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 오후
유카와 유타카.고야마 데쓰로 지음, 윤현희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하루키를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 책을 아예 안 읽으면 모를까 책을 읽는다면 언제 어느 때 한 번은 마주하게 될 작가가 하루키일 것이다. 왜 그럴까를 생각해 봤더니 이 책 말미에 나오는 서지적 연보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그는 30세에 문단에 데뷔해서 지금까지 책을 한 번도 내지 않은 때가 없었다. 소설이든, 에세이든, 번역물이든 뭐든지 간에 지치지 않고 꾸준히 책을 냈다. 사랑하는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거든 그 사람 눈에 자주 띄어라는 말이 있다. 이건 꼭 연애의 법칙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열심히 책을 내는데 어떻게 하루키의 책 한 권쯤 읽지 않을 수 있을까.
하루키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책장에 그의 책 한 권은 반드시 꽂혀있을 것이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인정하든 안 하든 하루키는 어마 무시한 작가라는 것 아는 알아두자. 처음엔 그 문체의 독특함에 끌렸다 노골적인 성 묘사에 질려 하루키 볼 거 뭐 있어? 하고 방구석에 처박아 두고 등한시한 사이 그는 그렇게 거대한 작가가 되어 있었다.
하루키가 이렇게 유명한 작가가 되니 여기저기서 그를 연구한 책들이 나오고 있다. 연구서라기보단 그에게 보내는 팬 레터의 의미는 아니었을까? 나도 몇 년 전 그를 분석한 책을 읽기도 했는데 뭐 나름 흥미는 있었지만 용두사미가 된 느낌이라 좀 아쉬웠다. 그런데 이 책은 그것보다는 확실히 튼실해 보인다. 아무래도 하루키가 일본인인 만큼 자국 내 평론가와 저널리스트가 썼으니 좀 더 객관성을 유지하면서도 애정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 책은 두 지은이의 대담집이다. 어떤 사람이나 대상을 놓고 논할 땐 그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총망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앞서도 말했지만 하루키가 1979년 30세에 데뷔한 이래 65세이던 2014년까지 좀 많은 책들을 내놨겠는가. 모르긴 해도 두 지은이는 그것을 꼼꼼히 읽었을 것이다. 이 대담집을 내기 위해 어느 한 기간 몰아서 읽었을까? 읽다 보면 왠지 그랬을 것 같진 않아 보인다. 언제부터 하루키의 작품을 읽어 왔을지 모르지만 한두 해 자료 조사 가지고는 이런 대담이 나올 것 같지 않다. 그래서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도 좋을 것 같다.
단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독자인 나에 대해서였는데, 사실 난 하루키가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 잠깐 흥밋거리로 책을 읽고 꽤 오랜 세월 관심 없이 지냈었다. 그러다 최근 하루키의 글쓰기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고 다시 그에 대한 관심이 생겼는데 그동안 읽지 않은 책들이 너무 많아 이들의 대담을 쫓아가기가 조금은 버거웠다. 물론 하루키의 문학이 그렇듯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니 내용도 어려웠던 것은 아니다. 그래도 다는 아니어도 그의 굵직 굵직한 작품들은 어느 정도 읽어줬더라면 이 책이 조금 더 흥미롭지 않았을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하루키의 작품들을 낮게 평가했었다. 그래봐야 맨 섹스 이야기 아니냐고. 하지만 인정해야 하는 건 그의 글을 쓰는 자세에 있어서만큼은 범접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글을 쓰기 위해 자녀까지도 포기한 사람이다. 요즘에도 그런 작가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가 한창 젊었을 7,80년대만 해도 그런 마음을 먹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더구나 그가 외아들이라지 않는가. 동양적 사고방식에서 그러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건, 대담도 대담이지만 두 지은이가 하루키를 분석한 각자의 글이 내겐 더 흥미로웠다. 물론 대부분은 파편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이긴 하다. 그가 음악광이라는 것. 챈들러를 비롯해 몇몇 미국 작가들을 지극히 애정 한다는 것, 마라톤과 여행을 좋아한다는 것 등등. 그런데 이 책엔 (나쁘게 말하면 거의 스토커 수준으로) 좀 더 자세하고도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잘 해 놨다. 가히 '하루키 기호학'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런 것을 읽다 보면 그전부터도 그런 의문이 들긴 했는데 하루카는 슈퍼맨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람이 한 가지 일도 잘하기도 힘든데 이번에 새롭게 안 것은 그는 영화광이기도 하다는 것이다(물론 소설가가 영화를 사랑하지 않기란 쉽지 않다). 그렇게 하루 종일 음악 듣고, 세세 영화도 보며, 언제 글 쓰고, 언제 번역도 하며 달리기는 언제 하는 걸까? 잠은 잘까? 밥은 먹나? 화장실도 안 갈 것 같다.
하루키가 그렇게 유명한 작가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어디에 있었던 걸까?
물론 그는 글 쓰는 것을 너무 좋아해 매년, 매일 그렇게 열심히 쓰는 것에 있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의 사생활도 공유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한마디로 그의 모든 것은 글을 쓰기에 최적화 되도록 맞혀져 있다. 거기엔 어떤 흠이나 티가 없다. 어찌 보면 문학계에도 성직자가 있다면 하루키는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런 점은 그렇게도 갑질 논란이 많고, 성적인 타락을 비껴가지 못한 우리나라 문단계가 좀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하루키는 자신의 글쓰기를 위해 제자도 키우지도 않는다지 않는가. 우리나라 작가들은 어느 정도 자신의 존재가 인정을 받거나 정점에 서게 되면 너무나 빨리 자신의 글쓰기는 잠시 뒤로 미루고 대학 강단 자리를 넘보거나 어느 문예지 편집자 자리를 노린다. 뭐 이해 못할 것도 아니지만 그 이면에 그들 나름의 불안이 존재해 있기 때문은 아니겠는가. 자신이 글 쓰는 행위를 믿지 못하는 것이다.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라고 했는데 그런 점에서 좀 전사(戰士) 다운 정신이 아쉽다. 그러면서도 이 책처럼 누군가는 자신의 작품들을 가지고 대담해 주고, 평가해 주길 바라는 것은 아닌지. 또 그러느니만큼 하루키에게선 사무라이 정신이 읽히기도 한다.
하루키가 어느 때부턴가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르고 있다. 난 처음에 그가 노벨 문학상을 받는 것을 반대했다. 물론 나 하나의 의견이 그것을 좌우할 리 없겠지만 그건 어찌 보면 내 안에 있을지도 모를 반일 감정 때문일 수도 있고, 섹스 얘기나 하는 사람한테 뭐가 아쉬워 노벨 문학상이 하루키한테 수여되겠느냐는 저평가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 그게 아니더라도 노벨 문학상은 대중성은 거의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작가에게 상을 줄 리가 없다는 판단도 작용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루키는 이미 노벨 문학상 전단계에 해당한다는 카프카 상을 수상 바 있다. 그는 그 상을 받고 수상소감에서 세계 평화를 위한 메시지를 남겼다. 작가가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순기능적인) 일들이 있을 수 있을 텐데 작가로서 가장 멋있는 순간이 아닐까?
이 책도 그렇지만 독자로 하여금 기꺼이 작가를 쫓는 모험을 아끼지 않게 만드는 작가. 이런 작가가 진짜 작가는 아닐까? 한때는 좋아서 그 작가의 작품을 꼬박꼬박 사 모으기도 했는데 어느 때부턴가 독자와 멀어져 요즘 그 작가 뭐 하냐고 묻게 만드는 작가. 뭐 아예 독자의 뇌리에서 잊힌 작가 보다야 낮겠지만 차라리 절필 선언을 했으면 모를까 그런 작가도 썩 좋은 작가 같지는 않아 보인다. 자신이 과거에 무슨 작품을 썼노라고 그것 가지고 우려먹으려 하지는 말자.
모르긴 해도 하루키는 죽는 날까지 글을 쓸 것 같다. 그것에 비난을 받던 찬사를 받던 관계없이 계속 쓸 것 같다. 독자로서 그런 작가 한 사람쯤 알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우리나라 작가가 아니라는 것이 좀 아쉽긴 하지만 난 요즘 하루키에 대한 애정이 다시 생겼다. 그의 작품과 함께 나이 먹고 늙어갈 것을 생각하니 그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디 오래오래 작품을 쓰는 작가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