28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밍웨이가 마초라던데, 괜찮겠어요? ㅎㅎㅎ

stella.K 2016-04-29 12:39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딱 하루만 애인하겠다는 거 아니니.ㅎㅎㅎ

책한엄마 2016-04-28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빨간머리앤^^

stella.K 2016-04-29 12:41   좋아요 1 | URL
어린 여자 아이들에겐 로망이죠!ㅋㅋ

blanca 2016-04-28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르 클레지오라니, 정말 부럽네요. 그것도 노벨 문학상 받기 전에..<마의 산>이 그렇게나 길었군요. 저는 시작도 못하겠습니다.

stella.K 2016-04-29 12:44   좋아요 0 | URL
르 클레지오 사인본은 예전에 한번 올린 적 있었는데
그때 브랑카님 못 보셨나 봐요.
그런데 이걸 자랑할 사람이 없어요.ㅠㅋㅋ

아뇨. 토마스 만 자체가 마의 산. 저에겐 도달할 수 없는 산이라는 거죠.ㅠ

곰곰생각하는발 2016-04-28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트는 반칙임 -_-

stella.K 2016-04-29 12:46   좋아요 0 | URL
왜요, 어쨌든 3종이잖아요.
그럼 무인도 가게 생겼는데 단행본으로만 가져가는 게
바보 아닌가요?푸하하~

yamoo 2016-05-01 23:40   좋아요 0 | URL
ㅋㅋㅋ

표맥(漂麥) 2016-04-28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Q4. 의 답변은 저와 너무나 일치...^^

stella.K 2016-04-29 12:46   좋아요 1 | URL
헉, 정말요?
그럼표맥님과 저는 평행이론...?!ㅋㅋㅋㅋㅋㅋ

페크pek0501 2016-04-29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천득 선생님은 백 권이나 이백 권... 그렇군요.
저도 천 권을 읽고 나서 그중 애독서 50권만 뽑아 놓고 노년에 반복해 읽는 계획을 세워 놓은 적 있어요. 반복해 읽어서 그 다음 페이지에 뭐가 나오는지 훤히 알 정도로 정독하는 것이죠.
지금도 아끼는 책은 보고 또 보고 그래요. 아무데나 펼쳐서 말이죠. 그래서 머리맡에 있죠.

독서대를 사용하시는군요...

드디어 쓰셨구나, 그러면서 잘 읽고 갑니다.(왜 10문답 페이퍼를 쓰지 않는지, 생각했어요.)ㅋ

stella.K 2016-04-29 16:57   좋아요 0 | URL
그게 정확히 기억이 안 나요. 이백 권 같기도 하고.
아무튼 오래 전에 그 사실을 알고 충격 먹었죠.
정말 단아, 단출 그 자체셨던 것 같아요. 피천득 선생은.

언니도 독서대 함 사용해 보세요. 훨씬 피로가 덜하더라구요.

제가 그동안 좀 바빴어요. 그리고 여기저기서 막 올리니까
좀 천천히 올리고 싶기도 했구요.^^

yamoo 2016-05-01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개의 질문에 답한 스텔라 님의 글을 읽고 든 2가지 생각..

아, 스텔라 님은 침대 생활을 하지 않으시구나...라는 거..침대가 없으면 이불을 꺼내 펴고 게서 장롱에 넣는 게 무지 귀찮더라구요~

어릴 때 빨강머리 앤을 좋아하셨군요! 학부 때 애니에 빠져 살 때 빵강머리 앤의 전편을 보고 정말 큰 감동을 받았더랬죠. 명작이라는 걸 20살 넘어서 알았습니다. 플란다스의 개와 함께요..ㅎㅎ 어렸을 땐 아무 생각 없이 봤거든요~ 그냥 마징가z 류만 좋아했던 거 같습니다..ㅎㅎ

그리고 독서대라...
전 독서대를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만...독서대는 수험생활이 떠올라서뤼..--;;

stella.K 2016-05-02 14:30   좋아요 0 | URL
이렇게도 저를 유심히 지켜봐 주시는 분이 계시다니
새삼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ㅋㅋ
사실 저는 방이 좁아 침대를 들여놓을 수가 없어요.
안 그러면 책을 빼야할 텐데 자식 같은 책(?)을 어디다 둔단 말입니까...ㅠㅠ
그리고 침대가 먼지가 많고 관리 잘 못하면 진드기도 많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지금 보다 더 다이들면 침대들여놓게 될지도 몰라요.
울엄마 보니까 그렇더라구요.ㅋ

빨랑머리 앤은 어렸을 때 책으로 읽었는데 아동용 문고 1권짜리로 읽었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 알라딘 검생해 보니까 9권인가 그렇던데.
그렇게 생각하면 전 읽은 것도 아닐 겁니다.
그러다 몇년 전 ebs에서 영화로 보여주던데. 정말 재밌게 봤어요.
애니로도 본 기억이 나긴 나는데 끝까지 다 봤는지 기억에 없네요.

수험생활을 아주 혹독하게 하셨나 봅니다. 전 독서대 너무 사랑해요.^^
 

 

어제 아주 오랜만에 모임을 갖는데 알라딘에서 휴대폰 문자가 날아왔다. 책광고 문자. 이런 건 알라딘 말고도 타 인터넷 서점에서도 오는데 별로 반갑지 않은 문자이긴 하다. 그렇다고 스팸으로 돌릴 수도 없고...

 

그래도 어젠 모처럼 관심있어 하는 작가의 책광고다. 하루키가 책을 냈다는.

 

솔직히 하루키를 그다지 많이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워낙 유명한 작가니 그가 무슨 책을 냈는지에 관해서는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라. 이 정도의 사람이라면 당연 소설가도 직업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설가가 어디 직업인가? 명예직이지.

 

하루키에 관해서는 그동안 여기저기 인터뷰 해 놓은 글을 읽어 본지라 이책이 얼마나 새로울지 미지수이긴 하다. 하긴 뭐 새로워서 읽겠는가? 관심 때문에 읽는 거지. 이책은 특별히 그의 소설 창작에 관한 글을 쓴 것 같은데 그동안 30년 넘은 창작에도 불구하고 밝히지 않은 창작에 관한 걸 이책에 썼다나 뭐라나... 특별히 자전 에세이란다. 언제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관심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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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4-05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 작가인데 그 성실함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군요.. 부지런하신 분입니다..

stella.K 2016-04-05 18:32   좋아요 0 | URL
ㅎㅎ 곰발님과 제가 통하는 것도 있네요. 하루키 안 좋아하는 거.ㅋㅋ
그러게 말예요. 그런 작가들 있지 않나요?
하긴 부지런하지 않은 작가가 어딨겠습니까?
쓰는 거에 비해 돈 못 벌고 알아주지 않아서 그렇지...ㅠ

cyrus 2016-04-05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광고 문자 안 오도록 설정하는 게 있을 걸요. 관심 있는 작가의 신간도서 출간 소식 설정 해제하면 문자 안 올 겁니다.

stella.K 2016-04-05 19:12   좋아요 0 | URL
아, 그런 게 있었지? 정말 해야겠어.

yamoo 2016-04-05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2년을 마지막으로 하루키 책을 전부 처분하고, 하루키는 더이상 읽지 않고 있습니다. 근데 진짜 하루키는 책을 계속 내는군요~ㅎ 하루키 좋아하는 분들은 계속 사재기 해야 할 듯합니다..ㅎ

stella.K 2016-04-06 10:49   좋아요 0 | URL
저도 언제 읽고 안 읽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작 소설은 안 읽고 이렇게 그 사람에 관한 책이거나 본인이 자신의 글에
대해 쓴 책은 아직 관심이 많으니 이 책도 끌리더군요.
그의 초기작은 아직도 안 읽은 게 많은데 전 그나마 초기작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페크pek0501 2016-04-06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봐도 관심이 가네요. 하지만 이제 하루키 책은 그만 사려고 합니다.
명성으로 인해 현혹되지 않으려고 결심...

하지만 이 책에 대한 리뷰는 읽어 볼 것 같은 예감이...

stella.K 2016-04-06 14:39   좋아요 0 | URL
ㅎㅎ 제가 예전에 하루키 스타일이란 책을 리뷰하면서
이 사람이 자서전을 내지 않을까 했는데 자전 에세이를 냈네요.
제가 혹시 이 책 읽고 리뷰 쓰게 되면 꼭 읽어 주셔야 해요!ㅋㅋ

2016-04-08 16: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6-04-08 17:35   좋아요 1 | URL
모르셨나요? 그거 꽤 오래된 얘긴데...
아마 마라톤에 대해 책도 썼을 걸요?^^
 

  작년 말부터 월경주기가 바뀌었다. 그동안은 거의 주기에 맞춰 나오더니, 한 달 반 거의 두 달만에 하고 그 양도 다소 줄었다. 곧 폐경, 아니 완경이 되려나 보다.
   그렇지 않아도 그렇게 되기 바로 얼마 전, 동갑내기 아는 지인과 대화를 하다 무슨 말끝에 "아직 월경하죠?"란 물음에,
  "그러게 말이에요. 아직도 따박따박 잘 나오고 있어요."라며 난 다소 귀찮은 듯 말했었다.
   그러자 그 지인은, "그럼 좋은 거죠. 좋은 거예요."라며 위로 반, 부러움 반했다.
   하지만 월경 자체가 좋고 부럽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매달 피를 보는 것이 뭐 그리 좋은 일이겠는가? 그저 월경이 끊어진다는 건 갱년기를 걱정해야 한다는 것이고, 또 어쩔 수 없이 노화를 걱정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걸 생각하면 아직도 (그 지겨운)월경을 하고 있는 것이 상대적으로 좋아 보이는 것일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말하고 당장 그다음 달 월경이 주기 보다 한참 늦게 시작되었으니 입이 방정이란 생각도 들었고, 이제 정말 나도 늙는 건가 조금은 겁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월경이 폐경 보다 좋다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나의 몸의 노화는 월경과 상관없이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을 것이고, 사람들 저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몸이 비틀리는 생리통도 겪어 봤다. 여름이면 더워 죽겠는데 샤워도 신경 쓰인다. 여름이면 더위 피해 피서도 간다는데 월경은 그럴 줄도 모르는 것이다.
  그런 월경을 이제 겨우 마치게 되었는데, 매스컴은 또 월경을 마친 여성들에게 얼마나 잔인한가? TV는 의사의 입을 빌려 폐경기 여성의 몸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온갖 악재를 자세히 설명하며 그에 좋은 여러 가지 좋은 약과 식품들을 먹으라고 부추긴다.
  그에 따라 난 얼마 전부터 이미 갱년기를 지났거나 시작된 사람들에게 그 증상에 대해 물어보는 버릇이 생겼다. 원래 매스컴이란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서 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 믿을 것은 못되고, 주위 사람들의 말을 참조하는 것이 그나마 믿을만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묻고 다니니 그도 참 여자의 일생이다 싶다.
  10대 시절 처음으로 초경을 경험하고 경쟁하듯 누가 누가 월경을 늦게 시작 하나를 묻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너 월경하니?" 물어 아직 안 한다고 말하는 아이가 있으면 얼마나 부럽던지(물론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다 믿을 건 아니겠지만). 그런데 그 부러움은 잠깐이고 한다고 말하는 아이가 있으면 이내 안도하는 마음이 된다. 나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동질감 내지는 한편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덧 세월이 흘러 또래 여자들에게 폐경과 갱년기 증상에 대해 묻고 다니고 있으니.
  그런데 묘한 건, 갱년기가 어떠냐는 질문은 엄마한테만큼은 할 수가 없다. 그것은 나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나와 비슷한 또래 여성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네 엄마들은 하나같이 "갱년기가 어딨어, 갱년기가."하면서 손사래를 친다. 다 사느라 바빠 그런 게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갔다는 것이다. 거기엔 그것도 살기 좋은 시대 (하릴없는) 여자의 투정이거나 매스컴의 지나친 과장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엄마하고는 갱년기 가지고 할 말이 없는 것이다. 딸과 엄마는 같은 여성이니 서로 통하는 것도 많은데 이것만큼은 세대 단절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하지만 우리네 엄마들이 기억을 못하고 계셔서 그렇지 분명 이렇게 저렇게 갱년기 증상을 겪었으리란 게 나의 추측이다.
  예를 들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활기에 넘친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게 엄마의 성격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사람 볼 줄 아는 눈이 아직 트이지 못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늘 허리가 아파 어린 동생에게 올라가 허리를 밟으라고 했고,  그게 아니더라도 꽤 오랫동안 육체 여기저기가 아프다고 호소하는 것을 보고 자라왔다. 그즈음 어느 지점에 갱년기 증상도 있지 않았을까? 
  어쨌든 그러다 엄마는 오히려 노년에 이르러 건강하고 활기차게 사시는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고 갱년기 장애를 기억하지 못하시는 건 아닌지. 내가 이 얘기를 하면 당신은 내가 언제 그랬냐며 펄쩍 뛰며 요즘 여성들의 갱년기 증상을 쉬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또 엄마 말이 맞는 것이, 분명 난 엄마가 건강하지 못한 걸 보고 자랐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고 엄마가 늘 자리 보존하고 병원을 제집 드나들듯했느냐면 그런 건 아니다. 엄마는 평상시 가정 주부로서의 본분에 충실했다. 그러니까 할 일 다하고 남는 시간에 여기저기 아프다고 하셨던 셈이다. 그러니 딱히 정말 엄마가 무슨 병이 있었다고도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대신 엄마는 월경이 끝나고 나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하셨다. 그것은 또 모든 여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제목에 폐경 대신 '완경(完經)'이란 단어를 썼는데, 사실 이 단어는 국어사전이나 한자 사전엔 없는 말이다. 한자 사전에 음가가 같은 단어가 있긴 하지만  '월경을 다 마치다'의 뜻으로서는 쓰이지 않는다. 또한 이 단어는 내가 처음으로 쓰는 말은 아니다.  

  사실 월경이 끝난 것을 폐경이라고 하지만, 태곳적부터 세상 돌아가는 판이 남성 중심이고 보면 이 단어도 남성이 붙인 여성 비하적 단어는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니까 남자들은 월경이 끝나버린 여자를 더 이상 여자로 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여자의 입장에선 월경을 무사히 완수했다는 의미에서 완경이 더 합당하지 않을까? 폐경이란 몸 어딘가가 기능을 다해 퇴화되고 닫혔다는 의미로도 다가오는데 그것처럼 잔인한 단어가 어딨겠는가?  
  더구나 몇 년 전,  어떤 의사가 TV에 나와, 여자는 원래 초경 외에 평생 월경을 안 해도 되도록 만들어졌다고 해서 충격을 먹었던 적이 있다. 그의 말인즉, 옛날에 여자는 초경 전후로 결혼을 해 임신하고 모유 수유하고, 그 모유 수유가 끝날 무렵 또 다시 임신을 해 똑같은 패턴으로 폐경까지 갔다는 것이다. 그런 것이 의학이 발달해 피임이나 중절 등 여자가 생명을 잉태하고 있을 때 보다 안하고 있을 때가 더 많고 그에 따라 월경도 길게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처음엔 월경 하나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과연 그렇겠구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게 얼마나 시대 착오적이며 배려 없이 하는 말인지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외침이 많았던 시절, 정절 하나 지키겠다고 신랑 얼굴도 보지 못하고 일찍 시집와 뱃속의 아이를 지켜내고 키운다는 게 쉬운 일이었을까? 그렇게 해서 정절은 지킬 수 있었을지 몰라도 대가는 혹독해  매서운 시집살이를 견디지 않으면 안 되는 여성의 흑역사가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쉽게 여자는 평생 월경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래놓고 폐경을 맞은 여자는 폐경을 맞은 여자대로 퇴물 취급을 하거나, 건강에 위험할 수 있다고 자주 겁을 주곤 한다. 그러니 남성주의 매스컴이 여성에게 얼마나 잔인한가.
 
  월경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된 여성들은 하나같이 해방감을 느낀다고 한다. 나 역시 그것을 느끼기 시작했고.
  앞에서도 TV 같은 매스컴의 과도한 보도도 지적했지만, 모든 여성들이 심한 갱년기 증상을 호소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개중엔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특별히 몸이 예민하거나 약한 사람들. 그래서 난 겁이 나서 그렇다면 갱년기 증상에 좋다는 약을 미리 먹어줘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말을 들어보면 그것도 구체적인 증상이 있을 때 의사나 약사와 상담 후 먹는 거지 미리 먹을 필요는 없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 모처에서 신년회를 한다고 해서 참석했다 아는 지인을 만났는데, 헤어질 무렵 난 또 습관처럼 갱년기 증상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녀도 물론 갱년기 증상이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매스컴에서 떠들어 대는 것처럼 대단한 건 아니고, 마치 몸을 안 쓰다 쓰면 두들겨 맞은 것처럼 뻐근하고, 내 몸 같지 않다는 말을 하는데 그런 것이라고 했다. 그게 견딜 수 있을만한 정도라고. 그래서 그녀는 갱년기인 줄 아니까 기분 좀 나아지라고 시중 약국에서 파는 갱년기 약을 먹고 넘겼다고 했다.
  난 그녀의 말 가운데 '견딜만한'에 방점을 찍어 본다.  하긴, 생리통을 경험하지 않은 청춘이 어디 있던가? 그런대다 살면서 이런저런 아픔을 견디며 살아온 육체가 아닌가? 갱년기라고 특별히 다르겠는가? 살아가느라 겪어야 하는 과정이라면 그냥 겪도록 하자. 미리부터 겁먹지 말고.   
  지금도 그런 걸 하는지 모르겠다.
  예전엔 딸이 초경을 하면 의식 있는 부모는 이제 정말 여성이 되었다며 축하 파티를 열어준다고 한다. 물론 난 그런 거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의 부모님이 의식이 없으시다고 비판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난 솔직히 좀 내성적이라 그런지 그 시절 부모님이 실제로 그렇게 해 주셨다면 옷장에 숨어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냥 조용히 알아주신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그런데 혹시 그런 형식을 따지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완경 때도 그렇게 해 주시라. 여자로서 아무 탈 없이 아니 탈이 있으면 또 어떠랴, 무사히 완경까지 올 수 있다는 것도 축하받을 일 아닌가? 축하해 줄 사람이 없다면 자축이라도 해라.   
   폐경이 돼서 여자로서의 구실을 다했다고 우울해하기 보다, 완경이 되어서 이제부터 누릴 자유와 해방을 더 기뻐했으면 좋겠다.     
  

이 책은 여성들이 초경을 경험했을 때의 당황스러운 느낌을 솔직하게 쓴 다소 앙증맞은 책이다. 이런 책이 나와주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 전까지 여성의 월경에 대해 얼마나 부정적으로 다뤄왔던가? 특별히 <캐리> 같은 영화는. 물론 이런 책이 나왔다고 해서 또 얼마나 달라졌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이제 여자는 폐경을 통해 또 한 번의 수난을 맞지 않나 싶다. 월경을 하면 월경한다고 뭐라고 그러고, 폐경이 되면 폐경이 됐다고 뭐라고 그런다. 그럼 여자는 어떻게 살란 말이냐?

 

그래서 제안한다. 초경에 관한 솔직한 느낌을 얘기할 수 있는 거라면, 폐경 아니 완경에 대해서도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성들이여, 이제 완경을 이야기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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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5 15: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05 15: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2-05 15: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월경의 정치학>에서 본 내용인데요, 월경을 축하해주는 인사도 자칫 여자아이에게는 심적 부담을 줄 수 있다고 하더군요. 왜냐하면 여자아이들은 갑작스러운 신체적 변화에 많이 놀라요. 그런 상황에 주변 사람들이 “월경을 하는 것은 네가 여성이 되어간다는 증거야”라고 말하면 여자아이는 자신이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사실에 부담을 느껴요.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줄 수 있는 거죠. 저는 축하 인사보다는 제대로 된 월경 지식을 알려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생각보다 월경에 대한 지식을 잘못 아는 어른들이 많아요.

stella.K 2016-02-05 15:44   좋아요 1 | URL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런데 한때 그런 게 유행이었던 때가 있었다는 거지.
주로 미국에서 그랬던 모양인데
그게 우리나라에도 넘어 온 거 같은데 예전엔 그게 약간 부럽기도 했어.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도 부담은 아닐까 싶어.
하지만 완경은 여행이라도 다녀 올 수 있는 뭐 그런 특별한 의식이
있었으면 해.

cyrus 2016-02-05 15:56   좋아요 1 | URL
옛날에 청소년 드라마 <반올림>에서 주인공 옥림이가 초경하는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그때 옥림이가 고아라였었죠. 가족들이 옥림이 초경을 축하한다고 성대하게 파티를 여는 장면이 있었어요. 그 장면만 따로 편집되어서 네티즌들이 가장 민망해하는 장면으로 소개된 적이 있었어요. 아무래도 문화적 차이가 크죠. 외국에는 월경 파티를 소소하게 즐길 수 있는 거로 생각하는데, 우리나라는 그게 아니잖아요.


stella.K 2016-02-05 18:14   좋아요 1 | URL
ㅎㅎ 하여튼 우리나라 따라하기도 잘하지만
그게 가끔 도가 지나칠 때가 있어.
그런데 그 드라마 난 안 봤지만 일부러 비꼬기 위해서
그런 건 아니었을까?
하긴 그게 아니어도 몇년 지나 보면 또 다른 이해와
가치관으로 볼 수 있으니 우습기도 했을 거야.
그런데 소소하게는 해 줘도 좋긴 할 것 같아.
요즘엔 초등학교 3,4학년이면 한다는데 얼마나 마음이 그렇겠어?

곰곰생각하는발 2016-02-05 16: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 님 글이 다른 글보다 뛰어난 점은 솔직하다는 점과 그것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일 겁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글재주고 지식이고 나발이고... 제1덕목은 솔직함입니다..

stella.K 2016-02-05 18:17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쓰면 뭐합니까?
알라딘이고 나발이고 알아주지도 않아 당선작엔 번번이 미끄덩인 것을...ㅠ
그래도 뭐 곰발님만 알아주시면 되옵니다. 흐흑~ㅋㅋ

yamoo 2016-02-16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글을 지금에야 보다뉘..@_@

담달 이달의 당선작에 이 글이 있을 것입니다~ 이 댓글이 성지가 될 것입니당~~~~ㅎ

당선이 안된다?! 그건 평가단이 보는 눈이 없기 때문일 겁니다!

stella.K 2016-02-16 11:5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이미 끝난 걸로 아는데요.
심사대상 날짜가 당월에서 다음 달 9일까진가 그럴 걸요?
제가 쓴 날은 2월5일자구요.

그러니까요. 이렇게 열심히 썼는데도 안 되더란 말이죠.
그러니까 알라딘 이달의 당선작 문제 있는 거 맞죠?ㅠㅠㅠㅠ

2016-02-16 14: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6 19: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6 2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8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