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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 Sex, Lies, and Videotap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 감독 : 스티븐 소더버그 |
| 주연 : 제임스 스페이더, 앤디 맥도웰 |
이 영화를 보려고 나름 애를 썼는데 여간해서 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또 이렇게 포기하고나니 생각보다 쉽게 보게 되었다. 뭐든지 때가 있다더니 그 말이 맞는가 보다. 원래 영화 볼 줄 안다는 사람들 의 영화목록표에서 결코 빠지지 않는 영화가 이 영화일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영화를 볼 줄 안다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저렇게 섹스를 노골적으로 제목으로 단 영화는 취미가 없다. 하지만 왜 영화 볼 줄 아는 사람의 영화목록표에 이 영화가 빠지지 않는가? 그것이 알고 싶을 뿐이었다. 게다가 내가 스티븐 소더버그를 아주 좋아하느냐면 그런 것도 아니다.
사실 그는 미국 비주류 영화계에서는 내로라하는 영화감독이다. 누구는 그가 천재라고까지 칭송을 한다. 하지만 난 주류든, 비주류던 '미국적인 걸'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역시 이 감독이 천재인지 아닌지엔 별로 관심이 없다. 물론 그의 영화(들)를 아주 미치도록 좋아한다면 그 말에 동의하는데 주저함이 없겠지. 단지 내가 소더버그를 싫어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건 그의 독특함, 주류에 섞이지 않는 그만의 세계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보여준다는 점에선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예전에 여성학 강의를 들으면서, 결혼이 갖는 여러가지 특징 가운데 하나는 섹스를 합법적으로 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사실 내가 이 강좌를 들은 건 20세기니, 작금에 들어와서 이 말이 얼마나 구식으로 들릴지 안 봐도 비디오다. 누구는 그러겠지, 섹스는 꼭 결혼이 아니어도 합법적으로 할 수 있다고. 결혼 보다 더 우선시 되야하는 것은 사랑과 신뢰가 아니겠냐고. 결혼해서 자기 배우자와 섹스를 합법적으로 할 수 있다고 해서 거기에 사랑과 신뢰가 있는지 없는지 어찌알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누구는 섹스는 배설 또는 이완가 같은 것이란 좀 더 진보적이고 자유주의적 사고관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21세기에 섹스를 결혼에만 국한 시킨다는 건 얼마나 시대착오적 발상이겠는가? 하지만 이런 디지털 시대에도 종이 신문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수적인 시각은 여전히 공존한다.
그도 그럴 것이, 섹스가 보수적이어서 인간이 불행하다고 말할 수도 없지 않은가? 누구는 섹스가 보수적이어서 재미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섹스 리스 부부는 또 얼마나 많은가? 비근한 예로 오래도록 같이 살아 온 부부는 꼭 오누이지간 같아서 섹스할 맛이 안난다고 한다. 아니할 말로, 오빠와 또는 누이동생과 섹스하는 사람 봤냐고 오히려 반문을 하는 것이다. 섹스는 그런 것이다. 영화에서 앤과 존처럼. 앤은 말하지 않는가? 꼭 부부라고 해서 섹스를 해야 하는 것이냐고? 그리고 자신은 한번도 남편과의 섹스에서 만족을 느끼지 못했노라고 말 하기도 한다. 또 실제로 존도 그것을 인정하지만 특별히 불만은 없는 '척'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섹스는 짜릿할수록 좋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찾아 나서길 주저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존은 아내 대신 처제인 로라와 대범한 섹스를 하지 않는가? 물론 대부분의 로라의 유혹에 넘어가는 경우가 많지만. 또한 로라는 형부에게서 성적 희열을 느낀다. 한마디로 이는 마치 서로 먹고 먹히는 사슬처럼 얽혀있다. 그런데 이 같은 세 사람의 관계에 우연인지 필연인지 끼어들게 된 것은 존과 대학을 같이 다닌 그레이엄이다. 하지만 독특하게(?)도 그는 성불구자다. 대신 그는 섹스에 관한 인터뷰를 비디오 테이프에 녹화하는 일을 한다. 일종의 연구 프로젝트의 한 과정이다.
그런데 이 비디오 테이프를 앞에 놓고 벌이는 각 등장인물의 진실 게임이 만만찮게 흥미롭다. 형부에게서 희열을 느낀다는 로라는, 알고 보면 언니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형부와 섹스를 하는 것이며, 언니인 앤이 남편과 섹스를 하지 않는 것은, 섹스에 흥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실은 동생과 남편이 섹스를 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레이엄이 성불구라는 것도 거짓말이다. 그것은 대학 때 존이 그레이엄의 애인을 건드렸기 때문에 그에 대한 상처로 성불구를 자처했을 뿐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 인터뷰에 응한 앤과 인터뷰 도중 비디오 녹화를 중단하고 섹스를 하게된다. 그후 앤은 존에게 이혼을 결심하고, 그 때문에 화가 난 존은 모든 것이 그레이엄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그에게 화를 내지만, 아내와 그레이엄이 섹스한 사실 때문에 그는 절망한다. 그리고 대학시절 존이 그레이엄의 애인을 건드렸던 건, 그레이엄이 사랑을 온전히 지켜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비난한다.
이 영화는 그야말로 완벽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어찌보면 섹스는 눈이 멀었기 때문에 어디로 불똥이 튈지 모르는 예측불허의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에도 '끌리는 걸 어떻게 하냐'고 말하지 않던가? 하지만 그렇게 무책임한 말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섹스의 짜릿함만을 쫓다 결국 패가망신의 전형을 이 영화는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누구는 섹스는 자유롭게 말해지고 표현되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지 못해 부작용의 사례를 들이대면서. 하지만 섹스를 얼마나 많이 말하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얼만큼 잘 말하느냐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말주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도덕성, 순결성을 말하는 것이다. 영화에서나 상업성의 논리로 마치 섹스는 출구를 잃은 것마냥 마구 무분별하게 다뤄지고 혹사당해 왔다. 물론 이 영화는 섹스에 대한 보수적인 계몽 영화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섹스의 도덕적인 측면과 부도덕적인 측면을 함께 다루었다는 점에서 탁월하게 잘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