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는 별로이긴 하다.

별로이기 보단 내가 선호하지도 않고 유쾌하게 볼 내용이 아니다.

하지만 영화란 꼭 내용이 좋아야 보게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일단 감독이 영화를 잘 만든다.

이 영화도 영화 자체로는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선정적이고, 폭력적이라기 보단 가학적인 게 더 맞는 말 같은데

이런 비판에서 자유롭진 못할 것이다.

물론 감독이 작정하고 달려든 것 같으니까 어떤 비판을 들어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것 같다.

 

이 영화는 스토리 보단 캐릭터가 돋보이는 영화다.

끝까지 밀고 나가는 뭔가가 있어서 솔직히 얼마간의 쾌감 같은 게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고 김주혁이 맡은 마약에 찌든 악마적 캐릭터는 정말 그가

이 인물에 모든 것을 다 쏟았구나 싶다.

선한 캐릭터든 악한 캐릭터든 연기의 열정을 다 쏟는 배우를 좋아하지

않기란 쉽지 않다.

 

영화 자체가 그래서 그런지 이 영화에서 선한 캐릭터는 눈을 씻고

찾아 볼래야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나마 조진웅과 류준열이 그런 인물에서 조금 빗겨나 있긴 하지만

대신 모호하거나 고독하다.

맨 마지막 장면에서 한 발의 총성이 났는데 그게

조진웅과 류준열 둘중 누구를 향해 있었는지도 모르겠고,

자살인지 타살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것으로 봐 후편을 예고한 것인지 그것 또한 애매하다.

 

이 영화는 확실히 남성주의 영화이긴 한데

초반에 김성령이 짧게 나오는데 정말 강렬하다.

즉 설렁탕을 먹다 저혈당 쇼크가 와서

몇 번 기침을 하더니 뚝배기에 얼굴을 그대로 밖고 죽는 장면인데 

이게 너무 인상적이다 못해 거의 충격적이다.

요즘 그녀가 한창 물오른 연기를 하는 건 알고 있는데 이렇게까지...?!

 

그런데 이 영화 감히 보라고 추천까지는 못하겠다.

옛날에 <천하장사 마돈나>처럼 아기자기한 뭔가의 재미가 있으면

얼마든지 보라고 하겠는데.

가끔 좋은 실력을 갖춘 감독이 삑사리를 내기도 하는데

이 감독도 그러는 건 아닌지 약간 걱정스럽기도 하다.

그런데 이게 또 무려 15세 관람가다.

이젠 야스러운 건만 안 나오면 뭐든지 15세 관람가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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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8-27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싶네요~독전!

stella.K 2018-08-27 18:06   좋아요 1 | URL
ㅎㅎ 카알님은 청개구리여요.
차라리 재밌고 교훈적인 좋은 영화라고 그러면
안 보시려나요?ㅋ
배우들이 어떻게 나오나 한번 보셔요.^^

2018-08-27 17: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8-27 18:10   좋아요 1 | URL
맞아요. 배우의 캐릭터 연구는 끝이없죠.
악연이든 선한 역이든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근성가 좋아요.
잘 생기고 예쁜 건 연기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북프리쿠키 2018-08-27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텔라님 말씀에 동감요.
캐릭터만 반짝거리고, 스토리는 여전히
실망스러웠어요.~
돈벌기 위해 안전하게 만든 영화?
식상하고 권태로웠어요.

카알벨루치 2018-08-27 18:20   좋아요 1 | URL
스탤라님과 북프리쿠키님 두분이서 비추하시네 ㅋ영화랑 담쌓은지 오래라 ...<화차>아직도 덜 봤네요

stella.K 2018-08-27 18:48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
우리나라는 배우나 환경은 좋은데
너무 소재가 한정되어 있어요.
안전주의로만 가는 것 같아 안타깝죠.
미국이나 일본만 해도 얼마나 다양한데...
<천하장사 만돈나> 같은 건 얼마나 신선해요?
감독이 돈의 맛을 안 것도 같고. 똑똑한 사람 같은데...

카알님 영화 잘 안 보시는구나.
그럼 그냥 봐도 괜찮지 않을까요?^^

세상틈에 2018-08-28 0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볼까 말까 아직도 고민 중인;;; 김성령씨 비중 큰 것처럼 홍보하던데 금방 퇴장하시나봐요.ㄷㄷㄷ

stella.K 2018-08-28 14:53   좋아요 0 | URL
글쎄요, 남자들은 좋아하지 않을까요?
크게 기대 안하고 보면 볼만할 것도 같은데...
저는 개인적으로 감독의 영화를 좀 좋아합니다.
이것도 딱히 추천은 못하겠는데
그냥 봐줄만은 했습니다.
김주혁 때문일수도 있고, 제가 조진웅을 좋아하기도하구요.
여배우가 아주 안 나오는 건 아닌데 비중이 별로 없죠.
감독이 이렇게 만드는 것도 처음은 아닌가 싶기도 해요.

페크pek0501 2018-08-28 15: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 김주혁 님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볼 만한 영화인 듯하네요.
재능 있는 분이 단명하는 경우가 있어서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스텔라 님, 영화 많이 보시는 것 같아 좋아 보입니다...

stella.K 2018-08-28 15:36   좋아요 0 | URL
아유, 많이 못 봅니다.
워낙에 영화가 많으니까 뭘 골라 봐야하는지
모르겠더라구요.
일주일에 많으면 두 편?
그것도 한 편은 끝까지 보고 마음에 안 들면 보다 말죠.
점점 게을러서 리뷰 남기는 것도 잘 안하고 있어요.
이 영화는 좀 남겨야겠다 싶어 간단하게 남겼습니다.
아, 이러니까 되게 많이 보는 것 같네요.ㅎㅎ
 

이 영화를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만들었다고 했을 때 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원래 크리스찬이었나? 아니면 최근 무슨 심경에 변화가 있었나? 난 후자에 좀 더 심중을 두고 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작품을 나오는 것마다 챙겨봤던 건 아니지만 그의 작품을 보면 이 사람이 별로 신앙과 관련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종교적인 작품을 만들었다면 필시 뭔가의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건 아닐까. 

 

속단할 수는 없고, 난 그가 아직도 변함없이 넌크리스찬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이 더 설득력 있어질테니까. 나중에라도 그가 크리스찬이라는 게 밝혀진다면 그때가서 사과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난 오히려 넌크리스찬 감독으로서 이런 작품을 만들었다는 게 더 믿음이 갔던 것도 사실이다. 나도 크리스찬이긴 하지만 만일 크리스찬 감독이 만들었다면 그의 신앙적 올바름 때문에 조금이라도 신앙적인 관점을 견지하려고 했을 수도 있다. 또한 넌크리스찬이 이런 작품을 만들지 말라는 법은 없다. 오히려 더 객관적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가 종교를 모독하거나 비아냥 거릴 목적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 작품은 <침묵>이란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그의 일련의 작품들은 그렇게 성스럽거나 거룩하지 않다. 인간의 속되고 비열한 면을 까발기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소설의 어떤 점에 꽂혀 영화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모르긴 해도  감독은 늘 인간을 견지하는 똑같은 방식으로 이 작품을 만들었을 것이다. 즉 인간의 속 되고 비열한 면을 비신앙이 아닌 신앙에서 찾으려고 했던 건 아니었을까? 

 

보는 사람의 차이겠지만 한간에 떠도는 말에 의하면, 이 작품은 굉장히 종교적일 것 같지만 실상은 신앙인으로 하여금 믿음을 흐리게 만들고, 나아가 배교를 유도하는 적그리스도적 작품이라고 몰아가기도 했다는데 그건 좀 오버하는 것 같고, 그보단 신앙, 비신앙을 떠나 배교와 순교를 앞에 놓고 고뇌하는 인간을 성실하게 그린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감독은 신학자나 목사가 아니다. 그러므로 신을 대변하기 보단 인간을 대변하는 것이 더 맞는 자세인 것 같다. 더구나 그는 문제제기만 할뿐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어떤 식의 답을 달든 그건 관객의 몫일 것이다. 그러므로 감독을 두고 신앙인의 믿음을 교란시키고 배교를 유도한다고 하는 건 확실히 넌센스다. 그런 점에서 감독은 처음부터 순교에 성공한(?)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배교는 순교를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즉 죽음이 두려워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적어도 영화의 전제는 그렇다. 생명을 가진 인간으로서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순교할 믿음이 없어서라고만 볼 수 없다) 그는 영화속 등장인물 키치지로처럼 배교 즉 순교에도 성공하지 못했을뿐만 아니라 신앙인의 무리에서도 배제된 사람에 대해 관심이 있었던듯 하다. 즉 감독은 순교를 거부하면 배교자가 되는 것이고, 신앙에 실패한 사람이 되는 것이냐고 묻는 것이다.               

 

난 이 영화를 보면서 김훈의 <흑산>이 생각이 났다. 이 작품 역시 배교자에 관한 이야기다. 언제나 그렇듯 문학은 인간의 성공엔 관심이 없다. 늘 실패와 상처, 인간의 어두운 이면에 관심이 많고 이를 정당화 하는데 관심이 많다. 그런 점에서 배교는 신앙의 관점에서는 실패일지는 모르지만, 신 앞에서 실존을 고민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인간 본위의 승리인지도 모르겠다. 또 그런 점에서 훨씬 설득력이 있고.

 

구주를 영접했다고 해서 모든 신앙인이 순교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신앙인이지만 누군가가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죽이려 한다면 나는 과연 순교를 할 수 있을까? 난 이 말에 자신있게 답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신을 배반한 것이 될까? 그렇게 흑백논리 보단 신 앞에 죽음으로 나의 믿음을 증명하지 못한 것을 평생 자책하며 고뇌하는 실존주의자로 살아가게 될 것 같다.      

 

또 그런 게 있을 수 있다. 나는 죽어도 좋지만 나 하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면 과연 그런 사람을 두고 순교할 수 있을까? 뒤집어서 나 하나가 배교하면 많은 사람을 살릴 수가 있다. 그리고 이 유혹은 잔인하게도 영화속 로드리게스 신부에게 향해 있다.

 

영화 <사일런스>나 김훈의 <흑산>의 대척점에 있는 작품이라면 손양원 목사의 일대기를 다룬 전기나 전기 소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책들은 확실히 또 다른 관점에서 훌륭한 책이다. 또 다른 관점이란 당연 순교적 관점에서다. 알다시피, 손양원 목사는 신앙으로 민족 자존을 높인 분이기도 하고, 자신의 두 아들뿐만 아니라 자신도 순교한 위대한 신앙인이다. 그뿐인가?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자를 양자로 들여 돌봐주기도 했다. 아무리 기독교가 사랑과 용서의 종교라고는 하나 쉽지 않은 일이고 그래서 그를 존경을 넘어 영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솔직히 이제사 고백하는 거지만 난 수년 전, 손양원 목사의 전기를 읽고 크게 감명을 받아 그것을 대본으로 써서 공연한 적이 있다. 물론 나로선 큰 기쁨이었고, 영광이었지만 마음 한켠에 부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어떻게 이렇게 순전한 믿음이 있을 수 있을까? 나라면 순교할 수 있을까? 감히 할 수도 없으면서 이런 걸 대본으로 써서 공연하는 건 온당한 것일까? 혹시라도 이 공연을 본 사람이 감명을 받고 신앙의 불모지에 가서 순교한다고 그러면 어쩌나 벼라별 생각을 다 했었다. (물론 내가 이것을 공연할 생각을 했던 건 역사적인 관점에서 이 분의 생애가 생각 보다 안 알려진 것 같아 널리 알려보자는 생각에서 였다.) 

 

그런데 이야기가 너무 드라이 한 것도 사실이다. 어찌보면 손양원 목사는 너무 옳기만 해서 인간적인 느낌이 덜 느껴지기도 한다. 도무지 고민이나 고통이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아니, 없다기 보단 다른 여타의 사안에 가려 상대적으로 덜 드러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우린 이 옳기만한 분을 어떻게하면 이해해 볼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기독교는 유교에 영향 받음이 크다. 실제로 손양원 목사는 기독교를 믿기 전 유교 가정에서 나고 자랐다. 그런 가풍에서 그의 믿음은 유교에서 기독교로 옮겨졌을 것이다. 유교 중에서도 대덕목이라 할 수 있는 충효 사상. 기독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섬긴다. 그런 의미에서 손양원 목사는 장자의 믿음을 가졌던 것 같다. 장자는 부모를 섬기고 돌봐야 하는 의무를 가졌다. 그런 것처럼 무엇이 아버지 하나님을 잘 섬기고 받드는 것이 될까 골똘하지 않았을까? 순교는 어느 날 갑자기 하게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또한 당시는 인간의 감성 보다는 이념과 이성이 중시했던 시대이기도 했다. 그가 살았던 시기는 일제 강점기 말이었고 그것이 끝나자 공산주의가 널리 퍼지기도 했다. 그에 따라 기독교와 공산주의가 첨예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손양원 목사의 사모 정양순은 여자임에도 불고하고, 일본 순사에 의해 끌려가는 남편에게 하나님을 배반하면 내 남편이 아니며 구원을 받지 못할 거라고 했다. 아무리 부창부수라지만 그만큼 배포와 강단이 손양원 목사 못지 않다. 올망졸망 자라고 있는 자녀들이나 교회 교인을 생각하면 쉽게 외칠 수 있는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또 그런 것도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백마디 말 보다 행함으로 보여주는 것을 더 중시했던 깨어있는 양반의 의식이었다면 오히려 손 목사 부부가 보여주는 결의에 찬 믿음의 행위가 교인들에게 믿음의 본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신사참배는 우상숭배라고 외치던 사람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면 누가 하나님을 믿고 따를 수 있단 말인가? 무엇보다 당시의 기독교가 신사참배가 우상숭배인 줄 알고 있었으면서도 손양원 목사를 지지하고 돕기 보단 오히려 경멸하고 싫어했다. 아마도 손양원 목사는 그에 대한 반발과 책임의식이 상당했을 것으로 미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양원 목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전혀 눈물도 흘릴 줄 몰랐느냐면 그렇지 않다. 그도 아플 줄 알고,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인간이다. 그는 실재로 두 아들을 잃고 아비로서 눈물을 흘렸고, 그 아픈 마음을 추스르느라 잠시 사람을 피해있기도 했다. 그가 신사참배는 우상숭배라고 외쳤던 건 순교하겠다는 강한 믿음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고, 필요하면 교인들도 그렇게 하라는 뜻으로도 읽힌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아들이 실천하게 될 거라고 그는 상상했을까? 그는 어쩌면 그 때문에 교인들 앞에선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믿음이나 사랑은 이해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불어 순교 역시 그렇다. 기독교는 순교는 신비한 것이라고 했다. 교회는 이 순교의 피 위해 세워진 것이라고도 했다. 한마디로 인간 이해의 영역을 뛰어넘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손양원 목사의 전기 보단 영화 <사일런스>가 훨씬 인간적이고 이해하기가 쉬워 보인다. 

 

손양원 목사의 전기가 순교하는 인간의 전형을 보여준다면, 영화 <사일런스>는 배교하는 인간의 전형을 보여준다. 또한 이것은 영화를 보면서 생각한 것인데 애초 원작자의 사고나 서술의 차이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손양원 목사의 전기를 쓴 사람은 그의 따님인 손동희 권사다. 그분은 작가가 아니다. 그분 역시 아버지의 신앙을 이어받은 사람으로서 신앙적 올바름을 위해 전기를 쓴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다고 해서 인간적 고뇌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순교에 성공(순교에 실패한 사람들이 보기에)했다고 해서 그들을 무조건 영웅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순교자는 순교자 나름으로 고통과 고뇌가 있는 것이다. 손양원 목사는 그것을 너무 드러내지 않는 것이고, 대신 그의 딸 손동희의 증언에서 드러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비해 <사일런스>의 원작자인 엔도 슈사쿠는 작가다. 그는 그 작품을 통해 박해 받는 17세기 일본의 가톨릭 신자들을 완벽히 구현해 내기를 바랐을 것이다. 거기엔 당연 신앙의 정절, 신앙적 올바름 보단 고통 당하는 인간에 초점을 맞춤은 당연하다. 요는 순교나 배교나 인간에겐 둘 다 쉬운 것이 아니며, 따라서 어떤 것이 어떤 것 보다 나쁘고 좋고를 따지는 건 의미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영화 속 로드리게스 신부와 키치지로는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들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치지로는 늘 로드리게스의 발목을 붙잡았으니까. 로드리게스는 순교하기를 바랐지만 기치지로 때문에 할 수 없었고, 마치 신앙인들속의 첩자인 양 그가 있는 곳을 일본 관원들에게 가르쳐 주기도 했다. 그렇게 보면 순교하려 했던 로드리게스가 더 우위를 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영화가 전반엔 로드리게스 신부의 고뇌와 갈등을 그렸다면 후반은 키치지로에 좀 더 치중해 보인다. 말했던대로 배교자는 실패자 또는 정말 배신자일까? 그것은 키치지로가 영화에서 쓰여지는 방식이다.

 

     

 

순교자가 주가 되는 이야기엔 배교자는 나오지 않는다. 나오더라도 거의 존재감이 없거나 순교자를 돋보이게 만드는데 사용되어질 뿐이다. 또한 그 순교자를 통해 신이 찬양되어지거나 신앙적 올바름에 치중되어 있다. (난 이를 비판할 생각은 전혀 없다. 순교자는 지어낸 허구의 존재가 아니라 실재로 있었던 인물이니까. 그러니 내가 무슨 수로 그것을 비판한단 말인가?) 그러나 이 영화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순교자가 신에 가까운 사람이라면 배교자는 인간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렇다. 로드리게스는 일본 관원의 끈질긴 회유와 협박 끝에 결국 배교를 하고만다. 그것은 특별히 자신의 스승 페라이라 신부(리암 니슨 분)가 배교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일본에 귀화하여 반그리스도교적 사상을 전파한다. 하지만 그건 결코 그가 원하는 삶은 아니었다. 그건 굴욕이고 신앙의 정절을 끝까지 지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패배를 의미하기도 한다.

 

나는 좀 이해가 가지 않는 건, 로드리게스나 페라이라 신부가 일본으로부터 회유와 협박을 받았다면 왜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배교 후에 일본으로 귀화하였느냐는 것이다. 배교란 포로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우리나라만 해도 대원군의 가톨릭 박해 사건인 병인박해 때만 하더라도 외국인 선교사들을 본국으로 철수시켰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순교하거나.

 

아무튼 그랬을 때 기치지로가 로드리게스를 또 한번 자극한다. 그런데 이번엔 다르다. (영화의 흐름상) 지금까지는 로드리게스의 진상 역할을 했다면 이번엔 그의 정체성을 일깨운다. 당신은 그렇게 배교자로 있지만 당신 마음 속엔 한번도 그리스도를 배교한 적이 없다는 걸 안다며 그러니 나의 죄를 고백할 테니 사해달라고. 물론 처음엔 그도 그럴 권한이 이제 자신에게 없다고 강하게 반대하지만 기치지로에 의해 그의 정체가 자극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우린 이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런다고 배교했던 것이 다시 바뀌지 않는다고 냉소할 것인가? 아니면 안과 밖이 같아야지 그런 식이라면 가톨릭을 농락하는 것 아니냐며 비판할 것인가?

 

세월이 흘러 로드리게스가 죽었을 때 그는 여전히 배교자로 일본식 염을 했다. 그때 그는 조그만 십자가를 손에 품는다(물론 그건 기치지로에 의해 비밀리에 이루어진 것이기도 하다). 그 장면은 또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워낙에 온전한 아니 평온한 신앙을 갖기가 어려운 시대였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사실과 진실은 같지 않다는 것이다. 정말 로드리게스는 겉으로 보기엔 일본에 귀화한 외국인으로 죽지만 그는 동시에 평생 그리스도를 차마 마음속에서 버리지 못한 비운의 신앙인으로 죽었다.  

 

여기서, 어찌보면 일본은 배교를 다소 쉽게 보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들은 당시의 신도들이 어떤 신앙을 가졌는가엔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그들은 그저 가톨릭 신앙을 상징하는 동판을 밟고 지나갈 것인가 아닌가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다. 그것은 또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에 동방요배를 강요했을 때의 양상과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그들은 기독교인들에게 신앙의 유무와 상관없이 일본이 있는 동쪽을 향해 목례만 하라고 강요했다.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선 얼마나 뿌리치지 못할 유혹인가? 그리고 훗날 그것이 신앙의 정체성에 얼마나 많은 혼란을 가져왔던가. 또 동시에 그 정도 가지고는 일본은 신앙의 씨를 말려버리지 못했다. 교회는 순교의 피 위에 세워졌다. 그건 확실히 신앙의 승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의 반대쪽 지점의 배교란 신앙의 실패를 의미하는가?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잠시 심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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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8-24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물기 이런 거 읽는 저하고는 깊이부터 다르시군요......

저는 보통 이 정도 분량의 글을 쓰려면 짧게 잡아도 3일은 걸리는데, 스텔라님은 어떠셨나요?

stella.K 2018-08-24 18:14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그렇지 않아도 이거 쓰느라고 죽을 X 쌌습니다.
다음 달에 알라딘이 모른 척 하면 안 되는디...ㅋㅋㅋㅋㅋ

그런데 이 영화 스요님 땜에 본 거 아시죠?
신앙의 유무를 떠나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심각한 영화 안 좋아하는 사람은 신앙의 유무를 떠나
안 보겠지만. 감독이 참 노련하게 영화를 잘 만들어요.^^

2018-08-24 18: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8-24 18:22   좋아요 1 | URL
ㅎㅎ 그때 보셨구나. 10년 아니구요, 5년 됐습니다.

순교와 배교에 대해서는 정말 간단명료하게 잘 쓰셨네요.
오히려 제가 중언부언했네요. 부끄러라...ㅠ

책은 사인이라고 해 드리면 좋을 텐데
일부러 사서 보시는데 뭔가 보탬이 되어드리지 못해
아쉽습니다. 모쪼록 즐거운 독서가 되시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고맙습니다.^^

2018-08-28 15: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28 15: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8-08-28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양원 목사와 종교에 한해서는 스텔라 님이 전문가이신 것 같습니다. 제 생각입니다.
저도 전문적으로 아는 뭐가 있으면 좋겠어요. ㅋ

stella.K 2018-08-28 15:31   좋아요 0 | URL
아유, 그렇지 않습니다.
대본을 쓰려니까 좀 도드라져 보이는 거죠.
언니는 칼럼을 잘 쓰시지 않습니까?^^
 

 

 

 

 

 

 

 

 

 

                                       

                              

 

언제 이런 애니메이션을 개봉했는지 모르겠다.

디즈니 픽사도 감탄할 정도라고 극찬을 하던데, 정말 한편의 잘 그려진 수채화를 보는 것 같고, 너무 매력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원래는 그래픽노블을 영화화한 것이라는데 우리나라엔 (아직)번역된 것 같지는 않다. 그림도 애니매이션이 훨씬 좋다. 작가의 부모님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고 하는데, 이렇게 말하면 작가가 나름 젊을 것 같지만 작가도 이미 나이가 꽤 있다. 그러니까 독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할머니, 할아버지뻘 되시는 분의 이야기를 그렸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이야기의 시작도 1920년 대 영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가의 부모님이 30대 중반쯤 됐을 때 처음 만나 사랑을하고, 결혼을 한 것으로 시작한다.

 

그렇다고 특별한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시간과 배경만 다르다뿐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하고 한편생 사는 건 똑같다. 왜 톨스토이가 그의 소설 <안나카레니나>에서 그런 말을 하지 않는가?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고. 원래 소설가들은 남의 행복엔 그다지 관심이 없고, 불행엔 지대하게 관심이 많다. 저 사람이 왜 불행한가? 뭐 때문에 불행한가? 누구 때문에 불행한가? 등등. 그리고 소설가들은 뭔가 이 불행한 자들을 대변해줘야겠다는 나름의 사명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별것도 아닌 남의 소소한 삶을 펼쳐보이는 크리에이터나 스토리텔러들이 어찌보면 더 대단해 보이는지도 모른다. 별 것 아닌데 소소하게 재밌고, 뭐 빠져드는 건 아니지만 나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게 만드는 재주를 지녔으니 말이다. 거기엔 애니메이션이나 그래픽 노블이란 장치도 작용했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소설이나 실사 영화로 보여줬다고 생각해 봐라. 별 세 개 받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 같은 제3세계 관객들이 보기에 이 이야기는 충분히 흥미롭기도 하다.

1920년 대 영국은 아직 TV가 나오기 전이었나 보다. 물론 우리나라는 그보다 더 늦게 보급이 됐지만. 아내 아델이 TV가 뭐냐고 묻자 남편 어니스트가 지금까지는 우리가 영화를 극장에서 보았는데 그걸 집에서도 볼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얼렁뚱땅 에둘러 설명하는 장면이나, 역시 동성애가 뭐냐고 묻는 에델의 질문에, 어니스트가 "아, 에... 그러니까 말이지... 남자와 여자가 그걸 하는 게 아니고... 남자와 남자가..."하다가 따뜻한 물이 필요하다며 주방으로 쑥들어가 버리는 장면이 재미있다.

 

또한 이 시기는 히틀러로 인해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하고, 때문에 그들의 하나뿐인 아들을 그들이 사는 런던에서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기 위한 국가적 시행에 부응하는 장면 등이 인상적이다. 영국에서 과연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인가? 그건 정말 부럽고, 본 받을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도 한국전쟁 때만이라도 아이들의 안전을 보장해줬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더 앞선 나라가 되지 않았을까? 그밖에 노동당의 참패에 분개하는 어니스트를 보면서 한 나라의 정치가 개인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으며, 평생 김대중 대통령을 미워하다 세상을 떠난 나의 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또한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예술에 대해 폄하하는 시선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영국도 한때는 배곪는 직업이라고 해서 아들이 화가가되는 걸 반대하지만 그렇게까지 심하게 반대하지는 못한다. 하긴 그덕에 이런 평범하지만 훌륭한 이야기가 세상에 나올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더 놀라운 건, 그 아들이 자라 결혼을 했는데 하필 조현병에 걸린 여자와 결혼을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194,50년 경에 조현병이라면 쉽지 않았을텐데 아들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을 보면 존경스럽다기 보단 너무 지나친 개인주의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

 

보면서 자신의 부모님을 회고하는 이야기를 만들 생각을 한 작가가 새삼 존경스럽단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내 부모님의 이야기는 써 볼 생각을 못 했다는 게 조금 부끄러웠다. 하긴, 작가가 약간의 MSG를 쳤을지 모르겠지만, 작가의 부모는 대체로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다. 그런데 비해 나의 부모님은 그닥 행복한 결혼을 한건 아니었다. 쓴다면 여자의 입장에서 평생 불화했던 엄마와 엄마의 시댁 식구들에 관해서는 써 볼 생각을 하긴 했다. 

 

항상 그런 얘기를 했지만, 개인의 삶에 관한 이야기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늘 그렇듯 그런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선 극히 일부에만 해당되는 일처럼 취급되어 진다.  

 

 김형경의 소설 <세월 1, 2>은 작가의 지난한 삶이 묻어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자전 소설이지만, 책속의 책이라 할만큼 작가가 읽어왔던 책 목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기도 한다. 한마디로 이 책을 표현하자면, '그녀는 숨어 책만 읽었다.'라고 표현해도 좋을만큼 일종의 개인 서지학 같기도 하다. 그중 한때 저자는 뿌리 깊은 나무에서 발간 했던 민중자서전 시리즈를 탐독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난 그런 책이 있었다는 사실에 좀 놀웠다. 우리나라에 그런 책이 있었다니! 그래서 혹시 정보를 알 수 있을까 해서 검색을 해 보았다..

 

있긴 있지만 90년대 초에 나온 것으로서 지금은 모두 절판됐고, 그나마 책에 대한 정보도 제대로 나와있지 않다.

 

개인이 존중되는 사회일수록 자서전이나 회고록 또한 중요하게 다뤄질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나라 민중 민요나 가요 또는 구전된 이야기도 초야에 묻힌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더 많이 알고 있을텐데 그들에게서 그런 이야기의 채취 작업은 얼마나 하고 있는지, 또한 그들의 삶에 대해 얼마나 귀기울여 왔는지 의문이다.

 

이제 개인의 이야기나 회고록은 활자로만 전달되는 것마는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에델과 어니스트> 같은 그래픽 노블이나 애니매이션 작업은 앞으로 더욱 활발해지지 않을까? 뭐 꼭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이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호강한다. 강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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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6 17: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16 17: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8-07-17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영화 어느 분 서재에서 보고 찜해놓고선 아직 못보고 있어요. 스노우맨 이랑 그림에서 오는 느낌이 참 비슷한데 스노우맨도 약간 슬픈 결말이잖아요?
뿌리깊은 나무에서 나온 책들 예전에 이버지께서 여러권 가지고 계셨더랬는데 그 생각도 나고요.
요즘 영화 많이 보시네요~^^

stella.K 2018-07-17 14:40   좋아요 0 | URL
맞아요. 스노우맨 제작팀이 만들었지요.
그러고 보면 이것도 결말이 슬프긴 해요.

뿌리 깊은 나무는 여러모로 안타까워요.
얼마 전 어디서 글을 읽으니 5공 언론통폐합 때
사라진 출판사 중 하나라는 걸 알았어요.
그래도 최근까지 다시 책도 내고 하던가 본데
다시 주목 받는 출판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생각 보다 그리 많이 보는 건 아닌데...
월정액 들어서 안 보면 손해여요.
최근엔 미드도 접수했어요.
자막 들어간 거 안 보려고 했는데 늦바람이 들었나 봐요.ㅋㅋ

후애(厚愛) 2018-07-17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픽노블 너무 궁금하네요.
근데 번역으로 나오지 않았군요.
나오면 바로 볼텐데..ㅎㅎ

영화 정말 많이 보시는군요.^^

stella.K 2018-07-17 18:29   좋아요 0 | URL
그래픽노블은 그림이 좀 그런 것 같더라구요.
차라리 애니메이션으로 보시는 게...^^
그리고 내용이 그리 어렵지 않아서
영문 원서로 가지고 있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우선 이 작품은 시나리오로 봤을 때는 되게 잘 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등장인물이 쏟아내는 대사도 상당히 유려하다.

영상도 나름 좋다. 요즘 제주도가 각광 받던데 그곳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결혼한 사람들의 성적 판타지를 건드린다. 

 

영화가 분명 19금인 건 사실인데, 실제로 야한 장면은 생각 보단 많이 나오지는 않는다.

나머지는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영상이나 영화적 구성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대한 평이 대체로 낮은 편이다. 모르긴 해도 우리나라 관객들이 (성)도덕성이 높아 도덕의 잣대로 보면 그럴 수도 있겠으나 영화는 반드시 도덕의 잣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는 말에 동의한다면 감독은 기본적으로 영화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풍자가 살아 있다.

그걸 그냥 즐기면 되는데 편하게마는 봐줄 수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사실 나도 이 영화를 굳이 보고 싶어서 봤던 건 아니다.

 

난 언제부턴가 영화에 어떤 배우가 나왔는지 보다는 그 영화를 만든 감독이 어떤 생각과 취향을 가지고 만들었는가에 관심이 더 많아졌다. 특히 감독이 배우들을 어떤 식으로 사용(?)하고 있는가에 관심이 많아졌는데, 이건 최근 미투 운동이 일어나고부터 더욱 그렇게 됐다. 그러니 이런 영화에 관심이 많아질 수 밖에. 

 

영화를 보고나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뭔가 싶기도 하다.

그러니까 뭐,  남자만 바람 피우는 것 같지? 사실은 여자도 바람을 핀다거나, 억울하면 당신도 바람을 피든지 하는 식의 권장을 에둘러 표현한 것도 같다. 특히 조신하고 순진하거나(담덕 역의 장영남), 현대적 현모양처(미영 역의 송지효)는 요즘 어디나 흔히 볼 수 있는 여성상이긴 하지만 그들에게도 알고 보면 애인이 있었다는 건 감독 혼자만의 생각인지, 어느 정도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그런 것을 떠나 감독이 이 두 배우를 그렇게 설정해놨다는 게 왠지 나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중세 유럽의 귀족만 하더라도 결혼은 재산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정략적 제도일뿐이었다. 그러므로 내연관계는 당연했던 거고. 그게 어떤 식으로든 변형이 되어 오늘 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봉수(신하균 분)가 영화 중간에 그런 대사를 날리지 않는가? 난 어제 와이프하고 키스까지 했다고. 익숙한 관계는 성적 흥분이 안 되는 것이다. 섹스는 그저 아기를 갖기 위한 기능을 수행하는 것 밖에는 없다.  

 

그런데 흥분 너무 좋아하지 마라. 영화의 등장인물 석근(이성민 분)결국 흥분 좋아하다 패가망신까지는 아니어도 하루아침에 홀아비 신세가 됐다. 그런데 웃기지 않나? 아내를 잃고 그제야 정신을 차리다니? 그런데 난 웬지 거기까지만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그럼 뭔가? 아내를 잃지 않았다면 그의 철없는 외도는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이고, 따라서 그의 절름발이 결혼은 계속된다는 말 아닌가? 왜 그놈의 성적 흥분이란 게 아내가 살아있을 땐 멀쩡히 작동하더니 죽고나자 작동을 멈춘단 말인가? 석근이 아픔을 통한 깨달음, 성숙이라기 보단 아내가 있어야 작동하는 남자. 뭐 이렇게 읽히기도 한다. 

 

물론 여자들중엔 그래봤자 남편의 아랫도리 아니냐며 초탈한 여자도 있다지만, 사람은 그렇지가 않다. 반대로 아내가 외도를 했다면 초탈할 남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엊그제 아는 지인과 얘기하다가, 그 지인의 누구의 딸이 심한 화장을 입었단다. 그런데 하필 딸이 그렇게 화상을 입고 사경을 헤메고 있었을 때 남편(이란 작자)은 그 시간에 상간녀와 침대에서 딩굴렀단다. 그걸 알고 즉시 이혼했다고. 뭐 <사랑과 전쟁>에 나올 법한 얘기지만 왜 우리가 결혼 때문에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행복하자고, 적어도 서로 좋자고 하는 결혼 아닌가?  

   

암튼 영화가 아주 범작은 아니다. 성적 부도덕을 가지고 오히려 회개와 반성을 촉구하고, 각자의 배우자에게 잘할 것을 당부하고 있는데 그게 억지스럽거나 진부하지만은 않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나름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섹스 코미디를 좋아한다면 한번쯤 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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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8 2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7-09 14:41   좋아요 0 | URL
ㅎㅎ그게 차라리 낫죠. ㅋㅋㅋㅋ

레삭매냐 2018-07-11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가 원래 체코 영화를 리메이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우리의 상황하고는 좀 달라서, 주인공들의 관계
도 상당히 바꿨다죠 아마.

전 극장에 가서 보았는데 즐겁게 봤습니다. 오락
영화로 말이죠.

제주도로 로케이션 장소로 삼은 것도 탁월하다고
생각합니다.

stella.K 2018-07-11 13:57   좋아요 0 | URL
왙! 그렇습니까?
어쩐지, 구사하는 대사가 좀 남다르다 싶더군요.
템포도 그렇고.

그렇죠? 괜찮더라구요. 근데 네*버 평들
보면 하나 같이 가관이더군요.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객인 저도 그런데 감독이나 제작진은 더하겠죠?ㅎ

페크pek0501 2018-07-14 15: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흔히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장면 - 바람 피우는 남편이 자기 아내를 맘에 들어 하는 딴 남자가 있든지 딴 남자를 만나든지 하면 심한 질투를 느끼는 것. 영원히 자기 것이라 여겼던 아내의 반란은 참기 힘든 모양이에요. 그럴 거면 진작 잘할 일이지 말이에요.
원래 가까이 있는 보석을 몰라 보고 돌멩이로 아는 게 인간인 것 같습니다. 체호프의 단편 중에 그런 게 있죠. 바람 피우던 아내가 나중에서야 남편이야말로 소중한 사람임을 깨닫게 되는 장면.
그 깨달음이 너무 늦은 게 문제지요. 남편이 숨을 거두는 시간에 아내는 뼈저리게 느끼며 슬퍼합니다. 남편이야말로 소중한 사람임을. <베짱이>라는 단편이에요.ㅋ

stella.K 2018-07-14 15:42   좋아요 1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있을 때 잘하란 말이 그냥 있는 말이
아닌데 말입니다.
꼭 마지막 순간에 깨닫는 건 뭔지 모르겠습니다.ㅠ

이 영화 무료하고 지루할 때 함 보세요.
물론 킬링 타임용이긴 하지만
제주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꽤 공들여 만들었단 느낌이 있어요.^^
 

 

어쩔 수 없이, 장마철을 맞았다.

어제는 정말 쉴새없이 비가 왔다. 오늘은 그나마 간혹 비가 안 오는 때도 있지만 그래도 어제와 별반 달라보이지 않는다.                    

 

장마철만 되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면 이 영화가 아닐까 한다.

 

사람은 똑똑한 존재다. 사람은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개발해 나가니 말이다.

 

지루한 장마철 이런 영화 한편쯤 나와줘야 그나마 견딜 수 있지 않을까? 보고 있으면 지루하고 꿉꿉한 장마도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그건 어쩌면 사람이 상상력이 많고, 낭만을 추구하는 존재기 때문일 것이다.

 

             

                

알고봤더니 오리지널 원작이 2004년이다. 그리고 작년에 한국판이 나왔다. 일본판을 나도 보긴 했지만 내용은 거의 기억엔 없지만 괜찮게 본 기억은 있다. 한국판도 나쁘지 않다. 간간히 보여지는 코믹스런 부분이 좀 억지스럽진 않을까 했는데 그렇지도 않다. 장마철에 찾아 온 죽은 엄마가 그것이 끝나면 돌아가야 하는 이별의 장면 역시 지나치게 눈물샘을 자극시키지 않아 편했다.  

 

그래도 보면서 나도 죽음으로 그동안 헤어진 가족들과 친지들을 이렇게 어느 한철만이라도 만나봤으면 좋겠다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결코 그럴 수 없겠지만. 그래서 우리는 영화를 보는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이런 공허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채워주지 않는가?

 

하지만 역시 인간의 죽음을 목도하는 건 한번으로 족한 것 같다. 일본판이나 한국판이나 죽은 아내가 다시 깨어나는 장면은 그런 장치가 하나도 없는데도 약간은 섬짓하다. 아무리 죽은 펭귄 엄마의 이야기를 브리지로 넣는다고 해도 저 세상에서 다시 돌아 온 죽은 엄마 또는 아내를 어떻게 전혀 아무렇지도 않게 사랑하고 함께 생활할 수 있을까? 돌아간지 오래된 아버지나 오빠가 영화에서처럼 돌아온다면 난 오히려 기절할 것 같다. 평소에 그토록이나 보고 싶어했으면서 말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그리워하는 건, 죽은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와 함께했던 죽음을 몰랐던 그 시절은 아니었을까? 가끔 망자가 꿈에 나타나도 반가워 하기보다 이게 길몽이냐 흉몽이냐고 가름하는 게 인간 아닌가? 하지만 그리운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이 영화는 똑똑한 영화인지도 모른다. 죽음으로인해 다시 볼 수 없는 사람을 이런 식으로 소환해 관객들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유도하고 있으니 말이다. 

 

크게 교훈되는 건 없지만(있다면 있을 때 잘 해 정도가 될까?) 이런 습도가 높은 날 낭만이 필요하다면 한번쯤 소환해서 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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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8-07-02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때의 다케우치 요코는 최고였습니다.^^

stella.K 2018-07-03 10:48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런가요? 전 일본 배우는 잘 몰라서요.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손예진도 볼만해요. 비교해서 보시면...^^

Nussbaum 2018-07-02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목만 같은 줄 알았는데 리메이크였군요.

제 생각에는 원작이 더 나을 것 같은데, 또 모르는 일이겠지요. 문득 그 시간으로 돌아가봅니다.


stella.K 2018-07-03 10:52   좋아요 0 | URL
리메이크작에 대한 평가가 대체로 낮은 편이긴 한데
이 영화는 나름 높은 편이더군요.
저도 별 3개 반은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영화가 아기자기하고 좋아요.
빈티지한 느낌의 배경도 좋고.
좋아하실 것 같은데...^^

2018-07-02 2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7-03 10:58   좋아요 1 | URL
칭찬이시죠?ㅎㅎ
일본은 그게 부럽더군요.
소재의 다양함? 뭐 그런 거...
뭘 가지고도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내요.
우리나라도 비를 소재로한 작품이 있긴하죠.
호우시절! 봤는지 안 봤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ㅋ
함 보세요. 괜찮은 영화예요.^^

cyrus 2018-07-03 07: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원숭이 손》이라는 단편 공포소설이 있어요. 부부는 박제된 원숭이 손에 세 가지 소원을 빌어요. 두 번째 소원이 죽은 아들을 다시 만나는 것이에요. 남편은 그 소원을 반대해요. 남편은 아들이 죽은 모습 그대로 나타난다는 사실에 공포를 느꼈던 거죠. 결국, 남편은 마지막 소원을 비는데 두 번째 소원을 취소해요.

실제로 죽은 사람이 되살아난다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기 힘들거예요. 부패가 된 몸을 원래대로 회복하는 건 불가능해요.

stella.K 2018-07-03 11:04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작년인가 재작년에 미국 영화 그런 거 하나 있었거든.
근데 제목이 생각이 안 나네.ㅠㅠ
10대 여자 아이가 죽다 살아났는데 자기가 죽은 줄 몰라.
좀비라면 좀 으시시한데 그렇지 않고 생활밀착형 좀비라고나 할까?
그렇다고 지나치게 공포스럽진 않고.
뭔지 모르겠어.
언제고 생각나면 갈켜줄게.ㅋ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