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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니 - Blossom Agai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그런 경험이 없지는 않다. 한때 좋아했다 헤어지고, 어느 날, 어떤 장소에서 우연히 알게 된 사람이 옛날에 자신이 좋아했던 사람과 닮았다. 거나 똑같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런데 그 사람을 제3자가 볼 땐 전혀 아닌데 혼자만 그렇다고 믿는 것.
영화는 그렇게 한 여자의 착각에서부터 시작이 된다. 그런데 더 문제인 것은 그 상대가 17세 미성년자라는 것이다. 여자는 이미 30세인데 말이다. 여자나 남자나 30세는 나름 의미로운 나이일 것이다. 20세는 젊음이 만개할 나이고, 이제야 바야흐로 뭔가를 뜻대로 해 볼 수 있는 나이라고 위풍당당, 자신만만한 나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20대를 살아봤더니 그렇게 당당할 것도 자신만만할 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30세는 실수하지 않고, 좀 더 진지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 30세에 다시 맞게 된 사랑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도 10대 미성념자와의 사랑이라니.
누군가는 그랬다. 사랑은 미친 짓이라고. 사랑이 어디 이성적으로 다가 온 적이 있던가? 불현듯 다가와 뭔지도 모르게 마음에 불을 질러놓고, 그것을 미쳐 다 감당하기도 전에 또 홀현이 가버리는 것이 사랑이 아니던가? 사랑. 그것에 나이가 있던가? 때가 있던가? 밤낮 구분을 가리던가? 그런데 문제는 새로 시작하는 사랑은 과거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를 영화는 묻고 있는 것 같다.
하긴, 매번 하는 사랑이 새로워서 좋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새로 하는 사랑은 새로운 불안과 새로운 리스크가 따르기 때문에, 전에 하던 사람과 같으면 얼마나 같을 수 있을까? 다르면 얼마나 다를까 꼭 되짚게 된다. 여자는 첫사랑을 기억하지 않는다고? 그말이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여자는 실패한 것에 연연해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런데 영화는 또한 그렇지 않다는 가정속에서 시작하기도 한다.
남자가 첫사랑을 잊지 못해한다는 것은, 그때 내가 이렇게 했으면 그녀와 헤어지지 않았을텐데 하는 아쉬움, 그뒤에 감춰진 정복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뭐 그런 것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비해 여지들은 가질 수 없다면 손을 탈탈 털어버리고 마는 그것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여자의 사랑은 더 현실이라고 말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자라고 해서 다시 시작하는 사랑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예전보다 더 분석하고, 두려워하고, 자꾸만 퇴행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데 영화의 주인공 조인영(김정은) 참 헷갈리게도 생겼다.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사랑하게 된 남자친구 수가 교통사고로 죽고, 그녀의 사랑은 자연스럽게 그 죽은 남자친구의 쌍둥이 형제인 석에게로 옮겨 간다. 그렇다면 인영이 정말로 사랑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석이 였을까? 아니면 수를 닮은 석이 였을까? 거기다 영화는 한술 더 떠서, 학원 강사인 인영이 나가는 학원에, 똑같은 이름과 똑같이 생긴 석이란 학생을 좋아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더 꼬인다. 말하자면 인영이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인 석이를 보면서 사춘기 시절에 이루지 못한 사랑을 추억하기도 하고, 그리운 마음을 투사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의 진행이 다소 진부하기도하고,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마추어적이라고나 할까?
사랑은 나이가 먹음에 따라 성숙해야 하는데 인영의 사랑은 17세 그 나이에서 조금도 자라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사랑은 그렇게 눈이 멀다가도 한 순간 하늘에 안개가 걷히듯 모든 것이 선명해 질 때가 있다. 그것은 헤어진 옛 사랑을 다시 만나게 될 때다. 다시 만나면 잠자고 있던 사랑이 다시 불타 오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것은 남자나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런데도 첫 사랑을 잊지 못해 한다면 아직도 그때에서 벗어나기 싫어하는 앳된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인영이 십몇 년만에 만난 석이는 지금 만나고 있는 석이와 너무도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렇다면 인영이 진짜 사랑한 건 누구인가? 17세에 만난 석이만 사랑했을 뿐, 성인이 된 석이도. 예전에 사랑했던 투사했던 지금의 석이도 아니다. 하지만 17세 때 사랑한 석이도 알고보면 진짜 사랑했던 것도 아니다. 죽은 수 때문에 사랑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인영의 사랑은 집착과 미련에서 시작된 일종의 해프닝 같은 성숙하지 못한 사랑일 수 밖에 없다. 그 모든 것을 일순간 깨달았을 때 그녀가 느꼈을 그 허탈감,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다. 그렇다면 영화를 보는우리도 영원히 사랑의 실체를 붙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모종의 불안감 떨쳐버릴 수가 없다. 사랑인 줄 알았던 상대가 사랑이 아니고, 미움인 줄 알았던 상대가 사랑인 줄 알게 되는 때는 그 사람과 같이 있을 때는 모른다. 그 사람과 헤어져 봐야 알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을 가리켜 존재의 아이러니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미성년자와의 사랑을 그린 영화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전혀 이상하거나 어색하게 흐르지 않는다. 시종 상큼하고, 설레고, 진지한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어 보면서도 과히 나쁘지 않다는 느낌이다. 전체적인 작품 분위기도 마치 감독이 영화를 처음 찍어 보는 양 뭔가 점을 찍듯이 꼼꼼하다는 분위기를 연출한다.(원래 그런 건지, 일부러 그런 건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런데 감히 자신있게 추천은 못하겠다. 그러기엔 아쉽게도 김정은이 청초한 이미지가 다소버거워 보인다. 특히 어린 인영을 맡은 정유미와 대조적여 오히려 그녀의 연기가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아주 형편없는 영화라고도 하지 못하겠다. 그냥 볼만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