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정물화를 보는 것처럼 매 한 컷, 한 컷이 깔끔하다.
그것이 또한 주인공을 닮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주인공 존 메이는 구청직원이면서, 흐트러짐 없이 사는
깔끔한 독신남이기도 하다.
그가 주로 하는 일은 사람들의 사망신고를 관리하며,
그들의 살아생전 인연이 있었던 사람을 찾아가 부고 소식을 알려주고 장례식에
참석해 줄 것을 요청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 일은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망자들은 거의 대부분 고독사를 했으며,
그들의 연고자들은 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장례식 참석이 어렵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직장에서 해고를 당했다.
그 역시 오늘 살다 내일 죽어도 찾아 와 볼 사람이 마땅히 있는 것도
아니다.
자살을 생각하고 평소 깔끔하고 차분한 성격에 따라 창틀에 목을 매기
위해
점검을 하던 중 연락 한 통을 받는다.
전에 어느 여자의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해 줄 것을 요청했던 여자로부터
참여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이후 다시 한 번 만나자는 것이다.
즉 데이트 프로포즈다.
그에게도 그런 날이 올 줄 몰랐다.
하지만 하필 바로 그때 그는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한다.
그런 때가 있지 않은가?
이제 뭐 좀 할 것 같고, 알 것 같은데 돌연 죽음을 맞게 되는 상황.
지지리 운도 없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놀라운 건 살았을 땐 그리도 외면했던 사람들이
그가 죽었다고 하자 장례식엔 참석하는 것이다.
그들이 정작 자신들이 알았던 사람의 장례식엔 참석을 안하면서
주인공의 장례식엔 참석을 하다니.
아이러니다.
영국의 어느 마을이 배경인데, 새삼 유럽은 개인주의가 발달된
나라라
고독사하는 일이 많겠구나 싶다.
물론 고독사의 문제가 남의 나라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나라도 점점 늘어가는 추세다.
어느 날 나의 죽음을 알릴 사람도 없이 혼자 쓸쓸하게 죽어갈 것을
생각하면
좀 끔찍할 거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도 사람들은 가족이 있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물론 살아서 나의 죽음을 짐지운다는 게 미안한 일이지만
혼자 죽어간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 아닌가.
그러고 보면 인간은 정말 문젯덩어리인지도 모른다.
사는 문제도 제대로 해결 못하면서 죽음을 남에게 짐지운다는 건
또 얼마나 내키지 않은 일인가.
그러나 영화처럼 남의 죽음을 걱정해 주면 또 남이 나의 죽음을 책임져
준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고나 할까?
이 작품은 죽음에 관한 영화일수도 있겠지만,
직업과 천직에 관한 영화로도 읽힐 수가 있다.
연고자를 찾을 수 없으니 구청에서 주인공이 하는 일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 보인다. 여기까지가 직업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주인공은 끝까지 자신이 맡은 바 본분을 다하려 한다.
그래서 정작 자신의 죽음에서 자신의 하는 일이 천직이었음을 증명하기도
한다.
영화가 소박한 느낌이 들어 조금 싱겁게 끝나는 것 같은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