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혐민국
양파(주한나) 지음 / 베리북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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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떤 사람(물론 남자)과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가 무산된 적이 있다.

그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지지 광화문 촛불집회가 거의 종반을 향해 가고 있었던 때였다. 그는 촛불집회 초기 때부터 참석했었고, 나는 그때까지 탄핵은 지지했지만 아직 한 번도 참석을 못했기 때문에 집회도 참석할 겸 만나기로 한 것이다. 약속을 정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가 되면 내가 안 됐고, 내가 되면 그가 안 되고. 아무튼 그렇게 어렵게 잡은 약속인데 느닷없이 일방적으로 약속이 뒤집어진 것이다. 왜 그런가 했더니 그 이유가 좀 걸작이다. 그때 내가 무슨 말 끝에 그날 맛있는 것 사 주세요.”라고 했는데 그 말 한마디가 그의 기분을 상하게 했던 것이다. 순간 어찌나 어이없고 당황스럽던지.

 

그런데 왜 나의 그 말 한마디가 그의 기분을 상하게 했던 것일까?

(그것도 나중에 알았던 건데) 그의 말이, 집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방에서 쉬지도 못하고 추위를 무릅써 가며 참석하고 있는지, 하다못해 몸이 불편한 장애자조차도 들것에 실려서까지 참석하고 있는 마당에 어떻게 그렇게 (속편하게) 맛있는 거나 사 달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그에게 나는 그리 친하지도 않은 남자에게 맛있는 거나 사 달라고 아양이나 떠는 개념 없 여자였던 것이다.

 

말이란 원래 앞뒤 문맥을 잘 따져봐야 하는 것이고, 같은 말이더라도 남자와 여자가 받아들이는 게 다를 수 있다는 걸 그때 난 새삼 깨달았다. 앞서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밥 먹고 집회에 참석하자고 하기에 난 그저 마무리조로 그 말 한마디를 보탰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개념 없는 여자로 둔갑해 있었던 것이다. 부모가 돌아가 곡을 해도 밥은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야 그 힘으로 곡을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 사람에겐 현 시국이 밥도 편하게 못 먹을 시국이었던 모양이다. 그럼 밥 소리나 하지 말지. 모르긴 해도 이 사람은 전생에 나라를 구하려다 못 구한 사람이었나 보다.

 

그때 그는 자신의 말에서 내가 무엇인가를 깨달아 주길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인 내가 느껴야 했던 건 (애석하게도) 그가 바랐던 것과 일치하지 않았다. 아니 일치할 수 없었다. 원래 상처 주는 사람은 잘 모른다. 내가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지 안 주는지. 주면 얼마나 주는지. 받는 사람만 아는 문제다. 만일 정 내키는 것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액면 그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유를 찾았어야 했다. 왜냐하면 난 참혹하게도 그에게서 맨스플레인을 보았으니까.

 

이 사람뿐이 아니다. 남자들은 자신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던, 페미니즘을 옹호하든 그렇지 않든 맨스플레인을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남자들이 그 상황에서 그 사람처럼 반응하는 것도 아니다.

 

또 그런 그의 태도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건, (어떤 의미로든) 자신과 같은 생각이 아니면 상대하지 않겠다는 뭔가의 결기 같은 것도 느꼈는데, 언제나 그렇듯 그것은 뒤집으면 상대로 하여금 어떤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이왕 말나온 김에) 알다시피 같은 시간 서울역에선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나는 처음에 이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죄상이 이렇게 명백한데 어떻게 탄핵을 반대할 수 있을까? 하지만 얼마 있지 않아 한 가지 깨달았던 건, 모든 것엔 절대적이라 건 없고 선택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하다못해 죄상을 바라보는 시각조차도 절대적인 것은 없으며 상대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선택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선택을 강요하는 건 얼마나 위험한가? 그것은 또 너와 내가 같은 생각이 아니면 배타적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탄핵을 지지 또는 반대하는 것에도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으며 한 가지로만 규정되지 않는다. 이 서로의 다름을 우린 얼마나 인정하고 포용하며 사는 걸까?

 

어쨌든 그런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아는 지인을 만났다. 그녀는 공교롭게도 탄핵을 반대하는 쪽이었다. 그녀는 비교적 확고해 보였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자신도 언젠가 한 번 탄핵지지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지지자들 중엔 정말 지지해서라기 보단 알바들이 대거 많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등 뒤에서 불평과 앓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다(그것이 사실이라면 탄핵 반대 측에도 그런 알바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조장하는 건 아무래도 정치꾼들이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사람이 생각이 났다.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그 사람도 알고 있는 걸까? 문득 그의 나를 향한 맨스플레인도 그렇지만 약속을 뒤집을 만큼 탄핵을 지지했던 그의 투쟁이 숭고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좋은 의미는 아니다.)

 

나의 지인은 또 한 가지 이유를 들었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여자여서 당하는 설움도 있을 거라는 것이다. 그건 거의 절대적여 보였는데, 자신이 여자로 일하면서 남자들에게 당했던 설움을 그런 식으로 투사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건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정을 농단한 죄가 가벼울 수 있다는 걸까? 그래서 안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런 건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역대 대통령들은 국정을 농단한 적은 없는가? 이 질문이 얼마나 바보 같은지는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국정 비리를 바로 잡기 위해 박근혜가 필요했다면 그것을 피해갔던 전직 대통령을 다시 소환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렇게 쉬어야 할 때 쉬지 못하고 추위를 무릅쓰고, 장애자로서 들것에 몸을 의지하면서까지 광장으로 모여들었을 때 과연 그들은 어디 있었는가.

 

탄핵 지지자들 중엔 역대 전직 대통령의 천문학적이고도 역사적인 비리와 농단을 생각하면 박근혜를 감방에 보내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이냐라고 묻는 사람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 (하다못해 그냥 전직 대통령 예우 차원에서 가택연금 정도도 괜찮은 거 아니냐는 것이다.) 물론 탄핵 반대자들은 아직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러는 건 너무 심하다는 건 당연한 거고. 그밖에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었지만 지면상 더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겠다.

 

나는 정치에 관해선 별로 아는 바가 없어서일까? 어떤 식으로든 정치에 대해 확고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 보면 좀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어떻게 저렇게 확고할 수 있을까? 이 말을 들으면 이 말이 옳고, 저 말을 들으면 저 말이 옳기도 한데 어떻게 그렇게 빠른 시일 내에 선택을 하고 노선을 정하는지 모르겠다. 그래. 대다수의 바람대로 박근혜는 구속이 됐다. 그러면 된 건가? 나는 아직도 마음이 복잡하다.

 

그러던 중 나는 며칠 전, 오랜만에 어떤 책의 저자와의 만남에 다녀왔다. 그것은 이번 국정농단과 탄핵 과정을 최초 보도한 한 명의 방송 기자와 두 명의 작가로 구성된 공동 저자들과의 만남의 자리였다. 내가 그 모임에 참석했던 건 거리상 가까워서이기도 하지만 위에서 밝힌 것처럼 난 아직도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것인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혹시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간 것이다. 그런데 마침 이 책을 읽고 있어서일까? 왠지 모르게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부조리한 것들 몇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물론 전체적인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시종 진지함과 유머를 잃지 않았으니 그만하면 훌륭했다고 본다. 공동저자 3인방은 스마트함은 물론이고, 일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게 나에겐 아주 좋아 보이지만은 않은 건 뭐 때문일까?

 

그들은 자기네들만 소개 받는 것이 멋쩍었는지 두 명의 저자가 더 있다며 젊은 여성 작가 둘을 더 소개했다. 그들이 같은 테이블에 있지 않은 것을 보면 모르긴 해도 보조 작가였나 보다. 물론 나이가 그 3인방 보다는 어렸으니 같이 앉아 있기가 뭐했나 보지. 자리도 비좁고. 또 어떤 부분 나대지 않는 겸손의 미덕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그래서 일의 강도는 그 테이블의 3인방 보다 덜 했을까? 이것도 짐작이지만, 그렇지는 않았을 거다. 단순히 여자고 나이가 젊었으니 그러고 지나간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식으로 언제나 여자는 보조 역할이다.

 

그들은 그 책을 쓰기까지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유머와 여유로움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특별히 정부수립 이후 현직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는가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헌법에 관련된 책들은 모조리 훑었다는 말에 과연 그들의 열정과 노력은 인정해 줄만 했다. 그러면서 자신들도 이번 기회에 헌법에 대해 새롭게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좋았다는 겸손함도 잊지 않았다.

 

그런 것을 보면 그들이 이번 국정농단과 탄핵에 얼마나 고민이 많았는지 또 방송에서 한 치의 오류도 없이 객관성과 공정성을 전달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난 여전히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앞서 말했듯 나는 이번 국정농단을 어떻게 봐야하는지를 그 시간 조금이라도 떨어버리려고 했는데 오히려 더 깊어지는 건 무엇 때문일까? 그건 지금의 혼란스러움은 아무래도 국정농단과 박근혜를 같이 보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국정농단이란 관점에서 보자면 누구도 이것을 피해 가거나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여자라고 해서 봐줘야할 이유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더 이상 고민할 것이 없다.

 

그런데 이 세상의 모든 법과 제도는 누가 만들었는가? 하다못해 한 나라의 엄중한 헌법조차도. 탄핵 반대자들 중에 그들이 결코 놓지 못하는 프레임 중 하나는 박근혜가 바로 남성들에 의해 만들었을 이 법과 제도에서 작두(?)를 탓다는 것일 게다.

 

물론 이 말을 간단히 무시해도 좋다. 여자이기 때문에 동정을 받아야 하는 건 여자인 나도 원치 않는 일이다. 그런 식으로 짚어 들어가면 정의란 아예 존재치 않는 것이 되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우린 헌정 사상 그 유래가 없는 일을 겪으면서 (겨우) 헌법의 엄중함을 깨닫는 기회를 가졌다. 어떻게 갖게 된 기회인가? 그것은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계기도 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촉구한다. 어물쩍 덮어갔던 살아있는 전직 대통령의 재임시절 국정 비리와 농단사건을 헌법이란 이름으로 재수사 해야 마땅하다. 그래야 공평한 것 아닌가?

 

, 헌정 사상 전직 대통령을 재수사하는 것이 합당하냐 하지 않느냐를 위해 또 헌법 책을 뒤져야하는 것이 두려운가? 오늘 날 한국의 페미니즘은 그것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공동저자 3인방)은 이번 대통령 투표 팁도 더불어 알려줬는데 간단하다.

사실 헌법은 A4 용지 열 몇 장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중 헌법 전문은 한 장도 되지 않는다. 누구를 뽑을지는 그 전문을 읽어보고 그것에 적합하거나 조금이라도 근접해 있는 후보를 찍으라고 한다. 쉬운 일이 될 수도 있고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확실한 것 하나는 있다. 이번 대선에서 100%는 아니지만 98% 이상은 남자가 대통령이 될 확률이 아주 높다는 것. 그리고 이번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는 국민으로 하여금 헌법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니, 적어도 그것을 바로미터 삼아 이번에 당선된 대통령은 헌법을 준수하며 국정을 잘 운영하고 있는가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이 책은 내 기대엔 좀 못 미쳤다. 사이다 같다고 했는데 별로 그런 것 같지도 않다. 페미니즘이라고 해도 좀 진보적인 느낌이 들어 어느 부분 나도 여자지만 약간은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부분도 있었다.

 

가끔 지하철을 이용할 때가 있다. 타 보면 노약자와 임산부 보호석이 따로 지정되어 있다. 물론 그게 없는 것 보단 있는 것이 낫긴 한데 설마 이런 것 가지고 우리나라가 복지국가라고 보는 일은 없겠지 싶다. 솔직히 진짜 복지 국가가 되려면 이런 구분은 없어져야 한다. 왜 그런지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좌석이 노약자 보호석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중요한 건 장애자와 비장애자가 언제나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

 

물론 나는 여성을 장애자로 비유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래 전, 여성학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여성학의 전제는 언젠간 없어질 학문이라고 해서 정식 학문이 아니라고 했다. 진짜 페미니스트가 들으면 화날 일인지도 모르겠다. 여성학이란 학문이 학문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면 이거야 말로 여성 소외 아니냐며. 하지만 언젠가란 미래형 전제가 있다. 그건 여자가 남자와 동등한 권리를 누리게 될 때를 말한다. 물론 요원한 일이니 여성학은 웬만해서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전제는 언제나 유효하다.

 

여성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때로 급진적이고 전사적인 행동도 취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러다 보면 아직도 만연한 반페미니즘과의 충돌은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결국 인간 삶의 대전제는 남자와 여자의 조화와 평화로운 공존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나는 비록 이 책이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미워할 수는 없다.                     

 

미소지니(misogyny)가 여성혐오라고 번역되었는데, 번역이 잘못된 건 아니지만 한국어로 받아들이면 오해하기 좋은 어감이다. 그러나 미소지니는 실제로 혐오 보다는 ‘차별‘이나 ‘멸시‘에 가까운 의미를 담는다. 따라서 여자가 일삼는 여성혐오란 곧 자기혐오이며, 자기멸시인 것이다.(52p)

딜브레이커(deal-breaker)라는 단어가 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진짜 아니다., 라며 포기하는 무언가를 가리킨다. ......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딜브레이커가 있다. 날 호구로 보고 이용해도 되지만 내 외모를 가지고 놀리면 안 돼. 혹은 술 마시고 날 때리는 건 괜찮지만 바람 피우는 건 받아들일 수 없어 뭐 그런.
대선 후보에게도 당연히 딜브레이커는 있고, 그건 사람마다 다르다. 이회창의 경우는 ‘군대‘였다. 아들이 군대에 가지 않았다는 것이 한국 유권자에게는 딜브레이커였다. 그래서 생각지도 않은 후보가 당선이 되었다. 반근혜 대통령의 경우는 최순실이 딜브레이커였다. 아무리 자유한국당(구 새누리당)을 지지하고 싶어도 대통령이 저렇다면 지지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오게 하는 기준선이다(118~11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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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7 2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04-28 14:18   좋아요 1 | URL
탄핵을 보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있더군요.
님의 생각도 맞는 얘기죠.
근데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보면 이렇게도 생각이 든다는 거죠.^^

꼬마요정 2017-04-28 14:30   좋아요 1 | URL
아, 그냥 제 관점이구요 ㅎㅎ 폰으로 쓰다가 잠시 딴 일하고 와서 중간 문장 빠졌어요ㅠㅠ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겠군요. 요거 진짜 중요한 문장인데 없어졌네요 ㅠㅠ

cyrus 2017-04-27 2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급진적이든 점진적이든 페미니즘이 실천하는 방식이 다르더라도 다 같은 목표로 향한다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점진적 방식을 선호하지만, 상황에 따라 급진적 방식을 선택할 겁니다.

stella.K 2017-04-28 14:38   좋아요 0 | URL
나도 그렇게 생각해.
급진은 그것을 이루어 가는 과정 중 하나일 뿐이지.

와, 근데 다시 봐야겠는데?
상황에 따라 급진을 택하겠다니.
네가 페미니스트였다는 걸 잊고 있었네.흐흐

cyrus 2017-04-29 06:53   좋아요 1 | URL
저를 페미니스트로 바라보지 않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그런 시선에 신경쓰지 않지만, 페미니즘 관련 문제를 인식하는 태도와 사회를 개선하려는 과정의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너는 페미니스트가 아니야! 페미니스트인지 의심된다‘ 식으로 나오는 반응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stella.K 2017-04-29 15:34   좋아요 0 | URL
그건 그렇지.
그런데 언제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있었나?
내가 모르는 뭔가가...?!

cyrus 2017-04-30 16:02   좋아요 0 | URL
별 일 아닙니다. ‘남성 페미니스트’라면 겪게 되는 상황입니다. ^^;;

stella.K 2017-04-30 18:14   좋아요 0 | URL
뭔지 짐작이 간다.ㅠ

페크(pek0501) 2017-04-29 15: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정치적으로 (아주 예민하게) 열을 내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님이 쓰신 다음의 글과 관련이 있습니다.

˝자신과 같은 생각이 아니면 상대하지 않겠다는 뭔가의 결기 같은 것도 느꼈는데, 언제나 그렇듯 그것은 뒤집으면 상대로 하여금 어떤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 좋은 글입니다.

stella.K 2017-04-29 15:43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그런 사람들이 많은 것 같더군요.
평소엔 아무 일 없는 것 같다가도 정치 얘기만 하면 돌변하는.

장항준 감독과 김은희 작가가 부분데
지지하는 후보가 다르더군요.
잘은 모르겠지만 그거에 대해 그냥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봐요.
한 가족 내에서도 지지하는 후보가 똑같아야 한다는 거
좀 심한 거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