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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남쪽 - South of the Borde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예전에 반공의 시대 때 북한에서 누군가가 귀순을 했다면 굉장한 이슈가 되곤했다. 특히 김신조 씨의 귀순은 각 매스컴마다 대서특필이 되어서, 역시 우리 남한한 살기 좋은 나라구나 어깨가 으쓱해지곤 했다. 하긴 어렸을 때니 나를 있게해 준 모든 환경에 어찌 고마워하지 않을 수 있으랴?
하지만 지금은 탈북자들이 너무 많아 이들을 수용할 마땅한 대안이 없어 고민할지경이다. 특히 우리나라(남한)같이 경쟁이 심하고, 편견도 심한 나라에서 과연 그들이 잘 적응해 살까? 그게 은근 걱정이 된다. 그런데 그것에 앞서 그들의 시각에서 과연 남한은 그들이 기대하는 것만큼 살기 좋은 곳이라고 정말 인정하는지? 그것이 묻고 싶어지기도 한다.
물론 남한 사회에서 성공한 탈북자가 없지는 않겠지만 그것은 극소수에 불과할뿐, 남한 사람이 남한을 느끼기에도 퍽퍽하다고 느끼는데 그들은 오죽할까 싶다. 그래서 부끄럽고, 그래서 웬만하면 북한을 탈출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감히 말하고 싶어진다. 아무리 남한이 좋다고는 하지만 자기 살던 곳에 비할까? 어떻게 가족 일가부치를 그곳에 두고 올 생각을 할까? 사는 것이 무엇이길래. 그런 생각을 하게되는 것이다.
그들 개인으로선 북한에 더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절박함이 탈북을 하게 만들겠지만, 국가적으로 볼 때 남한이든 북한이든 통일을 그다지 바라는 것 같지도 않다. 그러기엔 비용이 만만치 않고 분단된지 60년인데 통일 됐을 때의 혼란도 만만치 않을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럴바엔 전쟁의 위협만 받지 않는다면 북한도 웬만큼 살게 어느 정도 지원해 주고, 우리나라도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고 상호공존 방향이 모색되고 있지 않는가? 또 이것이 민주주의적 사고방식이라고 까지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사실은 개인주의겠지만.
그래도 세상이 좋아지긴 좋아졌다. 과거 반공의 시대엔 감히 이런 생각조차 말하지 못했더랬다. 이런 경직된 사고를 가지고 평화통일 우논하는 것도 좀 우습긴 하지만.
이 영화는 한마디로 좀 안타까운 영화이긴 하다. 제목에서 암시하는 바는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건 확실히 북한 사람이 남한을 보는 시각에서 만들어지고 붙여진 이름이라는 점에서 제목은 나름 매력적이고 진지함마저 느껴지기도 한다. 게다가 그 드라마 잘 만들기로 유명한 안판석PD가 메가폰을 잡았다니 끌리기도 한다.
하지만 확실히 드라마와 영화는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는 것을 감독은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뭔가에 쫒기듯 생략법을 너무 많이 썼다는 느낌이 든다. 하나 내용상에서 생각해 볼 건, 저 북의 남녀가 사랑을 이룰 수 없는 것은 단순히 저들의 엇갈린 운명 때문일까? 아니면 역대로 남과 북의 지도자를 잘못 만난 탓 때문일까?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한 나라는 지도자를 잘 만나야 번영을 누리고 잘 살 수가 있다. 하지만 그탓을 전부 지도자 탓으로 돌릴 수 없는 건, 그렇게 번영을 누리고 잘 살면 사람은 반드시 나태하게 되어있고, 권태를 느끼며, 방탕의 길로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뭔가에 절박하고 애절한 뭔가를 가지고 있어야 빛이나는 법이다. 사랑스러운 법이다.
그런데 그놈의 생략법 때문에 저 두 남녀의 사랑은 빛을 바라지 못했고, 절절한 애절함을 담보로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지도 못했다. 하다못해 김선호(차승원 분) 일가가 사선을 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면, 그 절박함이 관객들에게 어떤 감동을 선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는 줄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역시 생략됐다. 그나마 조금 인간적으로 보인 건 김선호(차승원 분)가 착한 서경주(심혜진)와의 성실한 삶의 묘사라고 할까? 영화의 헛점을 매울 수 없으니 자꾸 플래시백을 사용하는 것도 역효과를 낳기는 마찬가지다.
그래도 우리의 차승원 나름 이 영화에선 선전했다는 생각이 든다. 북한의 다소 밋밋하고 매력없는 인간상을 잘 소화해 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어렵게 다시 만난 이연화(조이진 역)를 다시 만나 자신이 이미 결혼했다는 사실을 내내 밝히지 못하다가, 하나원 철사 담장을 넘어 피를 철철 흘리며 마음에도 없는 대사를 뇌까리는 장면은 정말 실감나게 연기했다.
올해로 6.25 한국전쟁이 일어난지 60년이 되었다. 역사적 사건은 쉽게 잊혀지는 법은 아니겠지만 우리나란 아직도 이것을 과거에 두지못하고 현재에도 이 문제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벌써 전쟁을 알지 못하는 3세대 4세대가 이 땅을 살아가고 있는데, 그들은 이 분단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모르겠다. 현재에도 해결되지 못한 과거의 문제를 끌어 안고 여전히 긴장하며 살아 가는 것이 더 좋은 것인지? 아니면 그런 건 과거의 역사적 사건으로 보고 약간은 나른한 평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 좋은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