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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 - 김제동의 헌법 독후감
김제동 지음 / 나무의마음 / 2018년 9월
평점 :
그게 벌써 1년된 일이구나.
작년, 운이 좋아 주진우 기자가 이명박의 비리를 추격한(파헤친) 책이 나와 북콘서트에 간적이 있었다. 그때 게스트로 그가 나왔다. 평소 그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던, 나는 그의 진가를 거기서 처음 알았던 것 같다. 어찌나 사람의 혼을 빼놓던지 게스트가 그렇게 훌륭하면 주인공이 기가죽는 법이다. 물론 그렇다고 기가 죽을 주 기자도 아니겠지만. 물론 그날 그도 알았던 것 같다. 자신이 메인이 아니고 게스트란 걸. 그래서 그리 오랜 시간 무대를 장악한 건 아니지만 확실히 예사롭지는 않았다.
그리고 1년여 후, 그는 이 책을 가지고 독자들을 공약하러 나섰다. 바로 얼마 전 북토크쇼에 메인이 됐던 것. 공히 말하건데 TV에 나온 그는 상당히 점잖게 나오는 것이다. 라이브에 강한 가수가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라이브 토크에 강한 사람이 있다는 건 그때 또 처음 알았던 것 같다. 원래 예정이 1시간이었는데 거의 2시간을 무대를 장악하고 있었으니까. 그것도 게스트 없이 혼자서. 좌중을 들었다 놨다 하는데 과연 대단하다 싶었다.
주진우 때 헌법을 술술 외워서 속으로 야, 대단하다 했다. 외우는데 잼병인 나는 그저 부러울 밖에. 그런데 알고 봤더니 헌법이 그렇게 크고 두꺼운 책이 아니었다. 어른 손바닥만한 크기에 30쪽 내외나 되려나? 그런 것이었다. 물론 난 여전히 못 외울 것이긴 하지만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외울 수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무대 밥 먹고 사는 사람이야 당연히 외우지 않을까?
그는 헌법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헌법 내용을 사랑하기도 하지만 그 문체가 좋다고 했다. 어쩌면 그리도 딱딱 떨어질 수 있는지. 어쩌면 그리도 아름다울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시 대신 법전을 읽는다던 김훈 작가가 생각났다. 작가의 단문이면서 딱 떨어지는 명징한 문장은 법전을 읽은 영향이 크다고 했다. 그랬구나. 문득 법전은 고사하고 헌법이 어떻게 씌여있는지도 몰랐던 내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법이라는 건 어느 특정 계층을 위한 거지 나같은 일개 시민이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 그런 생각을 했고, 그런 게 아니어도 난 법에 대해선 도통 모르겠으니 일단 그것에 저촉이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조용히 살아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야 말로 법 없이도 살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책을 보면 그가 언제 헌법 전도사요 예찬자인지 놀랄 정도다. 과연 그는 언제부터 그러고 살았던 걸까? 의문스럽기도 했다. 사실 우리나라에 법에 관한 대중서가 의외로 찾아보면 많다. 그것들은 다 법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썼을 것이다. 법을 대중에 알리려는 그들의 노력은 가히 눈물겹다고 생각한다. 나도 몇년 전 그런 류의 책을 읽은 기억이 있다. 하지만 솔직히 재미있었던 건 아니다. 물론 그런 걸 재미로 읽을 수는 없다. 쉽게 접근하려고 여러 가지 사례를 곁들이긴 했지만 기억에 남는 건 거의 없다. 왜 읽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물론 이런 책은 어떻게 써져 있을까 궁금하긴 했다. 하지만 그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문득 왜 우리나라 법조인은 김제동처럼 쓰지 못할까를 생각했다. 우리나라 법이 얼마나 잘 생겼는지를 일깨워주는데서부터 시작해야 맞는 거 아닌가? 법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어떤 법에 이런 사례가 있다는 것만 딥따 알려주려고만 있으니 뭐 꼭 나쁜 건 아니지만 좋은 것도 아니었다. 내 필요나 지적 욕망을 자극하지 않으면, 우리가 뭐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 싶기도 하다. 사례를 보여줌으로 흥미를 유발하려고 했지만 지나고보면 그것도 주입식이었단 생각이 든다. 그럴 바엔 차라리 법정 드라마를 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내가 일찌감치 접어둔 직업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법조인이었다. 물론 그만한 깜냥도 못 되지만 그 어마어마한 법을 어떻게 다 외울까 싶어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런데 어쩌면 법은 외우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건 아닌지를 생각하게 만든 것도 이 책 때문이다. 책의 기획이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헌법을 가지고 에세이를 쓰려고 하다니. 가히 깜찍하단 생각도 들었다. 그것도 법조인도 아닌 (일개의)연예인이! 하긴 그래도 김제동이나 하니까 읽어 볼 생각도 하지 않을까? 어느 알지도 못하는 법조인이 썼다면 읽을 마음이 이토록 간절하진 않았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책 참 독특하다. 물론 전혀 어렵지 않다. 그 특유의 웃김말도 깨소금처럼 뿌려져 있다. 문체는 시종 구어체다. 그것까지는 이해한다. 그런데 읽고 있으면 그 특유의 사람을 위로하는 화법이 느껴진다. 더 나아가선 사실 우리나라 헬조선, 헬조선 하지만 사실 알고보면 우리나라도 좋은 나라야 그러는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잘 생긴 헌법을 가지고 있으니까 하면서. 거기에 이랬으면 좋겠어요, 저랬으면 좋겠어요 하는 그의 바람이 더해졌다. (그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많이 정제된듯 하다. 토크쇼에 참여해 본 바에 의하면).
우린 법을 모른다고 해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가 그랬다. 헌법은 우리를 지켜주기 위해 있는 것이지 우리가 지키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고.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납세의 의무와 국방의 의무 정도 밖에 없다고 했다. 나머지는 나라가 할 일이고 위정자가 할 일이라고. 오히려 위정자들이 헌법에 명시된대로 하고 있는지 지켜보라고도 했다. 그러므로 법 앞에서 위정자들 앞에서 절대로 쫄지 말라고. 아, 그게 얼마나 위로가 되던지.
이책 참 괜찮은 책이다. 읽으면 위로 받는 느낌이 들것이다. 그리고 읽는 사람에 따라 부럽다 못해 살짝 샘이 느껴질 수도 있겠다. 나는 이상하게도 좀 그랬다. 그 이유는 말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