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대통령이 나쁜 대통령 된다
황상민 지음 / 푸른숲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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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대통령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적이 또 있을까? 정부 수립 이후 대통령이 재임 중 탄핵되는 초유의 사태는 확실히 충격적이다. 그러면서 정치에 거의 관심이 없었던 나도 기회 있을 때마다 대통령 후보들의 TV 토론을 챙겨보곤 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그 어느 때 보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선거가 될 것이고, 그 어느 때 보다 투표 참여율이 높을 거라고. 왜 안 그러겠는가? 이전까지 사람들은 후보들을 보고 대충 마음 끌리는 대로 한 사람에게 투표를 하였을 것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던 대충 알아서 잘 해 줄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런 줄만 알았던 대통령들이 대를 거듭할수록 점입가경이다. 이래서야 쓰겠는가? 그런데도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위기감, 문제의식은 가져야하는 걸 알겠는데 대통령에게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를. 그냥 싸잡아서 비난하고, 무슨 문제만 있으면 광화문에 나가 촛불시위나 하면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다하는 걸까?

 

선거 때만 되면 각 후보들마다 앞 다퉈 자서전 내지는 자전에세이들을 출간한다. 그러면서 그것을 통해 자신의 치적을 자랑하고 자신이 얼마나 진실한지를 선전한다. 물론 이 방법이 아니면 자신을 알릴 방법이 없어서 하는 줄은 이해 못할 것도 없다 치자. 그래서 나라꼴이 어찌됐단 말인가? 그런 애국지사가 어디 그 사람 한 사람이겠는가? 그러면 좀 나아져야 할 텐데 갈수록 혼란스럽기만 하다. 물론 아직도 그런 책을 좋아하고 추종하는 사람이 있긴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책 보다는 이 국가적 위기를 타고 우리는 나라에 대하여 또는 대통령에 대하여 무엇을 요구해야 할 것인가를 얘기하는 책들이 눈에 띄게 많이 나왔다. 이 책도 그런 책중의 하나다.

 

사람들은 대통령 선거 때만 되면 들 끊다가 당선인이 확정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간다. 어떤 이는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돼서 좋기도 하겠지만 어떤 사람은 비록 원하는 사람이 된 건 아니지만 그가 잘 해 줄 줄 믿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 임기 2, 3년차만 되면 여기저기서 못마땅한 비판의 소리를 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말이 틀리지 않는다. 그런 말도 있지 않는가? 우리나라 국민은 모두가 정치 평론가라고. 정치를 비판할 줄 모르면 대화에 끼지도 못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누가 대통령이 되던 지간에 항상 대통령을 저격한다. 그런데 저자가 책에도 언급했지만, 그렇다면 어떤 대통령, 어떤 정부가 되길 바라냐고 물으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것이다.

 

지난 20년간을 보더라도 대통령의 하나같은 공통점은 처음엔 정말 나라를 구할 영웅이 되어 청와대에 입성하지만 초라한 모습으로 임기를 마치고 나온다. 이걸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 한간엔 그런 말도 있었다. 국민들이 정치 평론가가 돼서 하도 욕을 들어먹는 바람에 기가 쪼그라져 나오는 거라고. 그 말도 틀리지는 않겠지만 다 맞는 말도 아니다. 그렇다면 대통령과 국민의 공통분모는 어디서 찾으면 좋을까?

 

저자가 그런 말을 한다. 정치는 결혼과 같은 거라고. 결혼할 때 상대에 대해 콩깍지가 씌는 것처럼 대통령도 그렇단다. 거의 맹목적으로 사람을 좋아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얘기도 한다. 결혼할 때 무작정 이유 없이 좋아서 결혼하지 말라고. 사랑하는데 무슨 이유가 있겠냐고 말하는 쪽은 주로 낭만주의자나 사랑의 순수함을 믿는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좀 합리적일 필요가 있긴 하다. 우리나라가 유교문화권이 되놔서 그런지 자기 욕망을 웬만해서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상대는 잘 모를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라는 게 있단다. 자기 욕망을 확실히 드러내면 나중에 그 욕망이 바뀌더라도 최소한 자신이 무엇에 만족했는지 분명히 알기에 크게 실망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통령도 그러지 않을까? 그저 막연하게 이미지가 대통령을 잘 할 것 같아서 그런 걸로 투표하지 말고 원하는 바를 확실히 드러내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에 뽑히는 대통령은 전 대통령의 전적이 있어서 그 어느 때 보다 대통령하기가 어려울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일견 맞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우린 전직 대통령의 국정농단을 보면서 그 어느 때보다 정치와 대통령을 바라보는 눈이 높아졌다. 그러니 앞으로의 대통령은 얼마나 잘 할 것인지 일거수일투족이 예사롭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맞는 말일까? 국민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면 의외로 간단할 수도 있다. 적어도 국정을 농단하지 않을 것. 소통할 것. 민의가 무엇인지를 무시로 살필 줄만 안다면 그것만으로도 5년 후 퇴임 때 수고하였노라고 박수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저자가 마지막에 이런 말을 한다. 먹고사는 데 열심히 신경 쓸 수 있다면, 적어도 내가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고 거기에만 초점을 두고 잘할 수 있도록 해준다면 그건 정치인이 정치를 아주 잘한다는 뜻이란다. 그건 맞는 얘기다. 추운 날 열일을 제쳐두고, 쉬어야 할 때 쉬지 못하고 지방에서 버스와 기차 타고 광화문 촛불 집회에 참여하는 게 좋은 나라일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다른 잘 사는 나라의 국민은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한다. 뭐 여야가 서로 싸울 거 싸우고, 시정할 거 시정하고 국민을 위해 대신 일해 주는데 무슨 정치 걱정을 하겠는가. 우리도 좀 그래봤으면 좋겠다. 물론 그렇게 되면 나라에 대한 공이 정치인들에게만 돌아가는 것 같아 좀 그런가?

 

지도자의 리더십이 문제다. 지도자의 리더십에 문제가 생기면 나라가 붕괴의 위기를 겪을 수 있다. 가끔은 대통령이 이렇게 문제니 대통령은 꼭 있어야 하는 건가 회의가 들 때가 있다. 그러나 대통령 없는 나라도 있단 말인가? 이번에도 후보들은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새 공략 쏟아내더만 어떤 후보가 대통령이 되건 과연 대통령되면 다 지킬 건가 의문이다. 그리고 설혹 대통령이 되지 못한다고 해도 자신이 한 말을 지켜 행하는 정치가가 있다면 그건 복 받은 나라일 것이다. 저자 말마따나 나라를 하나의 큰 기업으로 보자면 국민은 주주다. 어느 기업이든 주주가 갑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대통령이 슈퍼 을이다. 이거 문제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한다. 근데 정말 그 말이 맞는 건지 모르겠다. 정말 제왕이 들으면 억울하지 않을까? 제왕이라면 제왕이 되는 공부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르치는 학문과 덕망을 갖춘 제상이 있었을 것이고. 그런데 박근혜에게 그것을 가르친 스승이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말인데, 대통령학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나는 새로운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하기 전에 아니 입성한 후에도 이것을 공부했으면 좋겠다. 어느 대통령이건 자기 전공과 업적 가지고 권좌를 차지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대통령이 돼서는 끝내 무능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걸 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 더 이상 보고 싶지가 않다.

 

미국은 우리나라 보다 역사도 짧은데 긍지로 여기는 대통령은 몇이나 배출했는지 모른다. 우리나라는 뭔가? 추억삼아 얘기할 대통령은 있어도 정신적 사표가 될 만한 위대한 대통령은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다. 언제쯤이면 그런 대통령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용두사미의 대통령 보단 처음은 미약하나 후일엔 창대한 대통령이 더 보기 좋은 거 아닌가? 이번에 기대해도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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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03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근혜가 드라마 보느라 공부를 했겠어요. ㅎㅎㅎ

예전에 서울국제도서전 때 박근혜가 책을 산 적이 있었잖아요. 과연 박근혜는 그 책들을 읽었을까요? 알라딘이 ‘대통령이 읽는 책‘이라고 홍보했던 게 기억이 납니다.

stella.K 2017-05-03 13:50   좋아요 0 | URL
헉, 그런 일이 있었니? 근데 왜 난 몰랐지?ㅋㅋ
알라딘도 참...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대통령들 공부 잘 안하나 봐.
김대중 대통령은 늘 책을 가까이 했다는데 말야.
암튼 박근혜에게 제왕적 어쩌구 하는 거 언어 선택을
잘못 하는 거라고 생각해.
 
여혐민국
양파(주한나) 지음 / 베리북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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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떤 사람(물론 남자)과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가 무산된 적이 있다.

그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지지 광화문 촛불집회가 거의 종반을 향해 가고 있었던 때였다. 그는 촛불집회 초기 때부터 참석했었고, 나는 그때까지 탄핵은 지지했지만 아직 한 번도 참석을 못했기 때문에 집회도 참석할 겸 만나기로 한 것이다. 약속을 정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가 되면 내가 안 됐고, 내가 되면 그가 안 되고. 아무튼 그렇게 어렵게 잡은 약속인데 느닷없이 일방적으로 약속이 뒤집어진 것이다. 왜 그런가 했더니 그 이유가 좀 걸작이다. 그때 내가 무슨 말 끝에 그날 맛있는 것 사 주세요.”라고 했는데 그 말 한마디가 그의 기분을 상하게 했던 것이다. 순간 어찌나 어이없고 당황스럽던지.

 

그런데 왜 나의 그 말 한마디가 그의 기분을 상하게 했던 것일까?

(그것도 나중에 알았던 건데) 그의 말이, 집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방에서 쉬지도 못하고 추위를 무릅써 가며 참석하고 있는지, 하다못해 몸이 불편한 장애자조차도 들것에 실려서까지 참석하고 있는 마당에 어떻게 그렇게 (속편하게) 맛있는 거나 사 달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그에게 나는 그리 친하지도 않은 남자에게 맛있는 거나 사 달라고 아양이나 떠는 개념 없 여자였던 것이다.

 

말이란 원래 앞뒤 문맥을 잘 따져봐야 하는 것이고, 같은 말이더라도 남자와 여자가 받아들이는 게 다를 수 있다는 걸 그때 난 새삼 깨달았다. 앞서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밥 먹고 집회에 참석하자고 하기에 난 그저 마무리조로 그 말 한마디를 보탰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개념 없는 여자로 둔갑해 있었던 것이다. 부모가 돌아가 곡을 해도 밥은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야 그 힘으로 곡을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 사람에겐 현 시국이 밥도 편하게 못 먹을 시국이었던 모양이다. 그럼 밥 소리나 하지 말지. 모르긴 해도 이 사람은 전생에 나라를 구하려다 못 구한 사람이었나 보다.

 

그때 그는 자신의 말에서 내가 무엇인가를 깨달아 주길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인 내가 느껴야 했던 건 (애석하게도) 그가 바랐던 것과 일치하지 않았다. 아니 일치할 수 없었다. 원래 상처 주는 사람은 잘 모른다. 내가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지 안 주는지. 주면 얼마나 주는지. 받는 사람만 아는 문제다. 만일 정 내키는 것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액면 그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유를 찾았어야 했다. 왜냐하면 난 참혹하게도 그에게서 맨스플레인을 보았으니까.

 

이 사람뿐이 아니다. 남자들은 자신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던, 페미니즘을 옹호하든 그렇지 않든 맨스플레인을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남자들이 그 상황에서 그 사람처럼 반응하는 것도 아니다.

 

또 그런 그의 태도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건, (어떤 의미로든) 자신과 같은 생각이 아니면 상대하지 않겠다는 뭔가의 결기 같은 것도 느꼈는데, 언제나 그렇듯 그것은 뒤집으면 상대로 하여금 어떤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이왕 말나온 김에) 알다시피 같은 시간 서울역에선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나는 처음에 이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죄상이 이렇게 명백한데 어떻게 탄핵을 반대할 수 있을까? 하지만 얼마 있지 않아 한 가지 깨달았던 건, 모든 것엔 절대적이라 건 없고 선택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하다못해 죄상을 바라보는 시각조차도 절대적인 것은 없으며 상대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선택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선택을 강요하는 건 얼마나 위험한가? 그것은 또 너와 내가 같은 생각이 아니면 배타적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탄핵을 지지 또는 반대하는 것에도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으며 한 가지로만 규정되지 않는다. 이 서로의 다름을 우린 얼마나 인정하고 포용하며 사는 걸까?

 

어쨌든 그런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아는 지인을 만났다. 그녀는 공교롭게도 탄핵을 반대하는 쪽이었다. 그녀는 비교적 확고해 보였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자신도 언젠가 한 번 탄핵지지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지지자들 중엔 정말 지지해서라기 보단 알바들이 대거 많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등 뒤에서 불평과 앓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다(그것이 사실이라면 탄핵 반대 측에도 그런 알바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조장하는 건 아무래도 정치꾼들이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사람이 생각이 났다.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그 사람도 알고 있는 걸까? 문득 그의 나를 향한 맨스플레인도 그렇지만 약속을 뒤집을 만큼 탄핵을 지지했던 그의 투쟁이 숭고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좋은 의미는 아니다.)

 

나의 지인은 또 한 가지 이유를 들었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여자여서 당하는 설움도 있을 거라는 것이다. 그건 거의 절대적여 보였는데, 자신이 여자로 일하면서 남자들에게 당했던 설움을 그런 식으로 투사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건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정을 농단한 죄가 가벼울 수 있다는 걸까? 그래서 안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런 건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역대 대통령들은 국정을 농단한 적은 없는가? 이 질문이 얼마나 바보 같은지는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국정 비리를 바로 잡기 위해 박근혜가 필요했다면 그것을 피해갔던 전직 대통령을 다시 소환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렇게 쉬어야 할 때 쉬지 못하고 추위를 무릅쓰고, 장애자로서 들것에 몸을 의지하면서까지 광장으로 모여들었을 때 과연 그들은 어디 있었는가.

 

탄핵 지지자들 중엔 역대 전직 대통령의 천문학적이고도 역사적인 비리와 농단을 생각하면 박근혜를 감방에 보내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이냐라고 묻는 사람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 (하다못해 그냥 전직 대통령 예우 차원에서 가택연금 정도도 괜찮은 거 아니냐는 것이다.) 물론 탄핵 반대자들은 아직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러는 건 너무 심하다는 건 당연한 거고. 그밖에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었지만 지면상 더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겠다.

 

나는 정치에 관해선 별로 아는 바가 없어서일까? 어떤 식으로든 정치에 대해 확고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 보면 좀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어떻게 저렇게 확고할 수 있을까? 이 말을 들으면 이 말이 옳고, 저 말을 들으면 저 말이 옳기도 한데 어떻게 그렇게 빠른 시일 내에 선택을 하고 노선을 정하는지 모르겠다. 그래. 대다수의 바람대로 박근혜는 구속이 됐다. 그러면 된 건가? 나는 아직도 마음이 복잡하다.

 

그러던 중 나는 며칠 전, 오랜만에 어떤 책의 저자와의 만남에 다녀왔다. 그것은 이번 국정농단과 탄핵 과정을 최초 보도한 한 명의 방송 기자와 두 명의 작가로 구성된 공동 저자들과의 만남의 자리였다. 내가 그 모임에 참석했던 건 거리상 가까워서이기도 하지만 위에서 밝힌 것처럼 난 아직도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것인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혹시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간 것이다. 그런데 마침 이 책을 읽고 있어서일까? 왠지 모르게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부조리한 것들 몇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물론 전체적인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시종 진지함과 유머를 잃지 않았으니 그만하면 훌륭했다고 본다. 공동저자 3인방은 스마트함은 물론이고, 일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게 나에겐 아주 좋아 보이지만은 않은 건 뭐 때문일까?

 

그들은 자기네들만 소개 받는 것이 멋쩍었는지 두 명의 저자가 더 있다며 젊은 여성 작가 둘을 더 소개했다. 그들이 같은 테이블에 있지 않은 것을 보면 모르긴 해도 보조 작가였나 보다. 물론 나이가 그 3인방 보다는 어렸으니 같이 앉아 있기가 뭐했나 보지. 자리도 비좁고. 또 어떤 부분 나대지 않는 겸손의 미덕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그래서 일의 강도는 그 테이블의 3인방 보다 덜 했을까? 이것도 짐작이지만, 그렇지는 않았을 거다. 단순히 여자고 나이가 젊었으니 그러고 지나간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식으로 언제나 여자는 보조 역할이다.

 

그들은 그 책을 쓰기까지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유머와 여유로움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특별히 정부수립 이후 현직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는가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헌법에 관련된 책들은 모조리 훑었다는 말에 과연 그들의 열정과 노력은 인정해 줄만 했다. 그러면서 자신들도 이번 기회에 헌법에 대해 새롭게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좋았다는 겸손함도 잊지 않았다.

 

그런 것을 보면 그들이 이번 국정농단과 탄핵에 얼마나 고민이 많았는지 또 방송에서 한 치의 오류도 없이 객관성과 공정성을 전달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난 여전히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앞서 말했듯 나는 이번 국정농단을 어떻게 봐야하는지를 그 시간 조금이라도 떨어버리려고 했는데 오히려 더 깊어지는 건 무엇 때문일까? 그건 지금의 혼란스러움은 아무래도 국정농단과 박근혜를 같이 보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국정농단이란 관점에서 보자면 누구도 이것을 피해 가거나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여자라고 해서 봐줘야할 이유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더 이상 고민할 것이 없다.

 

그런데 이 세상의 모든 법과 제도는 누가 만들었는가? 하다못해 한 나라의 엄중한 헌법조차도. 탄핵 반대자들 중에 그들이 결코 놓지 못하는 프레임 중 하나는 박근혜가 바로 남성들에 의해 만들었을 이 법과 제도에서 작두(?)를 탓다는 것일 게다.

 

물론 이 말을 간단히 무시해도 좋다. 여자이기 때문에 동정을 받아야 하는 건 여자인 나도 원치 않는 일이다. 그런 식으로 짚어 들어가면 정의란 아예 존재치 않는 것이 되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우린 헌정 사상 그 유래가 없는 일을 겪으면서 (겨우) 헌법의 엄중함을 깨닫는 기회를 가졌다. 어떻게 갖게 된 기회인가? 그것은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계기도 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촉구한다. 어물쩍 덮어갔던 살아있는 전직 대통령의 재임시절 국정 비리와 농단사건을 헌법이란 이름으로 재수사 해야 마땅하다. 그래야 공평한 것 아닌가?

 

, 헌정 사상 전직 대통령을 재수사하는 것이 합당하냐 하지 않느냐를 위해 또 헌법 책을 뒤져야하는 것이 두려운가? 오늘 날 한국의 페미니즘은 그것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공동저자 3인방)은 이번 대통령 투표 팁도 더불어 알려줬는데 간단하다.

사실 헌법은 A4 용지 열 몇 장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중 헌법 전문은 한 장도 되지 않는다. 누구를 뽑을지는 그 전문을 읽어보고 그것에 적합하거나 조금이라도 근접해 있는 후보를 찍으라고 한다. 쉬운 일이 될 수도 있고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확실한 것 하나는 있다. 이번 대선에서 100%는 아니지만 98% 이상은 남자가 대통령이 될 확률이 아주 높다는 것. 그리고 이번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는 국민으로 하여금 헌법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니, 적어도 그것을 바로미터 삼아 이번에 당선된 대통령은 헌법을 준수하며 국정을 잘 운영하고 있는가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이 책은 내 기대엔 좀 못 미쳤다. 사이다 같다고 했는데 별로 그런 것 같지도 않다. 페미니즘이라고 해도 좀 진보적인 느낌이 들어 어느 부분 나도 여자지만 약간은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부분도 있었다.

 

가끔 지하철을 이용할 때가 있다. 타 보면 노약자와 임산부 보호석이 따로 지정되어 있다. 물론 그게 없는 것 보단 있는 것이 낫긴 한데 설마 이런 것 가지고 우리나라가 복지국가라고 보는 일은 없겠지 싶다. 솔직히 진짜 복지 국가가 되려면 이런 구분은 없어져야 한다. 왜 그런지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좌석이 노약자 보호석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중요한 건 장애자와 비장애자가 언제나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

 

물론 나는 여성을 장애자로 비유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래 전, 여성학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여성학의 전제는 언젠간 없어질 학문이라고 해서 정식 학문이 아니라고 했다. 진짜 페미니스트가 들으면 화날 일인지도 모르겠다. 여성학이란 학문이 학문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면 이거야 말로 여성 소외 아니냐며. 하지만 언젠가란 미래형 전제가 있다. 그건 여자가 남자와 동등한 권리를 누리게 될 때를 말한다. 물론 요원한 일이니 여성학은 웬만해서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전제는 언제나 유효하다.

 

여성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때로 급진적이고 전사적인 행동도 취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러다 보면 아직도 만연한 반페미니즘과의 충돌은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결국 인간 삶의 대전제는 남자와 여자의 조화와 평화로운 공존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나는 비록 이 책이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미워할 수는 없다.                     

 

미소지니(misogyny)가 여성혐오라고 번역되었는데, 번역이 잘못된 건 아니지만 한국어로 받아들이면 오해하기 좋은 어감이다. 그러나 미소지니는 실제로 혐오 보다는 ‘차별‘이나 ‘멸시‘에 가까운 의미를 담는다. 따라서 여자가 일삼는 여성혐오란 곧 자기혐오이며, 자기멸시인 것이다.(52p)

딜브레이커(deal-breaker)라는 단어가 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진짜 아니다., 라며 포기하는 무언가를 가리킨다. ......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딜브레이커가 있다. 날 호구로 보고 이용해도 되지만 내 외모를 가지고 놀리면 안 돼. 혹은 술 마시고 날 때리는 건 괜찮지만 바람 피우는 건 받아들일 수 없어 뭐 그런.
대선 후보에게도 당연히 딜브레이커는 있고, 그건 사람마다 다르다. 이회창의 경우는 ‘군대‘였다. 아들이 군대에 가지 않았다는 것이 한국 유권자에게는 딜브레이커였다. 그래서 생각지도 않은 후보가 당선이 되었다. 반근혜 대통령의 경우는 최순실이 딜브레이커였다. 아무리 자유한국당(구 새누리당)을 지지하고 싶어도 대통령이 저렇다면 지지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오게 하는 기준선이다(118~11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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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7 2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04-28 14:18   좋아요 1 | URL
탄핵을 보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있더군요.
님의 생각도 맞는 얘기죠.
근데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보면 이렇게도 생각이 든다는 거죠.^^

꼬마요정 2017-04-28 14:30   좋아요 1 | URL
아, 그냥 제 관점이구요 ㅎㅎ 폰으로 쓰다가 잠시 딴 일하고 와서 중간 문장 빠졌어요ㅠㅠ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겠군요. 요거 진짜 중요한 문장인데 없어졌네요 ㅠㅠ

cyrus 2017-04-27 2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급진적이든 점진적이든 페미니즘이 실천하는 방식이 다르더라도 다 같은 목표로 향한다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점진적 방식을 선호하지만, 상황에 따라 급진적 방식을 선택할 겁니다.

stella.K 2017-04-28 14:38   좋아요 0 | URL
나도 그렇게 생각해.
급진은 그것을 이루어 가는 과정 중 하나일 뿐이지.

와, 근데 다시 봐야겠는데?
상황에 따라 급진을 택하겠다니.
네가 페미니스트였다는 걸 잊고 있었네.흐흐

cyrus 2017-04-29 06:53   좋아요 1 | URL
저를 페미니스트로 바라보지 않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그런 시선에 신경쓰지 않지만, 페미니즘 관련 문제를 인식하는 태도와 사회를 개선하려는 과정의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너는 페미니스트가 아니야! 페미니스트인지 의심된다‘ 식으로 나오는 반응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stella.K 2017-04-29 15:34   좋아요 0 | URL
그건 그렇지.
그런데 언제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있었나?
내가 모르는 뭔가가...?!

cyrus 2017-04-30 16:02   좋아요 0 | URL
별 일 아닙니다. ‘남성 페미니스트’라면 겪게 되는 상황입니다. ^^;;

stella.K 2017-04-30 18:14   좋아요 0 | URL
뭔지 짐작이 간다.ㅠ

페크pek0501 2017-04-29 15: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정치적으로 (아주 예민하게) 열을 내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님이 쓰신 다음의 글과 관련이 있습니다.

˝자신과 같은 생각이 아니면 상대하지 않겠다는 뭔가의 결기 같은 것도 느꼈는데, 언제나 그렇듯 그것은 뒤집으면 상대로 하여금 어떤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 좋은 글입니다.

stella.K 2017-04-29 15:43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그런 사람들이 많은 것 같더군요.
평소엔 아무 일 없는 것 같다가도 정치 얘기만 하면 돌변하는.

장항준 감독과 김은희 작가가 부분데
지지하는 후보가 다르더군요.
잘은 모르겠지만 그거에 대해 그냥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봐요.
한 가족 내에서도 지지하는 후보가 똑같아야 한다는 거
좀 심한 거 아닌가요?
 
프랑스 시노그라퍼 - 1975-2015 공연.영화.전시 공간을 창조하는 사람들
뤼크 부크리스 외 지음, 권현정 옮김 / 미술문화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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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가물에 콩 나기로)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러 가는 때가 있다. 조명이 켜지고 배우가 등장할 때까지 그 무대는 온전히 하나의 공간을 보여준다. 그게 어느 집 거실일 수도 있고, 을씨년스러운 어느 바닷가 모레 사장일 수도 있으며, 19세기 어느 귀족의 집이나 중세 어느 성당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런 공연물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이런 무대장치가 극이 진행됨에 따라 어떻게 쓰이고 변화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공연물(오페라도 마찬가지겠지만)은 종합예술로서 한마디로 예술에 관한 모든 것들이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룰 때야 비로소 하나의 작품이 되는 된다. 그러니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가 없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이 모든 것들이 무엇을 위한, 또한 누구를 위한 작품이어야 하는 것이다.

예전에 나는 작가로 연극에 참여해 본 사람으로서 작품의 가장 첫 작업을 맡은 작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뭐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는다는 측면에서 그런 생각도 그리 잘못된 생각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작품이든 그 작품이 결국 맨 마지막에 도달해야 할 대상이 누구냐라는 것을 생각할 때 그건 온전한 대답이 되지 못한다. 물론 작품이 추구해야 하는 작품성, 예술성은 온전히 작가의 몫이긴 하겠지만 그것의 완성은 결국 배우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가 아무리 뛰어난 작품을 써도, 연출가가 아무리 뛰어난 연출을 한다고 해도 배우가 온전히 그 작품과 배역을 전달하지 못한다면 그건 완전한 작품이 될 수가 없다. 물론 그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배역을 잘 할 수 없다면 그것을 잘할 수 있는 배우를 섭외하면 된다. 그러나 그런 최악을 상황을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모두는 프로라는 관점에서 각자가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할지를 유기적으로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결국 마지막 결론은 그렇게 나올 것이며 그래야 관객이 감동하는 결론도 나올 것이다. 그래서 연극은 배우를 위한 예술이라고 했는가 보다.

시노그라피는 한마디로 말하면 무대디자인 또는 무대장치 등으로 설명될 수 있는 단어다. 그리고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시노그라퍼라고 한다.

흔히 우리는 그런 공연물을 볼 때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 무대 디자인을 얼마나 눈여겨보는지 모르겠다. 물론 눈여겨 보긴 할 것이다. 아무리 배우가 중요하다지만 어떤 무대에서 공연하느냐에 따라 그 배우가 빛나 보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당장 요즘의 드라마나 영화를 봐도 그렇다. 배우도 배우지만 한눈에 들어오는 무대 세트를 보면 눈을 빼앗길만하다. 그러나 처음에만 그렇지 결국 우리의 관심은 이내 배우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다. 물론 조금 더 관심의 영역을 넓혀서 누가 연출했는지, 누가 작품을 썼는지 정도는 알고 있는 것이 하나의 예의가 되었다.   

이 책은 비록 프랑스에 국한되어 있긴 하지만 시노그라퍼들의 대략적인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을 보니 나는 무대 디자이너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분야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 분야에 대한 대중서가 나왔다는 건 확실히 흥미롭긴 하다. 하지만 과연 대중에 관심을 끌 수 있는지는 지금으로선 판단하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 프랑스의 시노그라퍼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흥미로울 수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한계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나라 무대도 못지않게 화려하고 창조적이어서 그것을 이해 못할 정도는 아니다.

이 책은 1975년에서 2015년의 작품 경향을 보여주고 있는데 시대를 굳이 나눌 필요가 있을까 싶게 옛 시대의 작품들도 요즘에 봐도 전혀 손색이 없다.   
  
이 책은 글은 최대한 절제하고 각각의 시노그라퍼들의 대표작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는 시노그라퍼란 무엇인지 또는 작업을 할 때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하는가를 인터뷰식으로 간략하게 소개해 놨다. 대답이 여러 가지이긴 하다. 누구는 드라마트루기의 관점에서 작품에 대한 이해와 상상력을 넓혀 가려고 했고, 어떤 사람은 연출가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작업을 한다고 했으며, 어떤 시노그라퍼는 배우를 많이 생각하며 작업을 한다고도 했다. 또 어떤 사람은 아예 연출을 겸하도 하고, 어떤 사람은 철학자이기도 하다. 

이렇게 대답은 여러 가지일 수도 있지만 그들의 하나 같은 공통점은 공연이란 커다란 작품을 앞에 놓고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누가 알아주겠는가. 관계자들 외엔. 그들은 기꺼이 공연에 녹아들고 스며들어야 하는 존재임을 스스로 자인한 존재들이었다. 공연이 끝나면 없어져야 하는 무대장치다. 공간 예술이라 어디에 영구 보존하기도 어렵다. 장소를 대여하는 것이니 대여 기간이 끝나면 어쨌든 철거를 해야 한다. 보존을 하려면 사진 같은 기록물로 보관하던가 아니면 그 작품이 레퍼토리화해서 어디선가 계속 공연이 되면 그에 따라 그 무대디자인은 함께 갈 수도 있겠지.

이제 좀 시노그라퍼들에게도 관심을 갖고 그들에게도 쳐줄 박수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들의 작품은 웬만한 미술작품 못지않다. 그리고 상당히 매혹적이다. 이런 무대에서 공연하는 배우는 절로 연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 감탄할 정도다. 이왕 연극에 발을 들여놓았다면 작가 같은 거 하지 말고 배우를 하면 좋겠다. 이렇게 배우를 위하는 사람이 많은데 배우는 정말 축복받은 직업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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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16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화가들도 전업 화가가 되기 전에 무대 디자인 일을 한 적이 있고, 화가가 돼서도 무대 디자인 일을 했어요. 화가의 손길을 닿은 무대 디자인도 예술로 인정해야 합니다.

stella.K 2017-04-16 18:42   좋아요 0 | URL
정말 사진 보면 그림이야.
그 그림속에서 사람이 살아 움직인다고 생각해 봐.
진작 그림을 배우지 못하고 무대 디자인을 못 배운 것이 아쉽더군.
이 책에 나온 사람과 그의 시노그라피는 빙산의 일각이겠더군.
우리네 같은 사람은 새끼 손가락으로 쿡 한 번 찍어
맛 본 것에 불과해.ㅠ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 나만의 질문을 찾는 책 읽기의 혁명
김대식 지음 / 민음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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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어느 날부턴가 사람이 싫어졌다고 했다. 그것은 인간이 수치스럽고 쪽팔려 서란다. 홀로코스트, 십자군 전쟁, 몽골군의 바그다드 함락, 난장 대학살, 상대성원리와 게놈의 비밀을 이해하려는 호모사피엔스가 어느 날 무모하고 어리석어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인간 대신 책을 선택했고 몇 년 동안 미친 듯이 책을 읽었다고 한다. 저자의 사춘기적 이야기다. 그리고 그맘때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그렇게 거창한 역사적 사건을 가지고 무모하고 어리석다고 생각하진 못했지만, 비슷한 나이에 인간이 시시해서 책을 붙들었던 것도 사실이니까.

어쨌든 이 책은 그렇게 읽어나간 저자의 책과 사유의 기록이다. 쉽게 말하면 서평집 같은 거다. 하지만 알다시피 저자 김대식은 전문 서평가가 아니라 뇌과학자다. 뭐 뇌과학자라고 해서 서평을 쓰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런데 저자의 서평 쓰기가 좀 남다르긴 하다. 보통 그렇게 책에 대한 책을 쓰는 작가들은 한 권의 책을 집중 분석하고 자신의 감상이나 사유를 쓰는데 반해 이 책은 어느 생각 깊은 철학자의 단편 에세이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평소  두 권 정도의 책을 같이 읽는 경우가 많은데 마침 이 책과 함께 읽었던 책이 활자가 좀 빽빽한 책이었다. 처음 이 책을 받아들었을 때 3백 쪽이 넘어 두 권을 같이 읽어주려면 눈 꽤나 아프겠군 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이 책은 쪽수만 많지 의외로 여백이 많아 읽는데 부담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겹쳐서 읽게 되는 경우 좋긴 하지만 이 책 자체로 놓고 볼 때 뭐 이렇게까지 만들 필요가 있을까 싶게 종이 낭비가 심해 보인다. 요즘엔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본다'라는 개념에 맞게 활자보단 여러 가지 다양한 이미지를 차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런 걸 좋아하는 독자도 있긴 하겠지만 나는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아직까지는 활자 활용도가 많은 책이 좋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나의 기대를 만족시켜주지는 못했다.

게다가 김대식하면 우리나라 지식계 아이돌은 아닐까? 뭐라고 부르던 그가 엄청 똑똑한 사람이란 건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러니 외국어는 얼마나 잘 알겠는가? 사실 나는 지금까지 알아주는 작가의 서평집 서 너 권은 읽어보긴 했는데 이렇게 미출간된 책까지 섭렵하고 쓰는 사람은 김대식이 처음은 아닐까 한다.

물론 뭔가에 대해 말하는 것에 있어서 출간된 책이면 어떻고 미출간된 책이면 어떻겠는가? 그런데 나도 한국 사람이긴 한가 보다. 우리나라 사람들 지식에 대한 열등감이 그렇게도 많다는데 외국어 하면 거의 까막눈 수준이면서 저자가 미출간된 책 가지고 논하고 있으니 뭔가 모를 넘사벽 같은 위화감이 확 느껴진다. 차라리 열등감이면 나았을까? 설령 그 책이 번역되어 나와 있어도 내가 사 볼 확률은 그리 높지는 않아 보인다. 그런데도 이미 번역된 책 가지고 얘기하는 것과 이렇게 번역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언제 번역될 거라는 기약도 없는 책 가지고 논하고 있으니 작가와 독자가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게다가 이 책이 전문 서적이라면 또 그럴 수도 있다고 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누가 봐도 대중서로서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데 이런 책에 미출간이 웬 말이냐!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이런 거 가지고 선동할 나는 아니지만 글쎄... 전반적으로 보면 조금 달라 보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감동하리만큼 특별해 보이진 않는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질문'은 필요해 보인다. 남들 하니까 나도 하고, 남들 사는 것만큼 나도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못 벗어난 우리들이기에 '어떻게'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왜'라는 존재적 질문에는 취약해 보인다. 그래서 우린 또 너무나 쉽게 허무주의로 빠져들기도 하지 않는가. 그런 우리들에게 다소 도전을 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명인이 썼다고 해서 무조건 감동할 준비부터 하고 읽기 시작한다면, 뭐 사람마다 똑같지는 않겠지만 누군가는 생각 보다 별로네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냥 한 번쯤 읽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정도로 해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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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3-27 17: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속담에 모난 돌 정맞는다는 말이 괜히 생겼겠습니까요..
뭔가 달라 보이면 처막을 각오해야하는 ..
그래서 남들과 비슷하게...
평범하게 하는 말에는 상당히 폭력이 숨어 있는건 아닐까 싶더군요..
남들하고 다르게 보이면 맞을 수 있다라는 압박..

혹시나 다르게 보이면 이세끼 필시 역모를 꾸밀지도 몰라 라는....

당연히 모두 다른데 읽는 사람도 사람에 따라 다른 것도 나쁘지 않는 정도라는
마지막 문장에 느낌표 딱 박히네요~~~~~

stella.K 2017-03-27 18:29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런데 저는 우리나라 사람들 정치를 보는 시각이
좀 달라졌으면 좋겠어요. 너무 편파적이고
나와 다른 시각을 가지면 역적으로 몰고,
정치로 분노하고 한을 풀을려고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 좀 너무 한다
싶기도 하더구요. 물론 뭐 따지고 들면 한도 없고 끝도 없는 거지만.
이쪽이나 저쪽이나 왜 내 말만 옳고 남의 말은 조금도 듣지 않으려고 하는지.

암튼 이 책은 김대식 팬이라면 좋아할 것도 같은데
저는 좀 그랬습니다.ㅋ

cyrus 2017-03-31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100자평 봤어요. 저자가 국내 미번역한 책 몇 권 소개했다고 불평을 하는 독자도 있던데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저자가 소개한 책들을 다 읽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예요. 저자가 읽었던 책을 알고 싶어서, 또는 그 책들을 읽으려고 저자의 책을 골랐다면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stella.K 2017-03-31 18:03   좋아요 0 | URL
ㅎㅎ 그니까. 거 참 묘해.
근데 난 이 책 기대를 너무 많이해서 그런가?
생각 보단 좀 별로였어. 여백이 너무 심하고.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 오후
유카와 유타카.고야마 데쓰로 지음, 윤현희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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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하루키를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 책을 아예 안 읽으면 모를까 책을 읽는다면 언제 어느 때 한 번은 마주하게 될 작가가 하루키일 것이다. 왜 그럴까를 생각해 봤더니 이 책 말미에 나오는 서지적 연보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그는 30세에 문단에 데뷔해서 지금까지 책을 한 번도 내지 않은 때가 없었다. 소설이든, 에세이든, 번역물이든 뭐든지 간에 지치지 않고 꾸준히 책을 냈다. 사랑하는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거든 그 사람 눈에 자주 띄어라는 말이 있다. 이건 꼭 연애의 법칙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열심히 책을 내는데 어떻게 하루키의 책 한 권쯤 읽지 않을 수 있을까.

하루키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책장에 그의 책 한 권은 반드시 꽂혀있을 것이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인정하든 안 하든 하루키는 어마 무시한  작가라는 것 아는 알아두자. 처음엔 그 문체의 독특함에 끌렸다 노골적인 성 묘사에 질려 하루키 볼 거 뭐 있어? 하고 방구석에 처박아 두고 등한시한 사이 그는 그렇게 거대한 작가가 되어 있었다.

하루키가 이렇게 유명한 작가가 되니 여기저기서 그를 연구한 책들이 나오고 있다. 연구서라기보단 그에게 보내는 팬 레터의 의미는 아니었을까? 나도 몇 년 전 그를 분석한 책을 읽기도 했는데 뭐 나름 흥미는 있었지만 용두사미가 된 느낌이라 좀 아쉬웠다. 그런데 이 책은 그것보다는 확실히 튼실해 보인다. 아무래도 하루키가 일본인인 만큼 자국 내 평론가와 저널리스트가 썼으니 좀 더 객관성을 유지하면서도 애정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 책은 두 지은이의 대담집이다. 어떤 사람이나 대상을 놓고 논할 땐 그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총망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앞서도 말했지만 하루키가 1979년 30세에 데뷔한 이래 65세이던 2014년까지 좀 많은 책들을 내놨겠는가. 모르긴 해도 두 지은이는 그것을 꼼꼼히 읽었을 것이다. 이 대담집을 내기 위해 어느 한 기간 몰아서 읽었을까? 읽다 보면 왠지 그랬을 것 같진 않아 보인다. 언제부터 하루키의 작품을 읽어 왔을지 모르지만 한두 해 자료 조사 가지고는 이런 대담이 나올 것 같지 않다. 그래서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도 좋을 것 같다.

단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독자인 나에 대해서였는데, 사실 난 하루키가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 잠깐 흥밋거리로 책을 읽고 꽤 오랜 세월 관심 없이 지냈었다. 그러다 최근 하루키의 글쓰기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고 다시 그에 대한 관심이 생겼는데 그동안 읽지 않은 책들이 너무 많아 이들의 대담을 쫓아가기가 조금은 버거웠다. 물론 하루키의 문학이 그렇듯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니 내용도 어려웠던 것은 아니다. 그래도 다는 아니어도 그의 굵직 굵직한 작품들은 어느 정도 읽어줬더라면 이 책이 조금 더 흥미롭지 않았을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하루키의 작품들을 낮게 평가했었다. 그래봐야 맨 섹스 이야기 아니냐고. 하지만 인정해야 하는 건 그의 글을 쓰는 자세에 있어서만큼은 범접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글을 쓰기 위해 자녀까지도 포기한 사람이다. 요즘에도 그런 작가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가 한창 젊었을 7,80년대만 해도 그런 마음을 먹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더구나 그가 외아들이라지 않는가. 동양적 사고방식에서 그러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건, 대담도 대담이지만 두 지은이가 하루키를 분석한  각자의 글이 내겐 더 흥미로웠다. 물론 대부분은 파편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이긴 하다. 그가 음악광이라는 것. 챈들러를 비롯해 몇몇 미국 작가들을  지극히 애정 한다는 것, 마라톤과 여행을 좋아한다는 것 등등. 그런데 이 책엔 (나쁘게 말하면 거의 스토커 수준으로) 좀 더 자세하고도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잘 해 놨다. 가히 '하루키 기호학'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런 것을 읽다 보면 그전부터도 그런 의문이 들긴 했는데 하루카는 슈퍼맨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람이 한 가지 일도 잘하기도 힘든데 이번에 새롭게 안 것은 그는 영화광이기도 하다는 것이다(물론 소설가가 영화를 사랑하지 않기란 쉽지 않다). 그렇게 하루 종일 음악 듣고, 세세 영화도 보며, 언제 글 쓰고, 언제 번역도 하며 달리기는 언제 하는 걸까? 잠은 잘까? 밥은 먹나? 화장실도 안 갈 것 같다.  

하루키가 그렇게 유명한 작가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어디에 있었던 걸까? 

물론 그는 글 쓰는 것을 너무 좋아해 매년, 매일 그렇게 열심히 쓰는 것에 있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의 사생활도 공유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한마디로 그의 모든 것은 글을 쓰기에 최적화 되도록 맞혀져 있다. 거기엔 어떤 흠이나 티가 없다. 어찌 보면 문학계에도 성직자가 있다면 하루키는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런 점은 그렇게도 갑질 논란이 많고, 성적인 타락을 비껴가지 못한 우리나라 문단계가 좀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하루키는 자신의 글쓰기를 위해 제자도 키우지도 않는다지 않는가. 우리나라 작가들은 어느 정도 자신의 존재가 인정을 받거나 정점에 서게 되면 너무나 빨리 자신의 글쓰기는 잠시 뒤로 미루고 대학 강단 자리를 넘보거나 어느 문예지 편집자 자리를 노린다. 뭐 이해 못할 것도 아니지만 그 이면에 그들 나름의 불안이 존재해 있기 때문은 아니겠는가. 자신이 글 쓰는 행위를 믿지 못하는 것이다.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라고 했는데 그런 점에서 좀 전사(戰士) 다운 정신이 아쉽다. 그러면서도 이 책처럼 누군가는 자신의 작품들을 가지고 대담해 주고, 평가해 주길 바라는 것은 아닌지. 또 그러느니만큼 하루키에게선 사무라이 정신이 읽히기도 한다.            
 
하루키가 어느 때부턴가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르고 있다. 난 처음에 그가 노벨 문학상을 받는 것을 반대했다. 물론 나 하나의 의견이 그것을 좌우할 리 없겠지만 그건 어찌 보면 내 안에 있을지도 모를 반일 감정 때문일 수도 있고, 섹스 얘기나 하는 사람한테 뭐가 아쉬워 노벨 문학상이 하루키한테 수여되겠느냐는 저평가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 그게 아니더라도 노벨 문학상은 대중성은 거의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작가에게 상을 줄 리가 없다는 판단도 작용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루키는 이미 노벨 문학상 전단계에 해당한다는 카프카 상을 수상 바 있다. 그는 그 상을 받고 수상소감에서 세계 평화를 위한 메시지를 남겼다. 작가가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순기능적인) 일들이 있을 수 있을 텐데 작가로서 가장 멋있는 순간이 아닐까?    
 
이 책도 그렇지만 독자로 하여금 기꺼이 작가를 쫓는 모험을 아끼지 않게 만드는 작가. 이런 작가가 진짜 작가는 아닐까? 한때는 좋아서 그 작가의 작품을 꼬박꼬박 사 모으기도 했는데 어느 때부턴가 독자와 멀어져 요즘 그 작가 뭐 하냐고 묻게 만드는 작가. 뭐 아예 독자의 뇌리에서 잊힌 작가 보다야 낮겠지만 차라리 절필 선언을 했으면 모를까 그런 작가도 썩 좋은 작가 같지는 않아 보인다. 자신이 과거에 무슨 작품을 썼노라고 그것 가지고 우려먹으려 하지는 말자.

모르긴 해도 하루키는 죽는 날까지 글을 쓸 것 같다.  그것에 비난을 받던 찬사를 받던 관계없이 계속 쓸 것 같다. 독자로서 그런 작가 한 사람쯤 알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우리나라 작가가 아니라는 것이 좀 아쉽긴 하지만 난 요즘 하루키에 대한 애정이 다시 생겼다. 그의 작품과 함께 나이 먹고 늙어갈 것을 생각하니 그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디 오래오래 작품을 쓰는 작가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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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17-03-25 19: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하루키가 위 문구를 자신의 묘비명으로 하고 싶다고 어느 책에선가 썼습니다. 너무나 하루키와 어울리는 묘비명입니다^^

stella.K 2017-03-25 20:01   좋아요 2 | URL
엇, 그런 말이 있었습니까?
멋진 말이군요.
정말 하루키는 쓸데없이 멋있습니다.ㅎㅎ

북프리쿠키 2017-03-25 21: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텔라님 하루키에 공감하셨다니 반가울 따름입니다ㅎ 사실 하루키의 성묘사도 허무감이 짙게 배어있어 나름 오리지낼러티에 일조한거같구요.
자기 입으로는 천재성이 전혀 없다지만 그건 아닌거 같구요. 성실성이라면 <달리기에대해내가말하고싶은것들> 에세이 추천드립니다^^;

stella.K 2017-03-26 18:22   좋아요 1 | URL
그러게 말입니다.
말씀하신 책도 읽어봐야 할 텐데 말이죠.
노력없이 얻어지는 천재성은 없다는 것을
또 한 번 입증한 사람이 하루키가 아닐까 싶어요.^^

transient-guest 2017-03-26 00: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루키의 자기관리도 대단하고 꾸준한 글쓰기 여행 술 음반 영화까지 뭐든 계속 해나가는 건 더욱 대단한 것 같습니다 말씀처럼 조금 유명해지면 술 여자 명예 강단 등 글이 아닌 다른 걸로 나가는 한국 문단의 모습과 비교됩니다

stella.K 2017-03-26 18:25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에도 하루키 같은 사람이 나와줘야 할 텐데...
또 찾아 보면 없지 않겠죠. 단지 그 작가가 대중성이 없어서
우리 같은 독자가 모르고 있는지도 모르구요.
하지만 정말 우리나라 문단은 개혁할 필요는 분명히 있다고 봐요.

페크pek0501 2017-03-26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하루키 책을 서너 권은 읽은 것 같아요.
어제 동아일보에 실린 무라카미 하루키 신드롬, 이란 제목의 칼럼을 읽었는데
선인세 ‘판권 계약금‘이 2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니
놀랍게 하는 작가임에 틀림없어요.

10년? 가량이던가 일본을 떠나 장기간 외국 생활을 한 것이 그를 일본 틀에서 벗어나게 했고
보편적인 글을 쓰는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싶어요. 외국 문화를 흡수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 속에서 산 작가였으니.

그가 좋아하는 마라톤처럼, 열심히 끈질기게 달리듯 글을 쓰는 작가를 누가 이길 수 있겠는가 하고 인정하게 됩니다. 우리에게도 20억원 소문이 날 정도의 작가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stella.K 2017-03-26 18:27   좋아요 0 | URL
어마어마하군요.
김훈이 인세가 나름 높은 걸로 알고 있는데
뭐든 성실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는데 참 성실해진다는 게
쉽지가 않아요.ㅠ

해피북 2017-03-26 2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에겐 무척 궁금하고 호기심 많은 작가인지라 그의 책을 마구마구 읽고 싶은데 어쩐일인지 호기심만큼 책이 안읽혀지는 작가가 아닌가 합니다. 방금까지 <개인주의자>를 읽었는데 문유석님 글에도 하루키 이야기가 나왔어요. 잊을만하면 한번씩 나오구 여러 책과 북플에서 이어달리기처럼 나오구 자꾸 호기심은 커지고 궁금한데 당췌 손은 안가구 ㅎㅎ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 책 써주신 글 읽어보니 이 책부터 읽어보면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ㅋㅂㅋ~~

stella.K 2017-03-27 12:53   좋아요 0 | URL
무슨 조화. ㅎㅎ
그런 책 있죠. 저도 하루키가 아주 잘 읽혀지는 작가는
아닙니다. <1큐84>는 문체가 어려운 건 아닌데
그렇다고 진도가 팍팍 나가진 않죠.
그래도 계속 읽고 싶다는 생각은 있어요.
저는 처음에 단편에서 매료되었습니다.
<치즈 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가난>인가 하는 책이 있죠.
그런데 세월이 흐른 뒤 하루키를 다시 대하면 이 사람은
단편 보단 장편이 월씬 좋다 싶어요.

이 책은 썼다시피 어느 정도 작품을 읽고 난 뒤 읽으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루키 자체가 다작한 작가고 그것을 가지고 대담을 한
것이니 따라가기가 버겁지 않을까요?
가장 좋은 건 하루키 자체를 읽는 게 젤 좋은 것 같습니다.
남들이 하루키에 대해 쓴 책은 사이드로 참고만 하시구요.^^

고양이라디오 2017-03-31 16:42   좋아요 2 | URL
<해변의 카프카> 읽어보세요ㅎㅎㅎ 제가 처음으로 하루키를 접했던 책입니다. 하루키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해피북 2017-04-01 10:59   좋아요 1 | URL
아핫. 지난번에도 함 말씀 해주신거 같아서 책 구입 했어요 ㅋㅋ 원래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려고 했는데 얼마나 인기가 좋은지 책이 많이 낡았더라고요~~IQ84는 거의 폐기 수준으로 가고 있고요 ㅋ 무튼 좋은 추천 정말 감사합니다. 즐겁게 읽어볼께용~~^^

고양이라디오 2017-04-01 12:37   좋아요 1 | URL
제가 감명깊게 읽었다고 해서 해피북님이 좋아하실거란 보장은 없지만ㅜ 아무튼 즐겁게 읽으시기 바랍니다^^b 전 그 책을 읽고 고양이를 좋아하게 됐어요ㅋ

stella.K 2017-04-01 14:26   좋아요 1 | URL
헉, 원래 고양이 좋아하시는 거 아니었어요?ㅋㅋ

고양이라디오 2017-04-01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수때 <해변의 카프카>보고 그 이후로 고양이가 좋아졌어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