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 Sex, Lies, and Videot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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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스티븐 소더버그
주연 : 제임스 스페이더, 앤디 맥도웰

이 영화를 보려고 나름 애를 썼는데 여간해서 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또 이렇게 포기하고나니 생각보다 쉽게 보게 되었다. 뭐든지 때가 있다더니 그 말이 맞는가 보다.  원래 영화 볼 줄 안다는 사람들 의 영화목록표에서 결코 빠지지 않는 영화가 이 영화일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영화를 볼 줄 안다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저렇게 섹스를 노골적으로 제목으로 단 영화는 취미가 없다. 하지만 왜 영화 볼 줄 아는 사람의 영화목록표에 이 영화가 빠지지 않는가? 그것이 알고 싶을 뿐이었다.   게다가  내가 스티븐 소더버그를 아주 좋아하느냐면 그런 것도 아니다.   

사실 그는 미국 비주류 영화계에서는 내로라하는 영화감독이다. 누구는 그가 천재라고까지 칭송을 한다. 하지만 난 주류든, 비주류던 '미국적인 걸'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역시 이 감독이 천재인지 아닌지엔 별로 관심이 없다. 물론 그의 영화(들)를 아주 미치도록 좋아한다면 그 말에 동의하는데 주저함이 없겠지. 단지 내가 소더버그를 싫어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건 그의 독특함, 주류에 섞이지 않는 그만의 세계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보여준다는 점에선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예전에 여성학 강의를 들으면서, 결혼이 갖는 여러가지 특징 가운데 하나는 섹스를 합법적으로 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사실 내가 이 강좌를 들은 건 20세기니, 작금에 들어와서 이 말이 얼마나 구식으로 들릴지 안 봐도 비디오다. 누구는 그러겠지, 섹스는 꼭 결혼이 아니어도 합법적으로 할 수 있다고.  결혼 보다 더 우선시 되야하는 것은 사랑과 신뢰가 아니겠냐고. 결혼해서 자기 배우자와 섹스를 합법적으로 할 수 있다고 해서 거기에 사랑과 신뢰가 있는지 없는지 어찌알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누구는 섹스는 배설 또는 이완가 같은 것이란 좀 더 진보적이고 자유주의적 사고관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21세기에 섹스를 결혼에만 국한 시킨다는 건 얼마나 시대착오적 발상이겠는가? 하지만 이런 디지털 시대에도 종이 신문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수적인 시각은 여전히 공존한다.  

그도 그럴 것이, 섹스가 보수적이어서 인간이 불행하다고 말할 수도 없지 않은가? 누구는 섹스가 보수적이어서 재미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섹스 리스 부부는 또 얼마나 많은가? 비근한 예로 오래도록 같이 살아 온 부부는 꼭 오누이지간 같아서 섹스할 맛이 안난다고 한다. 아니할 말로, 오빠와 또는 누이동생과 섹스하는 사람 봤냐고 오히려 반문을 하는 것이다.  섹스는 그런 것이다. 영화에서 앤과 존처럼. 앤은 말하지 않는가? 꼭 부부라고 해서 섹스를 해야 하는 것이냐고? 그리고 자신은 한번도 남편과의 섹스에서 만족을 느끼지 못했노라고 말 하기도 한다. 또 실제로 존도 그것을 인정하지만 특별히 불만은 없는 '척'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섹스는 짜릿할수록 좋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찾아 나서길 주저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존은 아내 대신 처제인 로라와 대범한 섹스를 하지 않는가? 물론 대부분의 로라의 유혹에 넘어가는 경우가 많지만. 또한 로라는 형부에게서 성적 희열을 느낀다.  한마디로 이는 마치 서로 먹고 먹히는 사슬처럼 얽혀있다.  그런데 이 같은 세 사람의 관계에 우연인지 필연인지 끼어들게 된 것은 존과 대학을 같이 다닌 그레이엄이다. 하지만 독특하게(?)도 그는 성불구자다. 대신 그는 섹스에 관한 인터뷰를 비디오 테이프에 녹화하는 일을 한다. 일종의 연구 프로젝트의 한 과정이다.  

그런데 이 비디오 테이프를 앞에 놓고 벌이는 각 등장인물의 진실 게임이 만만찮게 흥미롭다. 형부에게서 희열을 느낀다는 로라는, 알고 보면 언니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형부와 섹스를 하는 것이며, 언니인 앤이 남편과 섹스를 하지 않는 것은, 섹스에 흥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실은 동생과 남편이 섹스를 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레이엄이 성불구라는 것도 거짓말이다. 그것은 대학 때 존이 그레이엄의 애인을 건드렸기 때문에 그에 대한 상처로 성불구를 자처했을 뿐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 인터뷰에 응한 앤과 인터뷰 도중 비디오 녹화를 중단하고 섹스를 하게된다. 그후 앤은 존에게 이혼을 결심하고,  그 때문에 화가 난 존은 모든 것이 그레이엄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그에게 화를 내지만, 아내와 그레이엄이 섹스한 사실 때문에 그는 절망한다. 그리고  대학시절 존이 그레이엄의 애인을 건드렸던 건, 그레이엄이 사랑을 온전히 지켜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비난한다.   

이 영화는 그야말로 완벽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어찌보면 섹스는 눈이 멀었기 때문에 어디로 불똥이 튈지 모르는 예측불허의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에도 '끌리는 걸 어떻게 하냐'고 말하지 않던가? 하지만 그렇게 무책임한 말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섹스의 짜릿함만을 쫓다 결국 패가망신의 전형을 이 영화는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누구는 섹스는 자유롭게 말해지고 표현되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지 못해 부작용의 사례를 들이대면서. 하지만 섹스를 얼마나 많이 말하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얼만큼 잘 말하느냐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말주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도덕성, 순결성을 말하는 것이다. 영화에서나 상업성의 논리로 마치 섹스는 출구를 잃은 것마냥 마구 무분별하게 다뤄지고 혹사당해 왔다.  물론 이 영화는 섹스에 대한 보수적인 계몽 영화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섹스의 도덕적인 측면과 부도덕적인 측면을 함께 다루었다는 점에서  탁월하게 잘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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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9-25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 언니, 영화 참 많이 보시네요.
저희 집에 보려고 구매한 DVD가 한아름인데, 저는 거의 못보고 있어요.
머하고 사는건지......... ㅠㅠ

이 영화를 저도 보려고 참 무던히도 애썼지요. 기억을 살려주네요.
남자 주인공 얼굴을 다시 보니, 너무 익숙해서 인터넷을 뒤졌네요.
아하, 스타게이트의 주인공 남자네요. ^^

stella.K 2010-09-25 21:14   좋아요 0 | URL
나도 많이 못 본다우. 나도 볼 영화가 한아름인데
아마 죽기 전에 다 못 보겠지 싶소.ㅎㅎ
맞아요. 남자 주인공 낮이 익다 싶었는데 그 영화였군!
이 사람 지금 뭐하며 사는지 모르겠어요.^^

2010-09-25 0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0-09-25 11:27   좋아요 0 | URL
이 영화가 만들어졌을 당시는 그랬을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많이 헤이해진 부분이 있어 놀랄 것도 없겠죠.
그래도 저 위의 가위 가지신 분은 문제로 삼을 겁니다.
성범죄자를 위한 아주 잘 만들어진 영화가 좀 나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양철나무꾼 2010-09-25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영화도 좋았던 기억이 있는데...
아~이 리뷰 참 맘에 들어요.

가슴 한켠이 뻐근해져요.

stella.K 2010-09-25 15:21   좋아요 0 | URL
으쓱 으쓱~ㅎㅎ

프레이야 2010-09-25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꽤 오래전 보았던 영화에요. 기억이 가물가물ㅎㅎ
지금 이 나이에 보게 되면 어떤 생각을 갖게 될지 저 자신도 궁금해지네요.^^
오래전 읽었던 책을 세월이 지나 다시 읽게 되면 다른 생각이 드는 것처럼요.
스텔라님의 영화리뷰가 날로날로 좋아요.
그러니 당연 추천이야요!!

stella.K 2010-09-25 19:09   좋아요 0 | URL
오, 프야님, 부끄~ 고워요.^^

oren 2010-09-26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히 여기까지 왔는데,
오래전에 봤던 영화여서 님의 리뷰글을 끝까지 읽게 되었네요.
문득 오늘 어떤 책에서 본 '합리화'가 떠올라 덧붙여봅니다.
******
영화「새로운 탄생(The Big Chill)」에서 제프 골드블럼은,
"합리화는 섹스보다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친구들이 이의를 제기하자 그는 이렇게 묻는다.
"한 번도 합리화를 하지 않고 일주일을 보낸 적이 있는가?"

stella.K 2010-09-26 15:56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오렌님.
일주일은 고사하고 하루라도 합리화 안 할 수만 있어도...ㅋ
 
꼬마 니콜라 - Little Nichol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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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했던 것만큼 아주 재미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충분히 키득대며 볼 수 있는 영화임엔 틀림없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영화의 배경은 요즘이 아닌 듯하다. 6,70년 대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 않을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저 니꼴라의 엄마와 아버지가 생각 보다 늙어 보인다. 요즘에 니꼴라만한 아이를 둔 부모가 저 정도일리는 없다. 아주 늦게 결혼한 것이 아니라면. 요즘으로치면아이가 적어도 중학생 이상이 되야하지 않을까? 옛날엔 뭐든지 지금 보다 나이들어 보였다. 그건 만국공통 같다. 그리고 니꼴라의 부모가 보여주는 심리도 어딜 가나 똑같은 것 같다. 이를테면, 처음엔 사장 부부를 초대해 좋아라 하다가, 막상 초대하려니 이것도 걸리고, 저것도 걸리고 그래서 취소하자고 했다가 남편이 옷도 사 주고 보석도 사 주자 열심히 식사를 준비를 하는 것.을 보면. 그 놈의 있어보여야 한다는 강박이란. 

또한 봉이 김선달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여러가지 잡다한 것들을 섞고 이 물을 마시면 기운이 좋아진다고 허위 광고로 아이들을 현혹시키고 삥뜯기를 하는 니꼴라와 소위 그 일파들. 확실히 아이 때는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그중 이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니꼴라가 엄마가 동생을 가졌을 거라고 믿음 때문에 벌이던 만행들. 거기엔 위에 기술한 내용도 포함이 되어있다. 돈을 벌어 살인청부업자를 고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매번 실수와 불발로 끝난다. 이것은 니꼴라의 친구가 동생을 얻었기 때문인데 그로인해 부모님의 사랑을 더 이상 받지 못할 거란 강한 믿음을 니꼴라에게도 전해줬기 때문이다. 가장 큰 불발은 그 친구가 막상 동생을 얻고보니 나쁜 거 보단 좋은 것을 말하는 것을 듣고 마음을 바꾼 것이라고나 할까? 

이렇게 어렸을 때는 많은 혼란 가운데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허구인가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나 역시도 보면 어렸을 때 그랬던 것 같다. 어른들이 아이들의 행동 거지를 바로 가르치기 위해 여러가지 상상력을 동원했었다. 왜냐하면 그래야 효과가 강력하니까. 예를들면, 어른들은 문지방에 서지 마라고 가르쳤다. 거지가 된다는 것이다. 하긴, 옛날에 거지들은 남의 집 문지방에 서서 먹을 것을 얻기까지 꼼짝하지 않았다. 그러니 역으로 그런 가르침을 줄 밖에. 또한 한숨 쉬지 말라고도 했다. 엄마 죽는다고. 그도 그럴 것이 엄마의 입장에서 우리가 커서 한숨 쉬는 인생이 될까 봐 걱정되어 미리 방패 교육을 시킬 참이었는가 보다. 그러니 니꼴라가 그런 상상을 주입받고 그런 만행을 저지르는 걸 보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가 동생을 보지 않는 것은 자기가 살기위한 굉장한 미션이었으리라. 더구나 동생이 태어나면 아버지가 자신을 숲속에 버릴거란 믿음 때문에 숲으로의 소풍만큼은 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막상 숲에 도착하지 차에서 내리지도 못한 채 문을 잠궈버리지 않던가?  

나에게도 비슷한 가족에 대한 상상이 있다. 예를들면, 우리집은 공교롭게(?)도 2남2녀였는데, 그래서 그럴까? 이담에 크면 언니는 오빠와 결혼을 해야하고, 나는 내 동생과 결혼을 해야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다른 집도 우리와 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건 또한 내가 동생과 소꿉놀이를 같이했던 영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뿐인가? 내가 자랄 무렵엔 TV에서 방영해 주는 만화영화들이 우리나라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것의 거의 90%가 일본에서 들여 온 것인 줄 알았을 때의 그 당혹감이란. 그때 당시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만화는 디즈니의 미키 마우스와 도날드 덕과 더불어 '철인28호'와 '아톰' 그리고 그 유명한 '요괴인간'이라는 것이다. 특히 요괴인간은 내용은 잘 기억이 안 나긴 하지만, 주인공 소년이 정의롭고, 용감해서 신뢰감을 주지만 안타까운 건 알고보면 흉측한 요괴라는 것. 그래서 나는 한동안 나의 가족들도 사실은 알고보면 요괴는 아닐까? 상상한 적이 있다. 그래서 내가 이 속에서 살아 남으려면 최대한 그들이 요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으며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의 가족들을 대할 때 자연스러움이 지나쳐 부자연스러움으로 나타나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는데, 그러면 나의 가족들, 특히 오빠와 동생은 대번에 나의 연극스러움에 "너 왜 연기하냐?"고 대번에 머리를 주워박곤 했다. 사람이 살기 위하여 자연스러워지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고나 할까? 참, 80년 대 중반에 'V'란 미드가 방영했을 때 나는, 이는 필시 제작진들이 '요괴인간'을 보고 본땃음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믿거나 말거나한 소리지만. 

어쨌거나, 이 영화는 친구가 막상 동생을 보고나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고 떠버리는 친구의 말에 니꼴라도 생각을 바꾸게 되면서 해피엔딩으로 끝나긴 한다. 하지만, 모르긴 해도 가족 구성원에게서 받는 혼란스러움은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로 엄마는 결국 니꼴라의 동생을 낳았는데 그 친구처럼 남동생일거라고 굳게 믿었는데 막상 니꼴라의 동생은 여자였다. 그것 때문에 또 얼마나 머리가 혼란스러워지던가? 우리가 현실과 상상을 일치시킨다는 것이 결국 성숙이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 그것은 내 뜻대로만 되지 않더라는 것의 또 다른 일면을 보는 과정과 같은 것은 아닐까? 어렸을 땐 자신의 상상에 현실을 꿰맞출려 했다면, 점점 커 가면서는 현실을 상상에 맞출려다 깨져버리는 과정으로 옮겨 가는 것은 아닐지? 그런 의미에서 니꼴라는 여전히 좌충우돌이고 ing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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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9-24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소설로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영화 개봉하면 코알라랑 보려고 했는데 결국 놓쳤네요.

저두저두... 일본 만화라는 것을 알았을 때, 엄청 충격받았던 기억이 나여.
그 왠수라고 배운! 일본의 만화들을 우리에게 보여주다니! 하면서. ^^

stella.K 2010-09-24 11:03   좋아요 0 | URL
그때의 충격이란...!
그러고 보면 그대와 내가 동병상련이었구려.

영화 괜찮아요. 나중에 코알라랑 dvd로 같이 봐요.^^

2010-09-24 2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4 2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0-09-25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도 책 뿐만 아니고 영화에 관한 취향도 잡식성이시네요.
도무지 깊이와 넓이를 종 잡을 수 없습니다여.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stella.K 2010-09-25 15:20   좋아요 0 | URL
앗, 이건 그냥 생각나는대로 썼을 뿐인데...
고맙습니다.^^
 
사랑니 - Blossom Agai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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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경험이 없지는 않다. 한때 좋아했다 헤어지고, 어느 날, 어떤 장소에서 우연히 알게 된 사람이 옛날에 자신이 좋아했던 사람과 닮았다. 거나 똑같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런데 그 사람을 제3자가 볼 땐 전혀 아닌데 혼자만 그렇다고 믿는 것.  

영화는 그렇게 한 여자의 착각에서부터 시작이 된다. 그런데 더 문제인 것은 그 상대가 17세 미성년자라는 것이다. 여자는 이미 30세인데 말이다. 여자나 남자나 30세는 나름 의미로운 나이일 것이다. 20세는 젊음이 만개할 나이고, 이제야 바야흐로 뭔가를 뜻대로 해 볼 수 있는 나이라고 위풍당당, 자신만만한 나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20대를 살아봤더니 그렇게 당당할 것도 자신만만할 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30세는 실수하지 않고, 좀 더 진지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 30세에 다시 맞게 된 사랑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도 10대 미성념자와의 사랑이라니.  

누군가는 그랬다. 사랑은 미친 짓이라고. 사랑이 어디 이성적으로 다가 온 적이 있던가? 불현듯 다가와 뭔지도 모르게 마음에 불을 질러놓고, 그것을 미쳐 다 감당하기도 전에 또 홀현이 가버리는 것이 사랑이 아니던가? 사랑. 그것에 나이가 있던가? 때가 있던가? 밤낮 구분을 가리던가? 그런데 문제는 새로 시작하는 사랑은 과거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를 영화는 묻고 있는 것 같다. 

하긴, 매번 하는 사랑이 새로워서 좋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새로 하는 사랑은 새로운 불안과 새로운 리스크가 따르기 때문에, 전에 하던 사람과 같으면 얼마나 같을 수 있을까? 다르면 얼마나 다를까 꼭 되짚게 된다. 여자는 첫사랑을 기억하지 않는다고?  그말이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여자는 실패한 것에 연연해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런데 영화는 또한 그렇지 않다는 가정속에서 시작하기도 한다. 

남자가 첫사랑을 잊지 못해한다는 것은, 그때 내가 이렇게 했으면 그녀와 헤어지지 않았을텐데 하는 아쉬움, 그뒤에 감춰진 정복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뭐 그런 것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비해 여지들은 가질 수 없다면 손을 탈탈 털어버리고 마는 그것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여자의 사랑은 더 현실이라고 말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자라고 해서 다시 시작하는 사랑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예전보다 더 분석하고, 두려워하고, 자꾸만 퇴행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데 영화의 주인공 조인영(김정은) 참 헷갈리게도 생겼다.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사랑하게 된 남자친구 수가 교통사고로 죽고, 그녀의 사랑은 자연스럽게 그 죽은 남자친구의 쌍둥이 형제인 석에게로 옮겨 간다. 그렇다면 인영이 정말로 사랑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석이 였을까? 아니면 수를 닮은 석이 였을까? 거기다 영화는 한술 더 떠서, 학원 강사인 인영이 나가는 학원에, 똑같은 이름과 똑같이 생긴 석이란 학생을 좋아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더 꼬인다. 말하자면 인영이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인 석이를 보면서 사춘기 시절에 이루지 못한 사랑을 추억하기도 하고, 그리운 마음을 투사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의 진행이 다소 진부하기도하고,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마추어적이라고나 할까? 

사랑은 나이가 먹음에 따라 성숙해야 하는데 인영의 사랑은 17세 그 나이에서 조금도 자라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사랑은 그렇게 눈이 멀다가도 한 순간 하늘에 안개가 걷히듯 모든 것이 선명해 질 때가 있다. 그것은 헤어진 옛 사랑을 다시 만나게 될 때다. 다시 만나면 잠자고 있던 사랑이 다시 불타 오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것은 남자나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런데도 첫 사랑을 잊지 못해 한다면 아직도 그때에서 벗어나기 싫어하는 앳된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인영이 십몇 년만에 만난 석이는 지금 만나고 있는 석이와 너무도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렇다면 인영이 진짜 사랑한 건 누구인가? 17세에 만난 석이만 사랑했을 뿐, 성인이 된 석이도. 예전에 사랑했던 투사했던 지금의 석이도 아니다. 하지만 17세 때 사랑한 석이도 알고보면 진짜 사랑했던 것도 아니다. 죽은 수 때문에 사랑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인영의 사랑은 집착과 미련에서 시작된 일종의 해프닝 같은 성숙하지 못한 사랑일 수 밖에 없다. 그 모든 것을 일순간 깨달았을 때 그녀가 느꼈을 그 허탈감,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다. 그렇다면 영화를 보는우리도 영원히 사랑의 실체를 붙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모종의 불안감 떨쳐버릴 수가 없다. 사랑인 줄 알았던 상대가 사랑이 아니고, 미움인 줄 알았던 상대가 사랑인 줄 알게 되는 때는 그 사람과 같이 있을 때는 모른다. 그 사람과 헤어져 봐야 알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을 가리켜 존재의 아이러니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미성년자와의 사랑을 그린 영화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전혀 이상하거나 어색하게 흐르지 않는다. 시종 상큼하고, 설레고, 진지한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어 보면서도 과히 나쁘지 않다는 느낌이다. 전체적인 작품 분위기도 마치 감독이 영화를 처음 찍어 보는 양 뭔가 점을 찍듯이 꼼꼼하다는 분위기를 연출한다.(원래 그런 건지, 일부러 그런 건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런데 감히 자신있게 추천은 못하겠다. 그러기엔 아쉽게도 김정은이 청초한 이미지가 다소버거워 보인다. 특히 어린 인영을 맡은 정유미와 대조적여 오히려 그녀의 연기가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아주 형편없는 영화라고도 하지 못하겠다. 그냥 볼만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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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0-09-11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전 정지우의 이 영화 생각보다 참 좋았어요.
영어제목이 더 와닿아요. 이 나이에도 그런 걸 꿈꾸지 않나요?
저도 리뷰 쓴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이놈의 저질 기억력이란ㅎㅎ

stella.K 2010-09-11 17:54   좋아요 0 | URL
ㅎㅎ 확실히 프야님과 저는 좀 다른 것 같아요.
저는 나름 작품이 좋다고 해서 기대를 가지고 봤는데
생각할 거리는 줬는데(사실 저렇게 길게 쓸 생각도 안했는데 쓰다보니)
작품은 좀 그렇더라구요.^^

다이조부 2010-09-11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정은 사진이 참 아름답게 나왔네요~

20대때 좋아하던 여자애가 이 영화를 무척 좋게 봤다고 했는데,

그 친구 생각날까봐 못 보는 영화목록입니다 소심하게시리~ ㄷㄷ

stella.K 2010-09-12 09:10   좋아요 0 | URL
그 여자분 많이 좋아하셨나 봅니다.
영화 내용은 생각할 꺼리를 주긴하는데 말이죠.^^

마녀고양이 2010-09-12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인지 열정인지..... 항상 헷갈립니다. ^^

stella.K 2010-09-13 11:57   좋아요 0 | URL
정말 그렇죠? 흐~

다락방 2010-09-17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였나 스텔라님의 이 글을 보고서는 잽싸게 DVD 보관함에 넣어놨습니다. 사실 이 영화 개봉할 당시에 저는 김정은이란 배우를 좋아하지 않아서 볼 생각도 없었고, 지금도 역시 그 배우를 좋아하지 않긴 하지만 문득 이 영화라면 봐도 좋지 않을까 싶어지더군요.

언젠가 보게 된다면 저는 어떤것들을 느끼게 될지 무척 궁금해졌어요.

stella.K 2010-09-17 14:47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이 영화 보고 뭐라고 페이퍼 쓰실지 궁금해집니다.
제 생각엔 이 작품의 완성도는 그다지 높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안에 내포된 의미는 자못 생각할 것이있죠.
우리가 지금 사랑을 한다면 정말 현재 만나고 있는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맞나?
다시한번 생각하게되고, 약간은 혼란에 빠질지도 모르는...
김정은은 확실히 호불호가 있어요.^^
 
내 남자의 유통기한 - The Fisherman and His W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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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도리스 되리
주연 : 알렉산드라 마리아 라라, 크리스티안 울멘
 

가끔, 돈 없으면 연애도 못하고 결혼도 못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게된다.  사실 그건 일견 맞는 얘기다. 개그콘서트의 '남성인권보장위원회'던가? 거 일명 '남보원'이라는 코너를 보면 되게 웃기긴 한데 사실 맞는 얘기하고 있어, 허를 찔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연애에 있어 남자는 참 취약한 게 많겠구나, 새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어찌보면, 나이들어 연애하는 게 더 안정적일 수도 있을 거 같다. 2,30대 한창 일하고 뭔가의 업적을 쌓고, 돈을 모아야하는 시기에 연애나 결혼은 난제가 아닐 수 없다. 그 나이에 결혼하는 커플들 냉철히 생각해 보면 결국 빚더미 위해서 결혼 서약을 하고, 빚더미 위에서 배우자와의 첫날을 맞이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잘 살면 그나마 다행이다. 못 살겠다고 이혼하면 그것의 기회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비해 나이들어 연애를 하고, 결혼을하면 그래도 좀 낫지 않을까? 경제적으로도 안정되고, 인생의 지평도 넓어져 그만큼 이해의 폭도 넓어지게 된다. 그러니 삐걱거림도 덜할 것이다.  

그런데도 영화나 드라마는 남녀간의 사랑을 다뤄도 꼭 2,30대에 있는 사람을 다루길 좋아한다. 이런 불공평이 어딨나? 중년은 인간도 아니란 말인가? 물론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인생에 있어서 2,30대만큼 인간이 멋있어 보이는 때가 또 있을까?  

사실 영화 <내 남자의 유통기한>이 좋은 것은, 딱 그 나이 대를 그리 돼 너무 낭만적으로만 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이 영화는 한쌍의 남녀 커플이 만나서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사랑을 키워가며, 어떻게 그 사랑이 사그라드는가, 즉 말하자면 '사랑의 생태학'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나이들어 한눈에 반하는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싶다. 그만큼 한눈에 반하는 사랑은 젊어서 하는 사랑의 특권인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다분히 육감적이며, 약간의 위험을 수반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찌 한눈에 반하는 사랑을 거부할 수 있을까? 이들 부부도 여느 커플과 다르지 않게 그렇게 눈이 맞아서 결혼을 했다. 그리고 아이도 낳았다. 둘만 사랑할 때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하지만 역시 부부 사이에 아기가 태어나면 사랑만 가지고 살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그래서 결혼은 사랑과 다르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오히려 그것에 확신을 주기 보다, 과연 그게 얼마나 중요한데?라고 묻는 영화이기도 하다. 다시말하면, 내 사랑에 개인의 경제력이 얼마나 필요하다고 생각하니?라고 묻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눈여겨 봐야할 것은 '집(공간)'이다. 집은 확실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경제력의 상징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주인공 오토와 이다가 결혼을하고 처음 시작한 곳은 집이 아니라 '집차'다. 그들은 그곳에서도 행복했다. 오래 전 읽었던 하루키의 단편 소설 '치즈케잌 모양을 한 나의 가난'이던가? 하는 소설이 생각났다. 워낙 오래 전에 읽어 내용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가난 다시 말하면 사람의 있고 없음이 그저 객체일뿐 주체는 되지 못한다는 걸, 하루키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가 담긴 수작이다. 그와 같이 이들도 가난해도 행복하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면서 부터는 그 낭만적인 집차에서만 지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주인의 눈을 속이고 이다가 만삭이 되어서는 어느 조그만 집에 세 들어 산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인은 아이를 몹시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오토가 수의사라는 점을 들어(정확히 수의사는 아니지만 오히려 해양생물쪽이지만) 주인의 병든 개를 돌봐주고 무사히 위기를 넘긴다. 아무튼 이때까지도 둘은 행복하다. 아이가 태어나서 꼼지락거리고, 목욕할 때 물속에서 헤엄을 치는데 그것을 보고 행복해하지 않을 부부가 어딨겠는가? 

그런데 한편 이다는 직물 디자이너로 승승장구의 길을 걷게 되지만, 그런데 비해 오토의 삶은 별로 발전이 없다. 그냥 해양생물을 연구하며 가끔 다친 잉어를 돌봐주는 정도다.

            

이때부터 이들은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집은 더 넓은 곳으로 이사를 했으며, 바쁜 이다를 위해 오토가 아이를 돌보며 둘은 서로에 대해 불평을 하고, 서로에게 화를 낸다. 이건 여느 부부들이 겪는 것과 똑같다.  잘 되려면 둘 다 잘되면 좋치 않은가? 한쪽이 잘되면 한쪽은 기운다. 그리고 그 기우는 쪽이 아이를 돌보게 되어있다.  

사실 이 영화는 자칫 여자는 사회적으로 성공하면 안되는 것인가를 묻게 만드는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다가 잘 나가자 한때 오토의 친구와 바람을 필뻔 하기도 한다. 물론 여자가 잘 나가면 바람을 핀다는 극단적 해석을 하면 안 된다. 남자나 여자나 사회적 성공을 거두면 거의 대부분의 경우 이런 유혹을 받게 된다. 이다도 예외는 아님을 보여 줄 뿐이다.  오토 역시 아내가 옆에 없으니 성적인 유혹을 뿌리칠수가 없다.  하지만 이들이 나름 현명한 건 각자의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둘은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다는 사실. 하지만 그들은 또 각자 이 사실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음을 각성한다.

이때 묻지 않을 수 없는 건, 과연 사람의 경제력이 사랑에 어느 만큼 관련이 있겠는냐는 것이다. 물론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경제력은 사랑의 본질을 관통하지는 못한다. 분명 사랑해서 결혼하지만, 사랑은 시간이 흐르면 빛을 잃고 자꾸 없는 것에 눈을 돌리고, 마음을 쓰게 된다. 이것은 또 꼭 물질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그것이 어느 정도 만족이 되면, 자녀에게 눈을 돌린다.  내 자식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그렇게 되면 둘의 사랑은 온데간데 없다. 세월이 흐른 뒤에 다시 없던 사랑을 불붙히려 하면 어색하다. 그래서 있을 때 잘하고, 사랑도 길들여야 하는 습관이라고 했나 보다.  

아무튼 이들 부부는 우여곡절 끝에 최고로 좋은 집까지 살아보는 영예를 누렸다. 물론 그것은 단 하루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리고 그들은 다시 자신들이 사랑을 시작하던 그 '집차'로 돌아온다. 객관적으로 보면 한마디로 '쪽박'을 찬 셈이지만 다행인 건 거기서 그들은 잊어버렸던 옛 사랑의 흔적을 찾아내고  오히려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아직도 늦지 않았음을 확인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확실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름다운 기억들의 흔적을 많이 남겨두는 것이 좋은 것 같다. 그래서 길을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다시 옛 기억을 더듬으며 그것이 하나의 실마리가 되어 길을 다시 찾는 것이다. 그래서도 사랑은 길을 잃지 않는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난 이 영화를 아주 유쾌한 기분으로 봤다. 과연 독일식 엉뚱함과 유머가 얼마나 먹힐까 의문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영화는 아기자기하게 잘 만들었다. 어항속의 두 마리 잉어가 대화를 나누는 것도 재밌고, 나중에 이 잉어가 이들 부부를 바꿔 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하며, 또 이 잉어가 개구리로 변신하는 것도 웃겼다. 보면서 너무 가난하도 사랑을 못하고, 결혼을 못할 거란 비관을 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런데도 우린 너무 갖춰서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려고 한다.   

감독이 일본에 대해 상당한 인상을 가졌는가 보다. 어쩌면 그리도 일본풍을 강조하던지.  소소한 웃음이 필요하다면 강력추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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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8-19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세요!

제 친구들을 보니, 30대 중반 이후 사랑은 머랄까,, 희생을 잘 못 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듯 해여. 20대 - 30대 초반까지는 콩깍지가 씌워서, 단점은 모른척 연애를 하는데.. 이후는 나의 것을 포기하지 못 하는 경향이 더 강해진달까요. 콩깍지가 좀 더 씌어야, 연애가 오래갈텐데 하는 안타까운 생각을 조금 했어요.

제 친구들 한정된 이야기일 수도 있어염~~ ^^

stella.K 2010-08-20 11:38   좋아요 0 | URL
하지만 그 단계도 넘어 보세요. 사람만 보입니다.ㅋㅋ

2010-08-19 2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20 1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꿈꾸는섬 2010-08-21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전에 EBS에서 해준걸 본적이 있어요. 저도 참 유쾌하게 보았어요. 아기자기한 맛도 있고, 살다보면 한번쯤 일어날만한 일들이지요.^^ 정말 좋은 리뷰에요.^^

stella.K 2010-08-22 15:05   좋아요 0 | URL
헉, ebs에서요?
하긴 제가 공중파를 잘 안 봐서 어디서 뭘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이 영화 정말 좋았어요. 그죠? 고맙습니다.^^
 
추적 - Sle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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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케네스 브레나
주연 : 주드 로, 마이클 케인

제목이 역시 미스터리나 스릴러를 연상케 한다. 그래서 영낙없는 그쪽 계열의 영화일거라고 생각했다. 원래  미스터리나 스릴러를 딱히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출연 배우만으로도 이건 충분히 보고 싶어졌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해롤드 핀터'가 맡았다고 나고해서 놀라웠다. 해롤드 핀터라면 영국의 유명한 극작가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이 영화는 여타의 그것과는 차별성이 있겠다 싶었다. 

가끔, 영화들 중 연극 대본 같은 시나리오가 있다. 예를들면 <이별의 여섯 단계>(이 영화는 윌 스미스의 초기 영화이기도 하다) 나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 같은 경우가 그렇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들은 실제로 연극 대본을 시나리오로 고쳐서 찍은 영화들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영화 역시 1972년 <발자국>이란 연극을 영화로 찍은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나는 이런 영화들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자다가 횡재한 기분이다.

원제는 sleuth '탐정' 혹은 '형사'다. 한국식 제목도 그렇고, 원제도 그렇고 이런 고감도 스릴러에는 둘 다 맞지 않아 보인다. 추적이라면 쫓고 쫓기는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과연 이 영화에 그런 게 있나? 물론 반전의 반전은 있다. 하지만 그것을 가지고 추적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치 않나? 또한 형사라면 원톱일텐데, 이 영화는 투톱이면서 출연진의 전부다. 이를테면 주드 로와 마이클 케인. 조연도 없다. 물론 형사가 나오기는 한다. 하지만 주드 로가 위장해서 나오는 것뿐 형사가 이야기의 열쇠를 쥐고 있고 마무리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건 추리 작가로 나오는 마이클 케인이다. 

   

 이 영화는 무엇보다 카메라 워크가 독특하다. 첫 장면도 톡특하거니와 뭔가의 등장인물의 속내를 내비치고 싶어하듯 ,전체를 보여주기 보다 부분 부분에 더 많은 포커스를 두고 보여주려고 하고있다. 예를들면 한컷 안에 두 사람을 동시에 보여 주려하기 보다, 이번엔 마이클 케인을 다음 번엔 주드 로를 고루 배치해서 보여주고,  그 중에서도 그 사람의 얼굴, 또 그 얼굴 중에서도 특정 부위(여기선 주로 눈이 해당이 되겠지만)를 보여주고 그런 배우들의 표정을 눈여겨 보라고 권하는 것 같다. 그래서 전체적으론 마치 스토리가 있는 사진을 보는 것도 같다. 

이 영화의 또 다른 독특함은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마이클 케인과 주드 로. 단 두 사람 밖에는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극에서는 일인극도 있고, 이인극도 있지만, 영화에서 단 두 사람만이 88분이라는러닝 타임을 이끌어 간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싶기도 하다.  물론 여자 하나를 놓고 두 남자가 서로 속고 속이는 두뇌 게임을 펼치지만 여자는 끝까지 등장하는 법이 없다.  

 

더구나  앤드류(마이클 케인)의 집이란 한정된 공간만 보여주고 있다. 그것도 주로 실내. 아무리 두 걸출한 배우라고는 해도 두 사람만 보여준다는 건 한계가 있어 보인다. 앤드류의 집은 상당히 럭셔리 하다. 집 자체도 지능적으로 잘 꾸며져 있다. 그야말로 요즘 나오는 똑똑한 집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하다. 그중 거실에서 침실로 올라가는 승강기가 보는이로 하여금 마음을 사로잡는다. 스포일러가 되겠지만, 나중에 틴들 그러니까 주드 로가 앤드류를 복수하려고 가두는 곳이 이 승강기이고,  앤드류 앞에서 까불다 그의 총세례를 맞고 튕겨져 나가 우아하게 죽는 곳도 이 승강기이다. 그러니까 이 승강기는 여러모로 이 영화에선 쓸모가 많다.  

이 영화는 말했던대로 여자 하나를 두고 본남편과 내연남이라는, 두 남자의 3전2승제의 싸움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 싸움에서 이긴 자가 여자를 차지하게 된다.  여자의 남편되는 앤드류는 이대로 순순히 여자를 내어줄 수 없다는 쪽이고, 내연남인 틴들은 여자가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다는데 굳이 여자를 갖고 있어 뭐하냐고 뻔뻔스럽게 나온다. 그러다 틴들이 된통 당하는, 한마디로 '용감한 자가 미인을 차지 한다'로 시작해서 '남의 집 여자를 탐하지 마라'로 끝나는 영화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는 추리 작가다. 아무리 노련한 배우라고 해도 추리 작가의 치밀하고 대범함을 어찌 감당하겠는가? 더구나 상대는 자존심 강한 늙은 남자다. 늙었다고 얕보지 마라. 세상을 좀 더 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패기의 젊음이가 아니라 세상 살기에 능수능란한 늙은 사람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결말은 좀 모호하다. 원래 홈그리운드의 잇점이라고 젊은 틴들이 늙은이의 집에 와서 죽는 건 어찌보면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앤드류가 틴들에게 총을 쐈던 건 질투도, 겁없이 까불어서도 아니다. 오히려 앤드류의 동성애적 성향을 틴들이 냉소했기 때문인데 쏜 것이다. 약간은 삼천포로 빠진 것 같아 아쉽다.  

게다가 별로 들어나지는 않지만, 여자가 내연의 남자가 실컷 놀아나다 다시 자기 남편에게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것도 섞연치 않다. 그 돌아가겠다는 이유가 남편이 돈이 많아서인데 역시 그 이유 때문에 남편에게로 돌아오겠다면 여자는 모르긴 해도 싸움만 부추기고, 백치미를 제대로 갖춘 여자인 듯 싶기도 하다. 그래도 난 위에서 열거한 이 영화의 독특함 때문에 이런 시시콜콜함을 들어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주드 로의 1인2역도 볼만했지만(난 이 배우 잘 생기기도 했지만 연기도 곧잘 한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마이클 케인을 위한 영화란 생각이 든다. 배트맨 시리즈에서 집사인 조역으로 나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존재감이란 그것을 훨씬 뛰어 넘는다.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 배트맨에서 조역을 마다하지 않았다는 것에서 무한 신뢰가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긴, 배트맨에서 주인공을 맡을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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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2010-08-16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롤드 핀터의 작품이라는 사실에서 관심이 가네요.

stella.K 2010-08-16 14:21   좋아요 0 | URL
헤롤드 핀터를 아시는군요. 나름 멋진 영화였어요.
꼭 한번 보세요.^^

마녀고양이 2010-08-16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이클 케인,, 참 멋지고 좋은 배우예요.
검색해보니 2000년 기사 작위도 받았네요. 정말 그럴만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주드 로, 지난번에 내이름은 알피 라는 영화를 보고 깔깔댄 기억이.. ㅋ
은근히 매력적이죠?

stella.K 2010-08-16 15:56   좋아요 0 | URL
오, 그래요? 그 영화에선 웃기게 나오나 보죠? 주드 로.
한 번 뵈야겠군요.
마이클 케인은 정말 그럴만 하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