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비용> 얇아서 2 주면 읽을 줄 알았는데  6장, 7장이 지루했다. 조금씩 읽어서인가? 원서랑 읽으려니 그런 건가? 필사까지 욕심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래서 원서 읽기도 번역서 읽기도 자꾸만 미루고 미뤘다. 책이 두껍지 않으니 언제라도 몰아서 2월 내엔 클리어 할 수 있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것도 이제 며칠 안 남았네. 요 며칠 공기질도 머리가 띵할 만큼 나쁜 데다 공기청정기는 필터를 갈아주어야 하는데 그거 검색 하는 게 귀찮아서 미루고 있다. 책 사는 거 빼곤 뭐든 이렇게 잘도 미룬다. 그래도 미루는 게 너무 많아지면 곤란한데...때문에 요즘 집에서도 나쁜 공기와 씨름 중이다. 




거기다 사랑이(츄츄 본명)가 어제오늘 아파서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았다. 선생님은 또 이번이 고비라고. 그래서 새벽에 그렇게 끙끙대고 뒤척였던 거였어. 위액으로 짐작되는 점액이 응아랑 같이 나왔는데 나이가 들어서 이것저것 검사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고 하셨다. 여기 선생님은 과잉 진료를 하지 않는다. 대신에 보호자가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을 아끼지 않는다. 그 때문에 한 번씩 대기가 길어져도 뭐라 하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다. 다들 비슷한 마음일 테니까. 사랑이가 아프니 기분이 꿀꿀해서 서브웨이에 다녀왔다. 에그마요로 한 끼를 해결하려고. 이제는 제법 여러번 사먹어서 주문에 익숙해졌는데도 '소스를 어떻게 하실꺼냐?'는 질문을 들으면 매번 '추천'이란 단어가 생각이 안 난다. 그래서 그냥 "골라주세요~"라고 대답하는데 그럼 저쪽에선 마치 내 잘못을 꼬집어 주듯 "네~ 추천 소스로 해 달란 말씀이시죠?"라고 재확인한다. 그냥 확인하는 거겠지만 그럴 땐 조금 부끄럽고 아마추어가 된 기분이다.  프로페셔널하게 살고 싶은데 내 인생은 늘 아마추어다. 




바람이 점점 세게 부는 걸 보니 공기가 좀 나아질 것 같다. 바람의 마법인지 에그마요의 힘인지 <살림비용>에서 이런 문장을 발견한다. 




사랑 없이 사는 건 시간낭비다. 나는 글쓰기 공화국이자 어린이 공화국에 살고 있었다. 어쨌거나 나는 시몬드 보부아르가 아니니까. 그래, 난 그와는 다른 정거장(결혼)에서 하차해 역시나 다른 승강장(자녀)으로 이동했다고 봐야했다. 그는 내 뮤지였지만 나는 명백히 그의 뮤즈가 아니었다. -84


제발 파리를 버리고 시카고로 와 함께 살자고 올그런이 사정했을때, 보부아르는 이렇게 편지를 보냈다. "난 행복과 사랑만을 위해 살 수 없어. 내 글쓰기와 일이 유일하게 의미를 가지는 곳일지도 모를 이곳에서 계속 글을 쓰고 일을 하는 걸 단념할 순 없어." -87








남들 한창 결혼할 때 이런 확신을 가졌던 보부아르. 사랑, 안정된 삶을 포기할 수 없어서 그저 남들 하는 대로 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녀는 확고했다. 또 다른 남자 올그런이 저렇게 사정했는데도 보부아르는 알았다. 자신이 잃을게 더 많다는 사실을. 한 친구는 오래 사귀었던 사람과 헤어지고 자신에게 반해 꽃다발을 안겨주던 남자와 덜컥 결혼했다. 그 애는 그 남자와 결혼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반한 누군가를 선택한 거였다. 뒤늦게 그 차이를 알았고 나는 뒤늦게 그 사실을 이해했다. 어떤 선택들은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때로 개인을 넘어 타인에게까지 영감을 주는 삶도 있다.







김옥빈과 유태오란 배우가 티키타카 로맨스를 선보이는 <연애대전>이란 드라마를 봤다. 다락방님이 페미니즘 한 스푼이라고 하셔서 골랐는데 내가 보기엔 한 국자 이상 들어가 있다. 클리셰를 깨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비혼 주의자인 변호사 김옥빈은 태권도에 합기도 쿵푸등이 조금씩 다 가능한 싸움의 고수인데다 원나잇도 하는 등 자유로운 성생활을 즐긴다. 면허는 1종이고 주차된 차량으로 더 좁아진 골목길도 잘만 통과한다. 인기 있는 배우로 등장한 유태오는 어색한 한국어 발음 탓인지 어딘지 발연기 같아서 처음에는 살짝 거슬렸는데 볼수록 개성있고 매력있는 타입이다. 실제로 서울대 중퇴인가? 독일어도 수준급이라고 들었는데 아무튼 돈 많은 남자 만나서 인생 역전을 꿈꾸는 여배우들 극혐하는 캐릭터다.  무명시절 같은 업계 종사하는 첫사랑에게 매몰차게 차인 후유증 비슷한 이유였다. 그는 스캔들이 문제가 아니라 상대 여배우와 불화 스캔들이 늘 골칫거리일 정도다. 이런 두 사람이 싸우다가 정이 든다. 이건 로코의 뻔한 지점이지만 전체 분량 중에서 절반이상이 갈등이라 좋았다. 물론 여성의 자유가 남성과 똑같아짐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남성적인게 유일한 '다른 여성'은 아니니까. 그런 면에서 클리셰를 깨려고 애썼지만 이 드라마는 1차원적이다. 기본적인 인식에서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게 다른 가능성을 향한 도약이 될 수 있다는 면에서 결코 나쁘지 않다고 봤다. 여배우에 심쿵 한 적 별로 없는데 김옥빈에게 흔들렸다. 이런 드라마가 많이 나오길 그래야 또 다른 이야기도 가능할테니!!








   가정적이고 순종적인 집안의 천사 역할을 전면 거부하고 여성의 권리와 경제적 자립을 요구한 신여성. 그러나 신여성은 가정을 벗어나자마자 대중매체의 자극적인 이미지화를 거치면서 재빨리 버릇없고 성적으로 자유롭고 자기중심적이며, 재미를 추구하며, 그러면서도 자석처럼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는 플래퍼가 되고 만다.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




영화 '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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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4 1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24 2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24 2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24 2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24 2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24 2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건수하 2023-02-24 2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츄츄 주사맞고 좀 편안해지길요…

오, 마지막에 나오는 책 읽고 싶네요. 일단 땡투했고 3월이 되길 기다려야겠어요 :)

미미 2023-02-24 20:28   좋아요 3 | URL
저도 이 책 오늘 찜했어요!^^* 3월 구매할 책들이 벌써 여러권 쌓였네요.

주사 맞아서 지금은 편안해 보이는데 이후가 걱정이긴 해요.
아 수하님 프로필 사진에 냥이 왕관 근사해요ㅋㅋㅋㅋ

DYDADDY 2023-02-24 20: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랑이가 노견인가 보네요. 어서 나아지기를 바라요. ㅠㅠ

미미 2023-02-24 20:55   좋아요 2 | URL
노견이라 한군데씩 문제가 생기네요 부디 잘 지나갔으면 좋겠어요.
고맙습니다 대디님^^*

stella.K 2023-02-24 20: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유태오 멋지죠. 잘 안 나온다 했더니 여기 나오는군요.
벌써 결혼도 했더군요. 연상이랑.
언젠가 유키즈에 나왔는데…
좀 안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지만 둘이 좋으면 그만이지 뭐 어쩌라고…ㅋㅋ

에고, 사랑이 아프다니까 마음이 그러네요.
전 요즘도 가끔 다롱이 꿈 꿔요. ㅠㅠ

미미 2023-02-24 21:26   좋아요 2 | URL
웨이트를 많이 했는지 근육이 커서 제 타입은 아닌데요.
눈빛도 날카롭고 타고난 배우라고 느꼈어요. 저음으로 말할때 두근두근ㅋㅋㅋㅋ
외국어는 수준급이라고 들었는데 한국어는 아직 조금 어색하더라구요.
유키즈에 나왔었군요? 찾아보니 해외 제작 영화로 요즘 호평받고 있대요.

사랑이 이번에는 정말 힘들 수 있다고 선생님이 자꾸 강조하시네요.
여러번 기적적으로 살아주었는데 어떻게 될지...
다롱이가 꿈에 스텔라님 만나러 오나봐요ㅠ.ㅠ

책먼지 2023-02-25 00: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자고로 서브웨이는 스위트 어니언입니다(진지)!!
사랑이는 씩씩하군요 주사도 잘 맞고요!! 부디 이번 고비도 잘 넘기길요ㅠㅠ

미미 2023-02-25 07:41   좋아요 1 | URL
스위트 어니언 기억해 둬야겠네요!!(역시진지)
사랑이는 늘 씩씩한데다
뽀뽀쟁이랍니다. ^^*

책먼지 2023-02-25 0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유태오는.. <머니게임>에서 정말 미친듯이 섹시하게 나옵니다..

미미 2023-02-25 07:43   좋아요 1 | URL
미친듯이 섹시하다니..
궁금합니다!! 찾아볼께요ㅋㅋㅋ

새파랑 2023-02-25 12: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랑이가 많이 안좋나보네요 ㅜㅜ 빨리 괜찬하지길 바라겠습니다~!!

여전히 미미님은 책사는 것도 열심히시군요. 역시 👍

미미 2023-02-25 13:19   좋아요 1 | URL
사랑이 그래도 주사 맞고 와서 밤에는 잘 잤어요 고맙습니다 새파랑님ㅜㅜ

아 마지막 책은 아직 구입하진 않았어요. 다음달에 사려고요. 정희진님도 참여하셔서^^*

바람돌이 2023-02-25 13: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랑이가 나이가 많군요. 오래도록 같이한 반려동물의 늙어감을 보는것도 사람과 똑같이 서러울듯.... 아직은 좀 더 사랑하고 살자 하고 싶은 그런 마음일거 같아요.
책읽을 시간이 없어서 드라마는 다 패스하는데 책도 읽고 드라마도 보고 영화도 보고, 심지어 원서도 읽고.... 슈퍼우먼이십니다. ^^

미미 2023-02-25 13:58   좋아요 1 | URL
저희 집에서 아마 가장 나이가 많을 거예요. 사람처럼 새치도 나고 털도 점점 백색에 가까워지더라구요. 아픈 곳이 많아지고 걷는 것도 불편해져서 서러워하는게 옆에서 느껴질 정도예요. ^^*
바람돌이님 요즘 바쁘신가보군요! 저도 이번달은 생각만큼 읽지는 못하고 있어요.
3월에는 더 바빠지실텐데 그래도 봄 기운받아 힘나셨음 좋겠습니다~♡

바람돌이 2023-02-25 14:01   좋아요 1 | URL
논다고 바빠서 약간 민망합니다. ㅎㅎ

미미 2023-02-25 14:03   좋아요 1 | URL
더 좋은 일이죠!ㅎㅎㅎ

잠자냥 2023-02-25 17: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본가에도 스무살 넘은 강아지가 있는데 볼때마다 늙어가는 모습 보면 참 마음이 그렇더라고요. 츄츄가 고비를 잘 넘기길 바랍니다.

에그마요에 저는 랜치 스위트칠리 조합 좋아해요~

미미 2023-02-25 18:02   좋아요 1 | URL
본가에서 잘 돌보셨나봐요. 강아지로 만수를 누리고 있군요?!
고맙습니다 잠자냥님^^*

다음주에는 랜치 스위트칠리로 먹어볼께요ㅎㅎㅎ

페넬로페 2023-02-26 2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러가지 스토리가 있는 페이퍼네요.
그 중 저와 강력히 동질적인 것을 발견했어요.
저 역시 프로페셔널하지 않고 아마추어같은 제 모습에 매번 당황합니다~~
요즘에 더 그런 현상이 나타나 맘 다잡고 저를 리셋시키려 노력하고 있어요.
사랑이 고비 잘 넘기면 좋겠습니다^^

미미 2023-02-27 16:11   좋아요 1 | URL
페넬로페님도 그러시군요~^^♡
프로의 길은 멀고도 험난하네요ㅋㅋㅋㅋ
사랑이가 아파서 또 밤낮이 바뀌었어요 고맙습니다^^*



꼬마요정 2023-02-26 23: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김옥빈 좋아합니다. 아스달 연대기나 박쥐 같은 영화에서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자유로운 그녀들의 캐릭터가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그녀들의 모습이 받아들여지면 좋겠습니다. 가끔 저도 저대로 살고 싶은데 주체적인 여성은 꼭 이런 모습인가? 할 때가 있거든요.

사랑이가 고비를 잘 넘기면 좋겠습니다. 좋은 주인에게 사랑받는 강아지네요. 행복할 거예요.

저는 추천보다는 골라주세요가 더 좋습니다. 쉬운 말이 좋아요^^

미미 2023-02-27 16:17   좋아요 1 | URL
요정님 프로필 사진 간지 좔좔 흐릅니다😍
김옥빈에 관한 말씀 백번 공감합니다. 어떤 틀에 갇히지 않는 다양성이 주어질때 지금의 갑갑함이
많이 사라지겠죠?

선생님이 일주일에서 열흘 보고 있대요. 여태 많은 고비를 잘 넘겨왔기에 저는 큰 걱정 안하는데
남편이 자꾸 울어요^^;;

저 계속 골라달라고 할까봐요!ㅋ.ㅋ

그레이스 2023-03-03 13: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지금 드라마 잠깐 보고 왔어요.
읽을 책이 산더미인데,,,,ㅎㅎ
밥하면서, 화장실 갈때마다 봐야하나 고민중입니다.
ㅋㅋ

미미 2023-03-03 15:07   좋아요 1 | URL
재밌죠!ㅋㅋㅋㅋ
그레이스님~♡ 저 처럼 한꺼번에 다 보시면 책태기 올지 모르니 조금씩 나눠보시길 추천드립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투명하고 그녀의 글은 때때로 핏빛이다. 무슨 말을 더 보탤 수 있을까. 



만일 죄가 존재한다면, 그녀는 죄를 지었다. 그녀의 인생 전체가 하나의 과오였으며, 그녀는 헛된 존재였다. P.31



우리의 삶을 채우는 것들은 무엇인가. 채운다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손에 쥘수록 손가락 사이로 더 빠르게 흘러내리는 건 아닐까. 어떤 때에는 이런 형태로 균형을 이루다가 또 어떤 순간에는 그저 일렁이는 바람 한 점 처럼 흩어져버려서 뭐라고 규정짓기도 힘들어진다. 그렇게 모든 순간은 조각조각 나서 연금술사를 기다리듯 멍하니 늘어지지만 또다시 조화를 거부하고 미끄러져 의미를 잃어간다. 그렇게 여러 형태의 반복이다. 사방에서 의미들이 요동친다. 주아나는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사람들 사이에서 균열을 낸다. 초연하게. 그런 그녀의 파열음은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고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을 준다. 




불면증과 난독증 비슷한 상태를 겪고 있다. 비웃을지도 모르지만...한 달에 15권도 읽고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게 정말 나였는지 의심이 갈 정도다. 다독에 무슨 의미가 있겠나 나도 안다. 그런데 읽는 재미를 늦게 알면 ㅡ늦다는 것도 생각하기 나름이지만ㅡ 그걸 모르고 보낸 세월이 너무 아쉽고, 후회되고, 화도 나고 억울하기도 하고 여러 감정이 더하기 더하기가 되면서 조급해진다.  그러다 보니 일단 많이 읽고 싶어진다. 그런데 문제는.




읽고 싶은 책들이 너무 많다는 거. 독서는 어쩜 사람을 만나는 것과도 비슷해서 진득하니 한 사람씩 만나야 제대로 읽을 수 있을 텐데 영 한 곳에 마음이 집중이 되질 않는다. 그러다 지겨워진 것일 수도 있다. 아니라면 집중이 안 되는 이유는 뭘까. 해결하지 않고, 정리하지 않고 방치해둔 골칫거리들 때문인가. 정리되지 않은 책상, 정리되지 않은 노트, 정리되지 않은 관계, 정리되지 않은 생활 방식, 정리되지 않은 계획들 거기에 또 더하기 곱하기가 되어 잡념을 낳는다. 쓸어 담을 수도 없는 잡생각들. 많은 친구들, 많은 음식들로 공허를 채우는 엄마는 음식을 먹어 치워야 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나는 나대로 치워야 할 것을 채워 놓는거겠지. 벌써 지난달에 읽어치운 리스펙토르를 다시 집었다. 줄거리로 가두 듯 설명할 수가 없는 책이다. 이 어지러운 책도 잡념의 결과인가. 어쩌면. 



칼날은 그 선면한 생각을 타고 그녀의 웃고 있는 허파 속으로 얼음장처럼 차갑게 파고들었다. 왜 이미 일어난 일을 거부해야 할까? 동시에 많은 것을 소유하고, 여러 방식으로 느끼고, 다양한 근원들을 통해 삶을 인식하고....그렇게 충만한 삶을 살려는 사람을 누가 막아설 수 있겠어? P.219



주아나 혹은 리스펙토르의 삶의 조각들은 의미를 찾지 못한 채 그저 흘러가 버릴 수도 있었다. 치워질 수도 있었다. 잊힌 기억으로 낡고 색이 바래 구석에 처박힌 필름처럼. 움직임을 잊은 서랍 속 시계처럼. 작가는 구겨진 종이를 펴서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에 매듭을 짓는다. 인연이 얽힌 사람과 그녀를 다녀간 사랑과 그 사랑의 사랑까지 한자리에 모이도록. 그렇게 조각들이 비로소 사건이 될 때 이야기는 심장을 타고 흐르고 고통의 기억들은 운율을 이뤄 마침표에 가닿는다. 조각들이 비로소 사건이 될 때.



그, 이 남자 숨겨진 원천에서 솟구친 불안감이 그녀의 온몸으로 밀려들었고, 모든 세포들을 채웠고, 그녀의 비참한 고독을 침대 아래로 밀어내 버렸다. 세상에, 세상에, 그 후, 그녀는 고통스러운 산고를 치르며, 숨을 헐떡거리며, 굴복의 부드러운 기름이 온몸에 부어지는 걸 느꼈다. 마침내, 마침내 그는 그녀의 것이었다. ㅡ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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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 2023-02-23 22: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진짜 읽고 싶은 건 많은데 … 저는 읽는 활동 자체도 잘 안하는 거 같기도 하지만요. ㅠㅠ 저번에 알라딘에서 독서통계 할 때 백살까지 산다면 이 속도로 몇 권 더 읽을 수 있다고 해줄때 엄청 충격 받았었어요. ㅋㅋㅋ

scott 2023-02-23 23:22   좋아요 3 | URL
교묘한 알라딘 우리 알라디너의 생애 주기를 책 구매를 부추키는 데이터 통계로 페르소나님에게 충격을 ㅋㅋ

미미 2023-02-23 23:23   좋아요 4 | URL
좋아하는 작가들도 쉬지 않고 신간을 내고 이웃들 리뷰 읽음 또 따라 읽고 싶기도 하고요 아웅ㅋㅋㅋㅋ
제 경우엔 욕심이 과해서 한번씩 무기력해지나봐요. 엄청 충격이셨다니 페르소나님 몇 권 나오셨을까요?^^ 일단 집에 있는 책들만 다 읽어도 속이 좀 후련할 것 같아요. 당장은요. 음...그래도 페르소나님 은근 많이 읽으셨잖아요. 원서도요! 저는 제대로 된 책 읽은지 얼마 안되요ㅋ

persona 2023-02-23 23:59   좋아요 3 | URL
이렇게 책이 많은데 아직도 나올 책이 많다니 😱는 항상 하는 생각이지만 저는 다독가가 아니다보니 ㅋㅋㅋ 30-50권정도 읽어왔었거든요.
그러다보니 알라딘에서 앞으로 백살까지 산다면 2천권인가? 도 안되게 읽을 수 있다고 했어요. 천팔백몇 권인가 ㅠㅠㅠㅠㅠ
헐! 저 대학 4년동안 천권읽기, 편입하고 또 천권읽기 해서 이미 20대때 천권읽기 두번 달성하느라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30대 내내 책 한권도 안 읽은 해도 있고요. ㅠㅠ 근데 대학때 읽은 책만큼도 평생 못 읽는다고 생각하니 암 선고 받은 거 같더라고요? 안 읽은 건 자기자신이면서.
또 저희 집안에 백세까지는 커녕 요절하신 분들이 더 많은데 그럼 나머지 시간동안 거의 책을 안 읽는 건가 싶고 눈도 점점 안 보일텐데 오래 살아도 60세 이상이면 책 읽기 더 힘들어지지 않을까 싶고 조바심 나서 미치겠더라고요. 그럴 때 읽는 책은 다 함량미달인 거 같고… 뭐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앞으로 20년간 읽을 수 있는 책을 보니 몇백권 안되더라고요… 아놔.
안돼! 아니야! 이거 아니야!
뭐 이런 파괴본능과 약속시간에 헤매는 것 같은 불안한 마음으로 독서 하게 되고 한동안 그랬어요. ㅋㅋㅋ

미미 2023-02-24 00:21   좋아요 4 | URL
와~ 페르소나님 그 주제로 글 써주셔도 재미날것 같아요~♡
어쩐지 제 예상대로 이미 많이 읽으셨네요!! 그래도 앞으로 2천권이 안된다니 놀라셨겠어요. 두 번이나 달성하신거 알라딘이 알았다면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요? 천권읽기 너무너무 멋져요^^* 저도 사는 동안 내가 생각하는 필독 도서들 클리어 할 수 있을까, 다독 욕심에 정작 읽고 싶은 책 미뤄두고 있는 건 아닐까 막상 죽을때 ˝아놔~ 00를 못 읽었네!!˝ 하고 후회함 어쩌나 별 생각 다해요ㅋㅋㅋㅋ

우끼 2023-02-24 14:10   좋아요 2 | URL
와악… 4년에 천권 가능한가요 ㅠㅠㅠㅠㅠㅠ 대단하십니다…..

persona 2023-02-24 07:24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학점을 포기하면 가능합니다. ㅠㅠ ㅋㅋㅋㅋㅋ

2023-02-23 2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23 2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난티나무 2023-02-24 05: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누가 비웃는단 말씀이세요.ㅠㅠ 미미님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얼른 괜찮아지시길요~~~~
저도 미미님 생각과 조금 겹치는 부분이 있어요. 잡념….ㅎㅎ 저는 요새 새벽에 자꾸만 깹니다…@@

미미 2023-02-24 07:37   좋아요 3 | URL
고맙습니다~♡ 이 글 쓰고 불면증은 조금 나아졌어요ㅋㅋㅋ 머리속이 시끄러운 나날입니다. =ㅁ= (수하님께 배운ㅋ)

책읽는나무 2023-02-24 07: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왠지 공감가는 글이네요.
읽고 싶어 읽었는데, 문득 현타가 와서 책에 체한 듯한 느낌이 들면 난독증 같은 현상이 오는 증상. 저도 한 번씩 겪습니다.
책을 제대로 읽는 것인가? 갑자기 모든 게 귀찮아지고, 나를 의심하게 되고...나중엔 당분간 손을 놓게 되더군요.
그래서인지? 독서력이 늘지 않는 것 같아요ㅋㅋㅋ
근데 한 번씩 찾아오는 난독증은 가장 힘든 권태기인 것 같아요ㅜㅜ
그래도 미미님은 권태기를 잘 극뽁하시는 것 같아요^^

미미 2023-02-24 07:51   좋아요 3 | URL
감정도 습관이라던데 이것도 그런걸까요? 종종 오네요. 저도 어떤 책이 시작이었던것 같고 (용의자 아닌 용의책이 있음ㅋ) 그게 다른 잡념으로 이어져서 뭘 읽어도 눈에 안들어왔어요 이 책 저 책 읽다 만 책이.... 불면증에 책을 읽을 수 있음 딱인데 말입니다 하필ㅋㅋㅋㅋ 나무님 공감해주시고 ‘극뽁‘이라 해주시니 잘 털어내고 싶어집니다^^*

기억의집 2023-02-24 08: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욕심은 많은데.. 유튭을 보면서 집중도가 떨어지긴 해요. 예전에는 하루 종일 책 잡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유튭과 인스타 릴스 보고 앉아 있더라고요….

미미 2023-02-24 10:45   좋아요 1 | URL
아 제 경우는 그런의미에서 드라마 시리즈 한번에 쭉 본 영향도 있나봐요! 영상 볼때 뇌가 책 읽을 때 뇌의 상태가 다르니 말입니다. 완결 된건 궁금해서 몰아 보곤 하는데 이걸 고쳐야겠어요!! 유튭은 취향대로 영상이 뜨니까
빠져들기 쉽더라구요ㅋㅋㅋㅋ

얄라알라 2023-02-25 23:33   좋아요 1 | URL
조금 전까지, 유튜브로 신해철님 영상 샅샅이 훑고 온 저는 뜨끔...

내일은 도서관에 책 반납하러 가지만, 대출해온 책의 10%정도만 완독한 지라..

욕심에 비해, 스크린 보는 시간이 길어지는 게 제 문제 같아요.
미미님처럼 불면도 함께 오고...

미미 2023-02-26 09:26   좋아요 1 | URL
저도 대출한 책들 빨리 안 읽어서 기간 연장도 하고 그러다 그냥 반납하기도 해요ㅋㅋㅋ

영상 시청이 길어지면
독서력은 확실히 떨어지나 봅니다.

알라님 저랑 함께
영상 시청은 줄이고 책으로 돌아가시죠^^*

다락방 2023-02-24 09:35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독서는 어쩜 사람을 만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셨는데, 저는 비슷한 의미로 그래서 책과 내가 만나는 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 아무리 사놓고 쌓아두어도 안만나게 되는 책들도 있고 어떤 책들은 지금 당장 서점 가서 사가지고 읽게 되기도 하고 또 묵혀둔 책들 중에서 먼지를 털고 읽게 되는 책들도 있고요.

독서에 집중이 안된다면 그건 또 그럴 때인게 아닌가 싶어요, 미미 님. 그 때를 그렇게 보내고 나면 다시 또 막 읽고 싶어지는 때가 오고 그러는 것 같아요. 흘려보낼 건 흘려보내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런 사람이라서 제 책상이 이렇게 지저분한건지도 모르겠네요...

잠자냥 2023-02-24 09:47   좋아요 3 | URL
응.

햇살과함께 2023-02-24 10:45   좋아요 2 | URL
ㅋㅋㅋ 한방에 끝내는 자냥님.

다락방 2023-02-24 10:48   좋아요 3 | URL
쳇!

미미 2023-02-24 10:53   좋아요 2 | URL
다락방님은 역시 문학적 감수성이 돋보이세요~♡♡
제가 책과의 관계에 아직 서툰 시기인가봐요ㅋㅋㅋㅋ
인간 첫 사랑 아니 두번째 사랑과도 그래서 실패했는데!!ㅠㅠ 여기에도 적용되네요? 이 사람..아니 이 책을 그만 놓아주어야 하나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다락방님^^*

잠자냥님// 티키타카 너무웃깁니다ㅋㅋ은근 츤데레이심!ㅋㅋㅋㅋ

그레이스 2023-02-24 17:42   좋아요 1 | URL
왜 이렇게 공감이 되는지요^^

레삭매냐 2023-02-24 10: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나오는 족족 사지만 다 읽은
책은 하나도 없다는.

그랬다고 합니다.

미미 2023-02-24 10:56   좋아요 4 | URL
하...저도 그렇습니다
이곳이 문제예요ㅋㅋㅋ

다음달 구매할 책도
벌써 정해놨다고 합니다
🤦‍♀️🤦

stella.K 2023-02-24 1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인세대신 책 100부라니!
그럼 나중에 제대로 계약을 갱신했을까요?
이래서 에이전시가 필요한 것 같은데 억울한 일이 없었는지 모르겠어요.
책 읽어보고 싳긴하군요. 제목도 근사하고.
나이들면 집중력이 떨어지긴 하죠.
조금이라도 뇌가 싱싱할 때 한 권이라도 더 읽어야 할 것 같긴한데
그게 날마다 꿈깥은 일이긴 해요. ㅋㅋ

미미 2023-02-24 14:48   좋아요 2 | URL
자신의 글에 그만큼 확신이 없었던 거겠죠?
그래도 덕분에 길이 열렸고 독창적인 필력도 인정받았으니
괜찮은 것 같아요. 이야기는 꿈을 풀어낸 것 같기도 하고 모호한 구석이
많아요. 그런데 인상적인 문장들이 때로 한 페이지 혹은 두 페이지까지 이어져서
감탄이 나온답니다. ^^*
나이든 탓일까요? 학교 다닐때도 집중력이 그닥 좋진 않았는데
요즘은 확실히 양상이 다르긴 합니다.ㅋㅋㅋㅋ
맞아요!! 뇌가 조금이라도 싱싱할때!!ㅋㅋㅋㅋ

거리의화가 2023-02-24 16: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어제 진작 이 글을 읽었는데 답변이 늦었습니다^^;
저도 2023년 들어와서 뭔가 정체기 같은 느낌이 들어요ㅠㅠ 저 스스로 좀 덜 집중하는 느낌이라 내가 너무 이것저것 하고 있어서인가 싶은 생각도 들고~ 항상 생각하는 겁니다만 스스로에게 가장 엄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저는 미미님께서 여전히 열읽기 하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글이 좋아서 몇 번이고 읽었어요. 미미님 때로 머리가 복잡할 때는 읽었던 책 또 읽는 것도 좋은 듯 싶습니다. 아니면 아예 만화를 봐도 좋구요. 저는 좋아하는 만화책 시리즈가 집에 있는데 가끔 또 읽고 또 읽고 합니다. 그러면 기분 좋아지더라구요!ㅎㅎ

미미 2023-02-24 18:11   좋아요 1 | URL
저도요! 부끄럽지만 이런 상황을 끄집어 내니 좋은 말씀들을 해주셔서
원인 찾는데 도움이 되었네요^^* 어디선가 자기에게 기대가 높은 사람은 남들에게도 기대가 높다고
들은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듣고도 적용이 잘 되지 않는 부분이었는데 이렇게 독서 정체기를 겪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쉼을 얻게 되고 되돌아보게되어 좋네요. 다시 읽으면서 기분 전환이 되었어요!
만화도 좋지요ㅋㅋㅋㅋ 다정한 말씀 감사해요 화가님. 즐거운 저녁 시간 보내세요~♡
 

아, 그때 내가 느끼는 건 연민이다.
연민은 내 방식의 사랑이다. 내 방식의 증오이고 소통이다. 어떤 사람은 욕망으로 살고 또 어떤 사람은 두려움으로 살아가듯, 세상 속의 나를 지탱해 주는 건 연민이다.  - P28

그녀는 어릴적의 욕망 - 힘 - 기적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공식은 연거푸 되풀이되었다. 어떤 걸 소유하지 않고 느끼기. 그러기 위해서는 상상을 받아들일 수 있게끔 가볍고 순수한, 공복의 상태를 유지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건 마치 날아다니면서, 그러니까 발아래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상태로 지극히 소중한 것을, 이를테면 한 아이를 품에 받아드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었다. 그녀는 그게임의 어느 지점에 이르면 자신이 누워 있다는 것조차느끼지 못했다ㅡ그럴 때면 자신이 자신의 모든 생각들속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두려워졌다. 그녀는 바다를 원했고 침대 시트를 느꼈다. 하루가 흘러가고 그녀는 홀로 뒤에 남겨졌다. - P29

그녀는 멍하니 누군가를 떠올렸고ㅡ틈새가 벌어진 커다란 치아와 속눈썹 없는 눈ㅡ
자신의 독창성을 확신하던 그 누군가는 진지한 어조로이렇게 말했었다. 내 삶은 엄청난 야행성이야. 그는 그말을 마치고는 거기 그냥 한밤중의 소처럼 조용히 앉아 있곤 했다. 그는 가끔씩 아무런 논리도, 목적도 없이머리를 까딱이다가 다시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는모두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아, 그래, 그남자는 그녀의 어릴 적 기억 속에 있었고, 그와 함께 떠오르는 건촉촉이 젖은 제비꽃 무리, 지천으로 피어 떨리던…………. - P30

그건 아주 작은 열기였다. 만일 죄가 존재한다면,
그녀는 죄를 지었다. 그녀의 인생 전체가 하나의 과오였으며, 그녀는 헛된 존재였다. 그 목소리를 가진 여자는 어디 있었을까? 그저 성별이 여자일 뿐이었던 여자들은 어디 있었을까? 그리고 그녀가 어렸을 때 시작한것들은 무엇을 통해 지속돼왔을까? 아주 작은 열기를통해서. 그 지난 날들이 맺은 결과들은 여기저기를 떠돌면서 똑같은 대상을 거부했다가 사랑하기를 천 번쯤반복했다. 어둠과 정적 속에서 보낸 그 밤들, 높은 곳에서 반짝이던 작은 별들. 그녀는 주의 깊은 시선을 머금은 채 어스름 속의 침대에 누워 있었다. 흐릿한 흰 침대가 어둠 속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피로가 그녀의 몸으로 스르르 기어들고, 맑은 정신은 그 문어를 피해 달아났다. 너덜너덜한 꿈들, 환상들의 시작, 오타비우는 다른 침실에서 살고 있었다. 기다림이 가져다주던 나른함은 갑자기 응축되면서 빠르고 초조한 몸동작으로, 침묵의 외침으로 변했다. 그 다음엔 추위가, 그리고 잠이. - P31

어떤 것들에게 소유당하지 않고 그것들을 가질 방법이 있을까? - P45

그녀는 자신이 살아 있음을 알았고, 그 모든 순간들이 어떤 고난, 혹은고통스러운 경험의 정점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 순간들에 감사해야 했다. 마치 자신의 바깥으로 벗어난 것처럼, 초연한 태도로 시간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 P47

눈을 반쯤 떴다. 저 아래에 바다가, 양철의 물결처럼 반짝거리며, 깊고, 거대하고, 고요한 모습으로 누워있었다. 짙은 바다는 끊임없이 일렁이며 제 몸을 휘감았다. 바다는 고요한 모래밭 너머에, 사지를 뻗고 누워있었다…………. 살아 있는 몸처럼 누워 있었다. 잔물결 너머에 바다가 있었다-바다. 바다, 그녀는 쉰 목소리로조용히 말했다. - P55

음악의 특정한 순간들, 음악은 생각과 같은 범주에 속해서, 이 둘의 진동은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같은 방식으로 움직였다. 음악은 생각처럼 몹시 내밀해서, 그것은 들려올 때에야 비로소 스스로를 드러냈다. 그것은 생각처럼 몹시 내밀해서, 누군가가 그 소리가 지닌 약간의 뉘앙스라도 흉내 내면, 주아나는 어느새 그 음악이 침범당하고 흩어진 느낌을 받고는 놀라곤했다.  - P65

그녀는 희미하게 깨달았다. 달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더 자유로워지고, 모든 것들에게 더 많은 화가 났으며, 의기양양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분노가 아니라, 사랑이었다. 너무도 강력한 사랑이어서 그 열정은 증오의 힘으로밖에 억제되지 않았다. 이제 난 혼자있는 독사야. 그녀는 선생님과의 관계가 진짜로 끝났음을, 그런 대화를 나눈 뒤에 그를 다시 찾아갈 수는 없음을 상기했다 - P94

꿈들은 나를 무의식의 늪에 빠뜨리는 현실보다 더 완전하다. 그렇다면 중요한 건 뭘까?
사는 것? 아니면 자신이 살아 있음을 아는 것? 몹시도 순수한 말들, 작은 크리스털 방울들. 나는 촉촉이 반짝이는 형상이 내 안에서 뒹구는 것을 느낀다.  - P107

그렇게 그녀는 자신이 고갈된 걸 알았고, 처음으로 고통받았다. 자신이 진짜 둘로 쪼개졌기 때문이었다. 쪼개진 두 부분은 서로를 마주했고, 그녀를 응시했으며, 쪼개져나간 상대가 더 이상 줄 수 없는 것들을 소망했다. 사실 그녀는 늘 둘이었다. 그녀가 존재한다는 걸 어렴풋이 아는 하나와, 실제로 심오하게 존재하는 하나. 단지 그때까지는 그 둘이함께 작용하면서 구분할 수 없었던 것뿐이었다. 이제그녀의 존재를 인식하는 한쪽이 단독으로 작용하고 있었으니, 그건 그 여자가 불행하고 지적인 사람이라는뜻이었다. 그녀는 무언가를 지어내려고 생각을 해보려고, 주의를 딴 데로 돌리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소용없었다. 그녀는 오로지 사는 법밖에 몰랐다. - P120

그녀는 삶 혹은 죽음이라는 본질을 위해 태어났으니, 그 사이의 모든 것들은 그녀에게 고통이었다.  - P121

무엇보다도, 그 여자는 삶을 이해한다. 삶을이해하지 못할 만큼 지적이지 못하니까. 논리적 사고가 무슨 소용인가…………. 설령 도중에 미쳐 버리지 않고삶을 이해하게 된다 해도 그 앎을 지식으로 보존하기란불가능하다. 삶을 완전하게 소유하고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앎을 하나의 태도, 삶의 태도로 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태도는 그 목소리를 가진 여자의 토대를이루는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할 수 있는 게너무 적었다 - P122

그녀를 이토록 불타게 하는 건 무엇일까? 권태…
그래, 하지만 그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그 아래에는불이 있었다. 그 불은 심지어 그것이 죽음을 뜻할 때에도 거기 있었다. 어쩌면 이게 삶의 기쁨인지도 몰랐다. - P127

그녀는 다시 작게 되뇌었다. 그녀는 기도가 자신을 구해 줄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기도하고 싶지 않았다. 고통을 무디게 만드는 모르핀 같은 구제책 모르핀처럼 효과를 보려면 계속 복용량을 늘려야 하는 구제책. 아니,
그녀는 고통을 발견하고, 견디고, 그 안에 있는 신비를다 파헤칠 수 있도록 완전히 소유하기를 원했지, 비겁하게 기도를 올리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 그 정도로 완전히 지치진 않았다.  - P128

자기 바깥에 있는 신을 찾지 않으면 결국 자연스러운 경로에 따라 스스로를 신격화하고, 자신의 고통을 탐색하고, 자신의 과거를 사랑하고, 자기가 떠올린 생각들 속에서 피난처와 따스함을 찾게 될 터였다.
예술 작품이 되기를 열망하며 태어났지만 결국 흉작기의 반쯤 상한 음식 노릇을 하게 되는 생각들 속에서 아니면 아예 고통 속에 자리를 잡고 그 속에서 자신을 체계화할 위험도 있었는데, 그것 역시 악이요 신경 안정제가 될 터였다. - P129

"그래, 난 알아" 주아나가 말을 이었다. "감정과 말의 분리. 이미 그 점에 대해 생각해본적이 있어. 가장신기한 일은,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 순간이 오면 내가느끼는 걸 표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내가 느꼈던 게서서히 내가 말하는 걸로 변해 간다는 거야. 아니면 최소한 이렇게 말할 수는 있겠지. 나를 행동하게 만드는건 내 느낌이 아니라 내 말들이라고. 그건 정말 확실하다고." - P151

그녀는 너무도 육체적이었으므로 순수한 정신이될 수 있었다. 그녀는 형태 없는 상태가 되어 사건들과시간들의 틈바구니를 순간의 가벼움으로 빠져나갔다.
- P154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갔고, 그녀는 자신을 더발견하기를 갈망했다. 이제 그녀는 강하게 자신을 불렀으며, 숨 쉬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았다. 행복이그녀를 지우고, 또 지웠다………. 벌써 자신을 다시 느끼고픈 마음이 들었다. 설령 고통이 함께 하더라도. 하지만 그녀는 깊이, 더 깊이 가라앉기만 했다.  - P159

단 한 가지 익숙해지지 않은 건 잠뿐이었다. 잠은하나의 모험이었다. 그것은 그녀의 생활이 머물던 편안한 명확성으로부터 어둠을 가로지르며 추락하는 일이었다. 매일 밤, 늘 똑같은, 어둡고 서늘한 신비 속으로 죽었다가 새로 태어나는. - P159

난 그를 떠날 거야, 그녀는 다시 되뇌었고, 이번엔 그 생각에서 가느다란 실들이 뻗어 나와 그녀에게 연결되었다. 이제부터 그 생각은 그녀 안에 머물 거였고, 그 실들은 점점 더 두꺼워져서 뿌리를 형성할 터였다. - P177

"그래서 고통을 겪은 시인들의 시는 달콤하고 다정하죠. 반대로 불우한 삶을 산 적이 없는 시인들의시는 고통으로 불타오르고, 저항적이죠." - P181

그, 이 남자 숨겨진 원천에서솟구친 불안감이 그녀의 온몸으로 밀려들었고, 모든세포들을 채웠고, 그녀의 비참한 고독을 침대 아래로밀어내 버렸다. 세상에, 세상에, 그 후, 그녀는 고통스러운 산고를 치르며, 숨을 헐떡거리며, 굴복의 부드러운 기름이 온몸에 부어지는 걸 느꼈다. 마침내, 마침내그는 그녀의 것이었다. - P213

나는 고통이 오케스트라가 내지르는 비명처럼 터져 오를까 봐 늘 두려워해 왔었다. 내가 어디까지 다다를 수 있는지 아는 타인은 아무도 없다. - P246

"그건 천사의 눈물같은거야. 천사의눈물이 뭔지알아? 작은 수선화의 한 종류인데 아주 약한 바람에도 이리저리 굽지. 랄랑드는 밤바다이기도 해.
아직 아무도 해변을 보지 않았을 때의 바다, 아직해가 떠오르기 전의 바다. 내가 ‘랄랑드‘라고 말할때마다 당신은 시원하고 짭짤한 바닷바람을 느끼고, 아직 어둠에 싸인 해변을 천천히, 벌거벗고서걸어야만 해. 그러면 곧 랄랑드를 느낄 거야………….
내 말을 믿어. 나는 바다를 아주 잘 아는 사람들 중하나니까." - P271

그녀는 말할 때, 미친 듯이, 미친 듯이지어냈다! 텅 빈 공간만큼 거대한 충만함이 그를 가득채웠고, 그의 고통은 수면 위에 펼쳐진 드넓은 공간처럼 선명해졌다. 왜 그는 늘 그녀 앞에서 말문이 막히고,
달빛에 잠긴 하얀 벽처럼 망연해지는 걸까? 아니면, 어쩌면 그는 갑자기 깨어나서는 소리칠 수도 있었다. 이여자는 누구지? 이 여자는 내 삶에서 버거운 존재야!
난 도저히………… 난 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더 이상 그럴 수 없었다-그는 갑자기 겁에 질렸고, 길을 잃은 기분을 느꼈다. - P272

그녀는 자신에게 저주였던 그 이상한 자유, 그녀를 심지어 자기 자신과도 연결시켜 준 적이 없었던 그자유야말로 자신의 본질을 밝혀 주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자신의 삶과 영광의 순간들이 거기에서 나오고, 미래의 모든 순간들 역시 거기에서 창조된다는것도 알아차렸다. - P316

프로푼디스….....자신의 말을 들어! 심연의 가장자리에서 가볍게 춤추는 저 덧없는 기회를 잡아. 데 프로푼디스, 의식의 문을 닫아. 처음엔 썩은 물을, 어지러운 말들을 지각하지만, 그다음엔 그 혼란 속에서 순수한 물줄기가 거친 벽을 타고 떨리며 흐른다. 데프로푼디스,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첫 물결이 다시 밀려들게해 데 프로푼디스…………. 그녀는 눈을 감았지만, 어렴풋한 그늘만 보일 뿐이었다. 생각들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자 희미하고 붉은 윤곽을 지닌 가늘고 움직임 없는형상이 보였다.  -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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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02-23 1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밤중의 소처럼 조용히 앉아 있다....
이 부분 맘에 드는데요?

문체가 좀 읽기 힘들거 같긴 한데 궁금한 책이에요 :)

미미 2023-02-23 14:29   좋아요 1 | URL
응?ㅋㅋㅋㅋ수하님 은근 재밌으심요~♡ 다 읽었는데 밑줄 친 부분만 다시 보고 있어요^^ 전반적으로 난해한데도 불구하고 이런 문장들이 한번씩 나와서 이틀만에 읽었어요🤭

건수하 2023-02-23 14:31   좋아요 1 | URL
그녀는 바다를 원했고 침대 시트를 느꼈다…

이런 문장도 재밌네요. 역시 읽기 쉬울 것 같지는 않지만… ^^;;;

미미 2023-02-23 14:33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시적인 분위기예요 전반적으로 독특해서 추천하기는 그렇지만 저는 리스펙토르의 책 다 찾아서 읽어보고 싶어요^^*

2023-02-23 15: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23 16: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3-02-23 16: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으아 작년 가을에 나오자마자
샀는데 여적 안 읽고 있어서
오늘 가방에 넣어서 개지구
왔는데... 반갑네요.

미미 2023-02-23 16:54   좋아요 2 | URL
아아 매냐님 지금 갖고 계시군요! 개성 있는 작품인데 독후감을 쓰기 힘드네요. 지난 25일에 또 한권이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

페크pek0501 2023-02-24 13: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떤 것들에게 소유당하지 않고 그것들을 가질 방법이 있을까? - P45
: 없을 것 같습니다. 공짜는 없는 법. 대가는 치르게 되어 있는 법...이라고 봅니다.

미미 2023-02-24 14:52   좋아요 2 | URL
네! 소유하는 동시에 소유당함을 다시 확인하네요.
이런 말 꽂힙니다. 되도록 덜 소유하기에 관심이 가는건 소유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인것 같네요.
 

나, 일찍 일어나는 사람
많이 걷는 사람 아니던가?

나, 경이에 젖어 걸음 멈추고
푸른 여명 속
지붕들과 나무 꼭대기들 위
완벽한 샛별 바라보지 않았던가?

나무들 위를 지나는 건 그저 바람,
누구에게나 주어진 흔한 것일 뿐인데
바람이 아니라 물살인 듯 흔들리는 나무들,
나, 그 나무들의 떨림 보고 있지 않은가? - P33

소박한 집 위에도 궁전 위에도 같은 어둠이 있어.
악한 사람 위에도 
정의로운 사람 위에도 같은 별들이 있어.
회복될 아이 위에도 회복되지 못할 아이 위에도,
같은 에너지가 흘러,
비극에서 비극으로 어리석음에서 어리석음으로 - P35

그리고 또 하나의 진실ㅡ
가느다란 목구멍으로 피리소리 내는 이 금빛 새를 설령 내가 진화, 파충류, 캄브리아기 바다, 몸의 변화 욕구, 몸의 경이로운 기술들과 노력들, 무수한 생물들, 승자들과 패자들이라는맥락에서 생각한다 하여도 그 본연의 의미, 그 무한한 사랑스러움은 조금도 놓치지 않으리란 것. 내가 가진 재주는ㅡ 세밀한 지식과 완전히 봉인된 불가해한신비를 동시에 고려할 줄 아는 것이니까. - P63

다시 말해, 언어는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것이다. 만일 언어가 필수적이었다면 단순함을 유지했을 것이며, 늘 존재하는 사랑스러움과 최고조에 달하는 모호함으로 우리를 동요시키지 않았을것이다. 그 길고 흰 뼈 위에서 노래로 변신할 꿈을꾸지 않았을 것이다. - P65

감미로운 피리 존 클레어


감미로운 피리 존 클레어,
부러진 나뭇가지 에디 휘트먼,
전기의 불꽃으로 활활 타오른 크리스토퍼 스마트자살한 나의 삼촌,
강으로 가는 버지니아 울프,
구슬픈 노래 짓는 후고 볼프,
더블린의 짙은 어둠 조너선 스위프트,
다리 위로 올라가, 라인강에 뛰어드는 로베르트 슈만,
존 러스킨, 윌리엄 쿠퍼,
볼티모어와 리치먼드의 음울한 정신병원을 배회하는에드거 앨런 포—

세상의 빛, 나를 품어주오. - P83

넌 젊어. 그래서 모르는 게 없지. 넌 배로 뛰어들어노를 젓기 시작하지. 하지만 내 말을 들어봐.
팡파르도, 곤혹스러움도, 그 어떤 의심도 없이너의 영혼에 직접 말할 테니, 내 말을 들어봐.
물에서 노를 거두어 너의 두 팔을, 마음을, 너의미약한 지성을 쉬게 하고, 내 말을 들어봐. 사랑없는 삶도 있어. 그런 삶은 찌그러진 동전, 닳아빠진 신발만큼의 가치도 없지. 아흐레나 땅에 묻지 않은 개 사체만큼의 가치도 없지. 1마일쯤 떨어진,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물이 날카로운 바위를 둘러싸고 안달하며 소용돌이치고요동치기 시작하는 소리 들리면—그 분명한 포효가 들리면 입술에 물안개가 느껴지고 높은절벽을 수증기 내뿜으며 떨어지는 긴 폭포를 예감할 수 있다면 그럼 그곳을 향해 필사적으로노를 저어, 저어. - P155

나의 살과 뼈로 지어진 오두막에 사는 마음 한조각 노래하기 시작했지, 만일 태양이 노래할 수있었다면 그렇게 노래했겠지, 빛이 입과 혀를 가졌다면, 하늘이 목구멍을 가졌다면, 신이 그저하나의 관념이 아니라 어깨와 등뼈라면, 모든 곳에서 모여든, 심지어 불타오르는 머나먼 행성들에서도, 나는 어디 있는가? 지금 거친 말들이 엉겅퀴처럼 빠르게 내게로 와 누가 너의 폭군의몸, 갈망, 탐구, 즐거움을 만들었을까? 오, 호랑이여, 오, 힘든 일이여, 오, 불타는 나무여! 나에게서 떨어져 가까이 와. - P157

친구를 만나러 피사에 갔지. 친구를 만나 화창한 오후를 함께 보냈지. 나는 이 시인을 사랑하고, 그건 여기서든 저기서는 아무 의미도 없지만 내 마음속 정원과도 같지. 그러니 내 사랑은 자신에게 주는 선물.
그래서 난 그 7월 오후 피사에서의 그를 생각해. 그의 친구 헌트가 영국 친구들에 대해 뼈 있는 농담을 하자 그는 웃기 시작했지. 도저히 웃음을 주체할수 없었지. 호리호리한 몸이 흔들리고 긴 다리가 몸을 지탱하지 못해 건물에 기대야만 했지. 그래서 그는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석조 건물에 기대어 있었지 어리석음에 가득 차서돌벽을 붙잡고 요란하게 포복절도하며 자신의 몸을움켜쥐었지. 그 농담, 다정함, 지성, 작디작은 금빛꽃처럼 햇살 그 자체처럼 떨어져 내리는 눈부신 행복에 온몸이 산산이 흩어져버릴 것만 같았지. 헌트의 경쾌한 목소리, 피사에서 친구와 함께 보내는 단순한 오후. - P167

걸쇠에 손대지 않고 문을 열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앞길에 무엇이 놓여 있을지 주목하며 한 걸음 한 걸음내딛지 않고먼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외벽의 돌에 감탄하거나 반하지 않고 안쪽 방을 볼 사람이어디 있을까?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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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2-24 13: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보라색 바탕 위에 흰 글자. 예쁩니다...
뽑아 주신 문장들, 좋네요.

미미 2023-02-24 14:50   좋아요 1 | URL
흰 바탕에 구성이 뭔가 딱딱해 보여서
분위기를 바꿔봤습니다.*^^*
 

  

   



인간은 그 누구도 고립된 섬에 살지 않는다. 그렇기에 살아감이란 언제나 '함께 살아감(living -with)'이다. 성찰하는 것이란 나의 삶만이 아니라 타자들, 그리고 우리가 몸담은 사회와 세계에 대하여 성찰해야 함을 의미한다. ㅡ질문빈곤사회, 강남순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다 말았었는데 <질문 빈곤 사회>의 프롤로그를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여러 사상가들에게 아직까지도 학문의 초석으로 여겨지는 그리스 철학. 그중에서도 정점에 있는 철학자 소크라테스. 그는 누구보다 질문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고 어쩌면 그로 인해서 죽음을 맞이했다. 개인적으로 그의 죽음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었는데 '질문'의 관점에서 보니 이건 상징적 사건인 듯 보인다. 문제의식을 갖는다는 것이 그로인해 질문한다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고 또 위험하다는 상징 말이다. 역사상 가장 지혜로웠다는 소크라테스도 그로 인해 죽음을 당했는데 일반인들에게 질문이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하지만 질문은 사유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사유는 그런 의미에서 무지의 불안으로부터 우리를 벗어나게 하는 뼈대가 아닐까.



한나 아렌트는 '악(evil)'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와 전적으로 다른 새로운 정의를 내린다. 아렌트에 의하면 "악이란 비판적 사유의 부재"다. (...) 소위 '선량한 사람'이 비판적 사유를 하지 않을 때, 왜곡된 정치적 이데올로기 또는 왜곡된 종교적 가치에 의해 '선동'됨으로써 자신도 모르게 '인류에 대한 범죄'에 가담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늘 상기해야 하는 중요한 점이다. ㅡ 질문빈곤사회



'질문하기'를 통해서 인간은 자신의 인식 세계를 넓힘은 물론 타자와 세계를 보는 시각 또한 확장했다. 그 결과 다양한 의미의 '포용의 원(circle of inclusion)'을 확대 할 수 있었고 이는 질문하기를 통한 중요한 정신 세계의 발전이다. 이러한 발전은 사회정치적이고 제도적인 발전과 맞닿아 있다. (...) 노예제도의 폐지, 인종에 대한 제도적 차별의 폐지, 여성에 대한 제도적 성차별의 인식과 개선, 성소수자 차별을 넘어서는 제도적 평등의 모색 등 다차원적 변화가 일어난 것은, 새로운 질문을 묻기 시작하는 이들에 의해서 가능하게 되었다. ㅡp.8



한국은 가정교육은 물론 공교육에서도 질문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게 하는 문화다. 주입식 교육방식 그리고 그에 따른 입시제도는 질문을 봉쇄하는 문화를 지속시키고 강화한다. 더 나아가서 가족, 친척, 직장, 군대 등 도처에서 작동되는 '장유유서'의 변형된 관계관과 가치관은 가정, 학교, 직장은 물론 사람 간의 위계주의적 관계를 지배하고 있다. p.9





독서라는게 만능은 아니지만 책을 읽기 전에는 제대로 된 질문을 해 본 기억이 없다. 질문은 특정한 사람들, 뭔가를 가진 사람들이 하는 거라는 의식이 내 안에 있었고, 동시에 위압감 같은 것이 보이지 않지만 공기중에 떠 있다고 느꼈다. 지금도 완전히 달라졌다고 할 수는 없다. 문제제기를 하는 것, 어떤 것에 대해 내 나름의 생각을 글로 써 내는 것은 아직도 용기가 필요하다. 숨겨두었던 것을 사람들 앞에 전시하는 셈이니까. 비판받을 것을 어느정도는 감수해야 하고 이해받지 못함이나 오독도 감안해야 한다. 사람들과 섞여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같다. 어떤 식으로든 충돌은 피할 수 없다. 많은 면에서 여성들은 그런 두려움이 더 강한것 같다. 감추는 것에 더 익숙하고 능숙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말해야 하고 말 할 수 있어야 한다. 침묵은 때로 외부의 힘에 굴복을 의미하니까.





질문의 가능성은 위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아프고 경직된 사회일수록 그렇다. 권위적인 사람일수록 자기 기준 밖의 질문에 예민하다. 그들에게 '질문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다. 그 경계에서 벗어난, 즉 권위가 없는 이들의 질문은 '도전'이고 그 자체로 '문제'시 된다. 하지만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의 질문을 통해서 우리의 세계는 확장될 수 있다. 사람들이 인지하는 세계는 '전부'가 아니니까. 인간은 볼 수 있는 것들만을 겨우 보고 인지한다고 하지 않나. 품고 있는 질문들이 밖으로 나와 모이면 어떤 일이 생길까...





   


어디에서, 어디에서 당신의 영혼은 무너지나요? p .265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글쓰기에 관해 내가 들은 견해 중 가장 무용했던 말은 글을 쓸 때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치 우리의 목소리가 작동할 준비가 된 자동 피아노처럼 우리 내면에 숨어 있다는 듯이. 개성과 마찬가지로, 목소리의 존재야말로 세계와 나의 상호작용에 달린 것인데. p.23 . 세라 망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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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터라이프 2023-02-18 20: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저에게도 의미 있는 글인데요. 살면서 3번 정도 독서 모임에서 토론 책으로 집중해서 읽었음에도 머릿속에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 이건 마찬가지로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도 그러한데요. 역시 독서인들은 삶에서 책 내용을 그대로 자주 망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 보이네요.... ㅜㅜ.

미미 2023-02-18 21:06   좋아요 2 | URL
저도 점점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재독할때 새로운 책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아요ㅎㅎㅎ
베터님 3번이나 읽어보셨다니 조만간 나머지 부분 다시 도전해야겠어요! <사랑의 기술>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읽고 에리히 프롬에게 반해서 사두었습니다. 미드나 영화에서 기억력이 뛰어나 한 번 읽은 책 페이지까지 기억하는 천재들 보면 부럽기도 하고 얄밉기도 해요,^^*

페넬로페 2023-02-19 00: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고 있는데 칼날같은 문장이 많더라고요~~
한국의 현실이 잘 정리되어 있어 좋았어요^^

미미 2023-02-19 09:36   좋아요 3 | URL
오~♡ 페넬로페님도 읽고 계시군요! 네~날카롭게 분석하고 있어 시원시원 합니다^^*

은오 2023-02-19 14:5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매주 질문 5개씩 만들어오는게 과제였던 교수님 수업이 생각납니다. 저는 그게 정말 괴로웠어요..... 진짜 다른 어떤 과제보다도 더 공부하게 만드는 과제 ㅠㅠ 열심히 읽고 생각해야 질문도 생기게 마련이니.... 대충 읽으면 또 그냥 책 내용만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게 되고. 질문 있는 학생? 했을때 아무도 대답이 없는건 빨리 수업을 마치고 싶어서도 있지만 공부를 안해서 궁금한 것도 안생겼기 때문입니다 교수님.... 결론: 읽고 머리에 든 게 있어야 질문도 생긴다! 생각하며 읽기 -> 질문 -> 깊은 사유!

미미 2023-02-19 15:46   좋아요 2 | URL
헉...5개씩이라면 적지 않은데요! 과제라면 질적으로도 적절해야 한다는 생각에 더 고통이었을것 같아요. 그래도 덕분에 지금의 은오님이 되신 것 아닐까요? 그 과제가 물론 전부는 아니었겠지만 은오님 나름의 방식으로 읽고 또 생각해서 써 올리신 글들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올때가 많았거든요. 저에겐 어려운 점인데 내 관점을 가지며 읽고 쓰기로 발전하고 싶어요^^*

새파랑 2023-02-19 16: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실 질문도


뭔가 알아야 할 수 있더라구요 ㅋ 전 무식(?)해 보이고 싶지 않아서 일단 잘모르면 가만히 있습니다 ㅎㅎ

아는게 힘인거 같습니다~!!

미미 2023-02-19 18:19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그렇죠!!
새파랑님 은근히 핵심을 찌르십니다.^^*



난티나무 2023-02-19 17: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저 책 저 어제 샀어요!!^^

미미 2023-02-19 18:22   좋아요 0 | URL
난해한 편인데 해체적 글쓰기라고 할까요? 리스펙토르만의 색깔을 경험하실 수 있으실거예요.^^*
난티나무님 어떻게 읽으실지 궁금합니다!

난티나무 2023-02-19 18:33   좋아요 1 | URL
<달걀과 닭> 읽고 있거든요.^^ 두어 개 읽고 바로 주문! ㅋㅋㅋ 그런데 종이책이라 언제 받을지는 몰라요.🙄

미미 2023-02-19 18:56   좋아요 0 | URL
두어 개 읽고 바로 주문하셨다니 난티나무님 너무 멋집니다~♡ 이 난해함을 이해하셨다는 의미니까요!!
<달걀과 닭>이 급 궁금해지는걸요?^^* 저에게는 <G.H.에 따른 수난>이 있는데요. 부분적으로 읽어봤는데
이 책에도 인상적인 문장들이 있어요!

jtkk9004 2023-02-25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BG