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청년 비이님과 100일 동안 글을 쓰자고 해 놓고 여기까지 달려왔다. 

그동안 나는 한번도 빠진 적이 없지만, 비이님은 한번 빠진 적이 있어 나는 덕분에 책선물을 받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날 내가 고른 책이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을 선택했이었다. 막상 읽어보니 내가 기대했던 것과 너무 달라서 선물한 비이님께 좀 민망해 하는 중이다. 물론 그는 아직까지 이렇다 말이없지만.  이왕 고른 책이 감명 깊었더라면 선물한 상대도 뿌듯하지 않았을까?  

그 빠지던 날 왜 빠졌는지 나는 알 수는 없지만, 분명 내 짐작엔 비이님은 글을 쓸 수도 있었는데 그냥 겸사겸사해서 빠지고, 나에게 책선물 하기로 한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실 난 벌칙으로 책을 선물 받게 됐다고 마냥 좋아하지는 않았다. 비이님이야 어떤 사정에 의해서 빠지셨는지 모르겠지만, 난 너무 마음이 차칸 것 같다. 큭! 받고도 미안해 했으니. 읽고는 더 미안했다.  그래서 다짐했다. 사람이 이신전심이라고 내 마음이 그런데 하루쯤 빠져서 벌칙으로 비이님한테 책선물한다고 좋아라 할 것 같지 않으니, 빠지지 말고 쓰자.   

그런데 사실은 이 마음도 갖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약한 마음을 갖는데 밀미를 갖게 되니 말이다. 비이님과 좀 더 친해진 다음에 하면 좋을 걸 그랬단 생각이 든다. 왜 친구끼리 딱밤 먹이기 게임을 할 때도 친한 친구일수록 더 독하게 하는 법이 아닌가? 더구나 비이님이나 나나 너무 성실하다. 게임이 안 된다.ㅜ 

하지만 솔직히, 매일 쓴다는 거 쉽지 않다는 거 요즘들어 절감한다(아, 그렇다고 오해는 마시라. 나는 발을 뺄 목적으로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기 위해서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니). 나만이 알아보는 비밀 일기를 쓴다면, 하루쯤 빠져도 상관없고, 괴발세발 맞춤법, 어미가 틀려도 상관없겠지만, 블로그에 글을 쓴다는 건 확실히 신경이 쓰이는 글쓰기다. 

나는 지금 나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있는 중이다. 이쯤되니 지친다. 100일? 까짓 것. 그랬는데 지금이 반환점쯤 되는 지점이니 지칠만도 하다. 왜 하지? 안하고 싶고, 포기하고 싶은 유혹도 있다.  못하겠다고 기권하고, 그 시간에 책 한 장이라도 더 읽고, 습작 한 자라도 더 쓰는 게 낫지 않을까? 오늘은 이걸 썼다. 내일은 뭘 쓰지? 오늘의 페이퍼를 올리기 위해 나는 또 더 열심히 여기 저기 인터넷을 뒤지고 다닌다. 그런다고 뭘 얻으려는 것도, 무슨 영감을 받으려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러면서 써야할 글을 머리속에서 굴리고 있는 중이다. 물론 고민할 것도 없이 쓰는 날도 있다. 이를테면 리뷰 같은 건 재 보지 말고 재깍재깍 써야한다. 그게 없으면 허접한 글이라고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추천이 없거나, 댓글이 없는 날엔 망연자실이 되기도 한다. 그래. 난 역시 글을 못 써. 나 같은 애는 죽어야 해. 꼭 이런 마음이 드는 건 아니지만, 이 비스무레한 자책감도 만만찮다(이건 정말 병이다. 직업병 같은 거. 블로그병). 

내가 이 일을 시작했을 땐, 물론 비이님이 그런 제안을 한 적도 있지만, 이건 나 자신을 위해서도 좋겠다 싶어 시작한 것이다. 그 시작할 즈음엔 모 잡지에서 파올로 코엘로의 글쓰기에 관한 기사를 읽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글을 쓸 때면 수시로 자기 블로그에 짤막한 글이라도 올리며 전세계 블로거들과 대화를 한다고 했다. 가끔은 인터넷에 글을 너무 부지런히 올려도 별로 좋은 이미지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편견이겠지만. 그런데 그 할배도 그렇게 하는데, 까짓 것 나라고 못할까 싶어 한 것이다.  

어떤 사람 보기엔 미련하다고 할지 모르겠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중간에 결론을 내린다는 건 말이 안된다. 결론은 늘 마지막에 내리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이 100일을 채워 나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지금 뭐라고 말할 수 없다. 단지 오늘은 정말 글쓰기 싫은 날이다. 솜이 물이 젖은 날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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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3 16: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13 1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13 16: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1-07-13 19:30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면서 또 쓰는 거죠.
저도 손글씨 쓸 때도 있는데 결국 컴으로 돌아오곤 하더라구요.ㅠ

자하(紫霞) 2011-07-14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가 멈출 생각을 안 하네요~
모두 볼 수 있는 블로그에 글을 쓰는 건 확실히 쉬운 일은 아니지요.
하지만 무엇인가를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남는 것이 있을거라 생각해요~ㅋ
비가 오면 기분이 축 쳐져서 아무것도 하기 싫으니...
저는 빠삭 말린 빨래에서 햇빛 냄새를 맡고 싶어요.흐~

stella.K 2011-07-14 12:20   좋아요 0 | URL
말린 빨래에서 햇볕 냄새라!
와, 정말 절묘한 표현이네요.
저도 그리운 냄새예요.ㅜㅜ

cyrus 2011-07-14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제 처음으로 예비군 훈련을 해봤는데,,
어제 날씨는 최악이었어요, 비가 오면 끝까지 시원하게 내리면 좋은데
비가 오다가 그치기를 수도 없이 반복한 날씨였어요,
그리고 날씨도 습해서 덥더라구요. 훈련 때 머 한 것도 없는데
오늘따라 피곤하네요. 초복에 닭 한마리 잡으면 참 좋을텐데,,
점심 때 삼계탕 먹으려고했는데 가격이 좀 세길래 입맛만 다시고 왔어요.
역시 금계탕이라고 불릴만해요 ^^;;

stella.K 2011-07-15 11:29   좋아요 0 | URL
ㅎㅎ 그랬군요. 첫 훈련치곤 그 시작이 만만치 않았네요.
저도 집이 예비군 훈련장 가까운 곳에 있어
가끔 마을버스 타면 예비군들과 마주치곤 하죠.
그들의 후끈한 마초 냄새란...!ㅋㅋ

어제는 대목이라 삼계탕이 좀 비쌌을 거예요.
오늘부터 좀 싸지지 않았을까요?
대목이라고 비싸게 받는 거 맘에 안 드는데.
대목이 아니어도 그다지 싼 것 같지는 않네요.
그냥 집에서 해 먹는 게 그나마 싸면서도 오붓하게 먹을 수 있지 않을까요?
시루스님 서재에 "어머니와 삼계탕" 뭐 그런 글 좀 볼 수 있으려나요?ㅋㅋ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털어내지 못한 섞연치 않음이 남아 있다.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지그시 관찰해 본다.   이 책은 명백히 사람을 기만하는 게 있다.  

작가가 조로에 관해서 나름 자료조사를 한 것 같긴하다. 충분히 했는지 어쨌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캐릭터를 부여할만큼은 했다고 치자.하지만 작가는 자료조사만 했을 뿐 결정적인 것을 간과했다. 그것은 그사람의 내면에 관해선 채 건드리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슬픔의 아름다움',  '슬픔의 기쁨' 문장의 뛰어남 뭐 이런 것으로 적당히 이 문학의 성과를 포장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책 중간쯤 보면, 한아름이 도네이션 TV 프로그램에 나가려고 한다. 사전 조사차 PD와 작가가 한아름의 집을 방문한다. 여러 가지 사전 인터뷰를 하다 잠시 쉬는 시간 때, 작가와 PD가 나누는 대화를 한아름이 우연히 엿듣게 된다. 그 둘이 나누는 대화는, 한아름이 저 아이에게도 과연 성욕이 있느냐 하는 것이였다. 작가(작품속의 작가나 원작자나)는 단지 이것에 대해 물음만 할 뿐 긍정도 반박도 못하고 그냥 눙치고 지나간다.  나는 여기서부터 작품의 심각한 결함을 보이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그 부분은 눙치고 지나갈 것이 아니라, 긍정이든 부정이든 뭔가의 반응을 했어야 했다고 본다. 아닌 것 같으면 시작부터도 하지 말고.  

사실 조로는 불치병 이전에 장애이기도 하다. 그 말을 자의로 들었건, 우연히 들었건 이건 심히 인격을 저해하는 말이다. 사람이 몸이 장애라고 그 사람의 인격도 장애일 수는 없지 않은가? 몸은 그래도 17세 소년은 이렇게 살아 있다. 거기에 대한 저항이 없다. 그리고 이 부분은 작가도 독자도 별스럽지 않은 양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수잔 손택은 <은유로서의 질병>이란 책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적 질병에 관해 예를 들면, 암이나 에이즈 같은 질병을 통해 낙인을 찍으며,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고, 그들의 집단적 상상력을 부추겨왔다고 말하고 있다. 말하자면, 질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뭔가 추한 것으로 변모시키는 은유의 함정'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를 폭로함으로써 질병은 질병일 뿐이며, 질병은 치료해야 할 대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게 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하고 있다. 

마찬가지다. 여기에 추가해야 할 것이 있다면 장애자다. 우리는 장애자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너무 몰이해적이다. 김애란의 작품이 그만한 결말을 내고 있는 것엔 장애자에 대한 기존에 막연히 느끼고 있는 편견(그것이 나쁜 것이건, 좋은 것이건간)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작가가 그걸 의식했을까? 못하고 썼을까? 어쨌든 그것은 편견은 편견인데, '순백의 편견'이다.  

사실, 은유로서의 장애자의 문제는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온 문제다. 오래 전 어느 잡지에선가 이것을 지적한 기사를 읽어본 적이 있다. 즉 사람들은 막연히 장애자는 '순백의 영혼'을 지녔을 거라는 것이다. 가끔 방송국 같은데서 연예인이나 MC가 장애시설 가서 그들과 함께 놀아 주고, 밥도 같이 먹는 프로를 보여주곤  하는데, 그들은 너무 고상한 척을 한다는 것이다. 마치 몸은 장애가 있어도, 그들의 해맑음, 구김없음, 등을 말하며 천사니, 순백의 영혼이란 말을 남발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정말 그들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그렇다면 반대로 순백의 영혼대신 더럽고, 추악한 영혼을 지녔다는 말이라도 하란 말인가? 아니다. 그들도 비장애인과 같다는 말이다. 그들이 몸이 불편한데 어떻게 해맑을 수만 있는가?  단 1초라도 그들의 몸이 되어본다면 쉽게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들이 부모, 형제를 떠나거나 버림 받아 시설에서 남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데, 그속에서 마냥 행복만 하다면 그걸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원래부터 그런 운명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들도 똑같이 질투하며, 욕심을 부릴 수 있고, 그리움을 알며, 단 1분만이라도 온전한 몸이 되어서 자신이 가려운데를 손으로 박박 긁어보고 싶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결국 그들을 단순히 천사로 떠받들고, 순백의 영혼으로만 본다는 것은 백치로 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도 수잔 손택이 말한 은유의 함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몇 년 전, MBC 스페셜에서 장애자의 성에 대해 다룬 것을 기억한다. 장애자 몇명이 나와서 첫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그중 어떤 사람은 실제로 누드 모델이기도 했다. 그들이 이렇게 TV에 나와 이야기를 하는 건 당연 사회와 비장애인 몰이해에 항거하기 위한 것이었다. 장애인이 인권의 목소리가 여기까지 왔구나, 나름 신선했고 보기는 좋았는데, 그 뒷맛은 씁쓸했다. 장애자와 비장애자의 이해가 원래부터 이루어졌다면 저렇게 TV에 나와서까지 저러지 않아도 됐을 텐데, 뭐든지 인식을 바꾸려면 선구자, 희생양이 필요하듯 저들은 그것을 자처했구나.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도 이해 못하는 건, 그 프로에 여자들만 나왔지 남자들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튼, 이 은유로서의 장애인의 문제는 문학이나 영화를 포함한 드라마에서 좀 더 심각하게 다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장애도 급수가 있고,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잘 다루지 않거나, 장애를 가진 등장인물이 나온다고 해도 극히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작가들조차 심각하게 다루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럴 것 같으면 아예 빼버리던가. 문학적 완성을 위해 슬쩍 차용하는 정도라면 그 정도의 진실성을 알아보는 건 누구보다도 작품을 볼 줄 독자일 것이다. 내가 김애란의 작품에 섞연치 않은 분노를 풀어버리지 못하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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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3 09: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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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대중문화>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나가수'를 보다 보니, 간만에 cd를 샀다. 그렇지 않아도 이 프로에 매료되면서 음반이 나오면 꼭 사야지 벼르고 있었던 거다.  CD를 산 건 정말 전에 없던 일이다. 나이가 들으면서 요즘 인기있는 가수가 누군지 관심을 끊은지 오래다. 그런 내가 '나가수'에 목을 빼고, '불후의 명곡2'를 보며 아이돌 가수들에 대한 선입견을 깬 건 정말 방송의 위력이란 생각이 새삼 든다. 또 나아가선 일부러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를 찾아 보기도 하니 참 격세지감이라고나 할까?  

오랜 기다림 끝에 저 음반을 들었는데 잠깐 소회를 밝혀보자면, 글쎄 막상 받고보니 생각보다 큰 감동은 없었다. 저 씨디는 임재범이 '여러분'을 불렀던 바로 그 음반인데, 2장으로 되어있다. 내가 원했던 건 순수 노래만 수록되어 있는 거였는데, 한 장은 그렇게 되어 있지만, 정작 내가 원했던 1라운드 경연 최종, 즉 임재범이 '여러분'을 불렀던 음반 한장은 방송녹화를 그대로 수록한 것이라 좀 실망했다. 그건 나도 이미 다운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안 사는 건데 하는 후회가 밀려 들었다. '나가수'는 다른 건 다 좋은데 쓸데없는 군더더기가 너무 많다(지난 주 같은 경우엔 정말 짜증 왕대박이었다). 이걸 음반에 그대로 수록했다고 생각해 보아라. 짜증 안나나.    

                                                         

 어쨌든 그러다 보니 자연 우리나라 가요사에 관한 책에도 관심이 간다. 쎄시봉이 최근 다시 조명을 받았다. 그 시대를 이끌었던 사람인 조영남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원래 입담 좋은 양반이란 건 알겠는데, 한동안 TV에 안 나오다가 다시 나오니 왠지 그의 재담도 좀 퇴락했다는 느낌도 들지 않지만, 그래도 쎄시봉 시대를 증언하기론 또 이만한 사람도 없지 싶다.  

쎄시봉이 풍미했던 시절, 난 워낙 어렸기 때문에 왜 쎄시봉인지 잘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성인이 되었다. 지금은 그냥 편한 마음으로 그 시대를 시간여행 해 보고 싶다. 

몇년 전, <작가의 집>이란 책이 나왔었다. 그 책을 아직도 못 읽고 있는데, 이 책은 화가의 집을 조명했다. 그러고 보니 난 화가의 집을 구경해 본적이 없다. 궁금하긴 한데, 이 책의 단점은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화가는 눈을 씼고 봐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뭐 이 책은 집을 조명한거니까, 집에 대해 관심이 많은 나로선 눈길이 머물 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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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7-07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나가수 본선 경연 결과 발표할 때 왜이리 뜸들이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쎄시봉,, 좋죠 ^^ 쎄시봉 특집도 챙겨봤는데,, 쎄시봉이
불어로 아주 멋지다라는 뜻이래요, 그리고 조영남, 윤형주 등 통기타 가수들이
모여서 만든 음악감상실 이름으로 남게 되었어요.

stella.K 2011-07-07 11:41   좋아요 0 | URL
그니까요. 나가수는 다른 건 다 좋은데
쓸데없는 군더더기가 많아요.
결과발표 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그것만 빼면 정말 괜찮은 프론데...
그래서 요즘엔 '불후의 명곡2'가 더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건 그렇게 시간 끌고 하지 않거든요.
거기 나오는 애들도 나름 사랑스럽고.ㅋㅋ

쎄시봉을 아시는군요. 시루스님 세대엔 모를 사람도 많을텐데...
하긴, 공연 때 부모와 자식이 함께 와서 감동 받는 거 보면
참 좋아보였어요. 70년대 낭만의 대명사였죠.^^

stella.K 2011-07-07 12:16   좋아요 0 | URL
그니까요. 그 잔머리가 어디까지 가겠냐구요?
옛날에 개그콘서트, 임혁필이 봉숭아 학당에 나올 때
자기가 귀족 가문 출신이라던 윌리엄 주니어 2세라고 했나?
뭐 그러면서 "천박해!"를 외쳤잖아요.
요즘 저도 그걸 외치고 싶어졌는데,
생각해 보니 제가 요즘 본의 아니게 쇼 프로그램을
챙겨보고 있었더라구요. 다음은 말 안해도 알겠죠?ㅋㅋ
 

 살다보면 가끔, 당시엔 깨닫지 못했던 일들을 나중에 한참 후에야 깨닫는 때가 있다. 3년 전, 갑자기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맘도 공부를 손에서 놓은지가 10년을 훨씬 넘은터라 우연한 개기에 옛 선생님을 TV에서 보고, 그 선생님 계신 학원을 등록하고, 10개월간 열심히 다녔다. 그것도 웬 뜬금없는 영화 시나리오. 그 길을 가야겠다고 해서 간 것은 아니었다. 그냥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이제 정말 적지 않은 나이이고 보면, 더 나이들면 못할 것만 같아서(나는 엊그제 한 작가의 독자와의 만남을 다녀왔는데, 내가 이런데를 앞으로 얼마를 더 다닐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  그즈음 나에게도 신조가 생겼는데, 뭐든지 할 때는 앞뒤 제보지 말고 하자. 눈 감고, 덮어놓고 하자.가 그것이었다. (서글프긴 하지만) 그래야 뭐든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본래 내가 그렇게 성실한 사람이 못되는데, 뭐든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거나,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하면 성실해지는 것 같다. 나는 그 10개월 간은 결석 한 번, 지각 한 번 하지 않고 다녔으니 말이다. 

처음 시작하면서, 또 어떤 만남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나름 기대반, 설레임반이었다. 어딘가를 잘 돌아 다니는 성미도 못되는데, 그 시기만큼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원없이 돌아다니고, 사람들과 얘기도 많이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특히 나는 거기서 한 남자 아이(이런 말 쓰기가 어색하긴 하다. 그도 알고보면 객관적으로 적지않은 나인데. 암튼 나 보다는 어리니까)를 알게 되었다. 그는 당시 영화쪽에 몸 담고 있었지만, 극단쪽에도 인맥을 가지고 있어 그를 통해 싸게 연극을 보러 다니기도 했다.  

어느 날, 우리는 연극을 보고 근처 가까운 곳에서 저녁을 함께 하게 되었다. 밥을 먹다 어떤 무슨 말끝에 사귀는 사람에 대해서 얘기가 나왔다. 공교롭게도 모인 모두가 아직은 서로 조심하느라고 그랬는지, 현재 사귀는 애인이 없거나, 김빠진 맥주 같이 시덥지않은 연애를 하고 있거나 뭐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그는 다소 결의에 찬 어조로, 자신은 지금은 헤어진지가 얼마되지 않아 누군가를 다시 새롭게 사귈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말을 듣는 순간 나는 좀 마음이 짠했지만 함부로 동정하고 나오는 것도 그렇고 해서 농담 삼아 "니가 찼냐? 아니면 채였냐?" 고 대범하게 물었(던 것 같)다. 물론 조심스럽지 않은 건 아닌데,  오빠뻘이었으면 어땠을지 몰라도 동생뻘이고, 왕누나 같은 느낌으로 묻는 건데 뭐 어떠랴 싶었다. 그럴 땐 오히려 시크하게 물어 봐 주는 것이 나을 때가 있다.  

다행히도 내 질문이 좀 우스웠는지, 사람들은 깔깔대고 웃었다. 그러자 그애도 그 웃음 뒤에, "아이, 제가 어떻게 차요? 그냥 채여 줬죠."했다. 마치 그것이 정석인 양. 나는 순간 머리가 복잡했다. 그런 건가? 연애하다 헤어지면 남자는 이미 마음은 떠났지만 여자가 자기를 차 줄 때까지 기다려 주는 건가? 남자들도 많이 차지 않나? 그것도 남자의 에티켓이라면 에티켓이라는 건가? 그럼 뭐야, 남자한테 차인 여자들은? 하지만 난 더 이상 물어보지 못했다. 마침 내 맞은 편에 앉은 여자 아이가 나름 그 애와 비슷한 처지라 한숨을 쉬고 있길래 나는 "너도 차일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거냐?" 해서 또 한바탕 웃었다. 그녀 역시 웃음을 참지 못하며 나에게, "어머, 언니 저는 여자예요. 제가 왜 기다려요?" "아, 너 여자였지. 기다리는 것 같아서..." 그렇게 우린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남녀관계의 복잡성을 어떻게 다 말로 표현하랴? 하지만 여자를 찰 수가 없어서 차일 때까지 기다려줬다는 그 아이는 그후 꽤 오랫동안 나에게서 잊혀지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나는 이은조 작가의 <나를 생각해>란 작품을 읽으면서 그를 또 한 번 떠올리게 됐다.  

이 작품은, 현대 여성의 내면과 현대성을 작가 특유의 꼼꼼한 문체에 녹여낸 꽤 잘 쓴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책에 보면, 주인공 유안과 승원이 오랜 연인관계로 나온다. 연애도 오래했으니 승원은 유안과의 결혼을 생각하지만, 유안은  결혼할 생각이 없다. 적어도 지금으로선. 그 둘의팽팽한 밀고 당김이 어느 만치 유지가 되다가, 어느 순간 관계를 놔버리는 쪽은 유안이 아니라 승원이다. 말하자면 승원이 그만 만나자고 이별을 선언하는 것이다. 팽팽히 유지됐다 무너지는 유안의 내면이 행간에서 읽혀진다.  그것은 또한 그 때 그 남자 아이가 나에게 은연중 각인시켜 놓은 뭔가의 사고체계를 무너 뜨리는 것이기도 했다.  

'뭐야? 남자도 이별을 선언하잖아? 그런데 걔는 왜 그렇게 말했지...?' 그리고 한참 뒤에 따라 온 생각은, '그렇구나. 누군지 모르지만 그 얘는 아직도 상대를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을 그렇게 얘기했던 거구나.'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가끔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을 나중에 어느 책을 읽다가 우연히 깨닫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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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4 18: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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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4 18: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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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4 19: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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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5 12: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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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사투리 쓰는 테스 

이책을 읽은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 책은 독특하게도 번역하는 과정에서 테스를 비롯한 가족들, 동향인들이 하는 대사가 사투리로 표현되어 있다. 사실 이 비슷한 시도가 과거에 없지 않았던 것 같다. 예를들면, 아주 오래 전 나는 <크래머 대 크래머>를 소설로 읽은 적이 있는데, 주인공 집에서 일을 해 주는 가정부가 사투리를 썼던 것으로 안다. 그것을 옮기는 과정에서 한국적 사투리로 번안된 것을 기억한다. 그때서야 나는 퍼뜩, '아, 미국도 사투리가 있겠지' 했다.    

그런 것에 비하면 이 작품은 거의 전면적이다 싶다.  번역도 제2의 창작이라고 하는데 , 이 작품이야 말로 번역의 토착화를 이루어낸 작품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이것에 대해 비평이 엇갈리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사람은 좋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어색하다고도 한다. 솔직히 나는 후자쪽에 가까운데, 이 작품은 과거 영화로 나온 것이기도 하다. 애석하게도 난 영화는 보지 못했는데, 나스타샤 킨스킨이 분한 테스를 대사를 칠 때 충청도 사투리를 쓴다는 게 영 상상이 가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또 생각해 보면, 아직 원작을 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원작자인 토마스 하디도 테스를 시골처녀로 묘사하기 위해 그녀의 대사를 영국식 사투리로 썼을 것도 같다.  모르긴 해도 번역자도 토머스 하디의 그런 의도를 최대한 적극적으로 살리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것을 어색하다고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둘. 표준어, 그것도 알고 보면 패권주의의 결과물은 아닐지? 

그렇게 생각하자, 나는 표준어에 대한 의혹이 생겼다. 우린 보통 서울말을 표준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정말 확실할까?  

약간 황당한 영화 같기는 하지만 <황산벌>을 보면 옛날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백제와 신라가 싸우는데 충청도와 경상도 방언이 오고 가는데 서로 말을 못 알아 먹겠다고 난리를 치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 그 시대에 그랬을지 아닐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겠지만, 영화적 장치로는 충분히 이용할만한 가치가 있는 사안이긴 하다. 하지만 실제로 서로의 말을 알아 듣지 못한다면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조그만 나라에서 삼등분으로 갈라져 잘 들으면 알아 들을 수 있는 말을 서로 못 알아 듣겠다고 하는 건 그냥 자존심 대결 같은 거 아닌가?  

어쨌든, 신라의 입장에선 자기네들이 표준어를 사용한다고 우길 것이고, 백제는 백제대로 자기네 말이 표준어라고 생각했을 법도 하다. 하지만 오늘 날 한국의 표준어는 서울말을 잘 구사하는 것에 있다. 예전에 수도를 옮긴다 어쩐다는 말이 있었는데 그게 대전이 됐다면 충청도 사투리가 득세하는 거 아닌가? 아무튼 그것도 패권주의의 결과물일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어쩌다 서울말이 표준어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셋. 애정관에 관하여     

이 책을 읽다보면, 확실히 18세기의 사랑과 오늘 날 21세기의 사랑은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새삼해 보게 된다. 특히 클레어가 테스를 알게되고 그저 눈만 마주치고, 잠시 포옹만 했을 뿐인데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결혼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지 않은가? 바로 그것이 오늘 날 21세기에 다소 진부하게도 느껴질 법도 하다. 솔직히 20세기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이건 그다지 어색한 것이 아니었다. 당연한 것처럼 보여지기도 했다. 물론 그것에 다소의 재고의 여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오늘 날 같이 인스턴트 사랑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누가 그만한 제스추어에 결혼까지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다. 서로 알 거 다 알고, 따질 것 다 따져서 최중적으로 결혼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생각하며, 결혼은 영악해졌다. 사실 너무 재고 따지고 하는 것도 결혼에 악영향일 수도 있다. 연애를 오래하고 결혼을 하는 사람들 보면 기특도 하지만, 저들은 뭐 때문에 이제 결혼하는 걸까? 약간의 권태로운 측은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어쨌든 이렇게 사랑 하나만을 가지고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때는 지나간 듯도 하다. 그래서일까? 클레어의 결혼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나는 오히려 진부하다기 보단 진지해서 좋아 보인다. 물론 이룰 수 없는 사랑이 되지만. 

넷. 책으로 하여금 잠들지 못하게 하라!

초두에 사투리 쓰는 테스 대해서 언급을 했지만, 나는 문득 이것을 가지고 낭독회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더 정확히는 '낭독 극장'을 열어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테스와 같은 고향 사람들이 대사하는 부분을 눈으로가 아닌 소리로 들어보고 싶었다. 그랬을 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여기엔 다소 연극 작업과 비슷한데, 배역을 각자 정하고 그 배역에 준하는 목소리 연기를 실제로 해 보는 것이다. 마치 성우가 목소리 연기를 하듯, 라디오 극장처럼 말이다. BGM을 비롯한 효과란 효과는 다 바탕에 깔고. 그럼 대박일 텐데. ㅋ.  

우리는 독서는 혼자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가장 최선의 방법이며, 동시에 가장 소극적인 방법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사실 나는 이 '낭독 극장'을 생각하면서 우린 왜 책을 이렇게 소극적으로 향유해 왔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책이 해 볼 수 있는 일, 책 가지고 해 볼 수 있는 다양한 실험을 해 보면 안 되는 걸까? 기껏 우리가 하는 일이란 작가와의 만남이나, 도서전시회 또는 서점에서 책을 둘러보는 게 전부다. 그것을 향유하는 독자들이 책을 가지고 해 볼 수 있는 실험실이 없다는 것었다는 것이다.  

언젠가 아는 이의 블로그에 갔다, 모처의 북카페가 문을 닫았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적이 있다. 재정난이 결국 이유가 됐겠지만, 그건 한편 이해가 가면서도 그렇게 밖엔 할 수 없었을까? 의문스럽기도 했다. 왜 프로그램을 개발하지 않는 걸까? 뭔가의 프로그램을 개발했더라면 안타깝게 문을 닫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사실 책을 좋아한다는 사람들 거의 대부분은 움직이기 싫어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책은 머리에 집어넣은 것이지, 즐기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즉 머리에 집어 넣은 일이 즐기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다못해 그 카페 주인이 비록 낭낭한 목소리는 아니었어도 낭독회라도 매일했더라면  문을 닫는 사태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옛날의 카페는 DJ가 있었다. 그래서 끊임없이 찾아오는 손님과 소통을 하려고 했다. 그와 비슷한 형식이다. 다시 말하면 복고의 부활?ㅋ   

또 예를들면, 출판된지 좀 되긴 했는데, 조경란의 <혀>는 문학에 요리를 접목시킨 아주 훌륭한 소설이다. 나는 그 소설이 차려주는 갖가지 요리의 성찬에 거짓말 조금 보태서 혀를 내둘렀다. 지금도 궁금한 건, 작품에 나오는 송로버섯이 들어간 그 요리가 어떤 요린지 대단히 궁금하다. 그것이 나왔을 당시 바로 이런 궁금증을 채워 줄 뭔가를 어디선가 했다면 쫓아 갔을지 모를 일이다. 또 그것은 책 매출에 영향을 미쳤겠지. 

<하정우, 느낌있다>도 보면, 그의 미술을 직접 감상하고, 그의 영화도 어느 카페에서 감상하고, 그가 즐겨 듣는다는 음악도 실제로 같이 공유는 뭔가의 프로그램을 개발했더라면 좀 더 좋지 않았을까?  그거 하는데 돈이 수억 드나? 난 잘 모르겠다.  

셰익스피어는 지금도 잘 들 줄 모른다고 한다. 이 지구상 어디에서가는 끊임없이 그의 연극이 쉼없이 올려진다고 한다. 좋으니까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사실 그렇더라도 셰익스피어는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책은 누구든 옆에 끼고 다닐만큼 좋아한다. 셰익스피어가 오늘날에도 그 인기 때문에 잠들 수 없는 것처럼, 책도 잠들 수 없게 해야한다. 어디 선가는 끊임없이 책 때문에 몸살이나고, 책을 가지고 끊임없이 실험을 해 볼 수 있는 장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책 매니아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책을 생산하는 자나 수요자나 말이다. 우린 어쩌면 진정으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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