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의 유통기한 - The Fisherman and His Wif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감독 : 도리스 되리
주연 : 알렉산드라 마리아 라라, 크리스티안 울멘
 

가끔, 돈 없으면 연애도 못하고 결혼도 못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게된다.  사실 그건 일견 맞는 얘기다. 개그콘서트의 '남성인권보장위원회'던가? 거 일명 '남보원'이라는 코너를 보면 되게 웃기긴 한데 사실 맞는 얘기하고 있어, 허를 찔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연애에 있어 남자는 참 취약한 게 많겠구나, 새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어찌보면, 나이들어 연애하는 게 더 안정적일 수도 있을 거 같다. 2,30대 한창 일하고 뭔가의 업적을 쌓고, 돈을 모아야하는 시기에 연애나 결혼은 난제가 아닐 수 없다. 그 나이에 결혼하는 커플들 냉철히 생각해 보면 결국 빚더미 위해서 결혼 서약을 하고, 빚더미 위에서 배우자와의 첫날을 맞이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잘 살면 그나마 다행이다. 못 살겠다고 이혼하면 그것의 기회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비해 나이들어 연애를 하고, 결혼을하면 그래도 좀 낫지 않을까? 경제적으로도 안정되고, 인생의 지평도 넓어져 그만큼 이해의 폭도 넓어지게 된다. 그러니 삐걱거림도 덜할 것이다.  

그런데도 영화나 드라마는 남녀간의 사랑을 다뤄도 꼭 2,30대에 있는 사람을 다루길 좋아한다. 이런 불공평이 어딨나? 중년은 인간도 아니란 말인가? 물론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인생에 있어서 2,30대만큼 인간이 멋있어 보이는 때가 또 있을까?  

사실 영화 <내 남자의 유통기한>이 좋은 것은, 딱 그 나이 대를 그리 돼 너무 낭만적으로만 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이 영화는 한쌍의 남녀 커플이 만나서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사랑을 키워가며, 어떻게 그 사랑이 사그라드는가, 즉 말하자면 '사랑의 생태학'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나이들어 한눈에 반하는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싶다. 그만큼 한눈에 반하는 사랑은 젊어서 하는 사랑의 특권인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다분히 육감적이며, 약간의 위험을 수반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찌 한눈에 반하는 사랑을 거부할 수 있을까? 이들 부부도 여느 커플과 다르지 않게 그렇게 눈이 맞아서 결혼을 했다. 그리고 아이도 낳았다. 둘만 사랑할 때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하지만 역시 부부 사이에 아기가 태어나면 사랑만 가지고 살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그래서 결혼은 사랑과 다르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오히려 그것에 확신을 주기 보다, 과연 그게 얼마나 중요한데?라고 묻는 영화이기도 하다. 다시말하면, 내 사랑에 개인의 경제력이 얼마나 필요하다고 생각하니?라고 묻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눈여겨 봐야할 것은 '집(공간)'이다. 집은 확실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경제력의 상징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주인공 오토와 이다가 결혼을하고 처음 시작한 곳은 집이 아니라 '집차'다. 그들은 그곳에서도 행복했다. 오래 전 읽었던 하루키의 단편 소설 '치즈케잌 모양을 한 나의 가난'이던가? 하는 소설이 생각났다. 워낙 오래 전에 읽어 내용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가난 다시 말하면 사람의 있고 없음이 그저 객체일뿐 주체는 되지 못한다는 걸, 하루키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가 담긴 수작이다. 그와 같이 이들도 가난해도 행복하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면서 부터는 그 낭만적인 집차에서만 지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주인의 눈을 속이고 이다가 만삭이 되어서는 어느 조그만 집에 세 들어 산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인은 아이를 몹시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오토가 수의사라는 점을 들어(정확히 수의사는 아니지만 오히려 해양생물쪽이지만) 주인의 병든 개를 돌봐주고 무사히 위기를 넘긴다. 아무튼 이때까지도 둘은 행복하다. 아이가 태어나서 꼼지락거리고, 목욕할 때 물속에서 헤엄을 치는데 그것을 보고 행복해하지 않을 부부가 어딨겠는가? 

그런데 한편 이다는 직물 디자이너로 승승장구의 길을 걷게 되지만, 그런데 비해 오토의 삶은 별로 발전이 없다. 그냥 해양생물을 연구하며 가끔 다친 잉어를 돌봐주는 정도다.

            

이때부터 이들은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집은 더 넓은 곳으로 이사를 했으며, 바쁜 이다를 위해 오토가 아이를 돌보며 둘은 서로에 대해 불평을 하고, 서로에게 화를 낸다. 이건 여느 부부들이 겪는 것과 똑같다.  잘 되려면 둘 다 잘되면 좋치 않은가? 한쪽이 잘되면 한쪽은 기운다. 그리고 그 기우는 쪽이 아이를 돌보게 되어있다.  

사실 이 영화는 자칫 여자는 사회적으로 성공하면 안되는 것인가를 묻게 만드는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다가 잘 나가자 한때 오토의 친구와 바람을 필뻔 하기도 한다. 물론 여자가 잘 나가면 바람을 핀다는 극단적 해석을 하면 안 된다. 남자나 여자나 사회적 성공을 거두면 거의 대부분의 경우 이런 유혹을 받게 된다. 이다도 예외는 아님을 보여 줄 뿐이다.  오토 역시 아내가 옆에 없으니 성적인 유혹을 뿌리칠수가 없다.  하지만 이들이 나름 현명한 건 각자의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둘은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다는 사실. 하지만 그들은 또 각자 이 사실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음을 각성한다.

이때 묻지 않을 수 없는 건, 과연 사람의 경제력이 사랑에 어느 만큼 관련이 있겠는냐는 것이다. 물론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경제력은 사랑의 본질을 관통하지는 못한다. 분명 사랑해서 결혼하지만, 사랑은 시간이 흐르면 빛을 잃고 자꾸 없는 것에 눈을 돌리고, 마음을 쓰게 된다. 이것은 또 꼭 물질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그것이 어느 정도 만족이 되면, 자녀에게 눈을 돌린다.  내 자식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그렇게 되면 둘의 사랑은 온데간데 없다. 세월이 흐른 뒤에 다시 없던 사랑을 불붙히려 하면 어색하다. 그래서 있을 때 잘하고, 사랑도 길들여야 하는 습관이라고 했나 보다.  

아무튼 이들 부부는 우여곡절 끝에 최고로 좋은 집까지 살아보는 영예를 누렸다. 물론 그것은 단 하루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리고 그들은 다시 자신들이 사랑을 시작하던 그 '집차'로 돌아온다. 객관적으로 보면 한마디로 '쪽박'을 찬 셈이지만 다행인 건 거기서 그들은 잊어버렸던 옛 사랑의 흔적을 찾아내고  오히려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아직도 늦지 않았음을 확인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확실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름다운 기억들의 흔적을 많이 남겨두는 것이 좋은 것 같다. 그래서 길을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다시 옛 기억을 더듬으며 그것이 하나의 실마리가 되어 길을 다시 찾는 것이다. 그래서도 사랑은 길을 잃지 않는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난 이 영화를 아주 유쾌한 기분으로 봤다. 과연 독일식 엉뚱함과 유머가 얼마나 먹힐까 의문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영화는 아기자기하게 잘 만들었다. 어항속의 두 마리 잉어가 대화를 나누는 것도 재밌고, 나중에 이 잉어가 이들 부부를 바꿔 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하며, 또 이 잉어가 개구리로 변신하는 것도 웃겼다. 보면서 너무 가난하도 사랑을 못하고, 결혼을 못할 거란 비관을 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런데도 우린 너무 갖춰서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려고 한다.   

감독이 일본에 대해 상당한 인상을 가졌는가 보다. 어쩌면 그리도 일본풍을 강조하던지.  소소한 웃음이 필요하다면 강력추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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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8-19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세요!

제 친구들을 보니, 30대 중반 이후 사랑은 머랄까,, 희생을 잘 못 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듯 해여. 20대 - 30대 초반까지는 콩깍지가 씌워서, 단점은 모른척 연애를 하는데.. 이후는 나의 것을 포기하지 못 하는 경향이 더 강해진달까요. 콩깍지가 좀 더 씌어야, 연애가 오래갈텐데 하는 안타까운 생각을 조금 했어요.

제 친구들 한정된 이야기일 수도 있어염~~ ^^

stella.K 2010-08-20 11:38   좋아요 0 | URL
하지만 그 단계도 넘어 보세요. 사람만 보입니다.ㅋㅋ

2010-08-19 2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20 1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꿈꾸는섬 2010-08-21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전에 EBS에서 해준걸 본적이 있어요. 저도 참 유쾌하게 보았어요. 아기자기한 맛도 있고, 살다보면 한번쯤 일어날만한 일들이지요.^^ 정말 좋은 리뷰에요.^^

stella.K 2010-08-22 15:05   좋아요 0 | URL
헉, ebs에서요?
하긴 제가 공중파를 잘 안 봐서 어디서 뭘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이 영화 정말 좋았어요. 그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