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시노그라퍼 - 1975-2015 공연.영화.전시 공간을 창조하는 사람들
뤼크 부크리스 외 지음, 권현정 옮김 / 미술문화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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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가물에 콩 나기로)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러 가는 때가 있다. 조명이 켜지고 배우가 등장할 때까지 그 무대는 온전히 하나의 공간을 보여준다. 그게 어느 집 거실일 수도 있고, 을씨년스러운 어느 바닷가 모레 사장일 수도 있으며, 19세기 어느 귀족의 집이나 중세 어느 성당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런 공연물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이런 무대장치가 극이 진행됨에 따라 어떻게 쓰이고 변화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공연물(오페라도 마찬가지겠지만)은 종합예술로서 한마디로 예술에 관한 모든 것들이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룰 때야 비로소 하나의 작품이 되는 된다. 그러니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가 없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이 모든 것들이 무엇을 위한, 또한 누구를 위한 작품이어야 하는 것이다.

예전에 나는 작가로 연극에 참여해 본 사람으로서 작품의 가장 첫 작업을 맡은 작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뭐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는다는 측면에서 그런 생각도 그리 잘못된 생각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작품이든 그 작품이 결국 맨 마지막에 도달해야 할 대상이 누구냐라는 것을 생각할 때 그건 온전한 대답이 되지 못한다. 물론 작품이 추구해야 하는 작품성, 예술성은 온전히 작가의 몫이긴 하겠지만 그것의 완성은 결국 배우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가 아무리 뛰어난 작품을 써도, 연출가가 아무리 뛰어난 연출을 한다고 해도 배우가 온전히 그 작품과 배역을 전달하지 못한다면 그건 완전한 작품이 될 수가 없다. 물론 그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배역을 잘 할 수 없다면 그것을 잘할 수 있는 배우를 섭외하면 된다. 그러나 그런 최악을 상황을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모두는 프로라는 관점에서 각자가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할지를 유기적으로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결국 마지막 결론은 그렇게 나올 것이며 그래야 관객이 감동하는 결론도 나올 것이다. 그래서 연극은 배우를 위한 예술이라고 했는가 보다.

시노그라피는 한마디로 말하면 무대디자인 또는 무대장치 등으로 설명될 수 있는 단어다. 그리고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시노그라퍼라고 한다.

흔히 우리는 그런 공연물을 볼 때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 무대 디자인을 얼마나 눈여겨보는지 모르겠다. 물론 눈여겨 보긴 할 것이다. 아무리 배우가 중요하다지만 어떤 무대에서 공연하느냐에 따라 그 배우가 빛나 보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당장 요즘의 드라마나 영화를 봐도 그렇다. 배우도 배우지만 한눈에 들어오는 무대 세트를 보면 눈을 빼앗길만하다. 그러나 처음에만 그렇지 결국 우리의 관심은 이내 배우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다. 물론 조금 더 관심의 영역을 넓혀서 누가 연출했는지, 누가 작품을 썼는지 정도는 알고 있는 것이 하나의 예의가 되었다.   

이 책은 비록 프랑스에 국한되어 있긴 하지만 시노그라퍼들의 대략적인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을 보니 나는 무대 디자이너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분야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 분야에 대한 대중서가 나왔다는 건 확실히 흥미롭긴 하다. 하지만 과연 대중에 관심을 끌 수 있는지는 지금으로선 판단하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 프랑스의 시노그라퍼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흥미로울 수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한계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나라 무대도 못지않게 화려하고 창조적이어서 그것을 이해 못할 정도는 아니다.

이 책은 1975년에서 2015년의 작품 경향을 보여주고 있는데 시대를 굳이 나눌 필요가 있을까 싶게 옛 시대의 작품들도 요즘에 봐도 전혀 손색이 없다.   
  
이 책은 글은 최대한 절제하고 각각의 시노그라퍼들의 대표작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는 시노그라퍼란 무엇인지 또는 작업을 할 때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하는가를 인터뷰식으로 간략하게 소개해 놨다. 대답이 여러 가지이긴 하다. 누구는 드라마트루기의 관점에서 작품에 대한 이해와 상상력을 넓혀 가려고 했고, 어떤 사람은 연출가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작업을 한다고 했으며, 어떤 시노그라퍼는 배우를 많이 생각하며 작업을 한다고도 했다. 또 어떤 사람은 아예 연출을 겸하도 하고, 어떤 사람은 철학자이기도 하다. 

이렇게 대답은 여러 가지일 수도 있지만 그들의 하나 같은 공통점은 공연이란 커다란 작품을 앞에 놓고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누가 알아주겠는가. 관계자들 외엔. 그들은 기꺼이 공연에 녹아들고 스며들어야 하는 존재임을 스스로 자인한 존재들이었다. 공연이 끝나면 없어져야 하는 무대장치다. 공간 예술이라 어디에 영구 보존하기도 어렵다. 장소를 대여하는 것이니 대여 기간이 끝나면 어쨌든 철거를 해야 한다. 보존을 하려면 사진 같은 기록물로 보관하던가 아니면 그 작품이 레퍼토리화해서 어디선가 계속 공연이 되면 그에 따라 그 무대디자인은 함께 갈 수도 있겠지.

이제 좀 시노그라퍼들에게도 관심을 갖고 그들에게도 쳐줄 박수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들의 작품은 웬만한 미술작품 못지않다. 그리고 상당히 매혹적이다. 이런 무대에서 공연하는 배우는 절로 연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 감탄할 정도다. 이왕 연극에 발을 들여놓았다면 작가 같은 거 하지 말고 배우를 하면 좋겠다. 이렇게 배우를 위하는 사람이 많은데 배우는 정말 축복받은 직업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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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16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화가들도 전업 화가가 되기 전에 무대 디자인 일을 한 적이 있고, 화가가 돼서도 무대 디자인 일을 했어요. 화가의 손길을 닿은 무대 디자인도 예술로 인정해야 합니다.

stella.K 2017-04-16 18:42   좋아요 0 | URL
정말 사진 보면 그림이야.
그 그림속에서 사람이 살아 움직인다고 생각해 봐.
진작 그림을 배우지 못하고 무대 디자인을 못 배운 것이 아쉽더군.
이 책에 나온 사람과 그의 시노그라피는 빙산의 일각이겠더군.
우리네 같은 사람은 새끼 손가락으로 쿡 한 번 찍어
맛 본 것에 불과해.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