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부터 월경주기가 바뀌었다. 그동안은 거의 주기에 맞춰 나오더니, 한 달 반 거의 두 달만에 하고 그 양도 다소 줄었다. 곧 폐경, 아니 완경이 되려나 보다.
   그렇지 않아도 그렇게 되기 바로 얼마 전, 동갑내기 아는 지인과 대화를 하다 무슨 말끝에 "아직 월경하죠?"란 물음에,
  "그러게 말이에요. 아직도 따박따박 잘 나오고 있어요."라며 난 다소 귀찮은 듯 말했었다.
   그러자 그 지인은, "그럼 좋은 거죠. 좋은 거예요."라며 위로 반, 부러움 반했다.
   하지만 월경 자체가 좋고 부럽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매달 피를 보는 것이 뭐 그리 좋은 일이겠는가? 그저 월경이 끊어진다는 건 갱년기를 걱정해야 한다는 것이고, 또 어쩔 수 없이 노화를 걱정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걸 생각하면 아직도 (그 지겨운)월경을 하고 있는 것이 상대적으로 좋아 보이는 것일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말하고 당장 그다음 달 월경이 주기 보다 한참 늦게 시작되었으니 입이 방정이란 생각도 들었고, 이제 정말 나도 늙는 건가 조금은 겁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월경이 폐경 보다 좋다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나의 몸의 노화는 월경과 상관없이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을 것이고, 사람들 저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몸이 비틀리는 생리통도 겪어 봤다. 여름이면 더워 죽겠는데 샤워도 신경 쓰인다. 여름이면 더위 피해 피서도 간다는데 월경은 그럴 줄도 모르는 것이다.
  그런 월경을 이제 겨우 마치게 되었는데, 매스컴은 또 월경을 마친 여성들에게 얼마나 잔인한가? TV는 의사의 입을 빌려 폐경기 여성의 몸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온갖 악재를 자세히 설명하며 그에 좋은 여러 가지 좋은 약과 식품들을 먹으라고 부추긴다.
  그에 따라 난 얼마 전부터 이미 갱년기를 지났거나 시작된 사람들에게 그 증상에 대해 물어보는 버릇이 생겼다. 원래 매스컴이란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서 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 믿을 것은 못되고, 주위 사람들의 말을 참조하는 것이 그나마 믿을만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묻고 다니니 그도 참 여자의 일생이다 싶다.
  10대 시절 처음으로 초경을 경험하고 경쟁하듯 누가 누가 월경을 늦게 시작 하나를 묻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너 월경하니?" 물어 아직 안 한다고 말하는 아이가 있으면 얼마나 부럽던지(물론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다 믿을 건 아니겠지만). 그런데 그 부러움은 잠깐이고 한다고 말하는 아이가 있으면 이내 안도하는 마음이 된다. 나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동질감 내지는 한편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덧 세월이 흘러 또래 여자들에게 폐경과 갱년기 증상에 대해 묻고 다니고 있으니.
  그런데 묘한 건, 갱년기가 어떠냐는 질문은 엄마한테만큼은 할 수가 없다. 그것은 나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나와 비슷한 또래 여성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네 엄마들은 하나같이 "갱년기가 어딨어, 갱년기가."하면서 손사래를 친다. 다 사느라 바빠 그런 게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갔다는 것이다. 거기엔 그것도 살기 좋은 시대 (하릴없는) 여자의 투정이거나 매스컴의 지나친 과장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엄마하고는 갱년기 가지고 할 말이 없는 것이다. 딸과 엄마는 같은 여성이니 서로 통하는 것도 많은데 이것만큼은 세대 단절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하지만 우리네 엄마들이 기억을 못하고 계셔서 그렇지 분명 이렇게 저렇게 갱년기 증상을 겪었으리란 게 나의 추측이다.
  예를 들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활기에 넘친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게 엄마의 성격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사람 볼 줄 아는 눈이 아직 트이지 못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늘 허리가 아파 어린 동생에게 올라가 허리를 밟으라고 했고,  그게 아니더라도 꽤 오랫동안 육체 여기저기가 아프다고 호소하는 것을 보고 자라왔다. 그즈음 어느 지점에 갱년기 증상도 있지 않았을까? 
  어쨌든 그러다 엄마는 오히려 노년에 이르러 건강하고 활기차게 사시는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고 갱년기 장애를 기억하지 못하시는 건 아닌지. 내가 이 얘기를 하면 당신은 내가 언제 그랬냐며 펄쩍 뛰며 요즘 여성들의 갱년기 증상을 쉬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또 엄마 말이 맞는 것이, 분명 난 엄마가 건강하지 못한 걸 보고 자랐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고 엄마가 늘 자리 보존하고 병원을 제집 드나들듯했느냐면 그런 건 아니다. 엄마는 평상시 가정 주부로서의 본분에 충실했다. 그러니까 할 일 다하고 남는 시간에 여기저기 아프다고 하셨던 셈이다. 그러니 딱히 정말 엄마가 무슨 병이 있었다고도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대신 엄마는 월경이 끝나고 나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하셨다. 그것은 또 모든 여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제목에 폐경 대신 '완경(完經)'이란 단어를 썼는데, 사실 이 단어는 국어사전이나 한자 사전엔 없는 말이다. 한자 사전에 음가가 같은 단어가 있긴 하지만  '월경을 다 마치다'의 뜻으로서는 쓰이지 않는다. 또한 이 단어는 내가 처음으로 쓰는 말은 아니다.  

  사실 월경이 끝난 것을 폐경이라고 하지만, 태곳적부터 세상 돌아가는 판이 남성 중심이고 보면 이 단어도 남성이 붙인 여성 비하적 단어는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니까 남자들은 월경이 끝나버린 여자를 더 이상 여자로 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여자의 입장에선 월경을 무사히 완수했다는 의미에서 완경이 더 합당하지 않을까? 폐경이란 몸 어딘가가 기능을 다해 퇴화되고 닫혔다는 의미로도 다가오는데 그것처럼 잔인한 단어가 어딨겠는가?  
  더구나 몇 년 전,  어떤 의사가 TV에 나와, 여자는 원래 초경 외에 평생 월경을 안 해도 되도록 만들어졌다고 해서 충격을 먹었던 적이 있다. 그의 말인즉, 옛날에 여자는 초경 전후로 결혼을 해 임신하고 모유 수유하고, 그 모유 수유가 끝날 무렵 또 다시 임신을 해 똑같은 패턴으로 폐경까지 갔다는 것이다. 그런 것이 의학이 발달해 피임이나 중절 등 여자가 생명을 잉태하고 있을 때 보다 안하고 있을 때가 더 많고 그에 따라 월경도 길게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처음엔 월경 하나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과연 그렇겠구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게 얼마나 시대 착오적이며 배려 없이 하는 말인지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외침이 많았던 시절, 정절 하나 지키겠다고 신랑 얼굴도 보지 못하고 일찍 시집와 뱃속의 아이를 지켜내고 키운다는 게 쉬운 일이었을까? 그렇게 해서 정절은 지킬 수 있었을지 몰라도 대가는 혹독해  매서운 시집살이를 견디지 않으면 안 되는 여성의 흑역사가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쉽게 여자는 평생 월경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래놓고 폐경을 맞은 여자는 폐경을 맞은 여자대로 퇴물 취급을 하거나, 건강에 위험할 수 있다고 자주 겁을 주곤 한다. 그러니 남성주의 매스컴이 여성에게 얼마나 잔인한가.
 
  월경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된 여성들은 하나같이 해방감을 느낀다고 한다. 나 역시 그것을 느끼기 시작했고.
  앞에서도 TV 같은 매스컴의 과도한 보도도 지적했지만, 모든 여성들이 심한 갱년기 증상을 호소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개중엔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특별히 몸이 예민하거나 약한 사람들. 그래서 난 겁이 나서 그렇다면 갱년기 증상에 좋다는 약을 미리 먹어줘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말을 들어보면 그것도 구체적인 증상이 있을 때 의사나 약사와 상담 후 먹는 거지 미리 먹을 필요는 없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 모처에서 신년회를 한다고 해서 참석했다 아는 지인을 만났는데, 헤어질 무렵 난 또 습관처럼 갱년기 증상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녀도 물론 갱년기 증상이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매스컴에서 떠들어 대는 것처럼 대단한 건 아니고, 마치 몸을 안 쓰다 쓰면 두들겨 맞은 것처럼 뻐근하고, 내 몸 같지 않다는 말을 하는데 그런 것이라고 했다. 그게 견딜 수 있을만한 정도라고. 그래서 그녀는 갱년기인 줄 아니까 기분 좀 나아지라고 시중 약국에서 파는 갱년기 약을 먹고 넘겼다고 했다.
  난 그녀의 말 가운데 '견딜만한'에 방점을 찍어 본다.  하긴, 생리통을 경험하지 않은 청춘이 어디 있던가? 그런대다 살면서 이런저런 아픔을 견디며 살아온 육체가 아닌가? 갱년기라고 특별히 다르겠는가? 살아가느라 겪어야 하는 과정이라면 그냥 겪도록 하자. 미리부터 겁먹지 말고.   
  지금도 그런 걸 하는지 모르겠다.
  예전엔 딸이 초경을 하면 의식 있는 부모는 이제 정말 여성이 되었다며 축하 파티를 열어준다고 한다. 물론 난 그런 거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의 부모님이 의식이 없으시다고 비판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난 솔직히 좀 내성적이라 그런지 그 시절 부모님이 실제로 그렇게 해 주셨다면 옷장에 숨어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냥 조용히 알아주신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그런데 혹시 그런 형식을 따지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완경 때도 그렇게 해 주시라. 여자로서 아무 탈 없이 아니 탈이 있으면 또 어떠랴, 무사히 완경까지 올 수 있다는 것도 축하받을 일 아닌가? 축하해 줄 사람이 없다면 자축이라도 해라.   
   폐경이 돼서 여자로서의 구실을 다했다고 우울해하기 보다, 완경이 되어서 이제부터 누릴 자유와 해방을 더 기뻐했으면 좋겠다.     
  

이 책은 여성들이 초경을 경험했을 때의 당황스러운 느낌을 솔직하게 쓴 다소 앙증맞은 책이다. 이런 책이 나와주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 전까지 여성의 월경에 대해 얼마나 부정적으로 다뤄왔던가? 특별히 <캐리> 같은 영화는. 물론 이런 책이 나왔다고 해서 또 얼마나 달라졌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이제 여자는 폐경을 통해 또 한 번의 수난을 맞지 않나 싶다. 월경을 하면 월경한다고 뭐라고 그러고, 폐경이 되면 폐경이 됐다고 뭐라고 그런다. 그럼 여자는 어떻게 살란 말이냐?

 

그래서 제안한다. 초경에 관한 솔직한 느낌을 얘기할 수 있는 거라면, 폐경 아니 완경에 대해서도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성들이여, 이제 완경을 이야기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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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5 15: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05 15: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2-05 15: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월경의 정치학>에서 본 내용인데요, 월경을 축하해주는 인사도 자칫 여자아이에게는 심적 부담을 줄 수 있다고 하더군요. 왜냐하면 여자아이들은 갑작스러운 신체적 변화에 많이 놀라요. 그런 상황에 주변 사람들이 “월경을 하는 것은 네가 여성이 되어간다는 증거야”라고 말하면 여자아이는 자신이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사실에 부담을 느껴요.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줄 수 있는 거죠. 저는 축하 인사보다는 제대로 된 월경 지식을 알려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생각보다 월경에 대한 지식을 잘못 아는 어른들이 많아요.

stella.K 2016-02-05 15:44   좋아요 1 | URL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런데 한때 그런 게 유행이었던 때가 있었다는 거지.
주로 미국에서 그랬던 모양인데
그게 우리나라에도 넘어 온 거 같은데 예전엔 그게 약간 부럽기도 했어.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도 부담은 아닐까 싶어.
하지만 완경은 여행이라도 다녀 올 수 있는 뭐 그런 특별한 의식이
있었으면 해.

cyrus 2016-02-05 15:56   좋아요 1 | URL
옛날에 청소년 드라마 <반올림>에서 주인공 옥림이가 초경하는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그때 옥림이가 고아라였었죠. 가족들이 옥림이 초경을 축하한다고 성대하게 파티를 여는 장면이 있었어요. 그 장면만 따로 편집되어서 네티즌들이 가장 민망해하는 장면으로 소개된 적이 있었어요. 아무래도 문화적 차이가 크죠. 외국에는 월경 파티를 소소하게 즐길 수 있는 거로 생각하는데, 우리나라는 그게 아니잖아요.


stella.K 2016-02-05 18:14   좋아요 1 | URL
ㅎㅎ 하여튼 우리나라 따라하기도 잘하지만
그게 가끔 도가 지나칠 때가 있어.
그런데 그 드라마 난 안 봤지만 일부러 비꼬기 위해서
그런 건 아니었을까?
하긴 그게 아니어도 몇년 지나 보면 또 다른 이해와
가치관으로 볼 수 있으니 우습기도 했을 거야.
그런데 소소하게는 해 줘도 좋긴 할 것 같아.
요즘엔 초등학교 3,4학년이면 한다는데 얼마나 마음이 그렇겠어?

곰곰생각하는발 2016-02-05 16: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 님 글이 다른 글보다 뛰어난 점은 솔직하다는 점과 그것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일 겁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글재주고 지식이고 나발이고... 제1덕목은 솔직함입니다..

stella.K 2016-02-05 18:17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쓰면 뭐합니까?
알라딘이고 나발이고 알아주지도 않아 당선작엔 번번이 미끄덩인 것을...ㅠ
그래도 뭐 곰발님만 알아주시면 되옵니다. 흐흑~ㅋㅋ

yamoo 2016-02-16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글을 지금에야 보다뉘..@_@

담달 이달의 당선작에 이 글이 있을 것입니다~ 이 댓글이 성지가 될 것입니당~~~~ㅎ

당선이 안된다?! 그건 평가단이 보는 눈이 없기 때문일 겁니다!

stella.K 2016-02-16 11:5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이미 끝난 걸로 아는데요.
심사대상 날짜가 당월에서 다음 달 9일까진가 그럴 걸요?
제가 쓴 날은 2월5일자구요.

그러니까요. 이렇게 열심히 썼는데도 안 되더란 말이죠.
그러니까 알라딘 이달의 당선작 문제 있는 거 맞죠?ㅠㅠㅠㅠ

2016-02-16 14: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6 19: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6 2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8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