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 속의 영화]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우선 결론적으로 말하면, 난 이 책을 끝까지 읽지 못했다. 아니, 읽다가 도저히 못 읽겠어서 손들고 말았다. 사실 평가단 주최측에선 그달의 책이 전성되기 전, 평가단에게 주목 받을만한 책목록을 받는다. 솔직히 나는 이 책을 목록에 넣지 않았을 뿐 아니라, 끝까지 선정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물론 어떤 사람은 자신이 추천한 책이 선정되서 좋았을런지 모르겠지만, 이 책은 평가단이 읽기엔 다소 적절치 않은 요소들을 가지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마시길. 이책이 선정되길 바라셨던 분들을 한꺼번에 싸잡아 비판하자는 것은 아니다.   

책은 좋은 것이다. 모든 사람이 좋다고 해서 다 좋은 것이 아니듯, 모든 사람이 나쁘다고 해서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어떤 책이든 그책을 읽고 좋아할 사람이 있다면 그책은 그것으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가 언제 읽느냐에 따라 책의 가치는 또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대하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말하자면 그 이야기로 이 책의 리뷰를 대신할까 한다.  

우선, 전에 어느 님이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한다. 서평단과 평가단은 구분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그때 나는 그분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이름은 평가단이라면서, 선정된 도서에 대해선 리뷰를 해 달라고 한다. 나는 이게 좀 엇갈려 보인다는 생각이 든다. 평가단이면 끝까지 그책을 평가해야지, 리뷰, 즉 서평을 해야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물론 평가에 서평을 포함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 느낌이나 생각을 자유롭게 쓰게 되지 않는가? 그런데 무엇이 평가고, 무엇이 서평인가에 대한 뜻은 짚고 넘어갈 필요는 있어 보인다. 그전에 평가단이라면 평가 기준에 있어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있어 왔었던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하도 오랜만에 하는 것이라. 원래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게 그렇잖은가? 자신에게 중요한 일은 기억하려고 애쓰지만, 중요치 않은 일은 금세 잊어 먹는다. 그것이 아무리 근사하고, 멋져 보이더라도.

폐일언하고, 좀 주제 넘어 보일지 몰라도, 내가 생각하는 평가단이 일반 독자와 다른 건, 그 책을 남보다 빨리 읽고 이책이 다른 사람에게도 읽힐만한가 아닌가를 판단해주는, 말하지면 얼리어댑터의 기능도 가지고 있다고 보아진다. 아니 사실은 이 기능이 그 무엇보다 앞서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지 않아도 개인 서평을 쓸 때도 그 책을 강추할 것이냐 아니냐를 끝에 화룡점정처럼 남기기도 하는데, 평가단이야 더 말해 무엇할 것인가? 그랬을 때 내가 본 <사유 속의 영화>를 강추할 것이냐 말 것이냐엔 재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난 당연히 강추하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생각보다 많다.  

무엇보다 책이 너무 어렵다. 이 책이 내가 필요해서 봐야되는 책이라고 한다면, 게다가 마침 영화를 이론적으로 공부하는 후배나 친구가 있다면 권할만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일반 독자에게 권한다면 돌아 오는 반응이 어떨지 설명할 필요가 없다.  

더구나 이 책은 프랑스(그 나라가 영화가 발달된 나라이긴 하지) 저명 철학자나 미학자들이 쓴 논문들이다. 근데 간과할 수 없는 건, 그들이 쓰긴 썼지만 그게 또 유감스럽게도 지금으로부터 2,30년전에 발표한 글들이다. 만일 이 책이 비슷한 시기에 번역 출간됐더라면 혹 읽혔을런지 모르겠다. 연대도 비슷하지만, 무엇보다 그땐 학문이 상아탑 안에 갇혀 그 권위를 뽐냈을 시절이다. 그 시절 대학이나 대학원 다녔을 때 어려운 전공책이나 칸트 같은 어려운 철학책 끼고 다녔으면 꽤 폼이 날만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책으로는 먹히지 않는다. 지금은 얼마나 어려운 학문을 얼마나 쉬운 언어로 풀어낼 수 있고, 그런 책을 잘 찾아내는 것도 능력이다 싶을만한 시대에 살고 있다.  

물론 독자가 어느 세 그런 것에 길들여져서 너무 말랑말랑하고, 달달한 것만을 좋아하는 것도 문제는 있어 보인다. 그러나 어쨌든 내가 평가단인 이상 이 책을 일반 독자에게 읽으라고 할 수는 없다.  

사실 난 지난 번 <101명의 화가>에 대해 거의 혹평에 가까운 평가를 했었다. 그런데 내가 초두에 밝혔지만, 누가 어떤 책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시각을 달라진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위의 책이 책의 권위로 보나, 판형으로 보다 더 값 나가는 책이라는 것엔 이의가 없다. 하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평가단의 이름으로 했을 때는 이 책이 할 말은 더 많아 보인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그리고 이즈음 난 평가단 주최측에 한 가지 의혹이 생기는데, 결국 많은 사람이 주목할만한 책을 띄운다고 하지만, 결국 칼자루는 주최측이 가지고 있다. 주최측이 최종적으로 선정된 두 권의 책에 대해서 평가단은 평가를 할 수가 있다. 좋으나, 싫으나. 그런데 이즈음 주최측은 무슨 근거를 가지고 최종 선정된 책을 보내주는지 모르겠다. 내 짐작이 틀리지 않다면, 주최측도 평가단들이 올린 주목할만한 신간 의견들을 취합해 그중 협찬을 해 줄 출판사를 섭외하고, 섭외된 해당 출판사의 책을 최종 선정에 보내주는 것은 아닐까? 물론 출판사 섭외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협찬해 주겠다는 출판사의 책을 최종 선정도서로 하기 보단,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읽을만한 책이 무엇인가를 좀 더 생각한 후에 선정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선정은 아닐까? 솔직히 이번의 책은 몇몇 평가단이 선정됐으면 하는 바람만 가졌을 뿐, 꼭 되야한다는 당위성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선정에서 제외해도 되는 책은 아니었냐 하는 것이다. 우리가 영화 전문가나 전공자는 아니지 않는가?  이런 책 평가하기는 되게 어렵다. 이미 말했지만 책 자체가 어려워서이기도 하지만, 잘못하면 읽지 말아야할 책으로 취급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겠다. 더 말했다가 나의 의도가 왜곡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다음엔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할만한 좋은 책들이 배달되어 오기를 바라며, 이번 달 평가를 마무리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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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1-06-15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하게 과거처럼 열심히 노력해서 협찬받아서 책을 주는 것이 더 낫지 않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그래도 좋은 책들을 꽤 많이 건졌거든요.^^ 읽고 싶지 않은 책이 걸릴 때 정말 의무감으로 읽고 서평을 쓰는 것은 못할 짓입니다.

알라딘신간평가단 2011-06-15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쿠. 깜짝이야. 화제의 서재글을 보다가 깜짝 놀라 댓글을 드립니다.

먼저 스텔라님께,

일단 주최측에 대한 의혹부터..... --> 일단 한 번도 '협찬해줄 만한 출판사'로 먼저 연락을 한 적은 없고요. 신간 평가단 진행을 잘 안한다는 출판사도, 한 번도 연락한 적이 없었던 출판사도, 일단 순위대로 다 연락해서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책 순서로 컨택을 합니다. 이건 약속이었으니까요. 거절을 당할 것 같아도, 일단 거절을 거칩니다. ㅎㅎ

다만 책을 골라야 하는 경우는 동점이 발생했거나, 한 출판사 책이 한 분야에 두 권 들어왔을 때, 입니다. 혹은 모든 책이 5표 이하를 받아서 중구난방일 때, 제 의견과 담당 분야 MD의 도움을 받아 선정을 합니다. 위와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땐 많은 사람이 읽고 공감할 만한 책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도 하긴 하지만, 그건 모든 책들이 5표 이하로 좀 고르게 선정됐을 경우에 주로 하고요, 이렇게 9명의 신간평가단 분들의 선택에 제 식견이 개입한다는 건 초기 취지에 어긋난다는 생각이 들어요. 현재까지의 룰에서는요. 다만, 이를 위해 룰 변경을 고민해볼 수는 있겠지만, 9기 신간평가단 분들은 현재의 룰에 동의하고 들어오신 분들이기 때문에 진행 중에 제가 마음대로 변경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나는 가수다, 도 막 생각나네요...ㅎ) 게다가 제 시각도 완벽하지 않고요. 사유속의 영화와 같은 경우는 20명 중 9명이 추천해주셨고, 따라서 1순위로 컨택되었던 도서입니다. 9명이 추천한 책을 '어려워 보인다'는 이유로 제가 만류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일단 신간평가단 담당자, 라는 필터는 신간평가단 분들의 추천을 취합해 출판사와 연결해 진행을 중간에서 조율하는 역할 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신간평가단 분들이, 자신이 평가할 수 있는 책인지를 스스로 판단해 주시길, 그리고 출판사에서 이 책이 신간평가단 분들이 평가하시기에 적절한 책인지 결정해 주시길 바라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 중간자의 입장에서 16권의 책을 모두 읽어보지는 못해서, 판단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설령 읽는다 한들, 저 역시 '취향'을 가진 한 사람이기 때문에 (한사람님 아니고요, ㅎ) 제 기준으로 추천드릴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예술 분야 신간평가단을 만들 때 바라기는, 에세이 분야와는 좀 차별화된, 전문적인 시각과 식견을 가지고 해당 도서에 대해 평을 해주실 수 있는 분들이 모여 대중서와 더불어 조금 어려운 전문서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이었는데, 예술이라는 분야가 아무래도 방대하다보니, 모든 분야에 모든 분들이 전문적일 수가 없다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스텔라님 말씀을 읽으니 다음 번에는 해당 분야를 유지하는 방안에 대해서 좀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예술 분야라고 해놓고, 가벼운 에세이류의 대중 예술서만 읽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암튼 말씀 고맙습니다. 말씀 주신 부분에 대해서는 더 고민해보겠습니다.

한사람 님께 //

1번은, 제가 답변드릴 부분이 아닌 것 같고요.

2번은 일단 최선, 이라기보다는 한단계 진화, 정도로만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여러 명에게 동일한 책을 읽게 하는 시스템이다 보니 출판사에서 저희 쪽에 먼저 컨택을 하고 그 책을 신간 평가단 분들에게 주 1회 1~2권씩 발송하던 시스템을 보완한 체계입니다. 너무 많은 책을 드리다 보니 평가하시는 분들도 지치시고 하다보니 그 시스템을 보완한 것이 현재의 방법입니다. 책의 수를 줄이고, 원하는 책을 보내주자, 는 취지로 기획된 룰입니다. 독자분들을 책 마케팅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책을 고르고, 직접 평가하는 분들로 정의하고 싶다, 라는 욕심도 좀 작용했고요. 완벽한 시스템 아니고요, 실은 출판사에 제안할 때도 좀 죄송한 점이 있는 시스템입니다. (이를테면 비싼 책을 10분만 진행하고 싶은 분들도 계시고, 월초 출간 도서는, 신간평가단 진행시에는 이미 마케팅을 접는 사례도 발생하고요... 그럼에도, 신간평가단 분들이 워낙 책을 보는 안목이 탁월하시고, 리뷰를 잘 써주셔서 다들 진행에 호의적이시긴 합니다만...)

분야별로 리스트를 제시하는 방법은 리스트의 기준이라는 게 참 모호해서, 다소 어려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선정된 후 근거를 제시하는 방법은 어떤 방식을 말씀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이해력이 부족해 죄송합니다 ㅜㅜ

3번은 일단 보시면 아시겠지만, 신간평가단 분들이 글을 쓰는 스타일이 워낙 제각각이어서, 각자의 개성을 굳이 제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유아/실용의 경우는 또 포토리뷰도 많이 올라오고 있고요.. 저는 오히려 다양한 스타일의 글을 보는 것이 좋은데요. 정형화가 필요하다고 느끼셨다면 어떤 이유에서인지 궁금합니다~ (진심으로 여쭙는 거에요!)

그리고, 인지자본주의는 저도 걱정을 많이 했는데, 그 책도 무려 7분이나 신청을... 하지만 인문 분야 신간평가단 분들을 한 분 한 분 뽑은 담당자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써주실 수 있으리라 생각을 하고, 대신 기한을 좀 늘렸는데요... 아무래도 좀 어렵지요... ㅜㅜ 하지만 조명되는 것이 의미가 있는 분야라서, 신간평가단 분들에 대한 무한 신뢰로 보내드렸....ㅜㅜ


모든 책의 깊이와 난이도가 다르고, 또 그 책을 받아들이는 분들의 전문분야, 지식, 취향, 선호도가 모두 다르니, 운영해 나가는 일이 쉽지 않네요. (아, 두 분을 폄하하는 발언이 아닌 것 아시죠? 오해는 부디 마시고요. 저는 두 분의 리뷰를 오래전부터 봐 왔는걸요!) 소설의 경우도 국내소설을 좋아하는 분들이 계시고, 외국 소설을 좋아하는 분들이 계시고, 실용서도 요리책이 좋은 분이 계시고, 여행서가 좋은 분이 계시고...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진행하다보니, 제 역할은 모든 사람에게 완벽한 시스템을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곳에 선을 긋는 것일 수밖에 없네요. 하지만 그 선에 대해 계속 다시 고민해보고, 다시 그어보고, 하는 시도는 계속 해볼게요!

두 분 모두 말씀 고맙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stella.K 2011-06-15 19:18   좋아요 0 | URL
알라딘신간평가단도 고민이 많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런 글을 올리는 것도
앞으로 주최측이 좀 더 좋은 책을 선정하시는데 도움이 되시라고,
드리는 말씀이니 너무 섭섭해 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원래 일이라는 게, 이쪽을 맞혀주면 저쪽이 울고, 저쪽을 맞히면 이쪽이 울고
중간을 맞추기가 어려운 법이죠.
간과할 수 없는 건, 우리 알라디너들이 책을 보는 수준이 꽤 높으시네요.
하지만 모르긴 해도, <사유 속의 영화>을 선택하셨던 분들 중 적지 않은 분들이 후회하지는 않으셨을지요. 거기에 그것을 선택하지 않은 평가단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그책을 읽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나마 선정된 두 권의 책중 한 권은 좀 쉽고, 한 권은 어렵고 또는 서로 성격이 다른 책들이 선정됐다면 아쉬움이 덜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예를들어, 잔뜩 기대하고 받았던 서평단의 첫 책은 둘 다 만화였습니다. 이미 밝히기도 했지만 저는 만화를 별로 즐기지 않습니다. 물론 신간 평가를 저의 취향에 맞출 필요는 없지요. 하지만 두 권 다 만화를 할 필요는 없다고 보여 집니다. 한권 정도는 다른 것으로 해서 적어도 주최측이 꽤 공정하려고 애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셔야 했던 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보내 주신 책도 어렵기는 그책과 함께 선정된 <지혜로지은 한국 건축>인가 하는 책도 못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에세이류 같은 달달한 책만을 선정할 수 없지 않느냐고 했는데, 그런 책 받아나 봤으면 좋겠습니다.

stella.K 2011-06-15 18:56   좋아요 0 | URL
한사람님, 뭐 어떻습니까?
우리 이참에 그냥 끝장토론 냅시다.ㅋㅋ

알라딘신간평가단 2011-06-15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메모장에 쓸 땐 몰랐는데, 달고나니 너무 기네요~ ㅜㅜ

stella.K 2011-06-15 18:48   좋아요 0 | URL
괜찮습니다. 저는 더 기니.ㅋ 어쨌든 이어쓰자면, 제가 저쯤에서 평가를 마친 것도 한 사람님의 말씀처럼 결국 내가 원하는 책이 선정 안됐다고 투정으로 보여질까봐 더 이상의 언급을 회피했습니다. 저 역시 어려운 책이 이 정도의 반응을 보일 생각은 없습니다. 어려움도 감수하고 읽어야할 책은 읽습니다.
사실, <사유속의 영화>는 쓰면서 번역하신 분에게 결례를 범하는 것은 아닌지 심히 저어 되더군요. 그게 아니더라도 출판사측이야 좋은 의도에서 알라딘에 보내줬겠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보니 그게 아니다 싶을 때 어떤 느낌이겠습니까? 책을 좋아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어려운 책을 다 소화를 잘 하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그래서도 더더욱 주최측의 필터링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냐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제라도 고민을 해 봐주신다니 그것만으로도 저는 기쁩니다.
사실 이렇게 이 분야가 어려울 줄 알았으면, 저도 에세이나 소설쪽으로 선택을 할 걸 그랬다 싶기도 해요. 사실 저 자신 저의 수준을 너무 과대평가한 건 아닐까? 이즈음 후회하고 있었으니까요.
아무튼 평가단의 선전을 기대해 봅니다.
수고하십시오.^^

2011-06-16 0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16 1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 본격적으로 책을 읽은 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다.
그때부터 책을 모으기 시작했고,
책이 빽빽히 쌓여있거나, 꽂혀 있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런 걸 중학교 들어가면서, 그동안 모아온 계림문고 어린이 책을 과감하게 버리고 ,
어른들이 봄직한 묵직한 세로 줄 책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 무렵, 어찌어찌 해서 장식장을 내 방에 들여놓게 됐는데,
이게 거실에 있었으면 폼잡느라고 갖가지 술병에, 장식품들이 들어갔을 것이다.
더구나 옛날 장식장들은 요즘 나오는 그런 것이 아니어서,
제법 크기도 크거니와 수납공간이 넓어 책장을 겸하기도 했다.

그런 책장에 나는 참 부지런히도 책을 사서 꽂았다.
돈이 많았더라면 전집류로 채우면 됐을 것이다.
하지만 난 돈도 없거니와, 그딴 과시용은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비록 책을 읽다 포기하는 일이 있어도, 일일이 내 손떼가 묻고, 나의 체취가 묻은(묻어봤자 얼마나 묻었겠냐만) 그런 책으로 빽빽히 세울 수 있기를 바랐다.

처음엔 이걸 언제 다 채우나 싶었는데,
곧 책을 빈 공간 하나 없이 빽빽히 채우고,
그것도 모자라 책장 위에도 책을 얹져서, 보고만 있어도 배가 그득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가끔 심심하면, 어디 내가 그동안 몇 권의 책을 모았나 세어보기도 했는데 400권 넘어가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책을 세지 않았다.
그게 벌써 꽤 오래 전 일이다. 물론 중간에 남을 주기도 했으니 많아야 그 선을 넘어갈 것 같지는 않다.

지금도 난 몇 권의 책이 있는지 잘 모른다.
이사 때 안타깝게도 그 책장을 버리고 왔을 뿐만 아니라,
이사 와서도 지금까지 풀지 못한 책 박스가 몇 개가 되고,
그 위에 책을 차곡차곡 싸놓았다.
또 그것도 부족해 안 읽은 책이 산더미다. 
아무튼 내가 생각해도 엄청나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모르는 사람은 내가 책을 여러 방면에서 굉장히 많이 읽는 줄 것이다.
하지만, 나 역시 편식이 심하며, 편견, 편애가 심하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생각해 봤다. 나는 무슨 책을 안 읽는지를.

우선 난, 추리 또는 미스터리류를 읽지 않는다.
그걸 읽으면 좀 머리가 빠릿빠릿 해 질 텐데, 이야기의 얼개를 파악하는데 꽤 시간이 걸리므로
그 머리 쓰는 게 싫어 안 읽는다.

또, 작가 김훈은, 소설 같은 건 읽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자신이 읽는 책은, 법전이나, 소방 수칙, 칼 만드는 법. 뭐 이런 책을 읽는다고 했다.
내가 그런 책을 읽을 턱이 있겠는가? 

그림 많고, 글씨 드문드문 박힌 책 역시 제외된다.
그런 책 보면 괜히 책을 속아서 사는 느낌이 들어 선택하지 않게된다. 
이것에 대해서는 어제 읽은, 조너선 샤프란 포어 말에 귀 기울여 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문학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다들 완고해요. 활자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나 봐요.
비주얼이 들어간 소설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놀라워하죠."
"비주얼의 중요성이 높아지는 건 확실해요. 세상을 둘러보면 온통 멀티미디어잖아요."
출판업계의 작가들은 누구보다 미디어 빅뱅을 체감할 수 없다. 

                                                                                   -엘르 2011,6월호에서-

멀티미디어적 세상에서 굳이 책까지 그래야 하는 것인가란 다소의 의문의 여지는 남지만,
이 자체만으로도 생각해 볼 가치는 있어 보인다. 
그래도 난 책은 역시 활자의 향연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사방팔방을 돌아봐도 다 멀티미디어도, 이미지인데 책까지 그래야할 필요가 있는가?
그건 또 나의 어린 시절하고도 무관하지 않아 보이는데,
난 어렸을 때 그림책을 그다지 많이 볼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나지 못했다.
유치원 거치지 않고 바로 초등학교로 직행했던 것처럼, 
나는 한글을 깨치고 나서 바로 책을 읽기 시작한거나 다름없다. 

또한 나는, 가제본을 읽지 않는다.
그런 것으로 봐 나는 분명 활자중독자는 아닌 것도 같다.
활자중독자는 뭐든 읽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이라 가제본도 읽을 것이다.
나도 한 때는 가제본 몇 권 읽긴했다. 근데 읽다보면 넘기는 맛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의 정본은 두 페이지가 왼쪽, 오른쪽 한 면이지만,
어떤 가제본은 4 페이지가 한 면이다. 속도감이 없고, 왠지 모르게 벅차다는 느낌이 든다.
뭐 그런 건 차치하고라도, 가제본 읽으면 나중에 정본 보내주는데,
이게 또 사람은 묘하게 만든다.
남 주자니 아깝고, 갖고 있자니 별로 필요가 없다.
출판사에서 아예 안 만들면 좋겠는데...

가제본은 확실히 종이낭비란 생각이 든다.
가득이나 요즘 종이컵 안 쓰기, 산림 보호 이런 거 하고 있는데,
출판사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꽤 의식있는 사람들인 줄 착각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제본은 가제본대로 만들어 종이 낭비하면서, 
여타의 자연보호에 관한 그런 책내면 좋은 책 출판하는 건가?

또한 난 학교 때 수학이나 과학은 젬병이었던 관계로
그런 책은 아예 쳐다도 보지 않는다.
막 내 상처가 건드려지는 것 같아 읽기가 싫어진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알지못하는 전인미답의 책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다못해 나는 거의 태어나면서 개를 길러왔고, 지금도 여전히 개를 기르고 있으면서도
개에 관한 책은 읽어보지도 못했다. 

또 그뿐인가? 예전엔 책이 그렇게 많이 다양하게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출판 환경이 좋아져서 시쳇말로 개나 소나 다 책을 내겠다고 한다.
더구나 책을 팔기위한 마케팅이나 선전문구는 또 얼마나 요란한가?
그런 가운데 옥석을 가리는 일이 중요해졌다. 그런데 이것이 또 쉽지가 않다.
그 과정에서 나의 편견, 나의 취향이 섞여들어가기 마련이다.

그저 내가 오로지 관심있어 하는 건, 문학과 관련된 책들이 고작인데,
이것 또한 얼마나 편견이 많은가? 이 작가는 고리타분해서 싫고, 저 작가는 청승떨어 싫고,
그 작가는 멍청함을 들어내는 것 같아 웃기고, 등등...
요는, 아는 것이 병이랬다고,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편견은 더욱 심해져 간다는 생각이 든다.

내 방엔 아직도 나의 눈도장과 손때가 묻혀지길 바라는 책들이 그득그득 쌓여 있다.
언젠간 읽어야지 하면서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다.
알고보면 이것도 나의 편견의 산물이다. 내 취향에 맞을 것 같아 사 놓고, 내 취향에서 아직 선택되지 못한 책들.
때론 책에 대한 편견을 깨고, 지평을 넓혀 보겠다고 각종 리뷰 대회나 이벤트에 올인하는 나.
이 모습이 현재 내가 책을 읽는 자화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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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6-05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딴 과시용' ㅋㅋ
저도 책 편식이 심해서 제 남편은 소설 읽는 저보고 감히 '그런 것'만 읽지 말고 골고루 읽으라고 합니다. 문학, 소설 분야만 해도 얼마나 광범위한데...전 그것이라도 골고루 읽으면 좋겠어요.
눈도장과 손때라는 말이 오늘 따라 참 정겹게 들리네요.

stella.K 2011-06-05 19:0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소설도 얼마나 방대한데요.
책은 그렇게 편애만해서 읽어도 다 못 읽어요.ㅜ

제가 손때를 손떼로 잘못 썼죠? 헷갈려요.ㅋ

꼬마요정 2011-06-06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건 베스트셀러라서 안 읽고, 이건 내가 안 좋아하는 작가라서 안 읽고, 요건 너무 어려워서 안 읽고... 하지만 세상 사람 중에서 대부분의 분야를 섭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한 분야, 한 작가만 파도 엄청난 걸요..라고 생각하며 아직 읽지 않은 책들 보면서 한숨 짓는 저입니다.^^

stella.K 2011-06-06 12:41   좋아요 0 | URL
ㅎㅎ 저랑 똑같으시군요.
맞아요. 한 분야, 한 작가도 엄청난데,
또 다른 쪽에선 그렇게 편식하지 말라고 하죠.
책은 너무 방대해요.ㅠ

oren 2011-06-06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tella님의 글을 읽어보니 저는 어른이 되고 난 이후엔 문학을 너무 멀리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초등학교 시절 읍내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 읽을 땐 온통 '문학전집류' 밖에 안 읽었었는데, 최근 들어서는 '문학 특히 소설'과는 완전히 담 쌓고 지내는 것 같아요.

고교시절만 하더라도 한국근대문학전집이나 세계문학전집류들을 곧잘 재미있게 읽었었고, 군대 다닐 때만 하더라도 노벨문학상 수상작품들을 열심히 골라 읽었던 것 같은데, 나이 들면서부터 어느새 딱딱하고 어려운 책들만 골라 읽는 이상한 독서습관으로 바뀐 저 자신을 보면서, 자꾸만 더 문학쪽으로 되돌아가서 말랑말랑한 재미들을 느끼고 싶은 욕구를 느낄 때가 한두번이 아닌데, 그게 참 쉽지가 않네요.

stella.K 2011-06-06 16:23   좋아요 0 | URL
뭘 그렇게까지...
그렇지 않아도 매번 오렌님 독서에 놀라고 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만 파도 인생이 너무 짧다고 생각합니다.
말랑말랑 재미는 저에게 맞기시고, 오렌님 좋아하시는 책
읽으세요.^^
 
예술/대중문화 분야의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5월에 도착한 평가단 책을 채 펼쳐 보기도 전에, 6월에 주목 받을 만한 책을 숙제처럼 하고 있다. 5월에 받은 책 중 한 권은 내가 원하던 책이 선정이어서 이의는 없다만, 도착한 영화 관련 책은 논문집이어서 그다지 마음이 안 간다. 영화야 재밌게 즐기며 보면 되는 거지, 이렇게 어려운 책 옆게 끼고 볼 일 있을까? 좀 겁도나고, 한숨도 나온다. 정말 누구 말마따나 평가단 책이 이렇게 어려워서야 평가단 해 보겠다고 쉽게 덤빌 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라고 써놓고 보니 좀 미안하기도 하다. 그래도 불평은 나의 힘이다. TV의 수준은 딱 중학교 2학년 수준이라고 오래 전 들은 적이 있다. 지금도 그 말이 유효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쉬워야 하고, 누구나 공유가 가능한 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책도 좀 그래야 하지 않을까? 특히 평가단 책은 더더욱. 논문집이야 전공자들 보라고 그러고. 그래도 책은 교양물이니 중학교 수준이 좀 그러면, 고등학교 2학년 생들이 보면 좋을만한 수준으로 뽑아 줬으면 좋겠다.   

이번 달에도 좋은 책들이 선정되길 바라며... 

그림이 참 재밌고, 독특하다. 꽃분홍색 팝콘을 담아 놓은 것도 같고, 밥 색깔이 저럴 리 없겠지만 그래도 밥을 수북히 담아 놓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정확히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언뜻 보면 무슨 잡지 표지 같기도 하다. 그냥 미술 입문자들을 위해 편히 볼 수 있는 책 같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내용을 보면 우리 그림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다.  그렇지! 역시 우리 것은 좋은 것이랬다고, 나도 언제부턴가 우리 그림에 더 눈길과 마음이 간다.  

독특한 건, 4개의 소제목과 그에 따른 우리 그림이 소개되어져 있는데, 또 그 소제목들이 삶을 되돌아 보게하는 주제들이다. 이런 시도가 전에도 있어 왔는지 모르겠지만, 나름 신선해 보여서 마음이 간다. 확실히 무엇을 보느냐가 사람의 생각을 지배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책 보면 나도 좋은 생각이 절로 나올까? 궁금하다.   

 언뜻 위의 책과도 매치가 잘 되 보이지 않나 싶기도 한데, 무엇보다 저자가 마음을 끈다. 손철주! 미술계에선 알아주는 재담가 아닌가? 책 소개에도,  스스로 ‘잘 노는 사람’이라 말하는 그의 사람됨의 멋은 직접 보고 말을 섞어보면 글과 진배없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후회없는 선택이 될 것 같다.  

 

 

 

 

사실 요즘 영화가 가벼워진 것 같긴하다. 아무래도 영화의 경제적 효과를 생각하면 심각하고 괴로운 영화는 잘 안 보게되는 건 사실이다. 그건 좀 안타까운 현실인데, 영화에 관한 책을 봐야한다면 난 이런 책을 보고 싶다.  어렵지 않으면서 뭔가의 생각할 거리를 주면서, 영화 보는 수준을 높여주는 그런 책.  

저자의 경력도 무시 못할 화려한 경력이지만, 나는 무엇보다 출판사가 마음에 든다. 선택을 망설이지 않게 한다.         

 

 

  

                                        그의 삶과 죽음은, 그가 이 세상에 왔다 간지 몇 백년이 흘렀는데도 아직도 회자가 되고 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난 아직도 베토벤에 관한 변변한 전기조차 읽어보질 못했다. 

그런데 저자가 또 불쑥 베토벤에 관한 책을 들이 밀고 있다. 저자가 왜 이 책을 독자들에게 들이 밀었는지 그 진의가 알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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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어, 조지 오웰을 읽는다는 것은 

<동물농장>이나 <1984>이 이미 명작의 반열에 오른지도 한 세대도 더 전의 일이건만, 나에게 있어 조지 오웰은 오래도록 다가가지 못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러던 중, 올해 이런저런 이유로 작가에 대한 나의 주저함을 깨는 개기를 맞이 하였다. 그것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위건 부두로 가는 길>과 <숨쉬러 나가다>를 읽게 된 것. 어느 책이든, 읽기 위하여 첫 장을 펼쳐 볼 때까지, 아니 첫 부분에 해당하는 10 페이지내지 20 페이지를 읽기까지, 과연 이책이 나에게 맞는 책인지 아닌지, 독서가 주는 특유의 긴장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일단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나에게 있어, 조지 오웰을 읽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만만치는 않다는 느낌이다.  

 솔직히, <위건 부두로 가는 길> 같은 경우는 그 유명세도 유명세지만, 무엇보다 르포 문학이 주는  진실함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 읽으려 했던 이유가 더 강하다. 그런데 이 또한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읽기가 쉽지 않았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거북했다. 차라리 문체가 어려운 것이라면 나았을런지도 모르겠다. 문체는 감정을 거의 배제한 채 건조했다. 물론,  읽는 중간 중간 조지 오웰 특유의 유머를 접할 수는 있지만 르포 문학의 특성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읽는 내내 거북하다. 그리고 내안을 맴돌며 물었던 것은, '내가 왜 이책을 읽고 있어야 하는 거지?', '도대체 조지 오웰은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런 책을 썼을까?'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책을 읽고 있노라면, 언젠가 보았던 에밀 졸라의 원작 영화 <제르미날>이 생각이 난다. 그것 역시 탄광을 배경으로 했고, 탄광촌의 메마르고 퍽퍽한 삶과 갱도 안의 풍경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역시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다. 이 영화는 탄광촌의 억압된 분노가 결국 민중봉기로 이어졌던데 반해, <위건부두로 가는 길>은 탄광촌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 것에서 끝나고 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영화의 한 장면은, 큰 물통에 물을 받아놓고 주인공의 일가족이 차례로 그 물에서 목욕을 하는 장면이다. 물을 한번도 갈지도 않고,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목욕을 하는 것이다. 물론 1800년대를 배경으로 했으니 그 시절에 수도시설이 뭐 그리 있었겠는가만, 그것도 하루종일 막장안에서 탄을 캐느라 새까매진 몸을 씼고 있으니, 한 사람도 다 못 씼을 물을 가족 전체가 돌아가며 썼다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조지오웰도 탄광촌 사람들의 삶을 묘사함에 있어서 한 수 위면 위였지, 결코 빠지지 않는다. 그나마 영화는 웅장한 스케일의 보는 맛이라도 있지, 책은 작가가 그야말로 한 자, 한 자 종이 위에 뿌려놓은 활자를 쫓아 가다보면 그 세밀함이 마치 일부러 끌어다 보는 것 같아 굉장히 부담스럽다.  

그런 것을 보면,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느끼는 것 이상이나 또는 이하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것 같다. 자기 이상의 것을 보면 눈이 휘둥그레져, 정말 그럴까? 놀라고, 자기 이하의 것을 보면 절로 미간을 찌푸리게 된다. 그다마 이상의 것은 판타지를 만족시키는 게 있어 다소의 평안함을 느끼지만, 이하의 것을 보는 건 괴롭고, 그나마 나는 저 정도는 아니지 하는 위안 정도 삼는다고나 할까?  

나는 애초부터 부잣집에서 태어나보지 못한 관계로 있는 것을 자랑하며 살아보지 못했다. 대신 가난하지도 않아, 남의 도움을 받고 살거나 도적질은 더더욱 하며 살아보질 못했다. 그래서 극빈자의 삶이 어떤 것인지 도무지 알지 못한다. 그러니 이책은 내가 읽기에 적지않은 부담감이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읽기가 편했던 것은 이책이 아니었나 싶다. 그도 읽다보면 줄거리를 놓치게 되는 경우가 있어, 몇번을 다시 돌아가 읽기를 반복하며 읽었던 책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안정적이면서도, 오웰 특유의 유머가 있고, 또 어찌보면 몇 가지 사실을 제외하고 오웰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로 묘사가 섬세하고 인상적이다.  특히, 주인공이 지극히 소시민적이어서 나로선 감정이입이 훨씬 수월했다. 솔직히 주인공 조지 볼링의 삶이 우리 서민의 삶을 대변해 준다고 느끼지 않는가? 살이 쪄 놀림을 받긴 해도, 누구를 누르고 좀 더 나은 삶과 대접을 받으려고 하고, 무엇엔가에 대해선 쭈볏거리며, 결혼하기 전 약간 샛길를 가긴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마땅한 처자와 결혼해, 애 낳고  밋밋한 삶을 살기는 영낙없는 우리네의 삶과 똑같은 판박이다.  

특히, 주인공은 중산층이다.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알고 사는 사람들이 다 그렇듯 적당히 성공하고 싶고, 적당히 안주하고 싶어한다. 성공하려면 내가 부셔져야 하고, 안주하면 나른하고, 지루하다.  

이책에서 내가 끊임없이 목도할 수 있었던 것은, 주인공의 뚱뚱한 몸과 전후의 사람들의 삶과 인식에 관한 문제였다.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면 만족스러울 줄 알았다. 그러나 결혼하기 전 아내는 아름다웠지만, 결혼하고나서는 180도 달라져, 늘 가스비와 교육비 등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서 전전긍긍하는 여느 여염집 아낙으로 변해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주는 지루함에서 벗어나고자 주인공 조지 볼링은 고향에로의 여행을 감행한다. 그것의 명목은, 잠시 숨쉬러 가는 거였지만, 그것도 엄밀한 의미에선 일탈의 또 다른 방편이다.                         

나는 결코 그곳에 다시 가지 못하리... 

주인공에 감정이입도 이입이지만, 그의 일탈이 주는 행위도 적잖이 나의 관심을 글었던 것도 사실이다. 고작 주인공의 일탈이란 게 고향을 여행하는 거라니? 너무 건전해 귀엽기까지 하다. 적어도 그렇게 갑갑한 일상을 벗어난다면 근사한 곳으로의 여행이나, 모르는 사람과의 하룻밤 정사. 뭐 그런 것을 상상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데 주인공은 기껏 기대감에 부풀어 고향을 갔지만, 그곳은 어렸을 적  자신이 뛰어놀던 곳과는 너무나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나름 좋아했던 곳에 정신병원이 들어서지 않나? 옛 애인을 보는 것도 괴롭다.   

그것은, 이책의 말미, 즉 4부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그 부분을 읽고 있자니 나도 나의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이 생각이 났다. 특히 나의 유년 시절과 청년 시절을 보냈던 그곳이. 집 앞에서 아무 버스나 잡아타고 길 안 막히면 3,4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그것을, 나는 한번도 작정하고 나서보지 못햇다. 물론, 그동안은 어딘가를 경유해서 가느라 그 언저리를 거쳐간 적은 있다. 하지만 내가 살았던 그동네 골목 골목을 누벼볼 생각을 못하는 것은, 게을러서만도 아니고, 그것은 왠지 다시 돌아보지 못할 나의 용기의 부족같다. 그곳에 가면 왠지 어린 시절이 생각날 것 같아 눈물을 왈칵 쏟을 것만 같고, 너무 많이 변해버린 것에 가슴이 콱 막힐 것도 같아 갈 자신이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반은 이 소설의 주인공을 닮아있고, 반은 주인공을 전혀 닮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어느 땐가는 나의 기억이 다 지워져버리기 전에, 내가 살아 온 곳에 대한 기억을 낫낫이 살려글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인데, 그것은  자본주의의 변화속에 세상이 너무나 많이 변하고 있어, 나의 옛 기억조차 빼앗어 가버릴까 봐서다. 사람이 어떻게 자기가 태어나고, 살던 곳의 풍경을 잊을까? 자서전을 쓸 마음이 있다면, 자기가 살던 곳에 대한 생생한 기억의 묘사도 빠트리지 말 것이다. 그것은 한 인간이 살던 곳의 모습이 지금의 모습이 전부가 아닌 것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내가 강남에서 산다고 하면 무조건 굉장히 잘 사는 줄 안다. 하지만 공히 말하건데, 이 세상 어디든, 가난한 동네에 부자가 살 수 있듯이, 부자 동네에 부자만 사는 것이 아님을 말해두고 싶다.  

또한, 내가 살았던 **동에서 무엇을 보든지 간에 처음부터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 동네는 70년대 중반만 하더라고 아스팔트도 깔려있지 않아, 비가 오거나, 눈이 녹는 봄이면 땅이 질척거려 도무지 한발을 내딛기가 힘들었고, 바람이 불면 황토 먼지가 말도 못했다. 실개천이 있어, 학교를 가려면 크게 깡총 걸음을 내딛어야 했고, 달구지를 맨 소가 똥을 싸며 지나갔던 곳이며, 가을이면 코스모스와 갈대가 흔들거리는 곳이었다. 또 집 뒤쪽엔 조그만 야산이 있었다는 것과, 밤이면 한번도 보지는 못했지만 부엉이 같은 새가 울었다는 것도 말해두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당이 있고, 1 가구 1 주택이 기본이었다는 것도 말하고 싶다.  

자본주의는 위로, 더 위로 

그런것이, 회색빛 아스팔트가 길을 메우고, 산도 깎였으며, 더 이상 소나 부엉이는 울어대지 않았다. 그리고 거기엔 할 수만 있으면 집들은 위로 또 위로 올라가기만 했고, 마당은 아예 없거나, 있어도 그야말로 왜 있어야 하는지 그 존재 가치가 무색하게 조그맣게 있을 뿐이었다. 새로 지은 집에 그 많은 방들은 뜨내기들이나, 소위 '나가요' 언니, 오빠들의 차지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동네는 술집과 그에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장사치들의 소굴이 되어버렸고. 물론 한 동네가 꼭 그것만을 위해 존재했던 건 아니겠지만,  그 무렵이었던 것 같다. '강남 불패'란 말은. 자본주의가 위로, 더 위로 욕망을 키워나갈 때, 자본주의의 찌꺼기들도 더불어 그 욕망에 편입하지 못해 아우성을 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내가 얼마나 옛날을 그리워 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70년 대, 새마을 운동으로 시작해서 80년 대 경제 중흥기를 맞이했지만, 그게 과연 좋은 것이기만 했을까?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때 우리는 확실히 잘 살게 된 것을 실감할 수는 있었지만, 그와 더불어 우리의 삶의 질도 좋아졌는가엔 아무도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자본주의 그 중심해 서지 못해 안달하는 것인가? 

조지 오웰은 평생을 파시즘과 싸워 온 작가다. 만일 그가 21세기를 다시 산다면, 그의 적은 자본주의와 인권이 되야하지 않을까? 나는 처음에 그가 왜 평생토록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고, 그들에 대한 글을 끊임없이 쓰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유가 있었다. 비교적 부유한 환경속에서 자랐던 그는 어느 날 외할아버지의 도움으로 동경하던 버마에 가게됐다. 거기서 그는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것을 봤다. 그것은 그에게 평생 잊지 못할 일로 각이 되었고, 가난한 자들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고, 그들을 대변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전하고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광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해도 자괴감을 느낄만 하다. 그럴 때 우리는 잠시나마 '지식인'으로서의, 전반적으로 우월한 존재로서의 자기 지위를 의심하게 된다. 적어도 지켜보는 동안에는, 우월한 인간들이 계속 우월하기 위해서는 광부들이 피땀을 흘려야만 한다는 자각을 똑똑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위건부두로 가는 길' 49P)  인간이 욕망을 갖고 있는 한 아래로 향해있는 쉽지 않다. 과부가 과부의 사정을 알듯,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만이 잘 아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지 오웰같은 사람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 그들은 누구일까? 어떤 의미일까?  난 저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래로, 더 아래로 

일본이 얼마 전 그렇게 천재지변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얼핏, 일본의 부자들에 대해 기사를 본적이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유목민적 기질을 발휘해, 해외 어딘가에 집을 사 놓고 그런 천재지변이 나면 그곳으로 피난을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년의 반은 해외에 거주하고, 나머지는 국내에 거주하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나라에 큰 일이 나면 피해를 보는 쪽은 역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이나 피해를 보는 것이지 그들은 안전하다.  더불어, 전쟁이 나도 총칼을 들고 전장에 나가는 건 그들이지, 있는 사람은 아닐 것이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과연 남의 나라 일만하겠는가?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나라는 더 했으면 더 했지 결코 일본에 뒤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그 나라는 워낙에 전체주의적 사고가 지배하는 나라기 때문에, 나 보다는 우리를 생각하는 게, 우리나라 보단 훨씬 앞선다. 우리도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그 난리통에도 질서 의식이 상당한 것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그런 나라에서 이런 말은 솔직히 일본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 같다. 우리나라나 어울리지.  

그렇게 나라의 궂은 일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이, 나라의 영광스러운 일엔 있는 집 자식들이 빛을 보거나, 덕을 본다면 억울해서 살맛이 나겠는가?  지금 이명박 정부가 비난을 받는 것은, 그의 정책이 없는 사람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있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이기 때문에 비난을 받는 것이다.   

나는, 이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새삼 자본주의만이 살 길인가에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솔직히 자본주의란 말 자체도 있는 사람의 사전에나 있는 말이다.  또한, 현빈이 모 드라마에서 뇌까려서 유명한 대사가 되어버린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이라는 말도 알고보면 자본주의에서 나온 말이고. 자본주의가 아닌 나라에선(그것이 비록 오지더라도) 이 말 자체가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가 존재하기 위해 결과적으로 따라 올 수 밖에 없었던 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이제는 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하지 않을까? 왜 자본가들은 없는 사람까지 같은 대열에 따라오게 만들고, 그들은 돌보지 않는가? 자본가와 없는 사람이 나눠져서 나라를 망치는 것이 아니라, 힘있는 사람이 힘없는 사람에게 힘을 키우는 방법을 가르쳐서 함께 잘 사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자본가들은 역시 이익집단들이다.  그들이 이익만을 앞세우지 않도록 견제해야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일 것임에도 오히려 뒷배를 봐주는 일을 자처하고 있으니 비난을 받는 수 밖에.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뛰는 기름값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물가를 생각하면 우리가 이런 세상을 얼마나 더 오래 버틸 수 있을까?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쯤되면, 뭔가 다른 길을 모색해 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정말 지금의 자본주의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을까? 늘 생각하고, 늘 의심해 본다.  

그래도 조지 오웰은, 결코 21세기를 다시 살지 않을 것이다

조지 오웰의 책을 읽었을 때나, 안 읽었을 때나, 그에 대한 나의 이미지는 별로 변하지 않았다. 디스토피아. 암울한 세상에 대한 반추를 많이했던 작가여서일까? 그의 인생은 별로 행복하지 못했고, 일찍 단명했다. 그가 오래 살았더라도, 그는 이 세상에 가난한 사람이 있는 한 행복하게 살지는 못했을 것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는 21세기를 다시 살지 않을 것이란 것이다. 물론 다시 살 수도 없지만, 다시 살 수 있게 해 준다고 해도 살지 않을 것이다. 그건 20세기에 파시즘이란 괴물과 평생을 씨름했는데, 자본주의와 또 싸우라고?    

하지만 그는, 자신의 소설 <1984>의 빅 브라더만큼이나 유명한 전설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를 영웅이라고까지 부를 것는 없다고 생각한다. 영웅은 혁명가의 것이지 작가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혁명가이면서 작가일 수 없듯이, 작가이면서 혁명가일 수는 없다. 작가는 그저 작가일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전설로 기억하는지도 모르겠다. 지상에 조지 오웰이란 사람이 살다가 갔다. 비록 다른 시대에 살았더라도 이것만으로도 그를 충분히 기억할만한 가치가 있고, 그를 기억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읽기 전엔 그토록이나 쉽지 않은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읽고나니 그에 대한 존경과 함께 묘한 연민이 느껴진다.  내친김에 그의 다른 작품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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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5-14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작년에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랑 <1984> 그리고 에세이집을 읽어봤는데
그 이후로 완전히 조지 오웰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그의 소설과 에세이들이 주로
사회비판적 성향이 많은데도 저 같은 경우에는 쉬우면서도 동시에 인상 깊게 읽었거든요.
조지 오웰을 좋아한다면 <위건 부두>나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인생> 같은 르포도
읽어줘야하는데 저도 간만에 오웰의 글을 읽어봐야겠습니다.

stella.K 2011-05-15 15:29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만일 조지 오웰이 21세기를 산다면
이 자본주의를 비판하지 않았겠느냐구요.
하지만, 그는 파시즘과 평생을 싸웠다잖아요.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그의 시대는 2차 세계대전의 시대
였고, 파시즘의 시대였지요.
그의 책이 근래 많이 나오는 건 뭐 때문일까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본격적으로 그를 주제로한 에세이를 재대로 써야할 것
같아요. 이글은 어설픈 게 많죠?
그래도 예쁘게 봐줘서 고마워요. 시루스님.ㅋㅋ

은비뫼 2011-05-15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이던가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읽었었어요. 별재미는 없지만 조지 오웰의 힘이 있어서인지 자꾸 읽게 됩니다. 셰익스피어 인 컴퍼니에서 하고 많은 책 중 파리와 런던의~ 이 책을 잡은 적이 있어요. 참 아이러니합니다. ^^

stella.K 2011-05-15 15:24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은비뫼님. 조지 오웰의 책을 읽는다는 건
어렵지는 않는데 다소 지루하고, 그런데 덥고나면 자꾸 생각이나요.
중독성이라고나 할까? 암튼 매력있어요.
<나는 왜 쓰는가>를 사 놓고 아직 안 읽었는데
읽어봐야할 것 같아요.^^

cyrus 2011-05-20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만 그런게 아니었군요, 저는 <동물농장>은 재미있게 읽었는데
<1984년>과 <버마 시절>은 약간 지루한게 있더라구요,
이제 <숨 쉬러 나가다>를 읽어보려고 하는데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네요 ^^

stella.K 2011-05-20 22:56   좋아요 0 | URL
에이, 댓글을 또 달고 있어요.ㅎㅎ
일단 작가 자체가 그리 유쾌한 작가는 못되죠.
저는 <위건부두로 가는 길>이 처음 읽은 건데 지루한 것도 지루한 거지만,
너무 처참한 지경이어서 읽기가 괴롭더라구요.
그래도 <숨쉬러 가다>는 위건 보다는 편하게 읽혀요.
이런 작가를 쉽게 좋아할 수는 없겠지만,
작품의 재미의 유무를 떠나 조지 오웰이 위대한 건 그의 작가정신인 것 같아요.
많은 글을 썼지만, 주제 의식이 분명하잖아요. 한 목소리를 내고 있고.
무엇보다 치열하게 썼고.
행복한 작가는 못 됐지만, 자기사명은 충분히 완수한 훌륭한 작가란 생각이
이제야 들더라구요.^^
 
[101명의 화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가끔, 책의 내용에 평하기 보단 책 자체를 평가하고 싶은 책들이 있다.  

솔직히, 우리가 뭐 용가리 통뼈도 아니고, 봉은 더 더욱 아닐진데, 왜 만날 책을 읽었단 이유만으로 서평만 해야한다고 생각하는건데? 책이 좋다는 건 인정하지만, 다 좋은 건 아니지 않는가? 읽는 독자도 책에 대해 할 말은 많다. 책을 안 읽는 사람 보다 읽는 사람이 몇배 더 멋있지만, 그 고상함을 유지하기 위해 좋은 말만 해대는 사람을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예전에, 시나리오를 공부했을 때, 수강생들의 워크샵 작품을 읽고 평가를 해야하는 숙제가 사명처럼 주어졌던 때가 있었다. 그때 유독히 좋은 말만 하는 수강생이 있었다. 내가 볼 땐 그게 그 사람의 성향이고, 성격이었던 것 같다. 이를테면, 좋은 가정 분위기에서 반듯하게 자라, 천성적으로 싫은 말 못하는 사람이다. 뭐 나름 젠틀해서 난 그런 사람 좋은데, 공부할 때 그런 사람은 공공의 적이 된다.  어떻게 이 덜 떨어진 작품에 좋은 말만 해 댈 수 있느냐? 비록, 들을 땐 아파도 좋은 말 보다, 필요한 말을 해 주는 사람이 영화판에서 진정한 전우다. 이것은, 그 시절 나의 사부님이 누누히 강조했던 말이다.  

내가 어쩌다 이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뭐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그 시절 수강생들의 한참 덜 떨어진 작품에 비견 된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확실히 아쉽고, 안타깝고, 쫌만 더 잘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말을 속시원히 까발리고 싶어서다. 그리고 이책은 그 이름도 자랑스런, '알라딘 평가단'에서 받은 책이 아니던가? 서평은 서평이고, 평가는 평가다. 폐일언하고, 나는 이 책에 대해 평가만 하련다.   

사람들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함께 있을 때, 어떤 말을 먼저 듣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까? 나쁜 말 먼저 듣고, 좋은 말 듣는 게 그래도 좀 낫지 않나?   

그래서 말인데, 솔직히 난, 이 책 받아 들었을 때 짜증부터 확 밀려왔다. 만화면 다 용서된다는 건가? 나도 지금 보다 10년, 아니 5년만 더 젊었어도 찌증 같은 건 내색도 않고 열심히 읽고,  어떻게든 느낀점을 말해야지(이게 우리식의 서평 아닌가?), 했을지 모를 일이다.   더구나, 예전 같으면 만화가 하급 문화 행위쯤으로 비하됐지만, 지금은 제9의 예술이라 하여, 누가 만화 본다고 해서 결코 비난하면 안되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하지만 그건 내가 볼 때 솔직히 자위하는 소리 같다. 만화의 길은 아직도 멀고도 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짜증이 밀려왔다는 건 공교롭게도, 글씨가 너무 작고, 촘촘하다는 것 때문이었다. 내가 초두에 말하지 않았던가? 난 용가리 통뼈가 아니라고.  아직 안경은 안 썼다지만, 나도 적지 않은 나이이고 보면, 이런 책은 읽기가 참 난감하다. 만화면 다 용서되냐고 좀 전에 물었는데, 사실 용서될 수도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왜 만화는 아이들이나, 청소년, 젊은이들만 읽어야 하는데? 그 보다 더 나이든 세대. 할머니, 할아버지도 읽으면 안 되는 건가? 가끔, 만화 생산자들, 만화는 매니아들을 위한 것이라는 구태 의연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 만화가의 길은 외롭고, 고독하다고 온갖 똥폼은 다 잡는다. 자기네들 바운더리를 스스로 정해놓고, 누구한테 덤태기를 씌우려 하는 건가?  

이현세 만화를 보고 자랐던 세대가 이제 50을 바라보고, 60이 머지 않았다. 그들 중엔 만화는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고 하여 이미 오래 전에 만화 졸업한 사람이 부지기수겠지만, 왜 만화가 젊을 때 한때의 향수로 취급 받아야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 책은 누가 봐도 판형의 면에서, 나이많은 사람에겐 그다지 어필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더구나, 소개된 화가의 그림을 실사로 집어넣는데, 그게 정말 거짓말 안 보태고 엄지 손톱만 하거나, 그 보다 좀 크거나 했다. 뭐 안 보는 것 보다야 낫긴 하겠지만,  그  보단 그렇게 작은 사이즈 인쇄가 가능하다는 게 새삼 놀라울 뿐이었다.

그림은 모름지기 문화재급으로 보는 것이 제일 좋다.  예를들어, 루브루 박물관전을 우리나라에서 했다 하면, 미술에 대해 문외한이어도 솔깃하다. 왜 그런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그게 아니더라도 될 수 있으면 큰 화면에서 또렷히 보는 것이 좋다. 솔직히 이런 식으로 보는 건,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을 모독하는 것인줄도 모른다. 다행히 책에 실렸던 화가들이 이미 이 세상에 없으니 망정이지, 알았더라면, "당신 내 그림 가지고 뭐하는 거야?" 그랬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적어도, 2page를 더 추가해 그 화가의 주요작품을 좀 크게 볼 수만 있었어도 좋지 않았을까? 부제가, '2page로 보는 화가 이야기'라고 해서 하는 말이다.    

또한, 화가에 관한 책은 이 책 말고도 많이 나온 줄 알고 있다. 과연 이 책이 경쟁력 있게 만들었다고 자부하는지 묻고 싶다.  

그래도 이 책, 나름 특이할만한 것은 있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 화가가 101명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모르는 화가가 이렇게 많았나? 우리가 아는 화가는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새삼 깨닫게 만든다. 마치 이 책을 보고나면, 미술계도 메이저와 마이너가 있는 건가?(없으라는 법 없겠지만) 몇 명 밖에 알지 못했다는 것에서 괜히 억울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이렇게 많은 화가를 알필요가 있을까? 양극단을 오가게 만든다. 또한 이책의 장점이라면, 한 화가에 대해서 그 인생의 시작과 함께 20대, 30대, 4,50대 뭘 했는지를 만화적 상상력과 함께 간략하게 알아 볼 수 있게 해놨다는 점, 그리고 화가 연표와, 그 화가가 지향했던 작품 경향에 대해 개괄적으로 알아 볼 수 있게 했다 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어떤 설명이나, 해석 같은 것은 기대하면 안 된다.  그냥 백과사전 식이다. 일부러 깊이 있게 다루지 않았다는 점에서, 나 같이 미술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는 사람이 편하게 볼 수 있는 책 같다(물론 내용면이 그렇다는 것. 도판이나 판형을 생각하면 영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게다가 한 가지 더 아쉬운 점이 있다면, 순전히 서양화가를 중심으로 다뤘다는 것이다.   

책의 도판이나 판형을 생각하면 나로선 그리 높은 평점은 줄 수가 없지만, 왠지 저자의 공력은 좀 높이 사 주고 싶긴 하다. 별점을 준다면, 3개는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기분도 꿀꿀한데 미술관이나 나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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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011-05-12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랑 ,가요.
 
 그림이라는 거, 볼 줄도 모르고 아는 것도 없지만
 손 잡고 옆에 함께 서 있어 줄 수는 있어요.
 가방도 들어 줄 수 있구요. 나 힘 쎄요.
 

stella.K 2011-05-12 18:27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래요. 나중에 가게되면
연락 드릴게요.
저 가방 들어주는 사람 무지 좋아해요.ㅋㅋ

은비뫼 2011-05-12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자도 그림도 정말 이렇게 작은 책 보기 힘들듯.. 그렇죠? ^^
책 읽으며 미술관가서 정말 큰크기로 그림을 시원하게 보고 싶어지더랬습니다.
눈 좀 쉬게요. 하핫.

무스탕 2011-05-13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내용보다 스텔라님 평가가 더 빛나는 책이네요. ㅋㅋㅋ

stella.K 2011-05-13 10:58   좋아요 0 | URL
ㅎㅎ 이게 웬 일이랍니까? 어쨌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